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육민을 별장에 먼저 데려다주었다. 육민은 소이연이 떠나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거렸다. 엄마와 삼촌이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삼촌은 엄마와 육민에게 잘 대해줬다.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확립된 듯싶었다. 육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기대도 하면 안 되었다. 육민의 아빠가 먼저 엄마를 포기한 것이다. 아빠를 안쓰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차 안. 소이연이 예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아." "이연아, 벌써 병원에서 나온 거야?" 예수진은 육은숙의 앞에서 소이연이 전화를 걸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응, 그냥 민이를 데리고 병문안 간 것 뿐이야." "그래. 지금 어딨어?" "회사에 잠깐 가려고. 저녁에 같이 밥 먹자." "그래. 남친도 같이?" "응, 같이." "아까 자세히 봤는데 잘생겼던데." "그냥 그렇지 뭐." 예수진이 장난에 소이연은 조금 쑥스러웠다. "그냥 그렇다고? 너 너무 겸손하다. 그런 잘생긴 얼굴은 아마 전국 상위 10%일걸?" 예수진이 흥분한 듯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네가 눈이 높은 건 네 탓이 아니야. 예전에 누가 그렇게 잘생긴 남자랑 결혼을 하랬어?"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예수진이 말하는 남자가 누군지 잘 알았다. "내가 말실수한 거 아니지?" 예수진은 소이연이 말이 없자 급히 물었다. "아니야, 다 지나간 일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새롭게 연애를 하고 있어. 예전 일은 다 지나간 과거야."소이연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지금 네 성격이 마음에 들어. 계 감독님과 함께한 후에 다시 순진무구한 행복한 여자로 되돌아갔어." "내가 뭘 순진무구해?" 예수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그래. 너는 순진하지 않지?" 소이연이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해. 지금 지원 씨와 사이가 좋아." 예수진도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지원 씨가 그런 말 못 할
계지원은 깜짝 놀라 귀까지 빨개졌다. 하연은 엄마의 행동에 원래는 웃고 있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져 불쾌감을 나타났다. "엄마 갑자기 왜 그래? 어떻게 내가 아빠랑 놀고 있을 때 아빠한테 뽀뽀를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예수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네 아빠는 내 남편이야. 내가 뽀뽀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내가 싫어." 하연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아빠는 내 아빠야. 아빠는 내 거야." "네가 틀렸어." 예수진이이 진지하게 하연에게 알려졌다. "네 아빠는 내 거야. 지금은 잠시 너한테 빌려주는 거야. 하지만 네 아빠는 결국 내 거야." "흑흑흑... 아빠는 내 거야." 하연은 예수진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현실을 받아 받아들여야 해. 너도 앞으로 네 남편을 찾아야 해." 예수진은 하연의 울음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계지원은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예수진은 세 살짜리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하연아, 울지마. 나는 영원히 네 아빠야." 계지지원이 위로를 건넸다. "흥." "아빠가 내꺼라고 했어." "너를 속이는 거야. 네가 크면 너는 나가야 해." "흑흑흑..." 하연이 또다시 예수진에 의해 울음을 터뜨렸다. 예수진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누가 하연더러 매일 그녀의 남편을 점령하라고 했던가. "아빠." 하연은 계지원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예수진은 기분 좋은 듯 홀연이 그 자리를 떠났다. 계지원은 하연을 위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분이 너무 달콤했다. 예수진이 그를 남편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 예수진은 계지원과 함께 소이이연과 약속한 장소로 왔다. 하지수는 함께했지만 송문수는 오지 않았다. 소이연이 예수진에게 눈치를 보냈다. "송문수는 왜 안 왔어?" 세심한 성격이 아닌 예수진은 대놓고 말했다. "지원 씨가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 시간 없대. 왜 없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어."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하지수를 보았다. "송문수랑 아직
심문헌은 연예계 종사자들이 항상 비밀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진은 이와 달리 성격이 쾌활해 보였다.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맘에 드는 건 중요하지 않죠. 소이연만 좋으면 됐어요.""나는 좋아."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 "쳇, 사랑꾼이구만." 예수진의 말에 소이연은 쑥스러워했다. 신문헌도 조금 쑥스러웠다. 둘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오늘 술 좀 마실래?" 예수진이 먼저 제안했다. "저는 마실 수 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술 좀 하시나 봐요?" "네." 심문헌도 더 이상 내숭을 떨지 않았다. 소이연도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한번 당해봐야 알게 될 것이다. 술자리는 예수진 덕분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예수진은 기분이 좋았는지 많이 마셨다. 계지원은 술을 잘하지 못하기에 옆에서 술만 따랐다.그리고 간혹 작게 예수진에게 적게 마시라고 얘기를 할 뿐이었다. 예수진은 자신이 술을 잘 먹는다며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하지만 역시 계지원의 입을 닫게 한 것은 예수진의 한마디였다. "당신만 곁에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이 한마디는 계지원에게 크나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술자리는 이미 3차까지 지속되었다. 소이연이 혼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술자리에서 예수진은 심문헌과 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수도 그들과 함께했다. 소이연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계지원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이연은 그런 그를 보며 모든 걸 안다는 듯이 함께 밖의 베란다로 나갔다. 장안시의 아름다운 야경이 그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이연이 서울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오랜만에 마주한 풍경에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졌다. "물 좀 마셔요."계지원이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계지원은 참 자상했다. 그녀를 위해 먼저 물을 준비하다니.하지만 그녀는 사실 많이 마시지 않았다. 예수진과 심문헌은 들이붓듯 술을 마셨다.하지수는 술에
