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영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사 맞았어? 고양이 몸에도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구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늦었어. 원래는 내일 아침에 맞으러 가려고 했어.”서선영은 안타까운 나머지 목소리가 쉬어버렸다.“여보, 사람을 문 고양이는 절대 키우면 안 돼요! 한 번 사람을 물면 또 물게 돼요. 물어대는 개랑 똑같아요. 재앙이라구요!”구은태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은서가 잘한 거다. 고양이는 그냥 남에게 주면 돼.”은정은 아무 말 없이 은서를 향해 걸어갔다. 은서는 차가운 살기를 내뿜는 남자를 보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밀려와 한 발짝 물러섰다.“오빠, 어쩌려고요?”구은정은 냉랭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양이, 반드시 되찾아와야 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내 물건은 다른 사람이 결정할 수 없어.”“오늘 밤 고양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랑 너희 어머니 둘 다 이 집에서 나가!”은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녀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돌려 구은태를 바라보았다.“아빠, 저랑 엄마는 이 집안사람이 아니에요? 고작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오빠가 저희를 내쫓겠다고요?”서선영은 더 심하게 흐느껴 울었다.“나는 알고 있었어요. 내가 이 집을 위해 아무리 희생해도 결국은 남이에요. 내가 낳은 딸도 마찬가지죠. 성이 서씨라도 이 집에서 제 자리는 없는 거예요.”“은정아, 은서를 겁주지 마라.”구은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은정의 표정은 냉혹하기만 했다.“겁주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봐.”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정은 은서의 잠옷 깃을 움켜쥐고 그대로 그녀를 질질 끌고 나갔다.은서는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평소의 단정하고 오만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은정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졌다.“은서야!” 서선영이 울며 따라붙으며 필사적으로 애원했다.“은정아, 제발 놔줘! 부탁이야!”하지만 은정은 그 말을 생각도 없었다. 서선영은 다
말을 마치고, 은서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은정을 바라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됐어요?”은정은 차갑게 대꾸했다.“내 허락도 없이 내 고양이를 함부로 남에게 줘놓고, 이제야 되찾아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근데 나보고 만족하냐고? 당연히 아니지.”“다음번에도 이런 짓 하면, 넌 짐짝처럼 내다 버릴 거야!”은서의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서렸다. 그녀는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았다.구은태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딸을 보며 안쓰러워했다.“은정아, 이제 고양이를 돌려받았으니 됐다. 은서는 네 여동생이야. 고작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네 동생한테 이러는 게 말이 되냐?”은정은 비웃으며 말했다.“내 고양이와 이 여자를 같은 선에 놓고 비교하지 마요.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구은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한편, 서선영은 옆에서 흐느끼며 울었다.“여보, 보셨죠? 은정이 눈에는 우리 모녀가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예요!”구은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은서부터 일으켜 세우고, 손 다친 데는 괜찮은지 확인해 보자.”서선영은 서둘러 은서를 부축했다.“은서야, 그냥 참고 견뎌. 네가 은정의 물건을 건드렸으니 당한 것도 네 잘못이야. 너도 네가 이 집에서 어떤 위치인지 좀 깨달아야지!”은정은 서선영의 그런 가식적인 태도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는 거대한 창문 너머로 깊어진 밤을 바라보았다.약 반 시간쯤 지나 도우미가 다가와 보고했다.“오사라 씨가 고양이를 데려왔어요!”이때, 구씨 집안사람들은 이미 거실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고, 은서는 차분하게 말했다.“들어오게 해요.”사라는 고양이 이동장을 들고 들어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은서야,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이야?”그러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방 안의 긴장된 분위기와 모든 구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도우미가 고양이가 있는 케이지를 받아 들고 은정에게 건넸다.애옹이는 케이지 안에서 눈을
서선영은 구은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억울한 듯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구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애옹이가 가볍게 은정의 어깨 위로 뛰어 올라가 몸을 웅크렸다.새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는 한껏 나른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지만, 커다란 눈동자는 또르르 굴러가며 서선영과 구은태를 바라보고 있었다.은정은 차가운 시선으로 서선영을 향해 쏘아붙였다.“딸 단속 잘하세요. 이런 일, 두 번 다시 없도록 하시고요.”은정은 말을 마치고 곧장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모습이 계단 끝에서 사라진 후에야, 서선영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여보, 은서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구은태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어찌 됐든, 은정의 물건을 당사자의 허락 없이 남에게 준 건 잘못된 일이야.”