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 친왕 사람들은 한 달간 공무하는 동안 매화장에서 먹고 마셨다. 비록 산에서 파낸 보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처음 부장한 것의 1/10도 되지 않았지만, 돈으로 환산하면 값이 상당했다.안풍 친왕은 전 황제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매화장으로 오라고 해서 매입가를 추산하도록 했다. 일부는 헌제 황실 보물이었기 때문에 수장 가치가 있으므로 가격을 높게 쳐줬다. 모든 보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팔아서 은자로 환산해보니 110만 냥이었다.전 황제가 금액을 듣고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110만 냥이라, 일전 계약에 따르면 자신은 55만 냥을 받을 수 있었다.주인장은 표사를 불러 보물을 운반하게 했다. 주인장이 가자 전 황제는 증서를 꺼내 싱글벙글 웃으며 안풍 친왕에게 내밀었다. “큰아버지, 조카에게 주셔야 할 몫은 주셔야 합니다.”안풍 친왕이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안심해, 내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그리고 증서로 보증을 해 뒀으니 넌 일단 기다리거라, 우선 저들에게 나눠주고 다음에 너랑 나랑 나누도록 하지.”전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또 누구에게 나눠 주신다는 말씀입니까?”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기세로 몰아붙이며 말했다. “우리들이요!”전 황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니 전부 따르던 호위들이라 품삯이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시죠, 우선 저들부터 주세요.”10만 냥을 꺼내 품삯을 줘도 전 황제 몫은 아직 50만 냥이 남았기에 괜찮았다.하지만 안풍 친왕이 만 냥짜리 지폐를 꺼내 한 사람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전 황제가 놀라서 얼른 안풍 친왕을 붙잡았다. “큰아버지,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전부 만 냥씩 입니까?”안풍 친왕이 나눠주면서 말했다. “맞아, 저들이 힘을 쓴 공로가 크니 당연히 많이 받아야지. 우리는 힘쓴 게 없으니 나누는 것도 작은 거야. 네 생각은 다른 거냐?”그러자 전 황제는 기가 막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당연히 생각이 다르지, 생
안풍 친왕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증서를 흔들어 보였다. “왜? 종이에 쓰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큰아버지까지 속이고 싶은 것이냐? 황자들에게 효도를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정작 본인이 효도가 뭔지를 모르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안풍 친왕이 박해받는 표정을 지으며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 전 황제를 대했다.전 황제가 당황해서 안풍 친왕을 바라봤다. 증서가 얼굴 앞에서 나부끼고 산바람이 자신의 서늘한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도록 전 황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냉수를 끼얹은 듯 마음이 싸늘해졌고 증서가 비웃듯 눈앞에서 뒹굴었다. 원래는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증서가 결국 악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변해 버리다니 세상은 불공정하구나!“왜, 트집 잡아 계약을 어기게?” 안풍 친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죄인을 성토하는 자세를 취했다.“아…. 아닙니다!” 전 황제의 기세가 약해졌다. 밉지만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그런 억울한 모습 하지 말거라. 말해 봐, 처음에 내가 뭐라고 그랬느냐? 내 몫의 절반을 준다고 했지, 맞지? 증서에도 쓰여 있는데 말이다. 안 그래?”“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눠줘야 한다고 하시지는….”안풍 친왕이 말을 끊어 버리고 흑영위를 가리키며 전 황제에게 물었다. “저들이 꼬박 한 달 동안 산에서 공무를 봤지?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 해가 지도록 쉴 수가 없었지. 얼마나 고단했는지 너도 봐서 알 거야. 안 그러느냐?”“그…. 그건 봤습니다.”“저들이 피땀을 흘려 이렇게 많은 금은보화를 파냈는데 그중 일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어? 세 사람이 광산에서 채굴하는 거에 비유하면 한 사람은 기획하고 다른 두 사람은 채굴하는 일을 했어. 너라면 채굴한 사람에게는 나눠주지 않을 것인가?”“그…. 그건 절대 아닙니다. 허나 이건 상황이 다릅니다... 저들은 큰아버지 사람입니다.”안풍 친왕이 냉소를 지었다. “내 사람이 어쨌다고? 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얕잡아봐도 된다는 뜻이느냐? 내 사람은 돈을 나눌 자격이 없어? 네가
