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 살해 시도“태자비 마마, 최근 피곤하시니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희상궁이 걱정하며 말했다.“괜찮아, 적당히 알아서 할 게.” 원경릉이 관자놀이를 만지며 마차에서 내리는데 가을 햇살이 머리에 내리쬐니 정말 졸리다.원경릉은 먼저 태상황에게 문안 드리고, 태상황은 기분이 많이 좋아지셨다. 원경릉이 깨어나고 상선 일이 있은 뒤로 깨달음이 있었는지 알아서 담뱃대를 높은데 올려 두고 술도 입에 데지 않았다.상선이 침 치료 후 입이 계속 돌아가 있는 게 아니라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어 여전히 예전처럼 태자비에게 문안하고, 태자비 마마 고생하십니다. 태상황 폐하 고생이 많으십니다 등등의 말을 한다.희상궁이 상선과 얘기하고 원경릉이 태상황을 부축해 돌계단으로 나가 볕을 쐤다.농담 중에 원경릉이 슬쩍 던지듯, “황조부는 당시 두 사람의 남강사람이 난입해 살해하려고 했던 일을 아직 기억하십니까?”태상황은 소맷부리에 올이 풀린 자수를 떼어내며, “그 일? 그렇게 오래 된 일을 과인은 그다지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생에 살해 당할 뻔한 경험이 하도 많아서.”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무섭지 않으세요?”“무섭지. 무서워서 어디 해 먹겠어?” 태상황이 비웃으며, “제왕의 용상에 앉아 있으면 두려운 일이 많지. 내 목숨 생각하면 못 해, 무서워서 못 해”“황제란 것이…… 좋은 게 아니네요.” 원경릉이 마음속으로 좀 걸리는 게 있는데 태자인 우문호의 미래가 거의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라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이건 분명 원경릉도 우문호도 원하는 인생이 아니다.“좋은 거?” 태상황이 눈 웃음을 지으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누가 너한테 황제가 좋은 거라고 했어?”“기왕 그렇게 안 좋고 힘든 거면 목이 잘릴 위험을 무릅쓰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그 자리에 달려 가는 거예요? 진짜 난해하네요 난해해.”“사람은 말야, 마음속에 보통은 욕망이란 게 있거든. 끊임없이 노력해서 올라서야 해. 황제가 안 좋은 건 해봐야 알 거든. 안 해보면
정집사건곤전에서 나와 원경릉은 황귀비에게 갔다.황귀비는 사람을 시켜 과자와 신음료를 내오게 했는데 원경릉은 신맛을 잘 먹는 걸 보고, 매운 맛은 딸이고 신맛은 아들이라, 황귀비는 마음 속으로 이 아이는 아들이구나 생각했다.“그 정집사라는 사람은 오늘 일찍 와서 무릎을 꿇고, 궁을 나가 아홉째 시중을 들고 싶다고 하더구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게 이상해서 일단 답은 하지 않고 너한테 먼저 물어보려고.”“정말요?” 원경릉이 놀라서 ‘너무 빨리 바뀐 거 아냐?’“그래, 반시진이나 꿇어 앉아 있길래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했어.”원경릉이 좀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하죠, 맞아요 어마마마. 궁에 최근 무슨 소문 도는 거 없어요? 예를 들면 남강에 관한.”황귀비 곁에 집사가 입을 열어, “태자비 마마, 있습니다. 궁중에 최근 누군가 남강왕의 딸이 경성에 있다고, 궁에서 나가 일을 보고 온 자가 듣고 와서 온 궁에 떠들썩합니다.”원경릉이, “일이 갈 수록 재미있어 지는데요.” “재미있어? 그 정집사란 사람은 전혀 재미가 없더라.” 황귀비가 원경릉에게 해바라기씨를 집어주며 평소처럼 말했다.“전 다시 보고 싶어요.”황귀비가 알았다고 하고 손뼉을 치며, “그 사람을 오게 해라, 넌 세세하게 물어 보렴.”원경릉이 막으며, “아뇨, 서두르지 마세요. 내일 다시 불러요, 제가 내일 다시 올 게요.”만아와 그녀를 만나게 해서 정집사가 대체 누구를 위해 출궁하는지 알아보자..만약 만아 때문이면 내일 정집사가 만아를 보고 분명 내색할 것이다.신중을 기하기 위해 다음날 원경릉은 미색, 손왕비, 요부인, 원노부인, 그리고 예친왕비와 같이 입궁하며 만아를 분장시켜 미색과 원노부인 사이에 있게 했다.원경릉의 호소력은 상당해서 초대 명함만 돌렸을 뿐인데 바로 응답이 와서 원노부인과 예친왕비까지 전부 입궁에 응했다.만아는 이유는 모른 채 태자비의 명령대로 궁에 들어와 계속 미색의 주변을 따라다녔다.여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원경릉이 황귀비에게, “맞아요, 전에 어마
