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원씨 집안에서 일찌감치 산파를 구해 며칠을 초왕부에 가서 살게 했다. 그런데 산파가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잔소리를 해대니 사식이는 귀찮아져 산파더러 일단 돌아가라고 하고 출산이 임박하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태자비가 있으니 사소한 문제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바로 낳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원씨 집안에 알리자마자 산파가 달려왔고 원씨 집안 사람과 원용의도 앞다투어 도착했다. 원노부인은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다.산파는 태자비가 회임했다는 말을 듣고 산실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는데, 검사했을 때 사식이의 태아는 안정적이였고 위치도 문제 없었고, 사식이는 무공을 했던 사람이기에 아이도 문제없이 나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원씨 집안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서일은 관아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열이가 와서 사식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다리가 부러져라 미친듯이 달려 초왕부 문 앞에 도착해서야 퍼뜩 자기가 왜 말을 타고 오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모두가 정신 없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바로 대문 앞까지 바로 달려갔으나 문 앞에서 막으며 사식이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했다. 속이 타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직 안 낳았으니 들어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마구 소리쳤다.서일이 사식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로 원 부인이 나서서 진정시켰다. “조급해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게. 조금만 있으면 곧 나올 거야. 사식이는 몸이 좋잖냐.”“장모님, 들어가서 한 번만 보면 안 될까요? 딱 한 번만이요!” 서일이 애처롭게 애원했다.원경릉도 따라서 애원했다. “저도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사식이도 서일이 있어야지 안심 할 수있을 거예요.”원 부인은 태자비까지 나서서 애원하고, 자신의 사위 이마가 땀으로 흥건한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뀐 듯 말했다. “좋아, 들어가봐, 하지만 너무 오래 있지는 말.... 아니 이 사람들 어디 갔어
사식이가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못 참고 소리를 마구 지르자, 서일은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찢어질 듯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신 입으로 중얼거렸다. 원경릉이 자세히 들어보니 제발 도와달라고 신께 빌고 있었다.원경릉은 서일의 모습이 웃겼지만 비웃지 않고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요, 엄마는 강한 법이니까. 잘 버텨낼 거예요.”그러자 서일의 눈가가 붉어졌다. “앞으로 애 다시는 안 낳게 할겁니다. 다시는 안 낳을 거예요. 태자 전하는 진짜 악당이에요. 태자비 마마께서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게 하시다니, 정말 너무 비참해요.”뭔가 이 말은 좀 아닌 것 같지만 서일스러웠다.서일은 바닥에 털썩 앉아 두 손으로 떨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앞으로 사식이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절 때리든 욕하든 가만히 맞고 있을 거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서 기쁘게 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아무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전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으니까 사식이한테는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사식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식이는 강한 여자예요. 다쳐서 제가 상처를 치료할 때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아프면 지금 이런 비명을 지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라도 빕니다.. 사식이는 무사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사식이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자 서일이 펄쩍 뛰어오르며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가 소리쳤다. “법도가 어쩌고 난 몰라. 같이 있을 거야!”서일의 위세는 잠시를 못가고 곧 바로 원 부인과 원씨 집안 다른 여자들에게 떠밀려 비틀대다가 바깥에 고꾸라졌고 그렇게 문은 다시 닫혔다.