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은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비록 외모는 출중하지 않지만 악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출중한 능력을 가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나쁜 남자 취급하니 어이가 없었다.소창열의 병을 치료해 줬을 때도 사람들은 그가 노인의 손녀를 탐내서 허세를 부린다고 말했다.좋은 마음에 한지음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그를 굶주린 변태 취급을 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호의를 의심하는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라고!“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나를 구해주신 은인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조급해진 한지음이 엄마를 나무랐다.“넌 눈치도 없니? 남자들은 원래 예쁜 여자만 보면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달려드는 법이야.”“백마 탄 왕자님 같은 건 현실에 없어. 우연? 그런 게 어디 있어? 여자를 꼬시기 위해 부리는 술수에 불과해. 요즘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데? 넌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그 말씀은 제가 여자나 홀려서 사기나 치는 변태 새끼라는 말입니까?”듣다못한 이도현이 불만을 표출했다.“엄마? 말이 이상하잖아!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비행기에서 도현 씨 아니면 난 진작에 저세상 갔을 거라고!”“엄마가 도현 씨를 못 믿어도 난 믿어! 난 도현 씨한테 치료 받을 거야. 여기 있기 싫으면 엄마 혼자 돌아가!”한지음은 예의 없는 엄마의 행동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남자한테 홀려서 사리분별도 못하는 거니?”한지음의 모친은 딸이 이렇게 된데는 분명 이도현의 입김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전에는 부모님 말이라면 절대 어기는 일이 없던 착한 딸이 남자 때문에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배신감이 들었다.“엄마, 그런 말 할 거면 그냥 돌아가. 도현 씨한테 미안해서 얼굴을 못 들겠어.”한지음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쨌든 저 사람 도움은 필요 없어. 엄마가 이미 유능한 의사를 찾았다잖아. 당장 엄마랑 가
이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나가는 한지음 모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예의 바르게 인사도 나눴고 좋은 마음에 있을 곳도 마련해 주었고 무료로 딸의 병까지 고쳐준다는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걸까?하늘에 맹세코 한지음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은 적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이 죽어가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인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된 걸까?한지음 모친의 태도는 상당히 불쾌했다. 병을 꼭 치료해 주겠다고 쫓아다닌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짐승 취급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뭐 귀한 딸을 건드렸냐고? 어이가 없어서! 부자면 다야? 이렇게 사람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이도현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산을 내려온 뒤로 느낀 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첫째, 세상 사람들은 약해 빠졌다는 것. 그래서 그의 한 주먹을 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둘째, 이 세상에는 허세가 심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셋째, 착한 사람도 의심받는 세상이라는 것.넷째, 조신한 여자들보다 광녀가 더 많다는 것. 신연주 선배가 대표적인 예시였다.그리고 지금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남자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도현 씨, 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좀….”한지음은 눈시울을 붉히며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사과했다.이도현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여자 앞에 아무런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당장 나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그건 사내로서 도리가 아니었다.“괜찮아요. 어머님께서 나한테 뭔가 오해가 많으신 것 같은데 난 신경 안 써요. 지음 씨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돌아가서 쉬어요.”말을 마친 이도현은 다급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이 비서, 도현 씨 많이 화난 것 같지?”한지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사모님께서 좀 너무하셨어요.”이설희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한지음은