계지원은 소이연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기적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소이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육현경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그녀가 끼어들 자격이 없었다. "축하해요." 소이연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계지원은 잠깐 멍해졌다가 웃음을 지었다. 소이연의 축하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도 알았다. "수진과의 사이는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어요. 항상 둘이 엇갈린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역시 하나님은 공평하네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함께 있게 되네요."소이연은 하늘에서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믿겨지지 않아요." 계지원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렇게 일어났어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소이연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고마워요."계지원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 지어진 잔잔한 미소는 그가 지금 얼만큼 행복한지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감춰지지 않았다. "늦었어요. 우리 룸으로 돌아가요. 더 늦었다간 수진이와 문헌 씨가 테이블에서 쓰러질지도 몰라요."소이연이 농담했다. "그래요."계지원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둘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일부 사적인 감정은 선을 넘지 않았다. 둘이 다시 돌아가자 예수진은 이미 흠뻑 취했다. 그때 예수진은 의자에서 올라서서 술을 건배하기 시작했다. 심문헌은 남자로서 그녀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술을 마시는 예수진을 바라보며 자신도 건배하기 시작했다. 심문헌은 더 이상 마시기 힘들었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모든 술을 꿀꺽꿀꺽 삼켰다. 소이연이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마시지 마요." "이연아, 지금 사랑 때문에 친구를 버리는 거냐?"예수진이 불쾌한 듯 말했다. "어쩌다가 다 같이 모였어. 너는 또 그렇게 바쁜 사람이고 다음번에 다시 모이는게 언제일지도 몰라.
하지만 계지원의 입에서 자신을 사랑한단 말을 들으니 너무 기뻤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원이 쑥스러워할까 봐 꾹 참았다. "지원 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 게 아니었어. 이렇게 빨리 나를 집에 보내는 건 농구팀 팀원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풉." 소이연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수도 옆에서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그녀는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는 속도가 느릴 뿐 마신 양은 꽤 되었다.계지원은 귀까지 빨개져 예수진을 안고 빨리 자리를 떴다. 이렇게 오랫동안 계지원을 알았지만 그가 이렇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떠난 후 하지수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자." "기다려." 소이연이 하지수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 너랑 마셔줄게." "뭐?" 하지수가 깜짝 놀랐다. 예수진에게 많이 마신다고 핀잔을 주지 않았던가. "수진은 술만 들어가면 정신을 못 차리니까. 빨리 계지원과 농구팀 만들러 가야지." 소이연의 설명에 하지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네 남자 친구는?" 신문헌은 이미 테이블에 엎어져 있었다. 예수진이 가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까지도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가자마자 그는 온몸에 힘이 풀렸다. "좀 자게 냅두자." "그래." 하지수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둘은 그렇게 마시기 시작했다. "왜 서울에 계속 있는 거야?" 하지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사적인 일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소이연이 대답했다. "너랑 수진이에게 감추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냥 너희가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하는 거야." "위험해?" 하지수가 긴장한 듯 물었다. "조금." 그녀의 대답에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내가 잘 보호하니까." "그래." 하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줄 수 없을 때는 믿음밖에 줄 수 없다.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그리고 송문수에게 너의 마음을 고백해." 소이연이 진심으로 걱정하며 제안했다. "그래." 하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마실래?" 소이연이 물었다. "아니." 한지수가 잔잔히 웃어 보였다. 사실 그녀도 많이 마셨다. 더 마시다간 취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술을 마시고 지고 나면 괜찮은 예수진과 달리 한참이나 괴로웠다. 그리고 심문헌도 취했기에 빨리 돌아가는 게 나았다. "그럼 우리 가자." 소이연이 심문헌을 부축했다. "내가 도와줄까?" "괜찮아." "일어나 봐요." 심문헌이 소이연의 말에 급히 눈을 뜨며 말했다. "나는 취하지 않았어요. 계속 마셔도 돼요." "마시긴 뭘 마셔요. 