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화를 받으라고 해!”진승윤은 1초간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네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진 변호사님, 정우예요?”진승윤은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에 소리가 새어 들어가지 않게 손으로 막았다.“아니에요. 업무에 관한 거예요.”임슬기는 입술을 틀어 물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변호사님, 저도 피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 그냥 제게 넘겨주세요. 제가 정우와 얘기해볼게요.”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대치했다. 결국 진승윤은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임슬기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어젯밤 반도로 돌아온 배정우는 거실에 쓰러진 연다인을 발견했다. 피도 흐르고 있었던지라 그는 하는 수 없이 연다인을 병원으로 데려다줄 수밖에 없었다. 연다인의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야 그는 밤에 병원에서 나와 임슬기를 가둔 오두막으로 갔다. 원래는 임슬기를 구해주려고 했지만 그 결과는?그가 도착했을 때 문은 이미 너덜너덜 뜯겨 있었고 바닥엔 바퀴 자국이 있었으며 오두막에는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을 들어 바로 임슬기에게 연락했지만 그에게 들려온 것은 자신을 증오한다는 말뿐이었다.배정우는 차갑게 웃으며 주먹으로 창문을 내리쳤다. 순식
배정우는 마지못해 하얀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보았다. 분명 전부 다 아는 글이었지만 이어져 있으니 이상하게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다소 의심하는 눈길로 진승윤을 보았다.“무슨 뜻이야? 보고서를 위조한 거냐?”“배정우, 넌 멍청해진 것도 모자라 이젠 글도 못 알아보는 거냐?”진승윤은 차갑게 피식 웃었다.“지난번에 연다인이 본인 스스로 임신했는데 슬기 씨 때문에 유산했다고 했지? 하지만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연다인은 3년 전에 이미 불임 진단을 받았어.”“그럴 리가 없어. 다인이는 분명...”“분명 뭐. 분
임씨 가문 본가.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임슬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배정우가 어쩌면 자신을 찾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의 곁엔 연다인이 있었고 그녀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배정우가 자신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정원을 산책하고 나니 머릿속에는 행복했던 기억과 슬펐던 기억이 떠올랐다.‘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때 누군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임슬기?”고개를 돌린 그녀는 한참 멍하니 보다가 입을 열었다.“송재현?”
“임슬기, 남자 없이는 못 살겠어? 병원에 한 명 남겨둔 것도 모자라 이젠 밖에서 또 만나는 거야?”임슬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두 손 전부 결박당한 그녀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배정우,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연히 만난 거라고.”“우연?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차피 넌 안 믿잖아. 내가 너한테 억지로 믿어달라고 할 수나 있겠어?”“임슬기, 어제 동생을 만나게 해줬다고 이젠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임종현을 언급하지 않았을
임슬기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이 흘러나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배정우는 임슬기를 반도로 데리고 가지 않았고 다른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임슬기를 안아 욕조에 내려놓은 그는 따듯한 물을 틀어주었고 이내 옷을 벗겼다.하지만 임슬기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더니 뒤로 몸을 피해버렸다. 배정우가 또 자신에게 손찌검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배정우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 그러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됐어. 옷은 네가 알아서 벗어. 갈아입을 옷은 밖에다 둘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 연다인
젓가락을 들고 있던 배정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임슬기를 흘겨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마실 뿐,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러자 배정우는 큰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임슬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너랑 단둘이 밥까지 먹어주고 있잖아. 뭘 더 바라는 건데?”임슬기는 국을 다 마신 후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았다.“배정우, 네가 은혜라도 베풀어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부부가 단둘이 밥 먹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그래?”“다인이 다쳐서 아직 병원에 있다는 거 알고는 있어?”“연다인
배정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둡고 깊은 그의 눈동자에 싸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맞아. 네가 감옥에서 나오는 조건이었잖아.”그 말투는 마치 이제야 깨달은 그녀가 멍청이 같다고 비웃는 듯했다.임슬기는 또 한 번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고 다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괜찮다는 듯 이를 악물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손톱을 살갗에 박아 넣으면서 눈물을 참았다.“응, 우리 사이의 조건이었지. 이만 가.”말을 마치고 등을 돌린 임슬기는 눈물을 터뜨렸다.‘그날 밤 이후로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진승윤의 물음에 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진승윤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차희라가 허둥지둥 병실로 달려 들어와 그녀의 침대에 매달리며 말했다.“슬기야, 제발 서우를 구해줘.”깜짝 놀란 임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김현정을 끌어안고 물었다.“김서우가 왜요?”“누구한테 맞은 뒤 경찰서에 잡혀갔어.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대. 방금 경찰서에 가서 봤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거의 죽기 직전이야. 슬기야, 제발 구해줘. 그 애도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거야.”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알 수
