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윤은 울고 있는 김현정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던지라 놀라고 말았고 서둘러 물었다.“거기 어디예요?”김현정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너무도 오진 곳이었던지라 특정 지어 말할 것이 없었다.“저...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위치 공유해드릴게요.”“그래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진승윤은 바로 실력 좋은 자물쇠 기사님을 불러 함께 김현정이 알려준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던지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그들은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승윤은 속도를 늦추지 않
“내 전화를 받으라고 해!”진승윤은 1초간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네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진 변호사님, 정우예요?”진승윤은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에 소리가 새어 들어가지 않게 손으로 막았다.“아니에요. 업무에 관한 거예요.”임슬기는 입술을 틀어 물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변호사님, 저도 피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 그냥 제게 넘겨주세요. 제가 정우와 얘기해볼게요.”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대치했다. 결국 진승윤은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임슬기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어젯밤 반도로 돌아온 배정우는 거실에 쓰러진 연다인을 발견했다. 피도 흐르고 있었던지라 그는 하는 수 없이 연다인을 병원으로 데려다줄 수밖에 없었다. 연다인의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야 그는 밤에 병원에서 나와 임슬기를 가둔 오두막으로 갔다. 원래는 임슬기를 구해주려고 했지만 그 결과는?그가 도착했을 때 문은 이미 너덜너덜 뜯겨 있었고 바닥엔 바퀴 자국이 있었으며 오두막에는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을 들어 바로 임슬기에게 연락했지만 그에게 들려온 것은 자신을 증오한다는 말뿐이었다.배정우는 차갑게 웃으며 주먹으로 창문을 내리쳤다. 순식
배정우는 마지못해 하얀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보았다. 분명 전부 다 아는 글이었지만 이어져 있으니 이상하게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다소 의심하는 눈길로 진승윤을 보았다.“무슨 뜻이야? 보고서를 위조한 거냐?”“배정우, 넌 멍청해진 것도 모자라 이젠 글도 못 알아보는 거냐?”진승윤은 차갑게 피식 웃었다.“지난번에 연다인이 본인 스스로 임신했는데 슬기 씨 때문에 유산했다고 했지? 하지만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연다인은 3년 전에 이미 불임 진단을 받았어.”“그럴 리가 없어. 다인이는 분명...”“분명 뭐. 분
임씨 가문 본가.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임슬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배정우가 어쩌면 자신을 찾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의 곁엔 연다인이 있었고 그녀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배정우가 자신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정원을 산책하고 나니 머릿속에는 행복했던 기억과 슬펐던 기억이 떠올랐다.‘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때 누군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임슬기?”고개를 돌린 그녀는 한참 멍하니 보다가 입을 열었다.“송재현?”
“임슬기, 남자 없이는 못 살겠어? 병원에 한 명 남겨둔 것도 모자라 이젠 밖에서 또 만나는 거야?”임슬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두 손 전부 결박당한 그녀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배정우,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연히 만난 거라고.”“우연?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차피 넌 안 믿잖아. 내가 너한테 억지로 믿어달라고 할 수나 있겠어?”“임슬기, 어제 동생을 만나게 해줬다고 이젠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임종현을 언급하지 않았을
임슬기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눈물이 흘러나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배정우는 임슬기를 반도로 데리고 가지 않았고 다른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임슬기를 안아 욕조에 내려놓은 그는 따듯한 물을 틀어주었고 이내 옷을 벗겼다.하지만 임슬기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더니 뒤로 몸을 피해버렸다. 배정우가 또 자신에게 손찌검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배정우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 그러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됐어. 옷은 네가 알아서 벗어. 갈아입을 옷은 밖에다 둘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 연다인
젓가락을 들고 있던 배정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임슬기를 흘겨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마실 뿐,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러자 배정우는 큰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임슬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너랑 단둘이 밥까지 먹어주고 있잖아. 뭘 더 바라는 건데?”임슬기는 국을 다 마신 후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았다.“배정우, 네가 은혜라도 베풀어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부부가 단둘이 밥 먹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그래?”“다인이 다쳐서 아직 병원에 있다는 거 알고는 있어?”“연다인