정집사와 10년전 자객미색도 관심을 보이듯, “고개를 들고 어디 좀 보자, 그 나이에 아홉째를 도와 집안 사무를 잘 살 필수 있겠느냐?”정집사가 미색의 말 대로 고개를 들어 스치듯이 미색을 흘끔 보고 이어서 만아의 얼굴을 봤다.원경릉이 보니 정집사의 몸이 분명히 딱딱하게 굳으면서 동공이 커지고 빛이 반짝했다. 비록 빠른 순간에 평정을 되찾았지만 원경릉은 정집사의 입술이 떨리고 두 손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하는 것을 느꼈다.정집사는 분명 만아를 알고 있다.하지만 만아는 정집사를 보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시키는 대로 미색 곁에 서있다.“쇤네…… 쇤네 반드시 순왕 전하를 위해 제대로 일할 것입니다.” 정집사가 눈을 내리깔고 예를 취하더니 두 손을 앞으로 교차하는 동작을 취하며 긴장된 마음을 완화시켰다.원경릉이, “확실히 지금까지도 가장 좋은 사람을 고르지 못했네. 자네가 과거에 순왕 전하의 시중을 든 적이 있다니 순왕 전하의 뜻을 잘 알겠지. 그럼 그렇게 정하고 내일 자네는 일단 출궁해서 상황을 보도록 하게, 순왕부에 들어갈 때까지 바쁠 것이네.”“예, 쇤네 태자비 마마께 감사드립니다!” 정집사는 감동한 눈빛이나 최대한 꾹꾹 눌러 참았다.원경릉이 찻잔을 들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지, 내가 전에 너에게 물었을 때는 출궁해서 순왕 전하의 시중을 들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어째서 지금은 또 생각을 바꿨지?”정집사가, “태자비 마마께 아룁니다. 쇤네 전에는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능력이 부족해 순왕 전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으로, 돌아가서 깊이 생각해 보니 귀빈 마마께서 예전에 쇤네에게 잘 해 주셨고 쇤네 힘이 있을 때 귀빈 마마를 위해 순왕 전하를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태자비 마마 안심하세요. 쇤네 반드시 순왕 전하를 위해 순왕부 안팎의 일을 잘 처리할 것으로 결코 황귀비 마마와 태자비 마마께서 눈 여겨 봐주신 은혜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이 말은 감정기복 없이 마치 각본
죽은 남강인원경릉과 우문호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남강왕이라, 역시 남강왕을 위해 입궁했던 거다. 그렇다는 건 꼭 시해가 목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그들 두사람은 뭔가 남강 내부사정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오직 입궁해서 황제 폐하에게 보고할 방법만을 생각했던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이 두사람은 죽임을 당해 그들은 남강왕이 누구 손에 죽었는지 안다고 해도 이제 알 방법이 없다.“그럼 그들이 입궁한 시기에 태상황 전에 쳐들어온 것 말고 뭔가 한 일은 없습니까?” 우문호가 물었다.나장군은 머리를 쥐어짜더니, “특별한 실마리는 없는데 아, 그렇죠, 당시 그들의 시체가 궁밖으로 내 보내져 남산의 시체더미에 버려졌는데 소신이 조사를 위해 시체에서 다시 실마리를 찾으려 했으나 누가 이미 시체를 가지고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가져갔다? 들개에게 먹힌 건 아니고?” 우문호가 말했다.“아닙니다. 소신이 다음날 남산 시체더미에 갔는데 시체는 들개에게 먹혔다 쳐도 옷이나 신발, 양말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없었습니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바꿔 말해 누군가 그들의 시체를 거둬서 장례를 치렀다?” 원경릉이 생각해 보더니, “만약 그렇다면 경성에는 분명 아직 그들 사람이 있겠군요. 그 뒤에 다시 추적조사를 하셨나요?”나장군이, “부근을 한 바탕 찾았는데, 대략 3리(1.5km)정도 산 위에서 돌을 쌓아 화장을 한 흔적을 찾았습니다. 남강사람의 풍습이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당시 그들의 장례를 치른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장 양식으로 보건 데 그 두사람의 신분은 평민 백성일리 없습니다.”“화장 양식?” 원경릉이 어리둥절해 했다.우문호가 설명해 주는데, “그래, 돌을 쌓은 것으로 신분을 알 수 있어. 만약 일반 백성이면 돌을 1층으로 쌓아 원형으로 두르고 시체는 원 안에서 화장하고, 귀족 관원 혹은 지방의 장로면 2층에서 5층까지 각기 다르게 쌓고 또 돌계단이 있어서 그것으로 신
