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2948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이리 나리의 시종이 평범한 시종일 거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늑대파 정예 중에 선발한 무림의 고수로 이리 나리 시종은 출궁하자마자 말을 타고 목여 태감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목여 태감은 따라잡지 못할 것을 알고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바꿔 말을 달렸는데 바로 혜민서로 황후를 찾아갔다.

공주가 이 북당에서 누구 말을 제일 들을까? 그야 당연히 황후이다.

이리 나리의 시종이 제아무리 빨리 가서 문을 다 걸어 잠가도 황후가 가는 이상 열지 않을게 분명했다.

목여 태감은 먼저 혜민서에 도착해 원경릉에게 상황을 전해주었는데, 황후가 된 지 3개월 된 원경릉은 이전처럼 바깥을 다니는 게 익숙해서 가만있지를 못했기에 우문호와 일심동체로 나라와 관련된 일이란 소리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내가 가서 얘기할게.”

이리 나리는 현재 장사의 대부분을 사람을 시켜 살피게 해 정작 본인은 한가했는데, 꿀벌처럼 바빠야 사람들이 보기에 나라가 융성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므로 그가 조정 일을 하는것에 원경릉은 특히나 찬성했다. 원경릉이 바라는 의료 개혁을 이루려면 경제적 중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궁에서 바둑을 두던 두 사람도 품은 마음이 각각 달랐다. 우문호는 자기가 승기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나리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숨겨져 있는 것이 그윽한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표정을 보고 왠지 작전에 걸려든 건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을 놓고 보면 그럴 리 없었다. 령이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고, 이리 나리는 령이가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으니 이 일은 분명 자신이 이긴 셈이었다.

‘그런데 이리 나리의 저 웃음은 대체 뭐지?’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한 편으로는 바둑판에서 대마를 포위해 이리 나리를 연속으로 몰아붙였다. 이리 나리를 깨끗하게 다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 역습을 당해버려 우문호는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폐하 지셨습니다!” 이리 나리가 여유만만하게 찻잔을 들고 진하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2949화

    우문호가 놀라서 물었다. “진심인가?”이리 나리가 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우문호를 바라봤다. “제가 거둔 제자도 한 명밖에 없으니 도리로 치면 이리파든 제 장사든 결국 제자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이 점은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우문호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네에게 제자가 비록 원 선생밖에 없다고 하지만, 령이가 지금 아이를 가졌고, 자네도 앞으로 친아들 딸이 생길 텐데 자네 사업이나 늑대파는 친아들 딸에게 물려 주는 맞지 않겠어?”이리 나리가 말했다. “경단이는 보기 드문 상업적 재능을 가졌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다른 사람을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이리 나리는 곧이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폐하께서 경단이에 동의하시지 않으면 늑대파와 장사는 제자가 이을 것입니다.”“안 된다. 원 선생은 지금 바빠 죽을 지경인데, 자네 사업을 무슨 수로 이어받겠느냐?” 우문호는 단 번에 거절했다. 전에 현대에 있을 때, 원 선생은 닥터 양여혜의 제안을 수락한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새로운 약을 개발할 거라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데 늑대파고 장사고 관여하는 건 전혀 불가능했다.“둘 중의 하나를 고르시지요,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돈은 사람을 키운다. 이리 나리를 지금처럼 담담하고 유유자적한 성품으로 키워내듯 말이다. 비굴하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구름처럼 담담하고 바람처럼 가벼웠다. 이는 우문호와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우문호라는 새로운 북당의 왕은 북당이라는 수레를 앞으로 계속 굴리기 위해 수레를 밀 사람을 끊임없이 모집하는 중이기에 당연히 급한 쪽은 우문호이다.이리 나리는 우문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것을 보고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져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폐하, 아랫사람이 폐하를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려고 할 때가 바로 아들을 파실 때입니다. 자문단의 수뇌가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극도의 책임이 따르므로 전처럼

