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장지민이 이 병을 치료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날 새파랗게 어린 이도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빌지도 않았을 것이다.한편 한지음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숨소리마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온몸이 경련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았다면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사람들은 조바심을 태우며 10여분 정도 기다렸다. 드디어 장지민이 경비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이영호는 다급히 마중을 나갔다.“어르신, 드디어 오셨네요. 빨리 우리 동생 좀 살려주세요.”장지민을 본 이경숙의 얼굴에도 다시 희망이 피어올랐다. 장지민은 염국에서 꽤 알아주는 명의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지음을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장지민은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다급히 한지음에게 다가갔다.잠시 후,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그녀의 상태는 현재 죽은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고명한 의술을 가진 명의라고 칭송받는 그조차도 한지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스에서 금침을 꺼내 그녀의 몸에 꽂았다.잠시 후, 한지음의 몸 곳곳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고 경련도 잦아들었다. 호흡은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아까처럼 숨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선생님, 우리 딸 이제 괜찮은 거죠?”이경숙이 다급히 물었다.“부끄럽네요. 저는 침술로 어느 정도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장지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선생님까지 그런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제발 우리 동생 살려주세요. 지음이만 살려주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이영호가 옆에서 애원했다.하지만 그의 발언은 장지민의 불쾌감만 샀다. 그는 돈을 벌려고 의술을 익힌 게 아니었다.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한지음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영호는 그가 돈을 바라고 일부러 치료를 안 한다는 뉘앙스로 말했으니 이건 그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다.“젊은 친구, 이건 돈
이경숙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장지민의 대답을 기다렸다.하지만 장지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그건 저도 모릅니다.”이경숙은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한껏 기대치를 높여놓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니? 대체 그럼 그 스승님 얘기는 왜 꺼냈는데?이경숙은 치미는 분노를 억지로 삼켰다.하지만 장지민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가 빌고 빌어서 이도현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이도현은 분명히 거절했다. 이 상황에 스승님이라고 말했지만 진짜 그분의 제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이경숙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장지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분이 어디 사시는지는 모르지만 연락번호가 있습니다. 번호를 드릴 테니 직접 통화하세요.”지난번에 이도현이 약재를 구매하러 왔다가 소창열의 병을 치료한 뒤, 소창열에게 연락번호를 남긴 적 있었다. 장지민은 염치 불구하고 소창열에게서 그의 연락처를 받았다.이경숙은 장지민이 건넨 메모지를 보물 다루듯이 두 손으로 받았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스승님 성함 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당장 연락해서 그분을 모셔오겠습니다.”이경숙은 다시 희망에 벅차올랐다. 장지민이 스승으로 인정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한지음을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다.한씨 가문의 재력으로 그분을 모셔오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하지만 이때 장지민이 다시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스승님은 이씨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설득하길 바라야죠. 두 시간 안에 그분을 모셔와야 합니다. 이 아가씨에게 허락된 시간이 단 두 시간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염라대왕 할아버지가 와도 못 살립니다.”“장 선생,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이경숙이 정색하며 따져 물었다.“이 아가씨는 심혈관 질병입니다. 사악한 침술을 시전해서 몸의 사악한 기운을 더 증폭시켰죠. 남아 있던 생기마저 모조리 침식되었단 말입니다. 비록 내가 시간을 벌어두기는 했지만 오래 버티는 건 무리예요. 시간이 지나면 신선이 와도 못 살립니다.”이경숙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
