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좋아요!” 심서진은 아주 매운 요리 두 가지를 더 주문했고 주문을 마친 후, 서진이 말했다.“선배님, 오늘 영업팀에서 문연정이 만든 보고서를 봤는데, 문제가 꽤 많더라고요.”“어떤 문제?”서진은 휴대폰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지난번 보고서의 데이터와 큰 차이가 있어요.”두 사람은 업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강솔은 대화에 끼어들 수 없어서 물을 마시며 휴대폰을 보았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자, 예형과 서진은 고향 음식을 두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강솔은 여전히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식사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서진은 보기만 해도 엄청 매워 보이는 불맛 닭발을 강솔앞에 스윽 밀어놓으면서 말했다. “한 번 먹어봐요. 불맛 닭발이 저희 고향에서 해 먹는 거랑 되게 비슷해요. 매콤하면서 맛있어요.”“나중에 선배님과 저희 고향에 오면 미리 익숙해질 수 있을 거야.”예형도 말했다. “정말 괜찮아, 고향의 맛이 나.”강솔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서 불맛 닭발을 집어먹었다. 닭발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강한 매운맛이 퍼져 나왔고, 강솔은 급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에서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이에 서진은 놀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매워요?”예형도 걱정하며 말했다. “괜찮아?”강솔은 너무 매워서 말도 못 하고, 물을 한 컵 더 마신 후에야 조금 나아졌다. “좀 많이 매웠어, 괜찮아.”서진은 약간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매울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강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한 끼 식사 동안, 예형과 서진은 열띤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먹었고, 강솔은 감자볶음만 조금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을 때, 서진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함께 쇼핑하자고 제안했다.“오늘은 좀 피곤해서, 다음에 해요.”강솔이 거절하자 서진은 예형을 슬쩍 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는 혼자 쇼핑하다가 집에 갈게요. 선배님은 강솔 언니를 집
강솔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냥 너와 단둘이 데이트하고 싶었어.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고, 난 이 데이트를 정말 기대했는데 이게 뭐야. 둘만 얘기하고 우리는 거의 말하지 않았잖아.”예형은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다. “우리는 자주 데이트할 수 있지만 심서진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야. 손님을 두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야.”강솔은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고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팠다. 차 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팽팽해지고 무거워졌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밖의 네온사인만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잠시 후, 예형이 먼저 입을 열며 긴장된 분위기를 깼다. “네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잖아. 무슨 일이야?”강솔은 원래 설에 함께 집에 가자고 말하려 했지만, 이제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너 휴가 언제야?”예형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게 네가 말하려던 일이야? 그건 전화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려고 했어?”강솔은 미간을 찌푸리며 예형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우리 만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네가 서진과 함께 일하는 걸 방해하는 거라고 생각되니까?”“당연히 아니지.”앞에 빨간불이 켜지자, 예형은 차를 멈추고 강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민감해졌어?”강솔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우리 함께 있는 시간이 서진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적잖아. 데이트에도 데려오니까.”“내가 설명했잖아. 서진은 여기서 친구가 없어. 마침 저녁에 같이 퇴근해서 초대했을 뿐이야.”그러고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서진에게 네가 이해심 많고 배려심이 깊다고 말했어.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강솔은 서진에 대한 예형의 말이 듣기 싫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초록 불이 켜지자, 예형은 강솔의 손을 놓고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강솔이 사는 곳에 가까워졌을 때, 예형의 휴대폰에 알람이
예형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여기서 잠시 기다릴게. 그놈이 다시 오면 내가 혼내줄 거야!”서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애처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이렇게 오셨는데, 강솔 언니가 화내지 않을까요?”예형은 강솔이 방금 보였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으나 무심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서진은 주저하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식사할 때 언니가 거의 말을 안 했어요. 혹시 저를 싫어하는 건 아닌가요? 우리가 데이트를 방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아니야, 그런 생각하지 마.” 예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강솔은 네가 여기에서 혼자라는 걸 이해해서 나더러 너를 돌보라고 말했어.”“선배님, 정말 감사해요!” 서진은 예형을 안으며 말했다. “여기 강성에서는 선배님이 유일한 의지할 사람이에요.”예형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서진을 밀어내려던 찰나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예형은 화난 얼굴로 빠르게 문으로 걸어갔다. 예형은 문을 열며 화를 내려고 했으나, 문밖에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얼굴이 변하고 그대로 멈췄다.“선배님!” 서진이 예형의 팔을 잡고 달려와 문밖의 강솔을 보고 놀라며 멈춰 섰다. 이윽고 서진은 예형의 팔을 놓고 한 발짝 물러났다. 강솔은 실망하고 마음 아파하며 예형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급하게 떠났는지 알겠네. 작별 인사도 없이, 결국 이 사람을 보러 온 거였어!”예형은 당황하며 급히 해명했다. “강솔, 너 오해한 거야!”“내가 뭘 오해했다는 거야?” 강솔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데이트할 때도 데려올 정도로 좋아하는 거라면, 그냥 솔직히 말하지 그랬어? 몰래 만날 필요는 없잖아!”서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정말 오해세요. 제게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선배님을 부른 거예요!”“네가 부르면 바로 오는구나. 그런데 내가 아플 때는 예형에게 전화해도 얼마나 걸렸는지 알기나 해?” 강솔은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주예형, 네
