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과 계지원은 그렇게 방에서 하루 종일 붙어있다가 아침에 울리는 알람 때문에 깨었다. 밖에서 그들 관련하여 어떤 뉴스가 나오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건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농구팀'을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전에 예능 녹화에 설정해 둔 알람을 예수진이 까먹고 끄지 않아 울린 것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이 쑤신 그녀는 눈을 감고 핸드폰을 더듬거렸다. 핸드폰을 찾으려 침대를 더듬거렸다. 알람 소리에 깬 계지원이 몸을 일으켜려 했을 때 예수진이 이미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녀가 눈을 지그시 뜨자 여러 개 부재중 전화가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가장 최근의 부재중 전화는 소이연이 걸어온 것이다. 소이연은 일반적으로 이른 아침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녀의 늦잠을 자는 습관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지원도 그녀의 반응을 알아채고 잠긴 목소리로 긴장하여 물었다. "왜 그래요?" "이연이 나한테 몇 번이나 전화했어요." 예수진은 말을 하면서 소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계지원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소이연은 그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예수진이 전화를 받지 않자 그에게 건 것이다. 그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연이 전화를 안 받아요." 예수진이 계지원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죠? 최근 도쿄에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나는 몰라요." "이연 씨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계지원이 얼굴은 더욱 진지해졌다. "어쩌면 육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몰라요." 계지원을 답과 함께 육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가희에게서도 수십 개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 왔다. 예수진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또 왠지 모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삼촌,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예
예수진은 계지원을 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 피곤해서 눈을 뜰 수도 없을 지경이고 몸도 많이 힘들었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계지원은 예수진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 휴식해도 돼요."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예수진은 강경하게 대답했다. "육씨 가문의 일이에요. 당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계지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 마요. 아무리 큰일이 생겨도 다시 돌아올게요.""당신이 육은숙에게 협박받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나를 혼자 둘까 봐 걱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는데 그럴 리가 없죠." 예수진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아내로서 당신의 슬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계집원은 머뭇거렸다. 그는 예수진이 육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어떠한 억울함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우리는 부부에요. 당신의 일은 곧 나의 일이기도 해요. 육씨 사람들은 비록 나랑 사이가 좋진 않지만 당신이랑은 핏줄이기에 당신을 위해서 받아들일 수 있어요."계지원은 놀랍다는 듯 예수진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육씨 가문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량이 이렇게 깊다니... "나도 보살은 아니예요. 나는 그저..."예수진은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불행보다 당신이 나에게 주는 행복이 더 커요. 그래서 그들이 뭘 하든 나는 상관없어요."예수진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따뜻함을 담았다. 그도 예수진이 이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잘 알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감동했다. "가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예수진이 계지원을 재촉했다. 사실 계지원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둘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이미 옷을 빠르게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세수를 할 시간도 없이 예수진은 계지원과 함께 방을 나갔다. 문밖에는 가희가 그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육가희는 계지원을 본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물었다. "삼촌, 왜 이렇게 잔인해요? 지금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가니 만족스러운 거예요?"예수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육가희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린 것이다. 하지만 육은숙이 지금 수술대에서 있는 모습을 생각하여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계지원은 생각과 다르게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간 건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만약 너랑 네 엄마가 수진 씨에게 악의적으로 굴지 않았다면 오늘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육가희는 반박하려고 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참 후에서야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삼촌은 잘 알고 있었잖아요. 