  • 명의 왕비   제 2950화

    원경릉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민할 거 없어. 승낙하지 마.”우문호가 말했다. “허락 안 하면 이리 나리도 내 말을 수락하지 않을 거야. 이리 나리가 나갈 때를 못 봐서 그래. 휘파람까지 불었다니까. 내가 자신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거야.”원경릉은 공주의 말을 전하더니 끝내 웃으며 말했다. “공주가 그랬어, 이리 나리는 관리로 부임하길 간절히 원한다고. 자기가 경단이가 이리 나리 따라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아도 이리 나리는 자기 요구에 응할 게 틀림없어.”우문호가 원경릉의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어 보였다. “이리율 네 이놈, 날로 먹으려고 잘난 척 나를 골탕 먹이려 했겠다. 내 동생이 내 편인 건 몰랐지, 벌써 널 팔았다고.”원경릉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이리 나리에게 빌미를 줘야 해. 우선 아이들을 다 공부하러 보냈다가, 경단이가 열두 살이 되면 이리 나리를 따르게 하겠다고 자기가 얘기해. 이리 나리가 정말 나랏일을 하고 싶으면 자기의 그 말을 핑계로 따라올 테니까.”우문호는 원경릉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오늘 피곤하지?”원경릉이 우문호 배에 기대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아직 괜찮아, 그런데 가서 할머니 도와드려야 해. 전염병을 치료하고 독을 제거하는 약을 만드시는 중이시거든. 열감기에도 쓸 수 있는데, 아직 시험 단계라 내가 가서 좀 도와드려야 해.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시잖아.”“환약이야?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아직 약을 만드시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응, 한약재야.” 원경릉이 말했다. “이 약은 소요공 때문에 만들기 시작하셨어. 현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소요공이 며칠을 앓았는데 죽어도 약은 드시기 싫다고 하는 거야. 소요공이 원래 몸이 좋아서 장년 때도 약을 거의 안 드셨다고 해. 이번에 아픈 것도 이삼일이면 낫겠지, 하다가 점점 심하게 오래 가니까 더 이상 끌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약재를 사신 거지. 그런데 본인이 환약으로는 먹는 게 탕약으로 먹는 거보다 낫다고 하신 거야. 산 약재는 효과가

  • 명의 왕비   제 2951화

    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단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리 나리와 장사하는 곳을 드나들 수 없다고 우문호가 사정하게 된다면 이리 나리가 한발 양보해 경단이 대신 경단이 늑대를 담보로 맡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문호가 경단이 늑대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고 이리 나리는 마지못하겠다는 식으로 수락하는 전개가 된다.생각했던 전개에 따르면 이리 나리한테는 일거삼득이다. 첫째, 바라던 대로 북당 발전 자문단 수뇌가 되어 국가 경제의 맥을 장악할 수 있다.둘째, 경단이의 눈 늑대를 데려가면 자신에게 눈 늑대가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고, 기껏해야 경단이가 자랐을 때 다시 돌려주면 된다.마지막으로 이리 나리는 언제든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우문호 앞에서 고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경단이를 원했는데 대신 늑대를 맡겼으니 우문호는 늘 꿀리는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전심을 다 해 늘 국가 경제 발전을 생각하는 우문호가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우문호는 곧바로 이리 나리의 당황한 기색을 읽어내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짐은 일이 더 있어 바쁘니 이리 나리는 돌아가 봐!”“예, 저는 그러면 가보겠습니다.”이리 나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일어나지 않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다음엔 무슨 일로 바쁘신 겁니까?”“호부 자문단 수뇌에 누가 적합할지 냉정언과 상의해 봐야지.” 우문호가 말했다.“그거 확실히 큰 일이군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겠습니다?”“당연하지!” 곧이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왜 아직 안 가냐는 표정을 보이며 심지어는 이만 가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하지만 이리 나리는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양쪽 엄지손가락은 계속 뱅뱅 돌리며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둑에 취미가 있으신가요?”우문호가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바둑은 무슨? 짐은 바둑

  • 명의 왕비   제 2952화

    이렇게 이리 나리는 호부 자문단 수뇌로 조정에 출사해 북당의 향후 10년 경제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뇌라고 해도 출근 시간은 상당히 탄력적이기에 절대로 공주를 보필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리 나리가 거액을 들여 이리 저택 부근의 집을 한 채 사들이고, 약간 개조해서 자문단 사무실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회의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리 나리의 이런 업무방식이 알려지며 조정의 일부 노신들은 ‘이리 나리에게 너무 큰 것을 맡기는 게 아니냐, 원래 호부 관아에서 진행해야 할 회의를 왜 이리 나리에게 넘겨야 하는 거냐?’라며 불만을 터트렸다.이리 나리가 막 부임했을 때는 조정에 누군가 이리 나리가 공금을 낭비하고 사치가 극에 달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조정의 물을 다 흐려놓고 있다고 우문호에게 상소문을 올렸다.소위 새로운 황제가 기풍을 쇄신하는 건 아직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조정 대신도 알력을 드러낸 것이였다. 특히 경제 계획의 주체를 이리 나리가 맡을지 무상황의 노신이 맡을지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언급했다.그 당시엔 아직 태자이였기에 우문호는 ‘자기 돈으로 사치하든 말든 조정이 상관할 바가 아닐뿐더러 그게 공금 낭비랑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한마디 받아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조회의 엄숙한 자리에서 조정의 기풍까지 거론하고 있었기에 막 보위에 올라 아직 변변찮은 업적을 쌓지 못한 우문호가 상소문의 내용을 딱 잘라버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노신은 말끝마다 자신이 무상황의 사람임을 표방하는 게 경력을 막강한 권위로 내세우고 있었다.이때 다행히 예친왕이 대전 조회에서 이리 나리가 그동안 조정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댔는지 따져볼 것이라며 상소문에 따끔하게 반론했다. 더불어, 자기 돈으로 자기에게 하는 것을 사치가 극에 달했다고 할 일이 아니고, 자기 개인 돈을 써서 나랏일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 조정의 일을 편하게 보는 것인데 그걸 트집 잡으면 그동안 손해 입힌 돈은 무슨 낯으로 설명할 수 있냐며 말이다. 예친왕의 말에 누구

