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여태감을 다그치다우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길래 다음날 다시 입궁했지만 이번은 건곤전도 어서방도 아니고 황귀비께 가서, 황귀비께 목여태감을 속여서 오게 하도록 부탁했다.목여태감은 계속 명원제 곁에 있으므로 속여서 오게 하기 쉽지 않지만, 황귀비는 궁에서 존귀한 신분으로 조금 기다리니 손쉽게 목여태감을 부를 수 있었다.목여태감이 황귀비전에 들어오다가 우문호를 보고 얼굴색이 변하며 얼른 밖으로 나갔다.우문호가 막아 서며, “태감이 나를 보고 가다니, 뭔가 좋은 걸 나한테 들킬 까봐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군?”목여태감이 숨지 못해 허탈하게 웃으며, “전하말씀하시는 것 좀 봐요, 제가 뭐가 좋은 게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황귀비 마마께 문안을 여쭙지 못해서 가는 길에 인사 여쭈러 왔을 뿐입니다.”“태감은 자상하기도 하지.” 우문호가 목여태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왕 왔으니 앉아서 나랑 수다나 떨까?”목여태감은 우문호가 계속 쳐다보자 켕기는 게 있는지 한사코 뒤로 물러서며, “그게…… 소인은 가서 폐하 시중을 들어야 해서 지금 전하와 말씀을 나눌 수가 없네요. 전하께서 어렵사리 입궁하셨으니 황귀비 마마와 시간 보내시지요.”황귀비가 이 말을 듣고 미소 지으며 일어나, “태감 마침 잘 왔네, 내가 내부무와 정산할 게 있는데 자네가 태자와 좀 있어줘, 금방 다녀올 테니.”말을 마치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아예 문까지 닫았다.목여태감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우문호에게, “전하,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내가 물어볼 걸 어떻게 알았어? 하지만 태감과 얘기 좀 해야지, 걱정 말고 앉아!” 우문호가 억지로 태감을 데려다 앉히자 태감이 ‘아야야’ 하며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앉지 않고 태감을 내려다보며, “태감, 아바마마께서 요즘 누구를 비교적 자주 만나 시지?”목여태감이 무심코 자연스럽게, “늘 대신들과 회의하시거나 냉대인과 바둑을 두시지 특별한 사람이 폐하를 만나러 온 적이 없습니다.”“흠, 그럼 황조부께서 병에 걸리시고 아바마
명원제와 냉정언“예!”“너한테 뭘 물었지?” 목여태감이 입술을 여전히 떨며, “소인 어찌 감히 숨기겠습니까, 태자 전하께서는 태상황 폐하의 일을 물으셨는데, 태상황 폐하께서 왜 태자비가 입궁해 병구완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냐고 했습니다.”“짐이 왜 허락하지 않았냐고 물었겠지?” 명원제의 목소리가 공허하고 차가웠다.목여태감이 털썩 무릎을 꿇고, “아……아닙니다. 폐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그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명원제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게 굳어, “태자가 물었고, 네 마음속에 의문이기도 해. 그렇지?”목여태감의 얼굴색이 갈수록 창백해 지면서, “아……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소인은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하신 일은 현명하신 결단이셨습니다.”“짐은 성현이 아니야……” 명원제는 반쯤 말하고 말을 삼키더니 눈빛에서 예리함을 거두고, “일어나라, 앞으로 태자가 만약 널 찾아 묻거든 넌 한 마디도 더 말해서는 안된다.”“예!” 목여태감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천천히 일어나 물러나가는데 명원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냉정언에게 입궁하여 짐과 바둑을 두자고 전해라.”“예!” 바둑이란 전장은 피는 튀지 않지만 상당히 잔혹하다. 전에 바둑을 둘 때 명원제는 냉정언의 적수가 되지 못했는데 이번은 연속으로 몇 판이나 명원제가 냉정언을 살려 달라고 하게 만들었다. 명원제가 바둑알을 엎으며 차를 한 모금 하더니, “태자에게 전부 얘기했느냐?”냉정언이 표정 하나 바뀌지 낳고, “폐하께 아룁니다. 할 말은 이미 다 했습니다.”“태자는 어떤 반응이었지?”“화를 내셨습니다!”명원제가 ‘흠’하고, “화만 내는 건 아직 모자란데.”“소신이 태자 전하께서 사임하실 것과 대신들과 소원할 것, 그리고 선비에 잠입한 자의 명단을 올릴 것을 암시했습니다.”명원제의 눈이 살짝 반짝이더니, “뭐라고 하던가?”“상당히 흥분하셔서, 폐위를 자청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명원제는 손에 백 돌을 하나 쥐고 있다가 튕겨내자, 바닥에서
