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민할 거 없어. 승낙하지 마.”우문호가 말했다. “허락 안 하면 이리 나리도 내 말을 수락하지 않을 거야. 이리 나리가 나갈 때를 못 봐서 그래. 휘파람까지 불었다니까. 내가 자신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거야.”원경릉은 공주의 말을 전하더니 끝내 웃으며 말했다. “공주가 그랬어, 이리 나리는 관리로 부임하길 간절히 원한다고. 자기가 경단이가 이리 나리 따라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아도 이리 나리는 자기 요구에 응할 게 틀림없어.”우문호가 원경릉의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어 보였다. “이리율 네 이놈, 날로 먹으려고 잘난 척 나를 골탕 먹이려 했겠다. 내 동생이 내 편인 건 몰랐지, 벌써 널 팔았다고.”원경릉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이리 나리에게 빌미를 줘야 해. 우선 아이들을 다 공부하러 보냈다가, 경단이가 열두 살이 되면 이리 나리를 따르게 하겠다고 자기가 얘기해. 이리 나리가 정말 나랏일을 하고 싶으면 자기의 그 말을 핑계로 따라올 테니까.”우문호는 원경릉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오늘 피곤하지?”원경릉이 우문호 배에 기대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아직 괜찮아, 그런데 가서 할머니 도와드려야 해. 전염병을 치료하고 독을 제거하는 약을 만드시는 중이시거든. 열감기에도 쓸 수 있는데, 아직 시험 단계라 내가 가서 좀 도와드려야 해.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시잖아.”“환약이야?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아직 약을 만드시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응, 한약재야.” 원경릉이 말했다. “이 약은 소요공 때문에 만들기 시작하셨어. 현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소요공이 며칠을 앓았는데 죽어도 약은 드시기 싫다고 하는 거야. 소요공이 원래 몸이 좋아서 장년 때도 약을 거의 안 드셨다고 해. 이번에 아픈 것도 이삼일이면 낫겠지, 하다가 점점 심하게 오래 가니까 더 이상 끌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한약재를 사신 거지. 그런데 본인이 환약으로는 먹는 게 탕약으로 먹는 거보다 낫다고 하신 거야. 산 약재는 효과가
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단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리 나리와 장사하는 곳을 드나들 수 없다고 우문호가 사정하게 된다면 이리 나리가 한발 양보해 경단이 대신 경단이 늑대를 담보로 맡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문호가 경단이 늑대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고 이리 나리는 마지못하겠다는 식으로 수락하는 전개가 된다.생각했던 전개에 따르면 이리 나리한테는 일거삼득이다. 첫째, 바라던 대로 북당 발전 자문단 수뇌가 되어 국가 경제의 맥을 장악할 수 있다.둘째, 경단이의 눈 늑대를 데려가면 자신에게 눈 늑대가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고, 기껏해야 경단이가 자랐을 때 다시 돌려주면 된다.마지막으로 이리 나리는 언제든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우문호 앞에서 고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경단이를 원했는데 대신 늑대를 맡겼으니 우문호는 늘 꿀리는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전심을 다 해 늘 국가 경제 발전을 생각하는 우문호가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우문호는 곧바로 이리 나리의 당황한 기색을 읽어내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짐은 일이 더 있어 바쁘니 이리 나리는 돌아가 봐!”“예, 저는 그러면 가보겠습니다.”이리 나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일어나지 않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다음엔 무슨 일로 바쁘신 겁니까?”“호부 자문단 수뇌에 누가 적합할지 냉정언과 상의해 봐야지.” 우문호가 말했다.“그거 확실히 큰 일이군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겠습니다?”“당연하지!” 곧이어 우문호는 이리 나리에게 왜 아직 안 가냐는 표정을 보이며 심지어는 이만 가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하지만 이리 나리는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양쪽 엄지손가락은 계속 뱅뱅 돌리며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둑에 취미가 있으신가요?”우문호가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바둑은 무슨? 짐은 바둑