서선영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여보 말씀이 맞아요. 은서가 돌아오면 잘 타일러 놓을게요.”“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오늘은 많이 힘들었을 거야.”구은태는 아들을 아끼면서도 딸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사이가 나쁜 건 골치 아픈 일이었다. 서선영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여보, 은정이가 너무 과격한 거 아닌가요? 조금 전에 여보가 말리지 않았으면, 은서를 정말로 목 졸라 죽일 수도 있었어요!”구은태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럴 리 없어. 은정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하지만 듣자 하니 바깥에서 은정이가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서선영은 겁에 질린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헛소리!”구은태는 크게 노했다.“도대체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렸어? 감히 우리 은정을 모함하다니!”서선영은 황급히 변명했다.“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이에요. 누가 시작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어요.”“저도 몇 번 들었지만,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한테 단단히 혼내줬어요. 물론 저는 믿지 않아요!”구은태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 가족끼리 믿어주면 그만이야. 은정이는 성격이 거칠긴
유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구은정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은저이 다시 입을 열었다.“얼마나 더 해야 해?”[한 시간 정도 남았어요.]유진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휙 넘겨보자, 은정이 물었다.“입찰 회의는 오후야? 아니면 오전?”[오후요.]“그러면 지금 자. 내일 오전에 마저 해.”유진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내일 오전에 다른 일정도 있어요. 그리고 오늘 밤에 다 끝내고, 아침에 늦잠 좀 자고 싶거든요.]은정의 목소리가 조금 단호해졌다.“말 들어.”이에 유진은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말했다.[알겠어요. 사실 조금 피곤하긴 하니까 내일 오전에 하게 할게요.”“응, 얼른 자.”유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굿나잇.]“굿나잇.”유진이 전화를 끊자, 은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왠지 모르게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는 듯했다.예전 같았으면, 누군가 자신이 한 여자 때문에 감정이 휘둘린다고 말하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하지만 막상 그런 감정을 직접 겪고 보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마치 오래도록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임유진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쏟아져 나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게 되어버린 듯했다.어쩌면 이건 하늘이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 아니라,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기 위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다음 날, 유진과 팀원들은 입찰 회의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고,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여진구는 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후 티타임을 준비했고, 저녁에는 노래방까지 예약해 놓았다.직원들은 다 같이 탁자 주변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입찰 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한결 가벼웠다.이번 프로젝트는 철저한 준비 덕분에 경쟁사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에, 결과에 대한 불안감도 거의 없었다.“유진 씨!”누군가 유진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진구가 건넨 타로 크림 롤케이크를 받아 들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진구가 곁에 있던 진소혜를 향해 말했다.“잠깐 비켜줄래요?”소혜는 순간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진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임유진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자기 옆으로 이끌었다.진구는 직접 유진에게 롤케이크를 건네며 말했다.“도망가지 말고, 먼저 먹어. 너를 위해서 일부러 산 거야.”유진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소혜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보는 시선이 싸늘하고 매서웠다.유진은 조용히 롤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오늘 뭐 잘못했어요? 뭔가 부족했어요?”그러자 진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니, 왜 그래?”“그러면 왜 날 곤란하게 하는 건데요? 소혜 씨가 겨우 선배 옆에 서볼 기회를 잡았는데, 또 나를 불러서 데려가 버리잖아요.”“지금 나한테 쏘는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진구는 옆에서 소혜를 힐끗 보더니,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너한테 잘해주는 게 왜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해? 그리고 너도 알잖아. 난 관심 없어.”“오히려 네가 자꾸 날 소혜 씨한테 밀어 넣는 게 더 이상해. 너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유진은 진구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은정이 떠올랐다. 