우문호의 결정냉정언이 물러나오다 다시 고개를 돌려, “폐하, 안왕 전하 쪽에 넌지시 암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명원제가 이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으며, “그럴 필요 없어, 권세에 유착하는 건 그 녀석 본능이야, 기회만 있으면 절대로 놓칠 리 없어. 네가 사람을 시켜 넌지시 암시를 주면 오히려 그 녀석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고 말아. 아들은 아는 건 아비만한 자가 없네. 이렇게 하도록 해.”냉정언이 예를 취하고 물러나왔다.태상황의 병이 위중한 가운데 구사가 큰 무리를 이끌고 황실별장으로 모셔다 드린 후, 바로 초왕부로 가서 이 일을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는 과연 벽력같이 화를 내고 바로 입궁해서 명원제를 만나고자 했으나 명원제는 대신들과 회의 중이라 우문호를 밖에서 기다리게 했는데, 반나절을 기다려도 명원제를 만날 수 없자 결국 화를 꾹 참고 돌아왔다. 초왕부로 돌아오니 냉정언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문호가 반나절이나 바람을 맞아서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는 상태라 냉정언을 서재로 억지로 데리고 들어가, “자네가 한 그 말 안 믿어, 자네와 아바마마께서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냉정언이 마치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상관없어. 이건 확실히 폐하 뜻이니까. 이번에 온 건 다시 한 번 말해주기 위해서야. 지금은 태상황 폐하시지만 다음은 누가 될지 몰라, 최대한 빨리 사직해, 오늘 폐하께서 태자비가 새벽에 나가 밤중에 귀가하니 세자들을 양육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세자 저하분들을 입궁시켜 황후와 황귀비가 함께 키우는 게 낫겠다고 하셨어.”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정언, 사실대로 말 안 하냐,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아바마마는 그런 분 아니셔. 둘이 도대체 무슨 꿍꿍인 거야?”냉정언이 우문호에게 예를 취하고, “이로써 할 말은 끝입니다!”냉정언이 와서 고작 이따위 사이비 같은 소리나 지껄이니 우문호가 화가 안 나고 베기나?2~3일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다. 궁에서
우문호가 생각하는 원경릉저녁 수라를 들고 우문호는 원경릉과 마당을 산책했다. 이렇게 추운 날은 보통 잘 나오지 않지만 속이 시끄러워서 가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원경릉은 초왕부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계절의 순환을 3번 봤다. 요즘 너무 바빠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가만히 앉아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다.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걷는데 바람이 갑자기 멎더니 마당 풍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나무를 어렴풋이 비추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작은 징검다리를 걸으며 연애하는 기분을 느꼈다.둘이 결혼할 때를 원경릉은 겪어보지 못했다. 비록 몸의 원래 주인에게 인상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의 기억이고 그 뒤에 서로 사랑해서 같이 있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의 생활은 이렇게 일상이 되어 허겁지겁 달려오다 보니, 이렇게 멈춰 서서 소곤소곤 얘기할 일이 거의 없었다.호숫가에 서자 호수 표면은 이미 얼어서 풍등이 걸리지 않았고, 호수 표면에 반딧불이가 어른거리는 데 우문호는 원경릉을 품에 안더니 바람에 차가워진 볼에 키스하고, “만약 우리가 요부인이 전에 살던 그런 집에 살고, 보통의 음식을 먹고, 더이상 잘 만든 간식이나 귀한 요리 없이, 주변에 잔뜩 있던 하인 없이도 당신은 계속 나를 따라올 수 있어?”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풉’하고 웃으며, “뭐? 우리가 지금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줄 아나 봐? 귀한 요리는 설날이나 되야 맛볼 수 있고, 비단은 모자라지 않지만 거의 다 궁에서 내려 주시는 거에, 금은 보석도 스스로 산 적 없고, 하인들? 난 사실 누가 시중들어줄 필요 없어, 원래 그런 공주과 아니야.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 밥하고 빨래하는 거, 아이들 교육, 어수선하고 정신 사납겠지만, 뒤죽박죽한 집안꼴이 사람사는 맛이고 생활이지 안 그래?”우문호가 웃으며, “보통의 힘든 날이 꽤나 기대되는 것처럼 말하네.”“그런 날이 싫어?”우문호가 생각해 보더니, “모르겠어, 그런 적이 없으니까. 좋을지 어떨
