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밥 먹지 마우문호와 원경릉은 서일, 사식이 등을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고 박원과 소홍천은 안왕을 따라 대오를 이끌고 일단 강북으로 돌아갔다. 비록 몇 천명의 사병이지만, 우문호는 역시 조심스럽게 안왕 혼자 통솔해서 가지 못하게 했다.안왕은 물론 우문호의 뜻을 알아서 경멸하는 듯, “고작 몇 천 사병으로 내 눈에나 차겠어?”우문호도 별로 변명하지 않고, “그럼 좋고요, 여기서 헤어지니 형도 몸조심 하세요.”말을 달려 경성으로 오는 길에 사식이가 이해가 안돼서 서일에게, “그 병사는 위왕의 병사인데 소홍천이나 무과 장원이 따라가지 않아도 별 일 없는 거 아냐? 안왕 전하도 군 장수가 아닌데, 왜 저들을 딸려 보내시는 거야?”서일이, “저 대오는 당연히 위왕 전하의 명령을 듣지, 하지만 위왕 전하가 안계시면 군에 다른 장수의 명을 들어야 해, 만약 안왕 전하께서 장수들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면 수천명의 군사는 안왕 전하께서 부리게 되지 않겠어?”사식이가 그제서야 깨닫고, “역시 태자 전하는 치밀하시다니까,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는군. 하지만 이번에 안왕 전하를 뵈니 상당히 평화로워 지신 거 같아.”서일은 혼인하고 성숙해 져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상당히 긴 안목을 가지고, “지금 평화로운 건 패거리도 다 흩어졌고, 비빌 언덕도 무너졌기 때문이야. 평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혼자 목숨 걸고 덤벼야 하는데 그럼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안왕 전하는 계략이 뛰어난 분이라 은일 자중해야 하는 시점도 아시는 거야. 역시 만만하게 봐서는 안돼.”우문호는 말고삐를 돌려 서일을 보니 햇살을 받은 서일 얼굴이 남자답게 느껴지며 예전의 촐랑거리고 풋내나는 모습은 사라지고 진짜 성장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안색이 아직 좋지 않은 걸 보고 속으로 화가 났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뻔뻔하게 도리어 화를 내?’ 원경릉이 사과하지 않으면 우문호는 원경릉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저녁에 역관에 들어가는데 원경릉이 밥을 안 먹고 물만 조금 마시고 가서 누웠다.우문호도 화가 나
우리 헤어져‘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 몰라? 게다가 다른 사람이랑 애를 낳는다고? 아무렇 게나 말해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원 선생 완전 변했어.’서일이 들어가서 거하게 먹고 나와 우문호를 찾아가며, 태자는 겉으로는 사리에 밝고 합리적인 척 하지만 뼈 속 깊이 속 좁은 인간이다.서일이 나가서 못 찾고 돌아가려는 찰나 우문호가 부침개를 몇 장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원경릉이 화가 난 건 역관까지 오는 내내 우문호의 태도 때문으로 누가 우문호에게 백만 냥을 빚지고 있기라도 한 듯 밉상을 떠는 거다.하지만 지금 우문호가 부침개를 가지고 돌아오는 걸 보니 마음 속으로 화가 절반쯤 가라 앉았다. ‘그래 그만 두자, 화를 내서 뭐하겠어? 원래 별일도 아닌데, 그리고 확실히 배가 고프네.’그런데 이게 웬걸, 우문호는 부침개를 원경릉에게 주지 않고 혼자 한쪽에 앉아 먹기 시작하는데 부침개에 파가 들어 진한 파향이 풍겨 나오고, 우문호가 아주 맛있게 먹는데, 밉상, 딱 밉상이다.원경릉이 더는 못 참고, “우문호, 너 너무 해!”