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말해!”유해나가 맞짱 섰다.“왜 그래야 하는데, 당신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게 사실이야?! 증거는? 납치했다는 증거 있으면 내 놔!”“증거?”원상철이 냉소하였다.“우리 철수가 바로 그 증거야! 지금 치료 중이고, 철수가 직접 목격한 건데 가짜겠어? 오늘 주효영을 내놓지 않으면 이 일 끝나지 않을 거야! 당신들 진정기 부장을 꺼내도 소용없어! 누가 와도 안 돼!”오기 전에 원상철은 이미 해야 할 준비 작업을 다 마쳤다. 경찰서에서 신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진정기 손에서 가려질까 봐 상부에 보고도 했다.비록 진정기는 항상 정직하며 평판이 좋았지만 얼마 전 그 백신 프로젝트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심이 떨어져 자신도 진정이랑 친하지 않아, 한 손만 남겨도 틀림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 진정기와도 친하지 않으니 한 수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원상철이 먼저 진정기를 꺼낸 것을 듣고 주현철은 갑자기 이 일이 좀 까다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믿는 구석이 있어 이렇게 덤비는 것이 틀림없다.“화내지 마세요!”그는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일이 밝혀지기 전에 다들 원수 아니잖습니까, 당신이 아들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딸을 믿어요, 아니면 한자리에 불러서 대놓고 말해보는 게 어때요?”말을 마치고 원철수는 자기 아내에게 곁눈질했다.유해나가 곧 알아차렸다. 어찌 되었든 간에 먼저 주효영에게 알리고 그녀에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 했다. 이 미친 원씨 집안 사람들이 정말 그녀를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좋아, 그럼 주효영을 먼저 불러내!”원상철은 사람을 시켜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주효영이 집에 들어갔다는 걸 보고 받은 후 사람을 불러 이 집 문을 막았다.‘지금 내놓지 않으면 이곳을 싹 다 뒤집어서라도 찾을 거야!’주현철이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내놓지 않는 게 아니라 주효영이 정말 집에 없어요, 애가 실험에 푹 빠져서 며칠동안 집에 발붙이지 않았거든요,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 와이프에
“그 말은 우리가 직접 뒤져도 된 다는 말인가? 당신 사람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움직일 수밖에 없어!”원상철은 주현철이 사람을 내놓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손을 흔들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다.상황을 지켜본 주현철이 이내 굳은 얼굴로 외쳤다.“왜 우리 집에 사람 없을 것 같아요?”주씨 저택에도 경호원이 있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누군가가 다가와 막았다. 갑자기 두 무리의 사람들이 마주보고 대치하면서 곧 싸움이 날 것 같았다.유해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나 전화를 걸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먼저 주효영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원씨 집안 사람도 미쳤는지 여기에 와서 행패 부리는데 주효영이 이대로 돌아오면 반드시 손해를 볼 것이다. 유해나는 조용히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쪽의 동정을 주시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전화는 통하지 않았고, 그녀도 급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안 그래도 주씨 부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김채림은 유해나가 언뜻 옆쪽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보고 손에 핸드폰까지 쥐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다.“당신!”유해나의 손목을 잡고 힘껏 비틀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갑자기 손이 잡히자 유해나는 어리둥절해졌고, 이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뭐 하는 거야! 감히 내 손을 잡아?!”“몰래 전화해서 도망가게 하려고? 그건 안 돼지!”콧방귀를 뀌며 김채림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핸드폰을 빼앗았다.유해나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두 여인이 서로 달라붙어 쌈박질 했다. “원상철 너, 너무 심하게 굴지 마!”아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주현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누가 할 소리!”한 걸음 앞서서 그와 눈을 마주치며 원상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인정 못하면 그냥 사람을 불러내 물어보시든가!”“효영이 여기 없다니까!”힘껏 소리를 지르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당신 이러는 거 일을 키우는 거야, 내가 법원에 고
“누가 감히 내 집을 건드려!”주현철도 급했다. 방금 사람들은 어디서 났는지, 언제 들어갔는지 전혀 몰랐다. 지금 원상철은 대놓고 이렇게 많은 부하들 앞에서 그의 집을 수색하려 하는데 만약 정말로 성공하면 그도 완전한 체면 상실이다.갑자기 원상철의 앞에 서서 그와 마주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한편 유해나와 김채림은 여전히 싸움질이다. 두 사람은 서로 잡고 뜯으며 서로 얽혀 있었다. 이때 빼앗은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두 사람 모두 멍하니 있다가 더 심하게 빼앗았다.유해나는 손가락으로 꽉 쥐어서 핸드폰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빠져나와 한쪽으로 비켜서 수화기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뭐라고?”겁에 질린 얼굴과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유해나한테로 집중되었다. 다시 한번 달려들어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는 김채림조차 어리둥절해져서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그게 무슨 개소리야!”유해나는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뚝 끊었다.그러나 모두가 유해나가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의 근육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고, 영혼이 빨려 들어간 듯 눈빛은 허전했다.“누구 전화야?”아내의 기색이 안 좋아 보이자 주현철이 입을 열었다.남편의 목소리에 깨어난 주 부인은 멍하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눈을 깜박이고 입을 벌리더니 갑자기 이를 악물었다. “사기꾼! 사기꾼이예요!”주현철이 믿었다.“사기꾼인데 왜 그렇게 흥분해? 신경 쓰지 마, 요즘 세상에는 입만 열면 욕지거리 하는 사람도 있어, 무슨 사람이든 두려워할 거 없어, 다 처리할 수 있으니까. 형부한테 전화해서 집에 미친개 몇 마리가 왔다고 해, 경찰서한테 미리 귀띔도 해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휴대전화도 울리기 시작했다. 벨이 울렸을 때 유해나는 충격을 받아 놀란 듯했다.얼굴을 찡그리며 주현철은 핸드폰을 꺼내서 막 받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유해나에게 눌렸
