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언이 말했다."구택은 몸이 좀 불편해서 우리 먼저 케이크 먹어요. 이따가 제가 가볼게요.”유민과 구택의 사이는 무척 좋아서 그가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유민은 다소 불쾌해하며 무뚝뚝하게 소원을 빈 다음 케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그는 초콜릿이 많이 든 케이크를 소희에게 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초콜릿은 특별히 샘한테 남겨 주는 거야.”소희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고마워, 생일 축하해!”소희는 벤치에 가서 앉아 천천히 케이크를 먹었다. 잔디밭에서는 어떤 사람이 떠들며 케이크를 유민의 몸에 바르고 있었고 점차 유림 그들도 이 게임에 합류했다.유독 소희만 끼어들지 않고 열심히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정숙은 소희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중일에게 눈짓을 하며 가보라고 했다.중일은 케이크를 들고 그녀의 옆에 앉아 담담하게 웃었다."단 음식 좋아하나 봐요? 내 것도 먹어요!”소희는 이미 자신의 접시에 있는 케이크를 다 먹었고 그의 말에 케이크를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고마워요!중일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진귀한 케이크를 먹지 않고 오히려 던지고 놀다니. 정말 낭비군요!”소희는 입안의 케이크를 삼키며 담담하게 말했다."굶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중일은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는 굶어본 적 있어요?”소희는 눈을 떨구며 담담하게 말했다."많이요.”중일은 다소 의외를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정말 케이크를 좋아하는 거 같아 웃으며 말했다."내가 또 썰어줄게요!”소희는 고개를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고마워요, 나도 이제 배불러요!”중일은 그녀가 진지하게 배부르다고 말하는 모습에 가슴이 설레며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밥도 아직 먹지 않았는데, 벌써 배가 부르면 어떻게요?”소희는 접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미안해요, 나 먼저 갈게요!”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민을 찾아 그에게 인사를 했다.유민은 얼굴에 케이크다
오후 9시, 케이슬 8층.시원, 백림 그들은 모두 오늘이 유민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구택이 집에서 유민과 같이 놀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룸에 들어간 후 구택이 혼자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탁자 위에는 이미 빈 병이 있었고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은 평소와 같이 담담했으며 눈빛은 그윽해서 어떤 이상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시원 등은 유민에게 줄 생일 선물을 테이블 위에 놓았고, 구택은 손을 들어 모두들에게 술을 따라주었다."내가 유민이 대신해서 고맙다고 말할게.”사람들은 한바탕 웃고 떠들다 시원은 그들더러 놀러 가라고 한 뒤 자신은 구택과 함께 술을 마셨다."오늘 네 집에는 모두 손님인데 집에서 유민이랑 있어주지 않고 이곳에 와서 혼술 마셔?”구택은 천천히 술을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람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 나서. 그래서 나왔어.”시원은 헤헤 웃었다. 한 쌍의 눈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소희 씨와 관련 있지?”구택은 시원을 힐끗 보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 도대체 왜 그래, 나한테 말해봐. 네가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 나한테 말해서 내가 대신 해결해 주는 게 더 낫지."시원이 웃으며 물었다.구택은 술잔을 들고 한 모금 크게 마시며 소희가 자신한테 운성으로 돌아갔다고 거짓말해가며 병원에서 한 남자를 돌보는 일을 간단하게 말했다.“그 남자는 그녀와 무슨 관계지?"시원이 물었다.구택은 나지막이 말했다."모르겠어, 나도 관심 없고!”사실 그는 병원에서 들은 그 잡담들을 믿지 않았고 소희가 그와 함께 있을 때 다른 남자와 썸을 타는 것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를 위해 그를 속인 것은 사실이었다.그렇다면 그 남자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어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그는 그 남자를 조사하지 않았고 마치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사실을 숨겼고 심지어 자신더러 그 남자의 모습을 보
