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수진 씨는 저의 세상에서 사라졌어요. 저도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녀도 저에게 연락하지 않았죠. 우리가 가장 친밀했을 때 그렇게 타인보다 못한 사이로 된 거죠. 다시 만났을 때는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 무대였어요. 그때 그녀가 다시 연예계 돌아온 거죠.” 계지원의 매력적인 음색이 현장을 울렸다.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어요. 너무 복잡한 마음을 그녀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녀가 싫어할까 봐. 하지만 저는 수진 씨의 매력을 얕잡아 본 거죠.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를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의 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마음속에는 그녀와 다시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어요. 항상 하느님은 저의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절망의 순간에 저에게 희망을 보게 하니깐요. 그날 하연을 처음 보게 되었어요. 너무너무 귀여운 여자아이였죠. 하연은 수진 씨의 딸이에요. 저는 그때 하연이 저의 딸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후에 하연이 아빠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죠. 그래서 수진 씨에게 아이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그녀를 찾아갔어요. 수진씨가 연예계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연예계 진출을 위해서 육씨 가문과 멀어졌고 혼자 연예계 돌아온 거죠. 그래서 저는 수진 씨가 저와 함께한다면 외부에 우리가 결혼을 은밀히 진행했고 하연은 우리 아이라고 속여서 말하면 수진 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은 낮아질 거라고 얘기를 했죠. 그녀도 동의했고 그렇게 제가 꿈에도 그리던 그녀를 갖게 되었어요.” 현장의 많은 기자들은 계지원의 말에 감동했다. 화면에서의 악의적인 댓글들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우여곡절이 담긴 사랑 이야기에 오늘 기자회견의 주제도 잊어버렸다. 예수진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따스함을 느낄 뿐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수
“저도 응원합니다.” 기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은 사람들에게 찬양받을 만해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계 감독님과 수진 씨가 한 거짓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당신들의 것이에요.”기자들의 말에 계지원은 예수진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들 앞에서 수진 씨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진 씨 앞에서 긴장해서 입을 열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이번 사고가 아니었다면 저는 영원히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계지원은 고개를 돌려 예수진을 바라보았다. 예수진은 눈이 빨개져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계지원은 빤히 바라보았다. 바보,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는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는 그녀가 자신 곁에 돌아온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면 지금 이 순간이 꿈으로 되는 건 아닐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자리에 그녀가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한동안 계지원은 숨을 크게 쉴 수도 없을 만큼 조심스럽게 생활했다. 지금의 아름다운 생활을 깰까 봐, 그는 지금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는 손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예수진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요, 너무 마음 아파요.” 예수진도 울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모습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예전에 묵묵히 상처받았을 계지원만 생각하면 그녀는 마음이 아파 울고 싶었다. 배우로서 그녀는 자신이 이렇듯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모습에 혀를 차고 싶었다. ‘지금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예수진 기자회견장에서 눈물 쏟아]로 되어 있겠지.’“당신이 좋아하는 거라면 마음대로 해요.” 계지원은 자상하게 말했다. 그때도 예수진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계지원이
예수진은 가슴이 너무 아파왔다. 이런 계지원을 어쩌면 좋을까? 그는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녀가 예전에 그를 원망했을 때 그는 도대체 어떻게 견뎌 왔을까? 그녀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예수진은 정말 눈앞의 남자를 볼 때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 당장 자신의 심장이라도 그에게 꺼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지금 당신을 너무 사랑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라고. “좋아요.” 그녀가 울음을 삼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지원 씨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댓글에도 축하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축하합니다. 진짜 눈물을 쏟았네요. 분명 욕하려고 왔는데 지금은 응원하게 됐네요.] [계지원씨 정말 대단합니다.] 계지원에 대한 댓글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계지원은 떨리는 두 손으로 반지를 들어 예수진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사이즈는 딱 맞았다. 