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이 물었다. “백혈병 대상 표적 치료자는 이미 많지 않나요? 백혈병은 더 이상 극복하기 어려운 난치병이 아닌데 왜 다른 암 표적 치료제를 연구하지 않죠?”양여혜가 말했다. “알다시피 무슨 약이든 누군가가 밤낮으로 묵묵히 노력해 온 결과물이예요. 백혈병에는 쓸 수 있는 좋은 약이 확실히 있긴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일단 약을 쓰기 시작하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비용 부담이 크고, 약에 내성이 생기면 남은 방법은 골수이식밖에 없어요.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수 있으면 상당히 많은 환자에게 복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원 박사도 알다시피 최근 들어 백혈병을 앓는 환자 수가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요. 오랜 시간 배운 학문과 타고난 재능을 낭비하지 말아요.”원경릉은 가슴 속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지만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남편과 상의해 봐야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양여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서두르지 마시고. 하지만 남편분은 허락하실 거라고 믿어요. 두 분은 서로 원하는 것을 이뤄주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는 사이니까요. 그리고 누가 누구를 위해 자신의 이상이나 일을 희생하지 않으시죠!”원경릉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가슴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꿈에도 실험실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배운 것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배운 것을 쓸 데가 있는 것이 사실 원경릉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보답이었다.양여혜가 원경릉을 배웅하며 말했다. “사실 모두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누군가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가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티끌 모아 태산이 되어 결국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되거든요!”원경릉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잘 생각해 볼 게요.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 잡는걸!”원경릉이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보고 주진이 양여혜에게 물었다. “선배가 OK 할 거 같으세요?”양
우문호가 원경릉을 품에 안았다. “원 선생, 우리 꿈이 드디어 이뤄졌어!”지난번 돌아간 뒤로 두 사람은 줄곧 두 사람의 결혼식을 바라왔다.물론 북당에 돌아가면 또 한 번 혼례를 치르겠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게 여기에서 결혼식은 원경릉의 고향에서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래, 마침내 이뤄졌어!” 원경릉이 감탄하며 또 고마웠지만, 양여혜의 제안을 우문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포옹했던 팔을 풀며 물었다. “원숭이 일은 어떻게 됐어?”“아…. 아마 나랑 비슷한 수술을 받을 것 같아. 그리고 전에 그 남자아이도 뇌가 아직 죽지 않은 게 발견돼서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았어.”우문호가 놀라며 물었다. “원숭이의 대뇌를 그 아이 몸에 이식할 거라는 소리야?”“아니, 종이 달라서 리스크 수치가 너무 높아. 그런 모험은 못 하지.”우문호가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 꼬마아이의 몸에 원숭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당황스러운가.”원경릉은 용기를 한껏 끌어 올려 우문호에게 양여혜의 제안을 전했다. 그런데 오히려 얘기를 다 듣고 난 우문호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면 아마 난 보위에 오르겠지.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면 한동안 엄청나게 바빠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당신과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할 거야.”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 “아니면 내가 할 일을 새로 찾을까?”“당신은 다시 의대를 세우고 싶어 하잖아. 난 어떤 일을 하든 당신을 응원해. 본업을 잊을 당신이 아니지.”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부드럽고 그윽한 우문호의 눈매를 바라봤다. “조금 구별하자면 이렇게 되는 거야. 양여혜 선생님은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 해. 그 약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나한테 그 연구 그룹 팀장을 맡아주기를 바라. 하지만 여기 장기적으로 있을 필요는 없고 가끔 오거나 테스트 단계에 들어갔을 때 비교적 장기간 여기 있게 될 거라고 했어.”우문호가 물었다. “그 일, 하고 싶어?”원경릉이 망설이다가 역시 마음이 시키는