“뭐야 진짜 나한테 들러붙겠다는 거야? 이걸 어쩐담?”이도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도화살이 붙은 걸까? 왜 가는 곳마다 여자가 꼬이는 건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선배가 갑자기 약혼녀를 점 찍어 주지를 않나, 좋은 마음에 병을 치료해 줬더니 손녀 연락처를 건네지 않나.정말 내가 너무 잘난 탓일까?만약 그런 거라면 차라리 덜 잘난 게 낫다고 생각했다.자기도취에 빠져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도현은 약재들을 정리했다.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신조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 주동적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한지음이 원하면 치료해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기로 했다.그의 의술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일 하고 욕먹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드라마에 나오는 신의처럼 나를 믿는 자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해주지만 날 믿지 않는 자는 만금을 줘도 절대 치료해 주지 않을 것이다.‘그래. 이게 맞지!’그는 앞으로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사람을 봐도 당사자가 구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무시하고 지나쳐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독한 결심을 한 뒤, 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이도현이 한창 단꿈을 꾸고 있는데 바깥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음아, 빨리 오빠한테 인사해. 네 사촌오빠 지금 영강국에서 귀국했어. 그곳의 최첨단 의학기술을 습득하고 교수 과정까지 클리어한 대단한 분이야. 게다가 전문적으로 심장에 관해 연구했으니 네 병을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닐 거야.”목소리를 들어보니 한지음의 모친이었다. 영강국에서 귀국한 조카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이도현은 그제야 한지음 모친이 어제 왜 자신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단한 조카가 있다 그거지?’그는 나가기도 귀찮아서 다시 눈을 감았다.사촌오빠가 동생을 치료한다는데 간섭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냥 모른 척하자.’“
“엄마, 내가 도현 씨한테 치료받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왜 굳이 오빠까지 불러와서 상황 이상하게 만들어?”한지음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영호는 귀국하자마자 너 아프다는 얘기 듣고 바로 달려왔구만. 너한테 서프라이즈 해준다고 나한테 미리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안 한 거야. 오빠한테 감사는 못 할망정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한지음 모친은 이도현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너무 민폐를 끼쳤네.”한지음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영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가족끼리 감사는 무슨. 내가 널 치료할 날이 다 오다니. 민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오히려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는걸.”‘더 이상 못 참아!’방에 있던 이도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세 가득한 이영호의 목소리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저게 다 무슨 말이야? 말을 왜 저렇게 느끼하게 하지? 한지음한테 다른 마음이라도 있나?’‘아니! 고작 여자나 꼬시려고 의술을 배운다니! 이건 의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물론 이도현 역시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의술을 연마한 건 맞지만 이거랑은 다른 얘기였다. 현생을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대놓고 난 여자 꼬시려고 의술을 배웠다고 얘기하는 녀석은 두고 볼 수 없었다.‘역시 스승님 말이 맞았어. 요즘 시대에는 사촌도 믿을 게 못 돼.’“오빠의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난 이미….”한지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친 이경숙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만해! 젊은이들끼리 할 말이 많은 건 알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하는 걸로 하고 영호 너는 빨리 지음이 상태부터 확인해 봐.”“네, 고모. 지금 진맥을 시작할게요.”이영호가 기대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지음아, 손 내밀어 봐. 내가 한번 봐볼게. 걱정하지 마. 네 증상에 대해서 고모한테 이미 들었어.
“지음아, 걱정 마.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자.”“참, 난 한의학과 서의학을 결합한 방식을 쓸 거야. 치료 진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단 침술 치료를 먼저하고 탕약과 항생제를 동시에 복용하게 될 거야.”이영호는 당장이라도 한지음의 병을 완치할 것처럼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이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에 이렇게 호언장담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도현 씨….”이도현을 본 한지음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이 선생, 우리 애가 치료를 해야 해서 거실을 좀 빌리고 싶은데 괜찮죠?”이경숙이 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당연히 괜찮죠. 편하게 치료하세요. 안 그래도 이영호 선생의 의술이 궁금해서 내려온 참이었습니다.”이도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 씨? 고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도현 씨도 대단한 의사라고 하시더라고요.”이영호가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저 표정과 입꼬리를 보라. 딱 봐도 속이 음침한 인간이었다. 비록 웃고는 있지만 눈빛에는 멸시와 경멸이 가득했다.“반갑습니다. 아까 방에서 잠깐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침술로 한지음 씨의 병증을 치료하신다고요? 그 대단한 기술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이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설마 몰래 기술을 터득하려는 건 아니죠? 농담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침술은 그 깊이가 한없이 깊은 학문이지요. 한번 본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이영호는 장난인 것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당연하죠. 침술은 심오한 학문인 걸 인정합니다. 단기간에 배워낼 수 있는 학문이 아니지요. 침술을 시전할 때 자칫 실수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혈자리를 잘못 건드리면 복구할 수 없는 비극을 빚기도 하지요.”이도현도 싸늘한 말투로 응대했다.“그럼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세요.”말을 마친 이영호는 뒤돌아서 한지음에게 말했다.“지음아,
