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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97화

Author: 유애
눈늑대봉에는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태상황 시절에 자운묘로 개명했다.

자운묘 스님은 자신을 스스로 설산과 눈 늑대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해 왔는데, 눈늑대봉이 조정에 의해 성스러운 산으로 봉해지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황실을 대신해서 눈늑대봉을 지켰다.

눈늑대봉 위에는 나이 든 승려 몇 명만 살고 있었다. 처음 여기 온 사람은 호국사 스님으로 나중에 호국사에서 몇 명이 연달아 왔으나 이제 더 이상 젊은 스님은 오지 않았다. 자운묘의 주지는 상당히 엄격해서 덕행이 높지 않거나 수행이 미치지 못하면 절대 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운묘 스님 중 제일 젊은 스님의 나이도 올해 60세였다.

황제와 황후가 자운묘에 왕림하자 주지인 덕방 스님이 직접 다른 스님들을 데리고 맞으러 나왔는데 총 다섯 명이었다.

주지는 황제와 황후를 안으로 맞아들인 후 쓰고 떫은 산 차를 올렸다. 원경릉은 아직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이곳의 모든 것에서 이리봉청의 숨결과 원념을 느낄 수 있었다.

원경릉은 한 걸음씩 천천히 자운묘 전체를 돌았고 우문호와 서일도 원경릉을 따라 한 바퀴를 돈 뒤 앉아서 차를 마시며 36년 전 일을 물었다.

황제가 주지에게 36년 전에 여자 하나를 구한 적이 없는지 묻자, 덕방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낫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36년 전의 여자 말씀입니까? 폐하께서 어찌 그 일을 알고 계시는지요?”

우문호는 원하는 대답을 듣자 한시름 놓았다. 이리봉청이 구조된 것이 정말 맞았다.

“주지, 아는대로 짐에게 말하시오. 절대 숨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주지에게 말했다.

주지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 일은 소승이 평생 저지른 일 중 가장 큰 잘못으로 지금 돌이켜보니 그 남자 시주께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

“남자 시주? 여자가 아니고?” 우문호가 당황했다.

그러자 주지는 바로 당시 일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그 해는 몹시 추웠습니다. 물을 뿌리기만 하면 바로 얼 정도였죠. 입동 전에 거둬서 묻어 놓은 채소는 제대로 처리를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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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간 뒤 비로소 여 시주가 이미 위독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는데, 남자 시주가 그녀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더군요. 그런 후 여 시주에게 먹이려고 하자 미음을 보시해 줄 수 없냐고 소승에게 물었습니다. 소승은 당시 주지 대사께 감히 이 일을 말씀드릴 수 없어 하산했다가 돌아온 뒤 매일 미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며칠 뒤 여 시주가 깨어나 계속 아이를 찾으며 아이가 늑대에게 물려갔다고 했지요. 울면서 아이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으나 여 시주는 몸이 약해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중에 남자 시주와 소승이 대신 한 번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게 늑대가 물어갔는데 어떻게 아직 살아있겠냐는 생각이 당시 소승 마음속에 있었습니다.”덕방스님은 여기까지 말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 시주도 아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며칠을 운 탓에 몸이 더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상처가 곪기 시작해 소승이 치료해 봤으나 더는 살기 힘들 거 같아 남자 시주와 얘기하다 여 시주의 신분을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천문 세가의 이리 가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역천개명을 해서 저주의 횡액을 당해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거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남자 시주는 계속 소승에게 그녀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소승이 순간 정신이 어떻게 됐는지 그만 그에게 살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말았고, 그 때문에 남자 시주의 목숨을 해치고 말았습니다.”우문호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주지는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아는가? 그래서 이리 가주는 결국 죽지 않았나?”주지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승이 아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소위 역천개명은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하늘이 천문 세가에 내려준 신통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문 세가의 이리 가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영석을 열 수도 있지요. 만약 다른 사람이 그녀를 구하려고 해도 이리 가주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처음엔 남자 시주가 이리 가주에게 얘기할 때 이리 가주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 명의 왕비   제 2999화

