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111화

작가: 유애
태상황이 하사한 물품이라고 하자 노마님이 천천히 몸을 돌려 원경릉을 보았다.

“태상황님을 만나셨습니까?”

“예. 며칠 전까지도 태상황님의 시중을 들다가 어제 막 궁을 나왔습니다.” 원경릉이 미소 띈 얼굴로 말했다.

“왕비께서 노마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여기로 온 것 입니다.”손씨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노마님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지더니 벌떡 일어나 부들거리는 손으로 원경릉의 뺨을 내리쳤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태상황님의 병시중을 들었다고?”

원경릉은 뺨을 맞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노마님은 온 힘을 다해 말을 뱉어내고는 숨을 헐떡였다.

노마님은 목에서 가래가 올라오는 듯 구룩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파래지더니 피가 안통하는 듯 입술이 하얘졌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침상에 누웠다.

원경릉은 다급하게 약상자 안에 천식 흡입기를 꺼냈다. 그녀는 호흡기를 노마님의 입과 코에 대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힘껏 들이마시세요. 이것은 황실에서 쓰는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노마님은 인상을 찌푸린채로 어쩔 수 없이 깊게 흡입기를 들이마셨다.

원경릉은 흡입제가 한 칸 내려오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천천히 숨을 쉬세요.”

노마님의 호흡이 차츰 부드러워졌고 백지장 같던 그녀의 얼굴에도 핏기가 돌았다.

“이게 무슨 약입니까? 정말 신통합니다!”이를 본 손씨가 놀란 듯 말했다.

“궁에서 쓰는 약입니다. 태상황님께서도 이것과 비슷한 약을 쓰십니다.” 원경릉은 흡입기를 침상 머리맡에 두며 “나중에 조모께서 발작을 일으키시면 이걸 쓰십시오.” 라고 말했다.

노마님이 점차 안정되자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과 폐 주위를 살폈다. 그녀는 노마님이 천식을 앓았고 그 이후에 폐기종까지 앓았기에 그녀의 몸이 성치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만약 여기서 병세가 더 악화된다면 죽을 수 있었다.

천식은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고 폐기종은 만성병이기에 오랜 기간 치료를 하지 않으면 쉽게 호전되기 어려웠다. 노마님은 병으로 쓰러진 이후 지금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112화

    원경릉이 노마님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소나라(苏国)의 삼촌이 찾아왔다. 소국구(苏国舅)은 태후의 친동생으로 황제의 처남이다. 소가(苏家)는 몇 년 동안이나 특출난 인재가 없었는데,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고 하지않는가. 태후, 현비 모두 조정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국구가 정후부에 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초왕이 후궁을 맞이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말을 하는 내내 태후를 들먹이며 정후부와 초왕비도 후궁을 맞는 일에 나서서 축복하라고 했다.정후가 초왕이 후궁을 들인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공주부의 일을 꾸미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초왕의 총애를 얻지도 못하고, 주씨 가문에게도 미움을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딸도 잃고 권력도 잃은 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소국구의 강력한 요구에 그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척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국구야(国舅爷). 안심하세요. 왕비도 기뻐할 것 입니다. 주씨 가문에서 후궁을 들이시면 왕비도 자매처럼 지내며 왕야를 잘 모실겁니다.”“후작나리께서는 머리가 좋으신 분이니 제가 말에 핵심을 짚으셨으리라 믿습니다. 후궁을 들이면 태후마마와 현비마마가 마음을 놓으실 겁니다. 안심하시지요. 후작나리의 일은 현비마마가 기억하고 있으니 억울한 일을 겪지는 않을 겁니다.” 국구는 담담하게 말했다.정후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일은 어찌 현비가 돕겠는가? 지금 북당의 강산 절반을 주씨 가문이 꽉 잡고 있는 마당에 소씨 가문이 힘을 쓸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일부러 기쁜 척하며 연신 읍했다. “태후마마, 현비마마 황송하옵니다!”소국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갔다. 노마님의 집 밖으로 나온 원경릉은 두명의 시위(侍卫)에게 가로막혀 서재로 끌려왔다. 정후부에서는 녹주를 원경릉과 따로 떼어 놓기 위해 불러다가 간식을 먹였다.정후는 원경릉을 보자 대노하였다. “묻는 말에 대답하거라. 네가 초왕이 후궁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다가 현비의 노여움을 사 궁에서 쫓겨난 것이냐?”원경릉