이도현의 거친 숨소리를 들은 이영호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이도현이 자신의 신묘한 침술에 충격을 받았다고 확신했다.“이도현 씨도 이 침술에 대해 알고 있다니, 좀 뜻밖이네요.”이영호가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들어본 적 있기는 합니다만 정말 구명 침술을 한지음 씨에게 시전하실 겁니까?”이도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그건 이영호 씨가 가장 잘 알 텐데요. 의사로서 본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입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있으니까 시전하는 거지요.”이영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영호야, 신경 쓰지 말고 시작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의원 주제에 왜 참견이야? 저 사람 말은 그냥 무시해.”이경숙이 가소롭다는 듯이 이도현을 흘겨보며 말했다.태허산 도사의 의술을 전수 받은 제자가 시골 의원 취급을 받다니.사부가 들었으면 기함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사람을 저렇게 무시하는 건지.이도현은 더 이상 신경 끄기로 하고 입을 다물었다.아무 이유도 없이 무시당하는 느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말이 없자 이영호는 자랑스럽게 은침을 꺼내 현란한 손동작으로 주의를 분산시킨 뒤, 침을 하나씩 한지음의 혈자리에 꽂기 시작했다.이도현은 혈자리 위치는 정확하나 힘조절과 각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물론 그걸 입 밖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30분 정도 지나서 이영호는 또 쓸데없이 현란한 손동작을 취한 뒤, 천천히 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모든 일을 마친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을 힐끗 째려보고는 말했다.“지음아, 이제 일어나 봐. 좀 어때? 몸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아?”“지음아, 일어나서 걸어봐. 훨씬 편해졌지?”이경숙도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재촉했다.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엄마라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막무가내이고 이기적인 엄마도 엄마였다.한지음은 몇 걸음 걸어보고 인상을
모친 이경숙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딸을 재촉했다. 한지음에게 조금 엄격하게 굴기는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엄마, 그런 말하지 마. 내 병이 나을 수 있었던데는 도현 씨 도움도 컸어. 물론 완전히 치료해 준 오빠도 고마워.”한지음은 뭔가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았다.“지음 씨,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다른 뜻은 없어요. 지음 씨 병은 완전히 치유된 게 아닙니다. 지금 느끼는 건 가상일 뿐이에요.”“게다가 아까 침술을 시전할 때 몇 가지 실수를 해서 심혈관 괴사 속도가 가속화 되었어요. 이번에 발작하면 목숨이 위험해집니다.”이도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결과는 이영호가 구명침술을 시전한다고 할 때 예상했던 결과였다. 구명침술은 명계의 침술이라고도 불린다. 자칫 잘못하면 산 사람을 저세상으로 데려가는 침술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한지음의 심혈관이 괴사하는 병은 사악한 기운이 생기를 집어삼키며 순환 장애가 발생하여 생기는 병변이었다. 이영호가 시전한 구명침술은 사악한 기운에 힘을 불어넣어 병증을 가속하는 결과를 낳았다.한지음이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낀 건 심리작용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넘치는 현상과 비슷했다. 염라대왕은 이런 면에서 꽤 합리적이었다. 죽기 전에 마무리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편하게 오라는 의미가 아닐까.“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우리 지음이 저주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악랄한 말을 할 수 있어?”이경숙이 분노한 목소리로 이도현을 비난했다.“이도현 씨, 내가 질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건 아니죠.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저주합니까?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나한테 화풀이하세요. 지음이가 뭘 잘못했다고!”이영호의 가식적인 미소를 보자 이도현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열한 인간이 아닙니다. 좋은 마음에 말씀드린 거지만 안 믿으면 나도 어쩔 수 없죠.”이도현이 쓴웃음을
