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들고 우문호를 덮친 원경릉“알았어요, 알았다고. 내가 뒤로 가요.” 우문호는 천천히 뒤로 후퇴해 침대까지 물러선 김에 아예 침대에 걸터앉았다.원경릉은 비틀거리며 탁자 앞으로 걸어가더니 의자를 보자마자 엉덩이 한쪽을 털썩 걸터앉는데 제대로 균형이 안 집혀서 바닥에 나뒹굴고, 의자도 뒤집어져 원경릉의 무릎을 덮쳤다.원경릉은 거칠게 한 발로 발길질을 해봐도 사나워진 정신을 돌이킬 수 없었다. 들고 있는 식칼은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오는 바람에, 쥐고 있기 힘들어 결국 ‘챙강’ 소리 나게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탄력으로 일어서는데 손이 하필 그 때 위로 들리면서 칼날을 스쳐 팔에 칼자국이 나면서 피가 베어 나왔다.원경릉은 바닥에 주저앉아 몇 초간 멍하니 있었다. 자기가 식칼로 사람을 베려고 왔는데 어째서인지 결국 다친 건 자기 자신이란 사실에, 분노가 억울함과 슬픔으로 바뀌어 입을 한 번 삐쭉하더니 ‘으왕’하고 울음을 터트렸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주저 앉아 펑펑 우는 게 심하게 괴롭힘 당한 아이 같아 마음이 짠한 데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대충 눈물을 훔쳐서 얼굴에 피가 묻은 게 싸움에선 진 들개 마냥 처량하고 불쌍했다.우문호는 아무 말 없이 원경릉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전에 남겨둔 면보를 자르더니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내가 잘못했다고 칩시다, 됐습니까? 울지 마요, 원래도 못 생겼는데 이러면 더 못생겨 지니까.”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열 받아서 더 울며 우문호를 밀쳐내고, “저리 가, 누가 너더러 착한 척 멋진 척 하래?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우문호는 밀려서 바닥에 넘어지며 상처를 손으로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며: “너 상처 건드렸어.”“왜 아직 안 죽었냐?” 원경릉이 화가 나서 말했다,우문호는 눈가를 부드럽게 하며, “과부가 되겠다고 애쓰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래, 내가 죽으면 울다가 죽지나 마라.”원경릉은 우는 것도 잊고 화가 나서 눈을 부라리며,
원경릉 우문호를 칼로 위협하며 주사를 부리다원경릉은 한바탕 때리고 깨물고 나자 어느 정도 분이 풀린 걸까, 눈을 뜨려고 애 쓰다가 너무 울렁거리는지 우문호의 몸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 울렁거려.우문호는 원경릉이 갑자기 조용하자 그녀를 흔들어 보며, “이봐요!”원경릉은 우문호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잠들며 웅얼거린다: “집에 가고 싶어, 한숨 자고 나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야.”우문호는 몹시 화가 났다. 원경릉의 술주정이 바로 잠드는 거라니, 집에 가? 좋아, 내일 집에 데려다 주지. 그래도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정후부가 이 모양인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어?우문호는 어렵사리 원경릉을 밀어내고 일어났지만, 그녀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몸을 오그리고 자는 것을 보니, 화보다 측은지심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천천히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드는데, 마치 솜털 같아서 우문호의 상처가 아직 심한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침대로 안고 가 이불을 덮어주고, 주정을 잔뜩 부린 후 빨갛게 달아오른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진짜 미쳤어.”우문호가 일어나 문을 열자 구사와 탕양, 서일이 얼른 앞으로 나와 머리를 내밀고 들여다 본다.“볼 필요 없어, 잠들었어!” 우문호가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그럼, 왕야께선 괜찮으신 거죠?” 서일이 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을 수나 있었어?” 우문호는 서일이 죽자사자 귀를 만지는 것을 보고, “너 귀랑 원수 졌냐?”“왕비마마께서 밟고 지나가서, 아파 죽겠어요.” 서일이 억울해 하며 말했다.구사와 탕양이 하하 웃으며 불쌍하지만 웃겨 죽겠는 서일을 바라본다.우문호는 못 참고 바로 탕양에게 묻는데, “쟤 도대체 건곤전에서 얼마나 마신 거야?” 구사가 답하길: “상선말에 따르면, 계화황주(桂花陳釀) 딱 한잔 드신 거랍니다.”“도대체 얼마나 큰 잔으로 한 잔이었길래, 이 지경이 되시도록 취하신 건지 원” 서일 눈이 휘둥그레졌다.구사는 손을 펴서 잔을 쥐는