예수진은 그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눈이 나붙기던 그날 계지원이 희망으로 가득 찼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났었다. 그렇게 한 통의 전화로 그들의 사이는 끝났다. 만약 그녀가 계지원을 조금만 더 믿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예수진은 그런 그를 부축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그들은 평생 자신들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행복한 순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둘은 서로를 꽉 껴안았다. 현장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이나 안고 나서야 계지원은 예수진을 놓아 주었다.그는 단 한 순간이라도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자신이 품 안에 꽉 껴안아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먼저 중요한 일을 해결해야 한다. 둘은 다시 각자의 위치에 섰다. 예수진은 계속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은 계
하지만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은 계속 흘러나왔다. 계지원은 한 손으로 예수진의 손을 꽉 잡고 모든 기자에게 말했다. “오늘 수진씨와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알려준 것 외에도 육씨 거문에게 저희 입장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기자들도 한껏 긴장하여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예전에는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많은 일들을 저는 습관 쪽으로 감추고 살았어요. 저에게 수진 씨 외에는 모든 일들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왔어요. 하지만 오늘 저는 확실하게 말하겠습니다. 수진 씨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피해자입니다. 당신이 겪었던 치욕을 수진 씨에게 던져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몇 년 동안 당신이 수진 씨에게 했었던 모든 일들은 당신의 사리사욕입니다. 몇 년 동안 당신을 인내한 것은 우리가 혈연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당신이 가족에게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의 신분을 알고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로써 저를 속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진 씨를 사랑합니다. 내 목숨보다 수진 씨를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수진 씨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그건 당신도 포함입니다. 당신의 협박도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겠습니다. 육씨 가문의 도움을 저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매 사이의 응어리는 당신의 행동에 달렸습니다. 만약 당신이 수진 씨를 받아들일 수 없고 계속 수진 씨를 괴롭힌다면 나도 수진씨를 보호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상처를 줄 겁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하겠습니다. 육씨 어르신이 돌아갔을 때 당신에게 말했었죠. 수진 씨를 괴롭히지 말라고. 수진 씨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저도 지금 비밀을 하나 알려 줄까 합니다. 육씨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저
“그럼 예전 일 때문에 당신에게 계속 묶여야 한단 말인가요?” 계지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수진은 옆에서 흠칫 놀랐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육은숙이 두려웠다. 아까 예수진이 전화를 받으라고 했었지만 육은숙이 계속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녀도 육은숙의 성격을 잘 알았다. 목표에 다 도달하기 전까지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계지원이 받지 않는다면 육은숙은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할 것이고 집까지 찾아올 것이다. 계지원이 전화를 받자 예수진은 심지어 마음속으로 준비를 마쳤다. 계지원은 육은숙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육은숙에게 욕을 엄청나게 먹을 것이다. 예수진은 그와 함께 육은숙을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계지원은 너무도 강하게 나왔다. “묶어둔다고 네가 묶여지니? 우리는 한 가족이야. 계지원, 너랑 나는 육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 사이야. 예수진은 타인이고.” 육은숙은 화가 나서 흥분하여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 대한 칭찬만 들어왔고 이렇게 자신을 하찮게 대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육은숙은 계지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계지원에 대한 시간의 투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육씨 가문은 항상 핏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건 모든 가문 사람들이 그러했다. 계지원이 육씨 가문 핏줄이 아니었을 때도, 어르신이 데리고 온 사람이기에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잘 대해주었다. 이건 가풍이었다. 하지만 계지원은 지금 한 여인 때문에 육은숙과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육은숙은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타인이 아니에요. 내 아내예요, 누나.” 계지원이 갑자기 육은숙을 불렀다. 예수진은 그가 다른 사람을 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에서 그는 어르신을 아빠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고 육은숙을 누나라고 부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누나라고 부르다니... 예수진은 깜짝 놀랐다. “아까 기자회견에서 모든 사실을 말했어요. 협박하는