그도 예전에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에 유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욕먹는 건 나잖아요.”진구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보상해 줄게. 저녁에 먹고 싶은 거 말해. 네가 고르면 다 따라줄게.”유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뭐든 상관없으니까, 다른 사람들 의견 들어봐요.”하지만 진구는 단호했다.“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네가 뭘 좋아하는지 난 다 아니까.”유진은 크림 롤케이크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며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진구와 함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한편, 소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소혜는 평소에도 여진구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
저녁에 동료들과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임씨 집안의 운전기사가 임유진을 데리러 왔다. 유진은 다리를 다친 상태라 당분간 운전할 수 없었고, 매일 기사가 출퇴근을 도와주고 있었다.차에 앉아 있던 유진은 문득 진소혜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조차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만약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굳이 기사를 부를 필요도 없고, 아침마다 서둘러 나올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마음이 기울었다.집에 도착하자, 노정순은 여전히 거실에서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다리도 거의 회복되었고, 우정숙도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한 상태였다.“왔구나?”노정순은 우아한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고, 금테 안경을 쓴 얼굴에서는 세련되고 기품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안경의 가느다란 금빛 체인이 귓가에 살짝 늘어져 있어 더욱 고급스러워 보였다.유진은 소파에 털썩 앉아, 노정순의 어깨에 기댔다.“할머니.”“피곤하니?”노정순은 책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술도 마셨구나?”“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마셨을 뿐이에요.”유진은 자신의 소매를 들이켜 맡아보았다. 실제로 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사실 한두 잔 마시고 싶었지만, 문득 캠핑 때 구은정이 자신더러 술을 마시지 말라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마시지 않기로 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자제하는 게 최선이었다.“막 출근했는데 벌써 이렇게 힘들어서야. 토요일에도 일해야 한다니.”노정순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할머니!”유진은 살짝 고개를 들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말씀드릴 게 있어요!”“무슨 일이니?”“저, 이사 가고 싶어요!”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이사를 가겠다고? 어디로?”“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매일 야근해야 해요. 아침마다 일찍 나가야 하고, 퇴근길에 차가 막히면 한 시간 넘게 걸려요.”“원래 늦게 끝나
노정순은 웃으며 타박했다.“자유가 마냥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어쩌면 한 달도 못 버티고 울면서 돌아오겠다고 할 수도 있잖아?”임유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제가 울면서 돌아오겠다고 하면 딱 하나의 이유뿐이에요.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노정순은 콧방귀를 뀌었다.“입만 살았구나, 나한테 잘 보이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이렇게 정하는 거예요. 저는 아빠, 엄마한테 직접 말씀드릴 테니까, 할아버지한테는 할머니가 좀 잘 말씀해 주세요!”부모님은 비교적 설득하기 쉬웠지만, 문제는 임시호였다. 유진은 임시호가 반대할까 봐 조금 걱정이 됐다.노정순은 유진의 애교 섞인 부탁에 기분이 좋아져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할아버지한테는 내가 잘 얘기해 볼게.”“할머니 최고!”유진은 노정순의 팔에 꼭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유진은 곧바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곽시양과 진소혜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소혜 씨, 집 구했어요?”시양이 물었다.“아직요. 근데 왜요?”소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유진 씨도 집을 알아보고 있대요.”소혜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아니, 유진 씨는 아예 안 구한다고 하지 않았나요?”시양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소혜는 비웃음을 흘렸다.“아마도 내가 찾은 집이 비싸다고 생각해서 자기만의 저렴한 집을 찾으려는 거겠죠.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요? 그랬으면 내가 월세를 더 낮춰줄 수도 있었는데.”“괜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마치 대단한 집안 아가씨인 척 규칙을 따지는 게 웃기지 않아요?”시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대단한 집안 아가씨라면 회사에 나와서 일할 이유가 없겠지. 게다가 다리가 좀 낫자마자 바로 출근했잖아? 아마 돈이 좀 부족한 게 아닐까?”소혜는 피식 웃자, 시양이 제안했다.“오늘 일찍 퇴근하니까, 유진 씨 어떤 집을 구하는지 보러 갈래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임유진과 여진구가 함께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소혜는 곧장 뛰어가며 환하게 말했다.“유진 씨!”진구 앞이라 그런지, 소혜는 더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유진 씨, 사장님이랑 같이 나가는 거예요?”