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홍연이 자신의 약속을 받아들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언제?” “급해요. 가능한 한 빨리요, 내일 어때요!” 허연은 조급한 표정을 짓자 허홍연은 어려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 연락할게.”“그래요.”허연은 자신의 번호를 허홍연에게 알려주며 말했다. “가도 돼요. 아무에게도 나를 만났다고 말하지 마. 우리 부모님한테도 말고요!” “알았어!” 허홍연은 조심스레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럼 먼저 갈게!” “내일 언제든지 연락해요!” 허연이 재삼 당부했다. “알았어!” 허홍연이 카페를 나서며 고민에 빠졌다. 우청아는 여전히 우림 테크놀러지에 빚을 지고 있을 텐데, 어떻게 허연의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자신의 딸이긴 하지만, 관계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아가 힘들거라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쨌든 청아 주변에는 부자 친구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빌리게 하면 될 일이었다.다음 날 허홍연은 청아가 출근했다고 판단하고 경원 주택단지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물었다. “누구세요?” 허홍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청아 엄마이고, 요요의 외할머니예요!” “아, 들어오세요!” 이경숙 아주머니가 허홍연을 안으로 들였다. “요요야!” 허홍연이 들어서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부르자 요요가 고개를 돌려 허홍연을 바라보며 외쳤다.“외할머니!”“에구, 내 사랑스러운 손녀, 참 예쁘구나!”허홍연이 요요를 안아 올렸고 이경숙 아주머니는 요요가 허홍연을 알아보자 의심을 풀고 말했다. “물 한잔 드릴게요!” “수고가 많으시네요.”허홍연이 요요를 안고서 말했다. “저는 요즘 바빠서 요요를 자주 못 봤어요. 오늘은 요요를 데리고 제 집에서 놀게 할 거예요. 요요의 삼촌과 숙모가 보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요? 청아 씨는 알고 있나요?” 이경숙 아주머니가 묻자 허홍연이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이미 전화해서 알렸어요. 오늘 저녁에 저희 집에서 식사하라고
명우는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사장님, 허연이 돌아왔어요. 미국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친구가 도박으로 빚을 지고 납치되었다고 해요.”“그래서 허연이 지금 돈을 구해서 남자친구를 구하려고 하나 봐요.” 이에 임구택은 비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허홍연을 찾아볼까요? 분명히 허홍연이 아이를 데려갔을 거예요.” 구택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일단 기다려. 나중에 할 일이 있으면 내가 알려줄게. 허연은 내가 처리할게.” “알겠습니다.” 구택은 의자에 앉아 손에 든 펜을 탁자에 가볍게 두드리며 장시원에게 어떻게 암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마침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허홍연은 택시를 타고 거의 한 시간을 달려 허연이 말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외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였다. 그리고 허연이 요요를 보자 반색하며 말했다. “역시 이모님이시네요!” 허홍연이 요요를 허연에게 넘기며 당부했다.“약속한 대로, 아이한테 해를 끼치지 마.” “잔소리 좀 그만해요!” 허연이 손을 뻗어 요요를 안으려 하자 요요는 허홍연의 어깨를 꽉 붙잡고 놓지 않으며 두려움에 찬 큰 눈으로 허홍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 엄마 어딨어요?” “내가 네 엄마야, 얼른 이리 와!” 허연이 요요의 팔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허홍연이 급히 요요를 달래며 허연에게 말했다.“애 놀라게 하지 마. 울면 경찰이 올 수도 있고 그러면 너도 곤란해져.” 허연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요요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네 엄마의 사촌이야. 네 엄마가 나에게 너를 데려다 달라고 했어. 널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알겠지?” 요요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허연을 경계하며 바라봤지만,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이제 가보세요.” 허연이 허홍연에게 말했다. “돈을 받으면 요요를 청아에게 돌려보내.” 허홍연이 걱정스럽게 다시 당부하자 허연이 짜증을 내면서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내
허연은 휴대폰을 꽉 쥐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이 외에도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허연의 남자친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돈을 몇 번 요구한 이후로는 허연을 신경 쓰지 않았다. 허연은 미국에 있던 집을 팔았고, 돈도 거의 다 써버렸다.임구택이 말했듯이, 우청아에게 2천만원을 요구한다 해도 본인의 남자친구를 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럴 바엔 한 번 배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허연은 고개를 돌려 요요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시원이 청아의 아이를 이토록 신경 쓸까? 혹시 요요가 장시원의 아이일까? 해외 유학 중에 생긴 아이가 아닐까?’