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 친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이리봉청은 분명 수를 남겨뒀을 거야. 영석을 자기가 지니고 있을지도 몰라. 안지여가 전에 천문 세가의 가주가 된 뒤에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고자 했는데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찾지 못했거든. 그래서 결국 이리봉청에게 몹쓸 짓을 해서라도 이리봉청이 역천개명 하도록 몰아붙였던 거야. 따라서 안지여가 영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추정할 수 있지.”하지만 원경릉은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영석은 어떤 구조죠? 왜 역천개명(逆天改命)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흑영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능력으로 곧 죽어가는 환자들을 전부 구해냈대. 헌데 역천개명의 저주로 급사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군. 그래서 난 영석이라는 게 강력한 방사능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우리 세상에서 탐지할 수 없는 암흑물질 에너지로 사람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질병인 낫게 되는 거지. 허나 영석을 사용한 사람도 방사능에 피폭돼서 한 달에서 3개월 사이 급사하게 돼. 물론 이것도 추측에 불과해 완전히 성립하지 않는 게 영석을 사용한 사람이 치명적인 방사능에 피폭된다면 말이야, 당시 이리봉청은 임신하고 있었는데 그런 강력한 방사능이 어째서 태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원경릉이 답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일에는 골머리 썩지 않기로 해요. 정말 영석이 있고 이리봉청이 몸에 지니고 있다면 그녀의 시신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일 테니까요. 단지 마마의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 건 확실해요. 왜냐하면 만약 영석에서 방사능이 나올 경우, 이리봉청은 그걸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을 게 틀림없으니까요.”왕비가 생각해 보고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하네, 영석의 힘에 관해 탐구할 필요는 없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이리봉청의 시신을 찾은 뒤 복수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말했던 36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 한번 생각해 봐. 역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
원경릉은 허를 찔렸는지 몹시 당황했다. “자.. 자기, 어떻게 알았어?”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당신이랑 부부 생활이 몇 년인데 마음으로도 통하지.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 내게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원경릉이 살짝 우문호의 가슴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네. 어떨 땐 그냥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같아. 자기가 이리 나리나, 냉대인, 홍엽이와 그런 것처럼. 암묵적으로 통하는 이런 사람들이 이리 나리 일을 알면 전심을 다 해 돕는 것도 당연한 일이네.”“응, 맞아. 냉정언한테 들어오라고 성지를 보낼게.”우문호는 바로 목여 태감을 불러 입궐하라는 어명을 들려 냉 재상 저택으로 보냈다. 냉 재상은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바로 입궐하라고 했다.한 시진 후 황제와 황후는 어서방에서 재상 냉정언을 접견했다.목여 태감이 직접 차를 올리고 어전의 문을 닫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냉대인은 천문 세가를 알고 계십니까?” 원경릉은 목여 태감이 나가자 바로 물었다.냉정언은 차를 받쳐 들고 살짝 당황했다. “천문 세가요? 풍도성의 천문 세가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듣기로 36년 전에 천문 세가는 누군가를 위해 역천개명한 탓에 일문이 다 횡액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천문 세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냉정언이 대답했다. “제가 아는 건 많지 않지만 제 사부님은 좀 아실 게 틀림없습니다. 사부님의 사제 한 분이, 그러니까 제게는 사숙이신 분이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저주로 돌아가셨으니까요.”원경릉이 깜짝 놀랐다. “설마 냉 대인 사숙께서 천문 세가 사람이셨나요?”냉정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원경릉이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천문 세가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역천개명 저주를 당하신 거죠?”냉정언이 말했다. “자세한 상황은 저도 잘 모릅니다. 예전에 사부님이 술에 취했을 때 얘기꺼내신 적이 있었는데 사제가 아주 비참하게 죽었다며 자기 여인이 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목숨까지 버렸다
