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 폐하의 진실“아니,” 우문호가 즉시 부정하며, “아바마마는 줄곧 황조부를 존경하고 효를 다 하셨어. 누구보다 황조부를 염려하시는 데 어떻게 이런 작은 일로 대역무도한 일을 벌이신다는 말이야? 그리고 황조부께서 정치에 관여하신 게 처음도 아니고, 태자를 책봉할 때도 아바마마는 황조부 말씀을 들으셨다고. 그리고 아바마마께서 넷째를 쫓아 보내고 싶지 않으시면, 태상황 폐하도 억지로 내보내실 분이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데?”냉정언이, “일단 앉으시죠,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다 듣고 나면 왜 폐하께서 이렇게 하셨는지 아실 겁니다.”원경릉이 눈물을 훔치고 우문호를 끌어 앉혔다. 우문호는 여전히 믿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나, 당황한 눈빛에 속마음이 들키고 말았다.“그래, 말해봐,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반박해 주지.” 우문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냉정언이,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 효자시라는 걸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보위에 오르시기 전에 그렇게 오랜 기간 태자로 있으면서 계속 태상황께 충효를 다하셨습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퇴위하시고 지금까지 앞뒤까지 포함해 대략 8년 넘는 시간 동안, 조정에서 수많은 일이 있을 때마다 황제 폐하는 태상황의 의견을 물으셨고 태상황 폐하는 보통 거의 관여하지 않고 대부분 심지어 의견도 별로 많이 내지 않으셨지만……”“그럼 됐잖아? 자네 말 대로 그렇게 잘 어울리시는 데 어떻게 이 일이 아바마마의 뜻이 될 수가 있어?” 우문호의 마음속이 혼란해서 냉정언의 말을 자르고 반박했다.냉정언이 무겁게, “그래요, 폐하는 늘 그렇게 하셨습니다. 일종의 습관처럼. 하지만 재위 기간이 길어지고 경험한 일이 많아지시자, 큰 일에 대해 황제 폐한 본인 스스로 결단이 서 있는 상태로 태상황 폐하께 그다지 묻고 싶지 않은데, 방금 말했던 것처럼 일종의 습관이 돼서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했습니다. 이때 태상황 폐하께서 여전히 별다른 의견 없이 황제 폐하께서 잘 하고 계신다고 칭찬해 주시면 황제 폐하 마음에 불쾌한 마음이 남지 않았을 것
냉정언은 알고 있다“주재상이 올린 상소를 기억하십니까? 우문군의 황자 신분을 회복해 달라는?” 냉정언이 말했다.우문호가 쓴 웃음을 지으며,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큰형을 총애하신다면, 주재상이 이렇게 하는 게 아바마마의 심기에 맞는 거 아닌가? 설마 이것도 연관이 있어?”“아주 상관있죠. 황제 폐하께서 우문군의 황자 신분을 회복하고 말고는 본인 스스로 결정하신 뒤 그 뜻을 받든 누군가가 상소를 올려 일을 진행 했어야 하는데, 주재상이 나서서 짐작하고 일을 진행했지요. 더 중요한 건 나중에 알아보니 주재상이 이 일을 하는데 고작 반나절밖에 안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재상이 한 마디 하면 척척 알아듣고 심지어 다른 신하들을 설득시킬 필요도 없는 겁니다, 얼마나 대단한 위력인가요? 그리고 얼마나 큰 위협인지 모르시겠습니까? 그래도 주재상은 결국 신하니 황제 폐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지만, 태상황폐하는 말이죠, 태상황께서 일단 성지를 내리시면 황제 폐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으신 가요? 황제 폐하의 입장에서 전체를 보면 황제 폐하께서 통제가능한 사람을 태상황 폐하께서 전부 제어할 수 있고, 태상황 폐하께서 통제 가능한 사람을 황제 폐하는 제어하실 수 없습니다. 이건 대권이 아직 태상황 폐하 수중에 있다는 말과 같아요. 태자 전하는 태상황 폐하께서 고르신 강력한 세력인데, 하필 이 때 전하께서 안왕 전하가 박원을 다치게 했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바람에 황제 폐하는 전하께서 안왕 전하를 봉토로 쫓아 보내려 한다는 오해를 하시게 된 거죠. 대신들이 안왕을 경성에서 내쫓으라고 상소를 올리고 태상황까지 동의 하셨으니 황제 폐하는 안왕 전하라는 잠재적인 적수를 쫓아내기 위해 전하와 태상황 폐하가 손을 잡았다고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까놓고 말해 황제 폐하는 태자 전하께서 폐위되지 않도록 막으실 거예요, 본인이 그렇게 오랜 기간 태자로 있으셔서 태자의 마음을 아주 잘 아시니까요. 그래서 만약 태자비 마마께서 병을 치료하시면 태자 전하께서 연루될 것이라는