비장한 아침 조례두 사람이 해가 뜰때까지 여러 화제로 얘기하고 여러 일을 토론했는데 거의 원경릉이 얘기하고 우문호는 들으며 말다툼 한마디 없었다.5경(새벽3시~5시)이 되자 멀리서 닭이 울고 개가 짖는데 하늘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지만 오늘 할 일이 이미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원경릉이 직접 우문호의 조복을 챙겨주며 막 자란 수염을 깎아 주고, 관을 묶고 금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둘렀다. 태자 조복에 수 놓인 승천하는 용그림이 한층 더 늠름하고 고귀해 보인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가볍게, “됐어, 이렇게 예쁘게 할 필요 없어, 오늘이 마지막으로 조복을 입은 건데 뭐.”“그럼 한층 더 위풍당당해야지.” 원경릉이 훤칠한 우문호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자태가 멋진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게 상당히 으쓱했다.우문호가 웃으며 한탄하는데, “뭐가 이렇게 비장해? 괜찮아, 아바마마께 노여움을 산 게 한두 번이야. 전에 미움을 산 적이 얼마나 많은데.”“그래. 걱정 마, 만약 아바마마께서 진짜 벌을 내리셔도 우리 가족 다섯식구가 도망가면 그 뿐이야.”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가장 큰 위로를 선사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코끝이 시큰하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해서, “이생에 당신을 아내로 맞은 게 내 최고의 행복이야.”“나도 그래!” 원경릉이 따스하게 웃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키스하며 제 딴에는 유머라고, “날 아내로 맞으면 안되지, 당신은 나한테 시집온 거야.”원경릉이 다리를 걷어차며 허리를 굽히고 웃더니, “쪼잔한 녀석, 어서 가, 시간 다 됐어.”우문호가 웃으며 나가고 입구에 다다르자 원경릉을 한참 바라보고 뒤를 돌더니 미소를 거두고 엄숙하고 장중한 표정이 되었다.원경릉은 그가 가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거두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여기서 나간다 해도 어찌될지 몰라 마음속으로 사실 걱정이 되는 것이, 만약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온 가족이 달아나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게, 금군이 성을 봉쇄할 텐데 어디로 도망갈 수
태자에게 내린 벌“전하 그 입 다무십시오!” 주재상이 앞으로 나와 태자의 입을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최근 황제의 비정상적인 태도를 조사중에 있는데 태자가 이렇게 충동적일 줄 몰랐다.명원제의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져 눈에서 분노가 움찔거리는데 손을 들어 조당에 비난을 진정시키고 차갑게, “세 번째는?”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명원제를 똑바로 보더니 어금니를 악물고, “세번째는 청이 아니라 죄를 묻는 것입니다. 폐하께 감히 여쭙건 데 선조께서 북당 왕조를 여신 이래 지금까지 계속 인과 효를 치국의 이념으로 삼아왔고, 헌제께서는 더욱 효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지금 태상황 폐하께서 중병을 앓으시는데 왜 태자비가 가서 진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폐하께서 태상황 폐하의 치료를 질질 끌어 시기를 놓친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문부백관 앞에서 해명해 주셨으면 합니다.”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일부 나이든 신하들이 흥분해서 줄 밖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폐하, 태자 전하의 말이 사실입니까? 태상황 폐하의 병이 위중하신 지요?”여론이 밀물처럼 명원제에게 들이닥치고 명원제의 얼굴에 분노와 음침한 기운이 교차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살기가 느껴졌다.우문호가 단숨에 말하고 나니 아바마마의 분노와 신하들의 비방을 앞에 두고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주재상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같이 꿇어앉아, “폐하, 태자비 마마께서 태상황 폐하를 치료하실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재상이 이렇게 말하자 많은 신하들이 덩달아 꿇어 앉아 같이 주청을 드렸다.조정 신하들의 목소리가 명원제를 뒤덮으니, 높은 자리에 올라 지극한 위세를 가졌음에도 한없이 약하게 보였다.그리고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명원제가 일어나 자리를 뜨자, 목여태감이 ‘퇴청하라’고 급하게 말하고는 얼른 따라 나갔다.명원제가 가고 한 무리의 신하들이 우문호를 둘러싸고 태상황의 상태를 물었는데, 우문호는 자세한 말을 하지 않고 무리가 둘러싼 가운데 대전을 떠났다.
