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의 얼굴원경릉은 첫날 못난이로부터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못난이는 원래 모순된 정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나 홍엽의 엄명에 방에 들어와 가면을 벗고 원경릉에게 얼굴을 살짝 보여주었다.사람 가죽으로 된 가면 뒤의 얼굴은 창백하고 혈색이 없는데 이목구비가 전부 전율이 일만큼 예뻤다.못난이와 미색은 같은 선상에 있었는데 외모로 보자면 못난이는 미색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단지 손으로 왼쪽 볼을 살짝 긁어내더니, 다시 거기서 가면 가죽을 벗겨 내는데 볼에 불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정확히 말하면 불꽃으로 솟아오르는 불꽃은 검붉고 잘 빠진 곡선으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망울을 머금은 연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불꽃 가운데 콩알만 한 크기의 검은색 꽃술 같은 게 있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털끝만치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요염하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더했다.못난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강에서는 얼굴에 검은 모반을 가진 사람은 악마가 세상에 강림한 거라고 해요. 전 악마라고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죠.”못난이는 잽싸게 가면을 다시 썼다. 이 모반 때문에 못난이는 2중으로 된 가면을 썼던 것이다. 모반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왔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무섭죠?” 못난이가 당황한 듯 원경릉을 보더니 냉소를 지으며, 슬픔과 분노가 눈가에 서서히 떠올랐다.원경릉이 느릿느릿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의외로 못난이가 이렇게 아름답게 생겼을 줄 몰랐네요.”“당신……” 못난이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날 놀리는 거야?”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갔다. 사람 가죽 가면 뒤에 분노를 감추고 말이다.원경릉은 손을 뻗어 못난이의 소매를 잡고 심호흡을 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놀리는 게 아니에요.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당신이 아름답다고, 그 불꽃은 못난이 얼굴에 금상첨화라고 느낀 거예요. 남강 사람은 왜 얼굴에 검은 모반을 가지고 태어나면 악마의 현신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쳐도 그 사람들은
못난이 얼굴에 불꽃원경릉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역시 내가 얘기할 게.”홍엽이 원경릉에게 부탁한 것이니 원경릉이 답을 주는 게 맞다.원경릉이 홍엽을 찾아 이런 결정을 얘기하자 홍엽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리 저리 돌려 말해도 결국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못난이의 존재에 편견을 가지고 있군요.”원경릉이 평정심을 가지고 대꾸했다. “못난이는 저에게 사실상 낯선 사람입니다. 제가 그녀에게 편견이 없다고 해서 그녀를 집에 데려가겠다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자신이 언젠가 떠나면 못난이를 돌볼 수 없는 게 걱정돼서 초왕부가 그때 대신 돌봐 주길 바라는 건데. 제 생각에 못난이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고 아무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어요. 그래도 공자의 얼굴을 봐서 초왕부가 그 점은 최선을 다할 게요.”홍엽이 다 듣고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요!”홍엽이 가고 원경릉은 그가 분명 화가 났을 것으로 본인이 부탁한 일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원경릉도 속으로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못난이가 오늘은 아마도 오지 않을 거라 원경릉은 할머니를 찾아갔는데 할머니는 오늘 진료라 가서 할머니를 도와드렸다.원경릉은 최근 한의학을 배우고 있는데 한의학은 지식이 방대하고 심오해서 하나라도 더 배워 두는 게 낫다.병자들이 전부 간 뒤 할머니가 정리하는 걸 돕는데 원경릉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가 물었다.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원경릉은 할머니를 자리에 앉히고 홍엽이 부탁한 일을 얘기하고 못난이 얼굴에 불꽃과 어릴 때 만난 일 전부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사실 못난이가 어릴 때 닥친 그런 처참한 일을 생각하면 홍엽의 부탁을 거절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사람이란 게 이기적이잖아요. 못난이가 알고 있는 무고술을 전 털끝만치도 몰라요, 그래서 못난이에게 줄곧 어느 정도 경계하게 돼요.”할머니가 다 듣고 원경릉에게 말했다. “왼쪽 볼에 불꽃 무늬가 있고, 불꽃 가운데 검은색 심지가 있지