“개소리 그만하고, 나…….”핸드폰 벨이 계속 울렸고, 주현철은 이를 악물었다. 그를 약 올리려고 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 일 또한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주현철도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주효영이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전화를 누르고 스피커를 켠 다음 먼저 말했다.“효영아, 너 지금 실험 중이니? 바빠도 건강은 챙겨야 해! 참, 원씨 집안의 어른들이 널 찾아와 뭘 좀 물고 싶다고 하던데…….”그는 원래 주효영에게 곁에 사람이 있으니 말 조심해라는 뜻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저예요! 아가씨 사고 났어요!”주현철을 멍하니 잠시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멀뚱멀뚱 원상철을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이 말이 전화에 나오는 사람이 한 말이라는 것을 반응했다.“뭐라고?”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아가씨 사고 났다고요! 공장 건물에 폭발이 나서 아가씨가…… 탈출하지 못하고 그만…… 아까 사모님께 전화했는데 믿지 않아서, 저…….”그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소방차와 경찰차의 시끄러운 경적소리, 혼잡한 소란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바람이 소리를 지르며 휘몰아치고, 여러 명의 목소리와 함성이 어우러져 귀를 찢는 소리가 되었다.주현철은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어떤 무거운 것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던 유해나가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휴대전화를 껴안고 수화기에 대고 소리질렀다.“거짓말! 거짓말! 너 누가 시킨 거야, 왜 우리 효영이를 저주해! 말해, 말해…….”“사모님, 저예요, 저…….”저쪽은 억울해 보였다. “빨리 와 보세요, 경찰이 이미 도착했습니다. 이쪽…….”주씨 두 부부도 그렇고, 원상철 부부도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고, 서로의 눈에서 의심을 알아차렸다.‘이게 우연일까?’그들은 분명 주효영에게 따지고자 여길 왔는데 하필 이때 주효영이 사고가
“잠깐만요!”잠자코 있던 원상철의 아내 김채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리도 같이 가요!”“당신들 정말! 이런 상황에서도…….”그녀의 말을 듣자 유해나는 화가 나서 울부짖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주현철이 유해나의 팔을 붙잡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들 마음대로 해!”주현철 부부는 차에 올라타 공장 쪽으로 질주했고, 원상철 역시 김채림을 끌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 그들 뒤를 따랐다.두 대의 차는 경주를 하는 것처럼 앞다투어 교외의 어느 한 폐기된 공장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근처에는 온통 검은 연기에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귀를 찔렀다.주씨 가문의 차가 먼저 도착했다.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차에서 뛰어내려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사고 현장에는 경계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가로막혔다.간단하게 그들과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주현철 부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그리고 원상철의 차도 곧 멈춰 섰다.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채림아…….”원상철은 차가워진 김채림의 손을 잡으며 작게 그녀를 불렀다.“이 두 사람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요?”김채림은 숨을 한번 고르고 조심스레 원상철에게 물었다.“모르겠어요.”원상철은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떼었다.“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두 사람도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로 다가갔다.그러자 유해나가 그 자리에 서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그런 유해나에 비해, 주현철은 오히려 침착해 보였다.하지만 주현철도 심각한 얼굴로 눈이 빠지게 창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불길은 거의 다 잡혔다. 다만 창고 안에 아직 불이 살아 있고 연기도 심했다.멀리 서 있어도 연기와 열기에 눈과 목이 따가웠다.“화재 발생 원인은 아직 조사하고 있습니다. 초보적인 판단으로는 화학약품에 의한 폭발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창고
원상철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확실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들것으로 들고나온 것은 천으로 덮인 것이어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덮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천 밑에서 한 귀퉁이가 드러난 옷을 유해나는 한눈에 알아봤다.“효영아…….”주현철은 순간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유해나는 들것에 몸을 던졌고, 그 위에 눕혀져 있던 시신이 우당탕 땅으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얼굴에 덮었던 천도 그대로 떨어졌다.“악!!”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얼굴에 유해나는 비명을 질렀다.뒤따라오던 김채림도 시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원상철은 그래도 반응이 빨라 곧바로 손으로 아내의 눈을 가렸다.