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왕이 내무부 일을 인계받았을 때도 장부는 아주 깔끔했다. 나중에 사람을 시켜 정리하게 하고 지출 항목을 명확하게 확인한 다음이라 태상황의 조사 명령에 쉽게 장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태상황이 왜 아바마마의 장부를 조사하려는지 몰랐기 때문에 약간 걱정이 된 회왕은 우문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우문호도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무부 장부를 조사한다고 하시지? 설마 태상황 폐하께서 아바마마께 무슨 오해라도 하시는 게 아닐까?’우문호는 회왕을 따라가 내무부 지출을 살펴보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태상황은 장부를 벌여놓고 주 재상을 불러 살펴보게 했는데, 주 재상이 한 권 한 권 넘기며 보자 안풍 친왕이 말했다. “그렇게 고생할 필요는 없네, 올해 걸 보거라.”그러자 주 재상이 올해 장부를 찾았다. 장부는 월별로 나뉘어 있고 한 달 치만도 몇 권이나 돼서 족히 반 시간이 넘게 걸려 눈가가 다 짓무를 정도였다. “이 지출에 무슨 문제가 있죠? 제가 보기엔 정상인데요. 전부 필요한 데 쓰인 지출이라.”“필요한 데 쓰인 지출이긴 하지, 그러니 하사한 부분만 골라내 보거라.”주 재상이 일일이 대조하며 내무부에서 하사한 은자 항목을 추려내 다른 공책에 베껴 썼다.각 친왕부에 하사한 은자 외에도 다른 황실 자제와 관리에게 하사한 것도 같이 베꼈는데 일 년 치 은자가 상당했으나 여러 친왕부에서 아이를 낳았으므로 하사금을 내리는 것도 당연했다.하지만 우문호는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아바마마께서 초왕부에 하사한 것을 보고는 물었다. “이렇게나 많았나?”열 몇 줄로 된 금액은 합쳐서 대략 8만 냥 정도 됐는데 그중에 곡식 종류도 있었다. 올해 계란이가 태어나 아바마마께서 한 번 하사하신 적이 있었고, 다른 건 선물로 주셨다. 우문호가 진지하게 보더니 ‘이거 아닌데, 이건 작년이고, 아니 작년에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많이 하사하셨던가? 원 선생이 말을 안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 뿐만 아니라 회왕도 놀랐
태상황이 회왕에게 물었다. “여섯째 너는?”회왕은 당황했지만 태상황의 체면을 지켜주었다. “거의 비슷하네요.”손자들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태상황이 모를리가 없기에 한숨을 푹 쉬며 인풍 친왕에게 말했다. “휘형은 어떻게 아셨어요? 이렇게 비밀리에 행해진걸, 장부도 완전무결한데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흑영한테 전당포에서 일하는 점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흑영한테 그랬다고 했다. 목여 태감이 전당포 주 고객인데 적지 않은 은자를 맡겼다고. 흑영 녀석이 그 얘기를 듣고 돌아와서 궁에 태감 나부랭이도 이렇게 돈이 많은데 자기는 찢어지게 가난하다며 날 가슴 아프게 했었지. 그래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된 거야. 목여가 그렇게 돈이 많을 리가 없거든. 그럼, 그 돈이 누구 건지 추측하기 어렵지도 않지. 게다가 명원제는 상을 내릴 때 상당수 차용증을 쓰고 가끔 은자로 주긴 해도 많지 않으니까 뭔가 꼼수를 부렸구나 싶었지.”안풍 친왕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허나 말이야, 너무 이상하게 여기지는 마. 국고의 은자를 남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탕고의 은자를 가져다 쓴 거니까. 그건 원래 황실용이고 어쨌든 내무부에서 매년 이 정도 은자를 지출하니까. 개인적인 지출을 막기 위해 솔선수범해서 절약해야만 하잖아? 명원제가 절약해서 후궁의 비빈들과 궁 안에 사람들이 다 절약하거든. 아낀 부분을 이런 명목으로 가져간 것에 불과해. 이 녀석 이렇게 많은 은자를 숨겨놨는데 내가 명원제를 속이지 그럼 누구를 속여?”다들 듣고 나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고수다, 고수 중에 상 고수다.태상황도 화는 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솔선수범해 절약한 은자로 오히려 자식들과 비빈, 궁 안의 하인들을 고생시킨 게 미안할 뿐이였다.명원제는 비록 평생을 고생했지만 돈을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보아하니 오히려 똑똑하구먼.”소요공이 호기심이 생겨서 얼른 물었다. “그럼 황제께서는 그동안 도대체 얼마나 숨겨두신 겁니까?”“몇백만 냥은 될걸. 매화장을 살 때도 자기가 일부만 내
이리 나리는 마당에서 개를 훈련하고 있다가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손뼉을 치며 밝게 맞이했다. “귀한 발걸음을 하셨군요!”우문호가 이리 나리가 개랑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했다. “개랑 놀 시간은 있는데 어째서 령이랑 외출할 시간은 없습니까?”“령이는 지금 잡니다!” 이리 나리가 우문호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하고는 앉으며 말했다. “저한테 령이랑 외출 좀 하라고 잔소리하러 오신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 있는지요?”“아바마마께서 감춰둔 은자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까?” 우문호도 애매하게 말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이리 나리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당연히 알지요!”“안다고요?” 우문호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다소 놀랐다.“흠, 의외인가요? 전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전당포와 안면이 있죠. 전당포의 주 고객은 대략 다 압니다.” 이리 나리는 자신이 전당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려주고 있는지, 사치스러운 대부호의 위엄을 남김없이 드러났다.“설마 다들 같이 짜고?” 우문호가 숨을 들이쉬었다.“한쪽은 때리고 싶고, 한쪽은 맞고 싶어 하고.. 참, 은자를 못 내는 것도 아닌데요.”우문호가 말했다. “이리 나리께서도 이미 매화장에 돈을 냈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요.”이리 나리가 가볍게 웃었다. “괜찮아요. 어쨌든 사부님 주머니에 들어갈 돈들이니까. 매화장을 백 만 냥에 팔아서 두 분 기분이 좋아지셨다면, 전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말에서 공경에도 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나리는 은자 수십만 냥으로 사부의 미소 한 번에 샀지만, 우문호에게는 평생을 가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두 분을 공경하기 위해서면 왜 직접 그분들에게 은자를 드리지 않는 겁니까? 그리고 그동안 두 분이 초라하게 지내신 듯한데 왜 경제적으로 지원을 안 했죠?”“두 분은 제 돈이 필요 없다고 하세요.”“왜?” 우문호는 이해가 안 됐다. “이리 나리의