지난번에 소혜가 합숙 제안을 했을 때 유진이 거절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소혜 씨가 알려준 덕분에 나도 생각해 봤는데, 회사 근처에서 사는 게 확실히 더 편할 것 같더라고요. 오늘 사장님이랑 같이 집을 보러 가려고요.”소혜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집 보러 가는 거예요? 마침 잘됐네요! 시양 씨랑 다른 직원들도 집 알아보고 있는데, 같이 가죠!”유진은 이미 네 사람이 일부러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이제 와서 따라가겠다고 하는 걸 보니, 그녀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하지만 유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같이 가죠. 다들 봐주면 좋겠네요.”소혜는 얼굴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며 말했다.“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그러면 집 보고 나서 제가 저녁 살게요!”진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소혜 씨가 사죠? 제가 살게요.”“와, 감사드려요, 사장님!”소혜는 손을 뒤로 깍지 끼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몇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임유진이 계약한 집을 보러 갔다. 그곳은 회사 근처의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차로 이동하니 10분도 걸리지 않았고, 도보로 이동하면 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차가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소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이곳은 자신이 추천했던 곳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당연히, 월세도 훨씬 비쌀 터였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시양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앞쪽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이거 사장님이 돈 대준 거 아닌가?”소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한낱 비서가 감히 사장님한테 월세를 받아서 집을 구했다고요? 그게 뭐예요? 그냥 스폰서 계약 같은 거 아닌가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장효성이 출장 갔다가 돌아왔거든요. 오늘 우리 집에 들른다고 했어요.”여진구는 오늘 일정을 확인하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도 저녁에 갈게. 술이랑 음료, 저녁까지 내가 다 챙길게!”유진은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그럼 연하랑 효성한테 단톡방에서 말할게요.”진구는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그런데 요즘 그 이웃, 또 널 귀찮게 하진 않았어? 남자야, 여자야? 얼굴은 봤어?”“그 사람은...”유진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온 사람은 기획팀 부장이었고, 업무 보고를 하러 온 참이었다.유진은 잡담을 멈추고, 진구에게 먼저 일 보라고 한 뒤, 자리를 나섰다. 사장실에서 나와 걸으면서 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이웃이 구은정 삼촌이라는 걸 선배가 알면 어떤 반응일까?’오후.은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저녁 약속이 생겨서 좀 늦게 들어간다며, 애옹이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은정은 예전부터 애옹이를 돌보던 도우미 아주머니를 그만두게 했고, 그 뒤로는 그가 자리를 비우면 애옹이를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유진의 몫이 되었다.마침 오늘은 집에 친구들이 오기로 되어 있어 은정에게 수업할 시간도 없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유진은 메시지를 보냈다.[퇴근하고 애옹이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요. 집에 올 때 데리러 오세요.]은정이 보냈다.[응. 저녁은 밖에서 먹을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유진은 은정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다시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곧 누가 다가와 업무 얘기를 꺼냈고,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은정에게 답장하는 것도 잊어버렸다.퇴근 후, 진구를 포함한 몇 명이 유진의 집에서 모였다. 해외에서 돌아온 효성이 모두에게 선물을 준비해 왔고, 진구까지 빠짐없이 챙겼다.유진은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앉아 있으라 하고, 옆집에서 애옹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먼저 간식을 먹이며 애옹이를 달랬다.“고양이 너무 귀여워! 어디서 데려온 거야?”고양이를 좋아하는 연하가 애옹이
“열나는 거 아니야?”구은정이 손을 들어 임유진의 이마에 닿으려 했다. 유진은 고개를 저으려다, 따뜻한 손바닥이 이마에 닿는 순간 겁이 나서 몸을 멈췄다.“괜찮아. 열은 없네.”은정은 손을 거두며, 자연스럽게 덧붙였다.“내일이나 모레 비 온대. 날도 추워질 테니까 출근할 땐 따뜻하게 입고.”“네.”유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들어가.”은정은 유진의 얼굴빛이 아직도 어두워 보이자,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재채기라는 건 누군가에게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제어할 수 없는 거니까, 굳이 미안해할 필요 없어.”그는 자기 책을 정리하면서 툭 던지듯 물었다.“내일 아침엔 뭐 먹고 싶어?”은정의 담담한 태도 덕분에 유진도 점차 긴장이 풀렸다. 조금 전의 상황도 잊은 듯 웃으며 말했다.“건너편 가게의 호떡이랑, 만두요! 치즈 들어간 거로!”은정은 잔잔하게 웃었다.“알겠어. 일찍 자. 내일 아침에 내가 사다 줄게.”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 삼촌도 일찍 쉬세요!”애옹이는 눈을 반쯤 뜬 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가 나가는 걸 보고 아쉬운 듯 두어 번 울었다.“착하지, 얼른 자. 내일 보자!”