우문호의 지지를 얻고 나서야 원경릉은 모두에게 양여혜의 제안을 상의했고, 역시나 모두 동의했다. 삼대 거두조차 반대하지 않고 심지어 능력이 있으면 더 많은 일을 하는 게 당연하고 성별은 무관하다며 그것이 리더의 각오라고 했다.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사고 방식은 그들이 정계에 몸담은 수십 년 동안 당연한 생각으로 자리 잡아 왔다.제일 기뻐한 건 물론 원경릉의 부모와 오빠였다. 원 교수는 감격한 나머지,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지 말고 외식하지!”소요공은 외식을 좋아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좋은 술을 많이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요공은 돌아갈 때 가져갈 리스트에 술이 잔뜩 있었는데,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가져갈 생각이었다.그리고 원경릉이 현대로 돌아와 일하는 것을 소요공이 두팔 벌려 환영한 이유도 바로 자신을 대신해 물건을 사 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다음날은 웨딩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웨딩 사진은 역시 온 가족 총출동이었다. 외출 전에 밖에서는 군신이나 귀천이 없다고 태상황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는 특히 희상궁과 서일에게 하는 말로 두 사람은 밖에서도 걸핏하면 예의를 지키려고 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스튜디오 전체가 우문호 일가를 챙기기 바빴다. 우문호 가족은 웨딩 사진 뿐 아니라 아이들과 노인 사진도 찍기 때문이었다.스튜디오에는 웨딩 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다. 희상궁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사진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혼례를 치르는데 어째서 흰색을 입죠?”“대주에 가면 대주의 법을 따르는 법이다!” 주 재상이 설명해 주었다.희상궁이 웨딩드레스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여기 관습도 그 자체로 참 예쁘네요.”주 재상이 희상궁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입고 싶어? 우리도 찍을까?”희상궁이 얼굴을 붉혔다. “우리가 뭘 찍어요?! 이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건데. 우리 나이에 안 맞아요. 안 해. 남들이 비웃는 다고요.”주 재상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태상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을 하나 손짓으로 부르더니 희상궁과 주 재상을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옷을 몇 벌 고른 후에 두 사람도 사진을 찍을 거라고 하네요. 그럼 스튜디오 촬영만 하는 걸로 합시다. 야외 촬영은 피곤하니까요.”주 재상은 야외 촬영을 해도 되긴 하지만 희상궁은 안 된다. 태상황은 역시 세심한 사람이었다.희상궁이 직원의 말을 듣고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뇨, 안 찍어요, 쇤…. 전 안 찍어요.”“찍어!” 태상황이 눈을 부라렸다. “감히 명을 어길 셈인가? 응?”희상궁이 당황해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실 때 분명 그러지 않았었나? 밖에서는 군신이나 귀천을 따지지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어명을 내리실 수가 있지?’“그…. 그러면… 근데 이 옷, 저 옷도 저한테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요. 무슨 잠자리 날개도 아니고 너무 얇고 다 비치는데 제가 어떻게 입어요?” 희상궁이 얼른 말했다.직원이 웃으며 커튼을 열자, 거기는 전부 치파오로, 금사와 은사로 수놓은 옷들이 잔뜩 있어서 최고급 천은 아니지만 멋진 스타일로 없는 게 없어, 순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 주 재상까지 탄성을 질렀다. 남자용 옷을 봤기 때문이었다.주 재상이 고개를 돌려 태상황을 바라보는 눈빛에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고 적혀 있었다.태상황이 주 재상에게 눈짓했다. ‘과인은 여기까지밖에 못 도와줘.’주 재상이 너무 기뻐서 희상궁과 함께 옷을 골랐다. 희상궁은 말끝마다 ‘안 할래요. 안 할래요’ 하면서도 두 손은 바쁘게 옷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를 꺼내 몸에 대보았다. “이거…. 사실 너무 부끄러워요. 이 나이가 돼 가지고 이게 뭐 하는건지...”희상궁이 고른 옷은 치파오였다. 어두운 빨간색에 단순한 스타일인데 간결하고 대범했다. 희상궁은 배시시 웃으며 주 재상에게 말했다. “예뻐요?”주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마저 잊은 채 감탄했다. “예뻐, 예뻐!”희상궁도 살짝 기쁜 눈치였다. “그럼…. 그럼 한 번 입어볼까요, 어머, 여기 트임이
