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도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슴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그가 자신에게 많은 일들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점점 긴장되었다. 그녀는 계지원이 자신에게 숨기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계지원은 다시 고개를 돌려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도 신경질적이던 기자들은 지금 이 순간 긴장되었는지 숨소리 때문에 계지원이 말하지 않을까 봐 숨도 쉬지 못했다. 계지원은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모든 분들이 알다시피 저는 육씨 가문의 입양아입니다. 그리고 육씨 어르신이 입양한 아이입니다. 사실상...” 계지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비밀은 오랫동안 감추었다. 처음에는 육씨 어르신과 그의 모친만 알고 있었고 그 후에 계원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똑똑한 육현경이 알아챘고 마지막엔 육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다. 계지원은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상 저는 육씨 어르신이의 사생아입니다.” “뭐라고?!”현장의 기자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예수진도 그 순간 경악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 번도 계지원이 육씨 어르신의 입양아가 아닌 친자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육씨 가문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육씨 가문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계지원이 육씨 어르신의 친 아들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녀야말로 육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예전에 계집원을 육씨 가문의 개라고 비옷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정말 후회막급했다. “여러분들은 의아할 것입니다. 제가 왜 자신이 신분을 폭로하는지? 이미 이 비밀은 30여 년간 지켜졌고 대외에 알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뉴스로 다른 뉴스를 가리려고 하는 건 아니니 걱정마십시오. 저희 신분의 비밀이 저와 수진씨 감정이 싹트게 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계지원은 차분하게 말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쇼킹한 뉴스에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계지원이 육씨 어르신의 사생아라는 것도 모자라, 예수진이 육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니.”“왜 예전에 아무도 예수진의 신분을 폭로한 사람이 없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수진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상해. 한 사람이 연예계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게. 육씨 가문이 한 짓이 아닐까?” “예수진이 육씨 가문 대문 앞에 나타났다는 뉴스를 보도 한 적 있었어. 그리고 계지원과 문서아가 연애를 한다는 뉴스도 사라졌었지? 그러고 보니 계지원이 문서아와 연애했었다는 것도 조금 이상해.” “너무 복잡해. 이건 아마 연예계에서 가장 큰 뉴스거리일 것이야.” 기자들은 저마다 수군대기 시작했고 많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오늘 계지원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대중들과 기자들은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댓글도 불이 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댓글은 [...] 이었다. “여러분 너무 급해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계지원이 입을 열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저와 수진 씨는 서로를 좋아했어요. 저는 수진 씨가 저를 왜 좋아했었는지 모르지만요. 저는 그때 육씨 가문에서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어요. 제가 수진씨를 처음 봤을 때 수진 씨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요. 피부는 하얗고 얼굴은 너무 아름다워서 인형 같았어요. 그런 그녀가 저를 보며 웃었을 때 마치 하늘의 별같이 반짝반짝 거렸어요. 저는 그때 어머니를 금방 여의었기에 수진 씨에게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육씨 가문에 계속 남고 싶어졌어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곳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생겼어요. 그래서 육씨 가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육씨 가문에서 어느 순간 쫓겨나게 될까 봐. 하지만 육씨 가문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들에게서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육현경
그 순간 예수진은 칼에 찔리듯 가슴이 아파왔다. 그녀는 항상 계지원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육씨 가문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그녀에게 잘 대해준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육씨 가문에게 잘 보여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한 번도 자신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는 원래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이 많았던 아이었다니... 한 번도 계지원이 자신을 거절한 것이 그들 사이의 혈연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도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린 적이 없었다. 그녀가 상처를 입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그가 원망스럽다기보다 그들 사이의 사랑이 가여웠다. “저도 어르신을 의심한 적이 있었어요. 어르신이 저와 수진 씨를 갈라놓으려고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육씨의 양자이기에 수진 씨와 함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저는 몰래 어르신과 친자 검사를 하게 됐어요. 한 번 두 번 하면 할수록 절망했어요. 제가 어르신이 친자임을 믿게 된 거죠. 게다가 저는 수진 씨의 삼촌이 삼촌이었다는 걸요.” 예수진의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계지원이 친자 검사를 하는 화면이 떠올랐다. 그가 친자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혼자 아파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의 그녀는 그를 세상 나쁜 쓰레기라고 생각했었다. “수진 씨에게 말할 수 없었어요, 저와 그녀가 혈연관계라는 사실을. 제 인생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아픔이었기에 수진 씨에게 저와 같은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수진씨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었죠. 가문 사람이기에 잘 대해 준 것뿐이라고 얘기했었죠.”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게 될까 봐 무서웠다. 계지원은 정말 바보였다. 모든 사실을 혼자 감당하다니. 그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그를 원망했었는지 그는 알기나 할까? 몇 번이나 그를 죽이고 싶었는지 그는 알기나 할까? 그가 만약 사실을