유진은 애옹이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유진의 표정은 생기 있었고, 목소리는 맑고 귀에 감겼다.애옹이를 달랜 후, 유진은 은정에게 미소로 작별 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돌아갔다.이번엔 은정이 현관까지 배웅하지 않았다. 앉아 있을 때야 그나마 괜찮지만, 함께 일어나면 서로 민망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괜히 유진이 다음에 또 오기 꺼려질 수도 있었으니까.문이 닫히고 나서야, 은정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얼음물 병을 들어 반쯤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조금 전 유진이 당황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웃음이 났다. 애옹이가 그의 무릎 위로 올라와 하품하며 몸을 늘어뜨렸다. 그는 애옹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유진의 생각뿐이었다.조금 전 그녀가 나갔을 뿐인데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도 유진의 귀 끝은 여전히 붉었다.마침 은정이 자연산 농어를 쪄서 내왔는데, 아까 유진에게 다가왔던 것도 이걸 간장조림으로 할지, 찜으로 할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유진은 찜으로 조리된 생선을 한 입 먹어보았다. 살점이 부드럽고 신선해서 비린내 하나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생선 냄새 너무 좋아요!”은정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애옹이 간식보다 더 맛있어?”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볼이 부풀 정도로 화가 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애옹이 간식이 더 맛있거든요!”은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다음엔 애옹이 간식 살 때, 두 봉지 사야겠네.”얼굴에 철판 깐 지 오래라고 생각한 유진도 결국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개를 든 은정은, 조금 전까지 웃음이 어린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며,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식사가 끝나고 나자, 은정이 식탁을 치우고, 유진도 자청해서 거들었다. 남은 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한 뒤, 유진은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주방 쪽으로 돌아섰다.유진은 등을 조리대에 기대고 애옹이를 품에 안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자, 은정이 소매를 걷은 채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은은한 회색 셔츠의 소매가 팔꿈치까지 올라가 있었고, 전완근이 드러났다. 그의 동작은 느긋하면서도 단정했고, 어딘가 나른한 멋이 묻어났다.맞춤형 정장 바지까지 갖춰 입은 모습은 단정하면서도 날렵했다. 은정의 길고 탄탄한 다리와 넓은 어깨, 단단한 상체가 균형을 이룬 체형이 눈에 띄었다.예전에 유진은 방연하에게 왜 그렇게 구은정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방연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거칠고 야성미가 넘치면서도 퇴폐적인 페로몬이 있다며 능글맞게 웃었다.유진은 그 말을 듣고 비웃었었다. 페로몬은 무슨, 그냥 몸이 좋은 거라고 하자 연하는 유진이 잘 몰라서 그렇다며 웃
“그러니까, 넌 왜 받은 거야?”은정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한 번 받으면, 그 뜻을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계속 오해하게 만들겠다는 거지?”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이제 알았어요. 다음에 여진구 선배한테 확실히 말하고, 더는 안 받을게요.”은정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칼을 들어 채소를 썰기 시작했다.“그래. 그럼 이제 나가서 놀아.”유진은 주방을 나가려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걸음을 멈췄다.“잠깐만요, 삼촌, 그러면 삼촌은요?”은정은 손을 멈추고 천천히 유진을 돌아보았다.“뭐?”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나한테 잘해주는 이유는 뭐예요? 삼촌도 나한테 무슨 목적 있는 거 아니죠?”은정은 잠시 말이 없다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네가 나한테 수업해 주니까.”이에 유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와, 진짜 솔직하네.”은정은 단호하게 말했다.“너한테는 가식 떨 필요 없으니까.”유진은 은정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애써 웃으며 넘겼다.‘아냐, 원래 저 사람 성격이 저런 거야.’그러고는 애옹이를 꼭 안고 거실로 돌아갔다.유진은 퇴근길에 들른 펫숍에서 애옹이의 새 옷과 장난감을 몇 개 사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애옹이에게 한 벌씩 입혀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애옹이는 무척 순순히 유진에게 협조했다.마지막으로 핑크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혔을 때, 은정이 부엌에서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는 애옹이의 차림을 보고, 한순간 멈칫했다.유진은 애옹이를 들어 올려 은정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어때요? 예쁘죠?”은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좋으면 됐어.”그러자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건 철저히 삼촌 같은 빠꾸 없는 상남자의 취향에 맞춘 코디예요.” 그러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빠꾸 없는 상남자 취향?”“그렇죠! 핑크색, 반짝이, 공주풍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유진이 장난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평소처럼 임진은 부서 동료들과 함께 야근했다. 유진은 자기 일을 사랑했고, 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게 되었다.