‘이리 나리와 소요공, 평남왕이란 누가 봐도 확실한 세 명의 물주를 잡지 않고, 가난하게 지낸다는게 대체 무슨 논리지?’우문호가 말했다. “사실 아바마마께 은자가 좀 있는 것도 좋죠, 적어도 앞으로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지내실 수 있을 테니까.”이리 나리가 웃었다. “아마 그건 안 될 겁니다. 그동안 이미 절약이 뼛속까지 몸에 뱄거든요. 명원제 폐하께서 재물을 긁어모으시는 건 우문씨 집안이 언제나 유달리 궁핍한 걸 알기 때문입니다. 쌀을 뒤주에 쟁여 두지 않으면 불안한 거지요. 태자 전하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지금 태자 전하께 거금을 드리면 아마도 함부로 쓰지 못하실걸요.”“그야 당연히 함부로 못 쓰시겠죠. 자식들이 그렇게나 많으니 급할 때를 대비해 은자를 모아두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그렇지요. 급할 때 쓸 은자는 만일의 상황이 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없어요. 아바마마께서도 처음 은자를 모으실 때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이건 돈을 모으는 사람들 특유의 사고방식입니다. 까놓고 말해 구두쇠 사고방식이라고도 하지요. 구두쇠라고 손가락질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요.”우문호가 웃음을 지었다. 구두쇠 방면으로는 자신도 잠재력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우문호는 돌아와서 이 일을 원경릉에게 얘기하자 원경릉이 두리뭉실하게 답했다. “아바마마는 정말 기회를 잘 포착하신다니까.”우문호가 말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바마마께 돈이 있다니까 오히려 안심되더라. 헌데 이리 나리 말로는 아바마마께서 그 돈을 못 쓰실 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안풍 친왕 전하 쪽도 아주 이상해. 백 만 냥을 가져다 자신을 오래 따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다시 고생스러운 나날로 돌아가 산단 말이지. 이리 나리가 두 분에게 드리는 돈도 싫다고 청빈을 고집하신다는 거야. 헌데 그분들이 어디 기꺼이 청빈한 나날을 보내실 분들이셔? 당연히 아니거든, 현대 쪽에서 오픈카 몰고 명품 사던 거랑 너무 다르잖아.”원경릉이 찬찬히 따져보더니 우문호의 말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현대
그러자 손왕이 못 참고 얼른 물었다. “다섯째야, 아바마마 병환이 어떠시냐?”우문호가 말했다. “전 의술은 몰라서요. 원 선생 말로는 아마 한동안 정양하셔야 할 것 같다고 하네요.”“매화장 때문이야?” 손왕이 물었다.“모르겠습니다.”그러자 안왕이 우문호에게 따지듯 물었다. “네가 어떻게 모르느냐?! 아바마마께서는 뭐든 너한테 말씀하시는데 말이야.”“아바마마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건 모두 조정에 관한 일입니다.” 우문호는 형제들의 간절한 얼굴을 보고 사실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성지가 내려오기 전에는 말을 꺼내기가 곤란했다.안왕이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정말 모르는 거 맞느냐? 참, 이상한데. 아바마마께서 아프신 것도 이상하고. 우리가 입궐해서 병문안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시잖아.”회왕이 전에 별장에서 안풍 친왕이 만약에 황제가 퇴위하시면 이라고 하던 얘기가 기억나서 우문호를 보니 얼굴빛이 평온하게 별로 걱정하는 기색은 아니였다. 그럼, 설마….하지만 회왕은 함부로 그 얘기를 입 밖에서 꺼내지 못했다. 형제지간에도 친하고 소원한 사이가 있기 마련이라, 만약 진짜면 그것도 아바마마께서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일 테니 아들로서 당연히 지지해야 마땅했다.손왕, 위왕, 그리고 순왕 이렇게 세명은 여전히 아바마마의 옥체에 정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형제들이 열심히 상의했지만 결국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돈 문제는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되었다. 모두 이만 돌아가서 조용히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그렇게 이틀 후 아바마마께서 마침내 성지를 내려 친왕들에게 입궐하여 문병하는 것을 허락했다.친왕들이 같이 입궐해 어전에서 기다렸다.어의가 안에서 침을 놓고 휘장이 내려와 있어 안에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기에 마음이 다급해졌다.대략 차 한잔 마실 정도로 시간이 지난 후 목여 태감이 나와서 휘장을 걷고 명원제가 침대에서 몸을 살짝 일으켰는데 안색이 어둡고 눈가가 퀭했다. 친왕들은 그런 아바마마를 보고 충격을 받아 얼른 꿇
