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배정우의 손이 멈칫했다. 갑자기 몸을 일으킨 그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임슬기를 쳐다봤다.“임슬기, 시도 때도 없이 네 뱃속에 있는 애새끼 얘기 꺼내지 마.”임슬기는 배를 감싸며 몸을 움츠렸다.“애새끼라니... 네 아이잖아!”“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야, 배정우. 그럼 연다인이 임신한 건 왜 네 아이라고 확신하는 건데?”배정우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다인이는 너처럼 천박하지 않거든.”“그래? 그럼 네가 팔을 자른 그 남자 말이야. 사실 연다인이랑 몸을 섞는 관계라는 건 알고
연다인은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스스로의 체면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권민의 손을 뿌리치고 옷을 가다듬으며 말했다.“함부로 입을 놀리기만 해 보세요.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전 그냥 대표님 따까리일 뿐이라면서요? 제가 말한다고 대표님께서 듣겠어요? 안심하셔도 됩니다.”권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나갔다. 전해야 할 말은 이미 전했으니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오늘 일로써 연다인의 본성을 알게 된 그는 깜짝 놀랐다. 지난 2년 동안 꽤 잘 숨
“이거 놔! 놓으라고!”차에 끌려 올라간 임슬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손톱으로 흉악하게 생긴 남자를 마구 할퀴었다.그는 임슬기의 얼굴을 한 대 쥐어박으며 욕을 했다.“감히 나를 할퀴어? 죽고 싶어?”임슬기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먹은 약 효과가 온몸에 발작하면서 기절해 버렸다.어떤 몸집이 마른 남자가 그녀를 차에 던졌다.“이거 진짜 돈 벌 수 있는 거 맞아? 사기는 아니지?”“당연히 벌 수 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배정우 아내야. 돈이 없을 리 없잖아. 몇십억은 문제없을걸?”그는 다시 임슬기를 내려
‘그래서 재현이한테도 날 거절하라고 시킨 거네. 이렇게 해야만 날 납치하려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으니까.’‘내가 어두운 곳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이런 방에 가둔 거야? 이번에도 같은 이유겠지? 17년 전에 납치당했던 걸 똑같게 재현해서 날 짓밟으려고.’‘도저히 배정우를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너무 어리석고 바보 같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말을 마친 두 남자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은 다시 어둠 속에 잠겼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한편, 병원에서.배정우는 연다인에게 과일을 먹여주고 있었다.
아파트로 돌아온 배정우가 문을 거칠게 열며 소리쳤다.“임슬기!”방을 한 바퀴 돌며 살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혹시 반도 별장으로 돌아갔나?’생각도 할 틈 없이 그는 차를 몰고 급히 반도 별장으로 향했다.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엔 임슬기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정말로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도망친 걸까?’‘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건 내가 주는 벌이야. 임슬기는 반드시 내 곁에 있어야 해. 평생 떠나면 안 된다고!’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다가오지 마. 배정우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어!”“내 말을 믿는 게 좋을걸?”“아니, 그럴 리 없어.”“저항하지 마. 금방 끝낼 거니까. 최대한 부드럽게 할게.”임슬기는 뒤로 물러섰지만 뒤벽이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눈물에 젖은 채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가까이 오지 마...”“그렇게 울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잖아. 내가 잘 다뤄줄게.”말을 마친 그는 옷 단추를 풀어 헤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그가 입을 맞추려 하자 임슬기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손발이 묶여 있는 바람에 불편하다고 생각한 남자는 밧줄을
진승윤은 임슬기의 상황이 너무 걱정되었다. 그런 뉴스가 터진 데다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혹시나 배정우가 이성을 잃을까 봐 불안했다.명인시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는 산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그는 오늘 마침 옆 도시로 출장을 갔었는데 그러다가 김현정의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진승윤은 일이 터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도로를 질주하던 그는 갑자기 누군가가 차 앞을 막고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구인지 잘 보지는 못했지만 진승윤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차를 막고 서 있는 사람은 임슬기였다
“환자분도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임신 중이라서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더 생기면 우산 가능성이 큽니다.”말을 마친 의사는 약병을 꺼내 진승윤에게 건넸다.“태아 안정제입니다. 제시간에 먹여 주세요.”“알겠습니다.”의사가 문을 나서려다 잠시 멈추고 돌아서서 물었다.“도련님, 그럼 아이는...”“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상상 하지 마시고 그만 돌아가세요.”“알겠습니다.”의사가 나가자 진승윤은 방 안으로 들어가 김현정에게 약병을 건넸다. 그는 임슬기를 바라보며 살짝 미안한 지었다.“슬기 씨는 현정 씨한테 맡길게요. 태아
“현정 씨, 말하지 마요!”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임슬기는 김현정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배정우는 임슬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이때 배정우가 임슬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폐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깜짝 놀란 임슬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배정우를 바라봤다.‘정우 씨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비웃고 있는 걸까?’“정우 씨...”“임슬기, 두 사람 연기 다 끝났어? 내가 또다시 속을 것 같아?”“배정우 씨, 내 말 모두 사실이에요. 슬기 언니는 지금 폐암 말기예요, 시간