냉정언의 해법냉정언의 이 말에 우문호는 반박하지 않았다. 우문호가 아무리 정치적 감각이 없어도 냉정언이 말한 건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어두운 비밀이란 걸 안다. 황조부께서 정말 붕어하시면 아바마마의 목적이 달성된 마당에 흑역사를 남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냉정언은 죽여야 한다.우문호의 마음이 완전 차갑게 식어버리며 분노와 무력함이 벌레처럼 마음을 갉아 먹었다. 아프고 쓰리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우문호는 바로 입궁해 아바마마께 따지고 싶었다. 왜 말끝마다 효도효도 하면서 황조부의 목숨조차 방치 하냐고.냉정언은 우문호의 낯빛이 바뀌는 것을 보고 찢어지는 아픔으로 다시 한숨을 쉬며, “사실 태자 전하는 이렇게 화를 내실 필요 없는 게 황제 폐하도 지금 고통스럽습니다. 폐하께서 하신 이 모든 것은 권력자로서 생각일 뿐 아들로서 폐하의 양심은 시시각각 자책하고 있을 테니 까요. 목여태감 말이 폐하께서 요즘 잠도 못 주무시고 밤에 악몽을 꾸시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 있다고 하더군요.”우문호는 눈가가 빨개지며, “그럴 거면 권력자로서 생각따위 집어치우실 수 없어?”“어떤 건 한번 금이 가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앞으로 떠밀려 가게 됩니다. 폐하께서도 아마 통제하실 수 없으시겠지요. 왜냐면 지금 주장을 바꾸신다고 해도 이미 부자 사이에 균열이 존재하기 시작했고, 태상황께서 만약 괜찮아지시면 폐하는 더욱 큰 위협을 느끼고 또 무슨 일을 하실 지 모릅니다.”원경릉이 냉정언을 보고, “냉대인, 이 모든 걸 우리에게 알려주셨는데 대처할 방법이 있으신 가요?”우문호와 구사가 원경릉의 이 질문에 일제히 냉정언을 쳐다봤다.냉정언의 눈동자에 한줄기 은은한 빛이 스치며,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태상황 폐하를 구하기 위해 지금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 황제 폐하의 위기감을 없애는 것 즉 태자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차갑게, “스스로 폐위 시켜 달라고 하라고?”“아뇨, 폐하는 전하를 폐하고 싶을 리가 없어요. 하지
우문호의 판단원경릉이 괴로워하며, “이럴 줄 몰랐어,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심하게 의심을 하셨어도 그렇지 황조부 목숨을 가지고 위협하시면 안 돼지.”우문호가 천천히, “원 선생, 틀려.”원경릉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우문호의 말을 듣고 얼른, “뭐가 틀린데?”“아바마마의 이런 사고방식, 전에 무슨 낌새를 느낀 적이 있어? 뭔가 조짐이 보였다든가?”원경릉이 당황해서, “그……전에는 없었어, 하지만 최근 아바마마를 거의 못 뵀고, 뵀다고 해도 나에게 이런 얘기 안 하셨을 게 분명해.”“말은 안 할 수 있지만, 눈빛이나 표정에서 알아볼 수 있잖아? 아바마마는 늘 나를 질책 하셨어, 이거 잘못했다, 저거 잘못했다, 하지만 아바마마 얼굴에서 뿌듯함과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고.”“응?”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그 말은 냉대인의 말이 전부 거짓이란 소리야? 하지만 냉대인의 분석이 하나같이 사리에 맞아, 권력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위기감, 왕위를 지키려는 치밀한 계획, 피붙이의 도리에 맞든 안 맞든 일단 합리적이야. 그리고 냉대인이 믿음이 안가는 거야? 둘이 원래 관계 좋잖아.”“사실 아바마마께서 나나 황조부를 이렇게 대비하는 건 정상이야. 하지만 이 일이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냉정언의 말이 지나치게 조리 있어서야.”“아바마마께서 냉대인에게 말씀하신 거라며, 아바마마도 마음이 모순되니까 냉대인에게 털어놓는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지.”우문호가 손을 젓고 깊이 생각하더니, “아니, 아바마마는 지극히 내성적인 분으로 냉정언이란 일개 신하에게 모순된 마음을 털어놓은 건 말이 안돼. 게다가 냉정언이 아바마마의 양심의 가책을 눈치챘다고? 그리고 넷째가 박원을 다치게 하고 아바마마께서 넷째를 두둔했다는 걸 퍼트린 건 불과 얼마전이야. 하지만 태상황 폐하의 병환은 하루이틀전에 시작된 게 아니지. 병환이 심각해 져서 널 입궁 시키려 할 때까지 적어도 10여일은 걸렸을 거야. 그때는 마침 내가 선비에 사람을 배치할 때고.”원경릉이 얼굴을 찌푸리고, “자기가 의심하는 게