잠든 원경릉,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우문호“왜 입니까?” 구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주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를 아내로 맞으면, 설사 주씨 가문에서 우문호를 돕지는 않더라도 그에게 손을 쓸 리 없고, 최소한 강적 하나는 줄어드는 셈이 아닌가, 게다가 그냥 강한 것도 아니고 최강인데.우문호는 냉담한 눈빛으로, “난 한 번도 주명양을 아내로 맞을 생각이 없었다.” “명양 아가씨가….. 사람들 말로는 제왕비와 굉장히 닮았답니다.” 구사는 조용히 우문호를 보고 말했다.우문호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닮은 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명취가 아닌데.”구사는 무심코 말해버렸다: “진짜 제왕비시면 아내로 맞을 수 없죠.”우문호는 잠깐 침묵하더니 구사를 노려보며, “쓸데없이 상관 마라.”구사는 고개를 흔들며, “해서는 안될 말을 했습니다만 좋은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워해서 안될 사람은 그리워해선 안 됩니다. 왕야의 처지를 위험하게 할 수 있고, 왕야와 제왕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게 틀림없습니다.” 탕양은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싶었지만, 초왕의 그늘진 얼굴을 보고 참았다.“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구사가 말했다.우문호는 아무 말 없이 유쾌하지 않는 얼굴로 있다.구사는 더이상 얘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을 알고 일어서며, “그럼, 전 이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당직이라 서요.”말을 마치고 구사는 손을 모아 예를 취하고 돌아갔다.탕양은 사실 구사가 몇 마디 더 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구사는 왕야의 친구라 탕양이 하기엔 껄끄러운 말도 구사가 하면, 왕야가 구사에게 정말 화를 낼 리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오랫동안 계속 아무 말 없이 최근 발생한 수많은 일을 정리해 봤다. 하지만 머리속을 정리하면 할 수록 어떤 못된 꿍꿍이를 품은 녀석이 나타나서 한바탕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 같다.우문호는 말려들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이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이번은 원경릉을 방패로 혼사를 막았지만, 의도했던 아니던 분명 원경
원경릉의 약 상자를 발견한 우문호소매 주머니 속에서 나온 건 두 가지 모양의 것이다.하나는 작고 정교한 상자로, 우문호는 이 상자를 본 적이 있지만 우문호가 봤을 땐 이렇게 작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종이 한 장으로 종이학 모양으로 접어져 있는데 펼쳐 보니, 아바마마께서 원경릉에게 하사한 황금 천냥 짜리 차용증으로 아래 국새가 찍혀 있다. 우문호의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줄곧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 온 여자로 미음을 받고 원성을 사던 사람이 어떻게 일순간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지?우문호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단추를 스치니, ‘탁’하는 소리가 나며 열렸는데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이상하다, 이 상자에 분명히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원경릉 말로는 그게 약이라고, 그리고 그 마취주사라는 것도 여기서 꺼내던데 전부 다 쓴 건가?다 쓴 거면 잘 됐다. 앞으론 우문호에게 대적할 수 없겠지.하지만 원경릉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상자면 숨겨줘야지, 암, 주정을 부리고 식칼 들고 덤비게 해주지.우문호는 상자를 들어 아무데나 침대 밑에 던져 넣었다.그리고나서 우문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상자가 바닥에 닿자 뜻밖에도 커진 것이다.원래부터 이 상자가 이상야릇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자가 손가락 하나만한 크기에서 약 상자 크기로 커지는 걸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내 물건 훔쳤지?” 머리 위로 경악해서 쇳소리가 나는 원경릉의 목소리가 들린다.우문호는 고개를 들고 원경릉의 화난 눈과 마주치자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약상자를 들고 일어나 침대 위에 놓고 약상자를 가리키며 화난 듯이 물었다: “얘기해봐. 이게 뭐야?”“약 상자잖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아직도 어지러워서 머리가 잘 안 돌아 간다.“이 약상자는 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건데?” 우문호가 엄숙하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원경릉은 당황한 나머지 우문호에게 자기 물건을 훔친 죄를 추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