  • 명의 왕비   제 2953화

    “그러시죠. 소신 더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예친왕 마음속에는 의심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지금 큰아버지께서 온 경성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시는 중인데 여기서 보물을 주웠다고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모를 리가 있나?’역시 예친왕의 걱정은 들어맞았다. 확실하게 산을 조사한 다음 날 전 황제가 아직 사람도 보내기 전에 흑영위가 전부 그쪽으로 괭이를 들고 가서 우공이산이라도 할 기세를 보였다.전 황제가 이를 알고 기가 차서 죽을 뻔했다. ‘하필이면 보물이 땅속에 있는데, 파내는 게 임자 아냐?’잠시 후 안풍 친왕이 특별히 좋은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으로 왔다. 부근 산에서 공무를 볼 일이 있는데 앞으로 한 달 동안 어쩌면 약간의 소음이 매화장에 들릴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전 황제는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으나 안풍 친왕의 ‘공무’를 강제로 말릴 수도 없고 따지고 들면 안풍 친왕은 숙왕부 출신으로 휘종제의 적장자니, 명실상부하게 저 보물을 가져갈 자격이 있었다.안풍 친왕이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전 황제가 관리하니 매화장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전 황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큰아버지 아쉬우시면 다시 사가시죠.”안풍 친왕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녀석 좀 보게, 그게 무슨 소리야? 큰아버지가 어떻게 네가 사랑하는 걸 뺏을 수가 있어?”전 황제는 하마터면 ‘낯짝이 두꺼워도 유분수지’ 라는 말을 뱉을 뻔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고 심호흡을 하고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큰아버지 별일 아니시면 가서 공무 보시지요.”안풍 친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웃었다. “별일은 있지. 너랑 상의할 일이 많다.”전 황제는 터질 거 같은 속을 겨우 다스렸다. “말씀하세지요!”안풍 친왕이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지금 숙왕부에 있는데 일하러 보낸 사람도 숙왕부에 살거든. 내일도 여기서 일하는데 매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번거롭고, 건조식량만

  • 명의 왕비   제 2954화

    무상황이 순간 호기심이 생겨 넌지시 물었다. “정말 하겠다고 하던가요?”“하겠다고 했지, 절반을 나눠준다니 엄청 좋아하더구나!” 안풍 친왕이 말했다.“말도 안 돼요!” 무상황이 안풍 친왕을 바라봤다.“뭐가 말도 안 되는데? 증서까지 남겼다고, 봐!” 안풍 친왕이 바로 증서를 꺼내더니 무상황에게 보여주었다.무상황이 말했다. “형이 절반을 줄 리 없다는 말이예요.”무상황이 증서를 가져가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 했다. “사기를 당해놓고 어떻게 상대가 어디가 약아빠졌는지 모를 수가 있나?”소요공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함정이 있습니까?”무상황이 증서를 소요공에게 보여줬다. 소요공은 아무리 봐도 찾아내지 못해 주 재상에게 넘겨주자, 주 재상은 한번 쓱 보더니 웃었다. “허, 밥값정도 손해 보겠어!”“뭐라고?” 소요공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다. ‘그 무덤에 보물은 수백만 냥은 호가할 텐데, 특히 지금 팔면 돈이 더 될 거야. 그것에 절반인데 어떻게 밥값정도만 손해라는 거지?’주 재상이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휘형의 것을 절반 준다고 한 거잖아. 그 보석을 판 뒤에 휘형이 한 냥만 가진다면? 그러면 손해 아닌가?”소요공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 냥이라니.. 이거 너무 하잖아?”안풍 친왕이 손을 내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본전을 손해 보게 할 수야 없지. 100냥만 가질 생각이야. 남은 건 라만과 저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고. 그럼, 조카도 50냥을 나눠 받으니, 밥값은 손해 보지 않아. 고깃값도 못 되겠지만.”소요공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인과응보가 두렵지도 않으십니까?”그러자 안풍 친왕이 한심하다는듯 소요공 볼을 세게 꼬집었다. “처음부터 널 거둔 게 제일 큰 인과응보야, 다른 인과응보가 너만 하겠냐?”소요공이 계면쩍게 웃었다. “그때 절 거두실 때 은자 삼백 냥을 받아서 생계를 보전하셨잖아요. 안 그랬으면 버티기 힘드셨을 겁니다.”이전에 안풍 친왕비가 소요공을 거뒀을 때 소요공의 아버지가 은자

