원래는 돈을 벌어들여도 시원찮을 정월 초하루부터, 생돈을 한 뭉치나 물어낸 우문호는 속이 쓰려 여동생을 잘 못 챙겼다는 핑계로 만두를 혼냈다.만두는 너무 억울했다. ‘아니, 여동생이 갑자기 불을 지를 줄 어떻게 알아요? 눈으로 찌지직 불꽃을 뿜는데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요.’하지만 아이들도 아빠가 여동생을 혼내는 게 싫었고, 잘못한 걸 알고 주눅이 들어 있는 여동생이 너무 안 돼 보였다.우문호가 딸을 안자, 딸은 고개를 아빠 가슴팍에 쏙 파묻으며, 정말 잘못한 걸 안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속으로 2번이나 불을 냈는데 이대로 넘어가면 우문호가 또 계란이를 편애한다고 할 거라, 몇 마디 꾸지람을 하자 계란이가 울음을 터트렸다.우문호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계란이를 달래주지 않은 채 울도록 내버려뒀는데, 계란이는 아빠가 전처럼 그렇게 자기를 총애해 주지 않는 것에 울어도 소용없겠다 싶어 우문호의 소맷자락을 잡고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계란이가 잘못했어요.”하지만 우문호는 계란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자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기화가 3살까지는 억제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째서 아직 두 살도 안 됐는데 억제가 안 되는 거야? 전에 현대에 갔을 때는 시공간의 속박이 없어 불을 지를 수 있었다고 쳐도, 여기 돌아와서도 불을 낸 건 어떻게 된 거지?”“몰라.”우문호가 원경릉을 빤히 쳐다봤다.“당신이 모르는걸, 내가 어떻게 알아?”원경릉이 한숨을 쉬었다.“더 일찍 보내야 할 수도 있겠어.”우문호가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우연히 화재가 발생했던 게 아닐까?”원경릉이 그에게 말했다.“자기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칭찬해 줄게, 그런데 상황을 보면 자기 생각이 틀린 것 같아.”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달래주었다.“사실, 자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좀 일찍 보내는 대신 일찍 돌아올 수 있잖아. 안 그래?”“말이 그렇지, 이렇게 작은 아이가 엄마 아빠와 떨어지다니 너무 불쌍해.” 우문호는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1월 10일은 개학날이라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돌아가야 했다.이번엔 우문호와 원경릉 둘 다 현대에 다녀올 예정이라 조정 정무는 잠시 냉 재상에게 맡기기로 했다.우문호가 이번에 가는 주된 원인은 기화와 월아를 만나, 계란이가 3살까지는 능력을 억제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는 것이다.서일은 황제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따라갔다.전에는 현대를 두려워했지만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역시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현대에 도착한 우문호는 처가 사람들을 만나고 기화 부부에게 와서 얘기 좀 하자고 초대했다.계란이가 불을 내서 숙왕부가 탔다는 말에 기화도 놀라, 계란이를 안고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좀 더 일찍 아이를 제가 줘야 할 수도 있어요.”우문호는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막상 기화가 이렇게 말하자 역시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다시 한번 봉인해볼 수는 없나요?”“안 돼요, 그녀의 능력이 두 배로 증가해서 이렇게 누른다고 해도 바로 문제가 생길 겁니다.”우문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원경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원경릉도 섭섭한 게, 계란이가 조용히 기화의 품에 누워 있는 착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그녀가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우선 서두르지 마.”기화 부인 월아가 말했다.“아이를 우리 부부 손에 넘겨 주시면 안심하셔도 돼요. 계란이가 당신들 곁에 있을 때 받은 대우대로 우리도 계란이를 대할 테니까요, 절대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월아의 따스한 말은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우문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계란이가 구박받을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저 섭섭해서 그렇죠.”“누가 평범하지 않은 딸을 낳으래요?” 월아가 계란이 얼굴을 살살 쓰다듬는데 사랑이 흘러넘쳐 보였다. 아이들이 자기들 품으로 와서 있을 거란 것을 안 뒤로, 월아는 계란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오길 많이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계란이 능력은 예측할 수가 없는 게, 우리 상상을 초월해요.”