우문호는 원경릉이 먼저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가 한 마디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들고 부침개를 꿀떡 삼키며, “누가 너무하다는 거야? 너무한 건 너지.”“내가 뭘?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오는 내내 누구 보라고 그렇게 밉상을 떨어?”“내 표정이 안 좋은 건 당신이 말을 잘못해서 그런 거잖아? 그리고 당신이 너무하다고 하면서 화를 내더니 먼저 갔다고.”원경릉은 우문호가 여전히 굽힐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나서, “당신 참 유치하다? 우리 둘 일을 홍엽을 끌어들여서 뭘 어쩌라고? 자기가 나 필요 없고, 홍엽은 날 마음에 들어 한다며? 지금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있는데?”우문호는 원경릉이 여전히 자기보다 화를 내는 게 억울하다. “그럼 만약 내가 다른 여자랑 애를 낳겠다고 하면 당신은 화 안나?”“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지, 홍엽은 왜 끌어들여? 나랑 그 사람은 원래부터 아무 일도 없는데 자기가 그렇게 말하는 걸
부부 싸움사식이가 원경릉을 찾아가고 서일이 우문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우문호가 여전히 상당히 화가나 있는 것을 보고, “나리, 뭐가 화가 나신 겁니까? 그저 말 한마디가 아닙니까? 두 분이 그 많은 풍파를 함께 겪어 오셨는데 어째서 고작 한 마디 말때문에 싸우고 아이들을 나누겠다고 하십니까?”우문호가 김이 빠져서 이번 싸움은 왠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생각에 내가 틀렸어?”“이 일에 잘잘못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말 한마디 아닌가요? 맞고 틀리고 어디 있다고 아이를 나눠요? 말도 안 되죠. 나리답지 않으세요.”우문호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심호흡을 하더니 정신도 약간 멍 한지,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마음이 심하게 초조하고 특히 홍엽이란 이름을 들먹이면……”“그럼 들먹이지 않으시면 되죠.”“하지만 그 이름이 계속 마음 속에서 떠올라.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 게다가 한번 떠오르면 경호에서의 말도 생각나는 게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아. 이번에도 말을 꺼내자 마음이 어지럽고 초조한 것이 화가 치밀어. 남강 북쪽에 오기 전에는 그 인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홍엽이 고독 어쩌고는 할 줄 모르니 아마 나리의 심리작용일 겁니다. 설마 홍엽이 정말 태자비 마마를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태자비 마마 성품이 어떤 지 나리께서 제일 잘 아실 겁니다.” 서일이 말했다.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심리작용? 우문호는 원 선생을 완전히 믿고 있고 홍엽이 원 선생을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전혀 믿지 않는다. 원 선생이 싸울 때 한 몇 마디 말은 기분 나쁘긴 하지만 예전이었으면 그저 속이 좀 쓰리고 넘어갈 일을 왜 이번엔 심하게 성질을 부린 걸까?사식이도 원경릉을 끌고 주방으로 갔다. 사식이가 역관 전문 요리사는 밖으로 쫓아내고 밀가루를 반죽해 원경릉을 위해 칼제비를 만들더니 원경릉에게 권하며, “원 언니랑 태자 전하는 왜 그래요? 작은 일가지고 싸우고, 그러면 안돼요.”원경릉이 몇 입 먹