창밖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유난히 지루하게 느껴졌다.‘이거 혹시 애옹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걸까?’마침내 모든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시간이 되자,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짐을 챙겼다.그때, 여진구가 다가와 삼계탕이 담긴 보온 용기를 건넸다.“우리 엄마가 오후에 보내주신 거야. 저녁에 가서 먹어.”그러나 유진은 얼른 손을 저었다.“아니요, 선배 어머니가 주신 건데 제가 어떻게 받아요?”“뭐 이렇게 딱 잘라 거절해?”진구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농담이야. 두 개 보내주셨거든. 하나는 너 주려고 한 거야. 오후에 너무 바빠서 이제야 전해주네.”그 말에 유진은 그제야 받아들었다.“그럼, 이모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줘요!”“무슨 새삼스럽게.”진구는 일할 때 끼는 얇은 금테 안경을 썼는데, 더 똑똑하고 멋있어 보였다.“집에 가서 따뜻하게 먹어.”“알겠어요!”유진은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진구는 유진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한편,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진소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가방을 챙겨 다가왔다.“사장님, 오늘 차 안 가져왔어요. 혹시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그러자 진구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회사 근처에 집 구한다고 하지 않았나요?”그 말에 소혜는 잠시 당황했지만, 빠르게 대답했다.“어머니가 오늘은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요!”진구의 태도는 이미 냉대하는 태도였다.“난 아직 볼 일이 있어서요. 오늘 택시비 회사에서 처리해 줄 테니까 그렇게 가요.”진구는 말을 끝내고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소혜는 주변을 지나가는 동료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는 걸 보며 민망한 듯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유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옆집 문이 열렸
은정은 안으로 들어오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양치 끝내고 와서 아침 먹어.”임유진은 그의 짙은 색 운동복 차림을 보고, 칫솔을 문 채로 웅얼거렸다.“조깅 갔다 왔어요?”“응.”은정은 식탁 쪽으로 걸어가며 무심히 물었다.“내일 같이 갈래? 천천히 걸어도 돼.”그러나 유진은 단호하게 거부했다.“싫어요! 난 더 자야 한단 말이에요.”유진이 이 동네로 이사 온 이유는 출근 시간을 줄이고 아침잠을 더 자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새벽부터 조깅이라니? 그건 차라리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이에 은정이 낮게 웃었다.“게으름뱅이.”은정의 목소리는 어딘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에 유진은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이거 뭐야?’유진은 그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애옹이를 쓰다듬고는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양치하다 말고 생각했다.‘뭔가 이상한데?’하지만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알 수 없었다. 양치와 세수를 마친 후, 유진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식탁으로 나왔다.은정은 마치 자기 집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식기를 정리하고 있었고, 유진은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유진이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군만두였다.“오! 아침 메뉴 마음에 드네요!”애옹이는 테이블 위로 올라와 유진을 바라보자, 유진은 샌드위치에서 햄을 꺼내 애옹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은정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 공간에서, 유진이 밝은 얼굴로 애옹이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은정은 문득 상상했다.‘만약 우리가 가족이 되어 아이가 있었다면?’이런 맑은 아침, 자신이 아침을 사 오면 유진이 똑같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그러다가 유진이 은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왜요? 애옹이한테 주면 안 돼요?”이에 유진은 정신을 차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야. 괜찮아.”유진은 샌드위치를 조금 더 먹인 후,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한 모금 마
은정은 유진의 행동을 지켜보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네가 가끔 애옹이를 돌봐줘. 퇴근하고 일찍 들어오면 밥도 챙겨주고. 이따가 출입문 비밀번호를 네 폰으로 보내줄게.”유진은 애옹이를 너무 좋아해서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좋아요!”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렇게 하자.”사실 은정은 유진과 같은 날 이 집을 계약했다. 원래는 유진이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이웃을 만나면 곤란할까 봐 옆집을 함께 구매했던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살 계획은 없었다.하지만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구은태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온 이상, 회사를 제대로 맡고 가족 곁에 머물겠다고.그러나 서선영 모녀가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은정의 인내심을 시험했고, 그는 결국 이곳으로 나오는 명분을 얻었다.식사가 끝난 후, 유진은 스스로 식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그럼 전 이제 가볼게요.”은정은 시계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가서 일찍 자.”