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머리를 감싸고 곰곰히 생각했다. 그런 원경릉을 보던 우문호가 말을 꺼냈다.“부황에게 보고 안하면 되잖아? 최근 며칠 동안 너가 혜정후 앞에 일부러 얼쩡거렸다고 혜정후의 측근들이 이미 말했어. 네가 그가 남자다운 기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남장까지 해서 그를 유혹하려고 했잖아. 너는 도대체 머리가 안좋은거냐 아니면 귀신에 씌인거야? 혜정후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를 자극해? 죽고 싶으면 저기 멀리 가서 혼자 땅파고 누워있으면 될 것이지. 왜 본왕을 귀찮게 하느냐! 지겹다 정말 너란 여자 너무 지겨워! 내가 확 너를 죽여……”화가 잔뜩 난 그를 보고 원경릉은 조용히 말을 끊어버렸다.“혜정후부에 있을 때, 왕야가 혜정후에게 했던 말 기억합니까? 그를 죽여 뼛가루를 내 무덤에 묻겠다는 그 말. 난 몰랐는데 왕야는 나를 많이 사랑하나봐요.” 원경릉은 그의 입을 가장 빨리 다물게 할 방법이 이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이 말을 듣자 우문호는 말을 멈추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입꼬리가 마치 중풍에 걸린 환자처럼 씰룩거렸다. “갑자기 뭔 놈의 사랑을 운운하는거야?”우문호와 원경릉이 말다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마침 탕양이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며 “왕야, 왕비는 다쳤습니다.” 라고 말했다.그제서야 우문호는 원경릉이 다쳤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겨 상처 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원경릉은 상황을 알아채고 “그래! 말할게! 말한다고!” 라고 말했다.“오늘은 내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자백하지 않으면 곤장을 칠 것이야.” 우문호가 그녀의 팔을 놓고 말했다.원경릉은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우문호에게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우문호가 손을 뻗어 원경릉의 귀를 잡아당겼다.“말하라고!”원경릉은 그의 고함에 깜짝 놀라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우문호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는 억울하다는 듯 “곧 말할거야.” 라고 말했다.“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을 잃었다. ‘왕비가 개구멍으로 들어왔다고?’원경릉은 자신이 개구멍을 기어 들어왔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기 싫었다. “개구멍이 너무 작아서 들어갈 수 없었어! 그래서 담을 넘었어!”“어? 그 개구멍을 제가 봤습니다. 그 개구멍은 왕비 정도면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는데…….” 서일이 말했다.“쓸데 없는 말은 하지 않는게 좋아요 서일!” 원경릉이 서일을 노려보았다.서일은 억울한 표정으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라고 작게 읊조렸다.우문호는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본왕이 후부로 가는 것을 보고, 왜 도망친 곳으로 다시 돌아온거야?”“반드시 돌아가야지. 만약에 왕야가 경조부 병사들을 데리고 혜정후부로 갔는데 나를 찾지 못한다면 혜정후가 가만히 있겠어? 아마 미친개 처럼 왕야를 물고는 놓지 않을걸?” 원경릉이 말했다.“너는 본왕을 미워했지 않느냐? 본왕이 미친개한테 물려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느냐?” 그녀를 바라보는 우문호의 눈빛에 분노가 사라졌다.원경릉은 우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기 넘치게 대답했다.“부부가 된 이상 한 배를 탄거나 다름없어. 네가 내 손에 죽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건 용납할 수 없지.”“나가 죽어라!”원경릉의 말을 듣고 열이 뻗힌 우문호가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원경릉은 갑자기 밀쳐지는 바람에 방어할 틈도 없이 뒤로 넘어져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연기 그만해라!” 우문호가 그녀의 정강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우문호는 화가 난 듯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그녀를 일으켰다.“아직도 연기를 하느냐?”원경릉은 축 늘어진 채 옆으로 휙 쓰러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연기가 아닙니다. 왕비의 상처가 벌어졌어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탕양이 놀라서 소리쳤다.탕양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일어서서 보니 침상에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다.“뭐 하고 있느냐! 당장 어의를 불러라!” 우문호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원경릉은 침