차가 충돌하는 순간, 진승윤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몸을 돌려 임슬기를 끌어안았다.“조심해요!”굉음과 함께 차가 나무에 부딪혀 멈췄다.머리를 부딪친 임슬기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그녀의 눈을 가렸다.임슬기가 황동혁의 팔을 잡아당기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황동혁?! 황동혁?!”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황동혁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황동혁이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임슬기는 진승윤이 다쳤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천천히 기어가 황동혁을 흔들며 쉰 목소리로 울부
호텔.금방 씻은 황동혁은 온몸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아가씨, 살려주세요!”보아하니 황동혁도 임슬기를 알아본 모양이었다.옆에서 담요를 가져와 황동혁에게 던진 임슬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고개 들어.”황동혁은 순순히 고개를 들더니 온몸을 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아가씨, 진 변호사님, 살려주세요.”“사람을 알아는 보네? 누가 진 변호사를 들이받으라고 시켰어?”황동혁은 두려운 듯 입술을 깨물며 말하기를 망설였다.“말 안 해?”임슬기가 팔짱을 끼며 침착
‘왜 속였을까?’권민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권민도 자기 대표님이 아직 사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대표님, 마지막으로 사모님과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세요?”“왜, 내가 시간 같이 못 보내 줬을까 봐?”배정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담배를 끄고 말했다.“2년 전에 임슬기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데? 계속 나를 속이고 배신했어, 그리고 지금까지도 뉘우치지 않아!”“대표님, 지난 2년 사이 대표님과 연다인 씨의 스캔들이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어요. 이 세상에 어느 여자가 자
임슬기가 서류 봉투를 받으며 물었다.“이게 뭐예요?”“오정태의 부검 보고서예요.”‘부검 보고서?’눈이 휘둥그레진 임슬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승윤을 바라보았다.“시체를 도둑맞지 않았어요?”“경찰서에 보내기 전에 전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법의학자를 찾아가 부검을 했어요. 이 보고서는 그 법의학자 분이 작성한 거예요. 임슬기 씨가 무죄라는 증거이기도 하죠.”‘무죄’라는 두 글자에 임슬기는 마음속에 있던 큰 돌멩이가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오정태의 시체는 임슬기가 무죄임을 증명했지만 그녀는 오정태의 시체를 손에
차에 돌아오자마자 김현정이 임슬기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급히 물었다.“연다인이에요?”임슬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장난 전화예요.”김현정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물었다.“언니 얼굴이 이렇게 안 좋은데 분명...”임슬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현정 씨, 다쳤으니까 먼저 금빛 아파트로 데려다줄게요. 냉장고에 있는 사골을 끓여서 먹어요. 난 일이 좀 있어서 일 마치고 밥 먹으러 갈게요.”“슬기 언니, 또 나를 혼자 두고 가려는 거예요?”조금 전 연다인의 말이 떠오른 임슬기는 눈이
“쓰레기 같은 자식! 넌 슬기 언니를 욕할 자격이 없어!”한마디 욕을 내뱉은 김현정은 배정우가 반응하기 전에 급히 임슬기를 데리고 도망쳤다.차에 탈 때까지 임슬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금 전 김현정이 사람들 앞에서 배정우를 때렸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쾌활하고 대담한 성격인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대담할 줄은 몰랐다.배정우가 체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데... 김현정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김현정이 걱정된 임슬기는 김현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현정 씨, 당장 명인시를 떠나요. 최대
“현정 씨, 말하지 마요!”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임슬기는 김현정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배정우는 임슬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이때 배정우가 임슬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폐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깜짝 놀란 임슬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배정우를 바라봤다.‘정우 씨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비웃고 있는 걸까?’“정우 씨...”“임슬기, 두 사람 연기 다 끝났어? 내가 또다시 속을 것 같아?”“배정우 씨, 내 말 모두 사실이에요. 슬기 언니는 지금 폐암 말기예요, 시간
장승태의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임슬기를 훑어보자 임슬기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장승태! 거짓말 좀 그만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임슬기는 앞으로 나가 장승태의 뺨을 때렸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던 장승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을 만지며 화를 내었다.“왜? 임슬기, 지금 증인을 괴롭히는 거야? 경찰이 밖에 있어, 불러올까?”힘껏 한 대를 때린 탓에 온몸의 기운이 빠진 임슬기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장승태는 두려워하는 임슬기의 모습을 비웃으며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임슬기, 난 지금 네 살
“뭐라고요?”이 말을 들은 임슬기는 정신이 번쩍 들어 침대에서 일어났다.“경찰관님, 뭐라고요? 오정태의 시체가 사라졌다고요?”“네, 어제 오후 진 변호사님이 시체를 운송해 와서 법의학자가 확인 후 퇴근했는데 밤중에 시체가 도둑맞았습니다.”사실 이런 일은 임슬기에게 특별히 알릴 필요가 없었지만 시체는 임슬기가 찾아와 보관한 것이었기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임슬기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오정태의 시체조차 지켜내지 못하다니... 그녀는 이런 자신이 정말로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임슬기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