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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99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04 18:00:28
원경릉은 터질 듯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주지에게 물었다. “… 이리봉청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비록 36년의 세월 차가 있고 이리봉청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해도 자신을 지킬 능력이 충분하다면 아직 살아있을 희망이 있다. 이리봉청이 살아만 있다면 의의가 어마어마했다.

주자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리 가주가 실성한 뒤로 자기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며 계속 아들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중얼거리더니 몇 번이나 하산했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죠. 지금 여전히 암자 뒷산에 있습니다. 소승이 작은 집을 하나 지어줬는데 종일 베개를 자기 아들이라고 안고 있어요. 소승이 그 베개를 뺏은 적이 있는데 그녀가 발광하며 소승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

“자기야,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 아직 살아있다고!” 원경릉은 고통과 기쁨이 한곳에 모여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36년간 실성해 지난 일을 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느껴졌다. 이제는 날마다 뼈를 깎는 고통에 사무쳐 지내지 않아도 된다.

우문호는 손을 뻗어 원경릉의 눈물을 닦았으나, 자신도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목에 가시가 박힌 듯한 며칠이 지나더니, 마침내 좋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주지 스님, 죄송하지만, 그녀를 보러 가게 길을 좀 안내해 주세요!” 원경릉이 일어나 합장했다.

덕방스님이 얼른 일어나 합장했다. “황후 마마, 이러실 필요 없으십니다. 보시고 싶으시면 소승이 직접 모시겠습니다.”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짐도 같이 가겠네.”

덕방스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셋을 데리고 뒷산으로 향했다.

비록 사당은 크지 않지만, 뒷산을 돌아가려면 꽤 거리가 있었다. 산길은 비탈져 걷기 불편해 아무리 빨리 걸어도 달릴 수 없으므로 반 시진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산꼭대기 평지에 작은 초가집이 있는데 정말 작아서 대충 눈대중으로도 10㎡ 정도의 누추한 초가집이었다. 문 앞엔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고 가까이 가자 초가집 옆에 큰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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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3000화

    원경릉이 뒤를 돌아 우문호에게 말했다. “자기는 서일이랑 이리 나리한테 가서 얘기해 줘. 너무 흥분하지 않게.”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일한테 가라고 하고 난 여기 있을게.”“아니, 자기가 가야 해. 서일은 세심하게 얘기 못 하는 성격이잖아.”이리 나리에게 얘기를 전하는 것 말고도 이리 나리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서일은 할 수 없다.우문호는 깊이깊이 이리봉청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가 직접 갈게. 당신은 이리봉청 곁에 잘 있어 줘.”“알겠어!” 원경릉은 우문호의 붉어진 눈을 보고 우문호도 감동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비록 우문호는 이리봉청과 일면식이 없지만 이리봉청의 사연을 안 뒤로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우문호는 덕방스님에게도 같이 자리를 뜨자고 했다. 모두 가자 이리봉청은 천천히 경계를 풀고 마침내 원경릉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이리봉청이 웃자, 모든 어둠이 전부 물러가고 천지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다.이리봉청을 바라보는 원경릉의 눈에 눈물이 일렁거렸다. “저 주세요. 어디 한 번 봐요. 괜찮죠?”이리봉청은 잠시 망설이더니 베개를 원경릉에게 주었다. 원경릉이 받아서 들었는데 코를 찌르는 시큼한 썩은 내와 함께 아직도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이리봉청이 계속 베개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원경릉은 베개를 안고 또 한 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눈물이 아롱지는 와중에 원경릉이 이리봉청의 손을 끌더니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앉아요. 우리 같이 아가 옷 꿰매요. 네?”그러자 이리봉청은 마음이 풀렸는지 반항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원경릉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은 안을 둘러보니 침대와 직은 탁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탁자 위에는 식어서 말라비틀어진 찐빵이 놓여 있는데 몇 개는 벌써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 주지 스님이 보내온 것이 틀림없다.이리봉청이 만두 하나를 들고 쭈뼛거리며 원경릉 앞에서 손을 뻗었다. “먹어!”만두를 받아 들자, 만두 위에 뚝뚝 원경릉

