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육현경을 흘끗 쳐다보았다.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육민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육민도 육현경의 시야 안에 있으니,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소이연은 육현경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육민을 달래 낮잠을 재운 뒤에야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육현경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다.명진이 운전을 했다.육현경과 소이연은 뒷좌석에 앉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육현경.”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응.” 육현경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확실히 난 과거에 오점이 많아.” 소이연이 말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야.”“......” 육현경은 조금 얼떨떨했다.“나도 네가 잘난 거 알아, 그것도 아주 많이. 게다가 널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지. 나도 부정 안 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대해 동경해. 만약 정말 너나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그냥 내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 우리 사이에, 만약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난 정말 영광이야. 다른 관계는 난 못 해.”차가 소이연의 동네에 멈춰 섰다.소이연은 차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남겨진 육현경은 아주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그는 명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명진은 온몸에 힘이 들어갈 만큼 긴장했다.그도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이연 아가씨의 말을 듣자 하니, 명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도련님께서 바람둥이 기질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내가 그래 보여?” 육현경이 눈썹을 찌푸렸다.“겉으로만 보기에는 그렇죠...... 저는 도련님께서 인물이 훤칠하시기도 하니 여자들이 느끼기에 안정감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해서…”“......”그래서.그녀에게 뽀뽀를 했다? 아니다.그녀에게 몸을 보여주었다? 역시 아니다.지금 너무 잘 생겼다? 그것도 아니다.......지난번의 “불쾌함” 이후로,소이연
“회장님, 1차 판매 보고 차트 나왔습니다.” 장문기가 정중하게 말했다.“주세요.” 소이연은 침착해 보였다.장문기가 서류를 건네며 흥분한 채 보고했다. “판매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늘 아침 10시 정각에 판매 개시했고, 온라인에서는 인기 제품 여러개가 불과 몇 초 만에 품절이었습니다. 나머지 제품들의 판매량도 기존 기록의 300%를 갱신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판매 현황은 아직 통계 중이고,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매장마다 문전성시로 너무 바쁘고 옷이 없어서 못 판답니다.”소이연의 입꼬리는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방금 판매팀 총감독 정운 씨가 장안시에서 가장 큰 쇼핑몰에 직접 현장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여기 전달받은 사진입니다.” 말을 하면서 장문기는 iPad를 꺼내 갤러리를 열었다. “이건 저희 은하의 매장이고, 나머지는 저희 매장과 같은 층에 있는 동일 가격대 브랜드 매장입니다. 저희 매장 외에는 거의 사람이 없습니다. 정 감독님께서 다른 층에도 가보셨지만, 모든 매장이 썰렁했다고 합니다.”이번 은하 패션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은하뿐만 아니라, 다른 동종 업계에서도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낼 줄 상상도 못했다.문서인은 소식을 듣고,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사무실 책상 위에 내팽개쳤다.그는 애초에 소이연이 정말 은하 패션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당연히 오늘 런칭한 가을 신제품도 은하 패션의 3분의 1정도 밖에 안됐다. 장안시의 거의 독점 현지 패션 회사가 어떻게 이런 취급을 당할 수 있겠는가.문서인은 또 씩씩대며 노트북을 켜, 마음속의 분노를 참으며, 은하 패션의 신제품을 보았다.처음에는 예수진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고, 애초에 은하의 디자인은 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은하에서 인기 제품이 나온 걸 본 적이 없었으니, 소이연이 간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은하의 디자인을 처음 본 이때, 얼굴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은하의 이번 가을 신제품의 수준은 인정할