  • 명의 왕비   제 113화

    이 일은 정후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처리해야만 했다. 황실과 정후부의 체면을 차리면서도 초왕의 심기를 살펴야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초왕과 정후부의 체면을 위해서는 딱 한가지 방법 뿐, 바로 원경릉을 희생시키는 길 밖에 없었다.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이리오거라! 둘째 노마님을 불러오거라." 원경릉이 정후부로 돌아온 후 사흘 정도 됐을 무렵, 둘째 노마님에게 좋은 어의를 불러 임신을 하기 위한 검사를 진행했지만, 선천병이 있어 임신할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정후부의 둘째 노마님의 주변인이 퍼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경릉이 이 소식을 들은 것은 사흘이 지난 뒤였다.녹주는 시내에 바늘을 사러 나갔다가 이 소문을 듣게 됐다. 소문을 들은 녹주는 몹시 화가 났다. 원경릉이 친정에 온 순간부터 녹주가 곁에 있었는데 어의는 커녕 환대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그저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후부가 일부러 이 소문을 퍼뜨린 것을 알아차렸다. 원경릉이 이미 왕부와 주씨 가문의 눈 밖에 난 이상, 주씨 가문에게 아부하기위해 이런 소문을 퍼뜨린게 분명했다.이 소식을 들은 주씨 가문은 손 안대고 코푼격이 되었다. 원경릉이 스스로 구실을 찾아 황실을 나가주겠다니. 주씨 가문에서는 줄곧 우문호와의 혼사를 미뤄왔는데 이는 둘째 딸인 주명양이 후궁으로 시집을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그닥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주명양이 초왕의 정비로 시집을 간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과연 정후의 잔머리는 알아줄 만 했다. 이런 머리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썼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왕비님, 왜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헛소문을 믿고 있습니다."비록 녹주는 이전에 왕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왕비는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 지금의 녹주는 진심으로 왕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녹주는 사람들이 왕비를 욕하는 것이 용납할 수 없이 화가 났다.그러자 원경릉은 웃으면서 "

  • 명의 왕비   제 114화

    첩을 들이는 문제로 입궁한 원경릉원경릉 생각에 측실을 맞이하는 일은 벌써 며칠째 입질에 오르내렸다. 바깥엔 원경릉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고, 이 얘기가 궁에 전해지면 원경릉을 궁으로 불러 내칠 것이 분명하다. 원경릉은 기상궁에게 오늘이나 어젯밤에 궁중에서 사람이 온 적이 없었냐고 물었다.기상궁은: “목여태감이 직접 한 번 오셨습니다.”바로 그거다, 분명 황제 폐하께서 초왕의 뜻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인 게 분명하다. 주씨 집안의 여식을 아내로 맞는 것이 우문호의 소원이었는데, 우문호가 흔쾌히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원경릉은 태연하다. 비록 황실 가문에서 내쳐지지만, 분명 그녀에게 충분히 배상해 줄 것이고, 원경릉은 앞으로 생계로 걱정할 필요 없으며, 차용증도 한 장 있으니, 이 차용증으로 자신을 위한 작은 집 한 칸은 마련할 수 있다.드디어 해방이란 마음으로 원경릉은 마차에 올랐다.궁 입구에서 원경릉은 마차의 가리개를 걷고 끝없이 늘어선 황금빛 자개 추녀를 바라보며, 어쩌면 이게 그녀의 마지막 입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또한 그녀의 마음속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있었다.원경릉은 마차에세 내려 어서방으로 걸어가며 심미안을 가지고 궁중의 경치를 감상했다.북당의 황궁은 정말 아름답다. 강남의 건축물처럼 우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북당의 황궁은 위풍당당한 아름다움, 유구한 고탑, 넓은 전당, 금박을 칠한 둥근 기둥, 황권의 위세가 드러나지 않은 곳이 없다. 원경릉은 어서방 문 앞에서 안에서 나오던 사람과 마주쳤다.이 사람은 청색 학창의를 입고, 관모에 홍보석을 박았는데 대략 6~70세 정도로 수염과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얼굴이 홀쭉하고 말랐으나 눈빛만은 상당히 예리해서 그가 나갈 때 한번 원경릉의 얼굴에 눈길을 주었을 뿐인 데도 마치 두 줄기 번개로 훑는 것 같아 원경릉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이 사람이 바로 북당의 산천 절반을 손에 쥐고 있으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주재상이다.주재

