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석이 뒷쪽 서재로 돌아갔다. 들어서자마자 도경수가 재미있는 광경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자 강재석은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소씨 집안 사람들 참 한심해!”도경수는 그런 상황을 즐기듯이 대답했다. “가지 말라고 했잖아, 스스로 자초한 거야!”강재석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소희는 성격이 좀 불같아서 낯선 사람들은 소희한태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낄 거야.”“만약 소씨 집안 사람들이 소희를 오해한 거라면, 내가 좀 중재해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소희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없었으니,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하지만 진연을 보고, 소정인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소해덕은 소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는 이익밖에 없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것이 헛된 바람임을 알았다.도경수도 표정을 굳혔다. “어떤 것들은 억지로 될 일이 아니야. 우리가 소희를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노정순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제가 소희의 엄마가 될 거예요. 소희가 부족한 사랑을 내가 다 채워주면 되죠.”임구택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소희를 좋아할 거고요.”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것 같아, 이제 그만하지.”...하루 종일 도경수 집에서 시간을 보낸 일행은 저녁 식사 후에야 헤어졌다. 헤어질 때, 성연희가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 내일 할아버지와 함께 운성으로 돌아가는 거야?”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그러자 연희는 조금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럼 빨리 돌아와, 나 너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리고 네가 오래 있고 싶어 해도 안 될 거야. 구택이 직접 너를 데리러 올 테니까!”소희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 내일 프랑스로 신혼여행 가잖아, 내가 보고 싶을 시간이 있을까?”그러자 연희의 눈이 반짝거렸다.“난 노명성과 함께 있어도, 내 마음에는 항상 네가 있어. 내가 돌아왔을 때 너도 돌아와 있으면 좋
소희의 눈빛이 돌변하며 구택의 손을 꽉 잡았다. “오늘 밤, 어정으로 가자!”구택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소희를 흘깃 보았다. “옛 기억을 되새기고 싶은 거야?”소희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응, 돌아온 후에 아직 어정에 가보지 못했어.”“네가 주문한 옷은 어떻게 됐어?”소희는 숨을 들이켰다. 그걸 깜빡했다!“깜빡했어?” 구택은 무력감과 애정이 섞인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주문할까?”“아니, 지금 바로 주문할게!” 소희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소희는 차라리 남보다 창피를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구택인 주문하면 아마 도매로 사들일지도 몰랐으니까. 소희가 모델 사진을 보며 이미지를 넘길 때마다 점점 더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때 구택이 한눈에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야!”“안 돼!” 소희는 바로 반대했다. 구택이 가리킨 그 옷은 연희가 어제 준 것보다 훨씬 더 노출이 심했기 때문이었다.“내 말대로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구택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 “결혼식을 미루는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줬는데, 이젠 볼 일 다 봤으니 오리발 내미는 거야?”소희는 구택의 농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내일의 이별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약해져, 결국 구택의 마음에 드는 것을 주문했고, 배송 주소는 어정이었다.구택은 소희가 이렇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부드러워졌고, 더욱 흥분하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어정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현관의 불을 키자 거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2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고 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소희는 안으로 걸어갔다. 시간 맞춰 청소해 준 집안은 깨끗했고 먼지 하나 없었다. TV 아래 캐비닛에서 자주 보던 DVD를 발견했다.소희는 뒤돌아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았어? 공포 영화가
다음 날,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약속을 잡았다. 임구택은 오전에 회사 일을 처리하고 점심 전에 돌아와 소희를 데리고 도경수 집에 간 뒤, 공항으로 그들을 바래다주기로 했다.소희는 구택에게 오전에 경원주택단지로 가서 몇 가지 짐을 챙길 거라고 말하며,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구택은 떠나기 전에 소희를 한동안 안고 말했다.“네가 돌아오면 우리 여기로 다시 이사하자!”어정에는 그들의 공동 추억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 소희는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왜 이렇게 순하지?” 구택이 소희의 귀에 입 맞추며 말했다. “이렇게 순한 널 놓아주기 싫어!”소희는 구택을 힘껏 안으며 말했다. “일하러 가!”“응!” 구택은 소희의 이마에 다시 키스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소희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휴대폰을 켰고, 바로 간미연의 문자를 봤다.[어디 있어?]곧이어 장명양의 문자도 읽었다.[보스, 벌써 갔어요?]소희가 미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찰나, 미연이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소희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나 아직 강성에 있어, 오후에 운성으로 갈 거야.”“만날 수 있을까?”“어, 나 어정에 있으니 여기로 와!”“알았어, 곧 갈게!”미연과 명양이 함께 차를 타고 어정으로 왔다. 문을 열자마자 명양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형은 알아요?”“몰라, 그냥 내가 집에 간다고 생각해.” 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긴장 풀어, 편하게 해!”명양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형이 알면 나도 오히려 편한데.”소희는 진지하게 말했다. “임무가 있어서 절대 알아서는 안 돼!”그러자 명양은 무력하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알아요!”미연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과 비슷한 전자 장치를 꺼내 소희에게 건넸다. “테스트는 이미 마쳤어, 네가 가져다 방에 두기만 하면 돼. 테스트해 봤는데, 장면 전환이 지능적이고, 부드럽고, 리얼해서 구멍이 없을 거야.”
