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 앞에서 고주망태가 돼서 주정하는 원경릉“한 모금하고 다 잊어 버려,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힘든 날엔 취할 수도 있지, 취하면 사람을 시켜 초왕부에 바래다주마.”태상황이 말하며 손짓으로 상선에게 술을 가져오게 시켰다.원경릉은 지난 생에 마신 술 중에 제일 센 게 샴페인으로, 두 잔 마시고 고주망태로 취했지만 다른 몸이 되었으니 주량이 이렇게 작진 않을 게 분명하고 어쨌든 이 고대 사람들은 가끔 술을 마신다더라.상선이 가져온 계화황주 향기가 나자, 원경릉은 한 모금 냄새를 들이마셔보니 향이 괜찮은 게 독한 주정 냄새가 나지 않는다.“과인은 마실 수 없고 평소에도 자주 마신 게 아니라 술 냄새만 맡아도 힘들구나.” 태상황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이렇게 말한다.상선이 옆에서 술을 따르며 태상황에게 한잔을 따르자, 원경릉이 한 손으로 저지하며 경고하길: “냄새만 맡으실 수 있어요.”“냄새만 맡아도 좋아.” 태상황이 심호흡을 하니 술기운이 코를 통해 천천히 스며들어 마실 때의 술 맛을 되새김질 해보니 전신이 악간 휘청거리는 기분이다. “자, 넌 마셔라, 과인은 냄새를 맡을 테니!” 태상황은 술잔을 들고 원경릉과 건배를 했다.태상황은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서, “이 술 맛이 변한 건가? 왜 이전처럼 향기롭지 않지? 이놈들, 술 관리를 제대로 못했구나, 과인이 먹어보고 만약 맛이 변했으면 이놈들 전부 끌어내서 곤장을 쳐라.”말을 마치고 살짝 입을 대더니 쯧쯧 혀를 차며, “맛을 못 봤어.”이렇게 손을 흔들며 계속 맛을 보니, 상선이 손을 꼭 쥐며, “태상황 폐하, 수법을 좀 바꾸시는 게 어떠십니까? 또 속이고 술을 드셨습니다.”태상황은 부끄러운 나머지 화를 내며, “과인이 속여서 술을 마실 필요가 어디 있어? 과인이 마시고 싶으면 너희들이 어디 막을 수가 있느냐?”“소인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잔은 내려놓으시고 계속 향을 음미하시지요.”상선이 말했다.태상황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붓고 잔을 내려 놓으며 원경릉에게, ‘너나
술취해 망가진 원경릉원경릉이 이 모양이 되어 봉의각으로 실려온 것을 보고, 모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기상궁이 침착하게 서둘러 녹주에게 해장국을 준비하게 하고 구사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구사가: “태상황 폐하의 어전에서 술에 취해, 해장국도 내려주었으나 전부 토했습니다.”“태상황 폐하 어전에서 취했다고요? 세상에나, 태상황 폐하께서 어마어마하게 화를 내셨겠네요.” 희상궁이 경악하며 말했다.“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셨는지 안 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선 얼굴이 완전 하얗게 질렸 더군요.” 구사가 말했다.“아이고!” 희상궁이 얼굴을 돌려 원경릉을 보니 침대에 앉아있길래 기상궁이 그녀를 눕히려 하자 원경릉이 유모 손을 잡고: “건드리지 마, 나 어지러워!”“구대인서는 돌아가시지요, 감사합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구사가 원경릉을 보니 얼굴이 무섭게 달아올라 있으며 눈은 뻘겋고 머리는 산발에 옷도 찢겨서 여기저기 구겨진 게, 총체적으로 난국이다.“그럼 이만!” 구사가 몸을 돌려 나갔다.평소처럼 나갈 때 봤을 땐 분명 단아한 초왕비였건만, 고주망태가 되어 주사를 부리니 이렇게 끔찍할 수가. 구사는 막 건곤전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원경릉이 의자를 들어 때려 부수고 있고, 태상황은 나한상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으며, 상선은 몸에 구토물을 뒤집어 쓴 채, 하사 받은 새 옷이 못 쓰게 된 것에, 발을 구르며 열 받아 했다.구사는 한번도 건곤전에서 이렇게…… 사람냄새가 나는 걸 본 적이 없다.또한 태상황 폐하께서 위엄 있는 표정 외에 다른 표정, 그러니까 겁에 질린 아기토끼 같은 표정을 지으시는 걸 본 적도 없다.어쩌면 왕야께 이 일을 말씀드려야 했을 지 모른다.원경릉은 침대 앞에 앉아 하늘이 뱅뱅 돌며 눈 앞에 사물이 다가왔다 멀어졌다 하고, 잡음이 귀에 윙윙 들리는데 마치 저 멀리서 그녀와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원경릉은 지금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반드시 뭔가를 해야만 했다. 아니면 열 받아 죽을 것이다.