마성의 알림음을 들은 이영호는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잠시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이도현의 방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젠장, 저 자식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이영호는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그냥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장지민 선생님 추천으로 전화드렸습니다. 장 선생님의 스승님 되십니까?”이영호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장지민 선생은 나도 압니다만 누구시죠?”또 같은 목소리가 양쪽에서 들려왔다.모두의 시선이 이도현의 방으로 쏠렸다. 장지민은 격앙된 심정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의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달려가서 이도현의 방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도현의 모습이 보였다.장지민은 그를 보자마자 기쁨을 금치 못하며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스승님이 어떻게 여기 계신 겁니까?”스승님 얘기가 나오자 이영호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장지민에게 따져 물었다.“장 선생님, 저 인간을 뭐라고 불렀습니까?”이영호는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믿고 싶지 않았다.그가 무시했던 시골 의원이 장지민의 스승이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도 이건 불가능했다.“이영호, 스승님 앞에서 예를 취하지는 못할 망정!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우리 스승님 모욕하는 자는 그게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어.”장지민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장 선생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 인간이 누군지 알면 절대 그런 말씀 못하실 겁니다. 저 인간은 8년 전 강씨 가문의 데릴사위였어요. 저 망나니를 왜 스승으로 모신 겁니까?”이영호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두가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장지민 같은 인물이 무능하기로 소문난 이도현을 스승으로 모시다니!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내 스승님을 모욕하는 자는 그게 누구라도 용서 못해! 지옥이 뭔지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다물어.”장지민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비천하고 무능한 제가 무슨 수로 귀한 따님을 살린단 말입니까? 저 때문에 가문이 망했다고 저를 저격하면 어쩌려고요?”이도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서… 선생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신연주 씨를 봐서 우리 지음이 좀 부탁드릴게요. 우리 딸만 살려주신다면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이경숙은 점점 호흡이 옅어지는 한지음을 바라보며 절망에 겨워 흐느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이도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내가 왜 그래야 하죠? 당신이 뭔데요? 선배 얼굴을 봐서 용서해 주는 건 지난번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내가 치료를 거부해도 선배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이도현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경숙처럼 돈 좀 있다고 사람 무시하고 거만을 떠는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돈이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절대적인 실력을 가진 존재 앞에 그녀는 한낱 벌레에 불과하다는 사실도!그들을 내쫓지 않고 내버려둔 건 신연주의 지인이라서였다. 신연주가 엮여 있지만 않았어도 아마 다리 한쪽 분질러서 내쫓았을 것이다.“제발…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가 주제도 모르고 귀인을 몰라봤습니다. 하지만 지음이는 아무 잘못 없잖아요. 제발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 아직 서른도 안 넘긴 아이란 말입니다.”이경숙은 연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며 애원했다. 아까 보였던 강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허, 참!”이도현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흥정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 여자에게 자신의 의술은 무시당할 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것을 똑똑히 각인시키고 싶었다.“도현 씨, 우리 대표님 살려주세요. 많이 불쾌하신 거 압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무 잘못 없잖아요. 대표님은 끝까지 도현 씨를 믿었어요. 제발 이렇게 빌게요….”가만히 있던 이설희마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사모님, 이것 하나는 짚고
손놀림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지음의 몸에 금침이 꽂혀서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장지민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감격에 겨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생 의학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신묘한 침술은 처음이었다.여기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이런 신묘한 침술이 스승님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넘쳤다. 언젠가 저 침술을 습득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이영호는 자신이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의술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도현의 침술은 그와 전혀 다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잠시 후, 한지음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호흡도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 경이로운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감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다 죽어가던 사람이 침술 한 번으로 이런 변화를 보이다니.