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이제야 인정하는 거야?" 루카스는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소이연은 순간 숨이 막혀 막혀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건데?” 소이연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말로 그를 이기지 못하기에 그녀도 사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스는 갑자기 당황했고, 소이연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왜 말을 못 해? 이렇게 간단한 질문에 난처해하는 이유가 뭐지? "나, 소변이 급해.” 루카스는 화장실을 참으며 짧게 답했다. "소변이 급해서 방향을 잘못 잡은 거야?” "젠장, 난 잠에 취해있으면 안 돼?” 루카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화를 내!" 소이연은 화가 났고, 루카스와는 정말 세 마디 이상은 나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루카스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신장이 좋지 않아?! 오줌 지리는 거 아니야?!” 루카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외쳤다. "내 신장은 아무 문제없거든!” 그리고는 반대 방향에 있던 화장실로 들어가며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소이연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루카스와 다투지 말라고 말했다. 이론상 그녀가 루키스보다 6살 더 많으니, 어린 동생에게 화낼 필요가 없다. 그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심문헌이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며 재촉했다. 그녀가 호텔로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이라도 병원으로 달려올 기세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루카스는 그녀가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보며 물었다. "퇴원해?” "방금 의사가 괜찮다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 소이연은 대답했다. 루카스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가지고 욕실로 가서 갈아입은 다음 그가 사 온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사람은 정말 물건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물론 소이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도 그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도 옷을 갈아입으러 욕
소이연은 루카스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낯선 사람과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거리를 두고 차례대로 호텔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앞으로 두 사람은 절대 보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소이연은 666호실은 문 앞에 서서 방 카드로 문을 열려고 하자 그때, “서프라이즈!” 심문헌이 갑자기 문을 열며 외쳤다. 그리고 꽃잎들을 그가 공중에 흩뿌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평소 심문헌은 매우 점잖았고 정계에서도 엘리트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점점 소이연 앞에서만 있으면 가벼워지는 것일까? 심문헌은 소이연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런 거 싫어해요?” "싫어해요...” "그날 내가 산 꽃이 정말 낭비였다 생각해서 꽃잎을 한 잎씩 떼어서 퇴원 선물로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심문헌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 순간 소이연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화면 속 심문헌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꽃잎을 떼어내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소이연은 때때로 심문헌에게 좀 무심하게 대했다. "아픈 건 다 나았어요?" 그러자 심문헌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소이연이 자신을 섭섭하게 했다는 것을 이미 다 잊은 듯했다. 이럴 때마다 소이연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심문헌의 계략인지도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두 주도면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소이연은 심문헌을 거부했는데, 그럴 때마다 결국 그는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소이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 나았어요. 오후 4시 비행기인데 점심 먹고 공항으로 가야 해요.” "이연 씨 비서에게 비행기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해 놨어요.”심문헌은 물었다. "식사는 방에서 할래요? 아님 식당으로 갈까요?” "방에서 먹어요.” "그럼 룸서비스 시킬게요.” 선원헌은 소이연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
"아니요."소이연은 부정했다.육현경의 성격은 루카스만큼 나쁘지 않다."그 남자가 육현경이랑 닮았다고 날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그 남자랑 함께 있어요.”"절대 그럴 일 없어요.”소이연은 단호하게 말했다.이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이연과 심문헌은 호텔 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은 후 호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그녀는 일등석에 앉았다.심문헌은 소이연과 표를 같이 예매하지 않아서 나란히 앉을 수 없어 심문헌은 소이연의 옆자리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자리를 바꾸려고 했다.근데 자리의 주인을 본 순간 소이연과 심문헌은 모두 놀랐다.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운명인가?!아니, 이건 정말 저주받은 운명이다.그 옆자리가 바로 루카스라니!루카스는 왜 또 서울에 있지 않고, 왜 장안에 가는 것일까?소이연이 루카스가 자신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믿을 수 없었다.루카스는 소이연을 보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이연은 정말 어떠 욕이라도 당장 내뱉고 싶었다.누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대체 누가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야?"항공권은 내가 너보다 먼저 샀어."