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떡들과 재회다들 또 재잘재잘 얘기가 계속되자 요부인이 일어나 사람들을 쫓아내며, “됐어요, 태자비는 이제 막 깨어났으니 쉬어야 합니다. 다들 그만 돌아들 가시고 내일 다시 오세요.”사식이가 기분이 좋아 깝죽거리며, “요부인께서 완전 초왕부 집사를 맡고 계신데 아예 초왕부에 사시는 게 어떠세요, 매일 왔다 갔다 고생 안 해도 되고.”요부인이 때릴 듯한 자세로 웃으며, “하여간 요 계집애 까불거리기는, 내가 만약 여기 살면 너만 편하게 해 주지, 나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마라, 난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아.”“조용히?” 미색이 ‘풉’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그러네요, 지금 매일 강아지 끼고 진짜 조용하신 데 마음은 고요하지 않은 게 문제죠. 어디 그렇게 쉬어질 분인 가요?”“가, 가, 가버려!” 요부인이 사람들을 내쫓고, “난 좀 조용하게 우아 떨면 안돼? 다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정색하긴 하여간.”다들 방이 떠나가게 웃고 각자 흩어졌다.요부인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따스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며, “잘 쉬어, 내일 다시 올 테니.”원경릉이 입꼬리에 미소를 머금고, “초왕부 대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 쳐들어 와도 좋고, 장기 숙박도 환영합니다.”“얼른 자!” 요부인이 눈을 부릅뜨더니 돌아서서 나갔다.원경릉이 천천히 눈을 감자 마음이 술렁거렸다. 그녀가 깨어났다는 건 주지가 성공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 즐거워야 마땅하지만 그 약품이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게 아니라 결국 걱정이 된다.원경릉의 몸은 아직 허약한 상태로 순간 못 느꼈지만 전과 뭔가 다르다.원경릉은 잠들지 않고 일어나 죽을 조금 먹고 목욕을 하고 더러웠던 자신의 몸을 정리했다.머리를 말리는 동안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아이들이 외할머니 댁과 초왕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얘기를 듣더니 눈이 커지며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맞아, 엄마. 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 봤어요.” 만두가 즐겁게 말했다.“저도 봤어요!” 찰떡이
취하니 헛 게 보여만두 반응이 제일 빨라서, “저 바로 자러 갈게요.”세 녀석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경단이도 뒤쳐지기 싫은 지 누가 먼저 몸을 빼앗나 경쟁하는 것 같다.원경릉은 방금까지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머리가 윙윙 울리며 지금은 심하게 어지럽다. 태양혈도 펄떡펄떡 뛰며 아파서 침대에 눕자 묵직한 감각이 다시 덮쳐오더니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 같다.원경릉이 머리를 때리며 최선을 다해 정신을 차려 우문호가 돌아오는 것을 간절히 기다렸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나 얘기할 수 있다면.하지만 덮쳐오는 어둠에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눈을 감고 잠인지 혼수상태인지 빠지고 말았다.우문호는 해시가 지나서 서일과 초왕부로 돌아왔다. 탕양이 아직 잠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또 취했다는 걸 알고 원망하며, “오늘밤 어떻게 취하실 수가 있습니까? 서일 네가 좀 챙겨드렸어 야지?”“챙길 수가 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건배를 청했는지 아세요? 구사와 호대장군이 엄청 막아 주셔서 그나마 이정도지, 아니었으면 훨씬 끔찍하게 취하셨을 걸요.” 서일도 머리가 무겁고 휘청거리는 게 적지 않게 마셨다.“어휴, 일단 모시고 들어가, 해장국 끓어오라고 할 테니.” 탕양이 얼른 갔다.서일이 소월각으로 들어가 우문호를 나한상에 던지고, “나리, 알아서 주무세요. 전 나가서 토하고……”서일이 쏜살같이 뛰어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웩’소리가 들리더니 그야말로 처참하다.우문호는 완전히 술에 꼴은 상태가 아니라 머리가 깨질 거 같고 억지로 몸부림을 치며, “어, 오늘밤 원 선생 머리 감겨줘야 하는데.”기라와 만아가 들어와 시중을 듣다가 이 말을 듣고 기라가 얼른, “그럴 필요 없어요. 씻으셨어요. 나리, 똑바로 서 보세요……만아야, 빨리 타구 가져와, 나리 토하실 거 같아.”만아가 바로 달려가서 타구를 가져오자 우문호가 한 손으로 받아 들고 속이 안 좋아서 죽을 것 같은데 위가 완전 뒤집혀서 오히려 토하지 못했다