우문호는 아바마마께서 진짜 병을 앓고 계신 건 아니지만 자신들의 형제들이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영 마음이 불편해 표정도 상당히 침울해져 있었다.안왕은 원래 이상하다고 의심했으나 우문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아바마마께서 정말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며칠 내내 명원제는 움직이지 않고 조정 일을 모두 태자와 냉 재상에게 맡겼다. 나이 든 신하들이 문안을 오려 해도 윤허하지 않고 멀리서만 문안을 올리게 할 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다시 그렇게 며칠이 흘리고 태상황이 궁으로 돌아왔다. 이 일에 대해 다들 추측이 난무했는데 모두 명원제의 병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의가 명원제를 진찰해 보니 몸조리를 잘 해야 한다며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하지만 명원제는 바로 퇴위를 선포하고 태자 우문호에게 선위를 발표했다. 성지가 내리자, 조정이 온통 놀라서 들끓어 올랐다. 이런 큰 일을 내각과 상의도 조정의 회의도 거치지 않고, 중병이란 소식이 들린 이래 보름도 되지 않아 바로 퇴위와 선위를 선포하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어의도 상태가 특별히 엄중하다고 하지 않아 정양이 필요하다고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바로 퇴위의 성지를 내리다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은 전혀 명원제답지 않았다.그리고 황제가 병에 걸린 것도 공교로운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여러 군데 알아보니 황제가 안풍 친왕의 매화장에 보물이 있다고 생각해 거액을 들여 샀으나 없다는 것이 밝혀져서 천불이 올라온 나머지 쓰러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 얘기는 북방에 금세 퍼졌지만 이상하게도 안풍 친왕을 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 소문과 동시에 안풍 친왕이 음풍농월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얘기가 여럿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성의 일부 노인들은 안풍 친왕이 이렇게 악명 높은 사람인 것을 기억하고, 악명 높은 사람이 돈을 좀 속였기로 황제가 못 본척하는 거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이런 소문이 우문호 부부의 귀에도 들렸다. 원경릉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
위왕의 대답이 경성 모든곳에 전해졌다. 어떤 방식이든 결국 끝은 아쉬움만 남았다.초왕부에서도 이견이 분분해져 태자 부부가 얘기를 나눴다.“난 셋째 형이 일부러 주 아가씨가 경성에 오는 걸 막지 않았다는 의심이 든단다. 천하에 자기 뜻을 공포할 계기가 필요했던 거겠지. 정화 군주가 이전의 전신에게 시집가는 의식을 치른 것처럼 말이야.” 우문호가 말하자 원경릉이 탄식을 했다. “하지만 이로써 두 사람 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무리된 거잖아. 어쩌면 제일 나은 결말일 지도 몰라.”우문호가 말했다. “난 오히려 앞으로 충분한 변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죽지 않은 이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어.”원경릉이 웃었다. “어쩌면 자기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맞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저분들 인생이니 결정권은 저들에게 있지, 그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린 존중하면 그만이야!”“그래, 바로 그거지!” 우문호가 원경릉을 보는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우리처럼 이렇게 행운인 사람은 별로 없다니까. 우리 서로를 더 아껴주자.”그러자 원경릉이 과거를 회상하며 뿌듯해했다. “우리도 적지 않은 일을 겪었네, 다행히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그 비바람을 잘 이겨왔어.”우문호가 원경릉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 기쁨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 대관식 날도 정해졌으니, 우리도 그쪽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채비하시라고. 좀 당겨서 오시면 더 좋고.”“당신 그 일에 엄청 신경 쓰네?”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농담했다.“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난 이번 혼례야말로 당신이 제일 원한다고 생각해. 가족, 친구가 모두 당신 곁에 있는 결혼식이잖아.” 우문호는 원경릉의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감동해서 눈시울이 붉혔다. “이번 혼례는 전부터 당신에게 제일 해주고 싶었던 거야.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고 싶지 않아.”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이번 혼례를 간절히 원하는 게 나야 자기야? 난 사실….”우문호가
우문호가 반성하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마디 더 보내자면, 아바마마께서 연극을 정말 잘하시더군. 얼굴 분장한 것 빼서 봐도 정신이 몽롱해 보이고 숨도 잘 안 쉬어지시는 모습이 나도 미리 몰랐으면 아바마마께서 정말 중병에 걸리신 거라고 깜박 속을 뻔했어.”원경릉이 말했다. “그건 꾸며내신 게 아니야. 어쨌든 백만 냥이 사라졌으니, 나라도 일이 년은 가슴이 답답할 테니깐. 마침 가장 마음이 힘드실 때가 지금이잖아. 어떻게 숨이 안 차시겠어?”우문호가 동정 어린 표정으로 걱정했다. “그것도 그러네, 나라면 평생 못 잊을 거야.”원경릉이 밖을 보더니 물었다. “위왕이 청란 대가에서 고함친 뒤로 돌아오지 않으시는데 어디로 가신 걸까?”우문호가 말했다. “모르지. 그 주 아가씨인지 하는 사람만 집에 안 오면 돼. 지금 내쫓기도 뭐하고 들어오게 하는 건 더 도리도 아니고 말이야.”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우문호가 이 말을 마치자마자 녹주가 등장했다. “태자비 마마, 주 아가씨라는 분이 오셔서 위왕 전하를 찾으십니다. 문지기가 밖에서 잡아두고 있는데 쫓아낼까요?아니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명을 내려주십시오.”