불꽃 표시의 의미할머니는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안타깝게도 기억이 안 나, 당시 지역 괴담 정도로 여기고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듣지를 않았거든.”원경릉이 새겨듣고 돌아와 이 일을 우문호에게 얘기했다.당연히 시공간이 다를 수 있고 어쩌고 하는 나라의 황실이 꼭 사실이란 보장도 없다.우문호가 다 듣고 심사숙고하더니 냉정언을 찾아갔다. 냉정언은 그런 표식이나 주술적인 도안에 대한 이해가 제일 높았다.지금 남강은 내란 중으로 비록 모든 게 아홉째와 호 대장군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고는 하나 단시간 내에 전체 국면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보자면 철저하게 남강 북쪽을 얻으려면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수도 있고 3~5년, 아니 7~8년, 지금은 조정이 말려들지 않았지만 내란이 장기화하면 조정의 보급이 필요해진다.냉정언이 엄청난 책을 뒤적여 조사한 끝에 최종적으로 확정한 것은 이 표식은 사실 남강 북쪽 천무당(天巫堂)의 표시라는 것이다.냉정언이 도안을 그려서 우문호에게 보여주는데 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고 보면서, “아닌데, 원 선생은 이 중간 꽃술 자리가 검은색이라고 했어. 자네가 여기 표시한 건 붉은 색이잖아, 그리고 천무당은 연꽃이고 못난이는 불꽃이야. 불꽃송이.”냉정언이 고개를 흔들며, “그럴 리 없어, 이건 사람에 의해 바뀐 거야. 많은 책을 찾아봤는데 거기엔 심지어 남강 북쪽의 밀서도 있다고. 천무당의 표시는 타고나는 거라 500년 동안 한 명의 천무당도 태어나지 않을 수 있으며 천무당은 지극히 높은 존재로 모든 무당과 무녀들은 전부 천무당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천무당이 출생했을 때 일부 무당이 어떤 수단을 써서 표식을 속여서 고치기도 한다더군요.. 예를 들어 무고술로 표식을 못난이 얼굴에 있는 이런 모양으로 바꾸는 거죠. 보세요……”냉정언이 고서적을 우문호에게 보라고 전해주자 고서적에 도안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바로 우문호가 설명한 그대로 못난이 얼굴에 표식과 분명 같을 것이다. “이건 고쳐진 다음의
검은 꽃술 표식술이 세 순배쯤 돌아가자 취기가 오르면서 홍엽을 부추겨 방으로 들어가게 한 뒷문을 걸어 잠그고 냉정언이 조사한 내용을 얘기했다.홍엽이 약간 놀라고 말했다. “그건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게 천무당은 이미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역대 천무당은 전부 남자로 여자였던 적이 없어요.”“진짜인지 아닌지 알아야 해. 냉정언이 검은 꽃술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내길 기다리면 자명하게 되겠지!”“역시 불가능해요.”“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지? 냉정언 말로는 무당이 천무당을 해친 적이 있고, 이렇게 천무당의 표식을 없애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들이 지난날의 낡은 수법을 다시 써먹었을 가능성도 있잖아.”홍엽이 당황하고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그다지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천무당이 남강 북쪽에서 뭘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천년을 내려온 신앙에서 천무당은 모든 남강 북쪽 사람이 신처럼 떠받드는 존재로 어떻게 일개 무당이 천무당에게 독을 쓸 수가 있다는 거야?그리고 무당들이 못난이가 천무당인 걸 뻔히 아는 상황에 못난이가 맞고 괴롭힘을 당하는 걸 내버려 두는 건 자신들의 신앙 자체를 저버리는 행위잖아?홍엽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게 아니라 남강 북쪽에 오래 있어서 남강 북쪽 사람들이 천무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익히 알고 있다. 매년 천무당절(天巫堂節)이 있어 남강 북쪽에서 성행하고 있는데 모든 남강 북쪽의 백성들이 이레간 경건하게 죽은 천무당에게 봉공하는 축제다.홍엽이 우문호에게 남강 북쪽의 풍습에 대해 말하고 천무당이 남강 북쪽 백성의 마음속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얘기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우문호도 못난이가 천무당일 가능성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됐어, 일단 냉정언이 조사를 마치면 다시 얘기하지.” 우문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술이 얼큰하게 취한 채 초왕부로 돌아와 원경릉을 안고 냉정언의 발견을 얘기했다. 하지만 홍엽이 별로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더는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남강에서 연락이 왔는데
냉정언과 냉정언의 어머니냉정언이 아연실색했다. 어떻게 그 점을 생각 못했지?“냉대인, 우선 못난이를 우리 의대로 오라고 해서 치료해보고 만약 얼굴에 검은색이 사라지고 천무당의 표식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녀에겐 좋은 일이지요. 얼굴의 그 흉터가 신경 쓰였을 테니까요.”할머니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환자의 각도에서 생각한다. 못난이 몸에 그런 표식이 있는 걸 본인이 원하지 않고 할머니가 마침 치료할 수 있으니 일단 치료부터 해보자는 것이다.냉정언이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저는 먼저 태자 전하께 가서 상의드리죠. 노마님 감사합니다!”냉정언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물러나는데 가기 전에 자기도 모르게 노마님을 흘끔흘끔 봤다. 이 노인은 나이가 이렇게 많지만 머리는 더욱 맑고 명석하다. 냉정언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만했으나 어르신 한 분보다 못하다.부끄럽구나!