집에 돌아가요." "취하지 않았다니깐요. 더 마실 수 있어요. "예수진이 취했어요."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 심문헌은 그제야 예수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호기롭게 웃었다. "역시 내 주량이 더 좋나봐요." ... 바보. 심문헌은 비틀거리며 소이연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을 떠났다. "내가 데려다줄까?" 소이연이 하지수에게 물었다. "괜찮아. 나는 취하지도 않았어." "도착하면 문자 보내." "그래." 소이연이 심문헌과 함께 차에 올랐다. 모두 술에 술에 취했고 늦은 시간이었기에 소이연은 기사를 먼저 보냈다. 그리고 식당 문 앞의 택시에 올라타 별장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신문헌을 호텔에 보내기로 하였지만 그가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보고 소이연은 그와 함께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육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녀도 몰랐다. 오늘 밤 육민도 함께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지만 육민은 오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육민은 신문헌에게 역시 ... 그래도 육현경이 친아빠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육민이 점차 받아들이길 원했다. 소이연은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육민에게 문자를 보내 그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님
하지만 임아영이 소이연을 납치했다면 왜 그녀를 왜 죽이지 않았단 말인가. 임아영의 성격으로 보아 그녀에게 살아갈 기회 쫓아 주지 않을 것일 뻔했다. 아니면 임아영은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겠다는 것인가."이연 씨 무서워하지 말아요." 심문헌이 그녀를 불렀다. "죽어도 우리 함께 죽어요." ...이게 무슨 위로인가.소이연은 다시 몸을 꿈틀거렸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문헌 씨, 몸을 움직이려 했는데 안 돼요." 심문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움직일 수 없어요." "우리가 납치당한 건가요? 임아영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소이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도요, 저도 임아영이 생각났어요. 그 사람이 당신과 육현경 사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이런 방법을 쓴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미 죽었어야 해요. 그래서 나도 의심스러워요. 그래서 나도 임아영이 나를 죽이기 전에 고통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요." "그건 너무 심리 변태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우리 빨리 도망갈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요." 심문헌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도망가요?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제기랄." 심문헌이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미 납치당한 거라면 밖에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소리를 내서 그 사람이 들어오게 만들어야 해요." 소이연이 말했다. "그래요." 심문헌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 "여기요, 여기요. 여기 사람이 죽어 가고 있어요!" ... 그는 도대체 어떻게 정치계에 입문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소리는 효과가 꽤 좋았다. 대문에서 자그마한 불빛과 함께 덩치 큰 남자가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결코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남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요." "너 미쳤어?" 남자가 욕설을 퍼부었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조금 이상하네요."심문헌도 동의했다. "임아영이라는 여자 좋은 사람 같지 않아 보여요. 그 사람 짓이라면 우리를 진작이 죽였을 거예요." "그럼 또 누가 있는 거죠?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과는 원한이 없어요." 소이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소씨 가문 사람일 가능성이 없어요?" 신문헌이 물음에 소이연은 멍해졌다. 오랜 기간 소씨 가문과 연락이 없었다. 그녀에게 소씨 가문은 악질이였기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들은 항상 그녀의 눈치를 보며 행동을 해야 했다. 아니면 지금 그녀는 그들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었다. 잠시 후 소이연은 꽤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요. 그들은 그럴 동기가 없어요.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가 잘 알아요. 내가 없다면 그들은 장안에서 먹고 살 수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돈줄인 나를 해하려고 하지 못할 거에요." "그래요." 심문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조건 소이연을 믿었다. "그럼 또 누가 있죠? 아니면 나의 원수 일가요?" 소이연도 지금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누구이던 간에 우리를 납치한 목적이 뭘까요?"소이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않았잖아요. 잠깐만요..." 심문헌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를 평생 가두는 게 목적일 리는 없잖아요.""그렇죠."누군가에 의해 의도를 알 수 없는 납치를 당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납치를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기다림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 서울. 늦은 야밤. 컴컴한 골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납치했습니다."한 남성이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그리고 또 다른 남성의 대답이 들려왔다. "내일 실시하는 겁니까?"남성이 물었다. "계획대로라면." 또 다른 남성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