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실 계란이는 이곳에 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다. 계란이는 늘 오빠한테 붙어 있는 걸 좋아해, 오빠들이 북당을 떠났을 때 한동안 울적해 있기도 했다. 경단이 말이 사실 맞았다. 계란이는 부모 곁에 남아 있는 것보다 오빠들과 같이 있는 걸 더 좋아했다.우문호가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더 놀아주고 싶어도 조정 일이 많아 바쁘다 보니, 계란이는 아빠를 볼 수 없고, 우문호도 자러 가는 길에 잠든 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밤새 원 선생과 상의 끝에 어려운 결단을 내려, 계란이를 여기 현대에 남겨두기로 했다.딸은 일반인과 다른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배워야 했다. 게다가 딸이 오빠들과 있기를 원해서, 딸만 좋다면 아무리 섭섭해도 역시 자신을 타이르는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1년에 2번은 돌아올 예정이고, 한 번 올 땐 2달씩은 머무를 수 있으니, 1년에 4개월의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이렇게 계란이와 신조는 현대에 남기로 하고, 부부는 크고 작은 봉지를 짊어진 서일을 데리고 쓸쓸히 돌아갔다.섭섭해, 섭섭해, 너무 섭섭하다고.가는 길에 원경릉은 눈물을 터트렸다. 우문호도 울고 싶어 코끝이 찡해지며 괴로웠다.경호로 돌아가서 마음이 텅 빈 듯 원경릉 손을 잡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는데, 곁에 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목 놓아 울었다. 우문호가 계속 아이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바람에, 원경릉은 자신의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자, 마음속에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눈물이 터져 버렸다. 결국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달래주고 나서야 겨우 울음을 멈췄다.서일도 좀 괴로웠다. 본인도 공주를 보내는 게 내심 섭섭했었다. 경성으로 돌아와 며칠간 괴로웠으나 생활은 여전히 계속됐다.아이들이 곁에 없으면 심장의 절반이 사라진 듯, 아주 힘들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익숙해지더니, 많은 시
기화가 놀라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제가 미쳤어요, 여기 살게? 여기는 인터넷 쇼핑도 없고 배달도 안 되고 게임도 없는데, 이런 낙후한 데서 어떻게 살아요?”그러자 북당 황제인 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낙후? 낙후됐지, 그럼 안 그럴 수 있어? 현대랑은 시공간부터가 다른데.근데 다른 나라들이랑 비교하면 북당에 대체 어디가 낙후됐다는 거야?’그러나 우문호는 기화에게 함부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딸이 그 집에 있으니, 비위를 잘 맞추며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아이들은 이미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뒀기 때문에 한 달 있다가 돌아가야 했다.원 교수 부부와 원경주가 그 세계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번갈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었다.그래서 원래는 거의 2달간 방학이지만 한 달만 머물 수 있었다.아이들이 가고 나면 다시 겨울 방학까지 기다려야 했다.교육과 의료는 점점 궤도에 올랐으나 한 나라를 다스리자니 잡다한 일이 많아서 우문호는 여전히 바빴고, 오히려 원경릉은 다시 여유가 생겼다.겨울 방학에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계란이는 전보다 키가 꽤 컸고 턱이 뾰족해진 것이 훈련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기화 말대로 난이도가 높아지긴 한 것 같았다.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은 전보다 훨씬 침착해졌고, 특히 만두는 점점 맏이 티가 나서 동생들을 상당히 자상하게 챙겼고, 동생들도 만두 말을 참 잘 들었다.섣달그믐 밤, 계란이가 다시 불을 냈지만, 이번엔 화염을 제어하는 것을 시연한 것으로, 지켜보던 숙왕부 어르신들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천재로군.’신조 털도 원래보다 예뻐져서 점점 꼬리에 불같은 붉은 색을 띠었다. 계란이가 시연을 마치자, 신조도 숙왕부를 한 바퀴 돌며 꼬리를 쫙 펼치니 불꽃을 끌고 가듯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이렇게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몇 번 오간 끝에 계란이의 7살 생일이 다가왔다.7살 계란이는 키가 120cm로 매우 아름답게 성장