“이게 바로 예수진씨가 연예계 생활을 오래 했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 누구에게도 자신이 육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에요. 그녀가 신분을 폭로하면 가문에서 그녀더러 연예계를 떠나라고 할 테니... 그래서 수진 씨가 육현경씨와의 사이와 저와의 관계가 폭로되었을 때 수진 씨의 연예계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저는 문서아씨와 함께하기로 했어요.” 예수진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모든 기자들도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계지원이 문서아와 함께한 것은 예수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계원이 한 모든 일들은 다 예수진을 위한 일이었다. “평생 수진씨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큰 전환점이 생겼어요. 그건 바로 수진 씨가 육은숙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죠. 그러니까 저랑 수진 씨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이었어요. 저는 그때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수진씨 아픔보다 너무 기뻤어요. 이건 하늘이 저에게 주는 가장 큰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와 수진 씨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진 씨 존재는 육은숙에게 너무나 큰 타격으로 되었기에 수진 씨를 연예계에서 퇴출시키려고 많은 일들을 벌렸어요. 저는 육은숙이 수진씨에게 한 모든 일들과 제가 수진씨를 선택했을 때 육씨 가문이 저에게할 짓을 두려워하진 않았어요. 단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르신과 한 달 정도 아무 일도 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죠. 어르신은 제가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냉정을 되찾기를 바랬죠. 하지만 그 한 달이 또 한 번 저와 수진 씨를 갈라놓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예수진은 옆에서 계지원의 말을 들으며 침묵했다. 하지만 가슴이 너무나 아파왔다. 그는 계지원을 항상 원망했었다. 항상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에게 너무도 많은 일들을 해주었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묵묵히 많은 일들을 인내했었다. 그녀는 이 순간 그들의 결혼
“하느님은 항상 저의 편이었어요. 그 남자는 가정 때문에 수진 씨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죠. 정확하게 말하면 수진 씨가 그 남자를 위해서 그와 헤어짐을 선택한 거죠. 그리고 그녀가 핑곗거리는 바로 저를 잊지 못했다는 이유였어요. 그때 저는 너무 기분 좋았어요. 수진 씨의 대타 애인으로서 수진씨와 함께 연기를 했었죠. 그리고 그 남자는 이 연기를 믿었고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믿었었죠. 그 남자와 헤어지고 수진 씨는 저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저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아서 저와 관계를 했었어요.” 계지원은 눈빛이 흐려졌다. 마치 그날밤의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듯해 보였다. “저는 수진 씨가 그날 밤을 원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쩌면 수진 씨는 그 남자와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으려고 저와 관계를 한 것이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날 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밤이었어요. 이튿날 촬영을 가기 위해서 저는 빨리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떠날 때 수진 씨는 아직도 자고 있었어요. 그녀를 깨우기 싫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쪽지를 남겼어요.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녀에게 청혼을 하려고 생각했었죠. 그녀가 거절하던 수진 씨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던, 저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수진씨의 손가락 사이즈에 맞게 결혼 반지를 맞추고 프로포즈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촬영장에서 돌아올 때 저는 사고를 당했어요. 차는 절벽에서 떨어졌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거죠.” 예수진의 눈물이 끝내 볼을 타고 떨어졌다. 그녀는 그날 밤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었다. 사실 그녀는 그날 밤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과 계지원이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계지원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받아들였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만약 그녀가 만약 계집원이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떠나