우문호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어의를 보며 말했다.“그녀는 언제쯤 깨?”“왕비께서는 피곤한데다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충분한 안정을 취한다면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어의는 이 말을 마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이 여자는 정말 골칫거리구나!”우문호는 혼수상태에 빠진 원경릉을 노려보며 “이까짓거로 의식을 잃다니.” 라고 말했다.이런 우문호를 보며 서일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원경릉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에게 끌려가서 흠씬 얻어맞고도 기회를 살펴 도망을 갔다니, 그것도 모자라 우문호가 위험에 처할 것을 감지하고 개구멍으로 다시 들어와 그들을 구하다니! 이런 용감한 여자가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만약 일반적인 여인이라면 혜정후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는 순간부터 눈물만 펑펑 흘렸을 것이다.“상궁들 보고 시중을 들라고 하고 왕야는 먼저 관아로 들어가시는게 어떨런지요?”서일이 우문호가 또 다시 원경릉을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 돌려 물었다.“됐다. 본왕이 여기를 지킬테니, 자네는 왕비가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사람을 시켜 죽이나 탕을 준비하라고 하거라.”“예!” 서일이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탕양. 너는 관아로 돌아가서 혜정후의 상태를 주시하거라. 적어도 부황이 모든 사건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착오도 있어서는 안된다. 혜정후에게 어떠한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며, 또한 어의도 꼭 지정된 어의를 써야 한다. 그리고 주수보(褚首辅)가 혜정후나 어의를 찾아온다면 그 전에 본왕에게 먼저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문호가 탕양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왕야께서는 언제 입궁하여 황제님께 아뢰실 예정이십니까?” 탕양은 우문호가 부황에게 말할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서두를 필요없다.” 우문호가 말했다.“하지만 주수보가 먼저 입궁해서 죄를 사할까봐 걱정입니다. 주수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다 지어낸 말이지 않습니까.”“아니. 부황께서는 주씨 집안이 유난을 떠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다. 하지만 딱히 흠을 잡을게 없어
우문호는 세상만사 세옹지마라는 생각이 들었다.원경릉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그는 앞으로 평생 그녀와 마주보거나 말을 섞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녀와 ‘평생’이라는 이 두 글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어난 사건들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이 변한건지 모르겠다.우문호는 천천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원경릉은 예전의 그녀와 완전 다른 사람이다. 갓 결혼한지 얼마 안됐을 때, 그녀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우문호를 찾아 왔다. 옷을 만들어 선물하거나 그의 외투 주머니에 수를 놓거나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오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가 귀찮다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우문호를 보며 상심하고 때로는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문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혐오했다. 그래서 그녀가 온갖 수모를 겪어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결혼한지 반년이 지나자 우문호는 그녀의 유치한 각종 술책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입궁해서 태후에게 아직 합방도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문호와 원경릉은 지금처럼 서로 얽혀있지 않았을 것이다.우문호는 이 변화가 합방 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부부가 합방을 했다고, 상대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혼수상태에 빠진 원경릉은 다시 실험실로 돌아왔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로그인 된 위챗의 소식을 보면서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오빠에게 모두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은 예전과 같이 그녀에게 너무 과로하지 말라고 답장을 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한없이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실험실을 눈으로 한번 훑어보았다. 닫힌 문 손잡이에 곰인형이 하나 걸려 있었다. 작년 생일에 그녀가 조카랑 인형뽑기로 만원을 써서 뽑은 작은 곰인형이었다. 조카는 곰인형을 쥐고