  • 명의 왕비   제 3001화

    하지만 원경릉은 그런 이리봉청을 달랠 수 밖에 없어 자리에 앉아 우선 베개를 꿰매기 시작했다.베개에는 땟국물이 얼마나 절었는지 바늘도 잘 안 들어가고 안에 들어있는 솜은 옅은 검푸른 색으로 더러워져 있었다.이리봉청은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원경릉이 베개를 꿰매는 걸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베개를 보는 눈빛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의 눈빛으로, 그저 한없이 바라보며 손을 반쯤 허공에 두고 있었다. 원경릉은 바늘을 찌를 때 혹시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이리봉청을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리고손을 뻗어 베개를 쓰다듬었다. “아가, 내꺼.”“네, 알아요!” 원경릉은 가슴이 쓰라렸다. 천천히 꿰매느라 베개 전체를 한 바퀴 돌아가며 다 꿰매고 동작은 최대한 느리게 했다. 이리봉청과 같이 앉아 있을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들어 두어 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다.원경릉은 흥분했다. 전에 가정했던 것을 전부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이리 봉청과 이리 나리의 철천지원수를 갚을 수 있고 모자도 상봉할 수 있다. 진정한 상봉 말이다.이런 생각에 미소가 번지는데 원경릉의 미소가 꽤 따스했는지 이리봉청은 이제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듯 했다. 조금씩 원경릉 곁으로 다가오더니 더이상 베개를 뚫어지게 노려보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고 원경릉에게 진심을 보여주었다. 이 베개는 이리봉청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제나 보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유일한 버팀목이되었다. 그런 물건에서 손을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리봉청이 원경릉에게 가지는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이건 아마 원경릉이 이리봉청의 과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텔레파시란 정말 오묘한 게 아닐 수 없다.원경릉은 베개를 다 꿰맨 뒤 이리봉청에게 건네주자 이리봉청은 기쁘게 받아 들고 품에 꼭 끌어안으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원경릉은 순순한 그녀의 미소를 보니 가슴이 쥐어짜듯 아파와 눈물이 차오르는 걸 멈출 수가 없

  • 명의 왕비   제 3002화

    하지만 이리 나리는 여전히 고통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게 이리봉청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이리 나리를 안심시켰다. 지금 이 순간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니…!하늘이 불쌍히 여겨 살려두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리 나리 목에 흐르는 선혈을 보고 이리봉청은 조금 정신이 들었다. 미쳐 날뛰던 것이 조금씩 잦아들고 피비린내를 맡자 막연한 의문의 눈빛이 떠올랐다.이리 나라가 천천히 이리봉청을 놔주며 그녀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봤다. 이리봉청의 눈빛에서 망연자실함을 느끼고 이리 나리는 가슴이 미어졌다. 허리를 숙여 베개를 집어 이리봉청의 품에 두자 이리봉청이 꽉 안고 얼른 달아나 의자에 가서 앉더니 아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 우리 아가!”이리 나리는 천천히 이리봉청 앞에 꿇어앉았다. 이리봉청이 손가락으로 베개를 쓰다듬는 것을 보자 눈물이 다시 앞을 가렸다. 가슴에 비통함을 간신히 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이리봉청이 멈칫했다. 잠깐 정지한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보고 두 손으로 여전히 베개를 꽉 껴안고 놓지 않으면서도 이리 나리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가 천천히 깨지고 있었다.이리봉청은 떨면서 손을 내밀어 이리 나리의 얼굴을 덮었다. 솟아나는 눈물이 차가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이리봉청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이리봉청은 손을 거두고 손등의 눈물을 한없이 바라봤다.“아가?” 이리봉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의구심이 든 탓에 눈이 빠르게 깜박였다.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는 베개가 스르륵 무릎에서 떨어져도 신경 쓰지 않고 자세히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는 눈물을 머금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이리봉청이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손을 잡고 목이 메어 거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입니다..!”이리봉청이 두 손바닥을 위로 하고 천천히 펼치더니 뭔가를 껴안는 동작을 취하

  • 명의 왕비   제 3003화

    이리나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안 아픕니다!”그제서야 이리봉청이 안도하며 부끄러운 듯 가볍게 웃었다.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이 풀린듯 싶어 시험 삼아 이리봉청의 베개를 가져갔는데, 바로 적의가 가득해지며 이리 나리의 손을 뿌리치더니 얼굴빛이 다시금 냉정해졌다.이리 나리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일어나서 이리봉청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문호와 원경릉 쪽으로 갔다.세 사람은 산바람이 꽤 거센 쪽에 있어서 옷이 날리며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리 나리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원경릉에게 물었다. “광증에 걸렸는데 낫게 할 수 있습니까?”원경릉이 대답했다. “천천히 해도 돼요. 서두르지 말고.”“어찌 됐든 낫게 해주시오.” 이리 나리가 굳은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낫게 해주세요.”원경릉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겁니다.”이리 나리가 그제서야 조금 안도한 듯 했다. “예, 그럼 전 이제 그녀를 데리고 하산하겠습니다!”원경릉이 이리 나리 손을 붙들었다. “아니요, 우선 하산하지 마세요.”이리 나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산꼭대기에 남겨 둘 수 없어요. 반드시 데리고 내려갈 겁니다.”“사부님, 제 말 들으세요.”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짓했다. “자기는 먼저 늑대파 사람을 전부 철수 시켜줘. 적어도 여기 남아있으면 안 돼. 여기는 원래대로 보존해 주고.”우문호은 원경릉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둘이 마저 얘기나눠.”우문호가 내려가며 멸지를 한쪽으로 끌고 가 몇 마디 상의했다.이리 나리는 의혹의 눈길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원경릉은 손수건을 꺼내 이리 나리에게 건넸다. “목에 피부터 닦고 얘기 해요.”이리 나리가 손수건을 받아 대충 닦더니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원경릉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뭐라고 하시든 전 그녀를 여기 혼자 남겨 두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집이 있으니까요.”“알아요,