“악! 가슴이 너무 아파… 엄마, 나 죽을 것 같아….”한지음은 가슴을 붙잡고 애달픈 비명을 토해냈다.그녀의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공포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무시무시했다.“지음아, 어떻게 된 거야? 엄마 놀라게 하지마, 지음아….”이경숙은 다급히 한지음을 품에 안으며 애처롭게 흐느꼈다.“엄마, 나 너무 아파.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아.”한지음의 얼굴에는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피는 끊임없이 그녀의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야? 영호야, 빨리 어떻게 좀 해봐. 아까는 다 나았다고 했잖아! 지음이 왜 이러는 거야?”이경숙은 딸을 안고 절규하듯 이영호를 찾았다.이영호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지음을 바라보며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끝장이야. 내가… 실패하다니!”사실 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침술을 시전하기 전부터 이런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구명침술이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이도현이 말한 것처럼 구명침술은 기사회생의 효과가 있지만 그건 성공했을 때의 얘기고 실패한다면 처참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고모,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내 침술이 실패하다니… 구명침술은 실패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요.”이영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했다.“너도… 방법이 없단 얘기야? 이제 어떡해? 지음아, 정신 좀 차려봐. 조금만 참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엄마는 이대로 널 못 보내!”거의 기절 직전까지 간 한지음은 이영호의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졌다.“사모님, 도현 씨가 대표님을 살릴 수 있어요. 빨리 도현 씨한테 부탁해 봐요.”이설희가 다급히 말했다.“썩 안 꺼져? 과거에 마누라한테 기대어 사는 데릴사위였다며? 그런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지음이를 살려? 저 인간 때문에 강씨 가문이 망한 거 몰라? 우리 가문도 망할 일 있어?”이경숙은 이도현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냈다.“허,
그는 자신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이도현을 막으러 가면 바로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웠다. 형제간의 정이 아무리 깊어도 그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만약 황제가 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느꼈다. 자고로 황제는 냉정하고 무정하니까! “충왕! 네가 진국종을 쳐라! 천룡사의 노인들을 불러 적을 처단하게 하거라!” 공작상제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충왕은 마음속으로 크게 안도했다. 자신이 이도현을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모집하라는 것이었으니 다행이었다. 진국종을 치는 일은 그가 아주 잘하는 일이었다. 그는 큰 종망치 하나를 들고 싶었다. 아주 힘차게 내리칠 수 있는 그런 종망치 말이다. “예! 폐하! 신제,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충왕은 몸을 굽혀 인사를 한 후 급히 자리를 떠났다. 충왕이 떠난 뒤 공작상제는 다시 말했다. “소요왕! 너는 조서를 내려라! 자미각과 귀령문 사람들을 불러오고 귀령문에 전해라. 그들의 장로와 장문 전인을 죽인 자가 지금 바로 공작제국에 있다. 그들에게 복수할 사람을 보내게 하라!” “예! 폐하! 신제,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소요왕은 빠르게 자리를 떠나 외부와 정보를 주고받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에겐 비둘기 편지처럼 빠르게 정보를 전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다. 비록 현대의 전화보다는 느리지만 비둘기보다 훨씬 빠른 방식이었다. ‘둥! 둥! 둥...’ 잠시 후, 공작제국의 황궁에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종은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져 종소리가 울리면 공작제국의 수도 전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종소리는 총 아홉 번 울려 퍼졌고 그제야 끝이 났다. 공작제국의 진국종이 몇 번 울리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진국종이 세 번 울리면 황후나 태후가 사망했음을 뜻하고 여섯 번 울리면 국가가 크게 번영하거나 큰 기쁨의 일이 일어났음을 알린다. 여덟 번 울리면 황제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진국종이 아홉 번 울리면 제국이 생사
고수들이 지키지 않는 궁문과 관문들은 이도현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분 만에 이도현은 이미 두 개의 문과 한 개의 관문을 통과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지! 두 개의 문과 한 개의 관문을 합쳐서 병력이 5천 명이나 되는 데 이도현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뚫고 지나갔지!” “우리 금위군들은 도대체 뭐야! 최소한 천급 경지의 무사들이 있는데 천급 경지의 무사들이 비록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그게 몇 천 명이면 적어도 이도현을 몇 분이라도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도현의 속도에 문무백관들은 공포를 느끼며 불안해졌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너무나 두려운 마음에 떨고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도현이 금란전에 도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만약 이도현이 금란전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정말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더욱 죽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나라에서 가장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삶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그것을 놓고 싶지 않았다. “보... 