    원경릉은 터질 듯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주지에게 물었다. “… 이리봉청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비록 36년의 세월 차가 있고 이리봉청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해도 자신을 지킬 능력이 충분하다면 아직 살아있을 희망이 있다. 이리봉청이 살아만 있다면 의의가 어마어마했다.주자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리 가주가 실성한 뒤로 자기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며 계속 아들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중얼거리더니 몇 번이나 하산했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죠. 지금 여전히 암자 뒷산에 있습니다. 소승이 작은 집을 하나 지어줬는데 종일 베개를 자기 아들이라고 안고 있어요. 소승이 그 베개를 뺏은 적이 있는데 그녀가 발광하며 소승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자기야,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 아직 살아있다고!” 원경릉은 고통과 기쁨이 한곳에 모여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36년간 실성해 지난 일을 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느껴졌다. 이제는 날마다 뼈를 깎는 고통에 사무쳐 지내지 않아도 된다.우문호는 손을 뻗어 원경릉의 눈물을 닦았으나, 자신도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목에 가시가 박힌 듯한 며칠이 지나더니, 마침내 좋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주지 스님, 죄송하지만, 그녀를 보러 가게 길을 좀 안내해 주세요!” 원경릉이 일어나 합장했다.덕방스님이 얼른 일어나 합장했다. “황후 마마, 이러실 필요 없으십니다. 보시고 싶으시면 소승이 직접 모시겠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짐도 같이 가겠네.”덕방스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셋을 데리고 뒷산으로 향했다.비록 사당은 크지 않지만, 뒷산을 돌아가려면 꽤 거리가 있었다. 산길은 비탈져 걷기 불편해 아무리 빨리 걸어도 달릴 수 없으므로 반 시진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과연 산꼭대기 평지에 작은 초가집이 있는데 정말 작아서 대충 눈대중으로도 10㎡ 정도의 누추한 초가집이었다. 문 앞엔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고 가까이 가자 초가집 옆에 큰 돌이

  • 명의 왕비   제 3000화

    원경릉이 뒤를 돌아 우문호에게 말했다. “자기는 서일이랑 이리 나리한테 가서 얘기해 줘. 너무 흥분하지 않게.”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일한테 가라고 하고 난 여기 있을게.”“아니, 자기가 가야 해. 서일은 세심하게 얘기 못 하는 성격이잖아.”이리 나리에게 얘기를 전하는 것 말고도 이리 나리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서일은 할 수 없다.우문호는 깊이깊이 이리봉청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가 직접 갈게. 당신은 이리봉청 곁에 잘 있어 줘.”“알겠어!” 원경릉은 우문호의 붉어진 눈을 보고 우문호도 감동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비록 우문호는 이리봉청과 일면식이 없지만 이리봉청의 사연을 안 뒤로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우문호는 덕방스님에게도 같이 자리를 뜨자고 했다. 모두 가자 이리봉청은 천천히 경계를 풀고 마침내 원경릉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이리봉청이 웃자, 모든 어둠이 전부 물러가고 천지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다.이리봉청을 바라보는 원경릉의 눈에 눈물이 일렁거렸다. “저 주세요. 어디 한 번 봐요. 괜찮죠?”이리봉청은 잠시 망설이더니 베개를 원경릉에게 주었다. 원경릉이 받아서 들었는데 코를 찌르는 시큼한 썩은 내와 함께 아직도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이리봉청이 계속 베개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원경릉은 베개를 안고 또 한 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눈물이 아롱지는 와중에 원경릉이 이리봉청의 손을 끌더니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앉아요. 우리 같이 아가 옷 꿰매요. 네?”그러자 이리봉청은 마음이 풀렸는지 반항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원경릉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은 안을 둘러보니 침대와 직은 탁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탁자 위에는 식어서 말라비틀어진 찐빵이 놓여 있는데 몇 개는 벌써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 주지 스님이 보내온 것이 틀림없다.이리봉청이 만두 하나를 들고 쭈뼛거리며 원경릉 앞에서 손을 뻗었다. “먹어!”만두를 받아 들자, 만두 위에 뚝뚝 원경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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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원경릉은 그런 이리봉청을 달랠 수 밖에 없어 자리에 앉아 우선 베개를 꿰매기 시작했다.베개에는 땟국물이 얼마나 절었는지 바늘도 잘 안 들어가고 안에 들어있는 솜은 옅은 검푸른 색으로 더러워져 있었다.이리봉청은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원경릉이 베개를 꿰매는 걸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베개를 보는 눈빛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의 눈빛으로, 그저 한없이 바라보며 손을 반쯤 허공에 두고 있었다. 원경릉은 바늘을 찌를 때 혹시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이리봉청을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리고손을 뻗어 베개를 쓰다듬었다. “아가, 내꺼.”“네, 알아요!” 원경릉은 가슴이 쓰라렸다. 천천히 꿰매느라 베개 전체를 한 바퀴 돌아가며 다 꿰매고 동작은 최대한 느리게 했다. 이리봉청과 같이 앉아 있을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들어 두어 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다.원경릉은 흥분했다. 전에 가정했던 것을 전부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이리 봉청과 이리 나리의 철천지원수를 갚을 수 있고 모자도 상봉할 수 있다. 진정한 상봉 말이다.이런 생각에 미소가 번지는데 원경릉의 미소가 꽤 따스했는지 이리봉청은 이제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듯 했다. 조금씩 원경릉 곁으로 다가오더니 더이상 베개를 뚫어지게 노려보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고 원경릉에게 진심을 보여주었다. 이 베개는 이리봉청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제나 보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유일한 버팀목이되었다. 그런 물건에서 손을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리봉청이 원경릉에게 가지는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이건 아마 원경릉이 이리봉청의 과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텔레파시란 정말 오묘한 게 아닐 수 없다.원경릉은 베개를 다 꿰맨 뒤 이리봉청에게 건네주자 이리봉청은 기쁘게 받아 들고 품에 꼭 끌어안으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원경릉은 순순한 그녀의 미소를 보니 가슴이 쥐어짜듯 아파와 눈물이 차오르는 걸 멈출 수가 없

