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식이와 서일이 소원대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온 경성에 날개 단 듯 퍼져서 다음날에도 여러 왕비들이 축하해주러 초왕부로 찾아왔다.사식이와 서일도 초왕부 사람으로 이번 경사는 물론 초왕부의 경사지만 왕비들은 축의금 대신 각자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가져왔다.미색은 특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사식이와 자신이 예정일이 비슷해서 사식이가 출산했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도 바로 닥칠 일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색은 사식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를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여자애가 있을 수가 있어.’ 하지만 입으론 칭찬을 마구 해댔다. “너무 예쁘다. 정말 서일을 쏙 빼닮았네.”서일은 어떤 의미로 보면 잘생긴 축에 끼지만 앞니 두 개가 빠져서 결국 못생긴 여자로 모두의 인상에 박혀있었다.그래서 미색이 서일을 닮았다고 하자 다들 속으로 짚이는 게 있어 살짝 수긍했다.이 말이 사식이에게는 약간의 상처가 됐다. 사실 막 낳은 뒤에 처음 아이를 봤을 땐 예뻤으나 자세히 몇 번 들여다보니 확실히 좀 못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부인은 식견이 있어서 달리 표현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다 이렇게 못 생겼어. 처음에 황태손들도 막 태어났을 때 이랬잖아? 하지만 아이를 못생겼다고 하지 않는 건, 생후 한 달을 꽉 채운 뒤에 눈매와 이마, 볼에 살집이 생기면서 예뻐지기 때문이야.”그러자 다들 너도나도 나서서 요 부인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사식이를 위로했다.사식이도 황태손이 태어나던 때를 떠올렸는데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분명 지금처럼 잘 생기지도 않아서 한 달을 꽉 채운 뒤부터 갈수록 잘 생겨지기는 했다.사실 사식이의 아가가 진짜 못생긴 건 아니었다. 신생아라 코에 황반이 있고 얼굴이 빨간 게 마치 막 탈피한 뒤의 피부 같았으며 하얗게 백태가 낀 건도 아직 씻어내지 못했을 뿐 천천히 다 떨어져 나간다.만두와 형제들이 보고 싶다고 찾아와도, 애들은 들어오는 거 아니라고 기 상궁이 안 들여보내줘서 아가를 안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 이름 지어달라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 수준이 서일이랑 별 차이 없거든.”“근데 태자 전하께서 지금은 위태부와 학문에 정진하고 계시잖아요.” 사식이는 태자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이라 잠시 후 다시 원경릉에게 물었다. “아니면, 혹시 원 언니가 지어주는 건요?”원경릉이 말했다. “이름을 짓는 건 말야, 상당히 깊은 조예가 필요해. 아이의 사주팔자를 보고 거기에 오행을 대입하더라고. 무슨 금톡수화도 같은 거 있잖아. 내 생각에는 사식이 할머니께 지어달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친정에서 이름을 붙여주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 위태부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하자.” 손왕비가 말을 보탰다. “위태부 속도로는 아마 일 년이 훨씬 넘어야 하나 나올 걸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서일에게 우선 아명 먼저 지어달라고 하면 되지.” 원경릉이 말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어제 무슨 국수가 어쩌고 교자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결국 뭘로 정해졌을까?사식이도 웃으며 말했다. “아명을 붙이기는 했어요. 사탕이라고...”“사탕? 진짜 듣기 좋은데!” 원경릉은 확 마음에 들었다. 다들 사탕이란 이름 진짜 잘 지었다며 칭찬했다. “네가 지은 거야 아니면 서일이 지은 거야?”“서일이 지은 거예요. 어제 전 힘이 하나도 없어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근데 서일이 무슨 국수 어쩌고 한 떼거리 불러 보더니 마지막에 뭐가 번뜩였는지 사탕이라고 지었어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식이가 미소를 지었다.원용의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이 이름 우리 딸이라 비교해도 나은 거 같은데!”“서일이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을 줄 몰랐네. 서일이 붙인 이름은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전에 우리 떡들 이름도 서일이 지어줬지, 아마?” 요 부인이 말했다.“그러니까요, 이런 데는 쓸모가 있다니까요.” 사식이가 어깨가 으쓱했다.확실히 장점이라곤 찾을 수 없지만 유독 이 부분은 그래도