서진은 눈빛이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솔 언니는 부유하게 자란 아가씨니까, 당연히 이런 성깔이 있겠죠. 선배님, 그래도 한 번 달래보세요.”그러자 주예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한 번 달래주면 다음번에도 그런 식이야. 그런 것까지 봐줄 필요는 없어.”서진은 죄책감과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예형은 조금 짜증 난 듯 말했다. “난 먼저 갈게. 문 잘 잠그고, 누가 또 문을 두드리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서진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날 도와줄 거죠?”“물론이지.” 예형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 선배잖아. 어떻게 너를 안 도와주겠어?”예형은 약간 마음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돌아갈게. 너도 빨리 들어가.”“네, 가는 길 조심하세요. 도착하면 알려줘요.”서진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예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크게 걸음을 옮겼다. 차에 앉은 예형은 잠시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강솔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갑자기 서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배님, 언니를 잘 달래세요. 만약 언니가 선배를 용서하지 않으면, 제가 가서 설명할게요.]예형은 깊이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 [그럴 필요 없어. 이 일에 신경 쓰지 마.][언니가 화를 내면 내가 정말 죄책감이 들 거예요. 오늘 밤엔 잠도 못 잘 것 같아요.][그럴 필요 없어. 강솔은 가끔 심술을 부리지만, 결국 이해해 주니까.][나도 그러길 바라요.]예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강솔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말고 차를 몰고 떠났다....강솔은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강솔은 먼저 예형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감정에서는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지게 마련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준비 또한 하고 있었다.강솔은 누가 더 많이 헌신하는지, 예형이 너무 바빠서 자신을 소홀히 하는지, 예형이 세심하지 않은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강솔은 예형이 다른 여자에게 자신보다 더 잘해주는 것을 참을
얼마나 지났을까, 초인종이 울리자 강솔은 문을 열고 나가서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진석은 긴 코트를 입고,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다. 진석의 긴 눈매는 안경 뒤에 숨겨져 있었고, 태도는 불분명했는데 걱정스러워 보이면서도 화를 억누르는 듯했다. 강솔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왔어?”진석은 들어와서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밥 먹었어?”“조금 먹었어.”“가서 세수해. 와서 밥부터 먹어.” 진석은 보온병을 들고 식탁으로 걸어가자 강솔은 뒤따라갔다. “방금 세수했어.”진석은 고개를 돌려 강솔을 한 번 보았다. “다시 가서 세수해. 울지 말고.”강솔은 진석의 말을 듣고 세수하러 갔다. 강솔이 돌아오자, 진석은 이미 음식을 다 차려놓고 젓가락과 숟가락도 준비해 놓았다. 음식은 강솔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음식 향기를 맡으니 마음속의 고통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다른 생각하지 말고, 먼저 밥부터 먹어.” 진석은 강솔에게 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누군가 예전에 나한테 말했었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고.”강솔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강솔의 마음은 답답했지만, 음식을 천천히 먹으며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다.강솔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반면 진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강솔을 보며 마음이 아파왔고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강솔이 밥을 다 먹자, 진석은 강솔에게 휴지를 건네고, 식기를 치우며 주방으로 갔다. “감정 정리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강솔은 진석이 주방에서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가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방 안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다지 슬프지 않게 느껴졌다.잠시 후, 진석이 나와서 손에 차를 들고 강솔에게 건넸다. “말해봐.”강솔은 차를 손에 쥐고 따뜻한 느낌에 조금 위로받았다.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진석에게 이야기
강솔은 낙담하며 말했다. “사실 나도 알아. 주예형은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아.”“매일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데이트할 때도 내가 먼저 제안하고, 첫 키스도 내가 먼저 했어.”“난 예형의 모든 취향을 기억하고, 창업이 힘들다는 걸 이해하며, 감정을 조심스럽게 묻고 챙겼어.”“나는 늘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더 아주 좋아하니까. 감정에는 한 사람이 더 많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난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우리 관계가 안정적이기만 하면 돼. 만약 욕심을 부린다면, 언젠가 내 진심을 알아보고 나를 더 많이 사랑해 주길 바랐어.”진석은 가슴이 아프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실은 네가 너무 많이 헌신하면 상대는 당연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지도 않아.”강솔은 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든 남자가 심서진 같은 여자를 좋아하나?”“아니.” 진석의 눈빛은 깊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심서진을 열톤 트럭을 데리고 와도 비교할 수 없어.”강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아무도 소희와 비교할 수 없지.”진석은 입술을 꽉 깨물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켰다.“예형이 심서진을 좋아한다면, 그냥 헤어지는 게 나아. 난 질척거리는 사람이 아니야.”“그럼 왜 울어?” 진석은 휴지를 건네며 강솔의 얼굴을 닦아주자 강솔은 약간 부끄러워하며 휴지를 받아서 대충 얼굴을 닦았다. “실연당했잖아.”진석은 속으로 말했다. 자신은 항상 이별을 겪고 있었고, 매번 상처받고 다시 회복했다고 지금 강솔이 겪고 있는 모든 경험을 겪었다고.“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잖아. 근데 갑자기 헤어지니까 마음이 아픈 거지.”“아프면 익숙해질 거야.”진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솔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경험이 있어?”진석은 깊이 바라보며 말했다. “있어. 상처받고, 스스로 치유하고, 다시 상처받고, 다시 치유하고. 별의별 경험이 다 있지.”강솔은 원래 매우 슬펐지만, 진석의 말을 듣고 이유를