우문호에게 식칼을 들고 뛰어든 원경릉원경릉은 자꾸 발을 헛디디며, 입으론 중얼중얼, “또 나를 끌고 가는 거야? 나 올해 삼재야? 여기 오니까 사람들한테 범인 취급 당해, 니들이 나 구해줬을 때 있잖아.”“예, 예!” 두 사람은 답은 해야 하겠고, 감히 반문할 수도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왕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상선이 어떻게 왕비를 이렇게 취하도록 놔둔 건지 의혹이 쌓여갔다.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자, 원경릉은 편하지가 않고 오히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잡념이 끊임없이 소용돌이 쳤다.마음 속에 꾹꾹 눌러 놓은 화가 가득 차올라 너무 고통스럽다. 어떻게 한 가지도 편하게 지나가는 게 없을까? 너 우문호, 혼사를 거절하고 싶으면 자기 뜻이 그렇다고 하면 되지, 왜 원경릉을 방패막이로 삼는 건데? 원경릉이 그렇게 만만해?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원경릉은 허리띠로 목을 메고 사람들이 언제 와서 시체를 가져가나 보고 있을 뿐이다. 목숨이 한낱 지푸라기 같구나, 이름도 한낱 지푸라기 같구나, 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원경릉이 만약 죽어야 한다면 그녀를 이렇게 만든 원흉도 죽어 마땅하다. 이 집념 하나로 원경릉은 주방에 도착해 두 사람을 뿌리치고 머리를 들이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이 허위적 허위적 걷는 것을 보고 녹주는 깜짝 놀라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왕비마마께서 여기서 뭘 찾으십니까? 말씀하세요, 쇤네가 찾아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이 발견했는지 달려들어 큰 식칼을 빼 들고, 녹주를 향해 이를 악물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내가 먼저 죽여주겠어.” 이 행동에 두 상궁과 녹주는 놀라 자빠지고, 원경릉은 식칼을 휘두르며 칼춤을 추는데 실수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수로 자기가 다칠 것 같아 걱정이 됐다.“왕비마마, 말로 하세요!” 희상궁이 녹주에게 눈짓을 하자, 녹주가 시위를 찾으러 나갔다.녹주가 눈치를 채고 빈틈을 노려 밖으로 도망치려 하자, 원경릉이 녹주의
우문호에게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원경릉탕양은 원경릉이 식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 뭐라고 입을 떼려는 데 우문호가 천천히 일어나 손으로 탁자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너희는 먼저 나가거라, 왕비가 찾는 건 나다.”구사는 우문호를 보고, “진정이십니까?”“가라.” 우문호가 말했다.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탕양에게: “가자.”탕양은 사실 걱정이 됐다. 왕비가 취해서 모시고 돌아왔다고 구사가 말해서 막 알았는데 이렇게 금방 식칼을 휘두르며 오다니 정말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 했는데.난동을 부리는 주정뱅이 여자는 물론 위험하다. 하지만 왕야가 아직 상처가 낫지 않으셨다 해도 왕비의 손에서 칼을 뺏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탕양은 구사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문 닫아!” 원경릉이 식칼을 휘두르며 차갑게 말했다.탕양이 우문호를 바라보자 우문호가 말하길: “왕비 말을 들어라, 그녀는 지금 무기가 있으니 가장 대단해.”문이 닫히고 실내는 고요하다. 원경릉의 숨소리만 헉헉 거칠게 나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한다.우문호가 그녀를 바라보는 얼굴에 화난 표정이 전혀 없다.“너 나를 비웃었어.” 원경릉은 우문호가 방금 한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무기가 있으니 가장 대단하다고? 원경릉은 안다, 자기가 기관총을 들고 있어도 우문호 앞에선 여전히 약자라는 것을. “비웃은 거 아냐. 너 지금 취했어.” 우문호가 다가오려고 시도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가오지 마, 어딜 와. 네가 다가오면 위험해.” 원경릉은 식칼을 들고 화가 나서 말했다.“내 손에 칼붙이 하나 없어, 게다가 중상을 입었고, 이쪽이 위험한 게 맞지.”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애써 눈을 가늘게 뜨고 악랄한 모습을 꾸며봤지만 술기운이 올라오니 눈이 풀리면서 살상력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인다.원경릉은 고개를 흔들어본다. 달려온 후라 하늘이 더 뱅뱅 돈다. 그녀의 눈에 우문호가 계속 이리저리 흔들리자 원경릉은 구시렁거리며 욕을 했다.“젠장, 경고한다. 움직이지