보고드립니다! 이도현이 청룡관을 지나 지금 자양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도현이 지나가는 곳마다 금위군은 도망가거나 아니면 이도현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폐하! 이제 더 이상 고수들을 보내지 않으면 이도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란전까지 올 것입니다!”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급히 보고했다. 공작상제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현연진에게로 쏘아지더니 이어서 말했다. “현연왕! 이 이도현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정말 단지 세속계의 평범한 무사에 불과한가?” “폐하! 제가 아는 바로는 이도현은 실제로 세속계에서 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태허산의 제자입니다!” 현연왕이 대답했다. “뭐? 태허산의 제자?” 공작상제는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 그 태허산이냐? 곤륜옥의 비밀을 다루는 그 태허산?” “네, 맞습니다, 폐하! 바로 전설 속의 그 태
“아...” 검광 속에서 심장을 찢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다음 순간, 전왕 송천훈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원래 망포를 입고 있던 전왕은 지금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땅에 떨어지자 그의 몸에서 갑자기 오색의 검기가 터져 나오더니 검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전왕의 몸은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검기와 함께 퍼져나갔다. 그 검기들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전왕 송천훈, 원력을 다루는 강력한 고수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체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아래에서 아직도 절규하며 돌격하던 병사들은 이 순간 영혼이 탈탈 털렸다. “아... 전왕이 죽었다!” “도망쳐! 빨리 도망쳐야 해...” 하지만 그들이 완전히 반응하기도 전에 이도현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차갑게 그들을 한번 쳐다본 뒤 다음 순간 보검을 휘둘렀고 수천 명의 금위군이 전왕 송천훈의 뒤를 따랐다. 이 소식은 금란전까지 빠르게 전달되었다. “폐하, 폐하! 큰일 났습니다. 폐하! 무왕과 전왕, 그들이 이도현에 의해 죽었습니다!” 병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금란전 안을 정적에 빠뜨렸다. 모든 이들의 눈에는 충격이 휩싸였다. 이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세속계에서 온 이도현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믿을 수 없어 생각에 빠져들었다. 전왕과 무왕이 죽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전왕과 무왕은 공작제국의 모든 왕후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두 명의 왕후였다. 그런데 그들이 죽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지금 전투가 시작된 지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았다. 단 몇 분 만에 전왕과 무왕 두 명의 초강력 왕후가 죽다니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설령 고무계의 최고 강자에게 전투를 부탁해서 무왕과 전왕과 결투를 벌였다 해도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을 리는 없었다. 충격에 빠진 문무백관들은 모두 공작상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 상제의 반응을 기다렸다
무왕 송천석의 부서진 시체를 안고 있는 전왕 송천훈은 잠시 깊은 슬픔에 잠겼다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아... 천석아! 형제여, 너무 고통스럽구나!” “이도현! 이 자식! 네 목숨을 내가 거두겠다! 이 왕은 네 피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죽어라...” 전왕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두 손을 가슴 앞에 휘저은 후 손가락 열 개가 이도현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손끝에서 여덟 개의 검기가 발사되었고 각기 다른 색깔의 여덟 개의 빛이 이도현을 향해 날아가며 그 위력은 하늘과 땅의 색을 바꿀 만큼 강력했다. 이도현은 전왕의 공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경멸하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말만 화려하고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허황된 장식일 뿐이다! 오색신광도 그저 이런 수준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진정한 오행의 검을 보여주겠다! 무엇이 천적인지 보여주지!” 말이 끝나자 이도현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했다. 손에 쥔 음양검에서 검 붉은색의 빛이 오행검술의 영향을 받으며 금색,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의 다섯 가지 색으로 변했다. 이 다섯 가지 색깔은 금속, 불, 나무, 물, 흙의 오행을 의미했다. 오행검술의 궁극적인 비밀은 이 오행의 힘을 검술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도현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증폭되었고 음양검 위에서 오행의 색이 확장되면서 오행 지물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빛 속의 허상에서는 금이 울리고 푸른 물이 춤추며 굳은 땅이 흔들리고 불꽃이 타오르며 초록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오행의 현상이 이도현이 오행검술을 극한까지 끌어낼 때 그의 몸에서 나타났다. 그 순간, 이도현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기운이 움직이며 마치 오행의 기운이 그의 몸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신성한 존재처럼 몸에서 신성한 빛을 뿜어내며 그의 강력한 위엄은 이미 두려워 떨고 있던 병사들마저 극도로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왕
