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집사할머니가 짬을 내서 원경릉과 궁에 들어가 상선에게 침을 놔 준 뒤 어의에게 매일 해야 할 일을 설명했는데 어의도 사실 다 알고 있지만 할머니 덕분에 효과가 빠른 혈 자리를 몇 군데 더 추가할 수 있었다.우문천의 새 왕부는 얼마 안가 곧 이사할 수 있는 상태로 황후도 와서 귀찮게 하지 않아 우문천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이때 원경릉은 태상황과 같이 있는데 황귀비가 정집사를 찾았으니 오라고 불렀다.원경릉이 바로 갔더니 황귀비 전에서 정집사를 볼 수 있었다.정집사의 나이를 가늠할 수 가 없는 것이 머리는 하얗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잔뜩 올라와 있는데 특히 왼쪽 눈 아래 크게 있으며 눈 밑에서 볼까지 거기서 귀 뒤쪽까지 있는데다 두 눈은 무심한데다 허름한 옷을 입고 두 손을 모아 쥐고 서있는데 손이 아주 거칠어서 손가락 마디가 갈라진 것이 줄곧 험한 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원경릉은 만아와 비슷한 점을 찾지 못하겠는 것이 분위기, 눈빛, 이목구비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다.“자네가 전에 나귀빈을 곁에서 모시던 정집사인가?” 원경릉이 물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태자비 마마께 아룁니다, 쇤네 전에 귀빈 마마를 모셨습니다.”“올해 몇 살이지?”그녀는 더듬거리며, “쇤네 마흔입니다.”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마흔? 겨우 마흔? 하지만 보기엔 60도 넘어 보이는데?’황귀비도 놀라서, “고작 마흔이라고? 어째서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지?”정집사가 두 손을 비비며, “마마께서는 타고난 자태가 아름다우시고 존귀하신 신분으로 어찌 쇤네 같은 것에 비하십니까.”“궁에도 험한 일을 하는 아낙들이 적지 않은데……” 황귀비가 주저하며 말을 잇지 않는 것이 황귀비가 고작 노비와 이 일로 얽히는 것으로 보여서 이다.원경릉이, “넌 남강 사람이냐?”“태자비 마마께 아룁니다, 쇤네 남강 노비입니다.”“만아라는 아가씨를 아느냐?” 원경릉은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기왕 정집사를 만났고, 우문호도 정집
이상한 정집사정집사가 가고 황귀비가 원경릉에게, “이렇게 하자, 태자비는 밖에서 하는 일이 많으니 적당한 아이를 찾아 노비로 사들여 초왕부에 들인 후 희상궁이 두어 달 데리고 가르친 뒤 아홉째 쪽에 보내는 거지, 지금 궁에 있는 사람 중에 뽑아서 내보낼 사람이 많지 않거든. 지난 2년간 폐하께서 한 무더기 사람을 청산하셨고, 순왕전하를 왕으로 봉하시고 왕부를 하사한 것이 꽤 급하게 이뤄져서 나도 맞춰서 준비를 못 했어. 내무부를 시켜 사람을 보내왔으니 8~10명 능숙한 사람을 골라서 일단 구색을 갖추고 초왕부에서 가르친 하인들을 순왕부로 보내면 될 거야. 정집사라는 사람은 도움이 안되겠어. 내 궁에서 상궁을 뽑아 보내는 걸로 내가 팔 걷고 나서지 뭐.”“이 일은 제가 할 게요, 애쓰지 마세요. 정집사는 어마마마께서 계속 사람을 보내 지켜봐 주시고, 왜 출궁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살펴 주세요.”다섯째가 정집사를 찾은 건 순왕부에서 아홉째 시중을 들게 하려는 목적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황귀비도 속으로 짐작하고 원경릉의 이 말을 듣고, “그래, 안심해라, 내가 사람을 시켜 지켜볼 테니.”원경릉이 인사하고 물러나 우문호에게 정십사를 만난 일을 얘기하며, “내가 보기엔 정집사와 만아가 닮았다는 기분이 안 들어, 정집사는 늙었고, 60이 넘어 보이는데 자기 말로는 마흔이래.”우문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늙었나? 그리고 안 닮았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습은 확실히 닮았어.”“이렇게 오래 됐는데 기억이 나?” 원경릉은 우문호의 기억력에 신뢰가 없다.“원래 인상이 없어서 그 사람을 기억 못하다가 아홉째가 그날 얘기하니 인상이 남았던 게 기억이 났어, 당신이 보기에 정집사와 만아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었어?”“정말 없었어.”“그건 어쩌면 같은 남강 사람이라 이목구비가 좀 뚜렷하고 그래서 비슷하다고 느낀 걸지도, 하지만 정집사의 태도는 상당히 이상해. 궁에서 숨어 지내며 힘든 일을 하는 한이 있어도 순왕부로 가서 아홉째 시중은 들고 싶지 않은 거잖
