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엄청난 피로에 피곤이 누적돼서 탕을 조금 마신 후 바로 잠에 들었다. 우문호는 원경릉과 딸의 곁을 지켰고, 할머니와 기라는 방 한 쪽에 배냇 저고리를 개두었다. 배냇 저고리 대부분은 요 부인이 직접 바느질한 것으로 면까지 세세하게 신경쓴 데다가 대부분 연두나 연분홍 위주였으며, 긴 겉옷은 원색으로 아름답게 갖췄다. 지금 아이가 입고 있는 건 원색의 긴 옷으로 밖은 두꺼운 포대기로 감싼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잠시 후 녹주가 들어와 태상황께서 오셨다고 알렸다.녹주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순간 당황했다. ‘어르신이 오셨다고? 아직 출산 소식도 안 알렸는데, 마음이 서로 통해 원 선생이 오늘 출산할 걸 아셨나? 밤중에 어떻게 오신 거지?’우문호는 할머니를 주무시게 하고 기라와 녹주에게 원경릉을, 유모에게는 아기의 곁을 지키게 하고 얼른 태상황을 맞이하러 갔다.태상황과 희상궁도 같이 왔는데 우문호가 나가기 전에 희상궁이 먼저 들어왔다. 방금 밖에 있을 때 탕양이 태자비가 아가 군주를 낳았다고 해서, 희상궁은 도무지 기다리지 못하고 재빨리 아이를 보러 온 것이였다.태상황도 아이를 보고 싶었다. 오직 아이를 보겠다는 이유 하나로 왔으므로 우문호가 나와서 인사할 때 태상황은 “과인을 애한테 데리고 가.”하고 바로 명했다.아이는 아직 나올 수 없었다. 특히 날이 꽁꽁 얼어 붙게 추운 관계로 우문호는 절대로 밖에 데리고 나올 리 없음은 물론이고 태상황도 데리고 나오는데 동의하지 않았다.그래서 태상황은 소월각 안으로 들어가되 침실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상관없었다.우문호가 태상황을 부축해 소월각 접객실로 모시고 가서 아이를 안고 나왔다. 원경릉은 자고 있었으나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우문호가 안아들자 잠이 깼다.“왜? 우유 먹어?” 원경릉이 작게 물었다.“시끄러워서 깼어?” 우문호가 놀라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자도 돼. 어르신이 오셔서 아이를 한 번 보여드리려고.”원경릉이 놀라서 이불을 발로 차며 물었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신거야?
“응, 얼른 가 봐. 애기 보여 드리고 태상황 폐하 못 가시게 해. 초왕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고. 이렇게 추운 날 왔다갔다 하시다가 혹시라도 아프시게 되면 큰 일이니까. 잘 지켜봤다가 기침하시면 나한테 바로 알려줘. 약 지어 드리게.” 원경릉이 신신당부했다.“알았어!” 우문호는 얼른 아기를 안고 태상황에게 갔다. 여리고 부드러운 아기를 가슴에 안은 태상황이 포대기를 살짝 내리자 반듯한 얼굴이 드러났다. 검게 빛나는 눈동자에 촛불이 비치고, 눈동자를 또로록 굴리니 마치 눈동자에 불꽃을 심어놓은 듯 반짝반짝 빛나 남다른 총기가 있어 보였다.태상황이 이를 보고는 감탄을 하며 말했다. “이 녀석, 만 한달이 됐다고 해도 믿겠어. 어떻게 막 태어난 애 같지가 않아? 예정일을 지나서 엄마 뱃속에서 안 나오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던가?”희상궁도 다가와서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말씀이 맞네요. 이목구비가 또렷한게 정말 한 달 된 아이 같아요. 너무 예쁘네요. 태자비 마마를 많이 닮지는 않아 보이고, 고상한 기품이 태자 전하같습니다. 하지만 또 상당 부분은 만두 오빠들을 닮기도 헀어요.”태상황이 아이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보고 또 봐도 눈을 떼지 못했다.“황조부, 이렇게 오래 안고 계셨으니 힘드실 텐데요. 여긴 온돌도 없어서 추우니 사람을 시켜 방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어서 가서 쉬세요. 원 선생이 보기라도 하면 몸 관리 잘 안 하신다고 한 마디 할 겁니다.” 우문호가 말했다.태상황은 아이를 보내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문호에게 넘겨주고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우문호는 원래 태상황에게 먼저 주무시라고 권하려던 참이였는데, 앉으라는 명에 화로를 피우고 무릎담요를 드린 뒤 뜨거운 차를 내왔다. “혹시 하실 말씀은 무엇인지요?”태상황은 우문호의 눈빛이 상당히 정중해진 것을 보고는 얘기했다. “지금 북당의 광산은 전부 조정이 소유하고 있으나 과인에게 사적인 금광이 하나 있다. 과인 혼자만의 것으로 이 금광은