원경릉이 그 일을 계속 생각하는 동안,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이리 나리의 과거와 이리 나리의 어머니가 당한 일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전부 알려주었다.한결같이 냉정함을 유지하던 냉 대인이 이 사건을 듣고 지극히 비분강개해서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치를 떨었다. “너무 악랄하군요. 이런 인간을 어떻게 살려둘 수가 있습니까? 뼈를 모조리 꺾어서 재를 만들어야 이리 나리 마음에 맺힌 한을 풀 수 있지요!”“이제 와서 그의 뼈를 꺾어 재가 되게 해도 너무 편하게 보내 주는 거야.” 우문호가 악에 받쳐서 말했다. “지금 우리는 이리봉청이 정말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그러니 어쩌면 천문 세가에 뭔가 또 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게 역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어!”냉정언은 비록 극도로 비분강개했으나 역전의 가능성이 있을 리는 없다고 느꼈다. 이미 36년이나 지난 일이니 말이다.단지 황후는 늘 비범한 능력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파악해 왔으니 황후가 아는 이상 분명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부님이 경성에 계시니 바로 입궐하시도록 청하러 가겠습니다. 천문 세가 일이라면 어느 정도 아실 겁니다.”냉 대인은 말을 마치고 바로 달려 나갔다.냉정언이 그토록 냉정하지 못한 모습은 처음이었다.원경릉은 눈을 감고, 가느다란 의식의 끈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배기가 이리봉청을 좋아했기 때문에 도망치는 걸 도왔다? 그런데 결국 배기가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 저주를 당한 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원경릉에게 강렬한 느낌이 왔다. 배기의 사인에 어쩌면 그들이 찾고 있는 답이 있다는 느낌이었다.냉정언의 사부 검마를 기다리는 동안, 안풍 친왕비가 사람을 궁으로 보내 늑대파가 아직 눈늑대봉에서 이리봉청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전해왔다.원경릉은 안풍 친왕비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얼핏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격은 급하고 일하는 스타일도 정확하고 신속했다. 게다가 이리 나리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이 일 때문에 애를 태우며 빨
냉 대인은 얼른 검마를 데리고 입궁하며 오는 길에 당시의 일들에 대해 대략 얘기했다. 단지 검마에게 이리봉청이 이리 나리의 어머니란 사실은 꺼내지 않고 조정이 지금 당시의 천문 세가 일을 조사한다고만 말해두었다.어서방에 들어가 일체 번거로운 형식을 벗어던지고 우문호는 단도직입적으로 검마에게 배기 일을 물었다.검마도 깔끔한 사람으로 바로 대답했다. “배기는 사문에서 축출되었고, 두 사람을 죽여서 사존께서 노하시고 배기를 내쫓으셨죠. 그래서 엄격하게 따지면 제 사제라고 할 수 없으나 사문에 있을 때 저와 관계가 매우 좋아서 사적으로 저는 여전히 그를 인정했습니다.”“사문을 떠난 뒤로 배기가 풍도성으로 가서 안지여 측근의 철위가 된 것을 알고, 배기의 무공으로 개인의 호위따위가 되었나 싶었지만 명성이 이미 땅에 떨어져 아무도 그를 기용하려 하지 않아서 철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나중에 제가 하산한 뒤, 풍도성으로 배기를 찾아갔을 당시는 안지여와 이리봉청이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배기가 저에게 지난 얘기를 하며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이리봉청의 여동생 이리봉우였습니다.”“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알게 되었는데 배기가 안지여 곁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단지 안지여 인성이 일관성이 없어 시중들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른 데로 갈 수 없는 게 풍도성 사람은 배기의 과거를 몰라서 그나마 하루하루 살아갈 만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 번 배기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는데 엄동설한에 안지여가 그를 철창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그때 언니를 보러 왔던 이리봉우가 배기를 위해 간청해서 안지여가 처제 체면을 봐서 용서해 줬다고 하더군요. 배기는 이리봉우에게 크게 감동했습니다.”“배기가 말끝마다 이리봉우 얘기를 하길래 제가 그녀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부정하더군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도 감히 해 본 적이 없다고요. 이리봉우는 천문 세가의 둘째 아가씨고, 배기는 밝은 데 나올 수 없는 살인범이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죠. 배기