구택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허연은 왠지 모르게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허연은 요요를 데리고 작은 아파트를 떠나, 비밀 금고 안의 물건을 직접 찾으러 가지 않고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구택이 혹여나 은행 안에 사람을 잠복시켜 놓았을까 봐 걱정했다.다행히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허연은 구택이 준 물건을 받았다. 그것을 본 후, 허연은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이해되었다,...청아는 아침부터 사무실에 도착해 마음이 불안정했고, 디자인 초안을 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어젯밤 그린 스케치 한 장을 집에 두고 온 것도 발견해 점심시간에 잠시 집에 다녀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었고 이경숙 아주머니와 요요 모두 없었다. 청아는 이경숙 아주머니가 요요를 데리고 마트에 간 줄 알고 전화를 걸었다.“이경숙 아주머니, 어디 계세요?”“청아 씨!” 이경숙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별일 없어서 저 집에 왔어요.”이에 청아는 당황했다. “요요는요?”“요요는 할머니가 데리고 갔어요. 모르셨어요?” 이경숙 아주머니의 대답에 청아는 잠시 멈칫했다. “언제 데려간 거죠?”“오전 열 시쯤이요!”그러자 청아 얼굴색이 변했고, 전화를 끊은 후 서둘러 밖으로 나가며 허홍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연, 도대체 요요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돈 줄 테니까 전화 좀 받아, 지금 당장 줄게!][부탁이야, 요요를 다치게 하지 마, 절대로 다치게 하면 안 돼!]“청아야, 당황하지 마, 허연이 말했어. 요요를 해치지 않는다고.” 우청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허홍연을 노려봤다. “일부러 그랬어요? 지난번에는 나를 팔더니, 이번에는 요요를 판 거예요?” 그러자 허홍연은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청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홍연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요? 내가 이 집을 위해 한 게 부족했나? 정말 나를 죽이고 싶어서 그래요?” “청아, 들어봐!” 허홍연이 우청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허연에게 돈을 주면 돼, 요요를 해치지 않을 거야!” “비켜요!”청아는 허홍연을 강하게 밀쳐냈고, 괴로움을 겨우 참으며 허홍연을 분노와 슬픔으로 바라봤다. “당신은 엄마 자격이 하나도 없어요!”“이게 무슨 일이야?” 정소연은 집에서 태교 중이었는데, 청아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청아가 허홍연을 밀치는 걸 보자 소연은 차가운 얼굴로 다가와서 냉랭하게 말했다. “아가씨, 왜 여기 왔어요? 이 집과는 이제 상관없잖아요. 우리와 함께 빚 갚으려고 왔어요? 우리 이미 합의했잖아요, 아버님 문제는 우리와 상관없다고요!” 청아는 소연을 무시하고 허홍연만 바라봤다. “허연한테 전화해서, 내가 돈을 준다고 하고, 요요를 돌려보내라고 해요!” “알았어, 알았어!” 허홍연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계속 울렸지만, 허홍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받아!” “안 받으면 계속 걸어요!” 청아는 온몸이 떨리며 분노에 차 있었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정소연이 한 걸음 다가와 말했다.“아가씨 그 불쌍한 아이 때문에 온 거예요? 사람을 불러서 쫓아내기 전에 나가요. 우리 집에서 소리 지르지 마!” “짝!”청아는 소연의 얼굴에 강하게 뺨을 떄리자
반 시간 뒤, 장시원이 넘버 나인에 도착해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허연이 옆에 앉아 있는 요요를 보았다. 그러자 시원의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요요도 시원을 보고는, 큰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며 조금은 억울해 보이면서도 두려운 듯하지만, 아무 말 없이 착하게 앉아 있었다.“시원 오빠, 오랜만이야!” 허연이 일어나며 말했다. 몇 년을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다시 보게 된 시원의 듬직하고 당당한 모습에 잠시 설레었다.시원은 마음속으로 의문이 가득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연의 맞은편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허연은 시원이 요요에 대한 태도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더욱 확신으로 바뀌었다. 시원은 요요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 우청아 그 바보가 정말로 시원을 속였다는 것을. ‘이런 남자를 잡지 않는다니, 정말 바보 같네!’하지만 이건 오히려 허연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이내 부드러운 얼굴로 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원 오빠, 이 몇 년간 나 해외에서 잘 지내지 못했어요. 나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어요?”“돌아와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 집이 그리워서요.”이에 시원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허연은 가련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꺼내려 하다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사실은 그때 정말로 임신했었어요. 당신이 저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할까 봐 미리 의사에게 돈을 주고 당신의 부하를 속였던 거예요.”그러자 시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게 남아 있었다. “네 말은,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그럼 그 아이는 어디 있어?”“우리 아이는 여기 있어요!” 허연이 요요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안으며 시원에게 보여주었다.“이 3년 동안 나 혼자서 요요를 해외에서 키웠어요. 하지만 아이가 영원히 아빠 없이 살 수는 없으니까,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어요.”시원과 요요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시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시원의 잘생긴 얼굴