이렇게 이리 나리는 호부 자문단 수뇌로 조정에 출사해 북당의 향후 10년 경제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뇌라고 해도 출근 시간은 상당히 탄력적이기에 절대로 공주를 보필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리 나리가 거액을 들여 이리 저택 부근의 집을 한 채 사들이고, 약간 개조해서 자문단 사무실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회의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리 나리의 이런 업무방식이 알려지며 조정의 일부 노신들은 ‘이리 나리에게 너무 큰 것을 맡기는 게 아니냐, 원래 호부 관아에서 진행해야 할 회의를 왜 이리 나리에게 넘겨야 하는 거냐?’라며 불만을 터트렸다.이리 나리가 막 부임했을 때는 조정에 누군가 이리 나리가 공금을 낭비하고 사치가 극에 달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조정의 물을 다 흐려놓고 있다고 우문호에게 상소문을 올렸다.소위 새로운 황제가 기풍을 쇄신하는 건 아직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조정 대신도 알력을 드러낸 것이였다. 특히 경제 계획의 주체를 이리 나리가 맡을지 무상황의 노신이 맡을지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언급했다.그 당시엔 아직 태자이였기에 우문호는 ‘자기 돈으로 사치하든 말든 조정이 상관할 바가 아닐뿐더러 그게 공금 낭비랑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한마디 받아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조회의 엄숙한 자리에서 조정의 기풍까지 거론하고 있었기에 막 보위에 올라 아직 변변찮은 업적을 쌓지 못한 우문호가 상소문의 내용을 딱 잘라버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노신은 말끝마다 자신이 무상황의 사람임을 표방하는 게 경력을 막강한 권위로 내세우고 있었다.이때 다행히 예친왕이 대전 조회에서 이리 나리가 그동안 조정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댔는지 따져볼 것이라며 상소문에 따끔하게 반론했다. 더불어, 자기 돈으로 자기에게 하는 것을 사치가 극에 달했다고 할 일이 아니고, 자기 개인 돈을 써서 나랏일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 조정의 일을 편하게 보는 것인데 그걸 트집 잡으면 그동안 손해 입힌 돈은 무슨 낯으로 설명할 수 있냐며 말이다. 예친왕의 말에 누구
“그러시죠. 소신 더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예친왕 마음속에는 의심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지금 큰아버지께서 온 경성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시는 중인데 여기서 보물을 주웠다고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모를 리가 있나?’역시 예친왕의 걱정은 들어맞았다. 확실하게 산을 조사한 다음 날 전 황제가 아직 사람도 보내기 전에 흑영위가 전부 그쪽으로 괭이를 들고 가서 우공이산이라도 할 기세를 보였다.전 황제가 이를 알고 기가 차서 죽을 뻔했다. ‘하필이면 보물이 땅속에 있는데, 파내는 게 임자 아냐?’잠시 후 안풍 친왕이 특별히 좋은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으로 왔다. 부근 산에서 공무를 볼 일이 있는데 앞으로 한 달 동안 어쩌면 약간의 소음이 매화장에 들릴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전 황제는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으나 안풍 친왕의 ‘공무’를 강제로 말릴 수도 없고 따지고 들면 안풍 친왕은 숙왕부 출신으로 휘종제의 적장자니, 명실상부하게 저 보물을 가져갈 자격이 있었다.안풍 친왕이 호랑이를 데리고 매화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전 황제가 관리하니 매화장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전 황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큰아버지 아쉬우시면 다시 사가시죠.”안풍 친왕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녀석 좀 보게, 그게 무슨 소리야? 큰아버지가 어떻게 네가 사랑하는 걸 뺏을 수가 있어?”전 황제는 하마터면 ‘낯짝이 두꺼워도 유분수지’ 라는 말을 뱉을 뻔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고 심호흡을 하고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큰아버지 별일 아니시면 가서 공무 보시지요.”안풍 친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웃었다. “별일은 있지. 너랑 상의할 일이 많다.”전 황제는 터질 거 같은 속을 겨우 다스렸다. “말씀하세지요!”안풍 친왕이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지금 숙왕부에 있는데 일하러 보낸 사람도 숙왕부에 살거든. 내일도 여기서 일하는데 매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번거롭고, 건조식량만