사탕이가 태어난지 사흘째, 축하 행사는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원씨 집안은 전에 원용의에게 했던 대로 사식이에게도 전답과 점포를 보냈고 사탕이에게는 부동산을 하나 줘서 사탕이는 태어난지 불과 사흘만에 꼬마 복부인이 되었다. 우문호도 사탕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사탕이에게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선물했다.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주는 것은 아이의 대부를 맡겠다는 뜻이기에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사식이와 서일에게 주었을 때 서일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우문호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소신, 사탕이를 대신해 대부께 큰절 올립니다!”서일 본인조차 태자를 이토록 존중한 일이 없었다.사식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와 원 언니가 이렇게 사탕이를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원경릉이 부드럽게 말했다. “넌 날 위해 초왕부에 와 줬고 서일과 혼인을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사실 반쯤은 중매를 선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사탕이는 초왕부에서 태어났으니 내 딸처럼 대할 거야. 네가 우리 떡들이랑 쌍둥이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그러자 사식이가 감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우문호는 미소를 머금고 원경릉을 봤다. 지난 일을 떠올려보니 분명 서일이 사식이와 혼인할 수 있었던 건 다 원경릉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경릉이 아니었으면 사식이가 초왕부에 왔을 리도 없고 서일과 죽이네 살리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사실 사식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원경릉 덕에 운명이 바뀌었다. 물론 운명이 바뀐 게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두 가장 좋은 삶을 살고 있다. 떡들과 쌍둥이가 사탕이를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바람에 원경릉이 사탕이를 안고 응접실로 가 아이들에게 보러 오게 했다.원경릉이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사탕이는 너희들 여동생이야.”다섯명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지 눈을 빛냈다. 경건한 자세로 초왕부의 새로운 구성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이 아이가 바
미색도 조만간 아기를 낳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미색은 여전히 배만 남산만큼 불렀고 낳을 기미가 없었다.그런데 한 밤중에 갑자기 궁에서 사람이 와서 태자비에게 어서 입궁하자고 했다.오밤중에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원경릉은 적잖이 놀랐다. 옷을 입으면서 우문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라고 했다.우문호가 옷을 걸치고 가서 보니 황귀비 궁의 대태감 득익 태감이었다. 황귀비가 복통을 호소하고 이미 양수가 터져서 아이를 낳을 것 같은데 태아가 횡위(태아가 옆으로 위치하는 것)라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원경릉은 듣고 깜짝 놀랐다. 황귀비는 ‘아직 예정일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출산을 하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많이 당겨서 나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를 낳는 일에 우문호가 도울 게 없지만 원경릉을 궁으로 호송하는 것은 가능했다.원경릉이 마차에서 약 상자를 열자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수술 도구가 대놓고 번쩍번쩍 맨 위칸에 놓여 있고 두번째 칸에 마취도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원경릉은 가리개를 젖히고 밖에 마부와 같이 앉아 있는 득익태감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낳으시게 된 거지? 산파와 어의는 뭐라고 하던가? 오늘 황귀비 마마께서 뭔가 사소하게라도 별다른 일 없으셨고?”마차가 다그닥 다그닥 앞으로 나아가니 밤바람이 쌩쌩, 가리개가 펄럭펄럭, 득익 태감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비 마마, 황귀비 마마께서는 오늘 배가 약간 아프시다고 했으나 아직 예정일이 되지 않아서 뭔가 잘못 드신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어서 갑자기 복통이 극심해 지시더니 양수가 터졌습니다. 이렇다 할 일은 없으셨고 황귀비 마마께서 몸이 무거우시니 최근 장문전 안에서 쉬시고 밖에 나가지 않으셨습니다.”“오늘 아침 일찍부터 복통이 시작되었는가?”득익태감이 답했다. “사실 일찍부터 은은하게 복통을 호소하셔서 어의에게 말했더니, 찬 음식을 먹어서 그렇다고 음식에 좀 더 주의하라고 했고, 좋았다 안 좋아졌다가 했습니다.”원경릉은 순간 의
