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우문호를 깨우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꿈속의 모든 순간을 되새겨보았다. 꿈 속에서 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한없이 소중했다. 왜 꿈에서 깬걸까?원숭이의 연구 데이터는 이전에도 여러번 보았기에 기억이 생생했다. 확실히 원숭이에게 약물 투여 후 데이터가 좋게 나왔고, 그냥 눈으로 보아도 약물을 투여했을 때 원숭이의 행동이 훨씬 더 민첩하고 똑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아진 지능으로 탈출을 해서 차에 치여 죽었지만…….이런 생각을 하자 그녀는 갑자기 원숭이가 차에 치여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 곳에 있지 않을까? 라는 기이한 생각을 했다. ‘참나. 말도 안돼.’그나저나 이 남자 머리통이 정말 크구나. 너무 무거운거 아니야?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잠든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잠이 들었을 때만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기애가 강해서 누가 자기를 빤히 보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솔직히 딱 까놓고 말해서. 잘생기긴 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완벽에 가깝다. 굳이 단점을 뽑자면 각진 얼굴이라 꽤 날카로워 보인다. 이런 얼굴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인다. 그리고 눈매도 날카로워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순간 얼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마치 지금처럼…….그녀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너…… 언제 일어났어?”우문호가 담담한 눈빛으로 “네가 본왕을 빤히 볼때.”라고 말했다.“일어나. 네가 내 팔을 베고 자는 바람에 팔에 피가 안통해.” 원경릉은 넋나간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우문호가 머리를 들었고, 원경릉은 팔을 뺐다. 이 침상에는 베게가 하나 뿐인데, 그걸 원경릉이 베고 있으니, 그녀의 팔을 베고 자는 수 밖에 없었다. ‘팔 좀 빌려줬다고 되게 생색내네.’“뭘 보고 있었냐?”우문호가 물었다.“네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본거야. 오해는 하지마.” 원경릉이 결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전혀 오해하지 않았다. 잠에
혜정후에 대한 결정에 반발하는 원경릉“뭐? 내 명령에 너도 따지고 드는 거냐?” 우문호는 눈을 부라리며 위아래를 훑어보았다.기상궁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원경릉은 기가 막혀서 입술을 다 부들부들 떨며, “우문호, 주씨 집안이 겁나니? 아니면 여전히 주명취 체면을 생각해서 주씨 집안 사람은 놔주겠다는 거야?”우문호는 침울한 낯빛으로, “상관없는 사람 가져다 붙이지 마.”원경릉은 실망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보며, “내가 맞았네, 주명취 입장을 생각해서 주씨 집안이랑 나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거네. 내가 진짜 널 잘못 봤어. 어쨌든 넌 똑똑하니까 길한 것은 따르고 흉한 것은 피한다는 말 알지? 네가 오늘 혜정후를 놔주면 다음에 피눈물을 흘릴 때가 올 거다.”우문호는 화가 나서 소매를 떨치며, “됐으니까 그만 해!”하고 말을 마치자 차갑게 가버렸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원경릉은 순결과 목숨을 모두 걸고 겨우겨우 이 기회를 얻었는데, 우문호는 고작 여자 하나때문에 가볍게 이 기회를 던져 버리다니 그럼 원경릉은 그냥 헛고생 한 거냐고?기상궁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화내지 마세요. 왕야도 마마를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날 위해서?” 원경릉은 피식 웃으며, “ 만약 날 위해서면 사실대로 보고를 해야지.”기상궁이 말하길: “여자에게 정절이란 하늘과 같은 명예인데, 혜정후가 어떤 사람입니까, 왕비마마께서 혜정후 손에 잡힌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겠어요? 그땐 왕비마마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져 사람 답게 살 수가 없을 겁니다. 옛 말에 중상모략 당하면 한여름 더위도 춥게 느껴진다고 하잖아요.”원경릉은 의아해서, “내 명예를 나도 신경 안 쓰는데, 왕야가 왜?”“왕야께서 왕비마마를 감싸고 계시는 게 눈에 보입니다.”원경릉은 이 문제를 전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지만, 명예에 신경을 쓴다면 그건 아마 우문호 자신의 명예지, 만약 사람들이 자기 아내가… 아니지, 우문호는
