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곳에 잘 있어요."한소은은 일부러 둘러 말했다.그녀가 원 어르신에게 의술을 배운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부러 김서진에게 숨기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이 일을 말하든 하지 않든 크게 의미가 없었다."안전한 곳?"김서진은 깊은 눈빛으로 한소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아직도 나한테 비밀이 있는 거예요?"“왜요, 당신만 이런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둔 집이 있는 건 괜찮고 나는 안된다는 거예요?”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밀실 주위를 둘러보았다.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 빼고는 일반 집과 별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답답한 느낌조차 없었다.“이 곳에는 환풍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요. 지하지만 답답하지 않죠. 다만, 햇빛은 어쩔 수 없어요. 조금 어둡긴 해도 안전이 제일이니까요.”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김서진이 설명했다.“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참, 뉴스에서 이번 전염병에 걸리면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미각이나 후각을 잃는다고 했어요. 혹시 이런 증상 있었었나요?”김서진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처음에는 가슴이 조금 답답하면서 아프다가 당신이 준 향낭을 맡으니 편해졌어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맡으면 증상이 완화되곤 해요.”“향낭?”한소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래요!”김서진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에서 꾸깃꾸깃해지고 향이 많이 옅어진 향낭을 꺼냈다.이건 그가 제성을 떠나기 전 한소은이 준비해 준 것이다. 안에는 그녀가 직접 한약재를 섞어놓은 것들이다. 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폐를 깨끗하게 해주는 약들로 가득 채웠다.남아시아에 기후가 덥고 모기와 벌레들이 많아 곤충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김서진이 편히 잠들게 하려고 준비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효능이 있을 줄은 한소은도 생각지 못했다."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돌아가야 해요. 여긴 해가 일찍 지거든요."김서진이 시간을 한번 보고 말했다."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한소은은 향낭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
주 부인은 이틀 동안 별다른 소식을 얻지 못해 조금 낙심이 되었다.원래 이 문제는 그렇게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소문은 조금만 수소문해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 부인이 모든 인맥에 물어보고 직급이 높은 사람의 아내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정확한 소식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처음에 그녀는 사람들이 진정기와의 관계 때문에 이런 일을 말하지 못하는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자기의 시누이가 죽은 지 오래되었으니 새로운 여자를 찾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며 그들의 말을 떠보려 했다.하지만 그런데도 모두 그녀에게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었다.심지어 진정기가 여자를 찾았다면 어떤 여자를 찾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이틀 동안 입이 마르도록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고지난 이틀 동안 입이 마르고 목이 담배를 피우고 유용한 것이 없었고 주현철은 점점 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매일 미용하고 친구들과 모임만 하는거 말고 뭘 더 할 줄 아는 거야? 이런 작은 일도 제대로 못 해?”주현철은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런 작은 일이라고요? 이게 작은 일 같으면 당신이 직접 해요! 그 사람들이 오히려 당신 매형이 어떤 여자를 찾았는지 물어보는 거 알기나 해요? 심지어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여자도 있다니까요!”주 부인은 물 한 모금을 크게 마시며 목을 축였다. 그녀는 기분이 아주 언짢은 듯 남편의 말에 대답했다.“진정기 그 사람이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 당신도 알잖아요! 당신, 도대체 어디서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거예요? 이거 진짜인 거 맞아요?”“당연하지! 이게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내가 보기엔 너희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 허구한 날 재잘재잘 말만 할 줄 알지, 한치도 쓸모가 없어!”“그럼, 당신이 직접 수소문해요! 당신에게 이런 소식을 준 사람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요! 진정기가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걸 알려줬는데 누구인지 말 안 해 주겠어요?”주 부인이 소리를 지르자
“가서 사과하라면서. 가면 되잖아!”‘사과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 거야! 차라리 혼자 찾아갈걸…….’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간다면 자연스럽게 백신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있다.보스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니 주효영은 점점 더 짜증이 났다.“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그녀의 말투가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았다.“가!”“안가!”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주현철은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주효영이 가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진정기가 자기를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결국 그는 진정기와의 사이를 이대로 틀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백신 프로젝트가 자기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진정기라는 매부이 있는 한 다시 판을 뒤집을 기회가 있다.진정기 매제라는 신분은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반면, 주 부인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주효영의 손을 잡았다.“효영아, 엄마는 네가 억울하다는 거 알고 있어. 진심으로 사과하려는 게 아닌 것도 알아. 게다가 이번 일은 모두 네 탓이 아니잖아. 가연이 그 아이가 잘못 서는 바람에 그런 거지. 네가 가서 사과할 필요 없어. 엄마가 대신 가서 사과할게!”주 부인은 딸이 걱정되기도 하고 딸과의 사이를 조금 완화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하지만 주효영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탓이 아니면 엄마 탓이야? 엄마가 민 것도 아니잖아.”“…….”주 부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갈 거야 말 거야? 나 오늘 엄청 바쁘거든!”주효영의 얼굴에는 인내심이 조금도 없었다.“가! 당연히 가야지!”주현철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하지만 경고하는데 이런 태도에 이런 얼굴로 사과할 생각하지 마!! 이게 어디 사과하는 사람의 모습이야?