원경릉은 서일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영 아닌 것 같아 물었다. “상황이 어때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원용의가 안에서 답했다. “들어올 필요 없어요, 원 언니. 사람은 충분하고 곧 나을 것 같아요.”원경릉이 말했다. “그래, 난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안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깨끗하게 닦은 후 산실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서일이 마침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일은 마치 안개 속을 거닐 듯 허우적대며 애는 볼 생각도 못 하고 사식이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서일이 사식이를 끌어안더니 사식이의 피로한 얼굴을 보자 안쓰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목이 메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저 서글픈 목소리로 ‘사식아’ 라고 부르기만 했다. 사식이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있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그제야 기운이 조금 되살아난 듯 했다. 방 안 사람들도 정신이 없어 아무도 아이를 안고 와서 사식이에게 보여주지 않아 사식이는 자기가 돼지 새끼를 낳았는지 원숭이 새끼를 낳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게다가 서일이 들어와 자신을 끌어안고 우니, 사식이는 그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원경릉도 들어와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식아, 어때?”사식이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쉰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뭘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일이 제 아들이 된 것 같네요.”서일이 얼른 일어나 눈물을 닦고 사식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책임질 수 있어. 내가 당신 모......”서일은 그제서야 자신의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뒤를 돌아보니 원용의가 벌써 아이를 안고 와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제부, 사식이가 제부를 위해 금지옥엽을 낳아줬네!”서일은 사식이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를 가만히 쳐다 보았다. 비록 지금 서일 마음에는 사식이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득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보긴 봐야 했다. 주름이 쪼글쪼글한 얼굴에 콧잔등에는 누르스름한 얼룩같은 게 있는 못생긴 딸을 말이다. 사식이가 임신했을 때 태자가 딸을 좋아해서 서일도 막연하게 딸을 나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소원대로 딸을 얻었고 그래서 기쁘긴 기쁘지만 솔직히 가슴 아픈 게 더 컸다. 애는 한 번 쓱 보고 다시 사식이 곁으로 가고 싶었다. 원경릉이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예뻐, 크면 사식이처럼
서일의 이름 후보를 듣더니, 원경릉은 차라리 자신의 복덩이의 이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일이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온 초왕부에 퍼지며 초왕부 사람들이 전부 와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원 부인은 이전에 준비해 온 현금 봉투 한 무더기를 탁자위에 쏟아 놓고 누가 오든지 전부 동일하게 하나씩 나눠주었다.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십황자를 데리고 와서 현금 봉투를 받았는데 십황자가 봉투를 쥐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원래 여동생이 생길 거였는데.”그러자 만두가 주먹을 휘두르며 무섭게 말했다. “또 어리숙한 척 했다간, 내가 가만 두나 봐!”찰떡이도 못 참고 한마디 보탰다. “딸을 낳으셨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데, 울긴 왜 울어? 예의 없기는 정말. 나중에 탕대인한테 다 이를 거야. 찰싹 때려주라고 해야지!”탕양은 지금 십황자를 지도하는 전권을 책임지고 있는데, 십황자는 냉정언 얘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탕양이 기초부터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탕양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 십황자가 황자의 신분인 것을 상관하지 않고,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굴면 무조건 엄히 벌해서 십황자는 탕대인이란 세글자만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울음소리가 뚝 그치자 세 조카들이 십황자를 초왕부쪽 작은 마당으로 끌고 갔다.우문호도 이부 관아에서 서둘러 탕양과 앞다퉈 돌어왔다. 우문호는 축하 인사를 하고 홍바오를 집은 뒤 한없이 부러워했다. “서일 이 바보 같은 녀석,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다더니 정말로 천금처럼 귀한 딸을 얻었구먼.”“분명히 원하는대로 되실 거예요. 태자 오빠!” 원용의가 이제는 우문호를 무서워하지 않고 웃으며 앞으로 나와 축복해 주었다.“고마워. 만약 진짜 그렇게 되면 반드시 너한테 엄청난 선물을 주고 우리 조카에겐 금 젓가락 한 쌍을 선물하도록 하지!” 우문호가 즐겁게 말했다.서일이 딸을 얻은 것에 우문호는 부럽기도 하고 웬지 모르게 질투하는 마음도 들었다. ‘서일 이 녀석이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다니.. 서일이 어떻게 장인