무상황이 순간 호기심이 생겨 넌지시 물었다. “정말 하겠다고 하던가요?”“하겠다고 했지, 절반을 나눠준다니 엄청 좋아하더구나!” 안풍 친왕이 말했다.“말도 안 돼요!” 무상황이 안풍 친왕을 바라봤다.“뭐가 말도 안 되는데? 증서까지 남겼다고, 봐!” 안풍 친왕이 바로 증서를 꺼내더니 무상황에게 보여주었다.무상황이 말했다. “형이 절반을 줄 리 없다는 말이예요.”무상황이 증서를 가져가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 했다. “사기를 당해놓고 어떻게 상대가 어디가 약아빠졌는지 모를 수가 있나?”소요공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함정이 있습니까?”무상황이 증서를 소요공에게 보여줬다. 소요공은 아무리 봐도 찾아내지 못해 주 재상에게 넘겨주자, 주 재상은 한번 쓱 보더니 웃었다. “허, 밥값정도 손해 보겠어!”“뭐라고?” 소요공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다. ‘그 무덤에 보물은 수백만 냥은 호가할 텐데, 특히 지금 팔면 돈이 더 될 거야. 그것에 절반인데 어떻게 밥값정도만 손해라는 거지?’주 재상이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휘형의 것을 절반 준다고 한 거잖아. 그 보석을 판 뒤에 휘형이 한 냥만 가진다면? 그러면 손해 아닌가?”소요공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 냥이라니.. 이거 너무 하잖아?”안풍 친왕이 손을 내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본전을 손해 보게 할 수야 없지. 100냥만 가질 생각이야. 남은 건 라만과 저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고. 그럼, 조카도 50냥을 나눠 받으니, 밥값은 손해 보지 않아. 고깃값도 못 되겠지만.”소요공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인과응보가 두렵지도 않으십니까?”그러자 안풍 친왕이 한심하다는듯 소요공 볼을 세게 꼬집었다. “처음부터 널 거둔 게 제일 큰 인과응보야, 다른 인과응보가 너만 하겠냐?”소요공이 계면쩍게 웃었다. “그때 절 거두실 때 은자 삼백 냥을 받아서 생계를 보전하셨잖아요. 안 그랬으면 버티기 힘드셨을 겁니다.”이전에 안풍 친왕비가 소요공을 거뒀을 때 소요공의 아버지가 은자
열째가 매황장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흥분해 했다. 궁에서는 자유가 없었는데 온 산을 뛰어다닐 수 있으니 한동안 미친 듯이 놀았다. 하지만 점점 똑 같은 생활이 단조로워지자, 친구들이 생각나 아바마마께 궁에서 만두와 아이들과 놀게 해 달라고 했다.그러자 전 황제는 열째를 궁으로 보내는 것보다 만두와 아이들을 한동안 매화장으로 오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마침, 떡들과 쌍둥이도 궁에서 심심하던 차였기에 황조부가 사람을 보내 맞으러 오자 짐을 꾸려 호랑이와 늑대를 데리고 서일의 호송을 받으며 매화장으로 향했다.출궁할 때 원경릉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들에게 너무 난장판 부리지 말라며 황조부와 호태비 말씀 잘 들으라고 했다. 매화장에 도착해서 이틀간은 그래도 얌전하게 지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를 데리고 간 다섯 꼬맹이가 얌전하게 있을 리가 있겠나? 천지 사방에 거칠 것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매화장에 간지 사흘째 되는 날, 전 황제가 새로 만든 사냥터 담장이 와르르 무너져 안에서 키우던 동물이 전부 산으로 달아나 버렸다.전 황제가 잘못을 추궁하자 열째와 만두는 죄를 홀라당 쌍둥이에게 덮어씌웠는데 쌍둥이가 황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걔들이 불쌍해요. 계속 우리한테 구해달라고 하는데…. 황조부, 걔들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혹시 사냥하고 싶으시면 저희가 사냥터를 뛰어다닐게요, 저희한테 활을 쏘셔도 돼요.. 네?”전 황제는 가슴이 메어왔다. 손자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는커녕 마음이 너무 아파졌기 때문이다. 결국 얼른 둘을 안아 들어 무르팍에 앉히고 하나씩 뽀뽀했다. “됐다, 됐어. 황조부는 사냥도 별로 안 좋아하니 놔준 셈 치자. 그리고 어떻게 너희를 쏠 수가 있어? 활은커녕 한 대 때리는 것도 가슴이 아픈데.”전 황제는 속으로 탄식했다. ‘쌍둥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황후의 가르침 덕분이구나.’다시 이틀이 지나고, 이들은 시위