  • 명의 왕비   제 2955화

    열째가 매황장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흥분해 했다. 궁에서는 자유가 없었는데 온 산을 뛰어다닐 수 있으니 한동안 미친 듯이 놀았다. 하지만 점점 똑 같은 생활이 단조로워지자, 친구들이 생각나 아바마마께 궁에서 만두와 아이들과 놀게 해 달라고 했다.그러자 전 황제는 열째를 궁으로 보내는 것보다 만두와 아이들을 한동안 매화장으로 오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마침, 떡들과 쌍둥이도 궁에서 심심하던 차였기에 황조부가 사람을 보내 맞으러 오자 짐을 꾸려 호랑이와 늑대를 데리고 서일의 호송을 받으며 매화장으로 향했다.출궁할 때 원경릉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들에게 너무 난장판 부리지 말라며 황조부와 호태비 말씀 잘 들으라고 했다. 매화장에 도착해서 이틀간은 그래도 얌전하게 지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를 데리고 간 다섯 꼬맹이가 얌전하게 있을 리가 있겠나? 천지 사방에 거칠 것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매화장에 간지 사흘째 되는 날, 전 황제가 새로 만든 사냥터 담장이 와르르 무너져 안에서 키우던 동물이 전부 산으로 달아나 버렸다.전 황제가 잘못을 추궁하자 열째와 만두는 죄를 홀라당 쌍둥이에게 덮어씌웠는데 쌍둥이가 황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걔들이 불쌍해요. 계속 우리한테 구해달라고 하는데…. 황조부, 걔들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혹시 사냥하고 싶으시면 저희가 사냥터를 뛰어다닐게요, 저희한테 활을 쏘셔도 돼요.. 네?”전 황제는 가슴이 메어왔다. 손자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는커녕 마음이 너무 아파졌기 때문이다. 결국 얼른 둘을 안아 들어 무르팍에 앉히고 하나씩 뽀뽀했다. “됐다, 됐어. 황조부는 사냥도 별로 안 좋아하니 놔준 셈 치자. 그리고 어떻게 너희를 쏠 수가 있어? 활은커녕 한 대 때리는 것도 가슴이 아픈데.”전 황제는 속으로 탄식했다. ‘쌍둥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황후의 가르침 덕분이구나.’다시 이틀이 지나고, 이들은 시위

  • 명의 왕비   제 2956화

    하지만 전 황제는 탁자를 '탁' 치며 크게 성을 냈다. “뭐라?!”전 황제는 한 손으로 열째를 잡아 뒤로 돌리더니 엉덩이를 팡팡 때리자, 열째가 느닷없이 맞고 놀라 대성통곡했다.전 황제가 때리며 호통을 쳤다. “나이도 어린 것이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에게 구덩이를 파줘? 과인을 묻겠다는 거 아냐? 너 오늘 매 좀 맞아야겠다.”열째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자 호태비까지 달려와 전 황제가 손찌검하는 것을 보고 열째가 큰 사고를 쳤구나 싶어서 얼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 황제가 열째를 놔주며 분기탱천한 얼굴로 말했다. “이 녀석이 과인에게 구덩이를 파줬어. 과인을 묻으려는 게야!”호태비가 놀라서 얼굴이 다 하얗게 질렸다. “너 미쳤어?”줄곧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아바마마에게 맞았는데, 이번에는 어마마마에게까지 혼나자 열째는 억울하고 슬퍼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찰떡이가 연약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황조부를 묻으려는 게 아니에요. 쌍둥이가 동물들을 쫓아 보내서 황조부 사냥터가 없어지고 말았잖아요. 열째 작은 아버지는 황조부에게 연못을 파 드리려는 거였어요. 앞으로 산에서 낚시할 수 있게요. 하지만 만두 형이 산에는 물이 없다고 해도 환타가 구덩이를 파봤거든요. 그런데 정말 물이 나오지 않아서….”이 설명에 따르면 구덩이는 역시 효심의 발로여서 전 황제는 순간 당황스러웠다.호태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했다. “그럼 넌 왜 아바마마께 제대로 말을 못 한 것이냐?”열째는 억울하다며 하도 울어대서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소자가 구덩이를 팠다는 말에 아바마마께서 바로 때리셨어요.. 헌데 소자가 어떻게 구덩이에 아바마마를 묻을 수가 있습니까? 다섯째 형수가 소자는 아바마마께 효도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소자는 절대로 그런 불효한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그러자 호태비는 손수건을 꺼내 열째의 얼굴을 닦아주며 전 황제에게 눈을 흘겼다. “왜 제대로 묻지도 않나요? 애들이 하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