한밤중.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간씨 집안의 손님들은 아직도 흩어지지 않았다. 이미윤은 콜라겐을 들고 올라오며 다정하게 웃었다. “먼저 자. 내가 저 사람들이 소리 좀 줄이라고 할게, 시끄럽게 하지 않을 거야.”간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이미윤은 침대 옆에 앉아, 잘 관리된 피부가 희고 부드럽게 빛나는 미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일이야. 엄마는 네가 앞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길 바란다.”미연은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럴 거예요!”“나와 네 아빠는 결혼에서 너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했어.” 이미윤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 “그 후로 네 성격이 많이 변했어. 우리와도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정말 미안해.”이 순간, 미연은 어머니를 이해하는 듯했다. 이미윤이 말한 적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략결혼이었고, 어머니도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 결혼 후, 어머니는 남편을 좋아하려고 노력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에도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결혼은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하게 변했다. 그나마 서로 존중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이 최선의 결과였다.미연은 팔을 뻗어 어머니를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하지만 엄마아빠도 자기 행복을 찾기를 바라요.”“아니.” 이미윤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와 네 아빠는 함께 늙어갈 거야.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어.”미연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알았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난 항상 지지할게요.”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지만, 둘 다 미연을 사랑하고 있었다....한편, 장명원은 아직도 자지 않고 있었다. 장씨 집
다음날, 음력 12월 26일, 모든 일이 길하다는 날, 장명원과 간미연의 결혼식이 열렸다.장시원과 임구택은 결국 장명원의 들러리가 되지 않았다. 임구택의 신분과 지위상, 신랑 들러리를 서게 된다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앉아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원은 명원의 사촌 형이고, 장씨 집안의 후계자로서 그 신분도 적절하지 않았다.그날 집에 돌아갔을 때, 시원은 우청아에게 신부 들러리로 서는 것에 관해 물었고, 청아는 시원에게 애교를 부려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반면, 소희가 구택에게 어떻게 허락을 받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들러리는 조백림과 명원의 다른 두 친구가 맡았다. 그리고 신부 들러리는 여전히 소희, 청아, 유정 세 사람이었다.물론, 명원은 구택과 시원을 화나게 할 수 없어서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와 신부 들러리 사이의 모든 커넥션들을 취소했다.이른 아침, 소희와 친구들은 간씨 집안에 도착했는데 성연희도 일찍 왔다. 청아가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에, 연희는 계속해서 요요를 안고 다녔다. 간씨 집안도 명문 부호라, 해가 뜨기도 전에 저택 안팎은 손님들로 가득 찼고, 기쁨과 활기가 넘쳤다.미연은 창문 앞에 서서 부모님이 손님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마음속으로는 자신과 명원이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때 소희가 다가와 말했다. “옷 갈아입어야 해. 명원이 오고 있어.”미연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반 시간 후 명원은 문밖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밖에 있던 유정이 옆에 서 있다가 밀려 넘어질 뻔했다. 이때, 백림이 유정을 잡아주며 웃었다.“조심해!”유정은 최근 조백림과 잘 지내며, 함께 몇 번 술을 마시고, 몇 번 모임에 참석하면서 좋은 친구처럼 지냈다. 유정은 일어나면서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괜찮아!”백림은 다시 유정을 놓고, 살짝 몸을 돌려 주위의 혼잡한 친인척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강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챙겼어요.”강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아 침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그러면 오늘 바로 하자. 먼저 씻고 아침 먹고, 곧바로 서류 처리하러 가자!”...한 시간 후, 아심은 서류를 작성한 뒤, 직원의 안내를 받고는 앉아서 기다렸고,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그럴 만도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녀의 감정은 너무 큰 변화를 겪었고, 벌어진 일들이 모두 예상 밖이었다.예를 들어, 어제는 시언을 배웅하러 왔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강성에 남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오히려 아심에게 더 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 기쁨에 흥분을 주체 못 했고, 오늘 아침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쪽지는 그녀를 더더욱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결혼 얘기를 꺼냈는데, 시언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줄은 정말 몰랐다.불과 한 시간 전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이제는 이미 서류 작성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건물을 나와 정말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심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멍해졌다.아심은 옆에 있는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우리 진짜 결혼한 거예요?”어제까지만 해도 어떻게 시언과 작별할지 고민하던 자신이, 오늘은 이미 그와 부부가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시언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게다가 후회도 못 하는 결혼이야.”