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진짜 나한테 들러붙겠다는 거야? 이걸 어쩐담?”이도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도화살이 붙은 걸까? 왜 가는 곳마다 여자가 꼬이는 건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선배가 갑자기 약혼녀를 점 찍어 주지를 않나, 좋은 마음에 병을 치료해 줬더니 손녀 연락처를 건네지 않나.정말 내가 너무 잘난 탓일까?만약 그런 거라면 차라리 덜 잘난 게 낫다고 생각했다.자기도취에 빠져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도현은 약재들을 정리했다.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신조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 주동적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한지음이 원하면 치료해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기로 했다.그의 의술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일 하고 욕먹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드라마에 나오는 신의처럼 나를 믿는 자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해주지만 날 믿지 않는 자는 만금을 줘도 절대 치료해 주지 않을 것이다.‘그래. 이게 맞지!’그는 앞으로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사람을 봐도 당사자가 구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무시하고 지나쳐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독한 결심을 한 뒤, 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이도현이 한창 단꿈을 꾸고 있는데 바깥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음아, 빨리 오빠한테 인사해. 네 사촌오빠 지금 영강국에서 귀국했어. 그곳의 최첨단 의학기술을 습득하고 교수 과정까지 클리어한 대단한 분이야. 게다가 전문적으로 심장에 관해 연구했으니 네 병을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닐 거야.”목소리를 들어보니 한지음의 모친이었다. 영강국에서 귀국한 조카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이도현은 그제야 한지음 모친이 어제 왜 자신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단한 조카가 있다 그거지?’그는 나가기도 귀찮아서 다시 눈을 감았다.사촌오빠가 동생을 치료한다는데 간섭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냥 모른 척하자.’“
“엄마, 내가 도현 씨한테 치료받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왜 굳이 오빠까지 불러와서 상황 이상하게 만들어?”한지음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영호는 귀국하자마자 너 아프다는 얘기 듣고 바로 달려왔구만. 너한테 서프라이즈 해준다고 나한테 미리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안 한 거야. 오빠한테 감사는 못 할망정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한지음 모친은 이도현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너무 민폐를 끼쳤네.”한지음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영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가족끼리 감사는 무슨. 내가 널 치료할 날이 다 오다니. 민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오히려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는걸.”‘더 이상 못 참아!’방에 있던 이도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세 가득한 이영호의 목소리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저게 다 무슨 말이야? 말을 왜 저렇게 느끼하게 하지? 한지음한테 다른 마음이라도 있나?’‘아니! 고작 여자나 꼬시려고 의술을 배운다니! 이건 의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물론 이도현 역시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의술을 연마한 건 맞지만 이거랑은 다른 얘기였다. 현생을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대놓고 난 여자 꼬시려고 의술을 배웠다고 얘기하는 녀석은 두고 볼 수 없었다.‘역시 스승님 말이 맞았어. 요즘 시대에는 사촌도 믿을 게 못 돼.’“오빠의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난 이미….”한지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친 이경숙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만해! 젊은이들끼리 할 말이 많은 건 알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하는 걸로 하고 영호 너는 빨리 지음이 상태부터 확인해 봐.”“네, 고모. 지금 진맥을 시작할게요.”이영호가 기대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지음아, 손 내밀어 봐. 내가 한번 봐볼게. 걱정하지 마. 네 증상에 대해서 고모한테 이미 들었어.