깨어난 연인만아와 기라가 한참 멍하니 있다가 상황을 받아들이고 얼른 와서 탁자와 의자를 옮기자 우문호가 벌떡 일어났고, 원경릉은 맨발로 바닥에 내려와 우문호 앞에 섰다.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단색의 널찍한 옷으로 뚱뚱해 진 배를 가리고, 맨발로 뒤뚱거리는 펭귄 같은 모습으로 갑자기 우문호 앞에 나타난 것이다.우문호가 찰싹하고 자기 얼굴을 때리고 원경릉을 똑바로 보더니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리는데, “세상에, 내가 오늘밤 너무 취했네.”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손을 뻗어 우문호를 일으키며, “술 잘 마시는 게 능력이야? 그러다 죽을 거야?”우문호는 자기 팔에 닿은 가느다란 다섯손가락을 보고, 다시 원경릉의 창백하고 깨끗한 얼굴을 보는데, 사람 형상이 눈앞에서 계속 움직이다가 돌아섰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침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만아와 기라에게, “너희들도 태자비가 보여?”만아와 기라는 취객의 바보짓에 지쳐서 일제히, “나리, 저희 눈 안 멀었어요!”우문호의 강철 집게 같은 손가락에 원경릉은 갑자기 손목을 잡혀 눈 앞이 캄캄해 지며 우문호의 가슴팍에 확 끌어당겨졌다. 우문호의 단단한 가슴에 원경릉의 코를 부딪혀 눈물이 찔끔 나오게 아픈데 우문호가 죽을 듯이 자신을 가슴팍에 꽉 눌러 숨도 못 쉬겠고 배도 눌렸다. 취한 인간이 머리는 멍한 주제에 힘은 또 장사라, 원경릉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우문호의 등을 치며 버둥거렸다.우문호는 술기운에 마비된 이성이 돌아오고 제정신이 차려지면서 그제서야 원경릉을 안고 있는 것에 현실감이 느껴지며 그간의 허전함이 일순간에 채워졌다.우문호의 입술이 원경릉의 귓가, 머리카락, 이마에 키스하며 눈물을 떨구고는 목이 메어, “다시 못 깨어나면 나 미쳐버렸을 거야.”원경릉이 우문호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약간의 틈을 만들어 겨우 숨을 헐떡이며 이를 악물고, “안 풀어주면 나 숨막혀 죽어.”우문호가 화들짝 놀라 바로 풀어주자 얼굴이 벌게져서 헉헉대는 원경릉을 보고, 자신이 방금 감격한 나머지 너무 힘을 준 게 미안하
어떻게 깨어났을까흐릿한 불빛 아래 휘장이 나부끼고 바깥에서 가을 바람이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오늘밤 궁에서 마신 개선의 술이 어찌 한 침대에 있는 사람만큼 우문호를 취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취하기 시작하니 아주 끝까지 가고 싶다.한참 뒤 열정이 물러간 뒤 이성이 점점 회복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 끌어 안았다. 원경릉이 혼수상태에 빠진 건 넷째와 상관없다는 것을 알고 우문호는 그제서야 안도하며, “만두가 그러는데 당신이 깨어나기까지 10일에서 보름은 필요하다더니 어떻게 시간을 당겼어?”“나도 몰라, 내일 만두가 돌아오면 물어 봐야지.” 우문호가 눈을 부릅뜨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럴 리 없을 거야, 나도 일어 났으니까.”“그런데 당신 뭔가 이상한 데는 없고?” 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물었다.원경릉이 눈을 감고 바깥 소리를 가만히 듣는데, 그녀가 막 시간을 거슬러 왔을 때 굉장히 먼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그 뒤로 이 능력이 조금씩 사라져 만약 다시 주사를 맞은 거면 반드시 이전의 모습 같아야 할 것이다.“어때?”원경릉이 눈을 뜨고 걱정이 가득한 우문호의 얼굴을 보고 본인도 이상하다고 느끼며, “모르겠어, 혼수상태 전보다 약간 더 좋은 정도인데 전 같은 그런 상태는 아니야.”“그건 어떤 상태인데?” 우문호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부적응은 몸에 보이는 것으로 어떤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원경릉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상한 느낌으로 자신이 동면에서 막 깨어난 동물처럼 천천히 상태를 회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단 만두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어떻게 된 건지 정리해 봐야겠어.” 원경릉 자신도 이해가 안돼서 우문호가 걱정할 까봐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꽉 쥐고, “다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자, 이번에 죽을 만큼 놀랐다고.”“그럴 리 없을 거야, 나도 깨어났잖아.” 원경릉이 다독거려주었다.우문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원경릉을 걱정 어린 눈빛
