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효영은 눈물을 닦으며 가련하게 말했다.“알았어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 내가 얌전히 있을 테니까 쫓아내지 마세요.”“또 연기야? 그만해, 아니면 바로 버릴 거니까.”진효영은 입을 삐죽 내밀고 머리를 숙여 이를 악물었다.‘너무 했어, 나 그래도 미녀인데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야?’“사부님, 회사로 모실까요?”우지민이 물었다.“아니, 병원으로 가.”이강현은 우지민에게 네비게이션에 따라 운전하도록 했다. 곧 이강현은 우지민과 진효영을 데리고 솔이의 병실로 갔다.솔이는 이강현의 품에 안기고 기뻐하며 이강현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아빠, 날 보러 왔어요? 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누구에요?”솔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강신과 진효영을 바라보았다.그 말에 우지민은 속으로 어이없어 하였다. 보기에 솔이와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데 오빠인지 동생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이 사람은 아빠 제자 우지민이야, 오빠라고 부르면 돼.”“네?”솔이는 우지민을 자세히 보았다. 우지민은 어색하지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오빠라고요? 근데 아빠보다 더 늙어 보이는데요.”솔이는 거리낌없이 말했다. 우지민의 웃는 얼굴이 일시에 무너졌다.“그리고 여긴 네 효영이 언니.”이강현은 이어 진효영을 소개했다.진효영은 뺨을 불룩하게 하고 시무룩하게 말했다.“오빠, 그렇게 부르면 안 되죠, 솔이는 나를 이모라고 불러야 해요.”“언니 너무 예뻐요, 그러니까 아빠 말이 맞아요, 언니라고 불러야죠, 언니도 아빠를 아저씨라고 불러야 해요, 내가 이모라고 부르면 언니가 우리 엄마하고 아빠를 빼앗으면 어떻게 해요.”솔이의 말에 놀란 남은 세 사람 모두 제자리에서 굳어져버렸다. “솔이, 아까 그 말 누구한테 배운 거야?”이강현은 솔이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옆집 아줌마가 보던 드라마 다 그래요, 항상 젊고 예쁜 언니가 다른 친구 아빠를 빼앗아 가요, 그리고 여기에서도 비슷한 얘기 많이 들어요, 병원에 와이프가 불륜녀을 때린 적도 있었어요
하늘을 뒤덮인 어둠 속에 외지 번호판을 단 고급차들이 잇달아 킥복싱 경기장으로 향했다. 수많은 재벌들이 세계 킥복싱 대회를 향해 달려왔다.특히 도박을 좋아하는 일부 부자들은 그 흥이 절정에 달았다.임정남은 벤틀리 차량에서 내려 집사의 부축과 경호원들에 보호 속에 횡포를 부리며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많은 부자들은 임정남이 너무 횡포하다고 느끼고, 신분을 내세워 임정남을 혼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임정남의 경호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총기를 꺼내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다른 재벌도 경호원이 있고 총도 있지만 그들의 경호원은 총 하나만 소지하고 있었다.임정남의 경호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당 기관총 하나에 허리에 권총 두 자루를 차고 있었다. 이건 그만큼 임정남의 신분이 남다르다는 증거이다.앞을 가로막는 부자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고, 임정남은 끙끙대며 고개를 들고 계속 걸어갔다.“아이고, 누군가 했더니 정남 너 이 자식이구나.”용성호가 거들먹거리며 걸어왔다. 용성호 뒤에는 늘씬한 경호원들이 따랐다.용성호 목소리에 임정남 얼굴이 살짝 비뚤어졌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용성호 어르신이 오셨군요, 어르신도 복싱 경기를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 정남이가 분밖에서 마중했을 텐데요.”임정남이 웃음 가득히 비위를 맞춰주는 모습은 왠지 괴이했다.용성호는 꼴값하며 임정남에게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누구 경기 보러 왔어? 네 아들 죽었다며, 집에서 가만히 아들이나 생각하지 왜 기어 나와서 말썽을 피워?”임정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웃음이 점점 굳어졌다.“어르신, 그만 하시죠, 어르신도 지금 용왕의 명분만 가지고 있지 아무런 권력도 없는 거 아닙니까, 조용히 있는 게 좋아요, 황후도 한성에 왔다고 하던데요.”“소식은 빠르네, 왜, 황후한테 가게? 그럴 명분 있어?”용정호는 임정남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매섭게 임정남을 쳐다보았다.“저는 황후를 뵐 수 없죠, 근데 제 주인은 가능하잖아요, 제가 가서 울고 빌면 주인님이 제