“지음아, 걱정 마.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자.”“참, 난 한의학과 서의학을 결합한 방식을 쓸 거야. 치료 진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단 침술 치료를 먼저하고 탕약과 항생제를 동시에 복용하게 될 거야.”이영호는 당장이라도 한지음의 병을 완치할 것처럼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이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에 이렇게 호언장담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도현 씨….”이도현을 본 한지음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이 선생, 우리 애가 치료를 해야 해서 거실을 좀 빌리고 싶은데 괜찮죠?”이경숙이 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당연히 괜찮죠. 편하게 치료하세요. 안 그래도 이영호 선생의 의술이 궁금해서 내려온 참이었습니다.”이도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 씨? 고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도현 씨도 대단한 의사라고 하시더라고요.”이영호가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저 표정과 입꼬리를 보라. 딱 봐도 속이 음침한 인간이었다. 비록 웃고는 있지만 눈빛에는 멸시와 경멸이 가득했다.“반갑습니다. 아까 방에서 잠깐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침술로 한지음 씨의 병증을 치료하신다고요? 그 대단한 기술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이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설마 몰래 기술을 터득하려는 건 아니죠? 농담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침술은 그 깊이가 한없이 깊은 학문이지요. 한번 본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이영호는 장난인 것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당연하죠. 침술은 심오한 학문인 걸 인정합니다. 단기간에 배워낼 수 있는 학문이 아니지요. 침술을 시전할 때 자칫 실수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혈자리를 잘못 건드리면 복구할 수 없는 비극을 빚기도 하지요.”이도현도 싸늘한 말투로 응대했다.“그럼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세요.”말을 마친 이영호는 뒤돌아서 한지음에게 말했다.“지음아,
이도현의 거친 숨소리를 들은 이영호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이도현이 자신의 신묘한 침술에 충격을 받았다고 확신했다.“이도현 씨도 이 침술에 대해 알고 있다니, 좀 뜻밖이네요.”이영호가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들어본 적 있기는 합니다만 정말 구명 침술을 한지음 씨에게 시전하실 겁니까?”이도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그건 이영호 씨가 가장 잘 알 텐데요. 의사로서 본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입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있으니까 시전하는 거지요.”이영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영호야, 신경 쓰지 말고 시작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의원 주제에 왜 참견이야? 저 사람 말은 그냥 무시해.”이경숙이 가소롭다는 듯이 이도현을 흘겨보며 말했다.태허산 도사의 의술을 전수 받은 제자가 시골 의원 취급을 받다니.사부가 들었으면 기함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사람을 저렇게 무시하는 건지.이도현은 더 이상 신경 끄기로 하고 입을 다물었다.아무 이유도 없이 무시당하는 느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말이 없자 이영호는 자랑스럽게 은침을 꺼내 현란한 손동작으로 주의를 분산시킨 뒤, 침을 하나씩 한지음의 혈자리에 꽂기 시작했다.이도현은 혈자리 위치는 정확하나 힘조절과 각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물론 그걸 입 밖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30분 정도 지나서 이영호는 또 쓸데없이 현란한 손동작을 취한 뒤, 천천히 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모든 일을 마친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을 힐끗 째려보고는 말했다.“지음아, 이제 일어나 봐. 좀 어때? 몸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아?”“지음아, 일어나서 걸어봐. 훨씬 편해졌지?”이경숙도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재촉했다.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엄마라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막무가내이고 이기적인 엄마도 엄마였다.한지음은 몇 걸음 걸어보고 인상을
모친 이경숙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딸을 재촉했다. 한지음에게 조금 엄격하게 굴기는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엄마, 그런 말하지 마. 내 병이 나을 수 있었던데는 도현 씨 도움도 컸어. 물론 완전히 치료해 준 오빠도 고마워.”한지음은 뭔가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았다.“지음 씨,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다른 뜻은 없어요. 지음 씨 병은 완전히 치유된 게 아닙니다. 지금 느끼는 건 가상일 뿐이에요.”“게다가 아까 침술을 시전할 때 몇 가지 실수를 해서 심혈관 괴사 속도가 가속화 되었어요. 이번에 발작하면 목숨이 위험해집니다.”이도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결과는 이영호가 구명침술을 시전한다고 할 때 예상했던 결과였다. 구명침술은 명계의 침술이라고도 불린다. 자칫 잘못하면 산 사람을 저세상으로 데려가는 침술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한지음의 심혈관이 괴사하는 병은 사악한 기운이 생기를 집어삼키며 순환 장애가 발생하여 생기는 병변이었다. 이영호가 시전한 구명침술은 사악한 기운에 힘을 불어넣어 병증을 가속하는 결과를 낳았다.한지음이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낀 건 심리작용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넘치는 현상과 비슷했다. 염라대왕은 이런 면에서 꽤 합리적이었다. 죽기 전에 마무리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편하게 오라는 의미가 아닐까.“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우리 지음이 저주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악랄한 말을 할 수 있어?”이경숙이 분노한 목소리로 이도현을 비난했다.“이도현 씨, 내가 질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건 아니죠.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저주합니까?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나한테 화풀이하세요. 지음이가 뭘 잘못했다고!”이영호의 가식적인 미소를 보자 이도현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열한 인간이 아닙니다. 좋은 마음에 말씀드린 거지만 안 믿으면 나도 어쩔 수 없죠.”이도현이 쓴웃음을