숙왕부에 있던 적성루의 ‘잔당’들이 은자를 받은 후 안풍 친왕이 짠 여정에 따라 숙왕부를 나섰다. 그런데 어찌나 기세가 등등하던지 소요공이 놀라서 옷을 걸치고 나와 자연스럽게 무상황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무상황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허전하고 무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휘형이 저들을 설득했어. 평생 북당을 지켰으니 이 땅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기들이 지킨 강산이 어떤지 봐야 한다며 말이야.”주 재상이 다가 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휘형이 이렇게 근사한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었죠. 아마 저들을 떠나보내려는 걸 겁니다.”“그럼, 네 생각에 휘형은 뭘 하실 거 같아?” 소요공이 쭈그리고 앉아 물었다.“뭐, 곧 알게되겠지.” 주 재상은 침착했다.소요공이 무상황 곁으로 옮겨가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한 개비 더?”“꿈 깨!” 무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흘겼다. 한 달에 고작 요만큼인데 거기서 한 개비를 달라니!“주디 누님께서 내일 오는데.. 다 일러바칠 겁니다!” 소요공이 협박했다.무상황이 담배꽁초를 버리며 소요공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어쭈?”소요공이 쭈그리고 앉아 아직 불이 붙어있는 담배꽁초를 한 모금 빨자 입에서 서서히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소요공은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며 건방지게 말했다. “담배 피운 거뿐만 아니라 어젯밤 술 마신 것도 얘기해야겠네요. 어디 때려보세요.”무상황이 신발을 벗어들고 때리려고 하자 주 재상이 와서 막아서며 무상황에게 말했다. “십팔매한테 한 대 줘요,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쫑알댈 겁니다.”“안 줘!” 무상황은 십팔매가 협박하는 게 제일 싫었다.주 재상이 살짝 무상황을 밀며 눈짓하며 말했다. “줘버려요, 나중에 일러바쳤다가 검사라도 하는 날엔 방에 얼마나 숨겨놨는지 본인이 잘 아시잖아요. 제 방에도 보물을 숨겨놨단 말이에요.”무상황은 호기심이 생겼다. “네 방에는 무슨 보물을 숨겨놨는데?”주 재상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지난번 경주지부
소요공이 가만히 듣다가 한마디 했다. “아마 정식으로 돌아갈지 여부는 못 정했을걸요. 정식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작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식으로 돌아간 거면 와서 작별하기도 쉬웠겠죠.”무상황이 턱을 쥐고 말했다. “과인이 역시 한번 다녀와야겠어. 앞으로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왜 없어요? 앞으로 황후마마께서 무슨 약을 만들러 돌아가시면 우리도 따라가서 며칠 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 재상이 말했다.“십팔매는 안 데려갈 거야!” 무상황이 악에 받쳐 냅다 소리쳤다.그러자 소요공이 속으로 킥킥 웃어댔다. ‘저 두 약골이 나를 따돌리겠다고?’그래도 소요공은 무상황과 주 재상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역시 소요공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며칠 뒤 안풍 친왕 부부가 보따리에 커다란 수박을 담아 의기소침하게 다시 적성루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고, 안풍 친왕 부부가 떠났었다는 사실까지도 모르는 척했다.오히려 소요공만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기 바빴다. 그러자 왕비는 현대로 돌아가니 이곳에 미련이 남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어쨌든 여기가 익숙하고 사람들이랑 헤어지지도 못하겠으니 세 사람이 죽어야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소요공이 이 말에 감동해서 무상황과 주 재상에게 알려주자 무상황은 믿지 않았다. “아직 못 돌아가나 봐? 하긴 북당이 아직 진정한 의미로 대국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어쨌든 결국 두 분도 아직 여기 계시네!” 