서로 비긴 걸로우문호가 평소처럼 말했다: “만약 못 믿겠으면, 이 상자를 가지고 입궁해 보던지, 네 머리가 목 위에 아무 일 없이 붙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원경릉은 고대 시대에서 왕비 나부랭이를 하는 것이 이렇게 위험할 줄 상상도 못했다. 유구한 역사 속에 그 수많은 왕비들은 전부 아무일 없이 편안하게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거 아니야? 왜 원경릉 운명만 이렇게 기구해? 고대로 타임슬립한 지 고작 보름도 안 됐는데 원경릉은 벌써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이러나 저러나 죽음 뿐이라니 순간 의기소침해 지면서 우문호 앞에서 약상자를 들어 작게 축소시키고, 차용증서랑 같이 소매 주머니 속에 넣으며, 고개를 들고 턱을 하늘을 향해, “나 지금 자포자기 상태야, 앞으로 만약 날 괴롭히면 널 안고 콱 같이 죽어버릴 거야.”약상자가 갑자기 작아지자 우문호는 다시 한번 놀랐는데 원경릉의 말을 곱씹어보니, 오만방자한 것이 한이 없는지라 불같이 화를 내며, “식칼을 들고 베겠다고 난동을 부리더니, 아무도 베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만 상처 입힌 바보 멍청이가 감히 나를 위협해? 넌 낯짝도 없어?”“없어, 그래 난 아무것도 없다, 낯짝도 없고, 소양도 없고, 도덕도 없어, 어차피 이 목숨 부지 할 수 없으면, 제일 먼저 화를 당하는 건 너야.” 원경릉이 악랄하게 말했다.우문호는 의외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웃긴다고 생각했다.마치 개미 한 마리가 진흙 한모금을 머금고 호랑이랑 같이 ‘동귀어진(同歸於盡, 함께 죽을 생각으로 상대에게 덤벼들거나 상대와 함께 죽는 것)’ 하겠다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하하하!” 우문호는 큰 소리로 웃었다.원경릉의 안색이 이제서야 돌아왔다. 우문호가 파안대소 하는 것을 보고 전에 음산했던 모질고 독한 마음이 일소되어 정말 화가 나기도 하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우문호와 화해할 생각은 없으며, 그들의 앙심이 서로 얽혔을 뿐이다.우문호가 다 웃고 나자, 원경릉은 쌀쌀맞게: “웃지
원경릉 약 상자의 비밀원경릉은 당연히 우문호의 생각을 모르지만, 그저 양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란 정도로 생각했다. 표면적인 패를 보면 우문호가 주명양과 결혼하는 것이 백 번 낫지만 주명양의 일생을 마치고 싶지 않아 이런 큰 기회를 흔쾌히 놓친다고 믿었다.완전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굳이 따지면 그냥 가정폭력남 정도다.“화해 하는 거다. 알았지?” 우문호가 원경릉을 보며 물었다.우문호의 말투가 좋은 것이, 카리스마도 우월감도 없고 원경릉을 바라보는 눈빛이 진실하다.원경릉은 지금 사방팔방이 다 적으로 둘러 쌓여 있어 우문호와 내전을 치를 필요도 사실 없다. 원경릉은 머리를 부여잡고 우문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중하게: “화해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말해!” 우문호는 시원시원하다.“첫째, 또 그 얘기지만, 나한테 손대지 말 것.”“알았어!”“둘째, 다시는 후궁을 맞지 않는 방패막이로 나를 쓰지 말 것, 만약 혼사가 다시 거론된다는 가정하에.”우문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알았어!”“셋째, 내 자유를 과도하게 간섭하지 말 것.”“이건 당연한 거고.” 우문호는 원래 원경릉을 간섭하고 싶지 않고, 이전엔 아예 원경릉을 상대조차 하기 싫었다.“넷째, 만약 기회가 되면 부탁이야 나랑 이혼해 줘. 우리 각자 행복하자.” 원경릉이 간절하게 얘기했다.우문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다섯째……”우문호는 인상을 쓰며, “아직도 안 끝났어? 아니면 그냥 화해하지 말자.”“마지막으로 딱 한 개만.” 원경릉이 서둘러, “바로 내 약 상자에 관한 얘기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우문호는 원경릉에 슬쩍 다가가며, “만약 내가 비밀을 지키려면 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반드시 이 약상자가 어디서 왔고, 뭘 하는 거고, 왜 크기가 변하는지 나한테 얘기해줘야 겠어.”원경릉은 방금 머리속으로 날조할 스토리를 다 짜 뒀기에, 우문호의 말을 듣고: “이 약 상자 일은 나도 잘 모르지만, 열이 일