태상황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네 아이들이 분봉을 받은 도시는 모두 척박한 땅으로, 앞으로 그곳은 우리 북당의 방패막이가 되어 북막의 침공을 막을 것이다. 근데 그런 큰 일을 할 사람 뒤에 도와줄 자금이 없어야 쓰나? 이 금광으로 조붕 군주의 혼수를 삼는다고 했지만 형제자매 마음이 다 똑같지. 북당을 지킬 오빠가 돈이 필요한데 동생이 나몰라라 손 놓고 있겠어? 아들들 입장에선 아버지의 도움을 마냥 바라고 있는 거보다야 낫지.”우문호가 이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싶었다. 초왕부가 가난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부유한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크면 각자 봉토로 가게 될 텐데 애들 봉토가 구석지고 척박한 것도 사실이라 고생할 게 불 보듯 뻔하니 집에 광산이 있으면 앞으로도 이렇게 궁상스럽게 살지는 않아도 될 게 분명했다.그렇게 광산 건은 일단락 되었다.우문호는 태상황을 눕혀드리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원경릉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조부께서 또 기침은 안 하셔?”우문호가 옷을 입은 채로 원경릉 곁에 누워서 답했다. “기침은 안 하셨어. 말씀하시는데 기력도 짱짱하시고, 우리 막내 이름이랑 봉호도 붙여 주셨어.”“이렇게 빨리?” 고작 몇 시진 전에 낳았는데 벌써 이름과 봉호라니? 막 아무렇게나 붙이신 건가?“아마 미리 준비해두셨던 것 같아. 아들을 낳았어도 이름을 붙여주셨을걸.”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뭐라고 지으셨는데?”“우문택란이라고 불의 운명을 누르는 거라고 하셨어. 봉호는 조붕 군주. 어때?” “택란?” 원경릉이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다. 택란이란 한약재가 있거든. 봉호야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황조부께서 좋다고 하시면 좋은 거지.”우문호는 아명 복덩이가 부정당했다는 사실에 약간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이름이 생겼으니우리 막내한테 아명을 붙여주면 안 되는 거겠지?”“자기가 아빤데, 자기가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거지, 복덩이든 똥덩이든 안 될
군주 아명을 두고 토론이 계속되었다. 탁자 위엔 과일과 약과 등 간식이 올라가 있었다. 손왕은 “탁자 위에 간식을 먹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며 좋아했다.고작 아명 하나를 가지고 장장 2시간을 열띠게 토론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우문호는 완전 지쳐버려 이리 나리한테 제안했다. “이리 나리도 하나 지어 보세요.”이리 나리는 마침 삶은 계란을 까먹고 있던 참으로 우문호의 질문에 그냥 생각하는대로 말했다. “계란은 어때?”“무성의해, 너무 성의 없어!” 다들 난리였다. 하지만 우문호가 들어보니 괜찮은 게, 계란, 삶은 계란, 작은 계란, 작은 사람, 작은 계란형 얼굴, 삶은 계란처럼 부드러운 속살! 딱이네 딱이야!우문호가 벌떡 일어나 흥분해하며 말했다. “계란이야!”이렇게 태어나서 하루도 안된 꼬마 봉황은 봉호, 이름, 아명 셋 다 갖추게 되었다.설날 태어난 꼬마 봉황은 우문택란이란 이름에 조붕 군주로 봉해질 것이며 아명은 계란이다.정해지자 마자 우문호는 바로 입궁해서 기쁜 소식을 알렸다.명원제는 태자비가 딸을 낳았다는 말에 손녀가 하나 더 생긴 게 기쁘고 특히 아들이 완전 넋을 잃고 입이 귀에 걸린 것을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바보 아들이 정말 복도 많지. 아들을 낳고 싶으면 아들을 낳고, 딸을 갖고 싶으면 딸을 낳으니 말이다.태자가 아들 딸을 다 가진 것은 조정엔 큰 경사로 명원제도 목여 태감을 시켜 선물 명단을 만들게 했다. 그는 자신의 손녀에게 내릴 상을 상의한다는 명목으로 직접 황귀비가 있는 장문전을 찾았다.황귀비가 기쁜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명원제와 사이가 껄끄러운 것도 잊고 같이 앉아 선물을 상의했다.전에 다섯째를 홀대한 걸 미안하게 생각해 명원제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다섯째의 체면을 살리게 상당히 융숭한 상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황귀비는 전에 명원제가 태자비에게 남주(남쪽 바다에서만 나는 귀한 진주)를 하사한 것을 기억하고 얘기했다. “신첩이 기억하기로는 작년에 남주가
원경릉은 만두에게 외할머니집에 가서 여동생이 태어난 소식을 전해 같이 기뻐하자고 했다.만두는 그 말을 듣고 좋아했는데 외할머니 집에 경사를 전하면 온 집안 사람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기뻤기 떄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딸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이제 꿈이 이루어졌다고 무척이나 좋아할 것이다. 주진은 컴퓨터에 이미 모든 데이터 입력을 마치고 결과를 계산해 냈다며 시간, 날짜, 방위 전부 도출했지만, 외재적인 요소의 영향이 없어진 후에야 경호가 정확한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만두를 통해 원경릉에게 전했다.주진은 만두에게 엄마 머리의 발광점을 잘 지켜보다가 곧 꺼질 거 같을 때는 반드시 바로 자신에게 알리라고 했지만 만두는 돌아가서도 엄마에게 머리의 발광점에 대한 얘기 하지 않고 경호가 2~3개월은 지나야 운행할 수 있을 거라고만 전했다. 이건 원경릉에게 있어 하늘만큼 땅만큼 좋은 소식이었다.경호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그리워만 했다. 마침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어?