만아의 기억“만아야 너 어떻게 경성에 온 거야?” “할머니가 절 데리고 오셨어요.”“할머니는?”“할머니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제가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달아 가셨죠.” 만아는 두 분 얘기를 시작하자 괴로운 표정이다.“난처하게 해서 미안해.”만아가 어두워진 눈빛으로, “할머니들은 오실 때 병이 들어 계셨는데 우린 그때 은자가 없어서 매일 먹을 것도 없는 삶이었어요. 치료가 말이 되나요? 저도 어리고 돈 버는 법을 몰랐어요.”원경릉이 만아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하고, “몇 살에 경성에 온 거야?”만아가 생각해보더니, “몇 살이었더라? 쇤네 기억을 잘 못해서 아마 5~6살, 아니면 8~9살?”“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안나? 그럼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은 있어?” 원경릉은 만아가 먼저 고향 얘기를 꺼내고 아빠 엄마 얘기를 한 것을 기억했다. 단지 그땐 그다지 염두해두지 않아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만아가 어리둥절한 지, “엄마 아빠요? 제 엄마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을 걸요?”“돌아가셨을 거라고?” 원경릉은 만아의 주저하는 표정을 보고, “본인이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전에 만아가 집 얘기를 했을 때는 아빠 엄마, 아니면 가족 얘기를 했던 것 같아.”“그랬어요?” 만아가 놀라며 머리를 감싸 쥐고, “하지만 잘 기억이 안나요.”“원래 기억력이 없어?” 원경릉이 정색하며 ‘만아의 기억력에 분명 문제가 있어. 어떨 때는 갑자기 뭘 기억해 냈다가 또 어떨 때는 완전 잊어버리는 게 병인 거 아냐?’만아가 고민하며, “맨날 기억력이 없는 건 아닌데, 그게…… 쇤네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머리속이 어지럽고 약간 텅 빈 게, 마치 머리 한쪽에 바위로 막아 둔 곳이 있어서 거기는 못 들어가는 느낌이예요.”원경릉이 놀라서, “혹시 누구한테 저주 같은 거 걸린 거 아니야? 미혼술 같은 거? 너희 남강 사람들은 그 무고 주술 있잖아.”“그건 아닐 거예요. 쇤네도 저주를 거는 법을 아는데 만약 다른 사람에게 저주가 걸린 거면 알
최면“정집사요?” 만아가 머리를 쥐어 짜며 고심하더니 고개를 흔들고, “모르겠어요.”원경릉은 만아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그만, “만아야, 내가 너한테 최면을 한 번 걸어도 괜찮을까?”“그럼요, 태자비 마마께서 쇤네에게 뭘 하시겠다면 쇤네는 할 겁니다.” 만아가 착하게 말했다.원경릉은 우선 침향(沉香)에 불을 붙이고 장의자에 방석을 깐 뒤 만아를 편안하게 눕히고 의자 하나를 만아 앞으로 가져와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만아를 주시하며, “만아야, 지금 상상하는 거야, 너희 남강의 산, 물, 숲, 사람, 그리고 산속을 뛰어다니는 동물을.”만아가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장면마다 분명하지 않고 약간 모호하기까지 하다.“좋아, 이제 눈을 감아, 방금 네가 생각했던 그것들 다시는 생각하지 마,” 원경릉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것이, 마치 봄바람이 귀를 간질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순간 평온해 지기 시작했다,” 그 구불구불한 산길을 생각하면 안되고, 그 빽빽한 숲도 생각하면 안되고, 온 산을 마구 뛰어다니는 동물을 생각하면 안되고, 또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강물 위를 떠다니는 낙엽, 낙엽이 물 위에 일으키는 파문, 넌 다시 이런 걸 생각하면 안돼. 잊어버려.”원경릉의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며 만아는 남강의 자연에 대한 기억이 오히려 점점 분명해 지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자신에게 얘기할 수록 집념은 계속 거기서 배회하고 있다.산길 양쪽으로 산사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고, 붉은 과실이 길 쪽으로 늘어져 가끔 산사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려온다. 온 산은 오색찬란한 천사의 나팔꽃, 산 중턱에는 야생 백합이 피어 있어 어느 산길을 가도 뒤에는 토끼 한 마리가 따라와 고개를 돌리면 토끼가 풀무덤으로 숨어 한동안 나오지 못하곤 했다.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대답하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데 앞에 가는 커다란 뒷모습을 가진 사람은 그녀 혼자 돌아다니면 안된다고 하고 있다.그녀는 그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아빠!”그 사람이 뒤를 돌자 눈매는 모호하지만 부드