칼을 들고 우문호를 덮친 원경릉“알았어요, 알았다고. 내가 뒤로 가요.” 우문호는 천천히 뒤로 후퇴해 침대까지 물러선 김에 아예 침대에 걸터앉았다.원경릉은 비틀거리며 탁자 앞으로 걸어가더니 의자를 보자마자 엉덩이 한쪽을 털썩 걸터앉는데 제대로 균형이 안 집혀서 바닥에 나뒹굴고, 의자도 뒤집어져 원경릉의 무릎을 덮쳤다.원경릉은 거칠게 한 발로 발길질을 해봐도 사나워진 정신을 돌이킬 수 없었다. 들고 있는 식칼은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오는 바람에, 쥐고 있기 힘들어 결국 ‘챙강’ 소리 나게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탄력으로 일어서는데 손이 하필 그 때 위로 들리면서 칼날을 스쳐 팔에 칼자국이 나면서 피가 베어 나왔다.원경릉은 바닥에 주저앉아 몇 초간 멍하니 있었다. 자기가 식칼로 사람을 베려고 왔는데 어째서인지 결국 다친 건 자기 자신이란 사실에, 분노가 억울함과 슬픔으로 바뀌어 입을 한 번 삐쭉하더니 ‘으왕’하고 울음을 터트렸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주저 앉아 펑펑 우는 게 심하게 괴롭힘 당한 아이 같아 마음이 짠한 데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대충 눈물을 훔쳐서 얼굴에 피가 묻은 게 싸움에선 진 들개 마냥 처량하고 불쌍했다.우문호는 아무 말 없이 원경릉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전에 남겨둔 면보를 자르더니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내가 잘못했다고 칩시다, 됐습니까? 울지 마요, 원래도 못 생겼는데 이러면 더 못생겨 지니까.”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열 받아서 더 울며 우문호를 밀쳐내고, “저리 가, 누가 너더러 착한 척 멋진 척 하래?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우문호는 밀려서 바닥에 넘어지며 상처를 손으로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며: “너 상처 건드렸어.”“왜 아직 안 죽었냐?” 원경릉이 화가 나서 말했다,우문호는 눈가를 부드럽게 하며, “과부가 되겠다고 애쓰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래, 내가 죽으면 울다가 죽지나 마라.”원경릉은 우는 것도 잊고 화가 나서 눈을 부라리며,
원경릉 우문호를 칼로 위협하며 주사를 부리다원경릉은 한바탕 때리고 깨물고 나자 어느 정도 분이 풀린 걸까, 눈을 뜨려고 애 쓰다가 너무 울렁거리는지 우문호의 몸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 울렁거려.우문호는 원경릉이 갑자기 조용하자 그녀를 흔들어 보며, “이봐요!”원경릉은 우문호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잠들며 웅얼거린다: “집에 가고 싶어, 한숨 자고 나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야.”우문호는 몹시 화가 났다. 원경릉의 술주정이 바로 잠드는 거라니, 집에 가? 좋아, 내일 집에 데려다 주지. 그래도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정후부가 이 모양인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어?우문호는 어렵사리 원경릉을 밀어내고 일어났지만, 그녀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몸을 오그리고 자는 것을 보니, 화보다 측은지심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천천히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드는데, 마치 솜털 같아서 우문호의 상처가 아직 심한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침대로 안고 가 이불을 덮어주고, 주정을 잔뜩 부린 후 빨갛게 달아오른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진짜 미쳤어.”우문호가 일어나 문을 열자 구사와 탕양, 서일이 얼른 앞으로 나와 머리를 내밀고 들여다 본다.“볼 필요 없어, 잠들었어!” 우문호가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그럼, 왕야께선 괜찮으신 거죠?” 서일이 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을 수나 있었어?” 우문호는 서일이 죽자사자 귀를 만지는 것을 보고, “너 귀랑 원수 졌냐?”“왕비마마께서 밟고 지나가서, 아파 죽겠어요.” 서일이 억울해 하며 말했다.구사와 탕양이 하하 웃으며 불쌍하지만 웃겨 죽겠는 서일을 바라본다.우문호는 못 참고 바로 탕양에게 묻는데, “쟤 도대체 건곤전에서 얼마나 마신 거야?” 구사가 답하길: “상선말에 따르면, 계화황주(桂花陳釀) 딱 한잔 드신 거랍니다.”“도대체 얼마나 큰 잔으로 한 잔이었길래, 이 지경이 되시도록 취하신 건지 원” 서일 눈이 휘둥그레졌다.구사는 손을 펴서 잔을 쥐는