깨어난 원인주진은 얘기를 듣고 안개속에 사로잡힌 듯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원경릉의 지금 상황으로 절대 다른 시공간의 몸을 제어할 수 없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상태다.“안되겠어, 실험실에 돌아가서 너네 엄마를 스캔해 봐야겠어.”“나도 갈래요!” 만두가 폴짝거리며, “엄마가 그랬는데 엄마의 모든 상황을 알아오라고 했어요. 저도 따라가야 해요.”주진이 만두를 안아 올리며, “그래, 너도 같이 가자.”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주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주진이, “지금은 뭐라고 답을 드릴 수가 없어요, 우선 CT결과를 보죠.”“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 주게.” 원교수가 말했다.주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돌아올 게요, 기다리세요.”“그래요, 어서 가봐요.” 원교수가 엄마의 어깨를 감싸며 복잡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배웅했다.문이 닫히고 엄마가 원교수의 어깨에 쓰러져, “깨어났다는 말은 괜찮다는 뜻이죠 그렇죠?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죠, 주진이 2단계 실험이 실패했다고 하던데.”“깨어났다는 건 괜찮다는 뜻일 거야, 우리 일단 넘겨짚지 말자고, 제풀에 놀라니까.” 원교수는 아내의 정신 상태가 자극을 이겨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자신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주진과 만두는 거의 해 뜨기 직전에 돌아왔는데 주진의 손에 산더미 같은 자료와 영상자료가 있고, 얼굴은 이미 상당히 놀란 상태로 CT와 뇌파를 원교수에게 보여주며, “보세요!”원교수가 자세히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며, “이……이게 경릉이 거라고?”“맞아요, 몇 번이나 반복해 봤어요. 나오는 결과는 똑같아요. 선배의 뇌세포는 분열하고 재생하고 있어요. 그리고 뇌파는 뇌전증 발작을 보이고 있고요.” 주진이 원교수를 보니 짐짓 평정을 가장하고 있으나 눈빛은 경악하고 있음이 느껴졌다.“이……이 뇌전증 발작 뇌파는 간질인가요? 아니면 뇌에 다른 이상이?”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돌아온 원경릉만두가 어젯밤 주진과 연구소에서 원경릉의 신체에 진행한 일련의 검사결과를 낱낱이 원경릉에게 알리고, “주지 스님 말씀이 엄마에게 얘기하면 엄마가 어떻게 된 건지 알 거라고 했어요.”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원경릉이 입을 열어, “이건……”“결론만 얘기해, 결과가 좋은 거야 아니면 나쁜 거야?” 우문호는 자신을 잘 안다. 뇌파가 어쩌고 하는 건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원경릉이, “표면적으로 보면 결과는 좋아. 하지만 계속 관찰해 봐야할 것 같아.”“뭘 관찰해?” 우문호가 물었다.“뇌세포가 계속 끊임없이 재생되는지 아닌지 확인 해야지.” 원경릉은 속으로 좀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생사여부와 상관없이 이 연구는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게 앞으로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주지 스님이 또 뭐라고 하셨어?” “엄마가 자기한테 말하는 거 잊은 거 없는지 물어봤어요, 계속 연구할 거라고.”원경릉이 고개를 흔들고, “없다고 얘기해 줘, 전부 내 문서에 있어. 그리고 모든 연구를 멈추라고 해. 더 하면 안돼, 더하면 상황은 통제할 수 없어질 거야.”연구를 계속 하면 인간의 대뇌를 조금 더 개발 할 수 있고, 그래서 문명이 한 걸음 더 크게 내딛을 수도 있지만 세상은 너무 똑똑할 필요 없다. 평형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자신이 왜 이 연구를 시작했는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므로 모든 것을 전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원경릉의 안색이 좋지 않자 우문호와 만두 부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궁했다.태상황은 여전히 돌계단에 앉아 있으나 더이상 왼쪽에 상선이 없다. 태상황은 누가 상선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낮은 걸상에 차를 가져다 놓았지만 벌써 다 식어 빠졌다. 푸바오는 발 아래 엎드려 있고, 가을 바람이 낙엽을 쓸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먼저 우리 떡들이 달려 들어오고 이어서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상선과 만아상선은 입술을 달싹이며 눈에 간절한 희열이 넘친다.원경릉이 약상자를 가져와서 상선을 검사했다. 