며칠 뒤, 구택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2층을 지날 때 정숙이 베란다에서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최근에 소희와 연락은 했어?”“바쁘다는 핑계 대지 마!”“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상 좀 서둘러. 혼자 좋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너 자꾸 이렇게 꾸물대면 다른 사람이 소희 채갈지도 몰라!”정숙은 전화를 끊고 몸을 돌리자 구택이 계단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아까 어머님께서 도련님이 돌아오셨냐고 여쭤보셨는데.”구택은 새까만 눈동자로 담담하게 웃었다."형수님 요즘 바쁘지 않으신 가봐요? 중매인도 하시고.”정숙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우리 엄마가 그날 소희를 보고 그녀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듬직한 소녀가 적어졌다고 하시면서 줄곧 나더러 중일에게 전화를 해서 신경 좀 쓰라고 재촉하셨어요. 중일은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고모인 내가 좀 많이 도와줘야죠,"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층으로 갔다.샤워를 마친 남자는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별장 구역은 시내처럼 밤에 여전히 번화하고 떠들썩하지 않았고 이때 완전히 조용해졌다.몽롱한 달빛, 시원한 밤바람, 그리고 한 덩어리의 등불이 나무 그림자에 뒤덮여있어 마치 불꽃놀이가 드문 대지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그는 이미 며칠 동안이나 소희를 보지 못했고 생활과 일도 점차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밤에는 가끔 그런 충동을 느꼈지만 샤워를 하고 나면 또 평온해졌다.다만 수면 질량이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 예전엔 그냥 잠들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예 불면증으로 변했다.불면증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괴로워하지 않았고 또 낮에 일할 때 그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그렇게 많은 수면이 필요 없다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날 점심, 소희는 중일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저녁에 시간이 있냐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물었다.소희는 완곡하게 거
중일은 약간 실망했지만 태도는 여전히 진지했다."괜찮아요, 전에도 이런 일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할머니 그들도 우리가 잘 안 맞는다는 거 알고 그러려니 할 거예요.”그는 케이크를 소희에게 건넸다."어차피 가져왔으니 그냥 가져가서 먹어요. 동료들과 야식으로 먹어도 좋죠.”소희는 받지 않았다.“가져요 그냥, 우린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냥 친구잖아요! 케이크일 뿐, 나도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아서 소희 씨가 안 받으면 나도 버릴 수밖에 없어요."중일은 아예 소희의 손을 잡고 케이크를 그녀의 손에 넣어줬다."얼른 출근하러 가요. 나도 갈게요.”소희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고마워요, 할머니께 고맙다고 전해주고요!”시원과 구택은 차에서 내려 케이슬로 들어갔다. 시원은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저기 그 사람 소희 씨 맞지?”구택은 바로 고개를 돌려 소희와 중일이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중일은 케이크를 소희의 손에 넣어주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녀와 얘기하고 있었다.남자의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곧 고개를 돌려 천천히 케이슬 대문으로 걸어갔다.시원은 구택의 안색을 힐끗 살피며 그가 정말 개의치 않는 건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건지 의혹해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와 함께 들어갔다.소희는 들어가서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렸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심명의 그 준수하고 사악한 얼굴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서프라이즈를 느끼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우리 자기야!”네댓 명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단번에 소희에게 떨어졌고, 그녀가 케이슬 종업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사색에 잠기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또는 부러워했다…….소희는 안색이 가라앉으며 즉시 몸을 돌려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지만 심명은 얼른 그녀의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잡아당겼다."빨리 들어와요. 다른 사람들 타는 거 방해하지 말고.”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소희는 표정이 차가웠다."앞으로 나한테서 좀 떨어져요, 승낙하면 풀어줄게요!”“싫어요!" 심명은 코웃음치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사람 때려요, 여봐라, 여기 지금 사람 때리고 있어요!”그는 매력 있는 얼굴에 개인 맞춤형 양복을 입은 채 한 종업원에 의해 손이 꺾이며 사람 때린다고 소리치고 있었다.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소희는 고운 미간에 분노를 띠고 있었고 심명의 허리를 잡고 바로 그를 들어 올리며 던져버리려고 했다.심명은 놀라서 큰 소리로 외쳤다."자기야, 설마 진짜로 나 죽이려는 건 아니겠죠!”옆에 있던 종업원 몇 명도 놀라며 누군가가 소리쳤다."빨리 가서 미선 언니를 불러!”소희는 심호흡하며 자신에게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심명을 어깨에 메고 재빨리 휴게실로 들어갔다.