다들 주 아가씨 신분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기에 무작정 쫓아내기도 그랬다. 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렸다. “입이 방정이지!”원경릉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밖에서 위왕 전하를 여러 차례 막아섰는데 성공하지 못해서 조만간 찾아오겠지 싶었는데.. 잘 됐어, 들어오시라고 해, 내가 얘기할 테니까.”“당신은 마음이 약해서 걱정이야. 주 아가씨가 일편단심인 걸 봐도 넘어가면 안 돼.”우문호는 위왕이 전에 주 아가씨가 주명량과 닮았다는 말에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러자 원경릉이 대꾸했다. “마음이 약한 게 뭐 어떻다고? 위왕 전하께서 내 말을 들을 것도 아닌데. 난 그냥 주 아가씨가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쫓아온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그리고 계속 이렇게 훼방을 놓고 다니다가 정화 군주를 찾아
소요공은 얼굴을 찌푸리며 무상황을 한 번 쏘아보았다.하지만 무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물었다."요부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오?"원 할머니는 말했다."의사로서 저는 그저 의견만 드릴 수 있습니다. 아이를 지킬지 말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무상황도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형식적인 말은 그만하고, 웃어른으로서 말해보라는 것이오."그러자 원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지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너무 크고,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그녀는 후회할 것입니다."이것은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태상황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려야 하네. 만약 그들이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네. 그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이것도 어쩌면 지지하는 것이네."어른스러운 그의 말에 원 할머니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그의 마음은 참 소중했다. 어쨌든 요부인은 더 이상 황실의 사람이 아니기에, 무상황은 사람을 보내 원경릉에게 명을 전했고, 원경릉은 곧바로 그 명에 응했다.사실 무상황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약을 처방하긴 했지만, 그녀는 요부인이 훼천을 설득하여 이 아이를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말솜씨에서 훼천은 요부인에게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이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궁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요부인이 그녀에게 간절히 부탁한 것이었다."아이를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게. 아이를 지키려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아이를 포기할 것이니. 그 후에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고, 절대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네."원경릉이 훼천을 바라보았는데, 훼천은 불안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창백한 안색으로 보아, 어젯밤 밤새 격한 토론을 했고, 훼천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부인이 애절하게 부탁하는 눈빛을 보며, 원경릉은
원 할머니는 요부인의 맥을 짚으며, 몇 가지 상황을 물었다.요부인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원 할머니는 다시 맥을 짚은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무상황이 재촉하자, 그제야 원 할머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상황이 정말 좋지 않구나. 기운과 폐기운이 부족하고 허약하며, 심장도 다쳤다. 몸이 찬 편이라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정말 낳고 싶다면..."요부인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지자, 너무 슬펐다.훼천이 물었다."원 할머니, 그동안 몸조리를 잘 해왔는데 어찌 몸 상태가 이렇게 나쁠 수 있습니까?"기혈이 부족하고, 몸이 찬 편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원 할머니가 말했다. "워낙 허약하니,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몇 년 전, 지나치게 고생한 탓에 몸을 다쳤고, 그 후에 폐병에 걸려서 폐까지 상했다. 몸조리로 상황이 더 악회하진 않겠지만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무리하며 아이를 낳으면 결국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할 것이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치료받아야 할 것이다. 침대에서의 생활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홉 달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하지만 요부인의 눈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계속 누워 있으면,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아이를 지키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원 할머니는 말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황후를 찾아보았느냐?""예. 오늘 황후가 오셨습니다."요부인이 말했다."무엇이라 했느냐?"요부인은 말했다."너무 심각하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결정을 내리라 했지만, 아이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황후의 약이 나의 약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황후도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사실 의원으로서, 우리도 그저 조언만 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위
