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격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22층의 바에서는 여전히 환락의 분위기였다. 남궁민은 바 테이블 앞에 앉아 소희에게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소희가 방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바에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갑자기, 남궁민은 자신이 소희를 너무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온두리에서 찾고 있는 오빠는 대체 누구일까?’예전에는 이런 걸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몹시 알고 싶어졌다. 남궁민은 신비로운 여자를 좋아했지만, 소희한테는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또한,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감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워할 때, 꽤 섹시하고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남궁민의 옆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술 한잔 사 주실 수 있나요?”여자는 젊고 아름다운 얼굴에 눈동자를 반짝이며 남궁민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궁민은 마음이 복잡해 여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여자는 거절당하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일부러 더 가까이 다가와 남궁민의 다리를 슬쩍 건드렸다.“혹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요?”남궁민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막 말을 하려는데, 뒤에서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제티!”술에 반쯤 취한 남자가 다가오며 사나운 표정으로 남궁민을 노려보았다.“지금 감히 나의 제티를 빼앗으려고 하는 거야?”그러자 남궁민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혀 관심 없으니까 당장 데려가!”그러나 여자는 반쯤 취한 남자를 피하려는 듯, 남궁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꺼져!”남자는 화가 나서 여자에게 냉정하게 말했다.“제티, 너!”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남궁민을 때리려 하자 제티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악!” 그러나 주먹은 남궁민의 얼굴에
남궁민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하며 소희를 한 번 바라보고는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죠?”“건물의 1층 연구소가 파괴되었습니다. 연구소에서 라일락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목격되었고요.” 헤이브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추정되는 인물이라고요?” 남궁민은 소희 앞에 서서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헤이브,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지금 이 바에 라일락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세요.”“근데 왜 하필 라일락이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시는 거죠? 그리고 레이든에게 전해주세요. 라일락은 저와 함께 밤새 있었으니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고요!”헤이브는 말했다.“남궁민 씨, 정말 라일락 씨가 계속 당신과 함께 있었나요?”남궁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입니다.”그러자 헤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섰다.“그럼 됐습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남궁민은 헤이브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그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서 소희를 바라보았다.“우리가 밤새 함께 있었던 것 맞죠?”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남궁민은 그제야 낮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만 돌아가죠.”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민과 함께 바를 떠났다. 별장에 도착하고 소희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남궁민이 그녀를 불렀다.“라일락!”소희가 돌아서자, 남궁민은 진지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소희입니다.”소희는 담담하게 말하자 남궁민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아요,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난 신경 쓰지 않으니까.”“음?” 소희는 남궁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저랑 사귀시죠. 전, 제가 당신을 좋아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거든요.”남궁민의 갑작스러운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소희는 무표정하게 답했다.“감사하지만, 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소희는 말을 마치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라일락, 아니, 소희!” 남궁
이에 남궁민은 비웃으며 말했다. “라일락, 내가 당신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건 너무 주관적인 판단이거든.”“아니요, 매우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소희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쓸데없이 이런 화제로 왈가왈부하지는 말죠. 제가 아까 말했던 것을 생각해 볼 시간을 줄게요.”“생각할 필요 없어요!” 소희는 다시 남궁민의 말을 끊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요!”말을 마치고, 소희는 남궁민을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갔다.“라일락.” 남궁민은 소희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이건 결코 빈말이 아니에요.”소희는 뒤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서 필요가 없네요!”그날 그 사당을 떠올리며, 오늘 남궁민이 자신을 보호해 준 것을 떠올리며, 소희는 남궁민의 감정을 경멸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정말 미안하지만, 당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진심으로 당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찾길 바랍니다.”남궁민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는 이미 찾았다고 생각해요!”“착각이라고 생각하세요.” 소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걸어가자 남궁민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소희가 너무 조심스러운 걸까? 정말 남자친구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소희를 혼자 온두리에 보낼 수 있었을까?’남궁민은 소희를 여기에 두고 싶었고 소희가 자발적으로 남도록 만들 자신이 있었다.문을 닫고 나서야 소희는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임구택이 소희에게 남궁민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소희는 확신에 차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남자들은 정말로 고통을 즐기는 거야?’소희는 남궁민에게 한 번도 웃거나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이에 대해 더 이상 다투지 않기로 했다.소희는 옷을 챙겨 들고,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샤워를 준비했다. ...