냉 대인에게 요 몇 년간 혼담이 들어왔지만 결국 이상한 이유로 전부 흐지부지 되었다.첫 번째는, 집안의 담장이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진 것으로, 이는 불길한 징조라며, 어쩌면 하늘의 경고일지도 모르니 학문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혼인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두 번째는, 냉 부인이 막 매파를 찾아내 아직 혼사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냉 대인이 고열이 나고 연속 사흘간 열이 나자,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며 하늘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세 번째는, 집에 늙은 개가 죽었는데 냉 대인이 말이 삼년상을 치러야 하니 3년간은 혼인할 수 없다고 해서, 냉 부인이 완전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몽둥이를 들고 냉 대인을 쫓아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잡히면 죽는다고 했다.네 번째는,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 이유도 없이 눈썹이 절반 깎여 있었는데, 눈썹은 운수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혼담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구실이었다.냉 부인은 마음을 접고 냉 대인을 재상 저택에서 살라고 내쫓으며 무섭게 쏘아붙였다.“평생 홀아비로 살거라!”냉 대인이 탄식했다.“보아하니… 그게 아들의 운명인가 봅니다.”냉정언이 재상 저택으로 이사한 뒤, 냉 부인은 아예 냉정언의 혼사로 속 끓이는 대신해서, 친척 중에 비교적 총명하고 영리한 대를 이를 만한 아이가 없나 찾았다.냉 부인이 직접 냉정언에게 가서 물어보자 냉정언이 원래는 싫다고 했으나, “싫으면 어미를 위해 가서 목을 매달아라!”라는 냉 부인의 한마디 말에 냉정언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그럼, 모든 건 모친께 맡기겠습니다!”냉 부인은 친척 중에 다섯 살짜리의 남자아이를 하나 골라주었는데, 이 아이도 운명이 아주 기구했다. 위에 3명의 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돌아가신 탓에 할머니는 그 애가 재수가 없어서 집안에 불운을 가져왔다며 그 애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그 애 어머니가 작년에 병으로 죽자, 아이는 더욱 살기 힘들어져 세 살처럼 삐쩍 말라 피골이 상접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원경릉이 냉정언에게 물었다.“얘가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는 강자로 하려고 했으나, 집에 온 뒤로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아직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냉정언이 답했다.“아!” 냉정언은 예전에 국자감의 제주로, 학문이 뛰어났기에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붙여 줄게 틀림없었다.냉정언이 원경릉에게 물었다.“황후마마께서 저 아이에게 이름을 하사하시는 것은 어떨지요? 황실의 복을 조금이라도 입었으면 해서요. 이 아이가 전에 고생이 많았거든요!”“제가요?” 원경릉은 당황스러웠다. 어제 냉정언이 옷 가지러 입궁했을 때 듣고 괴로웠던 것이, 아이의 얘기라 특히나 감정 이입이 됐다.“황후 마마께서는 많은 복이 있으시니 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면, 첫 번째 복은 받은 셈이 될 것 같습니다.” 냉정언이 말했다.원경릉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우문호가 소월전으로 돌아왔다가, 원경릉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 가는 대로 한마디 했다.“그럼, ‘냉명여’로 하지. 포부가 원대하고 ‘한 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한다’라는 일명경인의 ‘명’, 임금이 내린다는 뜻의 ‘여’로. 짐이 이름은 좀 지을 줄 알아서 말이야.”냉정언은 평소처럼 아이를 흘끔 바라봤다.“어서 폐하께 성은이 망극하다고 인사드리지 않고 무엇하느냐?”아이는 털썩 꿇어앉았다. 황제가 이름을 지어 준 것이 얼마나 엄청난 복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냉정언이 무섭기만 했다.우문호가 손을 뻗어 아이를 일으켜주며 따스하게 말했다.“겁먹지 마, 네 아버지는 조금도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에게 아주 잘하셔.”아이는 뒤로 움츠러들며 원경릉 뒤에 서서 두려워했다.냉정언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는 여전히 냉정언 뒤에서 쭈뼛거리며 냉정언을 화나게 했다.냉 부인은 원래 두 사람을 집으로 돌아와서 살게 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에 냉정언을 쫓아낸지라 지금 불러들이기엔 체면이 서지 않고, 또 바로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었다. 이 아이는 기왕 이