다시 몇 분이 지나가자 한지음의 표정이 편안해지더니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우리 지음이 괜찮은 거죠? 이제 다 나은 거죠?”이경숙이 다그치듯 물었다.“사모님, 스승님의 실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조금 전 보여주셨던 신묘한 침술, 그건 기적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당신들이 운 좋은 줄 알아요.”장지민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도현이 시전한 침술이 무엇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그 침술이 이루어 낸 기적은 옆에서 두 눈으로 목격했다.이도현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손에 약보따리를 들고나왔다. 그는 보따리를 이설희에게 건네며 말했다.“10일 동안 매일 이 약을 달여 한 대표님께 먹이세요. 열흘이 지나면 아마 완쾌되었을 겁니다. 물론, 날 못 믿겠다면 그냥 가지고 나가서 버리면 됩니다.”“이따가 한지음 씨 깨어날 텐데 정신을 차리면 데리고 나가주세요. 더 이상 당신들에게 거처를 제공할 수 없네요.”이도현은 더 이상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여자랑 잘못 엮였다가 또 여자한테 빈대 붙어 사는 무능한 놈이란 말
쾅!거대한 굉음과 함께 이영호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했다.“개 같은 자식, 오늘은 이만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내 성질 건드리면 염라대왕 만나게 해줄게! 당장 저 녀석을 끌어내!”이도현이 충돌을 빚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살인을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아니 왜 사람한테 폭력을!”조카가 맞아서 나가떨어지자 이경숙이 당황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노려보았다.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도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무시무시한 살기가 번뜩이는 눈빛에 이경숙은 움찔하며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마치 저승사자를 닮은 그 눈빛은 꿈에 나올까 두려웠다.“그 입 조심해.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다시 나한테 기분 나쁘게 뭐라고 지껄이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이도현은 싸늘하게 말을 던진 뒤, 홀로 방으로 돌아갔다.이경숙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이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자존심을 무참히 깔아뭉갰다.“가자. 설희 씨는 공항에 연락해서 황성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해!”이경숙이 이를 갈며 말했다.그렇게 저택에는 이도현과 메이드복 차림의 여자 고용인들만 남게 되었다. 그는 못내 아쉬워하는 장지민도 어르고 달래서 쫓아 보냈다.그 시각, 염경.한 산 중 저택에서 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수화기 너머로 부하가 전해온 소식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남자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다.”전화를 끊은 중년 남자가 거실에 대기 중이던 한 노인을 향해 말했다.“주영이가 실패했다는군.”“창영과 노사까지 붙여줬는데 신연주 그 여자한테 얻어맞고 물러났어. 신연주는 이미 종급 경지를 돌파해서 창영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하더군. 설명을 들어보니 아마 종급 절정의 경지까지 오른 것 같아.”“고작 30대의 어린 나이로 종급 절정을 돌파하다니!
“이 모든 가설이 성립한다면 우린 귀찮은 일에 휘말린 거야.”“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서북후는 자네를 위해 일하던 녀석이 아닌가. 서북후가 살해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염국에서 신영성존의 위신이 바닥에 처박힐 거잖아. 누가 널 위해 일하려 하겠어.”노인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맞아. 그 녀석을 제거해야 해.”신영성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널 보냈으면 해. 내가 나서면 일이 너무 커지니까. 너라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그러니까 넌 태허산을 건드리기 꺼림직하니까 날 풀어줬다는 거 아니야?”노인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이번 임무만 수행하면 이도현이 죽었든 살았든 넌 자유의 몸이야. 어디든 가도 좋아.”신영성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괜찮은 거래로군. 20년 전에 난 어리석은 약속 때문에 자발적으로 너한테 잡혔지. 이도현을 죽인 뒤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그땐 죽여버릴 거야!”노인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한편, 그렇게 며칠 동안 이도현은 집에서 수련을 하고 부모님의 위패에 제를 올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단조롭지만 평안한 시간들이었다.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면 신연주가 고용한 고용인들이 매일 메이드복을 입고 일을 하면서도 그를 힐끔거린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쳐다볼 때마다 그는 온몸이 간지럽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게다가 육감적인 몸매에 복장마저 이상한 걸 입고 있으니 그냥 스치듯 보아도 몸 속의 사악한 기운이 꿈틀거렸다.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들은 일부러 그를 스쳐지나거나 할 때마다 큰 가슴으로 그의 팔을 툭 치고 지나갔다.이도현이 그녀들을 가만히 내버려둔 건 일말의 양심 때문이었다. ‘대체 남자를 뭐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과감하게 행동하는 거야?’물론 여자들에게 화풀이할 수 없으니 그는 애먼 분신에게 화풀이를 해댔다.“지조도 없는 녀석! 너 여자만 보면 꿈틀하더라? 그냥 팔에 스친 것뿐인데 신이 나가지고