  • 명의 왕비   제 3004화

    더 과거로 돌아가 상상해 보자 성루에 매달린 여동생의 시체를 보고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싶었다. 이리 나리는 도망가는 길에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무슨 힘으로 풍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전에 한때는 행복한 사람이라 믿었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며 깊이 사랑하는 부군 또한 곁에 있었다.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어째서 이 모든 짐이 지워진 것일까?이제와 복수를 한다 한들 이리 나리가 만족할 수 있을까?설령 이리봉청이 36년간 고통받는 게 운명이라고 쳐도, 어찌 연놈들이 36년의 값을 치르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이전에 이리 나리 인생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이리봉청이 곁에 있다. 이리봉청은 3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궂은 비와 찬바람에 자신을 내맡기며 혼자 견뎌왔다. 죄업이 하늘을 찌르는 인간들은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러야 마땅했다.이리 나리가 원경릉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계획을 말해 보시지요.”원경릉은 배수의 진을 치고 굳은 각오로 말했다. “스승님 어머니와 배기가 저주를 옮기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걸 저와 주지 스님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 어머님이 주지 스님께 영석을 깨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주지 스님이 깨트리지 못했죠. 전 36년 전으로 돌아가서 직접 영석을 깰 거예요.”“36년 전으로 돌아간다고요? 만약 영석을 깬다고 해도 국면이 어떻게 바뀌죠?” 이리 나리가 경악했다.“영석의 힘의 일부가 소여쌍의 몸에 남아 있어요. 소여쌍의 몸에 남은 일부 능력은 영석이란 몸체가 없으므로 견디기 힘들어서 소여쌍은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게 되죠.”이리 나리는 마치 물밑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듯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정말입니까?”“주지 스님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해요.”“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요?”“약간의 위험이 따르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원경릉이 가볍게 말했다.하지만 사실 36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리스크가 적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저기 이

  • 명의 왕비   제 3005화

    원경릉과 우문호은 일단 산에서 내려왔다. 방안이 정해졌으니 원경릉은 최대한 빠른 해결을 위해 얼른 돌아가 안풍 친왕비와 상의하고 싶었다. 안풍 친왕비는 시간을 왕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원경릉은 이번 일의 위험 정도에 대해 우문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반드시 자신이 대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우문호는 뭐라고 입장을 표하기에 애매했다. 본인이 위험한 거면 두말하지 않고 갈 게 틀림없지겠만 이런 상황은 낯설었다. 게다가 본인이 돕지도 못하기에, 그저 두 눈 멀쩡히 뜨고 원 선생이 위험을 무릅쓰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우문호 손을 잡고 위로했다. “우리가 그동안 돌파해 온 난관이 어디 좀 컸어? 이건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냐. 그리고 안풍 친왕비께서도 도우신대. 안풍 친왕 부부께서 현대랑 여기를 얼마나 빈번하게 왔다 갔다 하셨는지 알지? 분명 요령을 파악하고 계실 테니까 안심해.”우문호 본인도 생각해 봤는데, 원 선생을 못 가게 하면 이 일로 괴로워할 게 분명했다. 비단 원 선생뿐 아니라 이 일을 아는 사람이면 모두 괴로워할 것으로, 그 또한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안지여를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풀리지 않을 정도이다. “기왕 당신이 정한거니 가도록 해. 하지만, 이 모든 건 당신의 안전을 전제로 했을 때야. 정말 위험하면 안돼. 우겨도 소용없어!”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혹시라도 위험하다면 우기지 않을게. 절대 억지로 강행하지도 않기로!”우문호가 원경릉에게 속삭였다. “당신이 성공하고 돌아오길 기다릴게…!”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날리며 눈늑대봉은 점점 뒤로 멀어져 갔다.원경릉은 바로 숙왕부로 안풍 친왕비를 찾아갔다. 이리봉청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주지 스님이 방법을 알려준 것을 얘기하며 협조를 구했다.안풍 친왕비는 이리봉청이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상상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가슴 아픈 것보다 기쁨이 앞섰다. “이리율 인생에 있어 늘 한 가지 미