잠든 원경릉,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우문호“왜 입니까?” 구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주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를 아내로 맞으면, 설사 주씨 가문에서 우문호를 돕지는 않더라도 그에게 손을 쓸 리 없고, 최소한 강적 하나는 줄어드는 셈이 아닌가, 게다가 그냥 강한 것도 아니고 최강인데.우문호는 냉담한 눈빛으로, “난 한 번도 주명양을 아내로 맞을 생각이 없었다.” “명양 아가씨가….. 사람들 말로는 제왕비와 굉장히 닮았답니다.” 구사는 조용히 우문호를 보고 말했다.우문호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닮은 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명취가 아닌데.”구사는 무심코 말해버렸다: “진짜 제왕비시면 아내로 맞을 수 없죠.”우문호는 잠깐 침묵하더니 구사를 노려보며, “쓸데없이 상관 마라.”구사는 고개를 흔들며, “해서는 안될 말을 했습니다만 좋은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워해서 안될 사람은 그리워해선 안 됩니다. 왕야의 처지를 위험하게 할 수 있고, 왕야와 제왕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게 틀림없습니다.” 탕양은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싶었지만, 초왕의 그늘진 얼굴을 보고 참았다.“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구사가 말했다.우문호는 아무 말 없이 유쾌하지 않는 얼굴로 있다.구사는 더이상 얘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을 알고 일어서며, “그럼, 전 이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당직이라 서요.”말을 마치고 구사는 손을 모아 예를 취하고 돌아갔다.탕양은 사실 구사가 몇 마디 더 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구사는 왕야의 친구라 탕양이 하기엔 껄끄러운 말도 구사가 하면, 왕야가 구사에게 정말 화를 낼 리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오랫동안 계속 아무 말 없이 최근 발생한 수많은 일을 정리해 봤다. 하지만 머리속을 정리하면 할 수록 어떤 못된 꿍꿍이를 품은 녀석이 나타나서 한바탕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 같다.우문호는 말려들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이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이번은 원경릉을 방패로 혼사를 막았지만, 의도했던 아니던 분명 원경
원경릉의 약 상자를 발견한 우문호소매 주머니 속에서 나온 건 두 가지 모양의 것이다.하나는 작고 정교한 상자로, 우문호는 이 상자를 본 적이 있지만 우문호가 봤을 땐 이렇게 작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종이 한 장으로 종이학 모양으로 접어져 있는데 펼쳐 보니, 아바마마께서 원경릉에게 하사한 황금 천냥 짜리 차용증으로 아래 국새가 찍혀 있다. 우문호의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줄곧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 온 여자로 미음을 받고 원성을 사던 사람이 어떻게 일순간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지?우문호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단추를 스치니, ‘탁’하는 소리가 나며 열렸는데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이상하다, 이 상자에 분명히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원경릉 말로는 그게 약이라고, 그리고 그 마취주사라는 것도 여기서 꺼내던데 전부 다 쓴 건가?다 쓴 거면 잘 됐다. 앞으론 우문호에게 대적할 수 없겠지.하지만 원경릉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상자면 숨겨줘야지, 암, 주정을 부리고 식칼 들고 덤비게 해주지.우문호는 상자를 들어 아무데나 침대 밑에 던져 넣었다.그리고나서 우문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상자가 바닥에 닿자 뜻밖에도 커진 것이다.원래부터 이 상자가 이상야릇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자가 손가락 하나만한 크기에서 약 상자 크기로 커지는 걸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내 물건 훔쳤지?” 머리 위로 경악해서 쇳소리가 나는 원경릉의 목소리가 들린다.우문호는 고개를 들고 원경릉의 화난 눈과 마주치자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약상자를 들고 일어나 침대 위에 놓고 약상자를 가리키며 화난 듯이 물었다: “얘기해봐. 이게 뭐야?”“약 상자잖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아직도 어지러워서 머리가 잘 안 돌아 간다.“이 약상자는 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건데?” 우문호가 엄숙하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원경릉은 당황한 나머지 우문호에게 자기 물건을 훔친 죄를 추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