그 시각, 황성 한씨 저택.저택 안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이경숙이 남편 한강원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한지음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이도현이 자신들을 쫓아냈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말도 없이 방 안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이튿날이 되자 그녀는 짐을 싸서 이설희가 사는 오피스텔로 나가버렸다.그녀의 모친 이경숙은 이 모든 상황을 이도현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녀는 이 모든 게 이도현 때문에 벌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이도현이 딸의 목숨을 구한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그녀는 이도현이 한지음을 구한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이도현에게 뭔가 보여줄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 여자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었다.“이 악랄한 여자야! 당신 이기심 때문에 지음이가 죽을 뻔했어. 지음이가 무사하니 그냥 넘어가겠지만 지음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거야!”한강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아내를 노려보며 호통쳤다.가문이 날로 번창하면서 이 여자의 허영심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진작부터 아내의 소행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사랑하는 딸이 아니었으면 당장 집에서 쫓아내고 싶을 정도로 이경숙이 한 짓은 황당하고 어리석었다.“내가 뭘요? 나도 지음이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이경숙이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했다.“그게 지음이를 위한 거야? 이영호 그 멍청한 자식에게 지음이를 맡겨서 애가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는데? 당신은 미쳤어! 답이 없다고!”“친정을 도와주려는 그 마음은 알겠어. 나도 그것까지 반대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친정에 그 많은 돈을 매년 가져다 줬으면 됐잖아. 아직도 부족해?”“사람 욕심은 끝도 없지. 당신이 지음이를 이용해서 이영호를 띄워주려고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난 당신의 그 이기적인 생각이 역겹다는 거야.”“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싫어졌으면 그냥 대
그 정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많은 불을 삼켜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를 뿜어내던 불은 점점 작아졌다. 육각형 건물에서 쏘아져 나오던 불빛도 모두 정 안으로 흡수되었다.이도현을 밀어붙이던 그 태양 그림도 점점 작아지더니 점점 정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태양대전 밖의 태양신전 사람들은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태양왕과 에릭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렇게 크지도 않은 정이 태양대전의 커다란 불을 다 흡수해 버렸다니. 게다가 진법의 위력까지 줄어들게 만들다니.“오마이갓... 저건 뭐야! 정이 어떻게 불을 흡수할 수가... 이럴 수가! 이게 설마 동양 전설 속의 그 성물이야?”“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오마이갓... 정말 너무 무서운 녀석이야! 정말 무서워... 도대체 뭐 하는 놈인 거야.”“동양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염국은 참 신비로운 나라야... 이런 신비한 힘을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전하, 이제 어떡하죠? 이러다가는 태양대전이 무너질 겁니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끝장입니다. 얼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엥겔스 마법사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어떡해! 이제 어떡해! 누가 좀 얘기해 봐. 저 동양인 손에 든 물건이 대체 뭔지! 왜 태양대전의 불을 흡수할 수 있는 건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야! 설마... 정말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 거야? 염국의 그 신화들이 정말 실제 이야기인 거야?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태양왕은 정을 들고 있는 이도현의 행동에 겁을 먹고 말았다. 태양왕은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물건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그마한 정이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다니. 정말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정은 결국 블랙홀처럼 태양대전의 모든 불을 다 삼켜버렸다. 그러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하,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닙니다. 얼른 수단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대전이 파괴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넌 내가 이 태양대전 안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 이 태양대전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물었다.“오마이갓. 지금 이 멍청한 원숭이가 뭐라는 거야.”태양왕이 과장한 액션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벌레만도 못한 주제에 우리 태양신전의 태양대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거야? 