사식이와 서일이 소원대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온 경성에 날개 단 듯 퍼져서 다음날에도 여러 왕비들이 축하해주러 초왕부로 찾아왔다.사식이와 서일도 초왕부 사람으로 이번 경사는 물론 초왕부의 경사지만 왕비들은 축의금 대신 각자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가져왔다.미색은 특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사식이와 자신이 예정일이 비슷해서 사식이가 출산했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도 바로 닥칠 일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색은 사식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를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여자애가 있을 수가 있어.’ 하지만 입으론 칭찬을 마구 해댔다. “너무 예쁘다. 정말 서일을 쏙 빼닮았네.”서일은 어떤 의미로 보면 잘생긴 축에 끼지만 앞니 두 개가 빠져서 결국 못생긴 여자로 모두의 인상에 박혀있었다.그래서 미색이 서일을 닮았다고 하자 다들 속으로 짚이는 게 있어 살짝 수긍했다.이 말이 사식이에게는 약간의 상처가 됐다. 사실 막 낳은 뒤에 처음 아이를 봤을 땐 예뻤으나 자세히 몇 번 들여다보니 확실히 좀 못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부인은 식견이 있어서 달리 표현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다 이렇게 못 생겼어. 처음에 황태손들도 막 태어났을 때 이랬잖아? 하지만 아이를 못생겼다고 하지 않는 건, 생후 한 달을 꽉 채운 뒤에 눈매와 이마, 볼에 살집이 생기면서 예뻐지기 때문이야.”그러자 다들 너도나도 나서서 요 부인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사식이를 위로했다.사식이도 황태손이 태어나던 때를 떠올렸는데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분명 지금처럼 잘 생기지도 않아서 한 달을 꽉 채운 뒤부터 갈수록 잘 생겨지기는 했다.사실 사식이의 아가가 진짜 못생긴 건 아니었다. 신생아라 코에 황반이 있고 얼굴이 빨간 게 마치 막 탈피한 뒤의 피부 같았으며 하얗게 백태가 낀 건도 아직 씻어내지 못했을 뿐 천천히 다 떨어져 나간다.만두와 형제들이 보고 싶다고 찾아와도, 애들은 들어오는 거 아니라고 기 상궁이 안 들여보내줘서 아가를 안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 이름 지어달라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 수준이 서일이랑 별 차이 없거든.”“근데 태자 전하께서 지금은 위태부와 학문에 정진하고 계시잖아요.” 사식이는 태자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이라 잠시 후 다시 원경릉에게 물었다. “아니면, 혹시 원 언니가 지어주는 건요?”원경릉이 말했다. “이름을 짓는 건 말야, 상당히 깊은 조예가 필요해. 아이의 사주팔자를 보고 거기에 오행을 대입하더라고. 무슨 금톡수화도 같은 거 있잖아. 내 생각에는 사식이 할머니께 지어달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친정에서 이름을 붙여주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 위태부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하자.” 손왕비가 말을 보탰다. “위태부 속도로는 아마 일 년이 훨씬 넘어야 하나 나올 걸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서일에게 우선 아명 먼저 지어달라고 하면 되지.” 원경릉이 말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어제 무슨 국수가 어쩌고 교자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결국 뭘로 정해졌을까?사식이도 웃으며 말했다. “아명을 붙이기는 했어요. 사탕이라고...”“사탕? 진짜 듣기 좋은데!” 원경릉은 확 마음에 들었다. 다들 사탕이란 이름 진짜 잘 지었다며 칭찬했다. “네가 지은 거야 아니면 서일이 지은 거야?”“서일이 지은 거예요. 어제 전 힘이 하나도 없어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근데 서일이 무슨 국수 어쩌고 한 떼거리 불러 보더니 마지막에 뭐가 번뜩였는지 사탕이라고 지었어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식이가 미소를 지었다.원용의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이 이름 우리 딸이라 비교해도 나은 거 같은데!”“서일이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을 줄 몰랐네. 서일이 붙인 이름은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전에 우리 떡들 이름도 서일이 지어줬지, 아마?” 요 부인이 말했다.“그러니까요, 이런 데는 쓸모가 있다니까요.” 사식이가 어깨가 으쓱했다.확실히 장점이라곤 찾을 수 없지만 유독 이 부분은 그래도