주현철은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이상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곧 진정기의 집에 도착하니 더 이상 이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세 식구가 진정기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문전박대를 당했다.“아가씨께서 지금 집에 계시지 않으니, 다음에 오세요.”진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대신 말을 전하러 나왔다.“집에 없다니! 가연이는 매일 집에 있었잖아. 왜? 또 한소은 그 여자한테 간 거야?”주 부인이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주 부인은 이곳에 올 때마다 바로 들어갔었다. 지난 이틀 동안 작은 일로 인해 사이가 틀어져서 안 왔을 뿐인데, 아랫사람들이 감히 얼굴을 내밀고 문을 막아서 정말 화가 났다."아니요, 아가씨는 쇼핑하러 나갔어요."말을 전하러 온 사람이 대답했다.“쇼핑? 그럴 리가 없어! 가연이가 일 년에 몇 번 집을 떠나지도 않고 쇼핑하러 가는 횟수를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직도 화가 나서 나를 만나기 거부하는 거지? 들여보내 주면 내가 얘기해 볼게."그러면서 주 부인은 강제로 밀고 들어가려 했다."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정말 쇼핑하러 갔어요. 지금 집에는 아무도 집에 없어요."그녀가 강제로 들어오려 하자 일하는 아주머니가 급히 문을 막아 나섰다.이건 집주인이 지시한 일이다. 진정기는 자기의 허락 없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가연이가 집에 없다면 고모부는?”주효영이 담담하게 말했다.“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오늘 고모부가 집에 있다는 소식을 알고 온 거니까!”“주인님도 집에 없어요. 아가씨와 함께 쇼핑하러 가셨어요.”일하는 아주머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함께 갔다고?!”세 사람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주 부인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그렇게 바쁜 사람이 가연이와 쇼핑할 시간이 있다고?”“네.”“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세요.”일하는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말했다.그러고 나서 대문을 쿵 하고 닫아버렸다
"신의 말이에요!"주 부인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그러고는 고개를 주효영에게 돌렸다.“신의?”주현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가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내지 못한 눈치였다.“맞아요! 그래도 가연이의 병을 치료해 주고 몸까지 조리해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가연이가 독에 중독된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이기도 하고! 진정기는 분명 신의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을 거예요!”“진정기 그 사람이 아무리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해도 은혜를 갚지 않는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요! 혹시 신의가 우리를 대신해 말 몇 마디 해준다면 그 어떤 사람이 말한 것 보다 효과가 있을 거예요! 심지어 그를 데려온 나에게 감사해서라도 용서해 줄지도 모르잖아요!”이렇게 생각하니 주 부인은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주효영은 주 부인의 말에 대답을 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주현철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우릴 돕겠어?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신의란 사람, 그렇게 도도한 척한다고 하던데?”주현철이 이렇게 말하니 주효영이 작게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주 부인이 남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 가려서 하라고 눈짓했다.“그렇긴 하지만 내가 가연이의 병을 좀 봐달라고 찾아갔을 때 생각보다 친절했어요. 이것도 인맥이라면 인맥이고 내가 진료비로 준 게 얼마인데! 그저 말만 몇 마디 못 전해주겠어요? 이 정도는 도와주겠죠!”“그럼 뭐해, 얼른 연락하지 않고!”주현철은 아내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재촉했다.“이제 생각이 난 거잖아요! 바로 연락해 볼게요!”주 부인은 핸드폰을 꺼내 원철수가 줬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반면, 주현철은 초조하게 아내를 바라보았다.“걸렸어?”“…….”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은 주 부인은 울상을 지었다.“전화기가 꺼져있대요.”“내가 이럴 줄 알았어!”방금 떠오른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주현철은 분노했다."내가 뭐랬어, 그 사람이 어떻게 우릴 돕겠어!