루카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이연이 먼저 말했다."그래서 미스터 리,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루카스는 눈을 부릅뜨고 휴대전화를 꺼내 항공권 예약 정보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잘 봐, 난 열흘 전에 샀어!”“......”소이연은 루카스의 비행기표 예약일을 지켜보며 눈꺼풀을 떨었다."잘 봤어?" 루카스는 정말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소이연 씨는 대체 몇 척의 배를 타야 만족해요?" 루카스가 물었다. 소이연은 루카스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다가 순간 깨달았다. 루카스는 천우진과 심문헌 사이를 맴돌다가 지금 또 그와 바람을 피우려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루카스의 마음속에 그녀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였다. 소이연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이명진과 나눈 대
"안 바꾼대요." 소이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우리 둘이 바꿀까요?" 심문헌이 제안하자 소이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심문헌의 머리회전은 역시나 빨랐다. "좋아요!”소이연은 흔쾌히 승낙했다. 심문헌은 곧바로 소이연의 자리로 갔다. 루카스는 고개를 돌려 심문헌이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심문헌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보였다. 안하무인 한 루카스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그가 이긴 싸움이다. 소이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별것도 아닌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장안으로 출발했다. 루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역 신문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어요?" 심문헌이 물었지만 루카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글 알아요?” 심문헌은 루카스의 반응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께서 서울 출신이에요.” 루카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 혼혈이시네요.” 심문헌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생겼더라.” 루카스는 심문헌의 외모 칭찬에도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루카스는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본인이 잘 생긴 걸 알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오만하게 구는 건가?” 루카스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입술을 오므렸다. "그리고 당신이 잘생겼다고 누구든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소이연 씨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 유혹도 하지 말고요.” "저 소이연한테 단 하나도 관심 없어요.” 루카스는 차갑게 대답했다. "관심 없어요? 확실히 관심 없는 거 맞아요? 내가 당신 옆에 앉을 때 안색이 안 좋아지시던데요."심문헌이 직접적으로 말했다. "남자인 내가 봤을 때, 당신은 소이연 씨한테 대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내가 당신 인처럼 고양
"소이연 씨는 건드리지 마. 건드린다면 내가 그땐 널 어떻게 할지 몰라.”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루카스는 욕설을 내뱉고 이어폰을 끼며 안대를 하고 눈을 감았다. 심문헌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자식, 아직 치료된 게 아니었어?말 좀 해봐!눈앞에 있는 루카스는 확실히 잘생겼다. 화가 나서 자는 모습조차 말이다. 멈춰. 그때 심문헌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금도 소이연을 더 사랑한다. ......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다. 소이연은 심문헌과 함께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 루카스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공항에서 나오자 소이연은 심문헌과 함께 떠났다 소이연은 다시는 이 넓은 장안에서 루카스를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을 때 마린이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소이연과 루카스가 악연을 맺었던 것이고, 장안에서 그녀는 호텔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을 테니 분명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렇다. 장안으로 돌아온 후 일주일 동안, 소이연은 루카스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밤에 잠들기 힘들 때 가끔 루카스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는 떠올렸을 뿐 그를 잊고 잘 지냈다. 깊은 밤 한 줄기 설렘이 있기는 했지만, 루카스를 찾아가서 재워달라고 할 정도로 충동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만날 수 있지만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의 그리운 마음은 있었다. 일주일 뒤, 소이연은 시간을 내어 육민을 데리고 육씨 저택으로 갔다. 육은숙은 최근 몇 년 동안 줄곧 소이연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부었다. 첫째는 육민이 계속 소이연과 함께 했기 때문인데, 육은숙은 사실 육민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에게 훨씬 더 잘해주었다. 둘째, 소이연은 육현경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었고, 육현경이 없는 지금 육은숙은 육현경을 대신해서 소이연을 더 잘 보살펴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소이연은 육은숙과 거리가 있었다. 사실, 육은숙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