엄마는 이런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걸." "수진 씨는 마음이 단단해서 너랑 네 엄마가 그렇게 괴롭힌 거니? 육가희, 네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잖아. 지금 일어난 모든 일들은 우리의 정당방위라는걸." 육가희는 계지원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반박할 자격도 없었기에 협박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죽어야 삼촌은 마음이 편안할 건가요?""내가 한 모든 것에 대해 나는 후회가 없어."계지원은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육가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진심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는 육은숙에게 철저한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온 건 절대로 그의 행동을 후회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인도주의로 가족으로서 할 바를 다 하기 위해서지, 결코 참회해서가 아니었다. 육가희는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지원도 더 이상 아무런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예수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앉아서 기다려요." "네."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가희는 그렇게 옆에서 예수진과 계지원의 달달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원망과 질투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소이연은 예수진에게 걸어갔다. 예수진은 소이연을 보자 감동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육은숙은 아직 구급 중이었기에 기분을 크게 나타내지 않았다. 소이연은 육민의 손을 잡고 예수진의 곁에 앉았다. 심문헌도 계지원의 옆에 앉았다. 그들만 서로에게 인사하자 육가희는 옆에서 외로웠다. 그녀는 혼자 그들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지금 그녀가 제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데 모든 사람들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속엔 질투로 일렁거렸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예수진과 소이연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둘은 아주 친한 사이 같았다. 소이연은 육씨 가문에서 몇 년 동안 있었다. 육현경이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소이연은 그들에게 아직 가족이었다.소이연은 그들에게 아직 육현경의 아내였다. 그리고 육민의 친모였기에 그들은 소이연을 가족으로 대했다. 그러나 지금 소이연은 계지원과 예수진과 함께 했다. 소이연은 이미 육은숙과 예수진 사이를 알았던 것인가? 그래서 소이연은 육씨 가문을 적대시하는 것인가. 왜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배은망덕한 것인가. 계지원도, 소이연도 육가희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응급실이 문이 활짝 열리자 육가희가 맨 처음으로 달려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의사는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수술실에서 나와 말했다. "환자의 출혈양이 너무 많았지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아직 생명 위험은 없지만 되도록이면 병원에서 며칠 있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가 말을 마치자 모든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가 스스로 손목을 그으며 자살 시도한 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저는 환자의 몸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이 기간 동안 가족들이 환자를 많이 보살피고 많이 보살펴야 합니다. 되도록이면 환자를 자극하지 마세요." 의사는 또 덧붙였다. "아니면 다음엔 이렇게 운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
육은숙은 믿겨지지 않았다. 계지원과 예수진이 이렇게 냉정하게 떠나가다니.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계지원을 보며 육은숙이 힘껏 그를 향해 소리쳤다. 계지원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예수진과 함께 훌쩍 떠나버렸다. "내가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는 거야!" 육은숙이 큰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 질렀다. 계지원은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육가희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계지원과 예수진의 앞으로 달려가 그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소이연은 이를 알아채고 먼저 육가희를 말렸다. 육가희는 소이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만약 지금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소이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육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속으로 결코 굴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육은숙의 이를 악문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갈 필요 없어. 나는 저놈들의 동정 따윈 필요하지 않아." 육가희는 육은숙이 말을 듣고 그녀에게 다시 돌아왔다. "엄마 몸은 어때, 괜찮아?" "환자 먼저 병실로 들어 들여보내죠." 간호사가 옆에서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육은숙을 밀며 VIP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서 육가희는 계속 육은숙의 곁을 지켰다. 그녀와 함께 얘기하면서 눈시울은 항상 붉었다. 소이연과 심문헌 그리고 육민도 병실 안을 지켰다. "이연이는 왜 왔어?" 육은숙이 물었다. 그녀는 아직 기분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 내가 오라고 한 거야. 내가 너무 놀라서, 그래서...""당연히 와야죠."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 "아프신데 민이 데리고 와서 봐야죠." "민아, 고모 할머니 보게 이리 와봐." 육은숙이 육민을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껏 부드러워졌다. 육민은 육은숙에게 다가가 애교스러운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 "고모 할머니." "고모할머니가 너를 못 본 지도 오래됐네." 육은숙은 육민의 손을 붙잡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 참이나 지나서야 육은숙은 옆에 앉은 심문헌을 발견했다. 그녀는 미간