혜정후에 대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원경릉원경병은 정후부로 돌아가기 직전에 원경릉을 끌어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언니.”언니라는 말에 원경릉은 마음이 약해졌다.원경릉은 심사숙고한 끝에 역시 우문호가 시킨 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왕야는 초왕부에 계신가?” 원경릉이 기상궁에게 물었다.“그럼요. 서재에 계십니다.”“가서 좀 만나야겠어.” 원경릉은 옷 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나섰다.자욱한 저녁 안개가 마당을 노을 빛으로 물들이니 고요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부엌에선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음식을 하느라 모여 있는 모습이 허구나 환상이 아닌 진실한 삶임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오늘 큰 일을 겪으며, 원경릉은 자신이 있는 시대에서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진정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서재에 도착하니 시녀가 막 식사를 차려 입구에 와있기에 원경릉이: “내가 할께!”시녀는 예를 취하며, “예!”원경릉이 식사를 들고 들어가자 안에는 초가 2자루 밝혀져 있는데 흔들흔들 한다.우문호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바닥엔 망친 종이가 상당히 널브러져 있다. 원경릉이 밟으며 가다 보니 종이 마다 힘주어 “참을 인”이 써 있다. 발소리를 듣고 우문호가 고개를 들자, 촛불이 일렁여 우문호의 얼굴 그림자가 흔들리니 눈매가 또렷해 져 한층 엄숙하고 신중해 보인다.거기에 눈꼬리에서 귀부분까지 이어지는 흉터가 살벌한 느낌을 가중시킨다.“무슨 일이야?” 우문호가 붓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물었다.원경릉은 식사를 교자상 위에 차려 놓고, 다가가서: “밥 먹을 시간이야.”“안 먹어, 가져가!” 우문호가 인상을 찌푸렸다.원경릉은 ‘참을 인’자가 쓰여진 종이더미에 서서 양 손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앞으로 얌전히 모으고, “우리 얘기 좀 해.”“방금 일에 관한 거면 얘기할 거 없어, 난 이미 결정했으니까.” 우문호가 냉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천천히 걸어가서 책상 반대편에서 우문호와 마주보고 간절하게: “참을 필요 없어. 아
입궐하는 우문호와 기다리는 원경릉의 속마음원경릉이: “내 말에 대답 먼저 해야지.”“시끄러워, 밥 먹자!” 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 끌어 옆으로 당기며, “내 옆에서 먹어.”“난 먹었어, 탕도 마셨고.”“그럼 내 옆에서 시중 들면 되겠네.”“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경릉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우문호는 너무 배가 고파 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이렇게 배가 고팠던 거야? 좀 더 해오라고 할까?” 원경릉이 기억하는 우문호는 밥도 절제해서 먹고 이렇게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은 역시 굶고 볼 일이다.“됐어, 옷 갈아 입는 거 시중들어줘. 입궁해서 아바마마를 뵈야겠어.”원경릉은 뛸 듯 기뻐하며: “예!”두 사람은 소월각으로 돌아왔다. 원경릉이 옷장을 열자 정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고개를 돌려 우문호에게, “어떤 거 입을 거야?”“관복!” 우문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오!” 원경릉은 옷장을 닫고 매일 입는 옷을 거는 옷걸이 앞에서, 오늘 돌아올 때 벗어 둔 관복을 걷어 오는데, 정교하게 수 놓인 자수에 손을 뻗으며, 이게 권력의 상징이군.보라빛 관복의 허리띠와 금옥대가 딱 알맞게 위아래로 벌어져 비율이 완벽하다.관모를 써서 예리함을 적당히 숨기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중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원경릉은 처음으로 우문호의 시중을 드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기꺼이 하고 있다.자기도 모르게 말도 조금은 들떠서, “왕야 정말 멋지다.”“꺼져!” 우문호는 원경릉을 노려봤다.“예, 금방 꺼지겠습니다.” 원경릉이 이렇게 왕야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다.우문호는 결국 눈가에 웃음을 띠고, 곁눈질로 힐끗 원경릉을 봤다.원경릉의 가슴이 터질 듯이 쿵쾅거려서 멍하니 우문호를 바라보고 있다.“왜 멍 때리고 있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도움없이 자기가 앉아 신발을 신었다.원경릉은 정신을 차리고, “아냐, 왕야의 흉터