소이연은 계지원의 옆으로 가 그와 함께 앉았다. 소이연은 계지원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계지원은 먼저 소이연에게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계지원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그는 전화를 받기 위해 일어났다. 소이연이 그를 부축해 주기 위해 손을 뻗자 그가 말했다. "괜찮아요." 계지원은 정중히 거절하고 지팡이를 짚고 절뚜거리며 한쪽으로 걸어갔다. 계지원은 교통사고로 해외에서 치료를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됐다. 다행히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비장애인과는 달랐다. 그는 전화를 받고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계지원과 많이 친하지는 않았기에 소이연은 누가에게 전화 왔냐고 묻지 않았다. 계지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평소 예능을 즐겨 보세요?” "왜요?" 소이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방금 장안 tv에서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공지를 받았는데, 제작자가 배우를 경연에 초대하고 나를 심사위원으로 섭외하고 싶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장안 예능의 시청률은 다 어느 정도는 보장돼 있어요." 소이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 당시 장안 예능의 한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바로 유명해졌고, 그녀 경력에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장안의 예능은 더욱 번성했고, 다른 방송사들을 압박하는 존재가 되었다."지원 씨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지원 씨가 원한다는 전제하에서요. 결국 예능프로그램은 예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소이연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은 설날에 개봉할 영화 한 편만 찍고 있기는 해요. 1~2개월밖에 촬영하지 않을 예정이기도 하고요. 올 한 해는 당분간 영화나 드라마 준비는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좀 편하게 해주고 싶어요.” "음, 이럴 때 다른 프로그램에서 바람 좀 쐬고 배우를 뽑는
“수진 씨 찾아가 볼 생각은 해봤어요?”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계지원에게 묻자 계지원은 고개를 저었다.소이연은 계지원에게 예수진과 하도경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대체 왜 헤어진 건지 물어보았다. 계지원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하도경의 어머니께서 예수진을 찾아갔고,예수진은 그에게 연기를 해달라고 한 뒤 하도경과 헤어진 것이라고 했다.소이연은 또 그에게 예수진이 하도경이랑 헤어졌는데 왜 예수진이랑 사귀지 않았는지 물었다.계지원은 침묵을 유지했다.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한 적이 없었다.심지어는 계지원이 아직까지도 예수진을 찾아가지 않았기에 그녀는 계지원이 아직 예수진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수진이 계지원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기 때문에 계지원도 자신이 그녀를 다시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포기를 선택했을 것이다.아니면......?설마 계지원이 자신의 장애 때문에 포기한 건가?!“수진이는 자기만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계지원이 담담하게 말했다.마치 정말 완전히 예수진을 포기한 것처럼.소이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감정은 항상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소이연은 육씨 저택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야 육민을 데리고 나왔다.육민은 뒷좌석에 앉아있었고, 소이연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차에 육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운전에 특히 신경을 썼다.“엄마.” 육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응?”“고모할머니께서 오늘 또 우리한테 육씨 저택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민이는 가고 싶어?”“아니요.” 육민은 고개를 저었다.“진짜 안 가고 싶어?” 소이연이 물었다.“엄마가 가기 싫어하는 거 알아요. 그리고 저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고요.”“엄마는 확실히 안 가고 싶어.” 소이연도 숨기지 않았다.“그래서 고모할머니 말은 거절했어요. 근데 앞으로 자주 가서 인사드리기로 했어요.”“그래, 만약 앞으로 엄마가 너무 바쁘면, 민이라도 데려다줄게.”“고마워요 엄마.”소이연은 살
“엄마, 누구예요?” 육민이 뒤에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하찮은 사람 하나 있어.” 소이연은 담담히 말했다.“근데 그 사람이 장안시에 아는 사람이 엄마 한 명밖에 없대요.”“에이, 그건 말도 안 돼.” 소이연은 애초에 믿지 않았다.아는 사람도 없으면서 장안시에 일주일이나 있는다고?!“제가 보기에는 거짓말 같진 않아요.” 육민이 진지하게 말했다.소이연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육민은 평소에 이렇게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3년 동안 육민과 같이 지내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육민의 성격은 그녀가 예전에 본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그녀 앞에서 육민은 활발하고 귀엽고 말도 예쁘고 조리 있게 잘 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차갑게 대했다. 그녀가 육민을 학교에 데려다줄 때 여학생들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러 번 느꼈지만, 모두 다가가지는 못했다.나중에 그녀가 육민의 담임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육민은 학교에서 “얼음왕자”라는 별명이 있었다.거의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는다고 했다.소이연은 육민이 육현경의 죽음으로 그녀처럼 마음의 병이 생겼다고 생각했다.육민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그제야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했다.육현경이 그녀와 만나게 하기 위해 도와줄 때, 그녀 앞에서만 다르게 행동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오히려 그녀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져 더욱 표현하려는 욕구가 생겼다고 했다.그리고 지금 육민은 갑자기 그녀 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민이는 엄마가 가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 소이연이 육민에게 물었다.육민이 그녀가 차갑고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민은 고개를 젓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러자 소이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우리 아들 때문에라도 내가 가서 보증을 서줘야겠네.”“그럼 엄마가 엄청 귀찮아 지나요?”“아니, 사실 그냥 손가락 까딱하면 끝나는 일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집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