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이 처음 수행하는 임무도 아니야, 뭐가 필요한지 알아.”장명양의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깊은숨을 들이켰다. “매번 임무가 다 다르고, 오랫동안 그쪽에 가지 않았잖아요. 어쨌든, 조심해야 해요!”간미연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 우리 셋이 함께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게. 그리고 꼭 무사히 돌아와!”소희와 명양도 손을 맞잡았다. 세 손이 꼭 붙어 있었고 그들의 우정은 꽤 단단했다....명양과 미연이 떠난 후, 소희는 자신의 짐을 정리해 떠났다. 어젯밤에 벗어 놓은 옷은 욕실에 두었고, 일일 도우미가 와서 빨 것이었다. 하지만 임시로 주문한 그 옷이 문제였기에 소희는 그냥 깨끗이 세탁하고 건조시킨 후 옷장 구석에 넣었다. 그저 일일 도우미가 옷을 정리하지 않기를 바랐다.모든 것을 준비한 후, 소희는 구택을 위한 쪽지를 남겨 소파 위에 두었다. 문을 열고 뒤돌아설 때,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거실을 밝히며 소희에게 따뜻함과 맑은 기운을 선사했다. 소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었다....경원주택단지로 돌아가기 전, 소희는 우청아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 건너편 디저트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청아는 소희가 강재석과 함께 운성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약간 놀라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아, 지금은 시간이 있어. 새 일을 시작하면 돌아갈 시간이 없을 테니까.”“응.” 소희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너와 장시원 오빠는 어때?”청아의 희고 동그란 얼굴이 분홍빛을 띠며 밀크티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잘해줘.”“오빠 가족은 어때? 만났어?”이에 청아의 예쁜 눈썹이 잠깐 찌푸려졌다. “시원 씨가 이번 주말에 날 데리고 집에 간다고 하더라고.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오빠가 널 데리고 간다면, 널 어떻게든 보호할 거야.”청아의 맑은 눈에 부드러움이 비쳤다. “부모님이 날 받아들이지 않는 걸 이해해. 하지만 내가 깨달은 건, 시원 씨가 나를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 “우청아랑 같이 간식 먹고 있어.”임구택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어디야, 널 데리러 갈게!”소희는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은 후, 웃으며 말했다. “요요가 본가에 있어서, 이번엔 작별 인사는 못 하겠네. 만나면 전해줘.”그러자 청아는 농담을 던졌다. “요요는 분명히 슬퍼할 거야. 함께 사탕을 먹을 사람이 하나 줄었으니까.”“돌아오면, 마트에서 제일 큰 롤리팝을 사주겠다고 해.”잠시 대화를 나누고 난 후, 구택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미 도착했다고 했다. 이에 소희는 일어나며 말했다. “나 갈테니까, 넌 일하러 가.”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주 연락하고, 무사히 돌아와.”“그래!”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자, 구택이 차에서 내려 소희를 위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소희는 청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 차로 걸어갔다.청아는 그 자리에 서서 검은 차가 차량 흐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청아는 반쯤 마신 밀크티를 들고 있었고, 다시 한번 돌아서서 소희와 구택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구택은 소희를 데리고 도경수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면서, 도경수가 강재석에게 말했다. “강성에 살면 얼마나 좋아, 소희가 계속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잖아. 정말 고집불통이야!”강재석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를 강성에 데려가 매일 너랑 체스를 두고 그림을 보게 하고 싶어? 난 그런 시간 없어!”도경수는 혀를 찼다. “네가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마. 이틀 동안 너 때문에 짜증 났어, 어서 가!”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시간 날 때 운성에도 놀러 와. 내가 사는 산 아래 공기가 여기보다 훨씬 좋아!”그러자 도경수는 거만하게 말했다. “부탁하면 갈게!”“내가 너한테 부탁하라고?” 강재석은 눈을 크게 뜨고 밖으로 걸어갔다. “계속 강성에 있어!”이에 도경수는 크게 웃었다. 