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물만두를 사 들고 온 간병인이 진승윤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슬기 씨 보러 오셨어요?”“쉿.”진승윤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슬기 씨한테 비밀로 해요. 난 먼저 갈 테니까 잘 챙겨주고요.”간병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임슬기는 물만두를 다 먹은 다음 시간을 확인하고는 옆에 앉아 있는 간병인을 초조하게 쳐다보았다.‘대체 누가 간병인을 불렀지? 만약 배정우라면 내 행적을 전부 보고하는 게 아니야? 간병인을 내보낼 방법을 생각해야겠어.’“돌보는 환자가 나 하나예요?”간병인이
“집사님 시신 건드리지 마.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한테 뭘 더 어쩌겠다는 거야?”남자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임슬기의 볼을 어루만졌다.“나랑 하룻밤 같이 보내면 그 늙은이 시신 돌려주지. 어때?”“꺼져!”임슬기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그런 더러운 방법으로 날 협박할 생각 하지도 마.”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슬기의 두 손을 잡아 침대에 짓누르고는 코웃음을 쳤다.“그 늙은이가 너한테 중요한 사람 아니었어? 그런데도 몸을 바치기 싫어? 네 남편은 널 사랑하지도 않잖아. 어차피 그 사람은 우리 둘이 이미 돌
임슬기도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다리가 저려 같은 자세를 유지했던 것이었다.그때 배정우는 갑자기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침대에서 일으켰다.“대답 못 하겠어? 임슬기, 어쩜 이렇게 상스러워? 외로움을 하루도 못 참겠어?”“난 강요당한 거야...”“강요? 꽤 즐기는 것 같던데 어디가 강요야?”배정우의 조롱에 임슬기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현장이 이렇게 난장판인데도 모른단 말인가?결국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난 강요당했어.”임슬기가 다시 한번 말했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배정우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그런데 그 질문을 던지자마자 임슬기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이미 이 지경이 됐는데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 따져서 뭘 하겠는가? 사랑했으면 또 어떻단 말인가?임슬기가 코웃음을 쳤다.“예전에 날 평생 지켜주고 먹고사는 데 걱정 없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었어.”그녀는 그를 보며 계속 말했다.“근데 지금 우리가 어떤 꼴인지 봐봐. 지난 2년 동안 넌 날 미워하고 의심하기만 했어. 내가 뭘 하든 다 잘못한 거고 넌 계속 화만 냈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매달리
“연다인, 정우가 나한테도 약속했었어. 나의 오늘이 너의 내일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임슬기!”배정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직도 다인이를 모함해? 다인이가 사정하지 않았더라면 널 절대 용서하지 않았어.”“정우야, 그러지 마...”그는 연다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다친 데는 좀 나았어?”연다인은 그의 품에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응. 근데 네가 내 옆에 있어 주면 더 빨리 나을 거야.”“다인아, 앞으로 슬기 잘 감시해.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게 해선 안 돼.”연
임슬기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연다인은 똑똑히 들었다.‘방에 갇힌 신세에 뭘 믿고 저렇게 큰소리치는 거야?’“임슬기, 정우가 네 끼니를 나더러 알아서 주라고 했다는 거 잊지 마. 굶어 죽을 작정이야?”임슬기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었다.밖에 있던 연다인은 임슬기가 아무 말이 없자 더욱 심통이 났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오정태 시신을 내가 어디에 버렸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게 누가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래? 그 늙은이를 죽여서 바다에 던져버렸어. 아마 지금쯤 물고기 밥이 돼서 뼈도 남지 않았을 거
연다인이 차갑게 웃었다.“임슬기, 널 생각해서 밥 먹으라고 한 건데. 네 주제를 알아야지.”“그럼 문 열어. 문을 잠그고 밥 먹으라는 게 날 생각한 거라고? 가식적인 것.”“먹고 싶으면 날 기쁘게 해줘야지. 그럼 개처럼 짖어봐. 마음에 들면 문 열어줄게.”연다인이 흉악스럽게 웃었다.‘아주 제대로 망신당하게 해주겠어.’그런데 들려오는 건 임슬기의 차가운 목소리였다.“개처럼 짖어보라고? 꿈 깨.”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연다인이 문을 두드리며 협박했다.“뻔뻔한 것. 지금 안 먹으면 오늘 아무것도 못 먹을 줄 알아. 재간
연다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정우 네가 밖에서 문 잠갔잖아.”그 말에 배정우가 차갑게 쏘아보았다.“밥을 줬다고 하지 않았어? 준 다음에 또 잠갔어?”연다인은 그의 눈빛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슬기를 풀어줬다고 혼낼까 봐 그랬지...”“됐어.”배정우는 그녀의 변명을 듣기 싫은 듯 점점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임슬기, 내가 문 부수고 들어가길 기다리는 거야?”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배정우가 문을 걷어차려던 그때 연다인이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고 그의 품에 쓰
임슬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옆에 있던 간호사까지 놀라 그녀의 옷자락을 조심스레 당겼다.“사모님, 진정하세요.”하지만 임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남자에게 다가갔다. 두 눈에는 연약함과 단단한 의지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저 알아요. 당신 그냥 동생을 살리고 싶은 거죠?”그녀는 차희라를 돌아보며 말했다.“이분만 놓아주신다면 제가 약속드릴게요. 이분이 입원비를 대신 내드릴 거고 곧 도착할 육 선생님이 당신 동생을 진료하실 겁니다. 지금 이 기회를 정말로 놓치고 싶으세요?”그 말에 차희라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임슬기가 눈짓을