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혼식은 언제 하고 싶어?”“아?” 아심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무심코 대답했다.“지금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좀 시원해지면 하죠.”“좋아, 네가 정한 대로 하자.”시언은 아심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갔다.“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요?” 아심이 시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집으로 가자. 할아버지께 이 좋은 소식을 알려드려야지.”아심은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우리가 양쪽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결혼한 건, 좀 예의에 어긋난 거 아닐까요?”시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강아심은 눈가가 붉어지며 살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할아버지께도 말씀 좀 전해주세요.”[알겠어. 비행기 표는 취소했으니 집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게. 네가 돌아오고 나서 떠나자.] 도도희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이반스와 이야기를 나눴어.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너도 이해해 줬어.”아심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요.”[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반스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준비할 거야.] 도도희는 웃으며 덧붙였다.[너와 시언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그 순간 아심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도도희와의 통화를 마친 후, 아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책장을 지나치던 중, 아심은 왼쪽 서랍 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쪽에서 뭔가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어딘가 낯익은 물건 같았다.아심은 이미 서랍을 지나쳤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돌아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스케치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전에 시언과 함께 저택에서 수업을 들을 때, 시언이 자주 손에 들고 있던 그 스케치북이었다.아마도 시언이 저택을 떠날 당시 이곳에 들러, 소지품 몇 가지를 여기에 두고 간 듯했다. 그녀는 시언이 수업 시간마다 손에 들고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한 번도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에야말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였다.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스케치북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림들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스케치북에는 약 열다섯 장 정도의 인물 스케치가 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그림의 주인공은 아심이었다.아심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표정, 아이들과 정원에서 노는 모습,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옆모습까지...모든 그림의 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했고, 구도는 빈틈없이 완벽했다. 각
“어. 직원이 말하길, 네가 막 떠났다고 하더라고.”“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너무 늦었으니 집으로는 가지 말고, 전에 머물렀던 저택으로 가죠.”강아심은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확실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저택에 도착하자, 강시언은 아심을 안은 채로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침실에 들어서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지만, 아심은 손을 뻗어 그 불을 꺼버렸다.침실은 넓고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그림자를 만들었고, 어둠 속에서 둘 사이의 긴장감과 온도가 빠르게 고조되었다. 아심의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쇄골과 옥처럼 빛나는 피부는 시언을 더욱 사로잡았다. 그녀는 시언의 강인한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싼 채, 살짝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씻어야 해요.”“응.” 시언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답하며, 아심을 욕실로 데려갔다. 욕실에 들어가자 그는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뜯어내며 아심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아심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숨을 고르고, 살짝 깨문 입술 사이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은 달빛보다도 더 매혹적이고 아릿했다.그 밤은 길었다. 아심은 처음으로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강언의 품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녀의 감정과 감각은 더없이 충만했다....다음 날, 아심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아심은 눈을 깜빡이며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지만, 시언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거실에서 그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시언도 막 일어난 듯했다. 아심 옆자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햇살이 따뜻하게 창을 통해 들어와 짙은 회색 침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심의 벌거벗은 어깨에도 햇빛이 내려앉아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몸이 나른하게 풀린 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이제