강재석은 작별 인사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임구택이 물었다. “도경수 선생님 딸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강재석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도경수를 오해하고 있거든. 젊었을 때 가난한 동창생을 좋아했는데, 도경수가 반대했고, 둘 사이가 매우 안 좋았거든.”“후에 도도희가 임신하고 몰래 아이를 낳았어. 도경수는 화가 나서 딸과의 관계를 끊었고.”“도희가 사랑했던 남자 친구는 해외 유학을 가게 되었고, 학위와 미래를 위해 도희를 버렸지. 그래서 도희는 매우 상처받았고, 아이와 함께 강성을 떠났어.”“약 3년이 지나자, 도경수는 도희가 그리웠고, 혼자 아이를 데리고 고생하는 것이 걱정되어 사람을 보내 도희를 데려왔어.”“도희가 낳은 아이는 매우 예쁜 아이였고, 도희를 많이 닮았어. 도경수는 마음의 상처를 점차 치유하고 그 아이를 매우 아꼈어.”“아이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베이비시터도 고용했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모가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어.”“도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도시 전체를 찾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도희는 도경수가 일부러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냈다고 확신했고, 도경수를 매우 미워했어. 그리고 그 후 도희는 해외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강재석은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년이 지났고, 도경수는 여전히 그 아이를 찾고 있어. 찾지 못하면 그 양반은 죽을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할 거야.”소희는 도경수 딸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단지 남자 문제로 다퉜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 뒤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이에 구택이 물었다. “그 아이의 사진이 있나요? 아니면 그 아이에게 특별한 특징이 있나요? 저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내 기억에 따르면, 외손녀의 등, 어깨 가까이에 붉은색 점이 있었어.” 강재석이 말을 마치고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찾지 않아도 돼. 나는 그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저녁이 되자 임구택과 소희는 영상 통화를 했다. 운성에 겨울비가 내린 후, 소희는 저녁을 먹고 강재석과 함께 난로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올 때 오석이 준비해 준 망토와 대나무 우산을 챙겨 들었다. 뒷마당으로 향하던 중 길에서 구택의 화상 전화를 받았다.갓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구택은 화면 속에서 망토를 입고 비 내리는 정원을 걸어가는 소희의 모습을 보고 눈빛이 깊어졌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마치 서로 다른 시간에 있는 것 같아.”소희는 잠시 놀랐다가 구택의 말에 곧 이해했다. 망토 위의 수놓은 무늬를 만지며 따뜻하게 웃었다. “할아버지께서 매년 겨울이면 이 망토를 몇 벌씩 만들어 주셔. 이게 되게 따뜻하다고 하시거든.”“그럼 나도 앞으로 매년 너를 위해 만들어 줄게!” 소희는 웃으며 구택이 어정에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임씨 저택에 가서 살라고 했잖아.”“여기에 네 향기가 남아 있어.” 구택은 방금 감은 검은 머리가 눈썹에 닿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고, 그 모습이 더 매혹적이고 나른해 보였다.소희는 별채의 긴 벤치에 앉아 구택과 대화를 이어갔고, 천장 위에서 하양이가 기쁘게 말했다.“소희 소희!”“쉿!” 소희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하양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끄럽지 말고, 나랑 구택이 조용히 얘기할 수 있게 해줘.”하양이는 날개를 퍼덕이며 더 크게 외쳤다.“구택, 구택!” “소리내지 마!”소희는 하양이를 노려보며 경고했으나 하양이는 소희와 대항하며 더욱 신나게 소리쳤다.한편 구택은 빛나는 눈빛으로 소희와 하양이가 말다툼하는 것을 들으며 옷장에서 잠옷을 꺼냈다. 소희와 하양이가 몇 마디를 주고받는 동안, 구택은 소희가 옷장 구석에 둔 작은 상자를 꺼냈다. 구택이 상자를 들고 소희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이거 아직도 갖고 있었어?”소희는 당황해서 웃으며 얼버무렸다.“어디에 둘지 몰라 그냥 뒀어!”그리고 구택이 상자를