진승윤이 떠난 후, 김서우는 허겁지겁 연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도 연다인은 받지 않았고 김서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진승윤조차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 상황에 이제 그녀는 완전히 끝장난 것과 마찬가지였다.‘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배정우? 엄마?’하지만 오늘 실검 사건 때문에 차희라는 이미 그녀에게 화를 내며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면 배정우를 찾아갈까? 그래. 배정우도 임슬기를 싫어하니까 분명히 날 도와줄 거야.’하지만 김서우는 배정우의 연락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김
병원을 나선 진승윤은 위용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씨 가문 관련 사건 중 두 가지를 골라 실검에 올려. 반드시 실검에 올라야 해.”“알겠습니다.”“그리고 감찰부에 김씨 가문을 익명으로 신고해. 탈세 혐의로.”위용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진 대표님, 정말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응, 해야 해. 그뿐만 아니라 김서우를 정식으로 고소할 거야. 살인미수로.”전화를 끊은 뒤 진승윤은 차를 몰고 김씨 가문으로 향했다.김씨 가문의 집사였던 허재문은 진승윤을 보고 잠시 당황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진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
김서우는 진승윤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나...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해에요...”“안 했다고? 오해?”진승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살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서우 씨, 거짓말의 대가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을 텐데.”“승윤 씨,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에요.”“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예요? 난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말이 끝나자마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에는 김서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이제 말할 수 있겠어?”참을 수 없는 아픔
병원 복도.김현정은 허둥지둥 달려와 병실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임슬기를 보더니 진승윤을 향해 물었다.“진 변호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김현정이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진승윤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뒤 물었다.“김서우와 슬기 사이에 또 다른 문제라도 있었나요?”진승윤은 자신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김현정은 휴대전화에 저장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실검에 오른 내용이에요.”진승윤은
진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꽃뱀이라니? 다 너 같은 줄 알아?”“임슬기가 몇 번이나 다친 건 다 김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데, 그게 너랑 상관없다고?”배정우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진승윤은 김서우가 떠오르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갔다.이 일이 진승윤과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미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서우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결국 말로는 안 통하는군.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네.’얼마 후, 육문주가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두 사람을 훑어보며 물었다.“슬기 씨 혹시 머리를 부딪혔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배정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재빨리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거칠게 임슬기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진승윤은 놓아주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배정우, 적당히 해.”지금 임슬기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진승윤은 배정우와 싸우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배정우는 임슬기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를 응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임슬기, 이리 와.”이미 얼굴이 백지장만큼 창백해진 임슬기는 목에서 올라오는 피 비린 맛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김서우의 말 한마디에 임슬기는 즉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김서우는 먼저 온라인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그걸 구실 삼아 따지러 온 것이었다.임슬기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김서우를 째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김서우, 진실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김서우의 눈빛에는 잠시 당황함이 스쳤지만 이내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야? 네가 우리 엄마에게 약을 타서 우리 집 재산을 가지려 했던 거잖아!”“김씨 가문 재산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상관없다고?”김서우는 콧방귀를 끼고는 말
임슬기는 강재호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동생 잘 돌보고,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고마워요, 임슬기 씨.”강재호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원래 육문주가 두 사람을 배웅하려 했지만, 진승윤이 먼저 임슬기의 짐을 차에 실었다.“육문주, 너는 해야 할 일이나 잘해.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육문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승윤 형, 내가 무슨 원수예요?”“배정우의 간첩이잖아.”“진짜 아니라고요.”육문주는 진승윤의 귀에 속삭였다.“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