육은숙은 결국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민이에게 잘해주면 됐지, 뭐." "언론에서 나온 뉴스 기사 봤어요?" 소이연이 한마디 내뱉었다. 오늘 병원에 오게 된 건 육은숙이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계지원과 예수진 사이의 일을 그녀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걔 얘긴 꺼내지 마. 걔만 떠올리면 화가 나."육은숙은 얼굴이 굳어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키웠는데 배은망덕한 자식일 줄이야. 내가 걔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걸 다 까먹다니."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은 안 들어요?" 소이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육은숙은 소이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육은숙은 소이연과 예수진 그리고 계지원이 사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소이연이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지원 편을 들 생각이니?" 육은숙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니에요. 모든 사람은 자신들만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어요. 자신이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소이연은 육은숙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계지원은 고모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모도 그의 생활을 간섭할 순 없어요." "누가 간섭한다고 그러는 것이냐. 걔가 예수진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거지랑 함께한다고 해도 걔가 좋다면 나는 다 응원했을 거야. 예수진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 알면서." "예수진이 딸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진 후에 일어난 사건이에요. 계지원과 예수진 사이의 사랑은 그전에 확인된 거라고요. 계지원이 왜 당신한테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계지원이 당신에게 미안해야 하고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지원의 사랑을 말살하려는 거죠?" 육은숙이 소이연에게 소리를 질렀다. "예수진은 살인하거나 방화하거나 그 어떤 범죄 전과도 없어요. 그리고 사람 인품도 문제없어요. 그렇게 예수진을 겨냥할 필요 없어요. 마찬가지로 예수진을 겨냥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민아, 여기서 고모할머니랑 함께 있을래? 아니면 엄마랑 갈래?" 소이연이 육민의 의견을 물었다. 육민은은 육은숙을 바라본 후 한참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고모할머니, 건강하세요. 저는 엄마랑 돌아갈래요." 육은숙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갔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뿌리까지 깊숙한 오만함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타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육민은 소이연과 함께 떠났다. 소이연은 떠날 때 또다시 머뭇거렸다. 유은숙은 그녀의 그녀를 보며 뭔가를 기대하듯 눈이 반짝거렸다. 소이연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자살로 협박하는 건 너무 비겁하네요."말을 마친 후 소이연은 육은숙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떠났다. 육은숙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속셈이 다른 사람에 의해 밝혀졌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녀는 일부러 벌인 일이었다. 계지원이 후회하길 바랐다. 그녀는 대중들의 욕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또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입장에서 입장에 서게 된다면 모두 예수진을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예수진의 출생만 생각하면 역겨웠다. 평생 예수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소이연은 병원을 나왔다. "바빠요?" 그녀가 심문헌에게 물었다. "아니요." 심문헌이 대답했다. "날 내쫓는 거예요?" "아니요. 만약 바쁘지 않으면 내 친구랑 같이 밥 먹어요." "영광입니다." 심문헌은 순식간에 웃음을 지었다. 그의 행동에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인데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다니. "당신 친구 누구요?" 심문헌은 기분 좋은 듯이 물었다. "아까 만났잖아요." 심문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계지원이요?"조금 언짢아 보였다. 계지원과 육현경 사이가 매우 복잡했으니 말이다. 그도 질투하는 것이었다. "예수진이요." "수지 씨와의 사이가 좋은가 봐요." "안 되나요?" "어떻게 알게