“저 자식을 처단하라!” 전왕이 한마디 외쳤다. 무왕은 바로 세 손가락을 펴서 세 개의 검기를 그의 손끝에서 발산했다. 세 개의 검기는 각각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었다. 세 개의 검기는 각기 다른 기운을 발산하며 동일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이도현을 향해 날아왔다. 이도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똑같은 빛을 지닌 세 개의 검기를 발산했다. 오행검술은 마치 공작제국의 오색신광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검술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발산한 빛은 전부 똑같았다. “같은 원력이야! 빛이 같다니, 이 자식도 오색신광 신공을 사용할 줄 아는 건가?” “아니! 불가능하다! 오색신광은 손가락을 사용해야만 발동할 수 있다. 절대로 검을 이용해 오색신광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색신광은 선조들이 창조한 신공으로 천 년 동안 전해져왔다. 수많은 선배들이 오색신광을 검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자식이 어떻게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 절대로 불가능하다!” 전왕 송천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도현이 사용하는 모든 검술을 신중히 살펴보았다. 그 순간, 이도현은 검을 휘둘렀다. 무왕 송천석의 오색신광을 깨뜨리며 다음 순간 무왕의 앞에 나타났다. ‘슉!’ 반응할 새도 없이 무왕 송천석은 갑자기 그의 몸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보니 그의 어깨가 이도현의 검에 관통되어 있었다. 이도현이 검을 빼자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아... 이 자식! 네가 감히...” 무왕 송천석의 비명과 함께 이도현에게 찔린 팔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나며 팔 전체에서 수많은 검기가 퍼져 나왔다. 검기들이 그의 뼈와 살을 갈라 놓으며 그의 팔은 순식간에 네 조각으로 찢어졌다. 이도현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오색신광은 그저 이 정도에 불과하다! 내 오행검술 앞에서는 쓰레기일 뿐이야!” “이 자식! 너...” 무왕 송천석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분노와 두
“오색신광! 바로 진국 신공 오색신광이다!” 병사들은 그 푸른빛을 보고 흥분하여 외쳤다. 오색신광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불사의 공법이자 신선의 공법으로 여겨졌다. 푸른 검기와 이도현의 붉은 검기가 공중에서 충돌했다. 이어 두 개의 검기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도현은 살짝 놀랐다. ‘이 공작제국의 오색신광, 정말로 독특한 점이 있군! 다른 것은 몰라도 방금 그 한 번의 검지! 그 위력은 정말 강력하다!’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나쁘지 않네! 하지만 별거 아니네! 받아라!” 이도현은 비웃으며 손쉽게 또 한 번의 검을 휘둘렀다! 오행검술의 비법이 음양검 위에서 발동되었다. 검 위의 검 붉은색 빛이 오행검술의 자극을 받아 초록색으로 변했다. 초록색의 검기는 마치 생명을 가진 듯 생동감이 넘치는 느낌을 주었다. 무왕 송천석은 크게 놀라며 또다시 검지를 날렸다. ‘퍽!’ 두 검기가 가까스로 충돌했지만 이번에는 무왕 송천석의 검기가 이도현의 초록색 검기에게 베여서 찢어지고 무왕 송천석의 앞에까지 닿았다. “뭐?” 무왕 송천석의 얼굴이 크게 변했다. 그리고 급히 몸을 피했다. ‘쾅!’ 굉음이 울리며 방금 무왕이 서 있었던 땅이 이도현의 초록색 검기에게 맞아 큰 구덩이가 생겼다. 주변의 청석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무왕은 공중에 떠서 이도현을 바라봤고 놀라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너 도대체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너는 절대 평범한 세속계에서 온 자가 아닐 것이다! 세속계에 너 같은 강자가 있을 리가 없다!” 이도현의 강력함에 무왕 송천석은 더 이상 얕보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도현과 같은 강자는 절대 평범한 세속계에서 나올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도현과 두 번 싸워본 그는 그가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얕보았고 그를 무시했지만 이제는 두 번의 공격만으로도 그의 위력을 확실히 인식한 상태였다. 전왕과 무왕은 시선을 교차했고 서로의 눈빛에서 놀라움을 보아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도현을 반드시
원래 이도현을 처단하려고 전장을 나가면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도현은 진짜 미친 짐승처럼 강력해서 전혀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전장에서 도망쳤다. 황궁에 더 강한 고수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와 이도현이 싸우는 동안 뒤에서 기회를 잡고 제3자로서 몰래 공격하는 거였다. 이기든 지든 일단 전투에 참여하기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공은 세운 셈이니까 공작상제는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좀 좋다면 몰래 공격해서 이도현의 허리를 찔러버린다면 그는 첫 공을 세운 거니까 상이 분명히 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전왕과 무왕이 등장하고 자신이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 전왕이 너무도 치사하게 무덕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아부를 해도 듣지 않았고 바로 와서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려버렸다. 그는 그 한 대에 대비할 수 없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났다. 그는 인정한다. 방금 자신이 너무 방심했었다. 전왕이 무덕을 지키지 않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손바닥이 날아올 줄은 몰랐다. 