전에 계속 상선은 소홀하게 생각했는데 혈압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마음이 괴로웠다.“일어날 수 있어?” 태상황이 물었다.원경릉이 청진기를 치우고, “내일 노마님께 입궁하시라고 할 게요. 침에 정통하셔서 침을 놔 드리실 거고, 저는 함께 치료할 약을 처방해 드릴 게요. 다시 일어나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예요.”“봐 들었지, 과인이 그랬잖아, 넌 괜찮을 거라고.” 태상황이 원경릉의 말을 듣고 바로 상선을 나무랐다.상선은 삐뚤어진 입으로 웃는 모습이 아이 같다.원경릉이 몰래 한숨을 쉰 것이 사실 상선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기 때문으로, 주된 원인은 나이가 많고 신체 기능이 천천히 쇠퇴하고 있다. 당연히 다시 일어서는 건 불가능한 건 아닌 게 어쨌든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니 힘들어도 일어설 수는 있다. 상선의 나이엔 굉장히 힘들지만 말이다.원경릉 말에 마치 보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태상황과 상선은 순간 기뻐졌다.원경릉은 뒤에 태상황과 한동안 얘기를 나누고 서야 갔는데 갈 때 태상황이 갑자기 원경릉을 불러 세우고, “내일 또 와!”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태상황의 절박한 눈빛으로 보고 마음이 아리면서 얼른, “내일 또 올 게요.”태상황이 웃었다.너무나 갑작스러운 웃음이었다. 원경릉은 태상황에게서 한번도 이렇게 명랑한 웃음을 본 적이 없어 눈가가 뜨거워지는 바람에 얼른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왔다.“태상황 폐하께서 많이 늙으셨어.” 나가며 우문호가 불현듯 탄식했다.“응!” 원경릉은 햇빛이 고요하게 금색 유리기와 지붕에 흩뿌려지는 걸 보며, 궁은 오랜 세월 동안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궁 안에 사는 사람은 매일매일 늙어간다.두 사람은 명원제에게 문안을 갔는데 우리 떡들이 명원제에게 엄마가 깨어났다고 얘기해서 명원제는 황귀비와 호비를 불러 같이 기뻐하며 화목한 한때를 가졌다.갈 때
동생만아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원경릉은 만아와 같이 있으면서 어떨 때는 모르는 게 없는 거 같다가, 또 어떨 때는 아주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했다. 하지만 만아에게는 어떤 곤란이 닥쳐와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있다.그리고 만아에게는 선한 마음이 있는데 선함은 똑똑한 것보다 훨씬 귀한 것으로, 전에 주명양을 따를 때 주명양의 고압적인 권력에 맞서 만아는 결국 주명양의 악독함에 반항하는 내면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원경릉은 주명양을 떠올리며, “맞아, 주명양의 아이는 태어났어?”“알게 뭐야?” 우문호가 이제 우문군 쪽은 아예 관심을 끊은 데다 주명양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면 파리를 삼킨 것처럼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큰형이 아이를 봤다는 소식을 못 들었으니 아이가 태어났는지 모르겠네.”“누가 또 아이를 낳아요?” 경단이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와서, “일곱째 숙모?”“일곱째 숙모는 곧 낳으실 거야.”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작은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만약 여동생이 태어나면 제가 안고 가도 된 데요.” 경단이가 즐거운 듯 말했다.원경릉이 어이가 없어서, “왜? 엄마 배속에 여동생이 있는데 하필 다른 집 여동생을 탐내?”“엄마, 하지만 찰떡이는 남동생을 원한데요.” 경단이가 착하게 원경릉의 다리를 베고 누워 별 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그러니까 동생은 찰떡이 원하는 대로.” “어, 동생 챙길 줄 아네?” 원경릉이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경단이가 원경릉의 소맷자락에 매달려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나 착하죠?”“너무 착해!” 원경릉이 작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칭찬해 줬다.“그럼 엄마가 형에게 나도 외할머니집에 한번만 다녀오게 해주세요.” 경단이가 몰래 만두 얼굴을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만두가 듣더니 순간 이를 갈며, “공평하게 경쟁하기로 얘기 끝났어, 엄마 끌어들이지 마, 이 비렁뱅이가 떼 쓰고 있어!”“조용, 떠드는 사람은 내려!” 우문호가 화나서 눈을 부릅뜨며 진작 세 녀석을 혼내고 싶었지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