목여태감을 다그치다우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길래 다음날 다시 입궁했지만 이번은 건곤전도 어서방도 아니고 황귀비께 가서, 황귀비께 목여태감을 속여서 오게 하도록 부탁했다.목여태감은 계속 명원제 곁에 있으므로 속여서 오게 하기 쉽지 않지만, 황귀비는 궁에서 존귀한 신분으로 조금 기다리니 손쉽게 목여태감을 부를 수 있었다.목여태감이 황귀비전에 들어오다가 우문호를 보고 얼굴색이 변하며 얼른 밖으로 나갔다.우문호가 막아 서며, “태감이 나를 보고 가다니, 뭔가 좋은 걸 나한테 들킬 까봐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군?”목여태감이 숨지 못해 허탈하게 웃으며, “전하말씀하시는 것 좀 봐요, 제가 뭐가 좋은 게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황귀비 마마께 문안을 여쭙지 못해서 가는 길에 인사 여쭈러 왔을 뿐입니다.”“태감은 자상하기도 하지.” 우문호가 목여태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왕 왔으니 앉아서 나랑 수다나 떨까?”목여태감은 우문호가 계속 쳐다보자 켕기는 게 있는지 한사코 뒤로 물러서며, “그게…… 소인은 가서 폐하 시중을 들어야 해서 지금 전하와 말씀을 나눌 수가 없네요. 전하께서 어렵사리 입궁하셨으니 황귀비 마마와 시간 보내시지요.”황귀비가 이 말을 듣고 미소 지으며 일어나, “태감 마침 잘 왔네, 내가 내부무와 정산할 게 있는데 자네가 태자와 좀 있어줘, 금방 다녀올 테니.”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아예 문까지 닫았다.목여태감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우문호에게, “전하,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내가 물어볼 걸 어떻게 알았어? 하지만 태감과 얘기 좀 해야지, 걱정 말고 앉아!” 우문호가 억지로 태감을 데려다 앉히자 태감이 ‘아야야’ 하며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앉지 않고 태감을 내려다보며, “태감, 아바마마께서 요즘 누구를 비교적 자주 만나 시지?”목여태감이 무심코 자연스럽게, “늘 대신들과 회의하시거나 냉대인과 바둑을 두시지 특별한 사람이 폐하를 만나러 온 적이 없습니다.”“흠, 그럼 황조부께서 병에 걸리시고 아바마
명원제와 냉정언“예!”“너한테 뭘 물었지?” 목여태감이 입술을 여전히 떨며, “소인 어찌 감히 숨기겠습니까, 태자 전하께서는 태상황 폐하의 일을 물으셨는데, 태상황 폐하께서 왜 태자비가 입궁해 병구완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냐고 했습니다.”“짐이 왜 허락하지 않았냐고 물었겠지?” 명원제의 목소리가 공허하고 차가웠다.목여태감이 털썩 무릎을 꿇고, “아……아닙니다. 폐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그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명원제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게 굳어, “태자가 물었고, 네 마음속에 의문이기도 해. 그렇지?”목여태감의 얼굴색이 갈수록 창백해 지면서, “아……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소인은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하신 일은 현명하신 결단이셨습니다.”“짐은 성현이 아니야……” 명원제는 반쯤 말하고 말을 삼키더니 눈빛에서 예리함을 거두고, “일어나라, 앞으로 태자가 만약 널 찾아 묻거든 넌 한 마디도 더 말해서는 안된다.”“예!” 목여태감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천천히 일어나 물러나가는데 명원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냉정언에게 입궁하여 짐과 바둑을 두자고 전해라.”“예!” 바둑이란 전장은 피는 튀지 않지만 상당히 잔혹하다. 전에 바둑을 둘 때 명원제는 냉정언의 적수가 되지 못했는데 이번은 연속으로 몇 판이나 명원제가 냉정언을 살려 달라고 하게 만들었다. 명원제가 바둑알을 엎으며 차를 한 모금 하더니, “태자에게 전부 얘기했느냐?”냉정언이 표정 하나 바뀌지 낳고, “폐하께 아룁니다. 할 말은 이미 다 했습니다.”“태자는 어떤 반응이었지?”“화를 내셨습니다!”명원제가 ‘흠’하고, “화만 내는 건 아직 모자란데.”“소신이 태자 전하께서 사임하실 것과 대신들과 소원할 것, 그리고 선비에 잠입한 자의 명단을 올릴 것을 암시했습니다.”명원제의 눈이 살짝 반짝이더니, “뭐라고 하던가?”“상당히 흥분하셔서, 폐위를 자청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명원제는 손에 백 돌을 하나 쥐고 있다가 튕겨내자, 바닥에서