우문호가 약간 샘이 나서 비꼬았다. “이게 도대체 누구 혼례야?”‘저쪽은 무슨 야시장 연 것처럼 북적북적하고, 이쪽은 노점에서 혼자 파리 날리고 있는 느낌이 나는데 비교돼도 이거 너무 비교되는 거 아니냐고!’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늘 사랑을 과시해 왔잖아. 저분들 사랑 자랑하게 내버려두자.”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말했다. “우리는 원래 서로 은애하는 사이라, 과시랑은 거리가 멀지. 우리가 빨리 다해서 저분들이 우리 풍류를 따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겠어.”메이크업하는 사람이 이 얘기를 듣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두 분 연예인 이시죠? 어떤 작품 찍으셨어요? 사극 전문? 두 분 얘기를 들어보니 문어체가 아주 멋져요.”원경릉이 풉하고 웃으며, “맞아요. 저흰 그냥 조연이지만 확실하게 연기하죠. 그리고 아직 그 사극 드라마를 계속 찍고 있어요.”그러자 메이크업하는 사람이 연거푸 칭찬했다. “두 분 연기가 좋으세요. 비주얼도 되시니까 분명 주연은 따실 거예요. 힘내세요!”“감사합니다!”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메이크업을 마치고 아이들도 메이크업하고 나왔다. 깔끔한 흰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한쪽에 행커치프가 꽂은 채 일제히 두 사람이 앞에 서 “아빠, 엄마!” 하고 불렀다.고개를 돌릴 필요 없이 거울에 비친 모습은 똘망똘망하고 잘 생겼다. 원경릉이 자세히 보기도 전에 직원들이 아이들을 둘러싸서 감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올 때도 좋아했는데 지금 꼬마 정장을 입고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빗어 넘긴 모습은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너도나도 휴대폰을 꺼내 영상 찍기에 바빴다.그리고 저쪽에서 희상궁과 원경릉 할머니가 치파오를 입고 나왔다. 주 재상과 태상황도 차이나 스타일 정장으로 갈아입고 마주하자, 주 재상과 희상궁의 눈에는 오직 상대방만이 보이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눈가엔 형용할 수 없는 짙은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태상황은 약간 우쭐했다. “주디, 과인의 이 옷 어때?”원경릉 할머니가 웃음을 지었다. “멋져요. 아
눈썹을 다 그렸는데도 태상황은 여전히 할머니 뒤에서 씩씩거리며 뺨을 부풀리고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도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장난친 거예요. 전의감을 나 몰라라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요. 제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곳인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그런데 방금 그렇게나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태상황이 말했다.“농담 알아야 몰라요? 당신은 유머 감각이 부족해요. 이 점은 정말 소요공만 못하다니까.”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됐어요. 앉으세요. 메이크업해 드릴 테니까. 조금 있다가 우리 가족 사진 찍어야 해요.”태상황이 앉으며 궁시렁댔다. “유머가 없는 게 뭐? 유머가 뭐 밥 먹여줘? 과인은 그것보다 더 멋진 성숙하고 침착한 사람이야.”‘감히 나랑 십팔매를 비교해? 십팔매가 뭐라고?’ 태상황은 속으로 짜증을 내며 거울로 십팔매를 흘끔 봤다. 십팔매는 막 치파오를 들고 연구 중이였는데, 보기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떻게 입으면 그렇게나 아름다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요공은 마음이 동했다. ‘남자용은 없나?’소요공은 이 세계에서는 염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직접 물어봤다. “내가 입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까?”이 말에 모든 직원이 일제히 놀라서 얼음이 되었다.원 교수가 얼른 다가갔다. “농담이에요, 농담.”직원들이 웃으며, “아, 어르신 정말 유머러스하세요!”소요공은 약간 떨떠름했지만 원 교수가 더 이상 묻지 못하게 하고 소요공을 끌고 가서 차이나 스타일 정장으로 갈아입혔다.태상황의 의문스럽다는 듯 생각했다. ‘이게 유머라고? 유머라는 게 멍청하게 구는 건가?’마침내 전부 옷을 갈아입었고 메이크업도 다 마쳤다. 모두가 가족사진을 찍기만 기다리고 있어서 일단사진부터 찍고 원경릉의 웨딩 사진을 찍기로 했다.가족사진을 찍으려니 자리가 비좁아 배경판 앞에 전부 빽빽하게 서야 했다. 