“당연하죠!” 소희는 차분하게 말하자 강재석은 소희에게 음식을 더 담아주며 말했다. “네 오빠는 더 이상 언급하지 말아요.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이렇게 몇 년을 즐겁게 지냈으니까, 자기 몸 잘 챙기면서 살아주기만 하면 돼.”소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매운 소고기를 한 입 먹고 가볍게 칭찬했다. “맛있어요, 셰프님 솜씨가 더 향상된 거 같아요.”“그런가?”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셰프가 네가 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사적으로 연구했을지도 모르지!”“그럼 할아버지가 셰프님에게 보너스를 주세요!”“좋아, 좋아!”강재석과 소희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소희는 할아버지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서 짐 정리를 했는데 간미연이 줬던 거를 책상 위에 놓고 다른 물건들을 한번 체크하고서야 소희는 강재석과 작별 인사를 했다. 문을 나서자 오석이 기다리고 있었고, 소희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아가씨, 날씨가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으세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제 잠시 떠나는데, 할아버지랑 집사 할아버지 건강 잘 챙기세요.”“걱정하지 마세요!” 오석은 느리게 말했지만, 말에 친절함이 묻어났다.“제가 없는 동안에는 방 청소를 하지 마세요. 아무도 방에 들어가지 마세요.” 소희의 말에 오석은 의아해했다.“방에 뭘 놔뒀어요?”“네, 중요한 도면 몇 장이라서 방에 아무도 들어가지 말아 주세요.” 소희가 엄숙하게 말하자 오석은 즉시 대답했다. “알겠어요. 직원들에게 말할게요.”“음.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소희는 복도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서재에서 책을 읽고 계세요.”소희는 직접 서재로 가서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 떠날게요!”강재석은 책을 들고 있었는데,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들었다. “기사한테 너 데려다주라고 했으니까 비행기 내려서 꼭 전화해야 해.”“알았어요!”소희는 강재석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할아버지, 몸 잘 챙기세요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
“이거 소매 속에 숨기면 안 보일 거예요!”임유진은 서인의 손을 꽉 잡고, 손목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끝까지 팔찌를 채우려 했다.이에 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무슨 소매 속에 숨긴다는 거야?’그러나 유진은 자기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손목에 팔찌를 걸어주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요!”서인은 손을 빼내려 하는 순간, 앞에서 안토니가 그를 불렀다. 그렇게 서인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유진은 순식간에 서인의 손목에 팔찌를 걸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절대 빼면 안 돼요. 안 그러면, 계속 떠벌릴 거예요. 내가 사장님 좋아한다고!”둘은 한적한 산길 위에 서 있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며, 유진의 맑은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을 담았다. 그 말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깊고 따뜻한 감정을 담은 채, 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팔찌가 손목 위에 얹혀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것이 뜨겁게 달궈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 감정이 그의 맥박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서인은 아무 말 없이 방향을 돌려 토니에게 향했다. 유진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손안에 남은 하나의 팔찌를 꼭 쥐었다.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는 여러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과 지역 특산물이 가득했다. 넷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그러나 한참 후,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안주설과 토니는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추었다.“아 나 더 이상 못 걷겠어.”주설이 투정을 부리자, 토니는 다정하게 그녀를 업었다.“어릴 때부터 산길을 걸었으니까, 널 업고 정상까지 가는 것도 문제없어!”주설은 토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며들어 있었다.“우리, 원래 이래요.