“알겠어요!”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애옹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애옹아, 잘 있어!”하지만 애옹이는 유진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너 정말 애교가 많구나!”은정은 몸을 숙여 애옹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깊은 눈빛이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얘는 원래 낯을 많이 가려. 한 번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 그런데 너한테만 이렇게 굴어. 넌 예외야.”유진은 기뻐하며 말했다.“봐요, 역시 우리 궁합이 잘 맞는다니까요!”그 말에 은정은 살짝 웃었다.“그래, 너희는 특별한 인연이 있나 봐.”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문득 애옹이가 혹시 은정의 여자친구가 키우던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격을 봤을 때, 스스로 고양이를 키울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냥, 어떤 상처도 들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럼 전 진짜 가볼게요!”유진은 노트북과
임유진은 손을 뻗어 저녁을 집어 들었다.“괜찮아요. 집에 가서 데워 먹으면 돼요!”하지만 구은정이 유진의 손을 막아섰다.“차가워진 건 그냥 먹지 마. 내가 뭐 좀 만들어 줄게.”“그럴 필요까지야!”유진은 조심스럽게 거절했지만, 은정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걸어갔다.“괜찮아.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 그리고 너 오늘 하루 종일 애옹이를 봐줬잖아. 그 정도는 고맙다고 해야지.”유진은 따라가면서 무심결에 물었다.“구은정 아니, 삼촌! 요리도 할 줄 알아요?”말을 내뱉고 나서야 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은정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저녁을 가져다줬을 때, 유진은 그걸 별 의심 없이 먹었었다. 이제야 문득 궁금해졌다. 유진은 은정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처음부터 옆집에 내가 이사 온 거 알고 있었던 거예요?”은정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딱 잘라 말했다.“아니.”“그런데 왜 저녁을 챙겨 줬어요?”은정의 냉장고 문을 여는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유진을 돌아보며 대답했다.“그날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새 이웃이 이사 왔다고 하더라고. 이웃 관계 잘 만들어 놓으려고 챙긴 거지.”“아, 그런 거였구나!”유진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가 준 디저트는 봤어요?”“응. 먹었어.”유진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즉흥적으로 집을 사기로 결심했는데, 옆집이 알고 보니 은정이었다. 그것도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로 음식까지 주고받았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묘했다.은정이 냉장고를 뒤지는 모습을 보며 유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뭐 만들어 줄 건데요?”유진이 처음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은정은 유진이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줄 모를 거라고 예상하여, 미리 준비해서 보냈다. 그리고서는 은정은 며칠동안 스스로 밥을 해 먹지 않아, 주방에는 계란 몇 개와 토마토 2개 그리고 냉동된 인스턴트 식품들이 있었다.은정은 고개를 돌려 유진에게 물었다.“요 며칠 뭐 먹
애옹이는 밥을 다 먹고도 임유진을 방해하지 않았다. 카펫 위에서 공을 가지고 놀다가, 한참 후에는 유진의 무릎 위에 올라와 셔츠 단추를 장난스럽게 건드렸다.한 시간이 지나, 유진은 작업을 마쳤지만 애옹이의 주인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졸음에 취해 있던 애옹이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크고 동그란 눈망울이 간절한 듯 유진을 올려다보았다.‘이런 눈빛을 보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잖아.’결국, 유진은 다시 자리에 앉아 애옹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안 가. 네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 그러니까 얌전히 자.”...한 시간 후, 구은정은 차를 지하 주차장에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엘리베이터가 27층에 멈추자, 그는 걸음을 느리게 했다. 곧 마주할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면서.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현관에 놓인 크림색 하이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내 그의 짙은 눈빛이 순간 부드러워졌다.은정은 재킷을 벗고, 손을 들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실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살짝 멈춰 섰다.방 안은 은은한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소파 한쪽에 기댄 채, 유진이 곤히 잠들어 있었고, 품에는 애옹이를 꼭 안고 있었다.냉방이 잘 되어 있어 그런지, 유진은 몸을 움츠리고 작은 체구로 고양이를 품에 감쌌다.은정은 조용히 다가가 소파 앞에 앉아 유진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얼굴, 살짝 벌어진 연한 핑크빛 입술. 가슴 한편이 묘하게 간질거렸다.‘얘는 대체 얼마나 경계심이 없는 거야? 남의 집에서 이렇게 깊이 잠들다니! 당장 깨워서 한 소리 해야겠네.’그 순간, 아마도 은정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유진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떨며 천천히 눈을 떴다. 살짝 흐릿한 눈동자가 천천히 초점을 맞추더니,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은정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났어?”유진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