부부싸움의 끝사식이가 웃으며, “마마는 사실 가난한 게 아니라 돈을 다른 사람에게 쓸 뿐이죠, 저와 서일에게 준 집은 은자 수만 냥을 쓴 거라고요. 자신과 태자 전하께만 야박하시죠. 출신부터 찬란하신 북당의 태자 전하께서 손에 변변한 은자도 없이 마마와 같이 허리를 동여매고 살고 있다는 것자체가 이미 태자 전하께서 괜찮은 분이란 뜻이예요. 태자 전하께 화내지 마세요.”원경릉이 구시렁거리며, “어쩌자고 서일의 임금을 떼 먹은 거야? 얼마야?”“별로 안돼요, 서일도 따질 마음 없고요. 그러자고 들면 집 값 내놔야 하잖아요, 아이고 맙소사!” 사식이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서일도 사실 엄청 쩨쩨하다.둘이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원경릉도 화가 풀렸지만 그러고보니 좀 이상한 게, 전에 우문호와 기껏 다퉈봤 자 입이나 삐죽거릴 뿐이었는데 오늘은 어쩌자고 아주 세상을 뒤집어 엎을 듯이 아이를 나누고 헤어지자고 까지 한 걸까? 말이 심했다.“태자가 홍엽을 거론하니까 화가 나서 뜬금없이 도발한다는 생각에. 앞으로 홍엽과는 역시 왕래를 최대한 하지 않는게 좋겠어. 아무래도 느낌이……” 원경릉이 말하다가 순간 놀랐다. 하지만 또 그다지 가능성이 있어보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느낌이 어떤 데요?” “아냐, 사식아. 고마워. 일찍 가서 쉬어, 내일 또 길을 떠나야 하는데.” 원경릉도 다 먹고 일어났다.두사람이 정원으로 나가자 서일이 사식이를 기다렸다가 같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우문호는 복도 앞 돌계단에 앉아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쳐다봤다. 쌩쌩 부는 바람을 맞아 머리는 약간 흐트러져 있고 얼굴엔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원경릉이 가서 우문호에게 손을 내밀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힘껏 끌어당기더니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데 두서없이 약간 초조하게, “미안해, 내가 어리석었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목을 끌어 안으며, “지났는 걸, 우리 다시는 화내지 말자.”“응!” 우문호가 원경릉의 차가운 이마에 입술을 대고
경성에서 첫날경성으로 돌아와서 우선 아이들을 찾으러 이리 저택으로 갔다.헤어진 지 오래돼서 우리 떡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을 게 틀림없으니 아이들을 같이 안아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어라? 아이들은 마당에서 이리파 사람들과 어찌나 신나게 노는지 엄마 아빠가 돌아온 걸 보고도 한 번 활짝 웃어주더니 달아나 버렸다. 아이고 썰렁해.그러나 만두 늑대가 미친듯이 돌진해서 만두의 다리에 매달리자 만두가 늑대를 껴안고 키스를 퍼붓는데 엄마 아빠 위상은 늑대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이리 나리가 소매를 접고 나왔는데 온통 흰 옷이 바람에 산뜻하게 나부끼고 긴 속눈썹이 살짝 말려 있으며,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봉황의 눈매를 하고 약간 비웃는 듯, “올 필요 없는데, 와도 못 가, 저들은 여기서 몇 년 머물겠다고 했거든.”우문호가 욱해서, “진짜 이 양심도 없는 녀석들, 쌍둥이가 있다 이놈들.”유모들이 쌍둥이를 데리고 왔다. 못 본 사이에 쌍둥이 얼굴은 예전보다 포동포동 윤이 나는데 원경릉이 걱정돼서 쌍둥이 눈을 봤으나 원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해서 안심이다.부부가 각자 한 명씩 안고 우문호가 우리 떡들에게 소리치며, “집에 가자!”