“그게 무슨 뜻이야?”문서인이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하지만 소나은은 여전히 불쾌했다.방금 자신에게 쏟아부었던 풍자와 욕설을 생각하니 불쾌함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전엔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참고 견뎠지만 지금 손톱만큼의 관심도 남아 있지 않는 이상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나은, 내가 방금 너무 흥분했어. 마음에 두지 마.”문서인 자신도 방금 말투가 과격했다는 걸 느꼈다.소나은의 말투를 보니 아직 뭔가 남았을 것 같아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네가 언니한테 당하면서도 계속 돈을 벌어줄까 봐 걱정돼서 말한 거야.”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넘어갈 소나은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문서인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기에 더 따지지 않았다.“지금 은하패션이 흥행세를 보이는 건 다 긍정적인 뉴스와 언론, 네티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덕이지. 이 시기에 은하패션에서 스캔들이라도 난다면 지금처럼 흥행할 수 있을까? 난 두 가지 막장 드라마가 나올 거라 확신해.”문서인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하지만 은하그룹에 무슨 스캔들이 있겠어? 그룹 내부에 인사변동이 있다고 해도 피해를 줄만한 것이 없잖아.”“은하그룹엔 없지만 우리 언니한테 있어.”“무슨 스캔들?”문서인이 살짝 경계를 하더니 불쑥 말을 내던졌다.“난 내 명의까지 내세워서 소설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이건 밑지는 장사야!”보다시피 문서인은 자신의 체면을 엄청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소나은이 자신과 소이연을 엮어서 스캔들 낼까 봐 은근 걱정되는 모양이다.어찌했든 그런 피해는 입고 싶지 않았다.“서인 오빠 걱정 마. 오빠 명성에 먹칠하지 않을 거야. 내가 전에 보내줬던 사진 기억해?”소나은의 말에 문서인이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네 말은…”“바로 그 사진이야. 그것만 있으면 언니의 명성이 한순간에 바닥칠 수 있어. 필경 전부터 평판이 안 좋았으니 사람들이 쉽게 믿을 거야.”문서인은 그래도 망설여졌다. 이렇게 사진을 내놓는다면 너무 비도덕적인 것
그 뒤로 두 사람은 사탕발린 소리를 하다가 통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자마자 소나은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했다.방금 문서인에게 말한 것처럼 단순히 언니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그것을 통해 언니에 대한 육현경의 마음을 철저히 접게 만들고 자신의 남자로 만들 계획이었다.…은하패션이 일주일 동안 불티나게 팔리더니 곳곳에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소이연은 단호하게 대규모 생산을 실시했다.그렇다고 헝커마케팅은 하지 않았다.이번에 예산이 부족했던 것은 이렇게 잘 팔릴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패션에 대한 이념은 소이연의 어머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게 만드는 것이었다. 대생산을 투입한 뒤 두 번째 물량을 판매할 시기에 갑자기 뉴스에서 스캔들이 터졌다.“은하그룹 회장 소이연 ‘수치스러운’ 성공의 길” 뉴스에 실린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랬다.‘소이연과 문서인이 교제할 당시, 소이연은 문서인 몰래 여러 남자들과 바람이 났다. 그 관계를 통해 성공적으로 은하그룹을 손에 넣었고 또 그 남자들의 도움으로 은하그룹 패션도 흥행하여 돈방석에 앉는 데 성공하였다.’뉴스가 뜨자마자 온 누리꾼들이 욕설을 퍼부었다.[소이연 너무 역겹다. 무슨 바람을 이렇게 많이 피웠대? 문서인이 무슨 호구냐!][화려한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서인이 기꺼이 약혼을 해주겠다는데 감사하지도 않나 봐.][은하패션에서 생산한 옷들이 요 근래 유행하는 디자인을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멋진 옷이라고 해도 더러운 마음과 비교할 수 없네.”[은하패션을 강력히 거부한다. 언니들, 한 벌도 사지 말자!][나 이미 반품 신청했음.] [겨우 한 벌 건졌는데 다시 사 입나 봐라!]동시에 문서인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저와 소이연은 오래전에 서로 합의하에 헤어졌습니다. 공공 자원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이연에 대해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저에게 사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주
