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요, 선배?”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이도현이 물었다.신연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야. 나 황성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나랑 같이 황성에 가보지 않을래? 미래의 장인어른 만나서 미리 점수를 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꾸했다.“됐어요. 저는 그냥 완성에 남을게요. 부모님 위패를 모신지 얼마나 됐다고 집을 비워요. 별일 아니면 여기 있을게요.”“알았어. 그럼 여기서 얌전히 선배 기다리고 있어. 이 기회에 약혼녀랑 데이트도 좀 하고. 2세까지 미리 만들면 아주 완벽하겠군!”‘무슨 여자가 입만 열면….’“선배,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죠.”이도현이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양심도 없는 녀석! 한지음이 샤워하고 나왔을 때 뚫어지게 쳐다본 놈이 누구였더라?”신연주는 이도현을 내성적인 변태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그런 거 아니거든요?”이도현이 황당한 얼굴로 반박했다.대충 식사를 마친 뒤, 이도현은 신연주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한지음에게 먹일 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한지음과 이설희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한 중년 여자와 함께 돌아왔다. 여자는 한지음과 외모가 많이 닮아 있었다. 겉보기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우아한 기품이 흘러 넘쳤다. 외모만 봐도 분명히 한지음과 밀접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현 씨, 소개할게요. 이분은 저희 엄마세요. 미리 말도 없이 모셔와서 죄송해요.”한지음이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도현이라고 합니다.”“엄마, 이분은 비행기에서 날 구해주신 도현 씨야. 의술도 뛰어나고 연주 언니 후배래! 아주 착한 분이야.”한지음은 엄마에게 이도현을 소개했다.“반가워요. 우리 딸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말은 그렇게 해도 여자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이도현도 그녀가 자신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딸이 외간남
이도현은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비록 외모는 출중하지 않지만 악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출중한 능력을 가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나쁜 남자 취급하니 어이가 없었다.소창열의 병을 치료해 줬을 때도 사람들은 그가 노인의 손녀를 탐내서 허세를 부린다고 말했다.좋은 마음에 한지음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그를 굶주린 변태 취급을 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호의를 의심하는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라고!“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나를 구해주신 은인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조급해진 한지음이 엄마를 나무랐다.“넌 눈치도 없니? 남자들은 원래 예쁜 여자만 보면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달려드는 법이야.”“백마 탄 왕자님 같은 건 현실에 없어. 우연? 그런 게 어디 있어? 여자를 꼬시기 위해 부리는 술수에 불과해. 요즘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데? 넌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그 말씀은 제가 여자나 홀려서 사기나 치는 변태 새끼라는 말입니까?”듣다못한 이도현이 불만을 표출했다.“엄마? 말이 이상하잖아!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비행기에서 도현 씨 아니면 난 진작에 저세상 갔을 거라고!”“엄마가 도현 씨를 못 믿어도 난 믿어! 난 도현 씨한테 치료 받을 거야. 여기 있기 싫으면 엄마 혼자 돌아가!”한지음은 예의 없는 엄마의 행동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남자한테 홀려서 사리분별도 못하는 거니?”한지음의 모친은 딸이 이렇게 된데는 분명 이도현의 입김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전에는 부모님 말이라면 절대 어기는 일이 없던 착한 딸이 남자 때문에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배신감이 들었다.“엄마, 그런 말 할 거면 그냥 돌아가. 도현 씨한테 미안해서 얼굴을 못 들겠어.”한지음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쨌든 저 사람 도움은 필요 없어. 엄마가 이미 유능한 의사를 찾았다잖아. 당장 엄마랑 가
이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나가는 한지음 모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예의 바르게 인사도 나눴고 좋은 마음에 있을 곳도 마련해 주었고 무료로 딸의 병까지 고쳐준다는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걸까?하늘에 맹세코 한지음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은 적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이 죽어가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인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된 걸까?한지음 모친의 태도는 상당히 불쾌했다. 병을 꼭 치료해 주겠다고 쫓아다닌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짐승 취급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뭐 귀한 딸을 건드렸냐고? 어이가 없어서! 부자면 다야? 이렇게 사람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이도현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산을 내려온 뒤로 느낀 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첫째, 세상 사람들은 약해 빠졌다는 것. 그래서 그의 한 주먹을 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둘째, 이 세상에는 허세가 심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셋째, 착한 사람도 의심받는 세상이라는 것.