못난이는 노마님 쪽에 가고 싶지 않은 게 누군가 얼굴에 표식을 없앨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기 때문으로 공자가 분부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의대에 발걸음을 해 노마님과 같이 앉았다.못난이에게 있어 생긴 게 아무리 추하고 못생겨져도 상관없었다. 이 악마가 강림하는 표식만 없어진다면 죽는다고 해도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다. 따라서 공자때문에 왔다고 하지만 사실 본인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할머니가 치료하는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고 하고 열흘까지는 효과가 천천히 나타날 거라고 했다.최근 냉정언이야 내내 초왕부를 드나들었지만 이날은 냉씨 집안 부인이 갑자기 명함첩을 보내 초왕부에 손님으로 오겠다는 것이다.원경릉은 다소 의외인 것이 냉정언과는 친한 사이지만 냉씨 집안 부인과는 왕래가 거의 없어 그저 궁중에서 내명부 부인들이 모일 때 얼굴을 한 번 봤을 뿐이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지?사식이의 태아가 안정된 뒤로 늘 원경릉 곁에 있는데 명함첩을 본 첫 반응이 경악해서 말했다. “설마 그날 주명양의 헛소문 때문은 아니겠죠?”원경릉이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인데 주명양이 조작한
냉정언의 중매냉씨 집안 부인은 마치 지음(知音, 자신을 알아주는 벗)이라도 만난 듯 부랴부랴 말을 이었다. “맞아요, 제 생각이 딱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태자비 마마를 특별히 찾은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입니다.”원경릉이 놀라서 냉씨 집안 부인에게 말했다. “저요? 전 냉대인을 설득시키지 못해요.”“설득하는 게 아니라,” 냉씨 집안 부인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태자비 마마께서 나서서 중매를 서주시길 바라는 거예요!”원경릉이 혀를 내두르며 아니 원경릉이 언제부터 중매쟁이가 된 거야? 서일이 자기에게 중매를 서달라고 하고, 지금은 냉씨 집안 노마님도 자기에게 중매를 서달라고 하는데 본인은 그런 깜냥이 전혀 못 된다고.그리고 이 일에 중매를 서는 건 잘하면 모두에게 큰 기쁨이지만 잘못 하면 누군가의 일생을 망치는 일로 원경릉은 절대로 승낙할 수 없었다.그래서 냉씨 집안 부인이 말을 마친 후 원경릉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부인, 제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실 제가 잘 모르기도 하고……”원경릉이 아직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냉씨 집안 부인이 얼른 낚아챘다. “태자비 마마 제발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이 중매는 마마께서 해 주시는 게 가장 적합해요. 태자비 마마께서 나서시면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믿어요.”희상궁이 이 말을 듣고 물었다. “어느 집 규수인지 모르겠습니다만?”냉 부인이 웃음을 띠고 말했다. “원씨 집안 일곱째 아가씨요!”원경릉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네?”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사식이는 올해 겨우 17살이다, 넷째인데, 일곱째 아가씨면 올해 7살인가?사식이가 막 와서 이 말을 듣고 자기가 임신한 몸이라는 것도 잊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원 언니가 우리 집 일곱째 고모한테 혼담을 넣는 거예요?”“일곱째 고모?” 원경릉이 사식이를 보더니 자기는 그녀에게 일곱째 고모가 있다는 걸 몰랐다.“허락하세요, 얼른 허락하세요.” 사식이가 기뻐서 말했다.원경릉이 사식이를 보
일곱째 고모와 냉정언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원경릉은 사식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냉부인과 다시 얘기하는데 냉부인이 비로소 진짜 얘기를 했다. 이틀 전에 부인이 냉정언에게 혼인을 재촉했는데 냉정언이 전부터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고 할 줄 몰랐다. 그 사람은 바로 일곱째 아가씨로 냉부인은 일곱째 아가씨란 말을 듣고 좋지 않았지만 남편과 상의해 보니 나이가 좀 많은 건 중요하지 않고 다행히 아들이 좋아해서 아내로 맞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게 어디냐며, 서른이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시집와서 아들딸을 낳으면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독거노인은 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으로 어쨌든 원경릉은 원씨 집안 쪽과 관계도 좋으니 일단 물어라도 봐줘서 정말 그런 뜻이 있으면 다른 매파를 찾아 정식으로 집에 찾아가려는 것이다. 즉 진짜 중매쟁이를 하라는 건 아니다.원경릉은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우선 가서 분위기를 떠보겠다고만 하고 냉부인이 간 뒤에 사람을 시켜 원용의를 집으로 불렀다. 일곱째 고모가 그 나이에도 혼인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사연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 사식이는 물어도 모르고 원용의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만약 냉대인이 정말 그런 생각이 있고 일곱째 아가씨를 좋아한다면 원경릉이 원씨 집안 쪽 분위기를 떠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원용의가 말했다. “우리 일곱째 고모는 사람은 괜찮은데 고집이 세서 할머니가 늘 그 놈의 성질머리는 한 가지를 단정하면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장사도 그렇게 해요. 사람들이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걸 고모는 반드시 해야 하고 심지어 그 어려운 걸 또 해내요. 최근 몇 년간 고모 때문에 우리 상점이 확장해서 북당의 각 주(州)와 부(府)에 전부 우리 점포들이 있다니까요.”“그럼 그녀는 왜 혼인을 하지 않으시죠?” 원경릉이 물었다.원용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고모 혼담이 나올 때 제가 나이가 아직 어렸거든요, 하지만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오래전