달빛이 강시언의 눈썹과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시언의 모습을 더욱 고귀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삼각주의 일은 이미 시경 걔네들한테 맡겼어. 난 본국으로 돌아왔고.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야.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야겠지만.”아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눈동자에 작은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이에요?”“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겠어?”아심의 마음속에서 억누를 수 없었던 환희가 점점 커져갔다.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났고, 붉은 입술은 매혹적으로 빛나며 시언을 뜨겁게 바라봤다. 시언은 아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아심은 한껏 들뜬 마음속에서 약간의 이성을 찾아냈다. 그녀는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눈썹을 살짝 올려 물었다.“당신이 떠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언제부터였죠?”시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심의 얼굴에서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화가 난 기색으로 변해갔다.“이번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결정한 거죠?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시언이 은퇴를 결심한 것은 분명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돌아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아심은 최근의 갈등과 고민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언을 밀어내며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긴 팔로 아심의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고의는 아니었어.”방금까지 울었던 아심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머물러 있었다. 붉어진 눈꼬리는 그녀의 화난 표정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아니라고요? 이게 어떻게 고의가 아니에요?”아심은 힘껏 시언을 밀어냈지만, 그는 손쉽게 아심의 손목을 붙잡고 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에 실린 애잔한 사랑 노래가 밤을 더욱 고요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강아심의 눈에는 언제나 강시언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늘 아심의 시선 끝에 있었다.아심은 시언을 꼭 끌어안고,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살짝 쉰 채로 말했다.“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잔잔하게 흘러가던 물이 끝없이 휘돌아 결국 마음을 강하게 휘감고 넘쳐흐르는 듯했다.“예전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설날에 당신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을 때부터, 나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했어요.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려고, 자유로운 미래를 꿈꾸려고요.”“그런데 왜 결국엔 이 모든 게 당신 하나를 이기지 못하죠?”모든 것을 잃었을 때, 시언은 아심의 전부였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조차, 그는 아심의 전부를 초월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들, 시언이 없다면 아심의 인생에는 기쁨도, 의미도 없었다.시언은 아심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에 스며드는 눈물을 느꼈다. 마음이 찌르듯 아파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아심아...”하지만 아심은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절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사랑해요. 하지만 정말로 미워요. 왜 나에게 도망칠 길 하나조차 남겨주지 않았나요? 왜, 단 하나도!”어두운 밤 속, 시언의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저음으로 물었다.“그래도 떠날 거야?”아심은 시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참고자 했지만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여기 강성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1년이든, 2년이든, 당신이 언제 돌아오든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정월 대보름 그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심 스스로 찾았다.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아심은 시언을 사랑했다. 이 사랑은
강시언은 오후 네 시가 되도록 강아심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도희는 아심이 운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했다.시언은 아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비교적 침착하던 강재석마저 걱정하기 시작했다.“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시언은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에 강재석은 뒤에서 당부했다.“아심을 만나거든 꼭 내게도 알려라.”시언은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언은 문밖으로 나갔다. 오석이 방으로 들어와 강재석에게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르신, 오늘의 바둑은 좀 난잡해 보이네요.”강재석은 바둑판 위의 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마음이 복잡하니, 바둑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겠나.”오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아직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강재석은 잠시 바둑판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은 이미 짜여 있어. 어떤 상황이든 계속 두어야 해. 끝까지 두다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있을 거야.”...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서점에도 손님이 줄어들었다. 아심은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서며 책 두 권을 계산했다.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밝게 말했다.“혼자 오셨나요?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알아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에 먹죠.”돈을 지불한 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직원에게 말했다.“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좋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안녕히 계세요.”서점을 나온 아심은 저물어가는 황혼 속 긴 골목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곧 어둠이 깔릴 듯했다. 그녀는 만나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골목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산책을 하던 아심은 문득 자신이 왜 이곳에 계속 머무