조용한 공간에서 그들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수진 씨." 계지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가 갑자기 입을 열자 예수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모습에 계지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빛은 마치 수백만 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그는 이렇게 맑은 눈빛을 지니는 매혹적인 남자였다. "나 때문에 놀란 거예요?"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하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예수진이 투덜거렸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일을 말하는 거예요?" 예수진은 가슴이 떨려왔다. 기자회견에서 계지원이 했던 말만 생각하면... 감정이 복잡해졌다. 예수진은 숨을 한껏 들이쉬고 천천히 말했다. "지원 씨, 나는 정말 당신을 오랫동안 원망해 왔어요. 알아요? 왜 나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거예요?" 예수진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예전에 억울했던 기억만 생각하면, 계지원이 견뎠을 아픔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왔다.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요. 삼촌과 연애라니,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잠깐 역겨운 게 낫죠. 역겨운 게 당신을 원망하는 것보다 낫죠." 그 정도란 말인가.계지원은 예수진이 그의 핏줄을 알았을 때 결코 역겹지 않았다. 예수진이었기에 괜찮았다. 그저 절망스러움만 느꼈을 뿐이다. "내 출신을 알고 난 후에 말할 기회가 있지 않았어요?" 예수진이 캐물었다. "그때 당신은 하도경과 함께했었잖아요." 옛기억에 그는 가슴이 다시 한번 짓밟혔다."내가 만약 하도경이랑 계속 함께 했다면 나를 평생 가슴에 묻어둘 건가요?" "그래요." 계지원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의 칼날 같은 대답에 예수진은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빼앗아 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아니요, 당신의 행복에 비하면 나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장담해요? 나랑 하도경이 함께하면서 반드시 행복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데요?" "그의 곁에서 당신은 너무나
둘은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연은 아빠 엄마가 돌아오자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 계지원과 포옹하려 했다. 계집원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하연을 안으려고 했을 때 예수진에 의해 저지당했다. 하연은 불쌍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계지원도 의아했다. 예수진은 진지하게 하연에게 알려줬다. "오늘 아빤 내 거야. 그 누구도 나한테서 빼앗아 갈 수 없어." "왜?" 하연이는 그녀의 말을 듣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 모습은 너무나 불쌍해 보였지만 예수진은 단호했다. "내 아빠야. 그렇게 빼앗아 갈 수 없어." 하연도 진지하게 맞받아쳤다. "그 전에 내 남편이야." "싫어. 아빠 날 버리지 않을 거지?" 하연이 계지원을 올려보았다. 올려다보는 사랑스러운 하연의 모습은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계지원은 마음이 움직였지만 예수진은 그런 하연에게 지지 않았다. 그녀는 계지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뒤에서 하연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절뚝절뚝 따라 들어가는 계지원의 모습은 조금 불쌍해 보였다. "엄마, 나빠!" 하연이 울먹울먹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방문은 그렇게 매몰차게 닫혔다. 계지원은 다리가 불편했기에 '쿵'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수진도 그런 계지원 몸 위에 넘어졌기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깔린 계지원은 통증이 그대로 얼굴에 쓰여 있었다. "아파요?" "아니요." 예수진이 대답했다. "당신은 안 아파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 예수진이 일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아까의 자신의 모습은 너무 경솔했다. 하연은 너무 강력한 상대였기에 자신이 조금만 물러서도 오늘 그와 밤을 보내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한시도 이 남자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힘껏 계지원을 부축하자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아픔이 느껴졌고 갑자기 몸을 일으키자 몸도 휘청거렸다. 예수진은 다시 한번 그와 함께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그를 부축하여 침대에 앉았다. "미
뜨거웠던 분위기는 그렇게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예수진은 사랑의 적수를 낳은 것이다. 계지원은 하연의 부름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가지 마요." 예수진은 그런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하연이가 왜 부르는지 가서 보려고요." "하연은 당신을 빼앗고 싶은 거예요." 계지원은 그런 예수진 때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에게 질투하는 거예요?" "맞아요. 질투해요. 나도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 하연에게 왜 넘겨줘요. 이렇게 어렵게 응머리를 풀게 됐는데... 나는 지금 당신이랑 함께하고 싶어요." 계지원은 할 말을 잃었으나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나 따스했다. 그는 예수진의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예수진은 그에게 멀고도 차가운 존재였다. 