  • 명의 왕비   제 115화

    우문호가 후궁을 들이는 것에 대한 원경릉의 생각원경릉이 멍청했다, 우문호 너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저는 반대하지 않았어요.” 원경릉이 급히 해명하며, “이 일은 왕야가 애초에 제 의사를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너는 지금 다섯째가 네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무언중에 얘기하는 것이냐?” 명원제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만약 생각하는 바가 서로 너무 틀리면, 원경릉은 본래 ‘저는 아무 이견 없다’는 한 마디만 확실하게 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혼장을 기다렸다가, 짐을 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결국 바깥 소문이 전부 원경릉이 왕비자리에서 내려오는데 복선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목여태감이 얻은 답은 네가 결혼한지 고작 일년에 불과하니 이렇게 빨리 후궁을 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짐이 기억하기로 너도 곧 황실을 위해 자손을 낳겠다고 했는데, 네 말이 앞 뒤가 모순 아닌가? 도대체 뭐가 맞는 말이냐?”원경릉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그때는 얼른 아이를 낳을 거라고 답했는데, 당시 분위기에 맞춰 원경릉이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으로 다음 일을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나?“너는 도대체 찬성이냐 아니면 반대냐?” 명원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릉은 입을 열어 동의한다는 말이 나오려는 찰나, 목여태감이: “왕비마마께서 말을 아끼시는 것은, 폐하를 속이는 죄를 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원경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폐하를 속이는 죄?하지만 원경릉이 뭐라고 대답해야 폐하를 속이지 않는 걸까? 찬성하든 반대하든 전부 폐하를 속이는 죄를 짓고 만다.목여태감이 일깨워주며: “왕비마마께서 당시에 찬성하신 것은, 왕야를 위해 자손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만약 왕비마마께서 일년 내에 황자를 낳으시면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그러……” 원경릉은 근심으로 머리가 하얗게 샐 지경이다.아니라고 말하면, 그때 황제 폐하께 황실의 자손

  • 명의 왕비   제 116화

    태상황 앞에 선 원경릉명원제가: “다섯째가 너를 존중한다고 하니, 짐도 다섯째를 한 번 존중하기로 하지. 혼사는 강요할 수 없는 법. 앞으로 원수가 되지 않게 이 일은 짐이 현비에게 가서 해명하마, 너는 가보거라.”맞다, 현비가 있었다. 원경릉은 이번에 자신의 시어머니한테까지 완전히 미움을 샀다. 사방에 적이 아닌 사람이 없구나.어서방을 나오며 원경릉은 마음속에 어마어마하게 큰 칼을 품었다. 만약 살인이 죄가 아니라면 우문호는 반드시 그녀의 손에 죽어 마땅하다.어서방을 떠나 밖으로 나오니 누군가 원경릉을 기다렸다가 현비가 그녀를 보고자 한다고 전했다.바깥세상의 압박이 언제 자신한테 다다를까 했는데, 현비가 가장 빨랐다.눈 딱 감고 현비가 있는 경여궁(慶余宮)으로 가는 길에, 뜻밖에도 상선을 만났다.“왕비마마, 태상황 폐하께서 찾으십니다!”경여궁의 상궁이: “상선, 현비마마께서 먼저 왕비를 청하셨으니, 몇 말씀 드려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경여궁에 갔다 오는 것을 기다려서 다시 건곤궁에 모시고 가는 게 나으신 지요?”상선은 미륵불처럼 염화미소를 지으며, “중요한 일 아닙니다, 단지 태상황 폐하께서 기다리다 지치셔서 노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됩니다만.”상궁은 고집을 부릴 수 없어, “그럼, 왕비께서는 태상황 폐하를 알현하시고 경여궁으로 가시지요.” 상선이: “그리 빨리 끝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태상황 폐하 쪽 일이 워낙 많고, 게다가 하나는 왕비께서 바로 출궁하여 처리하실 일이라, 상궁은 현비마마께 돌아가 왕비께서 다음에 다시 입궁하여 현비마마께 문안을 드리겠다고 전해주시지요.”상궁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이건 태상황 폐하의 뜻이십니다.” 상선이 다시한번 일깨우며 말했다.상궁은 예를 취하고, “예, 그럼 저는 이만 현비마마께 돌아가겠습니다.”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상선을 따라 갔다.어느정도 가서 원경릉이: “상선이 나서서 도와 줘서 고마워요.”“태상황 폐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신 것이지요.” 상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명의 왕비   제 117화