계란이가 8살이 되자,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사부 기화와 사모 월아와 다섯 오빠도 함께 했다. 떡들은 7월에 대입을 치러야 하는데, 조금도 긴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명문 대학이든 십중팔구 합격 아니겠어? 2년 전에도 가능했지만, 엄마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어렸을 때보다 너무 잘하지 않도록 애쓴 것이었다.생일잔치는 비교적 조용히 치를 예정으로, 가까운 친척과 친구만 아이들과 함께 오라고 했다. 계란이가 현대에 가있긴 했지만, 동년배 아이들이랑 마음이 잘 맞는 것이, 1년에 2번씩은 같이 놀았기 때문이다.사식이는 둘째를 낳았는데 아들이 태어난 지 이제 두 달째라 장녀인 사탕이가 동생을 책임지고 데리고 있었으며, 계란이에게 남동생이 있다고 자랑하며 으쓱대기도 했다.구사 딸인 수아도 남동생이 있었는데, 원용의도 올 초에 막 회임을 해서 지금 배가 상당히 컸는데 보배도 곧 남동생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계란이는 웃으며 조금도 부러운 내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내심 남동생이 가지고 싶었다.8살 계란이는 침착한 성격으로 예전 원경릉과 아주 닮았고 사모인 월아와도 매우 닮았다.그러나 이 침착한 겉모습 뒤에 어떤 마음이 감춰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계란이가 처음 냉명여를 봤을 때, 그는 홍엽 뒤에서 원숭이를 안고 여전히 겁이 많았지만, 무공을 반년 정도 수련해 막 왔을 때보다 아주 좋아져 있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원숭이랑만 놀고 있었다.계란이가 냉명여 앞에 서서 물었다. “홍엽 삼촌 원숭이를 어떻게 널 주신 거야?”냉명여가 계란이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약간 경계하는 듯했다.“넌 이름이 뭐야?” 계란이가 물었다.“냉명여, 황제께서 이름을 하사해 줬어.” 그가 말했다.계란이가 엷은 미소를 띠었다.“우리 아빠가 붙여주셨다고?”냉명여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빠라고? 아빠가 황제야?!”“응!” 계란이가 그의 뾰족한 턱을 들여다봤다.“넌 누구 동생이야?”“전 누나도 없고, 형
냉명여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예, 아버지!”냉정언에겐 그저 지나가는 농담에만 불과했지만, 냉명여는 마음에 꼭 새기며 앞으로 자신의 임무는 누나를 잘 보호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계란이의 8살 생일 잔칫날, 우문호가 성지를 내려 계란이를 조양진국의 공주로 책봉했다.계란이는 신조를 안고 붉은색 봉황 겉옷을 입은 채 복도에 미소를 띠고 서 있는데, 8살 아이인데도 경국지색의 미모에 기품이 풍기며, 방금의 장난기는 어디 가고 침착하고 의젓하게 변해 있었다.진국공주란 이름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일잔치가 끝난 후, 우문호와 계란이는 어화원을 거닐며 소화를 시켰고, 원경릉은 떡들과 대입에 관해 얘기하며 경험을 전수했다.1년에 고작 2번 돌아오는 계란이가 이렇게 순식간에 커서 8살 꼬마 숙녀가 되었다. 딸 손을 잡고 차분하고 아리따운 옆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과 함께 또 너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다 컸지만, 아직은 정식으로 우문호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사부님이 얼마나 더 있으면 돌아올 수 있겠다고 하셨니?” 우문호가 부드럽게 물었다.“후년이요!” 계란이가 아빠에게 기댄 채, 겉옷 자락을 바닥에 끌자, 금박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며 따스해서 오늘 냉명여와 얘기할 때와 전혀 달라 보였고, 다른 여자애들과 같이 있을 때와도 그랬다.그제서야 우문호는 안심할 수 있었다.“후년이라… 후년이면 넌 열 살이 되겠구나!” 우문호는 이번엔 2년이라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딸이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랬다.하지만 딸이 돌아오면 10살이고 7~8년 후면 혼담이 오갈 거로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다.천신만고 끝에 얻은 금지옥엽 같은 딸이, 곁에 얼마 있지도 못하고 벌써 이만큼 커버린 것이다.“공부는 어때?” 우문호가 물었다.“전부 만점이지요!” 계란이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러자 우문호도 웃으며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