우문호의 결정냉정언이 물러나오다 다시 고개를 돌려, “폐하, 안왕 전하 쪽에 넌지시 암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명원제가 이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으며, “그럴 필요 없어, 권세에 유착하는 건 그 녀석 본능이야, 기회만 있으면 절대로 놓칠 리 없어. 네가 사람을 시켜 넌지시 암시를 주면 오히려 그 녀석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고 말아. 아들은 아는 건 아비만한 자가 없네. 이렇게 하도록 해.”냉정언이 예를 취하고 물러나왔다.태상황의 병이 위중한 가운데 구사가 큰 무리를 이끌고 황실별장으로 모셔다 드린 후, 바로 초왕부로 가서 이 일을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는 과연 벽력같이 화를 내고 바로 입궁해서 명원제를 만나고자 했으나 명원제는 대신들과 회의 중이라 우문호를 밖에서 기다리게 했는데, 반나절을 기다려도 명원제를 만날 수 없자 결국 화를 꾹 참고 돌아왔다. 초왕부로 돌아오니 냉정언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문호가 반나절이나 바람을 맞아서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는 상태라 냉정언을 서재로 억지로 데리고 들어가, “자네가 한 그 말 안 믿어, 자네와 아바마마께서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냉정언이 마치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상관없어. 이건 확실히 폐하 뜻이니까. 이번에 온 건 다시 한 번 말해주기 위해서야. 지금은 태상황 폐하시지만 다음은 누가 될지 몰라, 최대한 빨리 사직해, 오늘 폐하께서 태자비가 새벽에 나가 밤중에 귀가하니 세자들을 양육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세자 저하분들을 입궁시켜 황후와 황귀비가 함께 키우는 게 낫겠다고 하셨어.”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정언, 사실대로 말 안 하냐,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아바마마는 그런 분 아니셔. 둘이 도대체 무슨 꿍꿍인 거야?”냉정언이 우문호에게 예를 취하고, “이로써 할 말은 끝입니다!”냉정언이 와서 고작 이따위 사이비 같은 소리나 지껄이니 우문호가 화가 안 나고 베기나?2~3일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다. 궁에서
우문호가 생각하는 원경릉저녁 수라를 들고 우문호는 원경릉과 마당을 산책했다. 이렇게 추운 날은 보통 잘 나오지 않지만 속이 시끄러워서 가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원경릉은 초왕부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계절의 순환을 3번 봤다. 요즘 너무 바빠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가만히 앉아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다.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걷는데 바람이 갑자기 멎더니 마당 풍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나무를 어렴풋이 비추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작은 징검다리를 걸으며 연애하는 기분을 느꼈다.둘이 결혼할 때를 원경릉은 겪어보지 못했다. 비록 몸의 원래 주인에게 인상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의 기억이고 그 뒤에 서로 사랑해서 같이 있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의 생활은 이렇게 일상이 되어 허겁지겁 달려오다 보니, 이렇게 멈춰 서서 소곤소곤 얘기할 일이 거의 없었다.호숫가에 서자 호수 표면은 이미 얼어서 풍등이 걸리지 않았고, 호수 표면에 반딧불이가 어른거리는 데 우문호는 원경릉을 품에 안더니 바람에 차가워진 볼에 키스하고, “만약 우리가 요부인이 전에 살던 그런 집에 살고, 보통의 음식을 먹고, 더이상 잘 만든 간식이나 귀한 요리 없이, 주변에 잔뜩 있던 하인 없이도 당신은 계속 나를 따라올 수 있어?”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풉’하고 웃으며, “뭐? 우리가 지금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줄 아나 봐? 귀한 요리는 설날이나 되야 맛볼 수 있고, 비단은 모자라지 않지만 거의 다 궁에서 내려 주시는 거에, 금은 보석도 스스로 산 적 없고, 하인들? 난 사실 누가 시중들어줄 필요 없어, 원래 그런 공주과 아니야.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 밥하고 빨래하는 거, 아이들 교육, 어수선하고 정신 사납겠지만, 뒤죽박죽한 집안꼴이 사람사는 맛이고 생활이지 안 그래?”우문호가 웃으며, “보통의 힘든 날이 꽤나 기대되는 것처럼 말하네.”“그런 날이 싫어?”우문호가 생각해 보더니, “모르겠어, 그런 적이 없으니까. 좋을지 어떨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