오마이갓. 농담도 참. 엥겔스 마법사, 들었어? 이건 내가 올해 들은 가장 웃긴 농담이야. 하하하.”태양왕은 웃으면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 표정과 동작은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제가 들은 가장 웃긴 농담입니다.”엥겔스 마법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다만 말투는 약간 어쩔 수 없이 대답하듯 가식적이었다.왜냐하면 엥겔스는 진법에 대해서는 염국인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진법은 애초에 염국에서 시작되기도 했고 실력과 이해 또한 염국이 가장 뛰어나니까 말이다.그리고 이 태양대전도 사실은 아주 오래전 염국인이 만든 진법이었다.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염국인인 이도현이 그들보다 진법에 능통하여 태양대전을 풀어버릴까 봐서였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태양신전은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하지만 이내 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일어났다.태양대전 속의 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그러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내가 너희들이 아끼는 태양대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말을 마친 이도현은 정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정은 염국인들의 성물이었다. 왜냐하면 염국인들의 이해에 따르면, 정에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염국에는 정과 얽힌 신화들도 많았다.이도현은 음양탑에서 이 정을 얻은 후 딱 한 번 사용했다. 그것도 연단을 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을 받을 때, 이도현은 이 정의 특점을 기억했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어떠한 불도 집어삼키는 정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태양대전의 불을 삼키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이... 이
손가람은 진법에 갇힌 이도현을 보면서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밖에 앉은 손가람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아까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어때? 그 자식이 진법에 갇혔나?”손가람이 화를 풀고 있을 때 태양왕이 태양신전의 장로들을 데리고 도착했다.“태양왕 전하를 뵙습니다. 이도현은 이미 진법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손가람이 공경하게 얘기했다.“하하하, 잘됐네. 수고했어, 손 장로. 이 공은 내가 잊지 않으리. 누구든지 이 태양진법 안에 갇히게 되면 저절로 고분고분해질 거야. 하하하.”태양왕이 흥분해서 얘기했다.“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축하드립니다!”에릭이 얼른 아부하면서 입을 열었다.“하하하, 좋아. 얼른 가서 다른 장로와 마법사들에게 알려라. 진법을 잘 제어하라고. 이 동양인에게 살 희망조차 주지 말라고 말이야!”태양왕이 으스대면서 얘기했다.“알겠습니다, 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충신인 이 에릭이 지금 당장 명령을 전하겠습니다.”에릭은 태양왕의 개처럼 바로 시키는 일을 하러 갔다.개노릇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숙련된다. 에릭은 태양왕의 개로 오랜 시간 일하며 이미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태양왕은 불에 휩싸인 이도현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이도현, 나는 태양신전의 왕이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유감이군. 너를 이곳에 가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널 해치고 싶은 건 아니야. 그저 너한테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만약 네가 가만히 있어 준다면 너를 꺼내주지.”진법 안의 이도현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면서 물었다.“무슨 얘기지? 한 번 들어나 보자.”“그래,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아. 나는 너처럼 단도직입적인 사람이 좋아. 그러니 나도 솔직하게 얘기하겠어. 칠색 동백꽃을 내놔. 그리고 곤륜옥에서 얻은 모든 물건을 다 나한테 내놔! 네가 모든 비책과 보물들을 꺼내놓는다면, 그리고 곤윤옥의 신비한 힘도 꺼내놓는다면 널 살려주도록 하지. 어때?”태양왕이 큰 소리로 물었다.진법 안의 이도현은 불빛을 상대하면서 소리쳤다.“
손가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중한 시선으로 이도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앞의 이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도현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자진하여 태양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걸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이도현은 개의치 않고 태양대전 중의 선학신침으로 걸어갔다. 태양대전이 무슨 진법인지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다른 술수들은 소용없으니까 말이다.테이블 앞에 온 이도현이 바로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붉은색의 선학신침이 놓여있었다. 태양의 빛을 받은 선학신침은 익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이도현이 손을 휘저어 선학신침을 손에 넣었다.그리고 그가 선학신침을 갖게 된 그 순간, 육각형 건물의 각 위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이윽고 그곳에서 불같은 빛이 하늘로 치솟더니 공중에서 커다란 구 모양의 불을 만들어냈다.그 불은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뜨거웠다.불은 그치지 않고 점점 커갔고 너무 뜨겁고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새 육각형의 건물은 이 불로 뒤덮여버렸다. 