할머니와 희상궁은 삼대 거두 곁에 앉고 원 교수 부부가 그 뒤 중간 위치에 서고, 우문호 부부와 원경주가 그들 좌우에 섰다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바로 야외 촬영에 들어갔다.스튜디오 촬영은 힘들었지만, 다행히 나온 결과물에 다들 만족했다.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건 희상궁과 주재상도 함께 웨딩 촬영을 한 것으로 비록 간단한 스튜디오 촬영이었지만 매우 따스하고 애정이 넘쳤다.웨딩 촬영을 마친 후 결혼식이 진행됐다.소규모 야외 결혼으로 농장을 하나 빌려 웨딩업체에서 사전에 준비를 마친 뒤 소수의 사람을 초대했는데 모두 가까운 동료와 친구들이었다.원 교수 병원 동료도 몇 명 왔었는데, 그들은 원 교수의 가정 상황을 잘 알아서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안풍 친왕 부부가 건종 태자와 휘종제를 모시고 왔고, 양여혜, 주진 등도 결혼식에 참석했다.농장을 상당히 디테일하고 우아하게 꾸며 놓았고, 심지어는 마당에 그네가 있어 아이들도 함께결혼식을 즐길 수 있었다.온 마당에 길고 붉은 띠를 드리운 풍선이 걸려있고, 울타리 벽에도 두 사람의 웨딩 사진이 걸려있었다.타고난 외모의 우문호는 흰색 양복을 입고, 원경릉은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청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보는 사람의 마음이 흔들렸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둘은 한층 더 잘 어울렸다. 소요공이 한마디 했다. “태자비 마마께서 많이 아름다워지시고 예전이랑 뭔가 달라졌는데 자세히 보면 또 어디가 달라졌는지 구분이 안 돼요.”“봤으면 됐으니 이제 얘기 그만해!” 태상황이 흥분해서 두 사람이 발언대 아래로 서서히 행진해 다가서는 것을 보고 잠시 후면 신부 측 가장이 올라가서 얘기할 것을 알았다. 식순을 경주가 미리 태상황 일행에게 알려주었다.원 교수가 발언대에 올라가 사위를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준비해 온 원고가 한 자도 보이지 않아, 목이 멘 채 겨우 한마디 했다. “우리 딸에게 잘해줘야 하네. 평생 우리 딸 손을 놓으면 안 된다.”우문호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네! 무조건 평생 곁에 있을 겁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언제나요!”원 교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원경릉 엄마가 강단 위에 올라가 말했다. 원경릉의 엄마
피로연도 이 농장에서 함께 진행되었다. 술과 요리가 풍성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풍미가 좋고, 장황하고 거추장스러운 건배 예식 없이 신랑 신부가 아이들과 와서 건배하고 각자 자리에 앉아서 먹는 방식이였다. 밥을 먹고 손님들을 환송한 후 가족들이 남자, 신랑 신부는 일일이 어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휘종제에게, 건종 태자에게. 두 노인도 원경릉을 상당히 좋아해서 깜짝 놀랄 만큼 두터운 금일봉을 하사했다.두 사람에게 인사를 마치고 원경릉은 태상황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고개를 들어 붉어진 눈으로 태상황이 무릎 위에 가지런한 두 손을 꽉 쥐었다. “황조부, 절 항상 사랑하고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황조부께서 안 계셨으면 그동안 저와 다섯째는 이렇게 편하게 지내지 못했을 거예요.”태상황도 입술이 떨리며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 “바보 녀석, 네가 아니었으면 과인은 살아있지도 못했어.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앞으로 잘하면 돼.”다들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이 맺혔다. 원씨 집안 사람들은 그동안 계속 태상황이 경릉이를 돌봐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말 정말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원경주는 가슴이 먹먹해서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어르신,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감격과 경외심을 조금이나마 표현하는 의미로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저도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그래, 좋아, 술 가져와. 과인이 경주와 한잔해야겠어!” 태상황이 바로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주진이 태상황에게 잔을 가져다주었다.태상황이 감동해서 말했다. “자, 자네가 할아버지라고 했으니 먼저 과인이 한 잔 비우지. 경주, 이리 와. 할아버지가 먼저 한 잔 비울 테니까!”원경주가 놀랐다. ‘어째 말씀이 굉장히 쑥스러운데?’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겠지하고 따라서 마셨다.태상황이 잔을 비우고 옆을 보며 원경릉 할머니에게 활짝 웃으며, “경주가 뜻밖에도 과인을 할아버지라고 하는군, 주디, 우습지 않아?”할머니가 미간을 찡그리며,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