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는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송해나를 보며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둘 사이를 오해라도 하면 자기도 가장 경멸했던 내연녀가 될 것만 같았다.‘권재민 씨가 전에 뭘 했든 다 연기였어. 지금은 여기를 빨리 빠져나가야 해.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면 안 돼.’갑자기 밀려오는 생각에 그녀는 더욱 힘껏 권재민의 손을 뿌리치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권재민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송해나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뒤따랐다.“재민!”그 사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송혜나는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소리쳤지만 그녀의 소리는 권재민을 불러오지 못했다.권재민이 강윤아를 쫓아 별장 정원까지 쫓아갔을 때, 강윤아는 그의 발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이내 그에 의해 따라잡혔다.권재민이 팔을 홱 낚아채는 바람에 강윤아는 할 수 없이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그녀는 권재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버둥댔지만 연약한 여자가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끝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포기한 듯 고개를 들어 권재민을 바라봤다.“대체 뭐하자는 거예요?”권재민은 대답 대신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강윤아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그 시각 강윤아의 표정은 복잡한 데다 살짝 억울함과 서러움이 섞여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안쓰럽고 불쌍한 그녀의 표정을 보자 권재민의 마음은 이내 약해졌다.하지만 그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강윤아는 억지 미소를 쥐어짜 내며 입을 열었다.“우리의 협력인 이미 끝났어요. 오늘은 그저 물건 돌려주러 온 것뿐이고요. 두 분과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죄송해요.”권재민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강윤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가면을 벗겨내고 속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할듯한 그의 눈빛에 강윤아는 다급히 시선을 돌려 그의 눈을 피했다.“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 먼저 돌아갈게요.”뜨거운 눈빛에 저항할 수 없자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자기 손을 빼내려고
강윤아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자 은찬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다가와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은찬아, 뭘 보고 있는 거야?"강윤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은찬을 안으로 끌어들였다.“엄마, 아빠는 아직 안 왔어요?”은찬은 입을 삐죽 내밀고 물었다.강윤아는 은찬이 말하는 아빠가 누구인지 금세 깨달았다. 그 호칭에 강윤아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은찬에게 버럭 화를 냈다.“은찬, 함부로 그렇게 부르지 마. 권재민은 네 아빠가 아니야. 그동안의 모든 것은 그저 연기일 뿐이야.”강윤아의 갑작스런 고함에 은찬은 깜짝 놀라 눈에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그의 기억 속에서 강윤아는 항상 부드럽고 자상하게 대했지, 오늘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사나운 적이 없었다.속상해하는 은찬의 모습에 강윤아는 조금 전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었다.이런 생각에 강윤아는 급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 애처로운 듯 은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은찬아, 아까는 엄마가 잘못했어. 너한테 화내지 말았어야 했어. 엄마가 사과할게, 미안해.”은찬은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는 강윤아를 외면했다. 그러다가 강윤아가 여전히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험악하게 굴지 않기로 약속해요.”“그래, 좋아.”강윤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은찬은 권재민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차에서 그를 아저씨라고 불러도 운전기사나 비서들 앞에서 강윤아는 은찬에게 권재민을 아빠라고 부르도록 하게 했었다.지금은 강윤아와 권재민의 협력은 끝났지만, 이미 길들여진 습관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엄마, 아빠, 아니. 아저씨는 왜 요즘 저를 보러 안 와요? 그는 정말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아저씨가 저에게 정말 잘 대해준다고 생각해요
강윤아가 집에 멍하니 앉아 있는 사이 송해나는 부하들과 한 카페에서 만났다.“조사하라고 한 건 알아냈어? 나한테 또 기다리라고 하지 마, 우리 송씨 가문에서 너희들에게 이렇게 효율성 없이 일하라고 그렇게 높은 월급을 주는 게 아니니까.”송해나는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그러자 부하들은 서둘러 아첨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아가씨 부탁인데 당연히 잘해내야죠.”그러자 송해나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자료를 찾았다는 뜻이야? 얼른 보여줘.”부하들은 서류뭉치에서 서류를 꺼내 송해나에게 공손히 건넸다.“아가씨, 보세요. 이건 강윤아에 대한 모든 자료입니다. 강윤아라는 여자에게는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이들과 아무런 교류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현재까지 아무런 자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부하는 말을 마치고 송해나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는 혹시 또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강윤아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해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권재민일 이가 없잖아?송해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강윤아를 경멸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재벌가에 시집가려던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해결책도 간단했다.