그가 얼마나 예수진을 그리워했는지 하나님만이 알 것이다. 그의 마음이 서서히 예수진에게 기울어 갔을 때였다. "아빠..." 문 앞에서 하연이 또 불렀다. "착하지? 아빠가 조금 있다가 갈게." "안 돼요." 예수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수진 씨." "내가 가요." 계지원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윤이와 잘 얘기해 볼게요." 예수진은 말을 마치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하연의 불쌍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연은 기뻐 고개를 들었지만 엄마를 보게 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빠를 찾으러 왔어." "아빠는 지금 엄마랑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어른들의 일." "동생을 낳는 일?" 하연은 순진한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반짝 그렸다. 예수진은 순간 멍해졌다. 3살짜리 아이가 벌써 안다고? "맞아?" 하연이 캐물었다. "아마도..." 예수진이 비밀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하연이 마치 어른처럼 입을 열었다. "만약 엄마랑 아빠가 나에게 함께 놀 수 있는 동생을 낳는다면, 나는 아빠한테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거야." 예수진이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하연이 벌써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예수진:[그럼 너랑 지수 다 서울에 있는 거야? 아직 병원이야?]예수진:[부모님은 좀 어떠셔? 충격이 크시지?]그들의 문자에 하나하나 답장을 하던 송문수는 점점 더 침울해졌다.누구한테 일어나도 참혹한 비극인데 그 일이 제 형한테 일어났으니 송문수는 어떻게 송승우를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근심 속에서 밤이 깊어지자 하지수가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냈다.[자?][아니.][병원에서 잘 수 있으면 어디서 눈이라도 좀 붙여. 문수 씨도 쉬어야지, 어머님 아버님이 못 버티시면 남은 건 당신뿐이야.][알아 나도. 넌 왜 아직 안 자? 시간 늦었는데.][당신이 걱정돼서.][뭐하러 날 걱정해, 난 괜찮아. 송승우가 문제지...]그의 문자에 어떤 말로 답을 해야 할지 몰랐던 하지수는 말을 잇지 못했고 송문수도 그만 대화를 끝내려 했다.[늦었으니까 얼른 자.][응.][나 대신 부모님 좀 잘 챙겨줘, 엄마 아빠 쓰러질까 봐 나 너무 무서워.][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마.]핸드폰을 내려놓은 송문수는 중환자실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에서 밤을 지새웠다.중환자실에서 나온 송승우가 바로 입원할 수 있게 병원에서 VIP 병실을 열어줬지만 송문수는 그 편한 곳도 마다하고 굳이 송승우 옆을 지키고 있었다.아무리 송승우라 해도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아침까지도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던 송문수는 간호사의 친절한 부름에 서서히 눈을 떴다.“보호자분?”잔뜩 충혈된 눈을 하고 몸을 일으킨 송문수는 의아한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환자분이 보호자분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송승우 씨가요?”중환자실을 가리키며 당황한 듯 묻는 송문수를 향해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송문수 씨가 중환자실로 와줬으면 하세요.”“면회 안된다면서요?”“좀 전에 선생님이 또 몸 상태 체크하셨는데 이젠 다 정상수치로 돌아와서 면회 가능하시대요. 대신 시간만 좀 주의해주세요. 아직 몸이 약하셔서 이럴 때는 저희도 환자분 부탁이라면 뭐든 다
시부모님의 몸 상태를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하지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송기명은 더욱이 쓰러진 지 얼마 안 된 터라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아버님, 어머님, 여긴 문수 씨한테 맡기도 우린 먼저 호텔에 가 있어요.”하지수의 거듭되는 권유에 송기명과 허영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송문수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알겠다니까요. 걱정 마시고 가세요. 제가 입구까지 모셔다드릴게요.”송기명과 허영지를 차에 태운 송문수는 조수석에 앉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모든 감정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녀도 송문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의 눈엔 미련이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방향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송문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중환자실 복도에 앉은 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핸드폰을 켜보았다.역시나 수많은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그의 알림창을 꽉 채우고 있었다.다른 문자는 싹 다 무시한 송문수는 친구들과의 방, 그리고 소이연, 예수진이 함께 있는 단톡방, 이렇게 두 곳에만 답장을 했다.육현경:[대체 무슨 일이야?]계지원:[문수야,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아저씨 생신 파티는 왜 취소하는 거야?]하도경:[말 좀 해봐, 전화도 안 받고. 이러다가 다들 답답해 죽겠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또 다른 단톡방에 있던 소이연과 예수진 역시 걱정스러운 문자를 보내왔다.소이연:[문수 씨, 무슨 일 있는 거죠?]예수진:[송문수, 답장 안 해? 기사 보니까 아줌마 안색도 엄청 안 좋던데 무슨 일이 나긴 난 거지?]예수진:[말 좀 하라고 이 자식아!]소이연:[수진 씨 진정해요 일단. 문수 씨랑 지수 씨가 바빠서 답장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급한 일 다 보고 나면 우리한테도 알려줄 거에요.]예수진:[알겠어요, 기다려봐야죠 뭐.]자신의 화면을 가득 채운 문자를 보던 송문수는 손가락을 움직여