영업부 총감독 유봉이 씩씩거리며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그제야 소이연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유봉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이제 어떡합니까? 지금 쇼핑몰에서 고객들이 반품해달라고 난리랍니다. 전국 모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항의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여러 백화점에서도 우리에게 불만을 토로하면서 반드시 해결방안을 내놓으라고 독촉합니다.”“회장님!”구매부 매니저 김상문도 뒤를 따라 들어왔다.“방금 공급업체에서 대금을 보충해 달라고 연락 왔습니다. 아니면 법정에서 보게 될 거랍니다.”“회장님! 고객센터에서 더는 감당하지 못하겠답니다. 민원 전화가 폭주하고 고객들이 전혀 설명을…”소이연은 눈앞에서 펄쩍 뛰는 고위급 간부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10분 뒤에 회의를 합시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적인 배치를 해야 되니 모든 고위급 간부들이 참석하라고 하세요. 지금은 먼저 나가주세요.”“네.”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지금 상황에서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은하그룹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한다. 게다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파산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소이연은 다시 뉴스를 들여다보았다.뉴스에 홍보 모델 예수진도 언급되었다. 누리꾼들이 그녀의 SNS에 들어가 그저 돈만 주면 무슨 제품이라도 대변한다고 악성 댓글을 달았다.한순간에 예수진마저 누리꾼들 입에 오르며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프로그램도 영향을 받았다.소이연이 예수진에게 연락했다.“언니.”“죄송해요. 수진 씨한테도 영향이 미칠 줄은 몰랐어요. SNS에 우리 계약을 끝냈다고 설명하세요. 저희 측에서 전력을 다해 협조할게요.”소이연이 진심으로 사과했다.“이연 언니, 나를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사람 같아요?”예수진은 왠지 화가 치밀었다.“누가 모함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요. 그래도 나 예수진을 따르는 팬들이 많거든요. 헛소문에 휘둘리는 인간들 필요하지 않아요. 언니 스캔들이나 잘 처리해요.
그저 서로에게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다.“뉴스는 내가 어떻게 해볼게. 일단 계좌 불러줘. 부족한 금액을 보내줄 테니까.”육현경의 덤덤한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해외에 비교적 전문적인 위기관리팀을 알고 있어. 내일 아침에 장안에 도착하니까 시간을 내주면 그 사람들 데리고 당신 만나러 갈게.”소이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솔직히 누가 도와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전부터 수없이도 겪어왔기 때문이다.18살에 누구한테 비웃음을 당할 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친아버지는 수치라고 여기면서 자신의 명성에 먹칠할까 봐 어딘가 보내려고 했다. 지금 상황도 똑같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관계를 끊으려고 할 때 오직 육현경과 예수진만 나서주었다.순간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키며 대체 그와 어떤 관계인지 정리할 수 없었다.“됐어. 내가 처리할 수 있어.”“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그 말이 유독 차갑게 들렸다.소이연은 살짝 흔들리는 가슴을 억누르려고 입술을 깨물었다.“믿지 못하겠어.”어차피 육현경과 아무런 결과도 없을 테니 서로에게 여지를 줄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육현경이 손가락을 파르르 떨었다.이명진이 옆에서 대표님의 분노를 감지했다. 당장이라도 화산처럼 폭발해 그 불똥이 곧 자신한테 튀길 것 같았다.“나 자신 말고 누구도 믿지 않아.”소이연이 단호한 말투로 보충했다. “당신 호의만 감사히 받고 내 일은 내가 처리할게. 굳이 나 때문에 불필요한 일에 엮이는 거 원하지 않거든.”육현경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었다.“회의 있어서 이만 끊을게.”소이연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이명진이 똑똑히 봤다. ‘통화 종료’를 응시하던 대표님의 안색이 검정색 액정보다 더 어두워졌다.갑자기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결국 사모님이 대표님의 호의를 저버렸다.사모님의 스캔들이 나오자마자 사장님은 바로 스피드하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각 언론사에 전화를 돌려 신세를 지자면서 당장 사모님의 뉴스를 내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자신의