원경릉이 여기까지 듣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천문 세가에서 받은 저주가 피부가 벗겨져 죽는 거라니.. 믿을 수 없었다. 원경릉은 생각을 집중해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봤다. 검마가 이리봉청을 봤을 때 이리봉청은 이미 임신했고, 그 반년쯤 뒤에 배기의 편지를 받았으며 배기는 이때 이미 복수 준비를 얘기했다. 즉, 이리봉청이 이미 옥에 갇혔다는 소리다. 그다음 배기가 이리봉청을 구해내 경성으로 떠나게 하려 했고, 나중에 검마가 풍도성에서 경성으로 오는 길 내내 찾아봤지만 배기에 대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결국 통천문 사람이 이미 죽은 배기를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2~3개월은 필요했다.하지만 배기를 발견했을 때 배기는 죽은 지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배기는 이리 나리가 태어난 뒤로 적어도 한 달에서 두 달 뒤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천문 세가 사람은 전부 멸절된 뒤였다.‘배기가 어떻게 천문 세가의 역천개명의 저주를 받고 죽을 수 있지?’유일한 해석은 이리봉청이 이리 나리를 낳은 뒤 죽지 않았고, 배기가 이리봉청을 찾아낸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안 된다. 당시 배기가 이리봉청을 도와 탈출시킬 때 배기는 안지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었나? 적어도 이리봉청의 인식 속에 배기는 안지여의 손에 죽었다.하지만 배기가 죽은 척 위장하고 이리봉청을 쫓아갔을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이목을 가려 더 이상 이리봉청을 도울 사람이 없다고 안지여가 믿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검마가 서술한 사건의 경위를 보면 이리봉청은 이리 나리를 낳은 뒤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원경릉에게 점점 한 가닥 희망이 솟아났으나 입밖으로 낼 수 없었다. 우문호와 냉정언이 희망을 품었다가 아니게 되면 굉장히 실망할 게 틀림없었다. 둘 다 이리 나리와 같은 마음이니 말이다. 원경릉은 검마에게 천문 세가의 영석은 정말 그렇게 신기한지 자세히 물었다. 검마도 영석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영석은 가주가 대대로 물려받
산바람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원경릉은 사방을 멀리 바라봤다.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그녀는익숙한 기분이 들며 피 냄새가 뒤섞인 원한이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산길을 따라 앞으로 나가자 원경릉의 머릿속에 한 편의 영상이 펼쳐졌다. 그 영상속에서는 극도로 지친 이리봉청은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배는 아프고 아이는 나오려고 해서 더욱 길을 재촉했기 때문에 재빨리 사당에 다다를 수 있기를, 사당에서 아이를 낳을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이리봉청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몇 번 휘청거려 손에 든 칼을 땅에 꽂고 무거운 몸을 버텨봤으나 아프고 어지럽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눈을 뭉쳐서 입안에 쑤셔 넣었다. ‘앗, 차가워!’…원경릉은 쭈그리고 앉아 떨리는 손을 뻗어 평지를 만졌다. 여기다! 이곳에 강한 느낌이 든다.“원 선생, 피곤한 거 아냐?” 그러자 우문호가 와서 원경릉을 부축했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깊고 슬픈 눈빛으로 우문호를 쳐다봤다. “자기야, 이리봉청이 바로 여기서 이리 나리를 낳은 것 같애!”우문호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리 나리가 이 말을 듣고 심연 같은 눈동자에 깊은 어둠이 깔리며 그녀가 쭈그리고 앉은 위치를 바라봤다. 그곳은 평탄하다고 할 수 없는 곳으로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지형이 있어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리봉청은 거기까지도 갈 수 없었다. 여기가 바로 이리 나리의 출생지이기 때문이다.36년 전 이리 나리가 세상에 와서 제일 처음 본 곳도 바로 여기다.그러자 오랜 시간 참아왔던 눈물과 휘몰아치던 슬픔이 둑이 터지듯 왈칵 쏟아져나와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가슴이 칼로 베어 쥐어짜는 듯했다. 이리 나리는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주저앉아 억눌렀던 슬픔을 터트렸다.“이리 나리, 이러면 안 돼!”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모습에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위로의 말조차 의미 없었다.원경릉은 정신