우리 떡들이 온통 땀에 젖은 채 달려와 만두는 늑대 귀를 잡아당기며 애원하는데, “아버지, 엄마, 우리 이틀만 더 있다가 가면 안돼요?”‘안돼!” 우문호가 눈을 부라리며, “내일 입궐해서 황조부, 태조부께 문안 드릴 거야.”“다음에요!” 만두가 기세 좋게 선언하고 뒤를 돌아 모두와 와글와글 시끌벅적 달려갔다. 우문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기 딱 좋은 자세로 말이다.‘어쩔 수 없지, 쌍둥이만 데리고 가는 수밖에.’원경릉이 이리 나리에게, “그럼 이틀만 더 수고해 주세요.”“괜찮아, 미련없이 일괄 처분할 거면, 나한테 해. 가능하니까.” 이리 나리가 호탕하게 말하며, “부르는 대로 주지.”우문호가 째려보면서, “안 팔아요. 잠깐 보내는 거예요.”이리 나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그러던 지요.”우문호가 안을 흘끔 보
황제 와인, 황귀비 팩“사실 황조부께는 커피가루 한 봉지면 충분해, 술 담배는 좋지 않아.” 원경릉이 말했다.“맛만 보시라고 하자.” 우문호가 말했다.“맛 보는 거로 그치지 않을 거 같으니까 그렇지.” 하기야 어찌되었든 엄마 아빠의 정성이고 우문호도 이렇게 하는 걸 좋아하니 안 드리는 것도 좀 그런 것 같다.정리를 마치고 두 사람이 자러 가 눕더니 우문호가, “나중에 이 선물 누가 준거라고 할 거야?”원경릉도 이 문제를 생각했던 터라 슬프게, “태후 마마께서 주셨다고 할까?”“하지만 대주에 이런 건 없는 걸.” “괜찮아, 어쨌든 태후 마마께서 어떻게 하신 거라고 하면 되지.”“마시고 완전 반해서 태후 마마께 더 달라고 하면?”“그건 우리랑 상관 없잖아, 본인이 가시라고 해.” 원경릉도 이번엔 쪼잔하다.우문호가 약간 안타까워서, “할 수 있다면 알려드리고 싶어, 이건 장인 어른의 마음이라고.”원경릉은 우문호의 팔 베개를 하고 작은 소리로, “괜찮아,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않으실 거야.”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소요공 저택과 주재상 저택에 사람을 보내 그들도 입궐해서 태상황과 같이 술 품평을 부탁드렸다.초왕부에서 청하는 것이라 태자비가 허락한 거구나 싶어 소요공과 주재상은 옳다구나 싶다. 그러니까 오늘은 태상황이 신나게 술을 즐길 수 있다는 말로 이런 기회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부부는 입궐해서 먼저 명원제에게 문안했다. 명원제가 곧 회의가 있어서 바쁘기 때문이다.와인 한 병을 올렸는데, 수입이다 보니 전부 영어로 써있는데 명원제는 보자마자, “흠, 이건 병여도의 문자구나. 대주에서 온 거군.”“예, 그렇습니다!”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포도주?” 명원제가 물었다.“예!” 우문호는 명원제가 마셔 보셨다는 걸 알아차렸다. 남강 저쪽에서 공물로 포도주를 진상한 적이 있고, 야광잔도 보냈었다. 아쉽게도 술이 별로 없어 나눠 마시지 못한 지라 그 맛이 줄곧 명원제의 마음 속에 몇 안되는 그
북당의 삼대 거두 현대 문물을 맛보다건곤전에 도착하자 푸바오가 달려 나와 신나게 원경릉의 다리에 뛰어 오르며 멍멍 짖었다.원경릉이 한 손으로 안으며, “어머나, 푸바오, 요즘 뭘 먹은 거야? 공처럼 빵빵해졌네.”푸바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심하게 경계하며 멍멍 짖는데 “어? 나 간식 안 줘?’원경릉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푸바오를 안고 건곤전으로 들어가 태상황을 알현했다.북당의 삼대 거두가 태사의에 의연하게 앉아 있는데, 태자 부부가 오자 얼굴에 기대의 표정이 가득하다. 원경릉이 사람을 보내 알릴 때 대주에서 희귀한 담배와 술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저 세명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태상황을 안 본 사이 태상황도 살이 찌고 안색도 괜찮은 게 편안하게 보낸 듯 싶다. 