만아의 출생원경릉이 다독거리고 만아에게 돌아가 쉬라고 하고 기라에게 만아를 지켜보다가 뭔가 상황이 이상하면 바로 와서 알리라고 했다.늦은 시간에 우문호도 방으로 돌아와 원경릉이 물을 따라 주려 하자 우문호가 자리에 앉으며 손을 젓더니, “안 마셔, 저들과 얘기하면서 차를 어찌나 마셨는지 배가 꽉 찼어.”“어떻게 됐어? 남강왕은 왜 죽은 거야?” 원경릉이 앉으며 물었다.우문호가 낮고 무거운 기색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거였어. 저들 얘기가 소홍천 조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게 당시 시체를 처리해서 남강왕 일가 중에 남강왕 후궁과 둘 사이의 어린 딸의 시체는 찾을 수 없었으나 그 후궁은 남강왕에게 일이 생기기 전에 이미 떠나서 재앙의 순간에 없었던 게 분명해.”“그럼 남강왕과 후궁의 어린 딸은?” 원경릉 마음이 들썩거리며 어쩌면 만아 일지도 모른다.“행방을 알 수 없어, 집에 노비 둘이 달아나면서 그들의 어린 군주를 살리기 위해 데리고 도망갔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게 소홍천의 조사 내용으로, 분명 그럴 거야.”“그럼 어린 군주는 당시 몇 살이었어?”“8~9살 정도였을 거야. 이제 10년이 지났으니 어린 군주가 만약 살아 있다면 만아 정도 나이지.”원경릉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범인은 누구야? 찾아 낼 수 있어?”“당시 남강 북쪽 남자 무당이 보낸 사람이 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워. 남강 북쪽은 줄곧 남강왕의 치정에 복종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당시를 목격한 증인을 찾을 수가 없어. 도망친 노비와 어린 군주 외에 다른 사람은 전부 죽고 저택마저 전부 불태워 없애 버렸으니까.”원경릉이 부랴부랴, “저택이 불 탔다고?”“다 탄 건 아닌 게, 당시 범인이 철수한 뒤 부근의 백성들이 불을 꺼서 시체는 기본적으로 판별할 수 있었다고 해.”“남강왕이 돌계단에 엎드려서 죽었어?” 우문호가 놀란 눈으로, “어떻게 알았어?”원경릉이 등골에 소름이 쫙 돋으며, “맙소사, 자기야, 만아가 진짜 남강왕의 어린 딸일 지도 몰라.”“어떻게 아는데
만아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누군가 만아를 보고하고자 했으면 왜 경성에 남아서 보살펴 주지 않고 그렇게 힘들게 지내게 했을까?”“만아에게 들어보니 자기를 데리고 경성으로 온 할머니 두 분이 다 돌아가셨는데 올때부터 병을 앓으셨다고 했어.”“하지만 만아가 남강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특히 지금 남강에 가족이 남아있다고 어떻게 설명할 거야?”“그건……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막 뒤섞인 데다 본인이 했던 말도 본인이 잊어버리고, 만아에게 누군가가 기억을 주입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자기가 겪은 일이 아니니 빨리 흐릿하게 잊는 거고, 그런데 유독 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명확한 것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어.”“뭐가 이상해? 맞아, 만아가 정집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어?”“정집사라고 부르는 사람을 모른데.” “그럼 혹시 정말 닮은 사람으로 정집사와 만아는 꼭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닐 지도 모르겠네. 단지 그 정집사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어. 의외로 힘든 막일을 하더라도 궁에 남고 왕부에서 아홉째의 시중을 들고 싶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야. 역시 잘 살펴 봐야 되겠어. 정집사가 경성에 들어온 첫 남강 노비 무리인지.”“자기가 그랬지, 남강왕이 죽은 뒤에 대량의 남강 사람이 경성으로 쏟아졌다고. 그리고 2명의 남강 노비가 태상황 전에 침입해 태상황 폐하를 죽이려 했다고 말이야. 이 사건은 나중에 조사 했어?” “당시는 아직 태상황 폐하께서 퇴위 전이라 이 일을 조사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어. 내일 대리시에 가보도록 할 게. 대리시 말이 사건 문건이 있을 거라고 했으니, 아니면 금군 내부적으로 처리했을 거야. 일단 쉬어 당신은 밤 새면 안돼.”원경릉은 확실히 좀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으나 마음이 복잡한 게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우문호가 원경릉의 어깨를 안고 그윽한 눈빛으로, “잠 안 와?”“잠이 안 와.”우문호의 손이 진지하게 원경릉의 가슴을 더듬으며, “도와줄까?