넷째, 조신한 여자들보다 광녀가 더 많다는 것. 신연주 선배가 대표적인 예시였다.그리고 지금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남자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도현 씨, 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좀….”한지음은 눈시울을 붉히며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사과했다.이도현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여자 앞에 아무런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당장 나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그건 사내로서 도리가 아니었다.“괜찮아요. 어머님께서 나한테 뭔가 오해가 많으신 것 같은데 난 신경 안 써요. 지음 씨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돌아가서 쉬어요.”말을 마친 이도현은 다급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이 비서, 도현 씨 많이 화난 것 같지?”한지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사모님께서 좀 너무하셨어요.”이설희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한지음은
“뭐야 진짜 나한테 들러붙겠다는 거야? 이걸 어쩐담?”이도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도화살이 붙은 걸까? 왜 가는 곳마다 여자가 꼬이는 건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선배가 갑자기 약혼녀를 점 찍어 주지를 않나, 좋은 마음에 병을 치료해 줬더니 손녀 연락처를 건네지 않나.정말 내가 너무 잘난 탓일까?만약 그런 거라면 차라리 덜 잘난 게 낫다고 생각했다.자기도취에 빠져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도현은 약재들을 정리했다.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신조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 주동적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한지음이 원하면 치료해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기로 했다.그의 의술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일 하고 욕먹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드라마에 나오는 신의처럼 나를 믿는 자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해주지만 날 믿지 않는 자는 만금을 줘도 절대 치료해 주지 않을 것이다.‘그래. 이게 맞지!’그는 앞으로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사람을 봐도 당사자가 구해달라고 하지 않으면 무시하고 지나쳐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독한 결심을 한 뒤, 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이도현이 한창 단꿈을 꾸고 있는데 바깥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음아, 빨리 오빠한테 인사해. 네 사촌오빠 지금 영강국에서 귀국했어. 그곳의 최첨단 의학기술을 습득하고 교수 과정까지 클리어한 대단한 분이야. 게다가 전문적으로 심장에 관해 연구했으니 네 병을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닐 거야.”목소리를 들어보니 한지음의 모친이었다. 영강국에서 귀국한 조카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이도현은 그제야 한지음 모친이 어제 왜 자신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단한 조카가 있다 그거지?’그는 나가기도 귀찮아서 다시 눈을 감았다.사촌오빠가 동생을 치료한다는데 간섭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냥 모른 척하자.’“
“엄마, 내가 도현 씨한테 치료받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왜 굳이 오빠까지 불러와서 상황 이상하게 만들어?”한지음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영호는 귀국하자마자 너 아프다는 얘기 듣고 바로 달려왔구만. 너한테 서프라이즈 해준다고 나한테 미리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안 한 거야. 오빠한테 감사는 못 할망정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한지음 모친은 이도현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너무 민폐를 끼쳤네.”한지음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영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가족끼리 감사는 무슨. 내가 널 치료할 날이 다 오다니. 민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오히려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는걸.”‘더 이상 못 참아!’방에 있던 이도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세 가득한 이영호의 목소리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저게 다 무슨 말이야? 말을 왜 저렇게 느끼하게 하지? 한지음한테 다른 마음이라도 있나?’‘아니! 고작 여자나 꼬시려고 의술을 배운다니! 이건 의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물론 이도현 역시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의술을 연마한 건 맞지만 이거랑은 다른 얘기였다. 현생을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대놓고 난 여자 꼬시려고 의술을 배웠다고 얘기하는 녀석은 두고 볼 수 없었다.‘역시 스승님 말이 맞았어. 요즘 시대에는 사촌도 믿을 게 못 돼.’“오빠의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난 이미….”한지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친 이경숙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만해! 젊은이들끼리 할 말이 많은 건 알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하는 걸로 하고 영호 너는 빨리 지음이 상태부터 확인해 봐.”“네, 고모. 지금 진맥을 시작할게요.”이영호가 기대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지음아, 손 내밀어 봐. 내가 한번 봐볼게. 걱정하지 마. 네 증상에 대해서 고모한테 이미 들었어.