부부의 장점원용의와 원경릉이 고개를 들자 우문호가 불쾌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원경릉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 시간에 돌아왔어?”“하필 이때 돌아왔지? 지금 돌아오지 않았으면 당신의 진심도 못 들었을 텐데 말이야.” 우문호가 손을 들어 때리는 연기를 하자 원경릉이 딱 맞춰서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아파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외쳤다. “제가 잘못했어요!”둘 다 웃으며 우문호가 그 참에 원경릉의 이마에 뽀뽀하고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패기 넘치게 속삭였다. “앞으로 이런 말은 다시 하지 않기.”그들 둘의 연기에 원용의는 화들짝 놀라 태자가 정말 원 언니를 때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는 따라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몇 년을 부부로 지내니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고 농담이 통하는구나. 정말 부럽다. 일곱째는 완고하고 보수적이라 전에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눈에 딸만 들어오고 집에 돌아오면 일단 금지옥엽 딸부터 보러 간다. 몇 번이나 아무 생각없이 원용의에게 집에 여자가 둘이나 있는 줄 몰랐네 할 때는 완전 뚜껑이 열린다.우문호도 앉아서 그녀들과 얘기를 나누고 냉정언의 혼사를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데 마음 쓸 필요 없어, 정언이는 혼인할 생각이 없으니까.”원경릉이 말했다. “하지만 냉부인 말씀이 본인 입으로 만약 상대가 일곱째 아가씨면 자기도 원한다고 했다잖아.”“아마 어물쩍 넘어간 걸 거야. 정언이가 일곱째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일곱째 아가씨와 몇 번 만나보긴 했을까부터 의문인데.” 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게 냉정언 이 사람은 정말 이름처럼 냉.정.해서 마치 속세에 속하지 않은 사람 같다. 전에 이리 나리가 찾아왔을 때 우문호를 좋아하는 듯한 태도를 가장해 이리 나리를 냉정언과 싸잡아 보내려고 했다. 둘은 같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 서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아니면 자기가 냉대인에게 가서 좀 물어볼래?”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도 아닐 것이오. 아마 금나라 어린 황제가 보낸 사람일 것이오.”“그가 어찌 마마를 찾는 것입니까?”주 아가씨는 몹시 놀랐다. 금나라는 늘 진국왕이 주도하고 있어, 그 어린 황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그 어린 황제가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지 택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알아본 바로는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어빙술을 사용해 진국왕을 공격했다고 했기에, 택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다섯째를 어찌 찾는 것인지 알아보시오.”“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먼저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시느라 고되었을 것입니다.”주 아가씨는 밖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차리곤 말했다.“저분이 바로 서 대인입니까? 그가 마마를 호위한 것입니까?”“맞소. 서일 삼촌이네. 거처를 마련하여 머물게 해주시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하오. 이틀 후, 이곳을 떠나게 할 것이오.”서일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금나라 어린 황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북당 전체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를 알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주 아가씨가 호명에게 가서 서일을 잘 안배하라는 공주의 명을 전하자, 호명이 웃으며 말했다.“서 대인께서 오셨군요. 제가 술을 준비하여 잘 대접해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을 보내 약도성에서 가장 좋은 술을 사 오게 하고는, 일단 서일을 취하게 하기로 계획했다.서일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강북부에 도착해 황자들과 헤어지자마자 특별히 택란을 약도성까지 데려다주었다. 택란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약도성의 상황을 살폈다.처음에 그는 거처에 정착한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