“악! 가슴이 너무 아파… 엄마, 나 죽을 것 같아….”한지음은 가슴을 붙잡고 애달픈 비명을 토해냈다.그녀의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공포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무시무시했다.“지음아, 어떻게 된 거야? 엄마 놀라게 하지마, 지음아….”이경숙은 다급히 한지음을 품에 안으며 애처롭게 흐느꼈다.“엄마, 나 너무 아파.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아.”한지음의 얼굴에는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피는 끊임없이 그녀의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야? 영호야, 빨리 어떻게 좀 해봐. 아까는 다 나았다고 했잖아! 지음이 왜 이러는 거야?”이경숙은 딸을 안고 절규하듯 이영호를 찾았다.이영호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지음을 바라보며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끝장이야. 내가… 실패하다니!”사실 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침술을 시전하기 전부터 이런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구명침술이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이도현이 말한 것처럼 구명침술은 기사회생의 효과가 있지만 그건 성공했을 때의 얘기고 실패한다면 처참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고모,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내 침술이 실패하다니… 구명침술은 실패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요.”이영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했다.“너도… 방법이 없단 얘기야? 이제 어떡해? 지음아, 정신 좀 차려봐. 조금만 참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엄마는 이대로 널 못 보내!”거의 기절 직전까지 간 한지음은 이영호의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졌다.“사모님, 도현 씨가 대표님을 살릴 수 있어요. 빨리 도현 씨한테 부탁해 봐요.”이설희가 다급히 말했다.“썩 안 꺼져? 과거에 마누라한테 기대어 사는 데릴사위였다며? 그런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지음이를 살려? 저 인간 때문에 강씨 가문이 망한 거 몰라? 우리 가문도 망할 일 있어?”이경숙은 이도현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냈다.“허,
만약 장지민이 이 병을 치료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날 새파랗게 어린 이도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빌지도 않았을 것이다.한편 한지음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숨소리마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온몸이 경련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았다면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사람들은 조바심을 태우며 10여분 정도 기다렸다. 드디어 장지민이 경비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이영호는 다급히 마중을 나갔다.“어르신, 드디어 오셨네요. 빨리 우리 동생 좀 살려주세요.”장지민을 본 이경숙의 얼굴에도 다시 희망이 피어올랐다. 장지민은 염국에서 꽤 알아주는 명의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지음을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장지민은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다급히 한지음에게 다가갔다.잠시 후,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그녀의 상태는 현재 죽은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고명한 의술을 가진 명의라고 칭송받는 그조차도 한지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스에서 금침을 꺼내 그녀의 몸에 꽂았다.잠시 후, 한지음의 몸 곳곳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고 경련도 잦아들었다. 호흡은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아까처럼 숨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선생님, 우리 딸 이제 괜찮은 거죠?”이경숙이 다급히 물었다.“부끄럽네요. 저는 침술로 어느 정도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장지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선생님까지 그런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제발 우리 동생 살려주세요. 지음이만 살려주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이영호가 옆에서 애원했다.하지만 그의 발언은 장지민의 불쾌감만 샀다. 그는 돈을 벌려고 의술을 익힌 게 아니었다.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한지음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영호는 그가 돈을 바라고 일부러 치료를 안 한다는 뉘앙스로 말했으니 이건 그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다.“젊은 친구, 이건 돈
이경숙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장지민의 대답을 기다렸다.하지만 장지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그건 저도 모릅니다.”이경숙은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한껏 기대치를 높여놓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니? 대체 그럼 그 스승님 얘기는 왜 꺼냈는데?이경숙은 치미는 분노를 억지로 삼켰다.하지만 장지민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가 빌고 빌어서 이도현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이도현은 분명히 거절했다. 이 상황에 스승님이라고 말했지만 진짜 그분의 제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이경숙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장지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분이 어디 사시는지는 모르지만 연락번호가 있습니다. 번호를 드릴 테니 직접 통화하세요.”지난번에 이도현이 약재를 구매하러 왔다가 소창열의 병을 치료한 뒤, 소창열에게 연락번호를 남긴 적 있었다. 장지민은 염치 불구하고 소창열에게서 그의 연락처를 받았다.이경숙은 장지민이 건넨 메모지를 보물 다루듯이 두 손으로 받았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스승님 성함 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당장 연락해서 그분을 모셔오겠습니다.”이경숙은 다시 희망에 벅차올랐다. 장지민이 스승으로 인정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한지음을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다.한씨 가문의 재력으로 그분을 모셔오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하지만 이때 장지민이 다시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스승님은 이씨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설득하길 바라야죠. 두 시간 안에 그분을 모셔와야 합니다. 이 아가씨에게 허락된 시간이 단 두 시간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염라대왕 할아버지가 와도 못 살립니다.”“장 선생,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이경숙이 정색하며 따져 물었다.“이 아가씨는 심혈관 질병입니다. 사악한 침술을 시전해서 몸의 사악한 기운을 더 증폭시켰죠. 남아 있던 생기마저 모조리 침식되었단 말입니다. 비록 내가 시간을 벌어두기는 했지만 오래 버티는 건 무리예요. 시간이 지나면 신선이 와도 못 살립니다.”이경숙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