사탕이가 태어난지 사흘째, 축하 행사는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원씨 집안은 전에 원용의에게 했던 대로 사식이에게도 전답과 점포를 보냈고 사탕이에게는 부동산을 하나 줘서 사탕이는 태어난지 불과 사흘만에 꼬마 복부인이 되었다. 우문호도 사탕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사탕이에게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선물했다.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주는 것은 아이의 대부를 맡겠다는 뜻이기에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사식이와 서일에게 주었을 때 서일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우문호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소신, 사탕이를 대신해 대부께 큰절 올립니다!”서일 본인조차 태자를 이토록 존중한 일이 없었다.사식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와 원 언니가 이렇게 사탕이를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원경릉이 부드럽게 말했다. “넌 날 위해 초왕부에 와 줬고 서일과 혼인을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사실 반쯤은 중매를 선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사탕이는 초왕부에서 태어났으니 내 딸처럼 대할 거야. 네가 우리 떡들이랑 쌍둥이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그러자 사식이가 감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우문호는 미소를 머금고 원경릉을 봤다. 지난 일을 떠올려보니 분명 서일이 사식이와 혼인할 수 있었던 건 다 원경릉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경릉이 아니었으면 사식이가 초왕부에 왔을 리도 없고 서일과 죽이네 살리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사실 사식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원경릉 덕에 운명이 바뀌었다. 물론 운명이 바뀐 게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두 가장 좋은 삶을 살고 있다. 떡들과 쌍둥이가 사탕이를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바람에 원경릉이 사탕이를 안고 응접실로 가 아이들에게 보러 오게 했다.원경릉이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사탕이는 너희들 여동생이야.”다섯명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지 눈을 빛냈다. 경건한 자세로 초왕부의 새로운 구성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이 아이가 바
미색도 조만간 아기를 낳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미색은 여전히 배만 남산만큼 불렀고 낳을 기미가 없었다.그런데 한 밤중에 갑자기 궁에서 사람이 와서 태자비에게 어서 입궁하자고 했다.오밤중에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원경릉은 적잖이 놀랐다. 옷을 입으면서 우문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라고 했다.우문호가 옷을 걸치고 가서 보니 황귀비 궁의 대태감 득익 태감이었다. 황귀비가 복통을 호소하고 이미 양수가 터져서 아이를 낳을 것 같은데 태아가 횡위(태아가 옆으로 위치하는 것)라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원경릉은 듣고 깜짝 놀랐다. 황귀비는 ‘아직 예정일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출산을 하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많이 당겨서 나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를 낳는 일에 우문호가 도울 게 없지만 원경릉을 궁으로 호송하는 것은 가능했다.원경릉이 마차에서 약 상자를 열자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수술 도구가 대놓고 번쩍번쩍 맨 위칸에 놓여 있고 두번째 칸에 마취도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원경릉은 가리개를 젖히고 밖에 마부와 같이 앉아 있는 득익태감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낳으시게 된 거지? 산파와 어의는 뭐라고 하던가? 오늘 황귀비 마마께서 뭔가 사소하게라도 별다른 일 없으셨고?”마차가 다그닥 다그닥 앞으로 나아가니 밤바람이 쌩쌩, 가리개가 펄럭펄럭, 득익 태감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비 마마, 황귀비 마마께서는 오늘 배가 약간 아프시다고 했으나 아직 예정일이 되지 않아서 뭔가 잘못 드신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어서 갑자기 복통이 극심해 지시더니 양수가 터졌습니다. 이렇다 할 일은 없으셨고 황귀비 마마께서 몸이 무거우시니 최근 장문전 안에서 쉬시고 밖에 나가지 않으셨습니다.”“오늘 아침 일찍부터 복통이 시작되었는가?”득익태감이 답했다. “사실 일찍부터 은은하게 복통을 호소하셔서 어의에게 말했더니, 찬 음식을 먹어서 그렇다고 음식에 좀 더 주의하라고 했고, 좋았다 안 좋아졌다가 했습니다.”원경릉은 순간 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