주 재상이 결과만 따지고 과정은 중시하지 않았다. 사실도 어짜피 똑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눈 깜짝할 새에 연말이 코앞에 닥쳤다. 연말을 보낸 뒤 우문호는 떡들과 쌍둥이를 현대로 유학을 보내고 계란이만 곁에 둘 생각이었다.마음속으로는 계란이가 세 살이 되면 데려가겠다는 기화가 걱정됐다. 기화의 내력을 완전히 아는 것도 아니고 현대에서 그 사람들에게 들은 말이 전부라 실제로는 어떨지 계속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이리 나리가 손을 뻗어 우문령의 손을 잡았다가 원경릉이 미간을 찡그리고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취하자, 손을 거두고 약간 불안한 듯 물었다. “그…. 그게 지금 어떤가요? 약을 먹을 수는 있습니까?”그러자 원경릉이 화내듯 쏘아붙였다. “무슨 약을 먹어요? 우선 담백한 음식으로 견디세요. 아이를 가지면 먹는 것에 집착이 생기는 거 알아요. 하지만 태아가 이미 너무 커서 낳을 때 상당히 고생스럽고 위험할 수 있어요.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해요.”“새언니 안심하세요. 꼭 기억하고 안 먹을게요!”“먹어야 할 때는 담백하게. 적게 여러 번 먹고 꾹 참아야 돼요. 예정일이 금방이니까 두 달만 참도록 해요.” 원경릉이 다시 한번 잔소리했다.우문령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끝내 약속했다. “알았어요.”원경릉은 자신이 좀 심하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리 나리에게는 심각하게 중간보고해야만 했다. 이리 나리는 원래 이성적인 사람인데 아내의 식욕을 눈감아 주는데 만큼은 비이성적이었다.원경릉이 가기 전에 직접 식단을 정해주고 우문령에게 식단에 따라 음식을 먹게 했다. 이리 나리는 지난 실수를 반성하고 온 집안 식솔들에게 공주와 함께 식단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매끼 정략대로 할 것을 명했다.이리 나리의 보배 같은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산모가 출산할 때 고통이 조금 줄이기 위해, 다들 우문령과 함께 살을 빼겠다고 자진해서 나섰다.손왕이 이 말을 듣고 여동생이 안 돼서 1월 3일에 손 왕비를 데리고 이리 나리 저택으로 갔다. 자신이 수년간 쌓은 다이어트 경험을 여동생에게 전수하기 위해서였다.손왕이 이리 저택에 도착해 우문령에게 운을 띄웠다. “살 빼는 비법은 북당에서 네 둘째 오라비 따라올 사람이 없지.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고, 하루에 다섯 끼, 배에 약간의 음식물만 들어가면 되니까 끼니마다 조금씩만 먹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가서 걷고, 하루 30분씩 운동을 계속하면 돼. 둘째 오빠 방법대로 하면 반드시 살을 뺄 수 있어.”“둘째 오빠도 이 방법대로 한거예요?” 우문
손 왕비가 다소 불쾌해했다. “자기가 자기 입단속을 못 하고 누구를 원망해요? 공주, 저이를 부르지 않는 게 좋아요. 저이는 말이죠. 혼자 먹으면 별로 맛이 없다며 같이 먹자고 부추겨요. 저이가 오면 공주의 절식 계획이 엉망이 될 게 분명해요. 온 집에 가솔들이 다 같이 망한다니까요?”“당신 지금 누구 무시해? 잘 들어. 내가 살을 꼭 빼고야 말겠어!” 손왕이 화가 나서 말했다.“오빠, 저도 응원해요!” 우문령이 곧바로 지지했다.손왕이 감동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동생, 오빠가 가서 짐 싸서 올게, 같이 지내자.”그러자 손왕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비꼬았다. “어디 사흘을 넘기나 두고 봅시다.”이건 손왕을 무시하는 게 아닌, 그가 실제로 살을 빼겠다는 소리를 수백 번도 더 했고 2근을 빼면, 그것보다 더 먹어서 5근이나 더 찌운 예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뒤룩뒤룩 오른 살집이 다 그렇게 생긴 것이었다.그러자 손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곧바로 짐을 챙겼다. 우문령은 이리 나리가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이 일을 얘기했고 이리 나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둘째 형수님이 형님을 무시하셨으니, 우리가 둘째 형님을 도와 같이 힘을 내는 거 어때?”“좋아요, 꼭 둘째 오빠가 살 빼는 걸 도울 거예요!” 우문령은 반드시 과식을 참고 자기도 오빠를 돕겠다고 결심했다.이리 나리는 쭈그리고 앉아 우문령을 부축해 앉히고는 우문령의 신발을 벗기고 발을 살살 주물러 주었다. 그녀의 두 발은 아직 부어있었다. 이리 나리는 길고 아름다운 손으로 부드럽게 복사뼈를 주무르며 걱정했다. “아파?”“오늘은 괜찮아요. 별로 오래 안 걸었거든요!” 우문령이 이리 날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이리 나리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맑고 순수한 눈동자에 자책감이 서렸다. “내 탓이야. 제자가 몇 번이나 당부했는데 내가 마음이 약했어. 당신이 임신 중에 힘들어하니 나도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데 먹고