득익태감이 우문호와 원경릉의 대화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 그렇다는 건 누군가 마마를 해치려 했다는 말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 “자네는 궁에 돌아간 뒤 함부로 이 얘기를 꺼내지 말게. 내가 비밀리에 조사할 테니!”“예, 알겠습니다!” 득익태감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 ‘누가 황귀비 마마를 해하려 한다고? 후궁에 누가 그렇게 황귀비 마마를 미워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만약 누군가 해치려고 한 거라면 호비는 그것으로 아이를 잃었고, 황귀비 몸은 호비만 하지 못하니 뒷 일은 아마......원경릉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전신에 얼음물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이 아이가 황귀비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황귀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장문전으로 물러난 것도 모든 희망을 아이에게 걸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이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엔 황귀비의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늘이 설마 그렇게 잔인하시지는 않을 거야? 전에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을 설득했다. 그래서 이미 포기했을 때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잃어버린다면 처음부터 아이가 아예 없었던 것만 못한 게 아닌가!궁에 도착한 부부는 장문전으로 뛰어갔다. 명원제도 원경릉을 막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오자 호비가 안도하며 얼른 일어나 원경릉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태자비 어서 들어와. 이미 진통이 온지 오래 됐어.”원경릉은 호비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 답했다. “예, 마마 걱정마세요.”원경릉이 명원제에게 예를 취하는데 명원제도 긴장하고 초조한 빛이 여실했으며 마음은 이미 반쯤 절망한 상태였다. 아이가 달을 채우지 못했고 그것도 상당히 남았으니, 민간이든 황궁이든 8개월이 안 된 아이가 살아남기란 어렵기 때문이었다. 명원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상심이 되는 것은
황귀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난 아픈 거 겁 안 나, 아픈 건 겁 안 나......”원경릉이 얼른 장소를 소독하고 노비에게 겁내지 말고 여기 남아서 자신을 도우라고 했다. 전에 회왕이 병에 걸렸을 때 노비도 계속 침대 맡에서 간병을 해서 병자를 돌보는 것에 충분히 참을성과 강인함을 가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노비만 남으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경귀비까지 전부 나가라고 했다.밖에서 명원제와 호비가 개복한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져 호비가 뛰어들어 와서 돕겠다고 했다. 첨에 원경릉은 안된다고 했지만 호비가 황귀비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기에 밖에서 기다리기는 마음이 놓이지 않을 테니 차라리 도우라고 했다. 득익태감이 이 참에 우문호와 장문전에서 탐문을 시작했는데 우문호도 조용히 목여태감을 제치고 물었다. “아바마마께서 황귀비 마마께 내리신 탕은 누가 담당합니까?”목여태감이 이 말을 듣고 놀라며 물었다. “탕이요? 폐하께서는 황귀비 마마께 탕을 내리신 적이 없습니다.”“없다고?” 우문호가 눈을 치켜떴다. ‘그렇다는 건 누가 중간에서 수작을 부렸다는 건데, 누가 이렇게 간덩이가 큰 짓을 감히. 아바마마의 이름을 사칭해 황귀비 마마께 탕을 보내다니?’그건 탕이 아니라 몸을 차게 반드는 독임이 분명했다. 우문호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너는 바로 채명전에 가서 조사해 호비 마마의 음식을 누가 담당했는지 살펴보거라.”목여태감이 말했다. “그건 조사할 필요 없습니다. 호비 마마 쪽은 원래 옥상궁이 담당했고 후에 옥상궁이 궁에서 쫓겨난 뒤로는 남상궁이 담당했습니다. 남상궁은 원래 황후 마마의 시중을 들던 자로 나중에 황후 마마께서 금족령을 받으신 후 곁에서 시중 들 사람이 이렇게 많이 필요없다며 폐하께서 남상궁을 보시고 차분하니 채명으로 가서 호비 마마의 시중을 들게 하셨습니다.”“가서 구사에게 자네들 태감과 같이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라고 해. 호비 마마와 황귀비 마마의 음식에 비슷한 게 뭐가 있었는지.” 우문호가 명을 내렸고, 목