송문수가 사 온 물을 건네도 부모님은 고개만 저으며 손을 모으셨다.그래서 하지수에게 건네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을 받아들었다.서울에 온 뒤 송씨 일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자리를 지키며 송승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송승우가 눈을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는 받아든 물이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도 신경은 온통 송승우에게 쏠려있었다.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송승우의 몸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파서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인지 몸은 미세한 떨림 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송승우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어 하지수는 잔뜩 흥분한 채 외쳤다.“승우 오빠 일어났어요!”“문수, 문수야! 얼른 의사 불러와!”하지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부모님이 송문수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했고 송문수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방음효과가 워낙 좋은 중환자실이라 의사와 송승우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또다시 초조해 났다.한참이나 지나서 중환자실 빠져나오는 의사에 허영지가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저희 아들은 좀 어떤가요?”“방금 검사 진행했는데 생명엔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여기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세균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거든요.”“알겠습니다, 입원은 며칠 하든 상관없으니까 저희 애 잘만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저희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건 괜찮을까요?”“아직은 들어가지 마세요. 환자분도 방금 깨어나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시고 내일 상태 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 보시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 선생님!”“아닙니다.”감격 어린 허영지의 말에 의사가 한마디 더 보탰다.“환자가 아직은 본인 몸 상태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면회하실 때도 다리 절단한 사실은 일단 말하지 마세요. 환자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 말에 허영지는 대성통곡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끄떡없던 송기명마저 아들 일에 눈물을 보였다.평소에 사이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친형이었기에 송문수도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고 하지수 역시 송승우가 다리를 잃는다는 말에 눈물을 떨어뜨렸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어릴 때부터 본인 잘난 멋에 살던 사람이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려 죽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 하지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목숨이 다리 한쪽보다는 더 중요했기에 결국 사인을 한 송기명은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송문수도 아버지를 부축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술에 다들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요한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가족들 못지않게 속을 태우던 장지석은 피곤한 듯 마스크를 벗는 의사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승우는 좀 어떻습니까?”그제야 가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지수와 송문수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축한 채 의사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다른 말보다 먼저 나온 게 의사의 한숨이라 허영지는 쓰러질뻔한 걸 간신히 버텨내며 물었다.“왜 그래요 선생님, 우리 아들 잘못된 거 아니죠?!”“생명엔 지장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데...”“그런 데라뇨!”“환자분이 다리를 잃었으니 깨어나시고 나서도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할 겁니다.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 다리 외에도 몸 각 부위가 다 강한 충격을 받아서 일단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의식 돌아오고 모든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의사의 말에 허영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기명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그들은 전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그들도 송승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만약 하지수가 송승우의 교통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그런 하지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 송문수는 지금 모든 게 미지수였다.송승우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정말 친오빠처럼 생각했던 하지수는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서울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해 있대.”“나 서울 가야겠어.”“그래요 여보.”마침내 정신을 차린 허영지가 입을 열자 송기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갈 거면 다 같이 가야죠. 오늘 파티는 일다 취소하죠.”