눈늑대봉에는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태상황 시절에 자운묘로 개명했다.자운묘 스님은 자신을 스스로 설산과 눈 늑대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해 왔는데, 눈늑대봉이 조정에 의해 성스러운 산으로 봉해지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황실을 대신해서 눈늑대봉을 지켰다.눈늑대봉 위에는 나이 든 승려 몇 명만 살고 있었다. 처음 여기 온 사람은 호국사 스님으로 나중에 호국사에서 몇 명이 연달아 왔으나 이제 더 이상 젊은 스님은 오지 않았다. 자운묘의 주지는 상당히 엄격해서 덕행이 높지 않거나 수행이 미치지 못하면 절대 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자운묘 스님 중 제일 젊은 스님의 나이도 올해 60세였다.황제와 황후가 자운묘에 왕림하자 주지인 덕방 스님이 직접 다른 스님들을 데리고 맞으러 나왔는데 총 다섯 명이었다.주지는 황제와 황후를 안으로 맞아들인 후 쓰고 떫은 산 차를 올렸다. 원경릉은 아직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이곳의 모든 것에서 이리봉청의 숨결과 원념을 느낄 수 있었다.원경릉은 한 걸음씩 천천히 자운묘 전체를 돌았고 우문호와 서일도 원경릉을 따라 한 바퀴를 돈 뒤 앉아서 차를 마시며 36년 전 일을 물었다.황제가 주지에게 36년 전에 여자 하나를 구한 적이 없는지 묻자, 덕방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낫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36년 전의 여자 말씀입니까? 폐하께서 어찌 그 일을 알고 계시는지요?”우문호는 원하는 대답을 듣자 한시름 놓았다. 이리봉청이 구조된 것이 정말 맞았다. “주지, 아는대로 짐에게 말하시오. 절대 숨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주지에게 말했다.주지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 일은 소승이 평생 저지른 일 중 가장 큰 잘못으로 지금 돌이켜보니 그 남자 시주께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남자 시주? 여자가 아니고?” 우문호가 당황했다.그러자 주지는 바로 당시 일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그 해는 몹시 추웠습니다. 물을 뿌리기만 하면 바로 얼 정도였죠. 입동 전에 거둬서 묻어 놓은 채소는 제대로 처리를 못 해
“그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간 뒤 비로소 여 시주가 이미 위독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는데, 남자 시주가 그녀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더군요. 그런 후 여 시주에게 먹이려고 하자 미음을 보시해 줄 수 없냐고 소승에게 물었습니다. 소승은 당시 주지 대사께 감히 이 일을 말씀드릴 수 없어 하산했다가 돌아온 뒤 매일 미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며칠 뒤 여 시주가 깨어나 계속 아이를 찾으며 아이가 늑대에게 물려갔다고 했지요. 울면서 아이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으나 여 시주는 몸이 약해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중에 남자 시주와 소승이 대신 한 번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게 늑대가 물어갔는데 어떻게 아직 살아있겠냐는 생각이 당시 소승 마음속에 있었습니다.”덕방스님은 여기까지 말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 시주도 아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며칠을 운 탓에 몸이 더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상처가 곪기 시작해 소승이 치료해 봤으나 더는 살기 힘들 거 같아 남자 시주와 얘기하다 여 시주의 신분을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천문 세가의 이리 가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역천개명을 해서 저주의 횡액을 당해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거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남자 시주는 계속 소승에게 그녀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소승이 순간 정신이 어떻게 됐는지 그만 그에게 살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말았고, 그 때문에 남자 시주의 목숨을 해치고 말았습니다.”우문호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주지는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아는가? 그래서 이리 가주는 결국 죽지 않았나?”주지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승이 아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소위 역천개명은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하늘이 천문 세가에 내려준 신통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문 세가의 이리 가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영석을 열 수도 있지요. 만약 다른 사람이 그녀를 구하려고 해도 이리 가주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처음엔 남자 시주가 이리 가주에게 얘기할 때 이리 가주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