  • 명의 왕비   제 3006화

    안풍 친왕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그들이 다 현대로 갔으니, 우리가 몸을 빼는 데 성공했던 거야. 그리고 일부 봉쇄가 풀려서 시공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 36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고 50년 전 적성루로 그들을 보러 갈 수도, 심지어는 작년, 재작년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심지어 너랑 내가 얘기하는 지금 사방을 잘 살펴보면 미래의 내가 어딘 가에 숨어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원경릉은 그런 생각이 들자 오싹해졌다. “그건 마마께서….”왕비가 웃으며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너 지금 내가 이미 그들의 죽음을 겪은 뒤에 시간을 넘어 그들이 아직 죽지 않은 지금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마마께서 전에 그렇게 오래 실종되셨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셨으니….” 원경릉은 여기까지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안풍 친왕비는 차를 들고 그윽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상황이 반드시 생기겠지. 난 그들을 떼놓지 못해. 평생 동안.”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실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가 있다. 아무리 안풍 친왕비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안풍 친왕비가 한마디 했다. “앞으로 네 황조부 일행이 다 가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뻔질나게 경호를 통해 돌아가서 그들을 살필걸. 어딘가 숨어서 몰래 흘끔 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정 떼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다가오면 어렵단다.”원경릉의 눈시울이 금새 빨개졌다.원경릉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간 결국 생길 일이며 시간은 조금씩 앞으로 가고 모든 사람은 다 그날을 맞기 마련일 것이다. 안풍 친왕비 말이 맞다. 정 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거의 모든 사람은 이미 가버린 사람을 보러 돌아갈 수 없지만 넌 그런 능력이 있으니 감사해야해.” 안풍 친왕비가 일어나 원경릉의 어깨를 토닥였다. “돌아가 봐, 준비 잘하고 내일 경호로 가자. 36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이리봉청을 살펴봐야지!”원경릉은 마음이 상당이 무거워졌다.사실 원경릉은 앞으로

  • 명의 왕비   제 3007화

    경호에 도착한 안풍 친왕은 전서구가 가져온 서신을 읽자마자 낫빛이 어두워졌다. 안풍 친왕비가 이것을 보고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서신을 건네는 안풍 친왕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봐 봐!”안풍 친왕비가 펼쳐 보니 아주 작은 글씨로 몇 줄만 적혀 있는 게 급하게 상황을 보고한 모양이었다. 안풍 친왕비는 다 읽고 크게 화를 냈다. “안지여, 이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옆에 있던 원경릉도 가슴이 철렁해져 얼른 봤다. 다 읽고 나자 그녀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신에서는 어떤 대사가 안지여에게 서산의 천문 세가의 묘에 불을 질러 싹 없애면 올해 풍도성에 수해가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과거에 천문 세가 사람이 전부 죽임을 당하던 때 안지여는 사람들의 책망을 받지 않기 위해 가주 신분으로 그들의 시체를 거둬 매장했었다. 자기가 떼죽음을 시켜놓은 것인데, 마치 선행을 베푸는 양 날조했다. 그들을 매장한 지 36년이 된 마당에 갑자기 지금 와서 유골을 몽땅 불태우겠다니..말 그대로 죽은 자의 뼈를 가루로 갈아버리겠다는 것인지, 화가 날 만했다. 이 쓰레기 같은 안지여는 18층 지옥 맨 밑바닥에 떨어뜨려도 분이 안 풀릴 것이다. 이때 안풍 친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섬전위가 그저께 보고했을 때 안지여가 사람을 불러 점을 쳤는데 36년 전 뿌린 죄업의 대가를 올해 받는다며, 안 씨 집안은 인과응보를 받을 거라고 했다는군. 안지여가 천문 세가의 무덤을 불태우는 건 아마 이 죄업을 피하고 싶어서겠지.”안풍 친왕비가 차갑게 말했다. “하늘이 아무리 무심해도 그렇지, 안지여 같이 털끝만치도 양심도 없는 놈을 가만둘 리가 없어요. 그 대사라는 인간이 점은 제대로 맞췄네요. 확실히 그때의 인과응보를 받을 겁니다.”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돌아보는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네가 돌아오면 이리율이 직접 풍도성에 가서 그들을 결판낼 거야. 넌 반드시 성공해야 해.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안지여 놈을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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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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