잠시 후 황후의 방탄 롤스로이스가 다가왔다. 차가 멈추자 용성호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재빨리 달려가 차 문을 열었다.권무영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팔을 걷어붙인 뒤 황후를 부축해 차에서 내리게 했다.베일을 쓰고 화려한 복장을 한 황후는 차에서 내려 임정남을 힐끗 쳐다보고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너 지금 개나 소나 다 데리고 다녀? 막 나가겠다 이거야?”“아니에요, 저 정말 억울합니다. 저도 방금 우연히 일곱째 형 부하를 만났어요, 이름은 임정남이라고 형 앞에 가서 제 험담을 하겠다고 하니까 속이 좀 불쾌한 거예요.”용성호는 약간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보세요, 저는 지금 권세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아래 개들도 저를 무시해요, 앞으로 어떻게 황후를 위해 일하겠습니까.”임정남은 당황한 나머지 털썩 무릎을 꿇고 황송하게 말했다.“아닙니다, 용성호 어르신이 말한 말 진실이 아니에요. 죽은 제 아들을 갖고 말하길래 제가 화김에 몇 마디 했을 뿐이에요.”권무영은 황후의 귀에 다가가 임시현의 죽음과 이강현의 관계를 보고했다.일의 자초지종을 들은 황후가 차갑게 말했다.“정말 쪽팔려, 일단 룸에 들어가 얘기하자.”황후는 권무영과 시종들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 용성호와 임정남은 서로를 매섭게 쳐다보고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경기장 2층에는 많은 VIP룸이 개조되었다. 한가운데 있는 룸은 황후가 예약한 자리이다.룸에 들어가 앉자 황후가 냉소하며 말했다.“아들이 죽으면 복수할 궁리를 해야지 경기는 왜 보러 온 거야? 너 지금 용성호도 건드리는데 앞으로 나도 건드릴 거야?”임정남은 놀란 얼굴에 황급히 무릎을 꿇고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지금 바로 돌아가 사람 찾아 복수할 겁니다.”“이번 교훈 기억하고, 앞으로 또 이러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당장 꺼져.”“네, 황후님, 살려줘서 감사합니다.”임정남은 허둥지둥 방을 뛰쳐나왔다. 속으로 목숨을 건진 것에 크게 다행이라고 생가했다.용
권무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숙인 정중천을 노려보며 외쳤다.“뭐? 진급했다고? 이강현의 경기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와서 나한테 자동 진급이라니, 일 똑바로 안 해?!”“정말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저희들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정중천은 계속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정중천은 신분도 모르는 거물에게 미움을 사기 싫었다. 차라리 자세를 낮춰 사과하는 편이 더 편했다.권무영은 이강현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지만, 이강현의 진급 소식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너희들 혹시 뒤에서 몰래 수작부리는 건 아니겠지, 만약 우리한테 들키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아닙니다.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다. 제작 수작부리고 싶어도 대회 위원님들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 그냥 어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황후의 싸늘한 눈빛이 정중천을 흘끗 보았다.“그러면 따질 것도 없겠네요, 이강현 훈련 경기 동영상 볼 수 있나요?”황후가 알고 싶은 것은 이강현의 실력이다. 그 전에 수집한 자료들은 모두 캐빔의 실력을 크게 칭찬하여 황후도 그런 실력의 캐빔이가 왜 이강현한테 졌는지 알고 싶었다.정중천은 잠시 고민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제가 신청해야 하는데, 저도 협찬자일 뿐 CCTV를 가져올 권한이 없기 때문에 훈련 경기 내용을 보려면 주위원님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그럼 가서 신청하고, 가능한 한 빨리 설명해 주세요.”“네, 최대한 빨리 하겠습니다.”정중천은 허리를 굽힌 채 방 밖으로 나가 방 문 밖에 서서 이마의 땀을 힘껏 닦았다.룸 안의 권무영은 약간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대양 건너편에 있는 놈들은 정말 조잡해, 경기를 뭐 이딴 식으로 만들어.”“너, 나가서 기다려, 그들이 영상을 보내오면 다시 가지고 들어와.”황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권무영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황후가 자기 투덜거림에 불만을 품은 것을 알고 황급히 룸에서 물러났다.용성호가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황후가 자신과 단둘이 얘기