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문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파티장 취소할 테니까 지수 너는 서울 가는 티켓이랑 차량 좀 준비해줘.”“알겠어.”이미 혼이 반쯤 나간 부모님을 모시려면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하지수는 바로 기사에게 연락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그리고는 한 시간 뒤에 출발인 항공편까지 끊어놓았다.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문수는 서둘러 파티를 취소하고 있었는데 직원을 시켜 손님들께 나중에 아버지와 직접 찾아뵙고 취소이유를 말씀드리고 사과까지 드린다는 말도 전하게 했다.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송문수는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하느라 바삐 돌아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하지만 다들 송승우를 걱정하고 있어서 확 달라진 송문수에게 주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린 송씨 일가는 바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서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나와 있던 송승우의 동료가 그들을 맞아주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오셨어요? 저는 승우 형 직장 동료 이찬혁이라고 합니다. 형은 안에서 수술 중이에요.”“우리 아들 많이 심한가요 지금?”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송기명이 이찬혁을 붙잡고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저도 좀 전에 연락받고 온 거라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라요. 형이 실려 올 때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문자를 본 허영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사모님, 무슨 일이라도 난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특종을 잡은 것마냥 달려드는 기자들에 송씨 일가 사람들도 다 같이 허영지를 주목했다.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 그를 보며 송기명이 물었다.“여보, 왜 그래요?”아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자 조급해 난 송기명이 다시 한번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요?”“엄마, 무슨 일 있어요?”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긴장한 채로 물어왔지만 허영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송문수는 아직 켜져 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는데 그 역시 문자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송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핸드폰으로 뭘 봤길래 사모님이 저러시는 겁니까?”기자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그는 바로 허영지의 핸드폰을 들고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대표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무슨 일인지 한 말씀 해주세요!”하지만 그런 무시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들이 송문수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송문수의 표정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아챈 하지수도 입술을 말아 물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복도로 나오자 송문수는 이미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가 거듭될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송문수의 표정이 저 정도로 굳어있다는 건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본 적 없던 표정이라 하지수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음주운전으로 잡혀갈 때도 침착하기만 하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지 하지수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 전화를 끊은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지수에게로 다가갔다.밖으로 나온 허영지와 송기명도 그저 장난 전화이길 바라며 송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
“오해 아닙니다, 전에는 저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변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송 회장님의 입원 때문입니까?”“제 우상이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도 하나의 이유죠. 제 눈에 아버지는 늘 이 집안을 지키는 영웅이셨고 절대 늙지도 않을 것 같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시니까 그때 이 집안을 책임질 사람은 저뿐이더라고요.”이젠 다 커서 자신의 고초도 이해해주는 어엿한 아들을 보며 송기명은 아주 감동스러워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제 아내인 하지수 씨입니다.”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모든 카메라도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갑작스러운 이목에 놀랄 새도 없이 송문수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회사를 지키기 위해 같이 밤을 새우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격 안 좋은 저를 보듬어주고 격려해주면서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한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를 언급하며 고맙다고 하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두 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진짭니까?”