“지음아, 걱정 마.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자.”“참, 난 한의학과 서의학을 결합한 방식을 쓸 거야. 치료 진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단 침술 치료를 먼저하고 탕약과 항생제를 동시에 복용하게 될 거야.”이영호는 당장이라도 한지음의 병을 완치할 것처럼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이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에 이렇게 호언장담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도현 씨….”이도현을 본 한지음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이 선생, 우리 애가 치료를 해야 해서 거실을 좀 빌리고 싶은데 괜찮죠?”이경숙이 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당연히 괜찮죠. 편하게 치료하세요. 안 그래도 이영호 선생의 의술이 궁금해서 내려온 참이었습니다.”이도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 씨? 고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도현 씨도 대단한 의사라고 하시더라고요.”이영호가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저 표정과 입꼬리를 보라. 딱 봐도 속이 음침한 인간이었다. 비록 웃고는 있지만 눈빛에는 멸시와 경멸이 가득했다.“반갑습니다. 아까 방에서 잠깐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침술로 한지음 씨의 병증을 치료하신다고요? 그 대단한 기술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이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설마 몰래 기술을 터득하려는 건 아니죠? 농담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침술은 그 깊이가 한없이 깊은 학문이지요. 한번 본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이영호는 장난인 것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당연하죠. 침술은 심오한 학문인 걸 인정합니다. 단기간에 배워낼 수 있는 학문이 아니지요. 침술을 시전할 때 자칫 실수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혈자리를 잘못 건드리면 복구할 수 없는 비극을 빚기도 하지요.”이도현도 싸늘한 말투로 응대했다.“그럼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세요.”말을 마친 이영호는 뒤돌아서 한지음에게 말했다.“지음아,
이도현의 거친 숨소리를 들은 이영호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이도현이 자신의 신묘한 침술에 충격을 받았다고 확신했다.“이도현 씨도 이 침술에 대해 알고 있다니, 좀 뜻밖이네요.”이영호가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들어본 적 있기는 합니다만 정말 구명 침술을 한지음 씨에게 시전하실 겁니까?”이도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그건 이영호 씨가 가장 잘 알 텐데요. 의사로서 본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입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있으니까 시전하는 거지요.”이영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영호야, 신경 쓰지 말고 시작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의원 주제에 왜 참견이야? 저 사람 말은 그냥 무시해.”이경숙이 가소롭다는 듯이 이도현을 흘겨보며 말했다.태허산 도사의 의술을 전수 받은 제자가 시골 의원 취급을 받다니.사부가 들었으면 기함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사람을 저렇게 무시하는 건지.이도현은 더 이상 신경 끄기로 하고 입을 다물었다.아무 이유도 없이 무시당하는 느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말이 없자 이영호는 자랑스럽게 은침을 꺼내 현란한 손동작으로 주의를 분산시킨 뒤, 침을 하나씩 한지음의 혈자리에 꽂기 시작했다.이도현은 혈자리 위치는 정확하나 힘조절과 각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물론 그걸 입 밖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30분 정도 지나서 이영호는 또 쓸데없이 현란한 손동작을 취한 뒤, 천천히 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모든 일을 마친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이도현을 힐끗 째려보고는 말했다.“지음아, 이제 일어나 봐. 좀 어때? 몸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아?”“지음아, 일어나서 걸어봐. 훨씬 편해졌지?”이경숙도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재촉했다.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엄마라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막무가내이고 이기적인 엄마도 엄마였다.한지음은 몇 걸음 걸어보고 인상을
모친 이경숙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딸을 재촉했다. 한지음에게 조금 엄격하게 굴기는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엄마, 그런 말하지 마. 내 병이 나을 수 있었던데는 도현 씨 도움도 컸어. 물론 완전히 치료해 준 오빠도 고마워.”한지음은 뭔가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았다.“지음 씨,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다른 뜻은 없어요. 지음 씨 병은 완전히 치유된 게 아닙니다. 지금 느끼는 건 가상일 뿐이에요.”“게다가 아까 침술을 시전할 때 몇 가지 실수를 해서 심혈관 괴사 속도가 가속화 되었어요. 이번에 발작하면 목숨이 위험해집니다.”이도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결과는 이영호가 구명침술을 시전한다고 할 때 예상했던 결과였다. 구명침술은 명계의 침술이라고도 불린다. 자칫 잘못하면 산 사람을 저세상으로 데려가는 침술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한지음의 심혈관이 괴사하는 병은 사악한 기운이 생기를 집어삼키며 순환 장애가 발생하여 생기는 병변이었다. 이영호가 시전한 구명침술은 사악한 기운에 힘을 불어넣어 병증을 가속하는 결과를 낳았다.한지음이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낀 건 심리작용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넘치는 현상과 비슷했다. 염라대왕은 이런 면에서 꽤 합리적이었다. 죽기 전에 마무리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편하게 오라는 의미가 아닐까.“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우리 지음이 저주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악랄한 말을 할 수 있어?”이경숙이 분노한 목소리로 이도현을 비난했다.“이도현 씨, 내가 질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건 아니죠.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저주합니까?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나한테 화풀이하세요. 지음이가 뭘 잘못했다고!”이영호의 가식적인 미소를 보자 이도현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열한 인간이 아닙니다. 좋은 마음에 말씀드린 거지만 안 믿으면 나도 어쩔 수 없죠.”이도현이 쓴웃음을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