레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레이든은 돌아서서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고 헤이브는 저택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든 씨, 이디야 씨에게서 어떤 단서를 얻으셨습니까?”레이든은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이디야 씨가 정말로 요하네스버그에 온 목적이 새로운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헤이브는 표정 없이 말했다. “확실하지 않으니 판단하기 어렵네요.”레이든은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49층이 폭발했을 때, 헤이브 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경보를 받고 즉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수비에 실패한 것은 제 책임이며, 용주에게 설명할 것입니다.”헤이브 말을 마치자마자 레이든의 전화가 울렸고 레이든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용주님!”삼각용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49층이 폭발했다고?”레이든은 어두운 표정으로 헤이브를 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모든 연구 성과가 일순간에 무너졌기에 삼각용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분노를 터뜨렸다. “사람은 잡았나?”레이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못 잡았습니다.”“그 연구소에 우리는 몇 년의 노력을 들였는데, 이렇게 폭발시켜 놓고도 사람을 못 잡다니! 레이든, 왜 이렇게 일 처리를 개떡같이 하는 거지?”바이러스 연구는 몇 년 동안 진행되었고, 곧 돌파구가 보일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퍼뜨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레이든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일은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당장 밝혀내라!” 삼각용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는 H 국에 퍼뜨릴 계획이었는데, 요하네스버그 내 H 국인들을 철저히 조사해. 누구든 의심할 여지가 있으니까.”레이든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그게 누구든지 놓치지 않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레이든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라일락은 조사했습니까?”헤이브는 고개를
레이든은 명령을 내렸다.“헤이브를 도와 49층 사건을 조사하세요. 또한 당신 주변 사람들을 주의하시고요.”“네! 그러면 먼저 나가겠습니다.”웰오드는 돌아서서 나가며, 마른침을 삼켰고, 양복 속 셔츠가 차가운 땀에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웰오드가 나간 후, 레이든은 혼자 의자에 앉아 얼굴에 드리운 분노가 서서히 사라지고, 음침한 눈빛에 숨겨진 흥분이 비쳤다.‘그 사람일까? 정말로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것일까?’서희가 있는 한, 진언은 49층을 폭파시키더라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정말 좋네! 이렇게까지 눈물겨운 형제애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지.’‘이디야도 참여했는데 목적이 단지 신재생에너지를 위해서만은 아닐 거야. 무엇을 위해서일까? 온두리를 삼키려는 것일까?’레이든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래도 모두 함께 모여 있어야 재미있지!’...소희는 막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길고 늘씬한 그림자가 발코니 소파에 앉아 그녀가 요즘 읽고 있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희는 이내 커튼을 당기며 말했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소희는 카펫 위에 앉아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임구택의 다리에 머리를 뉘였다. 막 샤워를 마친 상태라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볼을 덮고 있어 깨끗하고 해맑아 보였다.구택은 책을 계속 읽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소희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소희는 턱을 구택의 다리에 기대고, 별처럼 맑고 투명한 검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구택은 여전히 소희에게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에 소희는 손을 구택의 셔츠 속으로 집어넣고는 손가락을 단단한 근육을 따라 위로 움직였다.“이디야 씨, 제 몸에 상처가 없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지 않을래요?”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는 눈길을 돌려 바라보았다.“오늘의 일은 네 임무가 아니었을 텐데, 왜 말해주지 않았지?”만약 구택이 감시 카메라를 통해 이상 징후를 즉시 발견하고 구택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소희를 구할 수 있었을까? 구택
이에 소희는 구택의 이마에 이마를 기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깨가 아니라 등.”구택은 소희를 품에 안고, 등을 내려다보았다. 목욕 가운이 허리까지 내려가 등 전체가 드러났다. 따뜻한 황색 조명 아래에서 피부는 부드럽고 매끈했다. 몇 군데 연한 분홍색 자국은 곡선에 따라 물결치듯 퍼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소희는 눈을 감고, 구택의 입술에 키스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곧 끝날 거야. 임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설희랑 데이비드도 보고 싶고, 오영애 아주머니가 만든 디저트도 먹고 싶어.”그리고 구택과 함께 잔디밭 그네에 앉아 햇살을 즐기고 싶었다. 이에 구택은 소희에게 뜨거운 키스를 하며 말했다.“안전하게 돌아가자!”“응.”소희는 구택의 새장에 갇힌 구관조가 될 수 없고, 구택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덩쿨도 될 수 없었다. 소희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도 같았고 자기만의 하늘을 가지고 있었다.