원숭이 일은 경호가 뚫리면 직접 돌아가서 정확하게 확인하고 홍엽에게 애기할 생각이었다.시공간을 뛰어넘어 북당으로 온 뒤로 원경릉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을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 눈 앞으로 다가와 북당에 시집 온 것이 마치 다른 도시로 시집간 듯한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원경릉은 3개월 정도 더 기다리면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다고 짐작했다. 그때는 여섯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란이는 무척이나 차분한 것이 원경릉 뱃속에 있을 때와 완전 딴판이었는데, 불이 난 일은 계란이와 조금도 관계가 없었을까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산후조리 내내 계란이를 지켜봤지만 초능력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보통의 신생아와 다르다할 차별점이 없는 것이 차리리 잘됐다 싶었다. 어쨌든 다섯 오빠들이 여동생을 귀여워하며 예뻐할 것이라 조금도 서운하게 할 일이 없을 것이다.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우리 계란이가 큰 증조할아버지한테 배신을 당했다고?기화는 지극히 순수한 눈빛으로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우문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기화는 순간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생겨 우문호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사실 견역.... 그러니까 안풍친왕 전하는 본질적으로 늙은 여우 입니다. 그 점은 두 분다 알고 계시죠? 안풍친왕의 말은 1할만 믿어야 해요, 물론 1할도 안 믿는 게 최고지만요.”우문호가 조용히 이를 갈며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내 딸을 제자로 삼겠다고 하는데, 뭘 가르칠 수 있는가?”기화가 다소 의혹의 눈길로, “제가 못 가르칠 게 뭐죠? 전 뭐든 다 할 수 있는데요.”기화는 자세를 단정하게 고쳐 앉더니 엄숙한 태로도 답했다. “태자 전하, 저를 그저 전문성 없는 인간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이래봬도 수많은 일에 종사해 와서 경찰, 운전기사, 마술사, 도박꾼, 심부름꾼, 판매원, 보표 등 각종 분야 각종 업계를 두루 누비고 다녔습니다. 옅든 깊든 다 관여해 봤고 전에 사업도 했었는데.... 그런데 좌판도 사업은 사업이죠? 제자가 뭘 배우고 싶든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생이 정직해서 안풍친왕 전하처럼 그렇게 뒤에서 인신매매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지요. 이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이게 무슨 소리지?’ 우문호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사실 기화와의 말싸움에 성공할리는 없다. 기화가 북당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싸우면 배은망덕한 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운다고 해도 이길 승산이 없는 게, 정말 기화가 계란이를 안고 가는 날엔 계란이가 놀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기 때문이다. 우문호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일을 아내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상의한 뒤에 확실하게 답하도록 하지.”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비 마마 의견을 존중해야죠. 어서 가서 물어보세요. 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우문호는 탕양에게 원경릉을 부르라고 하고 바로 소월각으로 갔다.원경릉도
기화가 우문호에게 얘기했다. “아내 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에너지가 있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물질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걸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물질을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불 같은 걸 말이죠. 우리는 불을 볼 수 있지만 많은 물질이 불꽃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공기 같은 것도 안에 연소가 가능한 기체 즉 산소나 수소 같은 게 있거든요. 공기 중에서 그 기체들을 뽑아내기만 하면 불을 붙일 수 있어요. 계란이는 그런 불씨를 구별해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어요. 불씨에 재빨리 불을 붙여 기체를 연소시킬 수 있죠. 