이도현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용암 같은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양 그림 위에 쏟아졌다. 이도현은 빠르게 그 용암들을 다 피해버렸다.용암을 맞은 태양 그림은 갑자기 각성한 것처럼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힘까지 흡수해 더욱 많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어느덧 건물뿐만이 아니라 건물 주변의 바닥도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태양대전은 이 불로 완벽히 감싸져 있었다.쿵.태양 그림에서 불빛이 쏘아 나오더니 이도현을 공격했다.이도현은 또 빠르게 몸을 놀려 피했다. 발밑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이도현은 공중에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태양대전은 이도현에게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제단에서 또 불빛이 쏘아져 나와 이도현을 공격했다.“젠장...”이도현은 놀라서 욕설을 뱉으며 또 공격을 피했다.하
그리고 태양 그림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상자 하나가 있었다.그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이도현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이도현은 바로 알게 되었다. 이건 선학신침의 기운이라고 말이다. 이도현은 선학신침의 기운을 잘 알고 있었다.드디어 찾았구나!이도현은 속으로 기뻐했다.손가람이 이도현에게 태양신전에 선학신침이 있다고 했을 때, 이도현은 믿지 않았다. 그저 본인을 유인해 가려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태양신전에 진짜 선학신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양신전에서 이도현에게 던진 미끼가 진짜 미끼여서 다행이었다.함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동양인은, 그중에서도 특히 염국인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강했다. 염국인이 만든 함정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면서 덫에 걸려들 것이다.하지만 그것도 예전의 일이 되었다.이제는 서양인들이 기술 면에서 발달하여 염국인들을 넘어서게 되었다.그 당시의 염국에는 부패한 관료들이 많았다. 그리고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폐관 쇄국을 실행하며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했고 발전을 싫어했다. 그래서 어느덧 이런 것들은 미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도현은 그런 사람들이 웃겼다. 폐관을 실행하여 외부의 것은 배우지 않으려 하지만 또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던지, 함정과 책략 면에서는 동양인을, 특히 염국인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서양에서 쓰는 무기들도 원래는 다 동양에서 만든 것이었다.물론 서양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책략과 함정 면에서는 동양인을 따라올 수 없었다.“이도현 씨, 아마 이도현 씨도 뭔가를 느꼈을 겁니다. 제가 이도현 씨를 속인 게 아니에요!”이도현의 표정을 본 손가람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속인 게 아닌지 맞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거예요. 원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못 참겠네요. 이런 비열한 수는 세
“도착입니다. 이도현 씨, 이 앞이 바로 태양신전의 대문입니다.”손가람은 자만하는 이도현을 못 봐줄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이제 태양신전에 거의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가람은 인내심이 다 해 이도현에게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벌써 도착이라니. 그러면 길을 안내해요. 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도 다 꺼내고 덤비세요. 굳이 숨기면서 연기할 필요 없어요.”이도현이 직설적으로 얘기했다.“이도현 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거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한 선학신침을 이도현 씨에게 드리려는 것이고요. 그러니 이렇게 자꾸만 태양신전을 모독하거나 깔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손가람이 약간 화가 난 것처럼 얘기했다.“하하하, 그래요? 연기 좀 그만해요. 힘들지도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당신은 나한테 화를 7번 냈고 15번이나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감정들을 다 억눌렀죠. 불편하지도 않아요?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당신은 도합 21번이나 참았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나한테 손을 댔거나 화병으로 죽었을 겁니다.”이도현은 손가람의 연기에 같이 놀아나 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얘기했다.손가람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을 쳐다보았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도현은 손가람의 호흡, 느껴지는 기운을 다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손가람은 본인이 오는 길에 화를 몇 번 냈는지, 몇 번이나 살기를 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도현은 그걸 모두 알아차리고 기억했다.“하하하, 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저는 이도현 씨에게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농담도 참. 제가 만약 분노하거나 살기를 가졌다면 그건 이도현 씨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이도현 씨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일 겁니다.