구택은 소희를 위해 길을 열어줄 수는 있지만, 날개를 꺾을 수는 없었다. 둘은 함께 걸어가는 중이라는 걸 소희도, 구택 본인도 잊지 말아야 했다.구택은 몸이 긴장한 채 소희와 계속 키스했는데 입술에서 턱, 목, 쇄골까지 쭉 이어졌다. 소희의 어깨는 날씬하고 곡선은 아름다웠다.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가 구택에게 닿자, 구택은 미칠 듯이 소희를 자기 몸에 녹이고 싶었다....밤이 새벽으로 접어들고, 두 시간 후면 해가 뜰 것이었다. 이에 구택은 소희를 품에 안고 말했다.“자, 잠들면 갈게.”소희는 극도로 피곤했지만, 구택 앞에서 잠들지 않았고 구택을 밀며 말했다.“해가 뜨려고 하니까 이만 돌아가. 돌아가지 않으면, 난 잠을 잘 자지 못할 거야.”“무슨 말이야?” 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내가 여기 있으면 잘 못 자?”“네가 여기 있으면, 나는 자고 싶지 않을 거야!” 소희는 일어나 구택의 셔츠를 집어 입혀주며,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돌아가!”이에 구택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마치
임구택은 꿈속에서도 소희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묶인 끈이었기에 소희는 팀원들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백양 일행도 남궁민처럼 다른 세상에서 소희를 필사적으로 깨우려고 하고 있을까? 소희가 사랑의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안락함을 즐기지 않도록, 자신이 지닌 책임을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일까?...경성.이진혁은 방금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이선유가 마스크를 쓰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무슨 일로 왔어?” 이진혁이 온화한 미소로 물었다.“아빠!” 이선유가 다가오며 음침한 눈빛으로 말했다. “소희와 성연희가 지금 강성에 없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이 좋은 기회예요!”이진혁은 책상으로 돌아가 앉으며 냉소를 지었다. “알고 있다. 임구택도 강성을 떠난 지 며칠 되었어.”“그럼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겠네요?” 이선유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마스크를 벗어 얼굴의 흉터를 드러냈다. “날 이렇게 만든 소희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이진혁은 선유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수술을 받았는데 오히려 더 도드라졌구나?”“회복 중에 술을 마셨어요.” 이에 선유는 눈을 피하며 다소 불안하게 말했다.“네가 외모를 신경 쓴다면 자신을 절제해야지.” 이진혁은 화가 나서 눈살을 찌푸렸다.그날 소희가 선유를 옥상에서 밀어 얼굴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깊게 갈라졌다. 원래는 정성껏 관리하면 흉터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유는 여전히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에 외모에 집착해 해외에서 성형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성형 수술의 회복 기간이 길어서 참지 못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리고 그 결과 수술 전보다 더 나빠졌다.“아빠, 날 정말 아낀다면 그 소희를 매장해야 해요. 지금 강성에 없을 때 말이죠!” 선유는 코웃음을 치자 이진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일 소희는 실시간 검색어에 올릴 것이고 세간의 비난을 받게 할 거니까.”...다음 날 월요일 출근한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몇 가지 소식에 깜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서 윤미는 뉴스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 King은 협회에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협회 사람들이 여러 차례 찾아와 권유했지만, King이 자리에 없어서 진석이 몇 번이나 막아냈다. 결국 귀찮아서 King을 협회에 가입시켜 버렸고 King에게 명예 회장이라는 직함까지 주었다. 그런데 이제 일이 터지자, 그들은 발을 빼는 데 급급했다.윤미는 온라인에서 King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며 휴대폰을 꺼내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이나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아 화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석 사장님 어디 계세요?”평소 진석은 더 많은 사업을 관리해야 했기에 디자인 작업실에 상주하지 않았다.이에 화영이 말했다. “지금 출장 중이고 며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그럼 인터넷의 찌라시는 어떻게 하죠?” 초조하게 묻는 윤미에 화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사장님도 강성에 없어요.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냥 무시하고 있으면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을 겁니다.”이에 윤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누군가 일부러 덮어씌운 것 같아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예요.”그러자 화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경쟁자인가요?”윤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확실히 말할 수 없어요. 인터넷에 소문이 넘쳐나고 있는데 King과 사장님도 안 계셔서, 내막을 잘 모르겠어요.”“일단 상황을 지켜봐요. 그동안 많은 풍파를 겪어왔고 아무 일 없을 거예요.”“이번 온라인 공격이 디자인 작업실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사장님이 없으니 윤미 씨가 디자인 작업실을 잘 지켜야 해요.”“윤미 씨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화영의 말에 윤미는 바로 말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디자인 작업실에 아무 문제 없게 하겠습니다.”“좋아요. 당신이 디자인 작업실을 지키고, 내가 지엠을 지킬게요. 그들이 없을 때 우리가 흔들리면 안 돼요!”“네!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