이리 나리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곁으로 걸어가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사람이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재산은 평생을 써도 남을 만큼 많으니 아끼며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그는 말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탄 뒤,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원경릉은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앞서 한 말은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뒤이어 한 말은 또 다른 의미로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저렇게 자랑하지 않으면 못 참는 걸까?랑문서가 정식으로 설립된 날, 삼대 거두는 길고 긴 폭죽을 보내왔다. 폭죽 소리는 십 리 밖까지 울려 퍼졌고, 이는 북당이 한 걸음 더 발전했음을 상징했다.수도에서 천 리 떨어진 약도성에서도 이날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도성 중심에 새로 만들어진 상업 거리가 성대하게 시작을 알렸다. 이곳은 택란이 계획한 곳으로, 각종 장사를 한곳에 모아 거래를 규범화하고, 관아에서 관리하여 사기와 도둑질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상업 거리라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는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만들 예정이다.같은 날, 또 다른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도로 건설의 시작이었다. 간소한 의식을 치른 뒤, 도로 공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약도성은 광산 자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금나라와의 합의만 아니라, 산을 개척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기초 공사도 필요했다.조정에서 약도성에 특별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작업은 성에서 스스로 해내야 했다. 다행히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확보했기에, 이를 공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한편, 택란은 계속 금나라의 상황을 꼬마 봉황을 통해 접하고 있었다.진국왕은 얼음에 맞은 후 죽지는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지위를
주 어르신은 원경릉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세상 만물은 도법을 떠날 수 없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주 어르신은 정말 학식이 깊으십니다!”“대충 추측한 것이다!”소요공이 손으로 부채질하며 원경릉에게 물었다.“또 진맥하러 온 것이냐? 어제 네 할머님도 다녀갔다.”“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손가락을 찌를 것입니다!”원경릉이 말했다.무상황은 손가락 찌른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안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는 얼마 전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고, 며칠에 한 번씩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가?원경릉은 그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히 약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어르신은 모범을 보이듯 먼저 혈압을 쟀고, 소요공도 뒤따라 검사했다.검사를 마친 두 사람은 무상황을 붙잡아 의자에 앉히고, 손가락을 원경릉 앞으로 내밀었다. 소요공이 말했다.“세게 찌르거라!”원경릉은 물론 세게 찌를 리 없다. 그녀가 부드럽게 처리했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소요공을 노려보았다.혈압과 혈당이 조금 높긴 했지만, 심각한 편은 아니라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모든 검사를 마친 후, 원경릉은 랑문서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주 어르신은 중요한 일이니 곧바로 동의했고, 바로 이리 나리를 불러왔다.이리 나리는 이미 이런 노골적인 요구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는 과거 늑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평생에서 얻은 것이 많지만, 그 어떤 것도 공주보다 귀하지 않다. 만약 내 모든 것을 공주와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 늑대파도 포함해서 말이다.”이 말에 늑대파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를 둘러싼 채 한바탕 두들겨 팼다. 이리 나리는 가까스로 틈에서 빠져나와 힘겹게 말했었다.“하지만 설랑은 제외다!”그는 결국 더 심하게 두들겨 맞았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