“소희야,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종업원이 쫓아와서 물었다.심명은 소희의 어깨에 엎드려 그 종업원을 노려보았다."우리 지금 사랑싸움하는 거 안 보며? 꺼져!”그 종업원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붉었다 하얬다 했다.뒤에 있던 종업원도 쫓아오며 입안이 벙벙했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소희가 지금 심명 도련님을 어깨에 메고 있는 거야? 힘이 왜 그렇게 세지?”소희는 심명을 메고 휴게실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마침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바로 문을 닫았고 심명을 소파에 힘껏 던졌다.심명은 놀라면서도 눈빛은 무척 흥분했다."자기야, 일단 문부터 잠가요!”소희는 그를 노려보며 정말 그를 한바탕 호되게 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8층.방금 소희를 만난 남자는 8809호 룸에 들어간 뒤 여러 사람들하고 인사를 하고는 시원에게 물었다."소희 씨 요즘 왜 8층에 없는 거야?”시원은 구택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6층으로 전근됐어!”남자는 문득 깨달으며 다시 성난 말투로 말했다."심명 그 망할 자식, 내가 방금 올라왔을
구택은 멈칫하다 곧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눈빛이 차가워졌다.소희와 심명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소희는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있었고 심명도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펜을 들며 글을 쓰고 있었다. 옆에는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그의 입가에도 크림이 좀 묻었다.심명은 핑크색 양복 외투를 의자에 걸쳤고 오직 옅은 회색 셔츠만 입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았으며 매혹적이게 눈웃음 지으며 구택을 바라보았다."임 대표님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30분이나 늦었군요!”구택은 심명을 넘어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희의 냉정하고 무관심한 눈빛은 찬물처럼 그의 머리에 끼얹었다.화가 치밀어 올랐던 마음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마치 다 타버린 초목처럼 푸른 연기가 한 줄기 뿜어져 나오며 바람에 흩어져 재만 남았다.그는 점점 평온을 되찾았고, 눈 밑은 고요하며 잔잔했다. 그는 담담하게 소희와 심명을 한 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내가 잘못 찾아왔군요. 두 분 하던 거 계속하죠!”말을 마치고 그는 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시원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구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며 안색은 담담했다.백림은 구택이 이대로 가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시원에게 물었다."택이 형하고 소희 씨 정말 헤어졌어?”시원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싸늘하게 웃었다."만약 소희 씨와 심명이 안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구택이 저렇게 냉정할 수 있을 거 같아?”백림은 웃었다."그래도 이건 택이 형 답지가 않잖아!”시원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이런 일은 그 자신만이 깨달을 수 있어.”백림은 그날 병원에서 본 일을 시원에게 알릴까 망설였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문이 다시 닫히자 소희의 안색은 약간 하얘졌고 맑디맑은 눈동자도 안개가 낀 것 같았다.심명은 놀라움을 느꼈고 고개를 돌려 소희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임구택과 헤어졌어요?”소희는 그를 무시하고 고개
심명은 케이크 한 입 먹다 체할 뻔했다. 그는 목이 멘 채로 고운 눈은 빨개졌다,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연약하고 또 억울해 보였다.소희는 책을 보다가 핸드폰에 문자가 온 것을 보았고 확인해 보니 찬호가 보낸 문자였다.[소희 누나, 누나가 보낸 king 사인 잘 받았어요. 우리 누나도 봤는데 자꾸 소희 누나가 나한테 준 건 가짜라고 했어요.]소희가 대답했다. [괜찮아.][나는 그녀의 것이야말로 가짜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 누나는 인스타에 올려서 자랑까지 했어요.]심명은 머리를 내밀었다."누구랑 얘기하는 거예요?”소희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한 번 더 추가하고 싶어요?”심명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바로 꼿꼿하게 앉았다.소희는 찬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계속 책을 보았다. 두 사람은 그나마 화목했다. ......목요일 점심, 소희는 외출하려 할 때 소시연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는 닥치는 대로 물었다."소희, 내 동생한테서 돈을 얼마나 뜯었어?”소희는 눈살을 찌푸렸다."뭐?”“가짜 king 사인으로 내 동생한테서 돈을 얼마 받았냐고?" 시연은 말투가 각박하고 차가웠다.소희는 안색이 담담해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첫째, 사인은 진짜야. 둘째, 사인해 준 건 돈을 위해서가 아니야.”