아무 준비도 할 시간 없이 그를 처단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이도현은 쓰러진 장교 이준을 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젠장, 정말 잔인하네. 내가 죽이지 않았는데 결국은 자기들끼리 죽였네!’ “이 자식!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괴로움 없이 끝낼 수 있다! 이 왕이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더는 고집부리지 말고 항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 결말은 저놈보다 더 비참할 것이다!” 전왕 송천훈이 분노하며 말했다. 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행동으로 답했다. 그는 이런 얼간이들을 상대할 때는 그들에게 상처를 입혀서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할 때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주먹으로 말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직설적인 방법이었다. 검붉은 색의 검망이 폭발적으로
그때, 이도현은 백호문에 들어섰고 공작제국의 황궁에 발을 들였다. 이곳은 오직 황제와 그의 아내, 자녀만이 입주할 수 있는 장소였다. 황제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궁전이었지만 이도현은 마치 아무런 제약도 없는 듯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섰다. 가는 길마다 그를 막으려는 금위군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도현은 그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모두 처리했다. 그가 죽음을 몰고 오며 궁전 안으로 진입할 때까지 아무도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철벽같은 경비가 존재하는 황궁이지만 마치 그는 무방비 상태인 곳에 들어온 것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갑자기 두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하늘과 땅을 흔들며 이도현에게 다가왔다. 이도현은 몸을 날려 공중으로 솟구쳤다. ‘쿵!’ 커다란 폭음이 울리며 이도현이 있던 땅과 대청석으로 포장된 도로가 터지며 큰 구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망포를 입은 두 명의 중년 남자가 이도현의 앞에 나타나서 그의 길을 막았다. 두 사람은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며 왕의 기백이 섞인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그들은 마치 제국의 왕처럼 이도현을 내려다보며 그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이 개자식! 공작제국의 황궁에 네가 감히 들어오다니!” “지금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죄해라! 그럼 네 가족까지 엮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멸하겠다!” “천제의 위엄을 범할 수 없다! 이를 건드리면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는다!” 두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 그들의 눈빛은 이도현을 개미처럼 내려다보며 그가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처럼 여겼다. “오만하구나!” “오늘 내가 온 이유는 그저 그 개황제에게 묻고 싶어서다. 왜 몇 번이나 나를 괴롭히는지! 나는 사람을 더 죽이고 싶지 않다! 너희는 빨리 꺼져!” 이도현은 두 사람을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무엄하다! 고집불통이네, 바로 처단
이도현은 보검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백호문으로 향했다.공작제국 건국 천년 만에 처음으로 한사람에 의해 백호문이 뚫려버렸다.이 오래된 성문은 수많은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던 곳이다. 더불어 온갖 풍파를 이겨낸 땅은 수많은 사람의 피로 물들여졌을 것이다.셀 수 없는 목숨이 죽어 나간 이 성문은 한 번도 누군가에 의해 뚫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때 천군만마를 막아낸 성문도 이도현이라는 사람만큼은 막아내지 못했다.백호문은 그렇게 허무하게 뚫려버렸다. 이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금위군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서는 공작제국의 황궁에 발을 들였다.금란전에서는 공작상제가 용좌에 앉아 문무백관과 함께 장교가 이도현의 머리통을 들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건 이도현의 머리통이 아닌 근위군이었다.“폐하! 큰일 났습니다. 이도현이 이미 백호문을 뚫고 들어왔습니다!”“뭐?”공작상제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근위군에게 물었다.“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공작상제는 백호문이 뚫렸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백호문이 뚫린 적은 자그마치 몇백 년 전의 일인데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었다.당시 번왕이 반란을 일으켜 군대를 거느리고 백호문을 부수고 쳐들어왔었다.그러고 나서 황궁의 네 개 문은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었다.“폐하! 이도현은 수천 명의 금위군을 죽이고 이미 백호문으로 들어왔습니다!”근위군은 다시 한번 말했다.“그놈은 몇 명을 데리고 왔느냐?”“한 명... 오직 이도현 한 명입니다!”대답하는 근위군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공작상제가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하는 근위군도 죽을 맛이었다. 이도현 한 사람도 막아내지 못했는데 몇 명이냐고 묻는 것도 꽤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이도현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데 그가 몇 명을 더 데리고 오기라도 했다면 틀림없이 송씨 황실에 줄초상이 날 것 같았다.“한 사람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