“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저희 사이좋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어서 아내한테 상처 주는 일도 많이 해서 사이가 위태로웠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지금 혹시 사모님한테 고백하시는 겁니까?”기자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송문수를 보며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파파라치한테 찍힐 때도 이미지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까지 휘두르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쑥스러움이 많아졌나 싶어 다들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지수는 그의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면 그간의 이상하던 태도와 관계를 피했던 이유도 더 이상은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송승우 씨는 왜 오지 않으신 겁니까, 오늘은 불참하시나요?”“두 분은
화장을 마치고 머메이드 드레스로 갈아입은 하지수는 불빛 아래에서 더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며 아무래도 자신이 허영지를 가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송문수를 불러보았다.“문수 씨, 이게 진짜 괜찮다고?”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지만 송문수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 마, 이거 네 거 맞다니까.”“진짜 어머님이 준비하신 거 맞지?”“너 나 안 믿을 거야?”송문수가 목소리를 깔며 말하자 하지수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입을게.”정말 허영지의 뜻이라면 하지수도 걱정할 게 없었다.사실 평소 하지수에게 검소하다는 말을 자주 하던 허영지였기에 그녀가 이런 드레스를 준비했다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이번 기회에 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인가보다 하며 하지수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가자 이제.”“엄마가 인터뷰 있다고 빨리 오래. 사진도 찍어야 한대.”“그래.”차에 탄 뒤에도 송문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했다.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하지수가 그를 부르자 송문수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문수 씨.”“어?”“더워?”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차 안에서도 땀을 흘리는 게 이상해서 한 질문인데 송문수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아니.”“땀 나는데?”“그래?”제 이마에 묻은 땀을 훔치던 송문수가 또 말을 바꾸자 하지수는 그를 수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좀 더운 것 같기도 해.”“오늘 왜 이래? 당신 좀 이상한 것 같아.”“아무것도 아니야.”송문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하지수가 아니었다.“어디 아파?”“그럴 리가, 나 소처럼 건강한 남자야, 병도 잘 안 걸린다고.”“...”누가 봐도 오바하는 것 같았지만 사정이 있겠지 싶어 하지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체들에서는 더 빨리 와 있었기에 기자들과 송기명, 허영지 모두 그들 부
아침 일찍 디자이너를 불러 단장을 마친 송기명과 허영지는 나이 들면 가만히 잊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른 시간부터 호텔로 향했다.그리고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차피 송문수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니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 있었다.좀 전에 일어나서 스타일링을 받고 있던 하지수는 시부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네, 저희 일어났어요. 문수 씨는 씻고 있고 저는 화장하고 있어요.”“네, 먼저가 계시면 저희도 금방 갈게요. 8시 전엔 도착할 거에요.”통화를 마친 하지수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다.본인이 주인공도 아닌데 화장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았다.게다가 원래는 송문수와 커플룩으로 어머니께서 맞춰주신 복고풍 드레스를 입기로 했으니 어찌저찌 의상을 수정하다 보니 오늘 입어야 할 건 민소매인 머메이드 드레스가 되어버렸다.예쁘긴 예쁘지만 꾸민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고민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불렀다.“문수 씨, 나 진짜 이거 입어? 이거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도 아닌데...”오늘 아침은 하지수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 송문수는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있었다.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하지수는 제 옆에 없는 송문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었다.출근할 때도 알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화를 내며 일어내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가 싶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라 신경을 쓰는 건가 싶어 하지수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었다.“뭐라고?”그런데 제가 한참 불러서야 모습을 드러낸 송문수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자 하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오늘 뭐 발언이라도 할 거야?”“아니, 왜?”“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해?”“내, 내가? 아, 아니야! 그럴 리가!”“아직 잠이 덜 깨서 그래!”송문수는 말까지 더듬으며 손사래를 쳤고 하지수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