시연은 소희이 뭐라 하든 전혀 듣지 않고 냉소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지금 소 씨네 집안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우리 둘째 큰어머니와 큰아버지는 너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서 우리 찬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거 맞지? 내가 경고하는데, 너 다시 감히 찬호를 속이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가서 이를 거야. 너 앞으로 영원히 소 씨네 집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할 거라고!”소희가 말했다."내가 말했지, 사인은 진짜라고.”“넌 내가 진짜 king의 사인을 못 본 줄 알아?" 시연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찬호도 바보라서 너한테 속아넘어간 거야!”소희는 손목시계를 한 번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한 시간 후 아일
그녀는 5분 앞당겨 도착해서 먼저 스도쿠를 하다가 5분 후에 시연이 찬호를 데리고 도착했다.아마도 찬호의 면전에서 대치하여 소희의 "진면목"을 밝히며 찬호더러 더 이상 속지 말라고 하려는 것 같았다.찬호는 들어올 때 안색이 좋지 않았고, 소희를 바라볼 때의 눈빛은 죄책감이 들어있었다."소희 누나, 미안해요”!소희는 가볍게 웃었다."괜찮아.”시연은 머리를 또 옅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탱크롭 티에 청바지를 입고 소희의 맞은편에 앉아 두 손은 가슴을 안으며 짜증을 냈다."그녀가 널 속였으니까 사과는 마땅히 그녀가 너한테 해야 해. 네가 무슨 사과를 하는 거야!”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또 소희를 바라보았다."너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우리 찬호를 이렇게 속인 거야? 너 지금 너무 가난해서 더 이상 밖에서 살 수 없어서 한 아이의 돈을 뜯고 있는 거지! 그는 아직 초등학생인데, 너 어쩜 이렇게 뻔뻔스러운 거야?”찬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줄곧 소희 누나가 나 도와주고 있었어요. 누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요!”시연은 콧방귀를 뀌며 소희가 찬호에게 준 사인을 테이블에 놓으며 싸늘하게 말했다."도와줬다고? 가짜 사인 사진 가지고 너 속였는데? 이 바보야!”찬호는 화가 났다."누나야말로 바보야, 소연이 누나한테 준 사인은 가짜라고!”시연은 손을 뻗어 찬호의 귀를 잡고 씩씩거리며 말했다."전 소 씨네 집안에서 그녀를 상대하는 사람이 없는데, 너만 그녀와 사이가 좋아. 그 이유가 뭔지 알아? 네 나이가 어려서! 속이기 쉬워서 그런 거라고!”“이거 놔!" 찬호는 발버둥 쳤다.이때 소희가 입을 열었다."찬호 놓아줘!”시연은 찬호를 놓아주고 화가 난 표정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내가 내 동생을 훈계하는데, 넌 신경 좀 꺼주지? 너도 앞으로 우리 청호한테서 좀 떨어져 있어. 소 씨네 집안에 돌아가고 싶다면 가서 우리 둘째 큰어머니 찾아가! 그들은 너 거들떠보지도 않을걸!”소희는 침착했다."난 찬호를 속이지 않았어. 넌 내가 그에게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
“이거 소매 속에 숨기면 안 보일 거예요!”임유진은 서인의 손을 꽉 잡고, 손목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끝까지 팔찌를 채우려 했다.이에 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무슨 소매 속에 숨긴다는 거야?’그러나 유진은 자기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손목에 팔찌를 걸어주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요!”서인은 손을 빼내려 하는 순간, 앞에서 안토니가 그를 불렀다. 그렇게 서인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유진은 순식간에 서인의 손목에 팔찌를 걸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절대 빼면 안 돼요. 안 그러면, 계속 떠벌릴 거예요. 내가 사장님 좋아한다고!”둘은 한적한 산길 위에 서 있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며, 유진의 맑은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을 담았다. 그 말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깊고 따뜻한 감정을 담은 채, 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팔찌가 손목 위에 얹혀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것이 뜨겁게 달궈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 감정이 그의 맥박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서인은 아무 말 없이 방향을 돌려 토니에게 향했다. 유진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손안에 남은 하나의 팔찌를 꼭 쥐었다.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는 여러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과 지역 특산물이 가득했다. 넷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그러나 한참 후,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안주설과 토니는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추었다.“아 나 더 이상 못 걷겠어.”주설이 투정을 부리자, 토니는 다정하게 그녀를 업었다.“어릴 때부터 산길을 걸었으니까, 널 업고 정상까지 가는 것도 문제없어!”주설은 토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며들어 있었다.“우리, 원래 이래요.
