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헌의 카톡 메시지는 빠르게 왔다. "소이연 씨, 어디예요? 왜 호텔에 없나요? 호텔 직원한테 들었는데, 어젯밤에 병원에 갔다면서요, 근데 왜 쓰러졌어요?” 여러 질문들이 연달아 들어왔다. 소이연은 심문헌의 걱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있는데 괜찮아요, 어젯밤에 잠깐 열이 났을 뿐이에요." 소이연은 답장했다. "어느 병원이에요? 금방 갈게요.” "곧 퇴원해요.” "그럼 제가 가서 퇴원수속 도와줄게요.” "퇴원 후 장안으로 돌아갈 거라서 괜찮아요.” "나도 마침 장안에 가려고 했어요. 당신과 함께요.” “..." 심문헌은 정말 모든 기회를 이용해 지칠 정 도로 달라붙는다. "이연 씨, 내가 같이 있게 해 줘요. 이연 씨 혼자 있는 건 걱정돼요." 심문헌은 끈질기게 말했다. 심문헌은 소이연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 끝났어요?" 소이연은 포기했다. 전에 심문헌이 왜 서울에 왔는지 몰랐고, 일부러 그녀를 보러 왔다가 쇼도 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심문헌 같은 전형적인 정치인이, 낙성보다 더 큰 정치의 중심지 서울에 와서 서울의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으러 온 것이지, 괜히 서울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일 끝났어요." 심문헌이 빠르게 답했다. "그럼 호텔로 가서 기다려요. 퇴원하고 호텔에 짐 가지러 갈게요.” "그런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라고요? 방 번호 알려주면 안 돼요? 어제 접대하느라 속이 너무 쓰린데...... " 심문헌은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 "방 번호는 666호예요. 호텔에 가서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저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그리고 내 방 카드를 받고 방에서 기다려요.” "좋아요." 심문헌이 빛의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 소이연도 심문헌의 간사하고 교활함에 익숙해졌다. 결국 정치인들은 제멋대로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정오. 간호사가 그녀의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 일반적인 바이러스 감
"허, 이제야 인정하는 거야?" 루카스는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소이연은 순간 숨이 막혀 막혀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건데?” 소이연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말로 그를 이기지 못하기에 그녀도 사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스는 갑자기 당황했고, 소이연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왜 말을 못 해? 이렇게 간단한 질문에 난처해하는 이유가 뭐지? "나, 소변이 급해.” 루카스는 화장실을 참으며 짧게 답했다. "소변이 급해서 방향을 잘못 잡은 거야?” "젠장, 난 잠에 취해있으면 안 돼?” 루카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화를 내!" 소이연은 화가 났고, 루카스와는 정말 세 마디 이상은 나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루카스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신장이 좋지 않아?! 오줌 지리는 거 아니야?!” 루카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외쳤다. "내 신장은 아무 문제없거든!” 그리고는 반대 방향에 있던 화장실로 들어가며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소이연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루카스와 다투지 말라고 말했다. 이론상 그녀가 루키스보다 6살 더 많으니, 어린 동생에게 화낼 필요가 없다. 그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심문헌이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며 재촉했다. 그녀가 호텔로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이라도 병원으로 달려올 기세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루카스는 그녀가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보며 물었다. "퇴원해?” "방금 의사가 괜찮다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 소이연은 대답했다. 루카스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가지고 욕실로 가서 갈아입은 다음 그가 사 온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사람은 정말 물건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물론 소이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도 그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도 옷을 갈아입으러 욕
소이연은 루카스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낯선 사람과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거리를 두고 차례대로 호텔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앞으로 두 사람은 절대 보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소이연은 666호실은 문 앞에 서서 방 카드로 문을 열려고 하자 그때, “서프라이즈!” 심문헌이 갑자기 문을 열며 외쳤다. 그리고 꽃잎들을 그가 공중에 흩뿌렸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평소 심문헌은 매우 점잖았고 정계에서도 엘리트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점점 소이연 앞에서만 있으면 가벼워지는 것일까? 심문헌은 소이연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런 거 싫어해요?” "싫어해요...” "그날 내가 산 꽃이 정말 낭비였다 생각해서 꽃잎을 한 잎씩 떼어서 퇴원 선물로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심문헌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 순간 소이연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화면 속 심문헌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꽃잎을 떼어내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소이연은 때때로 심문헌에게 좀 무심하게 대했다. "아픈 건 다 나았어요?" 그러자 심문헌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소이연이 자신을 섭섭하게 했다는 것을 이미 다 잊은 듯했다. 이럴 때마다 소이연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심문헌의 계략인지도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두 주도면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소이연은 심문헌을 거부했는데, 그럴 때마다 결국 그는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소이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 나았어요. 오후 4시 비행기인데 점심 먹고 공항으로 가야 해요.” "이연 씨 비서에게 비행기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해 놨어요.”심문헌은 물었다. "식사는 방에서 할래요? 아님 식당으로 갈까요?” "방에서 먹어요.” "그럼 룸서비스 시킬게요.” 선원헌은 소이연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