그녀는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우문호를 깨우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꿈속의 모든 순간을 되새겨보았다. 꿈 속에서 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한없이 소중했다. 왜 꿈에서 깬걸까?원숭이의 연구 데이터는 이전에도 여러번 보았기에 기억이 생생했다. 확실히 원숭이에게 약물 투여 후 데이터가 좋게 나왔고, 그냥 눈으로 보아도 약물을 투여했을 때 원숭이의 행동이 훨씬 더 민첩하고 똑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아진 지능으로 탈출을 해서 차에 치여 죽었지만…….이런 생각을 하자 그녀는 갑자기 원숭이가 차에 치여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 곳에 있지 않을까? 라는 기이한 생각을 했다. ‘참나. 말도 안돼.’그나저나 이 남자 머리통이 정말 크구나. 너무 무거운거 아니야?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잠든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잠이 들었을 때만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기애가 강해서 누가 자기를 빤히 보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솔직히 딱 까놓고 말해서. 잘생기긴 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완벽에 가깝다. 굳이 단점을 뽑자면 각진 얼굴이라 꽤 날카로워 보인다. 이런 얼굴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인다. 그리고 눈매도 날카로워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순간 얼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마치 지금처럼…….그녀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너…… 언제 일어났어?”우문호가 담담한 눈빛으로 “네가 본왕을 빤히 볼때.”라고 말했다.“일어나. 네가 내 팔을 베고 자는 바람에 팔에 피가 안통해.” 원경릉은 넋나간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우문호가 머리를 들었고, 원경릉은 팔을 뺐다. 이 침상에는 베게가 하나 뿐인데, 그걸 원경릉이 베고 있으니, 그녀의 팔을 베고 자는 수 밖에 없었다. ‘팔 좀 빌려줬다고 되게 생색내네.’“뭘 보고 있었냐?”우문호가 물었다.“네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본거야. 오해는 하지마.” 원경릉이 결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전혀 오해하지 않았다. 잠에
혜정후에 대한 결정에 반발하는 원경릉“뭐? 내 명령에 너도 따지고 드는 거냐?” 우문호는 눈을 부라리며 위아래를 훑어보았다.기상궁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원경릉은 기가 막혀서 입술을 다 부들부들 떨며, “우문호, 주씨 집안이 겁나니? 아니면 여전히 주명취 체면을 생각해서 주씨 집안 사람은 놔주겠다는 거야?”우문호는 침울한 낯빛으로, “상관없는 사람 가져다 붙이지 마.”원경릉은 실망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보며, “내가 맞았네, 주명취 입장을 생각해서 주씨 집안이랑 나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거네. 내가 진짜 널 잘못 봤어. 어쨌든 넌 똑똑하니까 길한 것은 따르고 흉한 것은 피한다는 말 알지? 네가 오늘 혜정후를 놔주면 다음에 피눈물을 흘릴 때가 올 거다.”우문호는 화가 나서 소매를 떨치며, “됐으니까 그만 해!”하고 말을 마치자 차갑게 가버렸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원경릉은 순결과 목숨을 모두 걸고 겨우겨우 이 기회를 얻었는데, 우문호는 고작 여자 하나때문에 가볍게 이 기회를 던져 버리다니 그럼 원경릉은 그냥 헛고생 한 거냐고?기상궁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화내지 마세요. 왕야도 마마를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날 위해서?” 원경릉은 피식 웃으며, “ 만약 날 위해서면 사실대로 보고를 해야지.”기상궁이 말하길: “여자에게 정절이란 하늘과 같은 명예인데, 혜정후가 어떤 사람입니까, 왕비마마께서 혜정후 손에 잡힌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겠어요? 그땐 왕비마마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져 사람 답게 살 수가 없을 겁니다. 옛 말에 중상모략 당하면 한여름 더위도 춥게 느껴진다고 하잖아요.”원경릉은 의아해서, “내 명예를 나도 신경 안 쓰는데, 왕야가 왜?”“왕야께서 왕비마마를 감싸고 계시는 게 눈에 보입니다.”원경릉은 이 문제를 전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지만, 명예에 신경을 쓴다면 그건 아마 우문호 자신의 명예지, 만약 사람들이 자기 아내가… 아니지, 우문호는