이게 그들이 말한 보호란 말인가!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 아내는 이 절에서 죽을 뻔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이 그저 미련한 바보 같았다. 자신의 월급 절반을 절에 바치고 돈을 그렇게 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여자가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아마 곧 낳을 것 같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이도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휴.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의술은 자신 있지만, 출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사라곤 그 혼자뿐이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 일은 그의 몫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떻게 이 타이밍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서 내일 병원에서 낳으면 안 되나? 이 시점에서 출산이라니,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야?” 이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그는 해본 적도 없는 출산을 도와야 했다. “신의여! 제발 제 아내를 구해주세요! 그녀가 곧 아이를 낳아요!” 남자는 이도현 앞에 달려와 애원했다. “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준비해라. 정말 너희 집안에 큰 빚을 져서 갚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라!” 이도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급히 방을 나갔고, 겁먹은 동생만 남았다. “뭐 하려고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산모의 바지를 내려! 안 내리면 입으로 애를 낳게 하려는 거야? 아이고! 너도 여자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냐?” 이도현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당황한 여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언니의 바지를 내렸다.그 후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침대 시트로 여인의 하체를 가렸다. 그는 여인에게 침을 놓으며 기를 돌게 했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인 지 약 30분
어떤 것들은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이도현은 지금은 깊이 믿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이도현은 얼마 전 주씨의 아내와 그의 장인과 관련된 일을 겪고 나서, 미리 대비해 몇 가지 부적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음양탑에 보관해 두면 급하게 필요할 때 주사와 황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주사는 약국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집에 비축해 둘 법한 물건이다. 그러니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말이다. 이도현은 임산부의 동생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방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황색 부적 한 장을 꺼내 임산부의 몸에 대고 몇 번 그리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임산부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비로소 멈췄다. 이 과정을 거친 그는 상당히 지쳤다. 몇십 분 동안 정신과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 언니는 어떤가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는 거죠?” 여동생은 이도현의 치료가 끝나자 조급히 물었다. “나는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야. 가서 그녀의 남편을 불러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 주게 해.” 이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이 여인의 상태는 이미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억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마치 염라대왕과 생명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그는 진정 신선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동생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방금 이도현이 보인 위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언니의 남편을 불러왔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여인의 몸을 따뜻한 물로 닦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여인의 미약했던 숨소리가 점차 강해지더니, 마침내 여인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살았다! 내 아내가 살아났어. 그녀가 죽지 않았어.” 남자의 격한 말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곧 이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절 안의 스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 방해라도 한다면, 즉시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지만, 감히 방해하려 한다면, 그 순간 너희의 마지막이 될 거다!”이도현은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저어 은침 하나를 던졌다. 은침은 대전 앞에 서 있는 돌사자를 명중했다.쿵!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사자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절의 스님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들은 한순간에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이 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작은 침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돌사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다니, 이게 그들의 몸에 닿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아무리 그들이 뚱뚱하다 해도 이런 강한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빨리 방을 찾아서 이 사람을 안으로 옮겨!” 