검둥개를 보살피는 원경릉과 우문호의 귀가우문호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탕양이 돌아오길 기다렸다.탕양은 전신의 옷이 찢어지고, 얼굴은 낭패한 기색으로 들어와, “왕비마마, 은인은 전부 마련하신 별채에 방을 드렸는데, 그중 하나가 죽자고 저를 따라온다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습니다.”원경릉은 호기심에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죽자사자 따라온 게 누구야?그때 마침 서일이 털이 짧고 귀가 쫑긋한 검둥개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오는 게 보이는데 원경릉에게 잡혔다가 살아서 도망친 바로 그 강아지로, 지금 바닥에 엎드려 짧은 귀를 쫑긋하고 입을 헤 벌린 채 반점이 있는 혀를 내밀고 원경릉을 보고 있다.강아지는 온통 더럽고 상처가 있으며, 털도 피로 얼룩진 데다 채찍 자국이 전신에 나 있는데 살을 파고들어 어떤 곳은 털이 빠지고 피가 얼룩져 처참해서 볼 수가 없다.하지만 강아지는 지금 땅바닥에 엎드려 이전의 악독함이나 흉포함 대신 두 눈을 반짝이며 말똥말똥 원경릉을 보고 있다.원경릉이 한달음에 다가가, 멀쩡한 부분은 머리 뿐이라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고, “착하지.”“월월!” 검둥개는 원경릉을 보고 짖으며 꼬리를 흔드는데 결국 눈에 눈물이 맺혔다.탕양이 가고 원경릉이 돌아서며, “가루약과 뜨거운 물을 준비해라.”개가 순해서, 털을 씻기고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하나도 짖지 않고 원경릉이 하자는 대로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탕양과 서일이 도우려 했으나, 원경릉이 필요 없다며 둘을 쫓아냈다.처치를 마치고 원경릉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나랑 같이 지내자, 궁에는 ‘푸바오’라는 애도 있어, 그러니까 넌 ‘다바오’라고 하자, 좋지?”“왕왕왕!” 다바오가 3번 짖는 걸 OK로 치기로 했다.방금 만났을 때 다바오의 첫 마디는, 심한 일을 당했다고 모든 개가 전부 심하게 맞았다고 했다.원경릉은 다바오의 말을 알아듣고, 강아지가 당한 일에 가슴이 아팠다.원경릉은 나가며 탕양에게 그 강아지한테 잘해주라고 하니 탕양이: “당연하죠.
혜정후에 대한 황제의 뜻을 전하는 우문호“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요!” 원경릉은 서둘러 우문호에게 기대며, “방금까진 몰랐는데, 이렇게 멈춰 서니 심하게 어지러워요.”“여봐라, 왕비를 방으로 모셔드려라.” 우문호가 명령했다.녹주는 얼른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부축하고, 원경릉은 자기보다 머리 반만큼 작은 녹주에게 연약한 모습으로 기대서 천천히 돌아갔다.목여태감은 안타까워 고개를 저으며, “가련하시구나. 고작 며칠 왕비를 뵙지 못했는데 바짝 마르셨네.”우문호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가련해? 절대 아니지, 증오스럽고 미울 뿐.목여태감을 보내고, 우문호는 직접 봉의각으로 갔다.문에 들어서자, 검둥개 한 마리가 쫓아 나오더니 길을 막고 흉악하게 으르렁거리는데 개를 무서워하는 트라우마에 다시 휩싸여 다리에 힘이 풀렸다.원경릉이 문에 기대서, “다바오, 짖지 마, 인사해, 아빠야.”“왕야가 쟤 아빠야.” 우문호가 인상을 쓰며, “누가 데려왔어? 당장 내보내.”원경릉이: “다바오, 가서 놀아.”다바오는 이 말을 듣고 꼬리를 흔들며 나갔다.“다바오? 이름도 있어?” 우문호는 화가 나서 말했다.“강아지랑 싸워서 어쩌 자는 거야?” 원경릉이 말했다.“초왕부에선 개를 키울 수 없어, 개랑 나랑 둘 중 하나야.” 우문호는 들어가며 원경릉에게 경고의 눈빛으로 매섭게 쏘아봤다.원경릉은 우문호와 함께 들어가며 화제를 전환할 겸, “일은 어떻게 됐어?”우문호가 앉더니 잘생긴 얼굴로 싸늘하게, “아바마마께서 몇일 밤을 심문하셨는데, 처음엔 그 놈이 죄를 인정하지 않고 네가 왕비인 줄 몰랐다고 발뺌하길래, 아바마마는 그렇게 너에게 전하려 했으나 마지막에 주재상이 직접 심문하니 인정했데.”“인정 했어? 그럼 어떻게 처리할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이미 감옥에 압송됐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아바마마께서 이번엔 벽력같이 진노하신 데다 그 놈이 예전에 제멋대로 날뛰며 횡포를 부려서 쉽게 용서해 주시지는 않을 거야.”원경릉은 약간 의