눈 깜짝할 사이에 용성호의 마음속에는 이미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대용왕의 자리는 감히 바라지 않습니다, 8용왕의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저가 복 받은 건데요, 오픈키는 제가 최선을 다해 찾아드리겠습니다.”용성호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황후는 빙긋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난 네가 자기 입장이 뭔지 모를 줄 알았어,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알고, 자기 위치를 똑바로 해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난 오히려 널 좋게 봐, 네가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용성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후가 자기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걱정 마세요, 저는 사람이 경외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속에서 가장 경외하는 분은 황후세요, 주제 파악 잘 하고 충성한 부하가 되겠습니다.”“하하하.”황후는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용성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또 한번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했다. 황후를 만날 때마다 황후와 지혜와 용기를 겨루어야 하니 힘들기도 하였다.룸 문이 밀리고 권무영이 USB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이강현의 훈련 경기 영상입니다. 별탈없이 가져왔습니다.”“열어봐, 이강현이 어떻게 캐빔을 이겼는지 나도 봐야겠어.”황후는 재미를 가지며 말했다.권무영은 USB를 TV에 꽂았고, 곧 USB 안에 있는 동영상이 재생되었다.영상 내용은 캐빔과 10명 선수의 경기로 시작되었다. 황후는 캐빔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고 간드러진 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보아하니 용맹스럽고 기본적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존재인데 어떻게 이강현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지? 누가 약을 먹였나?”황후는 의심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약은 아니고요, 아까 물어보니 캐빔은 맞아 죽은 거라고 합니다.”권무영은 고개를 갸웃하고 황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속도를 빨리할까요?”“아니야, 다른 경기 볼 것도 없고 온 김에 천천히 영상이나 보자.”황후는 영상에 집중하였다. 이강현이 링 위에 올라가 캐빔을 가볍게 쓰러뜨리자 황후의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
용성호는 황후의 마음을 헤아려 천천히 말했다.“이강현은 그저 교묘한 솜씨일 뿐이고, 캐빔도 장법이 없는 선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체력이 좋은 것에 의지하고 있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은 다 캐빔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황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용성호는 가볍게 몸을 떨며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이니 틀릴 수도 있습니다.”“흥, 내가 너무 깊은 건 몰라도 기본적인 건 알아. 캐빔은 최고의 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류 고수 정도는 돼.”“용문호위에는 캐빔보다 실력이 좋은 놈이 많지만 이강현이만큼 쉽게 캐빔을 이길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어, 이강현은 그동안 참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거야!”권무영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이강현의 야심 만만치 않아요, 빨리 없애야 합니다.”용성호는 목을 움츠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럴 때 얌전한 척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황후는 손가락을 두 번 가볍게 두드리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영상을 가져가서 아랫사람들에게 이강현의 실력을 연구하라고 해, 무영아, 넌 몰래 임정남을 도와 아들의 복수를 잘 하도록 해.”“알겠습니다.”권무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옆으로 물러서더니 핸드폰을 꺼내며 누구에게 연락했다.황후의 분부가 있었으니 권무영은 이강현에게 손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임정남의 도움으로 일을 은폐하기만 하면 된다.권무영이 연락을 다하고 황후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피곤하니까 가서 쉬어야겠어.”“네.”권무영은 황후한테로 다가가 황후를 부축하고 몸을 일으킨 뒤 황후의 팔짱을 끼고 룸을 나섰다.경호원들이 황후와 권무영을 에워싸고 떠났다. 