강아심이 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강씨 저택으로 향하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음이 흔들렸다.도로 옆에 차를 잠시 멈추고 고민한 뒤, 아심은 차를 다시 움직여 차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운성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고즈넉한 고장을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아심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배낭을 메거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마을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은 청량하고 상쾌했다. 강아심은 깨끗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정오의 햇살 아래 깊고 조용한 골목은 한결 평온했다. 이따금 떠도는 햇빛과 그림자 속, 누군가의 고양이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담장 위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이끼 낀 벽돌 구석에 내려앉았다.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서점. 서점 뒤뜰의 붉은 담장 위로 장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향기는 골목 특유의 습한 공기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졌다.서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강아심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몇몇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책을 정리하던 직원이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어서 오세요!” 직원이 인사하며 웃고는 아심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아, 손님이시네요!”아심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직원은 연한 하늘색 멜빵 청바지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던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아심의 앞으로 다가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올 줄 알았어요!”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
그날 밤, 강아심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밤이 깊어지며 바람이 일었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이어졌다. 새벽녘이 되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도도희는 이른 아침에 조깅하러 나가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 아심과 마주쳤다.“운성으로 가는 거니?”이에 아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작별하려고요.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돌아올게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잘 다녀와. 아침은 먹고 가는 게 어때?”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가는 길에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도경수는 아심이 강시언을 배웅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심이 떠나자, 도경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둘 다 내일 떠날 텐데, 왜 시언이 우리 아심일 배웅하지 않는 거야?”도도희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렇게 따지지 마세요. 아심이가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요.”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아심이가 삼각주로 끌려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내가 절대 못 봐!”도도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그러나 도경수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아심인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가지 말라고 막았어야 했는데. 시언은 늘 여유로우니 우리도 좀 참을 수 있었잖아!”도도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운성, 강씨 저택.강재석은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집사인 오석이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어젯밤에 도련님 방의 불이 밤새 켜져 있었습니다.”강재석은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엔 걱정의 기색 없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
아심은 눈에 은은한 빛을 띠며 성연희를 바라보았다.“연희야, 고마워.”연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됐어! 저기 가서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를 잊으면 안 돼.”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절대 잊지 않을 거야.”그날 저녁아심은 이전에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파티를 마친 후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방 안은 이미 얇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강시언의 셔츠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밤, 세탁소 직원이 가져가 깨끗이 세탁한 후 다시 배달해 놓은 것이었다.강심은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어두었다. 옷장에는 남성용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대신 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두 권의 책과 고즈넉한 설에 갔던 서점에서 소녀가 건넨 엽서가 놓여 있었다.아심은 책을 들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거기엔 남자가 힘 있게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강아심 2월 3일, 인가마을특색거리책을 내려놓고, 그녀는 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성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수한 밤들, 아심은 늘 이 자리에서 강성의 밤을 바라보았다.고요하거나, 떠들썩하거나, 혹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거나, 아니면 별빛이 찬란한 밤들. 하지만 아심은 늘 방관자처럼, 조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그러나 시언의 등장으로, 그 후의 밤들은 전과는 다른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했지만, 머릿속의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유리창에 비친 아심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힌 포로처럼, 어떻게 이 족쇄를 깨부술지 고민하는 듯했다.‘떠나는 것이 해답일까?’아심은 창문 앞에 오래 서 있다가 테이블 위의 책과 엽서를 모두 여행 가방에 넣었다.도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도희는 거실 밖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