  • 명의 왕비   제 3002화

    하지만 이리 나리는 여전히 고통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게 이리봉청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이리 나리를 안심시켰다. 지금 이 순간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니…!하늘이 불쌍히 여겨 살려두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리 나리 목에 흐르는 선혈을 보고 이리봉청은 조금 정신이 들었다. 미쳐 날뛰던 것이 조금씩 잦아들고 피비린내를 맡자 막연한 의문의 눈빛이 떠올랐다.이리 나라가 천천히 이리봉청을 놔주며 그녀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봤다. 이리봉청의 눈빛에서 망연자실함을 느끼고 이리 나리는 가슴이 미어졌다. 허리를 숙여 베개를 집어 이리봉청의 품에 두자 이리봉청이 꽉 안고 얼른 달아나 의자에 가서 앉더니 아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 우리 아가!”이리 나리는 천천히 이리봉청 앞에 꿇어앉았다. 이리봉청이 손가락으로 베개를 쓰다듬는 것을 보자 눈물이 다시 앞을 가렸다. 가슴에 비통함을 간신히 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이리봉청이 멈칫했다. 잠깐 정지한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보고 두 손으로 여전히 베개를 꽉 껴안고 놓지 않으면서도 이리 나리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가 천천히 깨지고 있었다.이리봉청은 떨면서 손을 내밀어 이리 나리의 얼굴을 덮었다. 솟아나는 눈물이 차가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이리봉청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이리봉청은 손을 거두고 손등의 눈물을 한없이 바라봤다.“아가?” 이리봉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의구심이 든 탓에 눈이 빠르게 깜박였다.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는 베개가 스르륵 무릎에서 떨어져도 신경 쓰지 않고 자세히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는 눈물을 머금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이리봉청이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손을 잡고 목이 메어 거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입니다..!”이리봉청이 두 손바닥을 위로 하고 천천히 펼치더니 뭔가를 껴안는 동작을 취하

  • 명의 왕비   제 3003화

    이리나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안 아픕니다!”그제서야 이리봉청이 안도하며 부끄러운 듯 가볍게 웃었다.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이 풀린듯 싶어 시험 삼아 이리봉청의 베개를 가져갔는데, 바로 적의가 가득해지며 이리 나리의 손을 뿌리치더니 얼굴빛이 다시금 냉정해졌다.이리 나리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일어나서 이리봉청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문호와 원경릉 쪽으로 갔다.세 사람은 산바람이 꽤 거센 쪽에 있어서 옷이 날리며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리 나리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원경릉에게 물었다. “광증에 걸렸는데 낫게 할 수 있습니까?”원경릉이 대답했다. “천천히 해도 돼요. 서두르지 말고.”“어찌 됐든 낫게 해주시오.” 이리 나리가 굳은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낫게 해주세요.”원경릉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겁니다.”이리 나리가 그제서야 조금 안도한 듯 했다. “예, 그럼 전 이제 그녀를 데리고 하산하겠습니다!”원경릉이 이리 나리 손을 붙들었다. “아니요, 우선 하산하지 마세요.”이리 나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산꼭대기에 남겨 둘 수 없어요. 반드시 데리고 내려갈 겁니다.”“사부님, 제 말 들으세요.”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짓했다. “자기는 먼저 늑대파 사람을 전부 철수 시켜줘. 적어도 여기 남아있으면 안 돼. 여기는 원래대로 보존해 주고.”우문호은 원경릉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둘이 마저 얘기나눠.”우문호가 내려가며 멸지를 한쪽으로 끌고 가 몇 마디 상의했다.이리 나리는 의혹의 눈길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원경릉은 손수건을 꺼내 이리 나리에게 건넸다. “목에 피부터 닦고 얘기 해요.”이리 나리가 손수건을 받아 대충 닦더니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원경릉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뭐라고 하시든 전 그녀를 여기 혼자 남겨 두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집이 있으니까요.”“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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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 명의 왕비   제3375화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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