용성호는 룸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가 황후가 이미 멀리 가셨음을 짐작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경기장을 나와 용성호는 차에서 이강현한테 전화를 걸었다.“용성호입니다.”용성호가 아첨의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무슨 일이예요?”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아첨을 하고 나서 용성호도 왠지 아까 한 말들이 너무 역겨운 것 같았다.이강현도 용성호의 말에 이상한 표정을 보였다.“농담은 정도껏 하세요, 끊습니다.”전화가 끊기고 용성호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인생이 정말 힘든 것 같았다.“별장으로 돌아가, 그리고 사람을 시켜 최근 임정남의 움직임을 주시하도록 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보고하고.”용성호가 비서에게 지시했다.“알겠습니다.”비서는 핸드폰을 들고 빠르게 문자를 입력하며 명령을 보냈다.……임정남은 스위트룸 소파에 앉아 있었고, 부하들은 임정남 앞에 두 줄로 꼿꼿이 서 있었다.“이강현이 내 아들을 죽인 거 반드시 복수해야 해!”임정남의 원한이 가득한 소리가 들렸다.“명령을 내리세요, 물불을 가리지 않겠습니다.”“A팀 대기 중입니다. 임씨 가문의 최고 전사들로 모인 팀이고 모두 훌륭한 전사들입니다.”“명령을 내리신다면 한성을 뒤엎어서라도 도련님을 위해 복수하겠습니다.”부하들을 보며 임정남은 흐뭇한 미소를 짓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이들뿐이다.임정남이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권무영 전화인 것을 보고 임정남은 부하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손짓했다.임정남의 지시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임정남은 허리를 30도 정도 굽혀 인사를 하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전화를 받았다.“권무영 집사님, 안녕하세요.”“황후 명령이야, 네 복수 내가 도와주기로 했어, 그쪽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감안해 사람 몇 명 보냈으니 그렇게 알아.”임정남은 이 반가운 소식에 어쩔 줄 몰라하였다. 권무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하느님의 복을 받은 셈이다.“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황후께서 이렇게 신경 써 주다니, 앞으로 임씨 가문 황후의 충성한 부하가 되겠습니다.”“허허.”권무영은 냉소하며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할지는 내 사람이 알려줄 거야, 특근팀도 가서 도와줄 거고, 난 하나만 바래, 이강현의 시체를 보는 거.”“걱정 마
이강현과 진효영, 우지민은 송아를 보고 병원을 나와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 업무를 보고 있는 고운란을 보며 이강현은 웃으며 말했다.“여보, 바빠?”고운란은 고개를 들어 이강현을 쳐다보고, 다시 이강현의 뒤를 따라오는 진효영과 우지민을 바라보며 속으로 약간 의심했다.‘방금 이강현이 먼저 갔었는데, 왜 지금 진효영과 함께 있는 거지? 우지민은 또 어떻게 된 거고?’‘우지민이 진효영과 이강현을 도와 몰래 연락해서 날 속이고 둘이 몰래 밀회하게 한 거 아니야?’고운란 마음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마음도 점점 쓰라렸다.“너희들 뭐하러 간거야?”고운란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일 끝나고 마침 진효영과 우지민이 심심해서 돌아다니길래 시시보러 갔어, 요즘 시시가 옆 병실이랑 이상한 걸 많이 배웠더라, 치료 끝나면 얼른 데려와.”“아, 그리고 우리 집 보러 가자, 요즘 진성택한테 큰 건 소개했는데 커미션 준다고 했어, 그래서 큰 집 하나 구하려고, 시시도 좋은 환경에서 커야 하잖아.”시시 얘기가 나오자 바로 고운란의 관심을 끌었다.“그렇기는 해, 집 바꿀 때가 되긴 됐어, 유치원 초등학교도 생각해봐야 돼, 근데 지금 좋은 집은 다 비쌀 텐데, 생각해 둔 거 있어?” 고운란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집을 사는 것은 큰 일이고, 특히 요즘 집값이 비싸서 좋은 집 구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다.그리고 지성택한테 소개했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냥 손에 남은 돈이 얼마인지, 집 살 수 있는지만 궁리했다.진효영은 입을 삐죽 내밀고 묵묵히 옆에 앉아 이강현과 고운란이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우지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집 한성에 고급단지 몇 개를 지었는데 괜찮으시다면 거기 어때요?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가격도 본전에 낮춰 드릴게요.”지금 사람 찾아 집을 사도 기껏해야 10% 할인이고, 본값에 사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지민의 신분으로는 정말 말 한마디에 해결할 문제이다.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