    태상황 앞에서 고주망태가 돼서 주정하는 원경릉“한 모금하고 다 잊어 버려,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힘든 날엔 취할 수도 있지, 취하면 사람을 시켜 초왕부에 바래다주마.”태상황이 말하며 손짓으로 상선에게 술을 가져오게 시켰다.원경릉은 지난 생에 마신 술 중에 제일 센 게 샴페인으로, 두 잔 마시고 고주망태로 취했지만 다른 몸이 되었으니 주량이 이렇게 작진 않을 게 분명하고 어쨌든 이 고대 사람들은 가끔 술을 마신다더라.상선이 가져온 계화황주 향기가 나자, 원경릉은 한 모금 냄새를 들이마셔보니 향이 괜찮은 게 독한 주정 냄새가 나지 않는다.“과인은 마실 수 없고 평소에도 자주 마신 게 아니라 술 냄새만 맡아도 힘들구나.” 태상황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이렇게 말한다.상선이 옆에서 술을 따르며 태상황에게 한잔을 따르자, 원경릉이 한 손으로 저지하며 경고하길: “냄새만 맡으실 수 있어요.”“냄새만 맡아도 좋아.” 태상황이 심호흡을 하니 술기운이 코를 통해 천천히 스며들어 마실 때의 술 맛을 되새김질 해보니 전신이 악간 휘청거리는 기분이다. “자, 넌 마셔라, 과인은 냄새를 맡을 테니!” 태상황은 술잔을 들고 원경릉과 건배를 했다.태상황은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서, “이 술 맛이 변한 건가? 왜 이전처럼 향기롭지 않지? 이놈들, 술 관리를 제대로 못했구나, 과인이 먹어보고 만약 맛이 변했으면 이놈들 전부 끌어내서 곤장을 쳐라.”말을 마치고 살짝 입을 대더니 쯧쯧 혀를 차며, “맛을 못 봤어.”이렇게 손을 흔들며 계속 맛을 보니, 상선이 손을 꼭 쥐며, “태상황 폐하, 수법을 좀 바꾸시는 게 어떠십니까? 또 속이고 술을 드셨습니다.”태상황은 부끄러운 나머지 화를 내며, “과인이 속여서 술을 마실 필요가 어디 있어? 과인이 마시고 싶으면 너희들이 어디 막을 수가 있느냐?”“소인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잔은 내려놓으시고 계속 향을 음미하시지요.”상선이 말했다.태상황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붓고 잔을 내려 놓으며 원경릉에게, ‘너나