긍정적인 눈우문호가 막 궁을 떠나는데 주재상 마차가 궁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재상이 사람을 시켜 우문호를 가로막더니 마차에 오르게 했다.마차 가리개를 내리고 주재상이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너무 충동적이셨어요. 이렇게 하시면 폐하의 체면을 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들 된 자가 대전에서 아버지께 불효의 죄를 묻다니 이 무슨 어이없는 경우입니까?”우문호가, “재상, 경솔한 건 알지만 며칠간 미치고 팔짝 뛸 뻔했습니다. 황조부의 병세가 낙관적이지 않아요, 반드시 빨리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재상이 한숨을 쉬며, “이제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관직을 잃고 금족령에 처해지셨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다 헛수고가 되었습니다.”우문호가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적어도 이 태자라는 지위는 남아있지 않습니까.”“이렇게 가다가는 조만간 입니다.” 주재상이 걱정하며 말했다.우문호가, “재상도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이 일은 재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으니까. 오늘 내가 조당에서 이렇게 아바마마께 대들었는데 보기엔 진노하신 것 같지만 엄벌에 처하지 않으시고 삭탈관직에 불과하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아바마마께서 정말 벽력같이 크게 노하셔서 저에게 완전 실망하셨으면 이정도로 그칠 수 있겠어요?”“뭘 어떻게 더해요? 삭탈관직입니다.” 주재상은 도무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삭탈관직이라지만 경조부 부윤으로 누구를 앉힌 게 아니고 일곱째에게 경조부를 이어받게 하셨어요, 다들 알다시피 일곱째는 제 사람이니 대권은 아직 남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재상이 놀라며, “전하의 말씀은?”“이건 어쩌면 다른 속내가 있는 거죠!” 우문호가 갈수록 확신이 섰다.주재상이 의심스럽다는 듯, “속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재상은 아바마마께서 황조부에 대한 태도가 왜 이렇게 돌변했는지 의심한 적이 없습니까?”“의심했었지요……” 재상이 잠시 망설이더니, “하지만 전체를 관망해 보면 폐하께서 이렇게 크게 연극을 하실 필요가 없어요. 당장 어떤 일이
태상황을 찾아 별장으로“당신이랑 같이 못 가, 난 금족령이라. 하지만 안심 해, 며칠 있다가 몰래 당신을 찾아갈 방법을 생각해 낼 테니까.” 우문호가 말했다.“괜찮아, 집에서 애들 잘 봐, 느긋한 나날도 즐기고, 곧 연말이잖아? 집 안팎으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탕대인 도와서 일 좀 분담해.”“그래!” 집안일이야 식은 죽 먹기지.원경릉이 밤새 만아와 희상궁을 데리고 별장으로 갔다. 별장에 도착하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태상황은 별장의 동난각에 모셔졌는데 온돌이 있어 아주 따듯하게 군불이 들어와 있었다.상선이 직접 나와서 맞으며, “태자비 마마께서 오시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태상황 폐하는 어떠세요?” 원경릉이 발을 구르며 몸에 눈을 떨어냈다.“어젯밤 밤새 기침을 하시고 여전히 숨을 잘 못 쉬세요.” 상선이 얘기하며 원경릉을 데리고 들어갔다.푸바오가 안에서 달려 나와 원경릉의 발을 맴돌며 계속 따라오는데 원경릉이 허리를 숙여 안고, “푸바오 착하네, 주인을 모실 줄도 알고.”“푸바오가 어찌나 착한지, 태상황 폐하께서 아프신 요즘 계속 곁을 지키며 저녁에도 밖에 나가서 자지 않아요.” 상선이 말했다.상선이 가리개를 젖히고 작은 목소리로, “태자비 마마, 들어오세요, 태상황 폐하께서 막 잠 드셨습니다.”원경릉이 푸바오를 내려놓고 살금살금 들어갔다.안은 따듯했고 용연향(龍涎香)을 피워 놓았는데, 향이 차고 맑아서 답답할 때 맡으면 상쾌해 진다.태상황은 침대에 누워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있었다. 얼굴은 푸르뎅뎅하며 졸음에 겨운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기엔 막 일어난 것 같다.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쉰 목소리로, “왔느냐!”호흡은 여전히 가빠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힘이 들었다.원경릉이 약상자를 들고 가서 침대 곁에 반쯤 무릎을 꿇고, “왔어요!”침대에 누워 있는 이토록 연약한 노인이라니, 원경릉은 명원제가 도대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태상황의 병을 이용한 점은 용서할 수 없다.마음이 아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