"아니요."소이연은 부정했다.육현경의 성격은 루카스만큼 나쁘지 않다."그 남자가 육현경이랑 닮았다고 날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그 남자랑 함께 있어요.”"절대 그럴 일 없어요.”소이연은 단호하게 말했다.이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이연과 심문헌은 호텔 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은 후 호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그녀는 일등석에 앉았다.심문헌은 소이연과 표를 같이 예매하지 않아서 나란히 앉을 수 없어 심문헌은 소이연의 옆자리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자리를 바꾸려고 했다.근데 자리의 주인을 본 순간 소이연과 심문헌은 모두 놀랐다.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운명인가?!아니, 이건 정말 저주받은 운명이다.그 옆자리가 바로 루카스라니!루카스는 왜 또 서울에 있지 않고, 왜 장안에 가는 것일까?소이연이 루카스가 자신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믿을 수 없었다.루카스는 소이연을 보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이연은 정말 어떠 욕이라도 당장 내뱉고 싶었다.누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대체 누가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야?"항공권은 내가 너보다 먼저 샀어."루카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이연이 먼저 말했다."그래서 미스터 리,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루카스는 눈을 부릅뜨고 휴대전화를 꺼내 항공권 예약 정보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잘 봐, 난 열흘 전에 샀어!”“......”소이연은 루카스의 비행기표 예약일을 지켜보며 눈꺼풀을 떨었다."잘 봤어?" 루카스는 정말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소이연 씨는 대체 몇 척의 배를 타야 만족해요?" 루카스가 물었다. 소이연은 루카스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다가 순간 깨달았다. 루카스는 천우진과 심문헌 사이를 맴돌다가 지금 또 그와 바람을 피우려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루카스의 마음속에 그녀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였다. 소이연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이명진과 나눈 대
"안 바꾼대요." 소이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우리 둘이 바꿀까요?" 심문헌이 제안하자 소이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심문헌의 머리회전은 역시나 빨랐다. "좋아요!”소이연은 흔쾌히 승낙했다. 심문헌은 곧바로 소이연의 자리로 갔다. 루카스는 고개를 돌려 심문헌이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심문헌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보였다. 안하무인 한 루카스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그가 이긴 싸움이다. 소이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별것도 아닌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장안으로 출발했다. 루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역 신문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어요?" 심문헌이 물었지만 루카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글 알아요?” 심문헌은 루카스의 반응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께서 서울 출신이에요.” 루카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 혼혈이시네요.” 심문헌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생겼더라.” 루카스는 심문헌의 외모 칭찬에도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루카스는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본인이 잘 생긴 걸 알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오만하게 구는 건가?” 루카스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입술을 오므렸다. "그리고 당신이 잘생겼다고 누구든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소이연 씨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 유혹도 하지 말고요.” "저 소이연한테 단 하나도 관심 없어요.” 루카스는 차갑게 대답했다. "관심 없어요? 확실히 관심 없는 거 맞아요? 내가 당신 옆에 앉을 때 안색이 안 좋아지시던데요."심문헌이 직접적으로 말했다. "남자인 내가 봤을 때, 당신은 소이연 씨한테 대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내가 당신 인처럼 고양