부하는 그런 송지예의 마음을 알아채고 급히 아첨을 떨었다.“아가씨, 제 생각에 강윤아는 대표님 눈에 차지 않을 겁니다. 모든 방면에서 아가씨보다 못해요. 조사해보니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병원 살이를 하는 어머니가 있어서 지출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그녀를 매수하면 어떨까요?”송해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부하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어차피 송씨 가문은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상관 없었다. 그 돈으로 강윤아가 권재민 곁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그리 나쁘지 않은 거래일 것 같았다.다음날,“은찬아, 유치원에서 꼭 얌전히 말 잘 들어야 해.”강윤아가 신신당부했다.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윤아에게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으며 유
강윤아는 아무리 둔감해도 이번이 송해나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커피숍에서 나온 강윤아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송해나가 오늘 자신을 찾아온 사실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송해나는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그녀를 찾아올지도 모른다.강윤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은 정말 무고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권재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왜 자꾸 권재민과 자신을 엮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파트에 들어설 때, 강윤아는 길가에 화려한 스포츠카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강윤아는 고개를 숙인 채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고개를 들자, 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권재민이 그녀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왜••••••, 왜 왔어요?”강윤아는 깜짝 놀랐다.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강윤아를 쳐다보았다.“어디 갔어요?”“그게••••••.”강윤아는 잠시 멈칫했다.“은찬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는 길이에요.”‘이것도 거짓말이라고••••••.’권재민은 강윤아가 어제 돌려준 옷과 장신구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강윤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루를 그녀 품에 던지며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윤아 씨가 입어보고, 써봤던 것이어서 도로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윤아 씨가 가지세요.”“하지만••••••.”강윤아는 그 자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저한테는 너무 과분해요.”“갖고 싶지 않으면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제가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으니까요.”권재민이 무표정하게 말했다.이런 상황에 강윤아는 그 선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강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기••••••, 또 무슨 일 있는 거예요?”“이번에 스미스 일가가 돌아간 후에 스미스 부인이 윤아 씨에게 선물을 보냈어요.”권재민은 강윤아를 힐끗 쳐다보고
승용차 안, 두 사람은 가운데에 한 사람 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그러던 그때, 강윤아가 갑자기 침묵을 깼다.“참, 아직 이른 시간이니 이참에 유치원에 들러 은찬이도 데려가는 건 어때요?”그녀는 은찬이가 권재민을 얼마나 좋아하고 의지하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이 은찬이가 권재민을 자꾸만 만나고 싶어 하니 오늘이 마침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권재민은 살짝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솔직히 그는 강윤아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렵게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은찬이를 데리고 가자니!“싫어요.”권재민은 곧바로 거절했다.“은찬이도 아직 하교 시간 아니잖아요.”“괜찮지 않을까요? 게다가 스미스 씨네 가족도 은찬이 초대하는 걸 원치 않을까요? ”한참을 망설이다 뱉은 말이었지만 권재민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은찬이를 데리고 가기 싫은 것처럼 말이다. 이에 강윤아는 할 수 없이 속으로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할 수 없지. 다음에 자리 마련하면 되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권재민은 강윤아를 데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 레스토랑은 강윤아도 들어본 적 있었다. 그런데 살아생전 그곳에 발을 들일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지도 못했다.하지만 흥분된 마음과 행동은 오히려 반비레했다. 들뜰 법도 한데 그녀는 그저 권재민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를 뿐이었다. 오랫동안 상류 사회와 떨어져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동작이 많이 경직된 모양이었다.그때, 권재민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윽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의 팔에 걸쳤다.“그냥 식사하러 온 것뿐인데 뭐 하러 그렇게 긴장해요? 저 망신시키지 마요.”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강윤아는 긴장이 오히려 조금 풀렸는지 권재민을 따라 식탁 앞에 앉았다.식사 내내 두 사람 사이에는 별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강윤아는 권재민과 무슨 얘기를 주고받아야 할지 몰랐다. 더욱이 자기를 찾아왔던