한편, 황귀비와 호비궁은 음식을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조부가 사건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다. 호비 일은 지나갔지만 황귀비는 아직이었고, 마침 황귀비가 어젯밤 탕을 마셨기 때문에 어제 탕을 끓인 사람을 잡아내 조사하면 되는 것으로 탕에 접촉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일목요연했다.가지를 따라가 몸통을 잡아내니 역시나 남상궁이었다. 남상궁은 원래 황후의 시중을 들던 자로 구사는 황후에게 조사가 미칠 것으로 생각했으나 몇 번 다그쳐 물으니 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남상궁이 진비가 지시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그러고는 울부짖어댔다. “진비 마마께서 쇤네에게 호비 마마의 탕과 음식에 동규엽을 넣으라고 시키셨지만 쇤네는 고작 2번만 했고, 전에는 전부 옥상궁이 넣었습니다. 옥상궁이 진비 마마께 수천냥 은자를 받고 탕에 동규엽을 한 달 넘게 넣어서 마마께서 유산을 하시게 된 겁니다. 쇤네와는 상관없어요. 쇤네가 마지막 2번을 안 했어도 마마께서는 유산하셨을 겁니다.”옥상궁은 원래 호비 친정에서 보낸 사람으로 진비를 도와 호비를 죽이려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뒤통수를 이렇게 칠 수가 없었다. 구사가 남상궁을 우문호 앞에 끌고가 말했다. “자백했습니다. 진비 마마의 지시라고 하는 군요.”우문혼는 바로 명원제에게 보고했고, 명원제는 놀라서 이 두 번의 일이 누군가의 고의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진비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곧 불같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진비를 어서방으로 들라하라!”진비는 장문전에서 황귀비가 아이를 낳을 것 같다는 소식에 자지도 못하고 계속 장문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심야에 진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황제가 진비를 부른다는 소식이었다.진비는 순간 당황하다가 곧바로 표정을 고치고 목여태감을 따라 어서방으로 갔다.우문호는 계속 어서방에서 명원제 곁을 지키고 있었다. 우문호는 명원제가 이렇게 진노한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하지만 단지 후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명원제가 참견하기도 그렇고 추측만 가지고 진비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진비가 울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황귀비가 바보예요. 전 원래....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요. 황귀비가 폐하를 노하게 했으니 폐하 이름으로 탕을 보내면 당연히 마실 리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안 마셨으면 그럼 저도.... 마음이 편하잖아요. 제가 손은 썼지만 피할 팔자였네 하고요. 안 그래요? 전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어요. 저 혼자만 이렇게 비참하게 살 수는 없잖아요. 폐하께서 전에 저를 보러 오셨을 때, 저와 조금만 더 계셨으면 저도 황귀비에게 손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전 희망이 없었어요. 폐하께서 절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제게는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았죠......”진비는 흉하게 울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 되어 흐르고 부숭부숭 부어오른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아 기미와 반점이 점점이 드러났다. 눈밑은 퍼렇게 부어올라서 눈과 코엔 붉은 흙빛이 맴돌았다. 백발이 상당히 섞인 머리채가 풀어져 딱 봐도 만년의 늙은 부인 그 자체다. 명원제는 진비를 보고 분노도 일었지만 비통했다. 이 여인은 자신을 30년 이상 따르며 자신을 위해 장자를 낳아주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 이런 꼴로 된걸까?명원제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진비와 우문군 모자가 제멋대로 굴도록 눈감아 준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매번 비극을 키웠고 무고한 자를 해쳤다. 우문군 한 사람에서 진비와 외척 전부가 잔인하고 악랄해졌다.그리고 그제서서야 명원제는 황제된 자가 한 명의 황자를 지나치게 편애해서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어떻게 화근이 되는지 아주 온 몸으로 절절하게 깨달았다. 명원제는 무의식 중에 태상황과 안풍친왕의 방식은 사실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너무 유난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야 명원제는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옳았다.이번 일은 원래라면 피할 수 있던 일이었다.호비의 뱃속에서 죽은 태아, 그리고 황귀비와 뱃속의 아이도 지금 생사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