장승태의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임슬기를 훑어보자 임슬기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장승태! 거짓말 좀 그만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임슬기는 앞으로 나가 장승태의 뺨을 때렸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던 장승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을 만지며 화를 내었다.“왜? 임슬기, 지금 증인을 괴롭히는 거야? 경찰이 밖에 있어, 불러올까?”힘껏 한 대를 때린 탓에 온몸의 기운이 빠진 임슬기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장승태는 두려워하는 임슬기의 모습을 비웃으며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임슬기, 난 지금 네 살
“뭐라고요?”이 말을 들은 임슬기는 정신이 번쩍 들어 침대에서 일어났다.“경찰관님, 뭐라고요? 오정태의 시체가 사라졌다고요?”“네, 어제 오후 진 변호사님이 시체를 운송해 와서 법의학자가 확인 후 퇴근했는데 밤중에 시체가 도둑맞았습니다.”사실 이런 일은 임슬기에게 특별히 알릴 필요가 없었지만 시체는 임슬기가 찾아와 보관한 것이었기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임슬기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오정태의 시체조차 지켜내지 못하다니... 그녀는 이런 자신이 정말로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임슬기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깬
황당한 얼굴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 임슬기는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얼굴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진승윤의 손을 밀어내고 사람들 속으로 달려가던 임슬기는 두어 걸음 가기도 전에 다리가 풀려 넘어졌다.하지만 몸의 통증도 잊은 채 허겁지겁 일어나 계속 그쪽으로 달려갔다.이때 누군가 임슬기의 팔을 잡았다.“슬기 씨, 진정해요.”임슬기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현정 씨에요! 현정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가 봐야 해요!”그러고는 진승윤의 손을 뿌리치고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비켜요! 비켜요!”
경찰은 즉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이건 그날 오정태가 누군가와 만난 사진이에요.”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임슬기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사진을 보더니 숨을 헐떡였다.사진은 가짜였다. 증인도 분명 매수된 것이 분명했다.앞뒤로 임슬기를 공격해 그녀를 죽일 작전이었나 보다.연다인은 각종 증인까지 준비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살인 동기도 이미 만들어 놓았다.임슬기가 절망적인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준비해놓은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을 것 같네요.”지금 이 순간
김현정은 즉시 임슬기의 앞을 가로막았다.“무슨 근거로 사람을 체포하려는 거예요?”“당연히 증거에 근거해서죠. 체포 영장 보셨나요? 아가씨, 비키세요. 그렇지 않으면 공무 집행 방해로 고발할 겁니다.”김현정이 더 말하려는 찰나, 임슬기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알겠어요. 같이 가시죠.”“슬기 언니! 지금, 이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예요?”“현정 씨, 진 변호사님한테 연락해 줘요.”임슬기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비틀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그녀의 모습에 경찰도 마음이 약해졌다.“
배정우의 사무실에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임슬기는 비상계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그녀는 무기력하게 벽에 기대어 울다가 점점 벽을 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임슬기는 자신의 마음은 이제 강해졌고 이제는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다.하지만 연다인과 배정우의 다정한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칼에 베인 듯 아파져 왔다.임슬기는 얼굴을 가린 채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기침이 심하게 나 힘들었지만,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배정우는 단 한 번도 임슬기의 설명을 듣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그녀를 믿어준 적이 없었다.그런 배정우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에 임슬기의 마음은 또다시 찢어지는 것 같았다.산산조각이 난 심장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것 같았지만, 임슬기는 여전히 괜찮은 척, 강한 척 연기를 해야 했다.“배정우, 송재현에 관한...”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배정우가 비웃으며 말을 끊었다.“아직도 그 쓰레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 임슬기, 너 의외로 순정파였구나?”배정우의 말에 임슬기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에 얼어붙었다.‘무슨 말 하는 거지?’“배정우,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랑 송재현은...”“나가!”“배정우.”배정우의 칠흑
그 시각 대성 그룹.배정우는 휴대전화를 책상에 내던지고 무섭도록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확실해? 임슬기가 경찰서에 갔다고?”권민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방금 경찰서에서 나왔대요.”배정우는 냉소를 지었다.‘아침 일찍부터 송재현을 만나러 가? 특별히도 사랑하네. 17년의 사랑이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되는 거였나? 네가 날 쓰레기 취급을 해도 난 여전히 널 아꼈는데?’분노에 찬 배정우는 책상 위의 물건을 모두 쓸어버리며 말했다.“경찰서에 가서 증언하고 송재현을 풀어줘.”“그런데 대표님...”권민은 입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