  • 명의 왕비   제 118화

    술취해 망가진 원경릉원경릉이 이 모양이 되어 봉의각으로 실려온 것을 보고, 모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기상궁이 침착하게 서둘러 녹주에게 해장국을 준비하게 하고 구사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구사가: “태상황 폐하의 어전에서 술에 취해, 해장국도 내려주었으나 전부 토했습니다.”“태상황 폐하 어전에서 취했다고요? 세상에나, 태상황 폐하께서 어마어마하게 화를 내셨겠네요.” 희상궁이 경악하며 말했다.“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셨는지 안 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선 얼굴이 완전 하얗게 질렸 더군요.” 구사가 말했다.“아이고!” 희상궁이 얼굴을 돌려 원경릉을 보니 침대에 앉아있길래 기상궁이 그녀를 눕히려 하자 원경릉이 유모 손을 잡고: “건드리지 마, 나 어지러워!”“구대인서는 돌아가시지요, 감사합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구사가 원경릉을 보니 얼굴이 무섭게 달아올라 있으며 눈은 뻘겋고 머리는 산발에 옷도 찢겨서 여기저기 구겨진 게, 총체적으로 난국이다.“그럼 이만!” 구사가 몸을 돌려 나갔다.평소처럼 나갈 때 봤을 땐 분명 단아한 초왕비였건만, 고주망태가 되어 주사를 부리니 이렇게 끔찍할 수가. 구사는 막 건곤전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원경릉이 의자를 들어 때려 부수고 있고, 태상황은 나한상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으며, 상선은 몸에 구토물을 뒤집어 쓴 채, 하사 받은 새 옷이 못 쓰게 된 것에, 발을 구르며 열 받아 했다.구사는 한번도 건곤전에서 이렇게…… 사람냄새가 나는 걸 본 적이 없다.또한 태상황 폐하께서 위엄 있는 표정 외에 다른 표정, 그러니까 겁에 질린 아기토끼 같은 표정을 지으시는 걸 본 적도 없다.어쩌면 왕야께 이 일을 말씀드려야 했을 지 모른다.원경릉은 침대 앞에 앉아 하늘이 뱅뱅 돌며 눈 앞에 사물이 다가왔다 멀어졌다 하고, 잡음이 귀에 윙윙 들리는데 마치 저 멀리서 그녀와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원경릉은 지금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반드시 뭔가를 해야만 했다. 아니면 열 받아 죽을 것이다.

  • 명의 왕비   제 119화

    우문호에게 식칼을 들고 뛰어든 원경릉원경릉은 자꾸 발을 헛디디며, 입으론 중얼중얼, “또 나를 끌고 가는 거야? 나 올해 삼재야? 여기 오니까 사람들한테 범인 취급 당해, 니들이 나 구해줬을 때 있잖아.”“예, 예!” 두 사람은 답은 해야 하겠고, 감히 반문할 수도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왕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상선이 어떻게 왕비를 이렇게 취하도록 놔둔 건지 의혹이 쌓여갔다.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자, 원경릉은 편하지가 않고 오히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잡념이 끊임없이 소용돌이 쳤다.마음 속에 꾹꾹 눌러 놓은 화가 가득 차올라 너무 고통스럽다. 어떻게 한 가지도 편하게 지나가는 게 없을까? 너 우문호, 혼사를 거절하고 싶으면 자기 뜻이 그렇다고 하면 되지, 왜 원경릉을 방패막이로 삼는 건데? 원경릉이 그렇게 만만해?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원경릉은 허리띠로 목을 메고 사람들이 언제 와서 시체를 가져가나 보고 있을 뿐이다. 목숨이 한낱 지푸라기 같구나, 이름도 한낱 지푸라기 같구나, 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원경릉이 만약 죽어야 한다면 그녀를 이렇게 만든 원흉도 죽어 마땅하다. 이 집념 하나로 원경릉은 주방에 도착해 두 사람을 뿌리치고 머리를 들이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이 허위적 허위적 걷는 것을 보고 녹주는 깜짝 놀라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왕비마마께서 여기서 뭘 찾으십니까? 말씀하세요, 쇤네가 찾아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이 발견했는지 달려들어 큰 식칼을 빼 들고, 녹주를 향해 이를 악물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내가 먼저 죽여주겠어.” 이 행동에 두 상궁과 녹주는 놀라 자빠지고, 원경릉은 식칼을 휘두르며 칼춤을 추는데 실수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수로 자기가 다칠 것 같아 걱정이 됐다.“왕비마마, 말로 하세요!” 희상궁이 녹주에게 눈짓을 하자, 녹주가 시위를 찾으러 나갔다.녹주가 눈치를 채고 빈틈을 노려 밖으로 도망치려 하자, 원경릉이 녹주의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3211화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 명의 왕비   제3210화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 명의 왕비   제3209화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 명의 왕비   제3208화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 명의 왕비   제3207화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 명의 왕비   제3206화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 명의 왕비   제3205화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 명의 왕비   제3204화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 명의 왕비   제3203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