원경릉은 못내 조금 흥분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졌다.약상자에 어떤 약이 나타났든, 지금 상황에는 여전히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 약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요부인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번째 층에는 출산 중 사용할 응급 약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다 그들의 팔자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우문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어찌 고민할 때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리프팅을 해야 하네.""당신은 리프팅 안 했소."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난 괜찮소. 리프팅을 했든 안 했든, 예전보다 확실히 젊어 보이니 괜찮소."우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어쨌든, 원경릉이 좋아하면 되었다."정말 리프팅 안 했소. 다 그 약 덕분이오."원경릉이 말했다."정말이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오. 난 당신이 내가 늙었다고 싫어할 줄 알았소."원경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소? 사랑하는 사람의 흰머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일이네."우문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맞소."원경릉이 그의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아마 오늘 밤 요부인과 훼천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정말 그러했다.모두가 나가자마자, 요부인이 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훼천은 그녀 곁에 있었지만, 위로는 서투른 사람이라,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잘 흘러갔을 것이다.왔지만 떠나니, 정말 상처가 될 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이다."어르신을 찾으러 가겠네."요부인이 갑자기 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훼천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숙왕부에 가려 하니, 함께 가시게."요부인이 벌
원경릉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약을 다 처방한 후에 원경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부터 약을 드시게. 잊을 수도 있으니, 며칠 동안 자주 올 것이네. 게다가 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약을 먹는 과정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 나이에 아이를 낳든, 낙태하든, 모두 위험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당부를 마친 후, 훼천이 그녀들을 배웅했다.모두 지금은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이와 함께, 셋이 하루를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미색은 집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 뒤 눈물을 닦고 나서 원경릉에게 물었다."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그저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미색 또한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더 이상 위험에 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요부인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미색은 말을 마친 후,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며칠 동안 계속 그녀의 곁을 지킬 셈 같아 보이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원용의가 말했다."그래. 나도 올 것이다."그러자 손왕비가 덧붙였다.한편, 궁에 돌아온 원경릉은 바로 실험실로 가지 않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슬픔에 가득 찬 요부인의 얼굴만이 떠올랐다.강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저녁 무렵, 다섯째가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눈치챘다.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요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소?""알아챈 것이오?""나이가 나이인지라."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소?""그렇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원경릉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