하지만 전 황제는 탁자를 '탁' 치며 크게 성을 냈다. “뭐라?!”전 황제는 한 손으로 열째를 잡아 뒤로 돌리더니 엉덩이를 팡팡 때리자, 열째가 느닷없이 맞고 놀라 대성통곡했다.전 황제가 때리며 호통을 쳤다. “나이도 어린 것이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에게 구덩이를 파줘? 과인을 묻겠다는 거 아냐? 너 오늘 매 좀 맞아야겠다.”열째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자 호태비까지 달려와 전 황제가 손찌검하는 것을 보고 열째가 큰 사고를 쳤구나 싶어서 얼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 황제가 열째를 놔주며 분기탱천한 얼굴로 말했다. “이 녀석이 과인에게 구덩이를 파줬어. 과인을 묻으려는 게야!”호태비가 놀라서 얼굴이 다 하얗게 질렸다. “너 미쳤어?”줄곧 자신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아바마마에게 맞았는데, 이번에는 어마마마에게까지 혼나자 열째는 억울하고 슬퍼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찰떡이가 연약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황조부를 묻으려는 게 아니에요. 쌍둥이가 동물들을 쫓아 보내서 황조부 사냥터가 없어지고 말았잖아요. 열째 작은 아버지는 황조부에게 연못을 파 드리려는 거였어요. 앞으로 산에서 낚시할 수 있게요. 하지만 만두 형이 산에는 물이 없다고 해도 환타가 구덩이를 파봤거든요. 그런데 정말 물이 나오지 않아서….”이 설명에 따르면 구덩이는 역시 효심의 발로여서 전 황제는 순간 당황스러웠다.호태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했다. “그럼 넌 왜 아바마마께 제대로 말을 못 한 것이냐?”열째는 억울하다며 하도 울어대서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소자가 구덩이를 팠다는 말에 아바마마께서 바로 때리셨어요.. 헌데 소자가 어떻게 구덩이에 아바마마를 묻을 수가 있습니까? 다섯째 형수가 소자는 아바마마께 효도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소자는 절대로 그런 불효한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그러자 호태비는 손수건을 꺼내 열째의 얼굴을 닦아주며 전 황제에게 눈을 흘겼다. “왜 제대로 묻지도 않나요? 애들이 하
안풍 친왕 사람들은 한 달간 공무하는 동안 매화장에서 먹고 마셨다. 비록 산에서 파낸 보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처음 부장한 것의 1/10도 되지 않았지만, 돈으로 환산하면 값이 상당했다.안풍 친왕은 전 황제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매화장으로 오라고 해서 매입가를 추산하도록 했다. 일부는 헌제 황실 보물이었기 때문에 수장 가치가 있으므로 가격을 높게 쳐줬다. 모든 보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팔아서 은자로 환산해보니 110만 냥이었다.전 황제가 금액을 듣고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110만 냥이라, 일전 계약에 따르면 자신은 55만 냥을 받을 수 있었다.주인장은 표사를 불러 보물을 운반하게 했다. 주인장이 가자 전 황제는 증서를 꺼내 싱글벙글 웃으며 안풍 친왕에게 내밀었다. “큰아버지, 조카에게 주셔야 할 몫은 주셔야 합니다.”안풍 친왕이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안심해, 내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그리고 증서로 보증을 해 뒀으니 넌 일단 기다리거라, 우선 저들에게 나눠주고 다음에 너랑 나랑 나누도록 하지.”전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또 누구에게 나눠 주신다는 말씀입니까?”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기세로 몰아붙이며 말했다. “우리들이요!”전 황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니 전부 따르던 호위들이라 품삯이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시죠, 우선 저들부터 주세요.”10만 냥을 꺼내 품삯을 줘도 전 황제 몫은 아직 50만 냥이 남았기에 괜찮았다.하지만 안풍 친왕이 만 냥짜리 지폐를 꺼내 한 사람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전 황제가 놀라서 얼른 안풍 친왕을 붙잡았다. “큰아버지,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전부 만 냥씩 입니까?”안풍 친왕이 나눠주면서 말했다. “맞아, 저들이 힘을 쓴 공로가 크니 당연히 많이 받아야지. 우리는 힘쓴 게 없으니 나누는 것도 작은 거야. 네 생각은 다른 거냐?”그러자 전 황제는 기가 막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당연히 생각이 다르지, 생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