“설마 태양신전에 잡혀가는 사람인가?”“그럴 리가! 저 이도현이라는 사람, 꽤 대단한 사람 같던데. 손가람 혼자서 이도현을 이길 순 없을 거야!”“그건 모르는 일이지. 손가람도 쉬운 사람은 아니야.”한 사람이 얘기했다.“얼른 소문을 내. 그 동양인이 태양신전의 사람과 같이 태양신전으로 가고 있다고.”“어서... 가서...”...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먹잇감 보듯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손가람의 뒤를 따르는 이도현을 보면서, 아무도 이도현을 건드리지 못했다.태양신전과 척을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이도현을 건드리는 것은 태양신전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태양신전과 사탄 지옥 조직은 성지의 양대세력이다. 두 조직이 양대세력으로 불리는 것은 다른 세력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태양신전의 사람들이 이도현을 데리고 가니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 수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태양신전으로 향하는 길, 이도현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이도현을 훑어보고 있었다.이도현은 손가람이 속한 조직이 성지에서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도현은 지금 이 상황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손가람 덕분에 불필요한 걱정을 덜었기 때문이다.“이도현 씨! 바로 앞이 태양신전입니다. 곧 도착할 수 있어요.”손가람이 뒤를 돌아 이도현을 보면서 얘기했다.손가람의 말투에는 오만함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도현은 손가람이 쓸데없이 나댄다고 생각했다.“왜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거죠?”이도현이 싸늘한 말투로 물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줄 몰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 나갔다.“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성지에서 가히 1등이라고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
“선학신침?”이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손가람이 선학신침을 알고 있을 줄 몰랐다.“그렇습니다! 바로 선학신침입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환한 웃음을 드러냈다.“저는 이도현 씨가 태허산의 제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허산은 의술에 능하여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죠. 태허산은 또 아주 대단한 침술을 갖고 있는데, 그게 바로 대대로 내려오는 선학신침입니다! 선학신침은 몇 년 동안 보이지 않아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만 마침 태양신전에서 우연히 선학신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도현 씨가 성지에 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겁니다. 이도현 씨와 함께 태양신전에 가서 이 신침이 정말 선학신침인지 알아보려고 말입니다.”손가람은 아주 조리 정연하게 얘기했다.사실 손가람도, 이도현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학신침을 이용해 이도현을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그런 더러운 본질을 그럴싸한 말로 감싸니 꽤 듣기 좋았다.“그러면 앞장서요.”이도현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길을 떠났다.이도현이 성지에 온 원인이 바로 선학신침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제 선학신침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상대방이 이도현을 위해 함정을 짜놓았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하하하, 역시 이도현 씨는 말이 잘 통하는군요. 태허산의 제자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쇼. 전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손가람은 반복해서 얘기하며 강조했다.“말 다 했습니까? 얼른 앞장서요!”이도현이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손가람은 그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동양인, 특히 염국인들은 예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손가람은 예의가 없는 이도현이 불쾌하게 느껴졌다.억지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느라 어느새 얼굴 근육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할 줄 아는 아부란 아부는 다 했지만 이도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그런 이도현을 보면서 손
손 장로는 꽤 오래전에 이곳에 왔었다. 지금은 6, 70대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당신은 누굽니까.”이도현이 차갑게 물었다.“저는 손가람이라고 합니다. 이도현 씨를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네요.”손 장로가 대답했다.“손가락?”이도현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뭔 이런 이상한 이름이 다 있지?’“하하하, 역시 농담도 재밌군요. 제 이름은 손가람입니다. 손 씨에 가자, 람자를 쓰고 있죠.”손가람이 해명했다.하지만 속으로는 예의 없는 이도현을 욕하고 있었다.‘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노인을 상대로 이름으로 놀리는 게 재미있나? 누가 미쳤다고 이름을 손가락이라고 지어! 정말 어이없군.’“당신도 동양인이네요?”이도현이 물었다.“네. 맞습니다. 전 연경시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죠.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도현 씨 같은 훌륭한 고수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기능을 익혔으니 정말 자랑스럽네요. 동방에서는 천년에 한 번씩 천재가 나온다고 하더니, 그게 바로 이도현 씨인 것 같습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을 칭찬하면서 얘기했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손가람은 온화한 얼굴로 웃으면서 이도현과 얘기했다.하지만 이도현한테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그저 차갑게 손가람에게 대답했다.“쓸데없는 말이 많네.”“하하하, 이도현 씨는 말이 적은 편인가 봅니다. 다 같은 출신 사람으로서 타지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손가람은 가볍게 웃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다.“난 당신이랑 친하지 않은데 왜 굳이 그래야 하죠? 이곳에 온 목적을 얘기해 봐요!”이도현은 체면을 봐주지 않고 밀어붙였다.왜냐하면 이 시점에 나타난 낯선 사람은 의심스러웠으니까 말이다. 이도현은 손가람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곳은 성지다. 사람 사이의 불신이 가득한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