이렇게 말하니 들어가던 진정기와 진가연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아무 말 없이 옆에서 멀리 떨어져 서 있던 주효영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몸을 움직여 천천히 다가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고모부 죄송합니다. 가연아, 미안해."그녀의 입에서는 진지한 사과가 흘러나왔지만, 몸은 올곧게 서 있었다."그날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순간 급해서 실수한 거예요. 가연아, 지금 몸이 괜찮아진 걸 보니 나도 안심이 돼.""정말?"진가연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언니는 내가 멀쩡한 걸 보고 정말 기뻐하는 거야?"그녀의 말에 주효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떴다. "……."옆에 있던 주 부인은 불안해하며 서둘러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연아, 네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하지 못했잖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너를 걱정하고 있어!""전에는 매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집에 거의 오지도 않았잖아. 이번에 네가 다치니까 걱정도 되고 죄책감도 들어서 일부러 찾아와서 너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너희 둘 다 자매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만하고 그냥 용서해! 나중에 우리가 다 세상을 떠나면 너희는 서로의 유일한 가족인거야!"진가연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면 언니에게 감사해야겠군요.”주현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의 아내가 이렇게 까지 말했으니 진가연이 한발 물러설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진가연은 한발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괴상한 말투로 말했다.“가연아, 네 외숙모 말도 맞아. 만약 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사촌끼리 싸우는 걸 원치 않으셨을 거야. 그날 일은 너와 가연이가 싸운 거 우리가 다 봤잖아. 이 일은 효영이 잘못도 있으니까 네게 사과하는 게 맞아. 하지만 자매니까 장난으로 삼고 지나가면 안 되니?”주현철도 옆에서 몇 마디 거들었다. 이렇게 까지 말했으니 진가연이 물러설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좋은 지적이에요, 외삼촌
그렇게 말한 후 진정기는 딸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이 말을 들은 주현철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것 같아 안심했다. 그는 아직 자기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했다.주현철은 아내와 딸에게 서둘러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다.집에 들어가자 진가연은 코트를 벗고 손과 얼굴을 씻으러 갔다.그러고 나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준비한 차를 건네받고 그녀는 몇 모금을 마셨다.그런 그녀의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무슨 차 마신 거야? 약 냄새가 좀 나네?"주 부인이 킁킁 냄새를 맡더니 진가연에게 물었다."허브로 만든 차에요. 제 개인 체질에 맞게 맞추어서 외숙모와 외삼촌에게 내줄 수 없네요."진가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집에 다른 차와 커피가 있어요.""오, 그렇구나! 그럼 몸조리하는 차라는 거지? 신의가 내린 처방전인가? 아이고, 가연아 그분께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해야지."주 부인은 즉시 그녀의 말을 따라 원철수를 언급했다.그 말은 신의는 자신이 모셔 온 것이니, 자신의 수고를 잊지 말라는 말이다.희미하게 웃으며 진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주 부인은 다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진정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모두 한꺼번에 해. 여기 왔으니 들어는 보겠어. 앞으로는 바빠서 시간이 없을 거야."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꼼꼼한 사람이었다.주현철은 목을 가다듬고 진정기에게 말했다.“매부, 오늘 왜 왔는지 알고 있죠?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요. 말이 심하게 한 건 맞아요. 하지만 매부, 날 이해해 주실 거죠?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았고 다들 그 프로젝트가 내 것이 될 거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매부가 바람맞힌 바람에…….”“말은 똑바로 해. 누가 바람맞혔다는 거야?”그의 말을 끊은 진정기는 정색하며 말했다."내가 언제 프로젝트를 네게 주겠다고 말했었지? 게다가 입찰은 절차를 거쳐 하나씩 검토해야 하는 거야. 내가 혼자서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전에도 여러
진가연의 말에 주씨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멍해졌다.부부는 그녀가 어떻게 갑자기 말을 바꾸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가연아, 너 혹시 착각한 거 아니야? 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네 외삼촌 편을 들지 않을 수 있겠어. 네 외삼촌은 네 엄마의 유일한 동생인데. 팔꿈치가 어떻게 밖으로 굽겠냐는 말이야!”주 부인이 서둘러 말했다.“그럴 리가요! 아까 외숙모와 외삼촌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우리 엄마는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큰일에 있어서는 분명 사리 분별을 할 거예요.”“백신은 작은 일이 아니에요. 해외에서 얼마나 발전이 되었는지 봐요. 지금 우리나라는 시간이 급박하고 임무도 무거워요.”“그러니 꼭 잘해야 하는 거죠! 외삼촌의 회사는 좋긴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요. 게다가 백신을 뒷받침해 줄 기술도 없어요. 만약 강제로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면 아마 힘이 많이 들 거예요. 외삼촌이 힘든 건 둘째 치고 잘못하면 온 세상에게 욕먹을 거예요.”진가연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만약 엄마가 아직 살아계셨다면 분명 외삼촌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이 프로젝트를 주지도 않았겠죠.”“너…….”주현철은 욕을 참지 못할뻔했다.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너희들은 비즈니스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그러고는 진정기를 향해 말했다."매부,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진정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는 한 손으로 딸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한 손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으며 다소 엄숙한 말투로 주현철에게 말했다.하지만 자기의 딸을 보는 눈빛은 더없이 부드러웠다."그 백신 프로젝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변경할 수 없으니 다른 프로젝트를 살펴보고 저에게 적합한 프로젝트를 한 개 주세요."그는 진정기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돼요. 최소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