"소이연 씨는 건드리지 마. 건드린다면 내가 그땐 널 어떻게 할지 몰라.”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루카스는 욕설을 내뱉고 이어폰을 끼며 안대를 하고 눈을 감았다. 심문헌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자식, 아직 치료된 게 아니었어?말 좀 해봐!눈앞에 있는 루카스는 확실히 잘생겼다. 화가 나서 자는 모습조차 말이다. 멈춰. 그때 심문헌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금도 소이연을 더 사랑한다. ......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다. 소이연은 심문헌과 함께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 루카스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공항에서 나오자 소이연은 심문헌과 함께 떠났다 소이연은 다시는 이 넓은 장안에서 루카스를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을 때 마린이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소이연과 루카스가 악연을 맺었던 것이고, 장안에서 그녀는 호텔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을 테니 분명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렇다. 장안으로 돌아온 후 일주일 동안, 소이연은 루카스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밤에 잠들기 힘들 때 가끔 루카스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는 떠올렸을 뿐 그를 잊고 잘 지냈다. 깊은 밤 한 줄기 설렘이 있기는 했지만, 루카스를 찾아가서 재워달라고 할 정도로 충동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만날 수 있지만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의 그리운 마음은 있었다. 일주일 뒤, 소이연은 시간을 내어 육민을 데리고 육씨 저택으로 갔다. 육은숙은 최근 몇 년 동안 줄곧 소이연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부었다. 첫째는 육민이 계속 소이연과 함께 했기 때문인데, 육은숙은 사실 육민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에게 훨씬 더 잘해주었다. 둘째, 소이연은 육현경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었고, 육현경이 없는 지금 육은숙은 육현경을 대신해서 소이연을 더 잘 보살펴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소이연은 육은숙과 거리가 있었다. 사실, 육은숙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
소이연은 계지원의 옆으로 가 그와 함께 앉았다. 소이연은 계지원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계지원은 먼저 소이연에게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계지원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그는 전화를 받기 위해 일어났다. 소이연이 그를 부축해 주기 위해 손을 뻗자 그가 말했다. "괜찮아요." 계지원은 정중히 거절하고 지팡이를 짚고 절뚜거리며 한쪽으로 걸어갔다. 계지원은 교통사고로 해외에서 치료를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됐다. 다행히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비장애인과는 달랐다. 그는 전화를 받고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계지원과 많이 친하지는 않았기에 소이연은 누가에게 전화 왔냐고 묻지 않았다. 계지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평소 예능을 즐겨 보세요?” "왜요?" 소이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방금 장안 tv에서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공지를 받았는데, 제작자가 배우를 경연에 초대하고 나를 심사위원으로 섭외하고 싶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장안 예능의 시청률은 다 어느 정도는 보장돼 있어요." 소이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 당시 장안 예능의 한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바로 유명해졌고, 그녀 경력에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장안의 예능은 더욱 번성했고, 다른 방송사들을 압박하는 존재가 되었다."지원 씨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지원 씨가 원한다는 전제하에서요. 결국 예능프로그램은 예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소이연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은 설날에 개봉할 영화 한 편만 찍고 있기는 해요. 1~2개월밖에 촬영하지 않을 예정이기도 하고요. 올 한 해는 당분간 영화나 드라마 준비는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좀 편하게 해주고 싶어요.” "음, 이럴 때 다른 프로그램에서 바람 좀 쐬고 배우를 뽑는
“수진 씨 찾아가 볼 생각은 해봤어요?”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계지원에게 묻자 계지원은 고개를 저었다.소이연은 계지원에게 예수진과 하도경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대체 왜 헤어진 건지 물어보았다. 계지원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하도경의 어머니께서 예수진을 찾아갔고,예수진은 그에게 연기를 해달라고 한 뒤 하도경과 헤어진 것이라고 했다.소이연은 또 그에게 예수진이 하도경이랑 헤어졌는데 왜 예수진이랑 사귀지 않았는지 물었다.계지원은 침묵을 유지했다.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한 적이 없었다.심지어는 계지원이 아직까지도 예수진을 찾아가지 않았기에 그녀는 계지원이 아직 예수진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수진이 계지원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기 때문에 계지원도 자신이 그녀를 다시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포기를 선택했을 것이다.아니면......?설마 계지원이 자신의 장애 때문에 포기한 건가?!“수진이는 자기만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계지원이 담담하게 말했다.마치 정말 완전히 예수진을 포기한 것처럼.소이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감정은 항상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소이연은 육씨 저택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야 육민을 데리고 나왔다.육민은 뒷좌석에 앉아있었고, 소이연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차에 육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운전에 특히 신경을 썼다.“엄마.” 육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응?”“고모할머니께서 오늘 또 우리한테 육씨 저택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민이는 가고 싶어?”“아니요.” 육민은 고개를 저었다.“진짜 안 가고 싶어?” 소이연이 물었다.“엄마가 가기 싫어하는 거 알아요. 그리고 저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고요.”“엄마는 확실히 안 가고 싶어.” 소이연도 숨기지 않았다.“그래서 고모할머니 말은 거절했어요. 근데 앞으로 자주 가서 인사드리기로 했어요.”“그래, 만약 앞으로 엄마가 너무 바쁘면, 민이라도 데려다줄게.”“고마워요 엄마.”소이연은 살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