명원제와 태상황의 대화궁중.명원제는 종일 분노에 휩싸여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아플 지경이다.주씨 집안의 오만 방자함이 이미 명원제가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섰다.주씨 집안의 세력이 지금도 그의 황권을 압박하고 있으며, 과거는 주재상을 공경했으나, 지금은 한마디로 말해 주씨가 우문(宇文)씨의 강산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주재상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혜정후를 질책하면서 혜정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높은 지위에서 중대한 권력을 가지고 황은을 크게 입었는데, 아랫사람이 꼬드긴다고 이런 인간 말종의 일을 저지르다니, 주씨 집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주씨 집안의 명예? 그럼 황실의 명예는?명원제는 장인이 얼결에 뱉은 말을 듣고,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주재상에게 주씨 집안의 명예가 황실의 명예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하다.주씨 집안의 중년들은 모두 조정의 요직에 몸 담고, 젊은이들은 군에서 경력을 쌓아 군인 제후의 길을 가고있다.그러면 명원제의 아들들은 어떤가? 태자의 지위를 놓고 다투느라 누가 주씨 집안의 위협을 안중에나 두고 있을까?오직 다섯째밖에 없다.다섯째는 자신과 왕비의 명예도 신경 쓰지 않고 집요하게 혜정후를 끌어내린 것을 볼 때 다섯째는 깨어 있는 사람이다.초왕이 주명양과의 결혼을 거절했을 때 대략 이럴 거라 예상하긴 했었다. 일단 초왕과 주씨 집안을 이익으로 엮어 두면 쉽게 동화될 것이고, 동화되지 않더라도 손발을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원제는 오래전부터 혜정후를 처리하고 싶었지만 군대로 세운 공이 혁혁해서 일반적인 죄목으론 건드릴 수가 없었는데, 죽으려고 자처해 길거리에서 초왕의 아내를 납치하다니……명원제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있자, 초왕의 아내는 왕비라 일을 보러 나갈 때 남장을 하고 혼자 갈 리가 없다.명원제는 정언의 말을 떠올리고, 이번에 만약 왕비가 눈치 빠르게 적당한 때를 봐서 도망쳐 나오지 못했으면, 초왕도 혜정후의 계략에 빠
손왕의 초왕비 문병명원제가 일어나, ‘아바마마, 그럼 이 일은……”태상황이 자리를 뜨며, “누가 알까? 하지만 내가 듣기로 정후가 원래는 둘째딸을 혜정후의 처로 시집 보내려고 했다 던데, 이 정후란 사람이 아주 재미있어. 만약 조정의 국면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안 보일 땐, 정후 같은 사람만 보면 돼. 이 사람들이 어디에 꼬리를 흔들고 있는지, 그럼 바로 그 사람이 정확하게 가장 실세 거든.”명원제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정후에게 퉤 침을 뱉았다. 이런 인간과 사돈을 맺었 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명원제는 예를 취하고 나왔다.이번에 다녀오며 생각이 분명해 졌다.명원제는 다섯째를 낮게 평가했던 것이다.정후는 딸을 혜정후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왕비는 동생과 자매 간의 정이 두터워 동생을 위해 책임을 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 섰고, 다섯째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주씨 집안의 속박을 끊어버렸다.이렇게 생각하니 울분이 반으로 사그라지고 오히려 이게 최근 있었던 제일 기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명원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초왕비에게 산해진미와 갖가지 보석을 하사도록 성지를 내렸는데 이는 초왕비가 혜정후의 손에 농락당할 뻔 했으나 여전히 순결을 지켰음을 황제가 직접 증명하는 셈이기도 했다. 명원제가 초왕비에게 상을 내리자, 초왕부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한 무리가 지나가면 또 한 무리가 와서 문안을 하고, 위로를 하는가 하면, 예물을 주고, 동시에 혜정후의 망령된 행동을 질책했다.원경릉은 줄곧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자신은 괜찮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반나절을 웃고 있었더니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다.입으로 겨우 숨을 내쉬는데 다바오와 유일한 차이라면 혀를 빼고 할딱거리냐 아니냐 정도다.해가 지고 황혼이 빗기자, 겨우 접대가 끝났다.원경릉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차 한 잔을 크게 들이키더니 잠시 눈을 붙이는데,녹주가 총총히 들어오며, “왕비마마, 손왕 전하께서 납시었습니다.”원경릉은 의자 위에 뻗은 채로, 힘없이 손을 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