혜정후에 대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원경릉원경병은 정후부로 돌아가기 직전에 원경릉을 끌어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언니.”언니라는 말에 원경릉은 마음이 약해졌다.원경릉은 심사숙고한 끝에 역시 우문호가 시킨 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왕야는 초왕부에 계신가?” 원경릉이 기상궁에게 물었다.“그럼요. 서재에 계십니다.”“가서 좀 만나야겠어.” 원경릉은 옷 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나섰다.자욱한 저녁 안개가 마당을 노을 빛으로 물들이니 고요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부엌에선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음식을 하느라 모여 있는 모습이 허구나 환상이 아닌 진실한 삶임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오늘 큰 일을 겪으며, 원경릉은 자신이 있는 시대에서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진정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서재에 도착하니 시녀가 막 식사를 차려 입구에 와있기에 원경릉이: “내가 할께!”시녀는 예를 취하며, “예!”원경릉이 식사를 들고 들어가자 안에는 초가 2자루 밝혀져 있는데 흔들흔들 한다.우문호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바닥엔 망친 종이가 상당히 널브러져 있다. 원경릉이 밟으며 가다 보니 종이 마다 힘주어 “참을 인”이 써 있다. 발소리를 듣고 우문호가 고개를 들자, 촛불이 일렁여 우문호의 얼굴 그림자가 흔들리니 눈매가 또렷해 져 한층 엄숙하고 신중해 보인다.거기에 눈꼬리에서 귀부분까지 이어지는 흉터가 살벌한 느낌을 가중시킨다.“무슨 일이야?” 우문호가 붓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물었다.원경릉은 식사를 교자상 위에 차려 놓고, 다가가서: “밥 먹을 시간이야.”“안 먹어, 가져가!” 우문호가 인상을 찌푸렸다.원경릉은 ‘참을 인’자가 쓰여진 종이더미에 서서 양 손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앞으로 얌전히 모으고, “우리 얘기 좀 해.”“방금 일에 관한 거면 얘기할 거 없어, 난 이미 결정했으니까.” 우문호가 냉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천천히 걸어가서 책상 반대편에서 우문호와 마주보고 간절하게: “참을 필요 없어. 아
입궐하는 우문호와 기다리는 원경릉의 속마음원경릉이: “내 말에 대답 먼저 해야지.”“시끄러워, 밥 먹자!” 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 끌어 옆으로 당기며, “내 옆에서 먹어.”“난 먹었어, 탕도 마셨고.”“그럼 내 옆에서 시중 들면 되겠네.”“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경릉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우문호는 너무 배가 고파 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이렇게 배가 고팠던 거야? 좀 더 해오라고 할까?” 원경릉이 기억하는 우문호는 밥도 절제해서 먹고 이렇게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은 역시 굶고 볼 일이다.“됐어, 옷 갈아 입는 거 시중들어줘. 입궁해서 아바마마를 뵈야겠어.”원경릉은 뛸 듯 기뻐하며: “예!”두 사람은 소월각으로 돌아왔다. 원경릉이 옷장을 열자 정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어떤 거 입을 거야?”“관복!” 우문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오!” 원경릉은 옷장을 닫고 매일 입는 옷을 거는 옷걸이 앞에서, 오늘 돌아올 때 벗어 둔 관복을 걷어 오는데, 정교하게 수 놓인 자수에 손을 뻗으며, 이게 권력의 상징이군.보라빛 관복의 허리띠와 금옥대가 딱 알맞게 위아래로 벌어져 비율이 완벽하다.관모를 써서 예리함을 적당히 숨기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중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원경릉은 처음으로 우문호의 시중을 드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기꺼이 하고 있다.자기도 모르게 말도 조금은 들떠서, “왕야 정말 멋지다.”“꺼져!” 우문호는 원경릉을 노려봤다.“예, 금방 꺼지겠습니다.” 원경릉이 이렇게 왕야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다.우문호는 결국 눈가에 웃음을 띠고, 곁눈질로 힐끗 원경릉을 봤다.원경릉의 가슴이 터질 듯이 쿵쾅거려서 멍하니 우문호를 바라보고 있다.“왜 멍 때리고 있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도움없이 자기가 앉아 신발을 신었다.원경릉은 정신을 차리고, “아냐, 왕야의 흉터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