유진은 서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 안토니가 우리를 산에 데려가 준대요!”토니도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마을 뒷산 경치가 꽤 괜찮아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도 없으니까,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게 어떨까요?”서인은 유진이 잔뜩 들뜬 모습을 보자, 별다른 거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렇게 토니의 안내에 따라 산길을 걸었다.약 10분 정도 걷자, 산으로 오르는 메인 길이 나왔다. 그곳에는 관광객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안주설은 토니의 팔을 꼭 끼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 다정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은 웅장하게 솟아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산허리에는 옅은 안개가 감돌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고, 울창한 숲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유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와, 정말 아름답네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애초에 유진은 이번 주말에 회사 워크숍이 있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집에서 쉬는 게 더 좋다고 했던 사람이, 여기 와서는 이렇게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인을 올려다보았다.“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여행이 즐거운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참, 까다롭네.”이에 유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이게 왜 까다로운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인데!”그러나 서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유진은 잽싸게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그럼 사장님은 나랑 같이 산에 오는 게 좋아요,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아요?”서인은 잠시 걸음을 늦추더니, 진지하게
유진은 볼이 살짝 붉어진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인을 노려보았다.“설령 난초라 해도, 가장 흔한 종류잖아요! 어떻게 그게 100만원이나 해요? 역시 사장님, 돈이 많긴 많네요!”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100만원, 네 월급에서 차감할 거니까.”그 말에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서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웃었고,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원래라면, 유진은 자신이 바보 같아서 화가 났고, 서인이 계속 놀려서도 화가 났다. 그런데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말했다.“앞으로는 아무거나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게요.”다시는 서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인은 웃음을 거두고, 유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사실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또한 서인은 유진을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결국, 서인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원래 그건 그냥 잡초였어.”그것을 귀한 보물로 만든 건,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유진은, 이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하고, 보기 좋았다....점심때가 되자, 토니네 가족은 뒷마당에서 키운 닭을 요리하고, 지역 특산 음식을 만들어 서인과 유진을 대접했다. 소박한 가정식이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유진은 원래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지만,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닭볶음과 깊은 맛이 우러난 닭국물을 맛보며 연신 감탄했다.“이거 정말 맛있어요! 닭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국물도 진하고요!”윤석경은 놀라면서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많이 먹어요. 또 떠줄 테니까!”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유진의 그릇에 음식을 더 담아 주었고, 유진도 서인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맛있
서인은 안토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윤석경 씨, 잠깐 나와 보세요! 이 사람이 당신네 집 손님 맞나요?”서인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향했다. 토니의 부모도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곱슬머리로 말려 있었다. 여자는 토니네 가족을 보자마자, 곧장 손가락으로 한쪽에 서 있는 유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당신네 손님 맞아요?”유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발 소리치지 마세요! 제가 돈 드린다고 했잖아요!”유진은 당장이라도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인은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박민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이 여자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 난초를 뽑아서 토끼 먹이로 줬어요! 내 난초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조금만 늦었어도 다 뽑혀 나갔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라고요!”유진은 머리를 싸매고 싶었고, 작은 목소리로 서인에게 변명했다.“난초인 줄 몰랐어요. 그냥 잡초인 줄 알았어요.”유진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나 박민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쏘아붙였다.“변명하지 마요! 어쨌든 내 난초를 뽑은 건 사실이잖아요!”그때, 윤석경이 나서서 말했다.“우리 집에도 난초가 있으니까, 그걸로 대신 보상해 줄게요. 어린애한테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까지야 있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하지만 박민란은 완강했다.“안 돼요! 당신네 집 난초랑 내 난초는 품종이 달라요! 그러니 난 절대 못 받아요!”윤석경도 화가 났다.“똑같은 난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박민란이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내 난초는 특별히 돈 들여 키운 거예요. 이미 손님이 예약한 거라고요! 근데 이제 어쩌란 말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