이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도현의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스님 몇 명이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여인을 한 방으로 옮겨놓았다.“모두 나가라!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라.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오면 안 돼!”“너는 따라 들어와라!” 이도현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 부부의 친척일 터였다.“저요?” 여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듯 물었다.“들어와!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해! 산모와 어떤 사이냐?” 이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제 언니예요.”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돌사자를 산산조각 내는 이도현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대답을 들은 이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여인을 한 번 더 보고, 남편을 보며 더욱 할 말을 잃었다.아내가 이 지경인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산속으로 오다니, 대체
“스님. 제 아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심장이 뛰고 있어요!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남자는 거의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떨며 외쳤다.보아하니,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스님들을 믿는 걸까? 그리고 아내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병원이 아닌 이 산으로 온 이유는 뭘까?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안 가는 경우가 있을까?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최소한 마을 의사나 경험 많은 산파나 어르신을 부르기라도 할 것이다.이 남자는 참으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내를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와서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아미타불! 시주님, 이 여 시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세요. 이번 생의 죄업은 이미 갚았고, 업보도 끝났으니, 다음 생엔 반드시 큰 부귀와 건강을 누릴 것입니다!”“시주님, 이제 길을 비켜주세요. 이 썩은 껍데기를 태워버리게 해주세요. 아미타불,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나고 죽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법입니다. 이 모두가 전생의 업이고 현세의 결과입니다. 시주님, 왜 그리 집착하십니까?”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본 이도현은 속이 끓어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허튼소리인가.스님의 신호를 받고, 젊고 힘센 스님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불태우려는 참이었다.이쯤 되자, 이도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건 두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멈춰!” 이도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번에 여인을 태우려는 스님들을 발로 차며 막아섰다.“뭐 하는 거에요!” 여인을 태우려던 스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냐고?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 저 여인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네가 사람을 태우려 하니, 정말 출가한 사람 맞는 거냐? 출가한 자는 자비를
이도현의 진심 어린 마음과 성의 가득한 기부금 덕에 뚱뚱한 스님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아미타불! 시주님도 신앙심이 깊고 지혜의 뿌리를 가진 분이시군요!” 예기치 않은 큰돈을 받은 뚱뚱한 스님은 한층 더 자비로워진 말투로 말했다.“혜명아! 이 시주님을 위해 방 하나를 깨끗이 청소해 드리거라! 부처님의 자비는 만인을 구원하니, 고통받는 이를 외면할 수 없다, 아미타불...” 이 뚱뚱한 스님은 매우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만 듣자면 훌륭한 고승 같았지만,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때, 모여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갑자기 외쳤다. “안 되겠어요! 빨리 응급 전화를 걸어야 해요! 이 아가씨는 지금 심장 박동이 거의 없고, 호흡도 많이 약해졌어요. 이러다 목숨이 위태로워질 거예요!” “스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제 아내가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제발 제 아내를 살려주세요!” “아미타불. 시주님! 빈승이 보니 아내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업장이 깊어 부처님께서도 구제할 수 없음을 아뢰오니, 마음을 추스르세요.” 이 스님이 내뱉은 말은 이도현을 놀라게 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시대인데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이 사찰은 역시 정통 스님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전에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와서 향을 피우며 기도했을 때, 당신들은 제 아내 뱃속의 아이가 문곡성의 환생이라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또한 우리가 진심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향을 피우러 오면 부처님께서도 우리 아이를 보호해 주어서 평안히 태어나고 성장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이러시는 거죠?”이도현은 이 남자의 말을 듣고 어이없었다. 이런 시대에 아직도 이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문곡성 환생이라니. 이 사기꾼 스님 이런