그래서 불씨를 제거한 거예요. 그럼 계란이는 기체를 제어하게 되도 쉽게 불을 붙여 커다란 화재를 일으킬 리는 없게 되죠. 계란이가 자라서 마음이 성숙해지면 이 능력은 다시 돌려줄 겁니다.”우문호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당황한 채 물었다. “무슨 뜻이지? 계란....이가 공기 중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그게 뭐가 이상한데요? 우주에 에너지 물질이 이렇게 많은데 바람, 전기, 우뢰 등등등을 제어하는 사람도 있다고요.”“계란이는 왜 할 수 있지? 나는 제어 못 하는데?” 우문호가 묻자 기화가 우문호에게 말했다. “옆에 잔을 들어보세요.”우문호는 옆에 잔을 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들어올렸다.기화가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설명했다. “보세요, 태자 전하는 컵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잖습니까? 전하의 대뇌가 구별해 낼 수 있는 에너지예요. 전하께서 어떤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건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가능하죠. 예를 들어 무공을 수련하면 담을 뛰어 넘고 솜이나 낙엽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죠. 전하의 모든 행위는 전부 전하의 대뇌가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대뇌의 발육 정도에 달려 있는 거죠.”우문호는 기화를 한참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자네 말을
기화는 태자 부부에게 아이를 안으라고 했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제 이 아이가 세살이 될 때부터 매년 한 달씩 와서 성년이 될때까지 제가 배운 걸 전부 가르쳐 주도록 하죠.”우문호가 딸을 안고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계란이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낼 수 있는 건가?”기화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을 텐데요, 불꽃숭이는 쉽게 연소하는 물질을 완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의식에 의존해 불을 낼 수 없습니다. 만약 불꽃숭이 손에 부싯돌을 쥐고 있거나 초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원하면 초왕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지요.”기화는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태자비 마마 어딘가에서 곧 다시 뵙겠습니다.”기화는 말을 마치고는 바로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어딘가는 뭐가 어딘가야? 3년 후에 오는 거잖아? 3년 후에 여기서 보자면 되는 거 아냐? 웬 신비주의 컨셉이야!”하지만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주진이 한 말에 따르면 어쩌면 그날이 멀지 않았다. 원경릉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호가 열릴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어쩌면 이건 뇌 줄기세포 괴사의 조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원경릉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가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원경릉은 양여혜를 찾아가 시공간의 왜곡을 계속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시공간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면 경호가 제대로 작동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약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먼저 가서 원경릉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양여혜는 원경릉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위험계수는 경호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경호가 아니라 전체 공간으로 공간과 공간의 연결에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전에 원경릉 일행이 갔을 때 다른 공간에 끌려들어갈 위험이 있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양여혜 자력으로 억지로 끌고 올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도 시공간이 왜곡된 상황에서 사람을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