연다인을 떠올리자, 임슬기는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배정우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연다인의 죄를 벗겨줄까?’문득 드는 생각에 그녀는 스스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참, 나는 이런 생각을 왜 하는 거야? 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하지는 말자.’임슬기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털어 버리며 햇볕을 쬐러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임슬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다음날 산책을 나온 임슬기는 다시 차희라와 마주쳤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임슬기는 말다툼을 피하려고 일부러 못 본 척 시선을 돌린 채 차희라가
“누군가 했더니? 그 더러운 손 치워요!”임슬기가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강한 힘에 밀려 휘청거렸다.중심을 잡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금 임슬기의 앞에서 넘어진 사람은 다름 아닌 차희라였다.“여사님, 괜찮으세요?”“좀 착한 척 그만 해요. 정말 착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약혼자 주변에서 맴돌지나 말든가.”역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임슬기를 바라보는 차희라의 모습에 임슬기는 눈썹을 찡그리고 대꾸하려는 찰나,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임슬기는 허리를 굽혀 종이를 주어
진승윤은 허리를 굽혀 임슬기의 손을 잡고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임슬기, 맹세컨대 나는 모든 사람을 다 속여도 너만은 안 속일 거야. 만약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임슬기가 그의 입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맹세 같은 거 하지 마.”“슬기야.”진승윤은 잠시 멍해졌고,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어대는 심장 때문에 임슬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임슬기, 너 계속 이러면 진짜 더는 내 감정을 억제 못 할 수도 있어.'하지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임슬기는 손을 내려놓고 코를
임슬기가 김현정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혀를 내밀며 웃었다.“언니, 이건 제 탓이 아니에요. 원래 장례식장에 있었는데, 갑자기 깨어보니 하늘 위를 날고 있잖아요. 정말 소름 끼쳤어요. 누군가 언니를 해치려는 줄 알고 바로 반격했죠.”“내가 남긴 편지 못 봤어?”“편지?”김현정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봤기는 봤는데 떠나기 싫었어요.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언니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었잖아요. 언니가 사람을 얼마나 걱정시키는지 아세요?”임슬기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미안해, 또 신경 쓰게 해서.”“그런
익숙한 얼굴에 임슬기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어리둥절해서 하며 물었다.“현정아? 너 왜 여기 있어?”김현정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베개를 조절한 뒤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그건 내가 물을 말이에요. 절 버리지 않겠다 약속해놓고 왜 거짓말했어요? 심지어 수면제까지 타서 먹였잖아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절 내쫓아야 했어요?”임슬기가 반박하려 했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말문이 막혀 창백한 입술만 달싹거렸다.김현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언니, 전에 제가 왜 계속 언니 옆에 있겠다고
익숙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배정우? 하지만 배정우가 나를 부를 리가 없는데. 그는 내가 죽기만을 바라는 사람인데...’머리가 흐릿한 와중에 임슬기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죽어서 혼이라도 된 건가? 배정우, 내가 죽으면 너는 날 위해 울어 줄까?’...빈 공터에서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여기 있어요! 찾았어요!”순간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갔다.얼굴이 창백해진 배정우는 급하게 달려가 넘어지듯 땅에 무릎을 꿇고 피로 물든 손으로 빠르게 흙을 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며 땅을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빗물이 진흙을 섞어 경사진 곳을 따라 흘러내렸다.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커브를 돌며 진흙물을 튀기고는 언덕 위에 멈춰 섰다.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급히 내려 초조한 얼굴로 비가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누런 흙뿐이었다. 게다가 빗물까지 섞여 지면의 모든 흔적이 지워진 상태였다.그때, 조수석에서 한 남성이 내려 우산을 들고 빠르게 다가오며 말했다.“대표님, 범
‘무슨 냄새지? 너무 역겨운데.’임슬기는 역겨운 냄새에 토할 것 같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듯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납치된 건가? 누가 이런 짓을?’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고통으로 인해 임슬기는 의식을 완전히 잃고 기절했다....‘숨 막혀...’임슬기가 갑자기 눈을 뜨자,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암실에 갇힌 건가?’하지만 손과 발이 모두 장애물에 닿자, 그제야 임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