사건의 진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문호는 종권을 보며 늑대파가 지금의 임무 외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랑문서라는 기관을 설립해 각 주부의 큰 사건들을 전담 조사하도록 하는 것이다.특히 지역과 주부를 넘어서는 큰 사건들은 지역적 한계로 인해 조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랑문서에 권한을 부여하여 형부나 대리사의 통제를 받지 않게 한다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지고 효율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우문호는 곧바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이일은 이리 나리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늑대파가 비록 그동안 조정의 일을 도맡아왔고 사실상 조정에 소속된 상태였지만, 공식적으로 관청을 설립하는 것은 늑대파가 이리 나리의 관할에서 완전히 벗어나 나라의 소속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논의 후 내각 대신들이 모두 찬성했지만, 우문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동안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 왠지 부끄럽구나.”냉정언이 대꾸했다.“그렇다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시지요.”우문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건 안 된다. 부끄럽긴 하지만, 일은 해야 한다.”그는 냉정언을 보며 말했다.“다만, 내가 직접 나서긴 좀 그러니, 네가 이리 나리를 설득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냉정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체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황후께 부탁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사제 관계였으니 얘기가 통할 것입니다.”“원 선생은 체면이 없는 줄 알아? 안 된다. 원 선생도 이미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했다. 네가 수보니, 네가 가야지.”냉정언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더 권위가 있는 수보를 찾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 어르신은 어떤가요?”“좋다!”우문호가 바로 동의했다.냉정언이 말을 이었다.“그럼 황후께서 맥을 보러 가실 때, 주 어르신께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는 이 말을 남기고 다급히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멍하니 있다가 바로 깨달았다.‘결국 또 원 선생이 나서게
사실 소금 사건은 겉보기엔 제왕 일행이 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색과 늑대파가 조사하고 있었다.미색은 이미 성공적으로 손영영과 접촉했다. 사실 손영영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회왕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색에게 해명하려 했지만, 미색은 아예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회왕은 답답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원경릉은 이를 보고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며 생각했다.‘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겠지? 고생 좀 해봐야지.’그녀는 이 일을 다섯째에게 알렸고 다섯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섯째는 호부를 관리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데는 일등이오. 지금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거나 연기, 책략을 필요한 일에는 서일 만도 못 하오. 그런 주제에 미남 계를 쓰고, 셜록 홈즈를 흉내 내다니. 그냥 고생 좀 하게 두시오. 우리가 나설 필요 없소.”원경릉이 웃음을 터트렸다.“셜록 홈즈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하오!”“뭐가 대단하오? 그곳에 몇 번이나 갔는데, 이런 새로운 이야기도 내가 모를 것 같소?”“셜록 홈즈는 새로운 이야기에 속하지 않소.”“나를 비웃으려는 것이오?”우문호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알았소. 웃지 않겠네. 그나저나, 호랑이와 늑대도 출발했고, 사식이도 며칠 뒤에 궁으로 들어올 것이오.”“좋구먼. 이제 궁에 아이들이 있게 됐소. 사식이의 아이는 이제 몇 달이 되었네. 볼이 얼마나 말랑하고 귀여운지 아시오?”다섯째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래서 서일에게 거처를 제공하려 한 것이오?”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당연히 아이 때문이지. 서일한테서 뭘 바랄 수 있겠소? 서일은 도통 쓸모가 없소.”“그만하시오! 말을 좀 이쁘게 하시오. 서일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네.”“서일을 하루라도 놀리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오!”“독설가가 따로 없소!”원경릉은 비록 그를 타박했지만, 사실 그녀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