유진은 서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 안토니가 우리를 산에 데려가 준대요!”토니도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마을 뒷산 경치가 꽤 괜찮아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도 없으니까,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게 어떨까요?”서인은 유진이 잔뜩 들뜬 모습을 보자, 별다른 거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렇게 토니의 안내에 따라 산길을 걸었다.약 10분 정도 걷자, 산으로 오르는 메인 길이 나왔다. 그곳에는 관광객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안주설은 토니의 팔을 꼭 끼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 다정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은 웅장하게 솟아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산허리에는 옅은 안개가 감돌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고, 울창한 숲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유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와, 정말 아름답네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애초에 유진은 이번 주말에 회사 워크숍이 있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집에서 쉬는 게 더 좋다고 했던 사람이, 여기 와서는 이렇게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인을 올려다보았다.“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여행이 즐거운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참, 까다롭네.”이에 유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이게 왜 까다로운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인데!”그러나 서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유진은 잽싸게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그럼 사장님은 나랑 같이 산에 오는 게 좋아요,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아요?”서인은 잠시 걸음을 늦추더니, 진지하게
유진은 볼이 살짝 붉어진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인을 노려보았다.“설령 난초라 해도, 가장 흔한 종류잖아요! 어떻게 그게 100만원이나 해요? 역시 사장님, 돈이 많긴 많네요!”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100만원, 네 월급에서 차감할 거니까.”그 말에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서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웃었고,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원래라면, 유진은 자신이 바보 같아서 화가 났고, 서인이 계속 놀려서도 화가 났다. 그런데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말했다.“앞으로는 아무거나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게요.”다시는 서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인은 웃음을 거두고, 유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사실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또한 서인은 유진을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결국, 서인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원래 그건 그냥 잡초였어.”그것을 귀한 보물로 만든 건,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유진은, 이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하고, 보기 좋았다....점심때가 되자, 토니네 가족은 뒷마당에서 키운 닭을 요리하고, 지역 특산 음식을 만들어 서인과 유진을 대접했다. 소박한 가정식이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유진은 원래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지만,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닭볶음과 깊은 맛이 우러난 닭국물을 맛보며 연신 감탄했다.“이거 정말 맛있어요! 닭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국물도 진하고요!”윤석경은 놀라면서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많이 먹어요. 또 떠줄 테니까!”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유진의 그릇에 음식을 더 담아 주었고, 유진도 서인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맛있
서인은 안토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윤석경 씨, 잠깐 나와 보세요! 이 사람이 당신네 집 손님 맞나요?”서인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향했다. 토니의 부모도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곱슬머리로 말려 있었다. 여자는 토니네 가족을 보자마자, 곧장 손가락으로 한쪽에 서 있는 유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당신네 손님 맞아요?”유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발 소리치지 마세요! 제가 돈 드린다고 했잖아요!”유진은 당장이라도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인은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박민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이 여자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 난초를 뽑아서 토끼 먹이로 줬어요! 내 난초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조금만 늦었어도 다 뽑혀 나갔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라고요!”유진은 머리를 싸매고 싶었고, 작은 목소리로 서인에게 변명했다.“난초인 줄 몰랐어요. 그냥 잡초인 줄 알았어요.”유진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나 박민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쏘아붙였다.“변명하지 마요! 어쨌든 내 난초를 뽑은 건 사실이잖아요!”그때, 윤석경이 나서서 말했다.“우리 집에도 난초가 있으니까, 그걸로 대신 보상해 줄게요. 어린애한테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까지야 있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하지만 박민란은 완강했다.“안 돼요! 당신네 집 난초랑 내 난초는 품종이 달라요! 그러니 난 절대 못 받아요!”윤석경도 화가 났다.“똑같은 난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박민란이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내 난초는 특별히 돈 들여 키운 거예요. 이미 손님이 예약한 거라고요! 근데 이제 어쩌란 말이에