소이연은 육민을 별장에 먼저 데려다주었다. 육민은 소이연이 떠나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거렸다. 엄마와 삼촌이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삼촌은 엄마와 육민에게 잘 대해줬다.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확립된 듯싶었다. 육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기대도 하면 안 되었다. 육민의 아빠가 먼저 엄마를 포기한 것이다. 아빠를 안쓰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차 안. 소이연이 예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아." "이연아, 벌써 병원에서 나온 거야?" 예수진은 육은숙의 앞에서 소이연이 전화를 걸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응, 그냥 민이를 데리고 병문안 간 것 뿐이야." "그래. 지금 어딨어?" "회사에 잠깐 가려고. 저녁에 같이 밥 먹자." "그래. 남친도 같이?" "응, 같이." "아까 자세히 봤는데 잘생겼던데." "그냥 그렇지 뭐." 예수진이 장난에 소이연은 조금 쑥스러웠다. "그냥 그렇다고? 너 너무 겸손하다. 그런 잘생긴 얼굴은 아마 전국 상위 10%일걸?" 예수진이 흥분한 듯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네가 눈이 높은 건 네 탓이 아니야. 예전에 누가 그렇게 잘생긴 남자랑 결혼을 하랬어?"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예수진이 말하는 남자가 누군지 잘 알았다. "내가 말실수한 거 아니지?" 예수진은 소이연이 말이 없자 급히 물었다. "아니야, 다 지나간 일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새롭게 연애를 하고 있어. 예전 일은 다 지나간 과거야."소이연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지금 네 성격이 마음에 들어. 계 감독님과 함께한 후에 다시 순진무구한 행복한 여자로 되돌아갔어." "내가 뭘 순진무구해?" 예수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그래. 너는 순진하지 않지?" 소이연이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해. 지금 지원 씨와 사이가 좋아." 예수진도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지원 씨가 그런 말 못 할
이제 송문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하지수는 본인도 원래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사무실이 워낙 커서 둘이 같이 쓴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그녀는 사무실을 옮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하지수가 OA의 서류들을 훑어보려 할 때 송문수의 비서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하지수를 보자마자 놀란 기색을 비추며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오셨어요?”“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송 대표님이랑 같이 회의 참석한 거 아니었어요?”“회의라니요?”“지금 회의 중 아니에요?”“저희 오전 회의 없어요, 오후 3시에 첫 회의에요.”“그럼 송 대표는 어디 갔어요? 거래처랑 계약하러 간 거예요 아니면 현장 나간 거예요?”어디를 가든 대동하던 비서도 없이 혼자 나선 송문수에 하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아침에 연락 오셔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저한테 오후 회의자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거 다 프린트해서 지금 대표님 책상에 올려두려고 들어오는 길이었고요.”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 비서에 하지수의 미간은 더욱더 찌푸려졌다.집안일은 다 허영지와 하지수가 책임지고 있는데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뭔지 하지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서 일 보세요.”“네.”서류를 송문수 책상 위에 올려둔 비서가 인사를 하며 나가자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곧바로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문수 씨, 지금 어디야?][나 회사에 있지, 왜 그래?]보낸 지 1초 만에 온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속이는 건가 싶었던 하지수는 오락가락했던 지난날 송문수의 태도를 떠올렸다.생리가 온 그날만 해도 하지 못해서 안달 나 하던 사람이 생리가 끝났다는 데도 저를 피하는 게 안 그래도 이상했는데 하지수는 설마 송문수에게 이제 제가 필
아까는 앉아서도 잘만 자더니 제대로 누우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 송문수는 하지수를 기다리며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은 인영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거실 쪽을 내다보았다.그리고는 하지수가 아직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사실 송문수는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수가 그녀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확인한 것이었다.그 뒤로도 몇 번 더 훔쳐보던 송문수는 마침내 티비를 끄는 하지수에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자는 척을 했다.한편 드디어 티비를 끈 하지수는 먼저 본인 방으로 가 세수를 마친 뒤에야 송문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자고 있는 송문수를 발견한 그녀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천천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곁에 나란히 누웠다.오랜만에 푹 자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싶었지만 하지수는 본능적으로 자꾸 송문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는 척하던 송문수는 온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하지수랑만 있으면 몸이 멋대로 긴장하는 거라 그건 송문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런데 곧이어 제 몸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하지수의 온기가 느껴지자 송문수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싶었다.하지수가 있으니 평범하던 세상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다음날부터는 송문수도 일 때문에 바빴고 하지수도 아버님의 생일 파티 준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사실 둘 중에 더 바쁜 건 송문수였다.그래서 하지수도 평소에는 그 얼굴도 자주 볼 수 없었다.항상 밤늦게 귀가하는 송문수는 터덜터덜 들어와 잠든 하지수를 품에 안고 자다가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해버렸다.밤에는 분명 온기가 느껴졌는데 일어날 때는 늘 비어있는 옆자리에 하지수는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면서 송문수가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