“소령사!”이것이 이 사찰의 이름이었다. 규모로 보아 크지 않은 사찰이었지만, 입구의 문은 꽤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문만 보더라도 이 사찰의 재정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돈이 없다면 이렇게 화려한 문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안에 있는 이들도 술과 고기를 먹는 스님들은 아니겠지?”이도현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마 대학 시절, 몇몇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부유하고 살찐 스님들이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본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웠다.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스님들은 늘 좋지 않은 인물로 각인되어 있었다.그렇기에 속으로 살찐 스님을 보자마자 "좋은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사찰 안에서 갑자기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이런!”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도현은 깜짝 놀랐다. 그 비명은 그의 머릿속에 불길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민간 여자를 납치한 건가? 음탕한 도적들인가?”이런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상상 속에서 뚱뚱하고 음탕한 웃음을 짓는 스님이 벌거벗은 채 한 공포에 빠진 여성을 앞에 두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장면이 그려졌다.“이런 빌어먹을 것들! 그 여자를 놓아라!”악에 받쳐 이도현은 소리쳤고, 사찰의 문을 단숨에 발로 차 열어젖히며 분노에 찬 채 뛰어 들어갔다.그는 한 명의 영웅이 되어 위기에 있는 미녀를 구해내고자 했다!그러나 그가 안으로 뛰어든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해지고 말았다.사찰은 정말로 크지 않았다. 정문 맞은편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전이 있었고, 양쪽에는 작은 방과 자그마한 뒤뜰이 있었다.그리고 대전의 한쪽에는 몇 명의 뚱뚱한 스님과 다른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틈 사이로 보니 그들이 한 여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이도현은 깜짝 놀라며 급하게 멈춰 섰다.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뚱뚱
이런 깨달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타인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같은 사물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기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된다.이것이 도가에서 흔히 말하는 산을 볼 때 산이 아니고, 물을 볼 때 물이 아니며, 마침내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인다는 경지다. 요컨대 이건 아주 오묘한 개념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이도현은 길을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이동했다. 아침노을과 하얀 이슬, 저녁의 노을과 산바람, 둥지로 돌아오는 피곤한 새, 풀 속에 울리는 풀 벌레 소리,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이 모든 것이 이도현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낮에는 초목 사이를 거닐고, 밤에는 큰 바위 위에서 잠을 청했다. 모든 것이 마치 생명력이 깃든 듯했다.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걸음에 걸음을 더하다가, 어느덧 산 위에 도착했다. 밤의 산은 참으로 고요했지만, 산 정상에는 몇 개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산 정상으로 향했다. 이 깊은 산속에 어떻게 불빛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누군가 살고 있는 걸까?이도현은 지금처럼 물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산으로 들어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속담에 “산을 보고 달리다 말 한 마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눈에 보이는 불빛이 그리 멀지 않아 보였지만, 한참을 걸어야만 닿을 것 같았다.그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불빛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목적지에 도착한 이도현은 그곳이 민가가 아닌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찰이면 이해가 되었다. 산속에 사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찰이 산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게다가 요즘 스님들은 현대화되었고, 대부분 큰돈을 가지고 있어 사찰도 화려해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대 사찰인 소림사 주지는 나올 때 수십억 원짜리 고급 차를 타고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예전에는 돈
이와 같은 일이 영강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도현과 갈등이 있었던 다른 서방 국가들에서도 거의 영강국과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이들 국가의 국왕들은 각국에서 논의를 거친 후, 서로 만났다. 그리하여 몇몇 국가가 연합하여 염황에게 공동으로 비난서를 보냈다.이들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비난서에는 이도현의 수많은 죄악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도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의 화신이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세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또한 이도현이 염국 출신이므로 염황에게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염황이 이도현을 처형하지 않으면,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협한 죄목으로 연합해 염국에 전쟁을 선포해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했다.하지만 그리 놀랄 것은 없었다. 영강국은 이런 일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영강국 국왕은 그저 큰소리만 치는 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만, 실상은 별것 없었다.그를 달래면 달랠수록 더욱 오만해지고 점점 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며 위세를 떨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를 무시하고 그와 맞서면 그는 곧바로 자기의 꼬리를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런 상대에게 맞설 때는 단호한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 방 크게 때려 주어 그의 이빨을 부러뜨리면, 이내 겁에 질려 순한 강아지가 될 것이다.염황은 이런 영강국의 행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난서를 받자마자 염황은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싸우고 싶으면 끝까지 상대해 주겠다고 말했다. 염황의 이 강경한 발언에 영강국 국왕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염황의 이런 대응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과거에는 염국이 이런 상황에서 그냥 비난을 받아내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강하게 맞서니, 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정말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들도 사실 감히 나서지 못했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