황금 2천냥황후가 지금 궁중의 일에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명분은 여전히 내명부의 수장인만큼 황귀비가 황후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황후가 다 듣더니 별 말 없이 황귀비에게 조사를 명했다.그런데 황후궁 사람이 퍼트린 소문에 순왕 전하가 팔황자에게 황금 2천냥을 주었다는 것이다.순친왕이 출정 후 황제에게 하사 받은 황금이 천냥으로 전부 팔황자에게 주었다고 해도 고작 천냥에 불과한데 어째서 2천냥이라고 하지?황후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황귀비 사람을 불러 조사하게 한 결과, 팔황자의 황금이 뜻밖에도 천냥 전부가 내탕고의 인감이 찍혀 있었다. 팔황자는 동생이 자기에게 준 것이라고 궁 안에 사람에게 자신의 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미친듯이 사람을 쫓아내는 모습에 모두 기겁했다.황후는, “됐다, 이 금이 내탕고의 황금이든 아니든 전부 내가 메꾸도록 하마, 궁이 최근 태평하지가 못하구나. 내탕고에 도난사건이 있지를 않나, 황후궁에도 잃어버린 게 한 두개가 아니야, 심지어 팔황자 궁에도 물건이 여럿 없어졌는데 도둑놈의 심보를 알 수가 없구나. 금은 보석을 가져가는 건 그렇다고 치고, 장난감까지 가져가는 건 뭔가 특이한 취향이 있는 거 아닌가?”황귀비는 하는 수없이 사람을 순왕부로 보냈다. 궁에서 매년 사용하는 은자는 고정된 금액으로 황금 4천냥인데 이는 은괴 4만냥으로 바꿀 수 있으며 추석에 지출하는 비용도 이 안에 들어있다.따라서 없어진 금화를 되찾아 오지 않으면 황귀비는 회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혐의로 추석 때 지출하는 비용의 부족분을 메꿔야 한다.순왕부는 아직 난장판이었다. 원경릉이 만아, 사식이, 기라, 녹주 등을 데리고 와서 돕고 미색도 여럿을 데리고 왔지만 안주인이 없는데다 아홉째는 무관으로 집안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궁에서 온 사람이 조사하는데 황후가 보낸 사람까지 있었다. 정집사도 사람들을 지휘하며 바쁘게 일하다가 사식이가 만아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봤다.정집사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더니, 잠시 동작을 멈칫하고 돌아서서 계속 명령을 내리는
순왕 도둑 사건이때 미색이 입구에서, “사식아, 만아야, 너희들 이리 좀 와봐.”두 사람이 대답하고 정집사와 스쳐 밖으로 나갔다.정집사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 만아와 사식이의 뒷모습을 암담하게 쳐다봤다.정집사는 핑계를 대고 기라에게, “아가씨, 방금 그 두 아이는 어느 집 사람입니까?”“만아와 사식 아가씨 말씀인가요?” 기라가 허리를 펴고 물었다.“예, 만아……” 입으로 이름을 중얼거리는 눈빛이 슬프다.“만아는 남강 노비로 비천해서 이집 저 집에서 막일 해요, 아무도 다룰 수가 없거든요.” 기라가 비웃으며, “하지만 만아는 분명히 막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해요, 늘 주인을 화나게 해서 걸핏하면 두들겨 맞죠.”“맞아요?” 정집사 얼굴 근육이 팽팽해졌다.“안 그러겠어요?” 기라가 사방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미소 띤 얼굴에 악의가 가득한 채로, “만아는요, 이름처럼 미련해서 맞아도 잘 참으니까 주인들이 기분이 나쁠 때 만아에게 화풀이를 하고 툭하면 때리는데, 그리고나서 상으로 고기를 먹여주면 좋다고 씰룩거려요. 어쨌든 만아한테 고기만 먹여주면 아무 때나 만아의 이목을 속일 수 있어요.”정집사는 눈이 커지며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더니 여전히 표정 변화는 없으나 눈에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그렇군요, 남강 노비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죠.”정집사가 뒤를 도는데 살짝 떨고 있는 것이 보이고 어깨에 애써서 힘을 주고 있었다.이때 한 무더기 축하 선물 속에서 내탕고 인감이 찍힌 황금 2천냥 찾아냈고, 팔황자의 물건도 있었는데 순왕부가 기록한 선물 목록을 찾아보니 누가 보낸 건지 알 수 없다. 각 궁과 각 부에서 보낸 물건은 전부 기록해 두었는데 유독 그것만 기록이 없다.황후가 보낸 사람은 바로 궁으로 보고하려고 하는데 황귀비 사람이 이 일을 원경릉에게 보고 하자 원경릉이, “순왕부에는 보내온 곳에서 직접 보내준 선물 목록이 있을 테니, 다시 각 궁과 각 부에서 선물을 보낼 때 첨부하여 보낸 증정