이명진의 말에 위로 받은 듯 금색 펜을 꽉 움켜쥐던 손이 그제야 느슨히 풀렸다.이명진도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영리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파란만장한 날들이 그를 기다릴 것이다.“대표님, 제가 수시로 사모님에 대해 알아볼게요. 절대 나쁜 놈들이 해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그래.”육현경이 짧게 대답을 하더니 그제야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은하그룹 고위급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였다.분위기는 생각보다 엄숙했다.오랫동안 경영해 왔던 은하그룹은 대기업에 속하지 않았지만 줄곧 평탄한 길을 걸어 이처럼 큰 위기에 닥쳐본 경험이 없었다.모든 간부들은 마음이 심란할 뿐 속수무책이었다.“언니, 어떻게 해결할지 방안을 구해봤어요? 이대로 간다면 은하가…”소나은이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걱정하는 척했다.소이연이 그런 소나은을 쳐다봤다.스캔들을 터뜨린 장본인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문서인은 기껏해야 공범이겠지.’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소나은의 수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소이연이 모든 간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모든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반품 접수하고 처리해주세요. 이미 입었거나 하자 있는 제품이라도 무조건 받으세요.”“그러면 안 됩니다.”유문은 조금 긴장되었다.“회장님, 지금까지 저희 가을 시즌 상품은 전국에서 판매량이 적어도 5만 건이나 됩니다. 그걸 다 받아준다면 우리 은하가 자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먼저 제 말을 들어주세요.”소이연은 줄곧 평정심을 유지했다.은하에서 일정한 규모가 확대된 이래 대다수 고층 간부들은 진심으로 소이연을 위해 일을 했다.지금 은하그룹에 사건이 터진 건 소이연의 책임이니 그들의 의견이 분부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소이연의 평정심에 그들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겨우 스무 다섯밖에 안되는 여자가 이렇게 큰 일을 당하고도 냉정하게 대처를 하다니 그 넓은 아량은 이미 여기 모인 사람들을 능가했다.그러니 마음속으로 흔쾌히 소이연의 안배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반품을 접수하는
”저도 지지합니다.”정아현도 잇따라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은하그룹에 모처럼 새로운 면모를 가져왔는데 여기서 쓰러지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저 전력을 다해 회장님과 함께 은하그룹의 위기를 해결하겠습니다.”“회장님, 저희 모두 지지합니다!”순간 분위기가 들끓었다. 마치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것 같았다.소나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이런 큰일에 닥치면 회사가 파산될 수 있는데 소이연은 냉정하게 대처하면서도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소나은의 눈가에 순간 사악한 기운이 스쳐 지났다.‘그래 봤자 자기들 속이 편하자고 하는 위로일 뿐이지.’소이연이 혼자 힘으로 은하그룹을 지켜낼 수 없다고 믿었다.사무실에 돌아온 소나은은 경악했다.분명 검색 1위에 올랐던 뉴스들이 지금 모두 내려가고 관련 뉴스들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누리꾼들이 여전히 소이연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모두 자기 SNS에 올린 짧은 동영상일 뿐, 지금은 눈에 확 띄게 사라졌다.심지어 키워드에 ‘소이연’을 입력하면 관련 뉴스들이 자동으로 차단되었다.소나은은 너무 화가 나 눈시울이 다 빨개졌다.소이연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었어? 모든 인터넷을 통제해?아니야, 분명 누가 도와주고 있어.생각하지 않아도 육현경이겠지.육현경이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소이연이 이렇게 추잡한 여자인데도 도와주다니 이해되지 않았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서인 오빠.”“소이연에 관한 뉴스가 왜 전부 내려갔어?”문서인이 또 성질을 부렸다.“나도 이제야 알았어. 아마 육현경이 그랬을 거야. 이렇게 빨리 깨끗하게 쓸어버릴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잖아.”“소이연이 남자 꼬시는 재주는 역시 대단해.”문서인이 이를 갈았다.“서인 오빠, 그래도 괜찮아. 지금 뉴스가 내려가도 이미 위기가 닥쳤으니 소이연이 꽤 개고생할 거야. 은하그룹을 공격하는 네티즌들은 끝까지 저항할 거니까 운하그룹도 다시 일어서긴 힘들어. 그보다…”“그보다는 뭔데?”문서인은 조금 격동했다.“언니가 내일 기자회견을 연다면서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