안토니는 이미 저들과 한 차례 몸싸움을 벌였는지,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는 부모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시키려는 남자들과 격렬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때, 서인이 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서인을 바라봤다. 서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이윽고 한 손으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차갑게 말했다.“안토니네 가족은 이사하지 않으니까, 당장 꺼져요!”그때, 상대편의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 누구야? 당신이 뭔데 결정해?”서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금부터 이 집안일은 내가 결정해.”임유진도 단호하게 나섰다.“당신들, 합법적인 철거 허가서라도 있어요? 없으면, 지금 이건 불법으로 민가에 침입한 거고,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예요! 신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요!”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신고? 해보시지, 이 계집애가!”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는데, 서인의 차가운 눈빛이 번뜩이며 그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이내 남자는 수치심에 휩싸여 분노를 터뜨렸고 뒤에 있던 부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 우락부락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먹을 쥐고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서인은 간단하게 공격을 막았다. 팔을 낚아채어 비틀어버린 후,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쿵! 남자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으악!”놀란 안주설과 토니네 부모님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토니는 같이 싸우려 했지만, 서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넌 신경 쓰지 마.”서인의 태도는 한결같이 차분했지만, 움직임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몇 초 만에 남은 두 명까지 모두 쓰러졌다.우두머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보며, 서인이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당할 것이 뻔했다.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기
서인이 약속한 장소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찻집이었다. 두 사람이 몇 분을 기다리자, 상대가 도착했다.그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짙은 남색의 운동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멀리서 서인을 발견한 남자는 곧바로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걸어오면서 팔을 벌렸고,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한 뒤, 어깨를 가볍게 맞댔다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이렇게 오래 못 봤는데, 네가 갑자기 연락할 줄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네!”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에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이에 서인은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오랜만이긴 하죠.”“예전에 너희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살아 있어서 다행이네.”서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남자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남자는 놀란 듯 서인을 쳐다보았다.“여자친구야?”서인은 짧게 답했다.“아니요. 그냥 같이 온 친구예요. 임유진.”그는 이어서 남자를 소개했다.“이한우라고 해요.”유진은 그를 한 번 보더니 따라 불렀다.“한우 씨!”한우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인의 친구라면 나한테도 친구나 다름없죠. 편하게 있어요.”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서인과 한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다실에서 나온 말차 케이크와 재스민 차를 즐겼다.서인은 흥성에서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우는 지역에 오래 정착한 사업가로, 여러 방면에 인맥이 있었다.서인은 안토니네 가족을 돕기 위해 한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우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흔쾌히 말했다.“리조트 호텔 사장은 모르지만, 철거 보상 담당자는 잘 알지. 같이 술도 마셨던 사이라, 내
서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임유진은 재빨리 침대 옆 협탁에서 안대를 꺼내 들었다. 자신이 눈을 가릴 거라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미 씻었어.”서인은 무심하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물었다.“불 꺼도 돼?”방 안에는 서인의 쪽에만 벽 등이 켜져 있었다. 이에 반쯤 몸을 돌린 채 유진을 바라자, 유진도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다.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작 오초였지만, 묘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유진의 눈빛은 마치 깊고 맑은 호수 같았다. 그 안에 잔잔한 물결이 퍼지는 듯했다.어둠 속에서도 유진의 눈빛이 한층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헐렁한 티셔츠의 목 부분이 흘러내려, 가느다란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유진의 피부는 눈이 부시게 하얗고 매끄러웠다. 마치 만지기라도 하면 부서질 듯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방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짧은 순간에 묘한 분위기도 함께 사라졌다. 유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은 서인의 침대 너머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야외 수영장의 물이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유진의 들뜬 마음처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곧, 자동으로 커튼이 내려졌다.그 작은 물결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인이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고, 유진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이불을 단정하게 덮고 눈을 감았다.서인도 조용히 눈을 감았으나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유진의 상쾌한 바디워시 향이 공기 속에 가볍게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서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곧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뭐지?’유진은 원래 잘 때 얌전한 모습이었으나 자고 나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