“보지 마요!”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무서운 것 없는 남자도 그것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시신을 마주한 사람들은 온몸의 솜털이 모두 곤두서기 시작했다.시신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려 숯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김채림은 그 시신을 보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모습을 본 원상철이 아내의 두 눈을 가리고 품으로 끌어안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원상철의 품에서 바들바들 떨었다.반면, 유해나는 놀라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옆에 있던 사람들이 덩달아 놀라 유해나를 들것에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주현철도 더 이상 시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흰 천으로 다시 시신의 얼굴을 가렸다.그중 한 사람이 그들에게 말했다.“시신은 여성이고 아직 신원이 불분명합니다.”“네. 수고하셨습니다. 남은 건 법의 조사관에게 맡깁시다.”“안에 아직 몇 구의 시신과 시신 잔해가 남아있습니다.”말이 끝나고 소방관들은 다시 창고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방금 기절하신 부인님께서 이 시신이 자기 딸이라고 하셨는데, 알아보시겠습니까?”경찰이 주현철을 한번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주현철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정신을 가다듬고서야 경찰의 말에 대답했다.“이 옷은 우리
돌아오는 길에 김채림의 기분이 약간 가라앉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방금 봤던 시신의 시각적 충격이 너무 강해서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생각하지 마요.”그녀의 한쪽 귀를 막고 가볍게 품에 안으며 원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김채림은 발버둥 치며 몸을 돌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원상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주효영이 정말 죽었을까요?”“나도 모르겠어요.”“어떻게 그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죠? 하필 우리가 그 여자를 찾으러 갔을 때 사고가 났어요! 더구나, 우리 사람들은 분명히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 여자가 버려진 공장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공교롭게도 폭발하는 사고 일어났는지, 모든 게 다 수상해요. 마치…….”김채림이 말끝을 흐리자 원상철이 물었다.“마치 뭐요?”김채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마치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나요?”“당신 말은 그들 부부가 연기를 한다는 건가요?”사실 원상철도 이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주현철 부부는 정말 음침한 사람이다.원상철은 이미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고 모두 비밀리에 진행하게 했다. 그런데 주현철이 어떻게 진작 알아차리고 그들이 대응하려 이런 일을 꾸몄을까?게다가 이런 일을 꾸며 주효영이 가짜로 죽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지만 김채림은 남편의 생각을 읽은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들이 연기를 하는 거 같지는 않았어요. 만약 정말 연기를 한 것이라면 너무 무섭지 않나요? 연기대상을 받아도 될 만한 연기인걸요! 전에 유해나라는 사람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방금 유해나가 시신에 덮쳤을 때 바로 기절했었다. 그건 연기로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그들의 연기가 너무 좋아 속아
차가 원청현의 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진 후였다.도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도시의 번쩍이는 네온등이 없어 조용하고 온화했다.오는 길에 원상철은 먼저 원청현에게 전화를 했었다.아니나 다를까 원상철이 입만 열었을 뿐인데 바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주효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멈칫하는 것 같았다.나중에는 한참 침묵하다 그제야 그들이 가는 걸 막지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오는 길에 미행당하지 말라고 당부만 했다.그래서 그들이 원청현의 정원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다.두 사람을 태운 차는 소리 없이 들어와 멈춰 섰다.원상철이 차에서 내릴 때 그들의 차 옆에 또 한 대의 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낯선 번호의 고급 차가 있었다. 원상철은 이상하다 싶어 두어 번 더 보았다.‘손님이 있나?’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있었다. 원청현의 집에 손님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었다.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이니 더욱 이상했다.오기 전에 원청현이 물어보지 말아야 하는 건 묻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원상철은 다른 말 없이 아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원청현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그러자 원상철은 더욱 의심이 들었다.분명 낯선 차가 있는데 손님이 없다니?“이 늦은 시간에 굳이 오겠다고 난리냐?”원청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둘째 삼촌,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방금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원상철이 말을 마치기 전에 원청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됐어, 이상하긴 무슨! 너희 두 사람이 아들 보고 싶어서 온 거잖아!”이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자, 원상철의 얼굴이 뜨거워졌다.반면, 김채림은 그다지 게연쩍어하지 않았다.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둘째 삼촌 말이 맞아요. 난 아들이 보고 싶어서 온 거에요. 내가 낳은 자식이고 어려서 부터 부족할 거 없이 키웠어요. 이렇게 마음 아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