주명취를 꾸짖는 주재상원경릉은 사실 요 며칠동안 약 상자에 대해 대충 감을 잡고 있었는데, 약 상자는 원경릉의 실제 상황이나 그녀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바뀌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에서 그녀의 죽음은 대뇌를 개발하는 약을 자기에게 주사했기 때문이다.연구 제조를 마친 약이 막 나왔을 때, 원숭이 몸에 주사하자 과연 원숭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 들었다. 연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땐, 원숭이가 그룹 총수가 보낸 양주를 몰래 훔쳐 마셔서 만취 상태로 달아났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원경릉이 대담하게 가설을 세웠다. 자신의 대뇌는 개발 되었으며, 개발 된 뒤 왜 영혼이 시공을 넘었는지, 아니면 관념만 탈출하게 되었는지 이 부분은 앞으로 연구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물론 당장 연구할 조건이 안되고 그럴 틈도 전혀 없다. 사실 눈 앞에 닥친 상황이 생사의 갈림길이니 상당히 복잡하다.약 상자의 진동으로 두사람의 논쟁이 잠시 휴전상태가 되었다.어찌 됐든, 초왕부는 지금 전대미문의 화해의 시대를 맞아 오늘밤은 초왕 부부가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하는 뜻깊은 날이다. 이쪽은 화기애애한데 주부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오늘 제왕비가 친정으로 돌아왔고, 제왕은 일로 출타할 일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는데, 주재상이 일찍부터 돌아와 사람을 시켜 막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제왕비를 서재로 불러들였다.주명취가 서재로 들어가자 주재상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상황폐하가 중독된 일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주명취는 당황해서, “할아버지, 그 일을 손녀가 어찌 알겠습니까?”“넌 모른다?” 주재상의 눈빛이 맹렬하다.주명취는 생각을 해보더니, “기왕인가요?”“기왕은 바보가 아니야, 기왕이 이 시점에 태상황 폐하께 손을 쓰겠느냐?” 주재상이 주명취를 노려보며, “너 이 늙은이를 속이고 뒤에서 몰래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 아니냐?”주명취는 무고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녀가 한 일은 전부 할아버지께서 분부하신 것에 따른 것으로 조금도 할아버지
주명취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주재상주재상의 얼굴에서 노기가 서서히 사라지자, 태사의에 앉은 주재상은 오히려 우울하기 그지없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만약 네가 말하지 않으면 제왕비 노릇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주씨 가문에 말 잘 듣는 아가씨가 어디 한둘이냐.”“할아버지 손녀 말 좀 들어주세요, 손녀가 절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 주명취는 엉엉 울며 눈물이 눈에서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데, 말할 수 없이 가련하고 처량해서 누구든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재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줄곧 눈물을 믿지 않는다.“눈물을 거두고, 당장 나가거라!” 주재상은 차갑게 말했다.주명취의 얼굴에 마침내 두려움과 후회의 빛이 떠오르며, 급하게: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희상궁과 할아버지의 인연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확실히 제가 태상황 폐하의 약에 독을 넣으라고 희상궁에게 시켰습니다, 손녀는 그저 태상황 폐하께서 다시 좋아지셔서, 초왕이 다시 득세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손녀도 큰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너는 어찌 희상궁과 나의 관계를 알았느냐?” 주재상의 목소리가 음산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주명취는 할아버지의 이런 무서운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놀라서 입술을 덜덜 떨며 뭐든 다 줄줄 불며,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이 일은 할머니가 의견을 내신 거로, 할머니 말씀으론 희상궁이 널 책임질 거다, 네 뜻을 얘기만 하면 희상궁이 자기 목숨을 버리더라도 널 위해 하고자 할 거라고, 저도 안 믿었는데 희상궁에게 얘기했더니, 희상궁이 바로 알았다고 했어요.”말을 마치고 주명취는 다시 서둘러: “할아버지, 희상궁은 절대로 태상황 폐하를 시해하려 했던 사실을 입 밖에 낼 리 없고, 할아버지 이름이 거론될 일은 더더군다나 없으니 안심하세요.”주재상은 눈을 감고 얼굴 전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게, 마치 나무토막 같다.주명취는 벌렁벌렁 가슴이 뛰어 손수건을 꼭 쥐고 어찌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