예를 취한 뒤 우문호가 선물을 개봉하자 술 담배 커피가 가득하다.태상황이 시가 하나를 쥐고, “이게 담배인가? 허, 이 상자가 참 정교하구만. 철로 만든 건가? 위에 글이 있는데 잘못 썼군, 담배를 피우는 게 건강에 해롭다니? 흥, 글도 잘못 쓴 걸 보니 이치도 맞지 않겠어.”태상황이 냄새를 맡아보더니 참지 못하고 전율했다. 전에 담배를 끊었다면서 실은 원경릉이 간 뒤에 매일 문 앞에서 몇 모금 씩 빨아야 마음이 편안해 졌다.“맞아요, 시가는 맛이 강하니 하루에 한 모금입니다.” 원경릉이 가져 와서 안에서 3개피를 꺼내더니 세 거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성냥을 꺼내 그 자리에서 세 사람의 시가에 불을 붙여줬다.태상황이 보고 다급하게, “어허, 이렇게 빨리 붙이면 어떡해? 내 담뱃대는, 어서 가져와, 낭비하면 안되니까.”“담뱃대 필요 없어요. 이대로 피우시면 돼요. 입술에 대고 들이 마시세요.” 태상황의 미심쩍어 하며, “이렇게 마신다고?”“맞아요!”셋이 얼굴을 마주하더니 이렇게 담배를 피우는 걸 본 적이 없지만 신문물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라, 태상황이 먼저 한 모금 빨아보는데 이 시가라는 것이 확실히 세다. 한 모금 빨았을 뿐인데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태상황과 원경릉의 데이트건곤전 마당은 바람이 센 편이라 원경릉이 사람을 시켜 망토를 하나 더 가져오게 하고 태상황을 꽁꽁 싸매고 손난로를 찔러 넣었다.태상황이 귀찮아서, “난 이렇게 허약하지 않아.”“날이 차서 많이 입어도 괜찮아요.” 원경릉이 태상황의 팔을 붙잡자 태상황이 몇 번이나 밀어냈지만 원경릉이 달라붙어서 어쩔 수가 없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같이 걸었다.“상선은 상태가 안정적인가요? 있다가 가서 볼 게요.” “여전히 그렇지 뭐, 먹고 마시는 건 정상인데 요즘 좀 게을러졌어. 재촉하는 사람이 없으면 몸을 움직이려고 안 해.”“그러면 안돼요.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원경릉이 미간을 찡그렸다.태상황이 어두운 눈빛으로, “나이를 먹었으니까.”“무공을 수련한 사람이, 바탕이 좋은데 자꾸 노력하면 회복하죠. 태상황 폐하랑 99세까지 계셔야 해요.”태상황이 웃으며, “99살은 안 바래. 7~8년만 살 수 있어도 아이들이 큰 걸 보니까 과인은 만족이야.”“그건 아마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실 걸요.” 원경릉이 웃었다.두 사람이 정자에 들어가서 원경릉이 바람이 세다고 걱정하자 휘장을 내리고 사람을 시켜 난로를 피워 한기를 몰아냈다.“다섯째와는 아직 잘 지내?” 태상황이 원경릉을 쳐다보는 눈빛에 자상함이 느껴진다.원경릉이 고자질하며, “아뇨,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싸웠어요.”“싸우는 거야 일상이지. 크게 다퉜으면 과인이 준 어장은 어디다 삶아 먹었어? 그녀석은 너무 방자하게 두면 안돼.” 태상황이 눈을 치뜨며 손자를 전혀 도와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원경릉이 웃으며, “싸우다가 아이를 나누자는 얘기까지 헀지 뭐예요.”“아이를 어떻게 나눠? 그 놈이 꺼지면 꺼졌지 애들은 줄 수 없어.” 태상황이 씩씩거렸다.원경릉이 추임새를 넣듯이, “맞아요, 제가 딱 그렇게 생각했거든요.”태상황이 원경릉을 보며, “싸우는 건 가능해, 하지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안된다. 아이를 나누니 하는 말은 앞으로는 다시는 하지 마라.”“네, 이번에 교훈을 얻었어요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