누명을 벗기다“찾았네.” 원경릉이 선물 목록을 한 장 펼치며 사람들 앞에 내놓고, “흠, 황후 마마 궁에서 보내온 것인데 황금 2천냥, 전체 목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팔황자의 선물 목록에는 써 있군. 봐라, 선물 목록 위에 황후 마마의 인감이 있구나.”오상궁이 깜짝 놀라 달려와 자세히 보는데 그 선물 목록에 진짜 황금 2천냥이라고 써 있고 또 팔황자가 보낸 장난감 선물마다 명세서가 전부 붙어있고 바닥에는 황후의 인장이 찍혀 있다.내탕고에서 잃어버린 황금 3천냥을 여덟째 전하 쪽에서 천냥을 찾았고, 여기서 2천냥을 찾았으니 금액도 딱 맞아 떨어진다.오상궁이 하얗게 질려서 어떻게 이런 일이?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게 명확해졌구나. 내가 순왕 전하를 대신해 황후 마마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리네. 순왕 전하께서 출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모로 지출이 많은데 은자가 부족하지 않도록 챙기시는 마마의 인자함에 감동하고 말았네.”목록과 인장이 증거로 나오니 오상궁은 할 말을 잃고 변명도 하지 못했다.황귀비 사람이 목록을 받아들고 예를 취하며, “그럼 쇤네들은 이미 물러갑니다.”“천천히 가시게!” 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전송한 뒤 눈을 치켜 뜨고 오상궁에게, “상궁은 아직 가지 않았느냐?”오상궁이 감히 다시 거들먹거리지 못하고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더니 예를 취하고 갔다.원경릉이 표정을 가다듬고 궁중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봤다.미색이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뭐 하는 짓이야? 아주 질리지도 않는구나.”“그만해, 못살게 굴지 마. 황후 마마도 얼마 못 가셔.” 원경릉이 담담하게 말했다.“히히, 이제 황금 3천냥의 소재가 황후한테로 넘어갔네.” 미색이 말했다.원경릉이 나가서 가을 태양 아래 서 있는 우문천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건 저희가 걱정할 일 아니죠, 마마는 어쨌든 무료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전하께 재미를 찾으려는 걸지도요.”우문천이 예를 취하며, “두분 형수님께서 제 결백을 밝혀 주시니 감사합니다.”원경
만아를 챙기는 정집사만아는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좀 우울했다. 오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자기한테 안 좋게 대하고 사식 아가씨와 녹주는 자기를 무시하고 험하게 말하기까지 했다.이제 다들 밥을 먹으러 갔는데 자기만 혼자 여기 남겨졌다. 일을 더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혼자 남겨진 것에 상처받았다.정집사가 만아를 보고 특별한 감정을 담은 눈빛으로 천천히 다가가는데 원경릉이 문간에서 부르며, “정집사? 이리 좀 와봐요, 설명할 게 있으니까.”정집사는 살짝 주먹을 쥐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원경릉에게 한결같은 순종의 눈빛으로, “태자비 마마 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이리 와봐요, 설명할 게 있어요.” 정집사가 참고 원경릉에게 갔으나 막상 가보니 원경릉이 분부한 건 전부 자질구레한 것들로 자신이 아니어도 아무 하인이 해도 될 일이다.왔다 갔다 심부름을 시키는 통에 점심시간이 지나고 정집사가 부랴부랴 주방에 갔을 때 남은 게 있어서 일일이 찬합에 싸서 들고 창고로 갔다.창고에는 만아 외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새집을 구경하고 주인과 계집종이 한데 뭉쳐 웃고 떠들고 있었다.정집사가 몰래 창고에 들어가니 만아가 여전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고 누가 들어오자 만아가 고개를 들고 정집사에게 배시시 웃었다.정집사가, “자네가 만아인가?”“예, 정집사님, 제가 만아입니다!” 만아가 허리를 펴고 등을 쭉 뻗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만아는 챙피해서 고개를 숙였다.정집사가 한숨을 쉬더니 찬합을 탁자에 내려놓고, “음식이 조금 있으니 와서 먹어요.”만아가 얼른 손을 젓고, “안돼요, 제가 집사님 걸 먹으면 집사님은 뭐 드시게요? 전 배 안 고파요, 먼저 드세요.”“와서 먹어요!” 정집사가 복잡한 눈빛으로, “저 혼자 다 못 먹으니 낭비하지 않게.”만아가 배를 만지며 목을 길게 빼고 힐끔 보더니 음식 냄새만 맡고도 침이 꿀꺽 넘어가서 정집사가 나눠 주기를 기다렸다.정집사가 음식을 전부 꺼내고, “어서 먹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