강윤아의 대답에 셋은 거의 동시에 입꼬리를 씩 올렸다. 보아하니 강윤아의 사리 분별 있는 모습에 아주 만족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때, 그녀들 등 뒤에서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예리야.”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들 등 뒤에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세 사람의 남편이었다.강윤아도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 세 명의 남자를 바라봤다. 제일 왼쪽에 선 남자는 피둥피둥 살쪄 있는 데다 나이가 좀 많이 들어 보였고, 중간의 남자는 반듯한 양복 차림의 엘리트 같아 보였고 제일 왼쪽의 남자는 강현서의 그 젊고 잘생겼다는 남편인 듯했다. 하지만 번지르르하게 생기긴 했지만 사진에서 볼 때와는 차이가 선명했다.강윤아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그들 때문에 또 어떤 귀찮은 일이 생길지 걱정했다.그때, 이예리가 먼저 달려가 자기 남편의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말했다.“자기야, 나 데리러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우리 아직 식사도 안 했는데.”잇따라 강현서와 송인애까지 자기 남편들한테로 걸어갔다. 혼자 남은 강윤아는 그들이 자기 남편들과 꽁냥대는 꼴을 보다 못해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강윤아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각자 자기 남편을 끌고 그녀에게 다가왔다.“윤아야, 이 사람 우리 남편이야. 너한테 소개시켜 줄게. 지금은 회사 대표님인데 1년에 몇십억 정도 벌어들여. 휴…… 뭐 그냥 보통 수준이야.”이예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허허 웃으며 넉살 좋은 모습을 보였다.“이만하면 우리 자기 하나 먹여 살리기는 충분하지 않아? 하고 싶은 거 하고도 남는 돈일 텐데.”이예리는 살짝 삐진 듯 남편을 째려보더니 이내 그의 어깨에 기대며 애교를 부려댔다.“그냥 말만 그렇다는 거지 사실 엄청 만족해요. 당신이랑 있으면 어떤 생활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그렇다면 우리 자기를 위해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어 줘야겠는데.”그때 강현서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듯 끼어들었다.“윤아야, 우리 남
그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 놀라더니 일제히 고개를 돌려 등 뒤를 확인했다. 말소리가 난 자리에는 잘생긴 데다 분위기마저 고급스러운 한 남자가 서 있었다.권재민을 본 순간 강윤아의 세 동창은 모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의 아우라와 외모는 확실히 놀랄 만했다. 심지어 잘생긴 남편을 두고 있는 강현서마저 그의 미모에 치이고 말았다.그녀들의 멍한 모습은 당연히 남편들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하지만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강윤아를 찾으러 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말투에 가시가 있긴 했지만 그저 자기들이 길목을 막고 있어 언짢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윽고 이예리는 두 친구의 옷깃을 살짝 당겨 길을 내어주고면서 권재민에게 예의 있는 미소를 지었다.“저희가 길목을 막고 있었죠. 죄송합니다. 지나가세요.”이미 억울함과 서러움을 속으로 삼키던 강윤아는 권재민을 보는 순간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달려갔다.“왜 인제야 왔어요?”권재민은 단번에 강윤아의 변화를 눈치챘다. 게다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니 그녀가 괴롭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저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다.“저 사람들이 윤아 씨한테 뭔 짓 했어요?”권재민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 순간 강윤아는 왠지 모르게 권재민이 자기를 위해 나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끝내 고개를 저었다.그러던 그때, 강윤아가 눈앞의 남자와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송인애가 먼저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아야, 이분은 누구셔?”갑자기 그들이 자기 앞에서 남편 자랑을 해대던 모습이 생각나 강윤아는 뭐에 홀린 듯 권민재의 팔짱을 끼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소개할게. 이 사람이 내 남편이야.”강윤아가 자기를 남편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권재민은 화가 나기는커녕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방금 전 광경을 회상하더니 이내 눈살을 찡그렸다. 강윤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지만 그는 그녀를 괴롭힌 사람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무슨 일 있었어요
권재민의 기세에 눌렸지만 세 명의 남자는 여전히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다들 현지에서 방귀꽤나 뀐다하는 사람들이기에 눈앞의 사람이 아무리 레스토랑 사장이어도 자기들한테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던 그때,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렇게 대하는 거야? 경고하는데 조심해, 안 그러면 당신도 후회하게 될 테니까.”권재민은 피식 웃으며 그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들은 보아하니 권재민에게 겁을 주려는 듯한 모양이었는데 그의 오만함을 꺾어버리기는커녕 역으로 무시당했다.그제야 세 남자는 속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하게 밀고 나가도 먹히지 않으니 살짝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그 모욕을 당하나? 그건 아니었다.“당신, 여기가 당신 구역이라고 우쭐하나 본데 여기에서 나가면 누가 울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야!”그중의 한 남자가 잔뜩 열이 나서 소리쳤지만 권재민은 그를 싸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심지어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윤 실장에게 전화했다.“레스토랑으로 와 봐.”세 남자는 일제히 고개를 들어 권재민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그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전화를 끊은 권재민은 몸을 돌려 처참한 그들의 몰골을 바라보며 경호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경호원들은 세 남자를 레스토랑 구석으로 데려갔다.곧이어 커다란 레스토랑에 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아!”“이거 놓지 못해?”“당신들 내가 가만둘 줄 알아?”세 남자는 맞으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경호원들에게 협박을 해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경호원들의 더 잔인한 폭행이었다.처절한 비명에 세 여자는 소리가 나는 구석으로 달려갔지만 눈에 들어온 건 남편들이 구타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도와주려니 우락부락한 경호원을 상대로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아 옆에서 비명만 질러댔다.“당장 그만둬! 그만두라고! 계속하면 경찰 부를 거야!”경호원들은 당연히 그녀들의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