손 왕비는 여전히 남편을 매도하며, 그가 살을 뺀다고 동서들 모임에도 전해주었다. 못 할 게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말투로 말이다.이번엔 화통한 성격의 미색조차도 손 왕비의 행동을 참지 못했다. “둘째 형님 같은 아내가 어딨습니까? 둘째 아주버님이 어렵사리 살을 빼겠다고 결심하셨는데 지지는 못할망정 아주버님을 그렇게 얘기하시다니요. 알고보니 아주버님께서 이리 저택으로 가신 게 형님에게 공격당할까봐였군요.”손 왕비가 반박했다. “내가 지지를 안 한다고? 내가 얼마나 지지했었는데! 그 사람 본인이 계속 못 한 거지. 내가 무시하는 게 아니라 실지로 실패한 횟수가 너무 많아. 이제 살 뺀다는 소리가 아주 지긋지긋해. 못 믿겠으면 두고 보라니까, 열흘도 못 돼서 포기할게 분명할테니까.”미색이 제안했다.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저희 내기 한 판 어떠세요?”“찬성!” 원용의가 얼른 말하고 슬쩍 원경릉을 밀었다. “원 언니는 누구한테 거실 거예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전 빠질래요.”미색이 말했다. “판돈은 은자 천 냥이요.”그러자 원경릉이 얼른 말을 바꿨다. “그럼…. 해봐도 될 것 같은데.”미색이 씩 웃었다. “형님도 둘째 아주버님께서 성공하는 쪽이죠? 좋아요, 우리 같이 둘째 아주버님께 힘을 실어줍시다.”원경릉은 사실 손왕이 못 뺀다는 것에 걸고 싶었다. 손왕이 포기한 횟수가 너무 많아서 도통 신뢰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긴 거나 다름없다는 손 왕비는 그가 포기할 걸 아주 당연시하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어떻게든 손왕이 아내 앞에 위신을 만회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맞아, 둘째 아주버님이 살을 빼신다는 것에 걸 거야.”그렇게 동서들 모두가 손왕이 살을 뺀다는 것에 걸었다.사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진짜 손왕을 신뢰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원경릉과 같이 손 왕비가 손왕을 지지하지 않는 게 느껴져 본인들은 손왕을 지지하는 쪽에 선 것이었다. 은자 천 냥은 아마 잃겠지만은 말이다.이건 원래 미색이 시작한 작은 규모의 내기였는
손 왕비가 껄껄 웃으며 떠나는 게, 마치 2만 냥이 이미 수중에 들어온 듯했다.손왕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다시한번 굳게 결심했다. ‘이번은 반드시 모질게 마음먹어야지. 여섯째 제수씨 가산을 탕진하게 할 수는 없다.’한편, 미색은 경성 사람들이 손왕은 못 믿어도 황후의 식단은 신뢰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 손왕이 진다는 쪽에 걸었다. 계산해 보니 사람들이 700만 냥을 손왕이 진다는데 걸었고, 이는 전체의 95%를 차지했다. 만약 손왕이 정말 살을 못 빼서 지면 미색은 1,400만 냥을 배상해야 하므로 정말 가신을 탕진하고 만다. 미색의 계산 실수였다. 아니, 늑대파 사람들의 꾐에 빠져서 홀랑 판을 키운 것으로 그들은 전부 손왕이 살을 빼지 못한다는 쪽에 걸어 버린 것이다.미색은 서둘러 혜민서에 가서 원경릉과 상의했다. 원경릉은 너무 놀라 소름이 돋았다. 미색 이것이 나이가 어려 멋모르고 방정을 떨더라니. 그래도 둘째 아주버님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줄 몰랐다.원경릉은 적어도 4:6이 아닐까 해서 본전을 손해 보더라고 그 정도면 크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판이 이렇게 커진 것을 보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이고 맙소사, 어쩌자고 이렇게 큰 판을 만들었어?”“어떡하죠? 둘째 아주버님께서 정말 살 못 빼실까요?” 미색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원경릉은 손왕의 지난 수년간 다이어트 결과를 떠올리며 하는 수 없이 답했다. “응, 그럴 수도 있어..”미색이 울상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전 그냥 둘째 아주버님을 응원해 드리고 싶었던 건데 집안을 말아먹을 줄은 몰랐다고요!”원경릉이 미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나랑 같이 책임을 지자. 난 돈이 많지 않으니 이리 나리께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최선을 다해 둘째 아주버님이 살을 빼시도록 도울 거야. 우리가 역전하기를 바라자.”미색이 감동해서 원경릉을 끌어안았다. “황후 마마는 정말 너무 좋은 분이세요. 마마께서 나서시면 이리 나리도 분명 수수방관하지는 못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