호수에 빠지다기상궁이 만아 머리를 닦아주고 옷을 이미 바꿔 입혔는데 얼굴이 불쌍하도록 하얗게 질려 있고 기상궁의 품에서 헤진 헝겊인형 같다.원경릉은 만아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무거운데 침대 곁에 앉아 만아의 손을 잡고, “괜찮아, 괜찮아, 다들 있어.”“태자비 마마!” 만아가 원경릉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쇤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그래, 이제 괜찮아, 괜찮아.” 원경릉이 앞으로 옮겨가 기상궁에게 비키게 하고 자신이 만아의 몸을 안는데 만아가 아직 부들부들 떨고 있는게 느껴져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다독이기만 했다.녹주가 생강탕을 끓여와서 원경릉이 만아에게 단숨에 먹여 몸을 얼른 따듯하게 했다.만아가 착하게 약간 뜨거웠지만 단숨에 마시고 나더니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보더니 놀라서 벌떡 일어나려고, “죄송합니다. 태자 전하를 놀라시게 하다니 쇤네 백 번 죽어 마땅합니다.”“됐다, 누워,” 우문호가 손을 젓고, “너희들은 얘기하거라. 난 먼저 돌아갈 테니.”만아가 괜찮아 졌으니 원선생이 만아와 얘기 나누며 마음을 다독여주면 된다. 자신은 여기서 도울 일이 없다.우문호가 간 뒤 원경릉이 상궁들을 전부 들어오게 하고 문을 닫았다.만아의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쇤네가 악몽을 꾸었습니다. 꿈에 여기저기 불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고 그저 호수에 뛰어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서 태자비 마마를 놀라게 할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원경릉이, “너무 힘들면 생각하지 마.”“많이 좋아졌습니다,” 만아가 창백하게 웃으며, “태자비 마마를 염려케 해서 쇤네 뭐라고 사죄 드려야 할지.”“그런 남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일이 생겼을 때 너도 긴장하고 날 도와줬잖아.”“그건 쇤네가 당연히 할 일이고요.”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며, “내 맘 속에 누구한테만 의무인 건 없어, 날 도왔던 건 다 내 마음에 기록되어 있으니까.”만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태자비 마마는 정말 좋은 분이십니
남강왕돌아가서 우문호와 얘기하는데 우문호가, “지금 적어도 세 여자가 내 시선에 들어왔어, 우린 그들이 어디 있는지 진짜 신분이 뭔지 알아야 해. 하나는 목청청, 또 하나는 후궁 낭월, 나머지 하나는 정집사야. 이 세 사람 사이에 관계가 있는지도.”우문호가 뚜렷하게 빛나는 눈으로 계속, “만약 만아가 남강왕의 딸이면 우리가 남강을 평정하는데 상당히 우세를 점하게 돼. 남강왕의 전통은 세습 제도로 남녀의 구분이 없어. 만아가 남강왕의 딸인 게 밝혀지기만 하면 만아는 남강왕의 자리를 계승할 수 있고, 적어도 남강 남쪽 사람들 전부를 하나로 집결시켜 북쪽 사람과 대항할 수 있지. 따라서 침투하기에도 좋고, 반간계를 사용하기도 좋아. 적의 병력과 싸우지 않고 굴복을 얻어낼 수 있는 거지!”“하지만 만아가 정말 남강왕의 딸인 걸 알면 북쪽 사람들이 만아를 가만히 놔두겠어? 남강왕의 딸이 죽지 않았다는 걸 소홍천이 조사할 수 있었다는 건 북쪽 사람들도 조사할 수 있었다는 말이고, 북쪽이 지금 홍엽의 수중에 들어 있는데 홍엽은 분명히 남강왕의 딸이 경성에 있다는 걸 알아냈을 거야. 만아가 아주 위험할 수 있어.” 원경릉이 걱정하며 말했다.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홍엽이 만아의 신분을 알면 만아는 위험해 질 거야. 하지만 만아는 잘 숨겨왔어, 만약 둘이 매일 같이 지내지 않고 또 보친왕의 일이 있지 않았으면 어떻게 만아라는 일개 노비의 신분이 의외로 남강왕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우리가 역시 선기를 잡은 거야.”“홍엽이 경성으로 사람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원경릉이 말했다.“그리고 만아의 기억이 서서히 되살아 나면서 만아는 갈수록 더 많은 과거 일을 기억해 낼 가능성이 있어. 만아한테 그런 가능성을 얘기해 줘야 하지 않을까?”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일단 알리지 마. 지금까지 완전히 확실한 상황이 아니니 스스로 먼저 약점을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들키는 일이 없도록. 적은 지금 틈만 있으면 파고들려 할 거야, 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