“그때부터 수진 씨는 저의 세상에서 사라졌어요. 저도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녀도 저에게 연락하지 않았죠. 우리가 가장 친밀했을 때 그렇게 타인보다 못한 사이로 된 거죠. 다시 만났을 때는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 무대였어요. 그때 그녀가 다시 연예계 돌아온 거죠.” 계지원의 매력적인 음색이 현장을 울렸다.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어요. 너무 복잡한 마음을 그녀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녀가 싫어할까 봐. 하지만 저는 수진 씨의 매력을 얕잡아 본 거죠.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를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의 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마음속에는 그녀와 다시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어요. 항상 하느님은 저의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절망의 순간에 저에게 희망을 보게 하니깐요. 그날 하연을 처음 보게 되었어요. 너무너무 귀여운 여자아이였죠. 하연은 수진 씨의 딸이에요. 저는 그때 하연이 저의 딸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후에 하연이 아빠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죠. 그래서 수진 씨에게 아이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그녀를 찾아갔어요. 수진씨가 연예계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연예계 진출을 위해서 육씨 가문과 멀어졌고 혼자 연예계 돌아온 거죠. 그래서 저는 수진 씨가 저와 함께한다면 외부에 우리가 결혼을 은밀히 진행했고 하연은 우리 아이라고 속여서 말하면 수진 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은 낮아질 거라고 얘기를 했죠. 그녀도 동의했고 그렇게 제가 꿈에도 그리던 그녀를 갖게 되었어요.” 현장의 많은 기자들은 계지원의 말에 감동했다. 화면에서의 악의적인 댓글들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우여곡절이 담긴 사랑 이야기에 오늘 기자회견의 주제도 잊어버렸다. 예수진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따스함을 느낄 뿐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수
“저도 응원합니다.” 기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은 사람들에게 찬양받을 만해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계 감독님과 수진 씨가 한 거짓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당신들의 것이에요.”기자들의 말에 계지원은 예수진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들 앞에서 수진 씨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진 씨 앞에서 긴장해서 입을 열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이번 사고가 아니었다면 저는 영원히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계지원은 고개를 돌려 예수진을 바라보았다. 예수진은 눈이 빨개져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계지원은 빤히 바라보았다. 바보,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는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는 그녀가 자신 곁에 돌아온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면 지금 이 순간이 꿈으로 되는 건 아닐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자리에 그녀가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한동안 계지원은 숨을 크게 쉴 수도 없을 만큼 조심스럽게 생활했다. 지금의 아름다운 생활을 깰까 봐, 그는 지금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는 손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예수진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요, 너무 마음 아파요.” 예수진도 울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모습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예전에 묵묵히 상처받았을 계지원만 생각하면 그녀는 마음이 아파 울고 싶었다. 배우로서 그녀는 자신이 이렇듯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모습에 혀를 차고 싶었다. ‘지금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예수진 기자회견장에서 눈물 쏟아]로 되어 있겠지.’“당신이 좋아하는 거라면 마음대로 해요.” 계지원은 자상하게 말했다. 그때도 예수진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계지원이
예수진은 가슴이 너무 아파왔다. 이런 계지원을 어쩌면 좋을까? 그는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녀가 예전에 그를 원망했을 때 그는 도대체 어떻게 견뎌 왔을까? 그녀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예수진은 정말 눈앞의 남자를 볼 때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 당장 자신의 심장이라도 그에게 꺼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지금 당신을 너무 사랑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라고. “좋아요.” 그녀가 울음을 삼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지원 씨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댓글에도 축하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축하합니다. 진짜 눈물을 쏟았네요. 분명 욕하려고 왔는데 지금은 응원하게 됐네요.] [계지원씨 정말 대단합니다.] 계지원에 대한 댓글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계지원은 떨리는 두 손으로 반지를 들어 예수진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사이즈는 딱 맞았다. 예수진은 그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눈이 나붙기던 그날 계지원이 희망으로 가득 찼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났었다. 그렇게 한 통의 전화로 그들의 사이는 끝났다. 만약 그녀가 계지원을 조금만 더 믿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예수진은 그런 그를 부축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그들은 평생 자신들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행복한 순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둘은 서로를 꽉 껴안았다. 현장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이나 안고 나서야 계지원은 예수진을 놓아 주었다.그는 단 한 순간이라도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자신이 품 안에 꽉 껴안아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먼저 중요한 일을 해결해야 한다. 둘은 다시 각자의 위치에 섰다. 예수진은 계속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은 계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