장시원은 요요를 지긋이 바라보았는데 시원의 눈빛은 놀라움에서 기쁨으로 변했다. 요요의 맑고 밝은 눈을 바라보는 순간, 시원의 삶에 빛이 스며들어 모든 어둠과 음울함을 씻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원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굉장히 떨렸다. “허연, 먼저 나가!”“어?” 허연은 시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나가라고!” 시원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압박감이 있었기에 허연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망설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허연이 말을 마치고 나가자 방에는 시원과 요요만 남게 되었다. 시원은 일어나 요요 앞으로 걸어가 반쯤 쪼그려 앉으며 부드럽고 탱탱한 요요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시원의 눈빛은 점차 흐려졌다. 사실 시원이 들어온 순간부터 요요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저 시원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삼촌.”“아빠야.” 시원은 요요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받쳐 입을 여는데 갑자기 목이 메었다. “나는 요요 아빠야!” 요요의 큰 눈동자가 커지며 약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아가아, 너는 내 딸이야!” 시원의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마음은 파도처럼 요동쳤으며, 잠시도 차분해질 수 없었다. 시원은 팔을 뻗어 부드럽고 작은 요요의 몸을 꼭 안았다. 시원은 그동안의 쓸쓸함과 공허함이 모두 채워졌다고 느꼈다. 요요는 시원의 어깨에 기대어 작은 손으로 토닥토닥하고는 말했다. “삼촌, 나를 보고 싶었나 봐요. 저도 삼촌이 보고 싶었어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았어요? 삼촌 엄마랑 싸웠어요?” 요요의 목소리를 듣자 시원의 목소리가 메었다. 잠시 후, 시원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거야!” 요요의 눈은 반짝거리며 순수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시원은 요요를 안아 들고 휴대폰을 꺼내 우청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벨 소리가 한 번 울리자 청아가 전화를 받았다. “시원 씨.” 청아의 목소리에서 극심한
장시원은 허연에게 신경 쓰지 않고, 당황한 허연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말해봐,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 말하고 나면, 바로 돈을 보내줄게.”“그리고 나는 진실만 듣고 싶으니까 모든 세부 사항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말해!”허연은 겁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구택이 보낸 유전자 검사지를 건넬 때, 분명 시원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 같았다. 청아가 막 귀국했고, 시원이 요요를 낯선 사람처럼 대하는 걸 보고 청아와 시원이 만난 적 없다고 생각해 속여 돈을 가지려고 했다. 어차피 시원이 상황을 파악할 때쯤이면 허연은 이미 도망쳤을 테고, 그 돈은 남자친구를 구하고 한동안 숨을 만큼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시원이 청아를 부를 줄은!그때야 허연은 자신이 구택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모든 사건의 전말들은 펼쳐졌고, 허연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그랬기에 허연은 괜히 찔려서는 청아를 흘깃 바라보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3년 전, 자신과 허홍연이 함께 청아를 속여 시원에게 약을 타도록 했던 일을 말했다. 허연은 허홍연이 아픈 것을 핑계로 청아를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청아가 스스로 당신 침대에 올라간 거고 나랑은 상관없어요. 나도 그때 정말 화가 났고, 청아가 임신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더군다나 아이까지 낳을줄은!”“그러니까.” 시원의 눈동자는 깊고, 무언가를 생각해 내는 듯한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숨겨져 있었다. “그 밤에 내 곁에 있던 사람, 청아였던 거야?”“맞아요!” 허연은 고개를 숙였고 청아는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순간, 청아는 마치 허연에 의해 옷을 모두 벗겨진 채 시원 앞에 버려진 것 같았다.청아가 그토록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 시원이 알기를 가장 두려워한 것이 이렇게 되돌릴 수 없이 폭로되었다. 시원은 청아를 돌아보았고, 시원의 눈빛은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복잡했는데 그 안에는 연민도 있고, 분노도 있었다
“시원 오빠, 감사해요! 돈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갈게요!”장시원 일행이 떠난 후, 명우는 바로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우청아 씨 아이를 장시원 사장님께서 데려갔습니다.”그러자 구택은 입가에 얕은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이만하면 됐으니 사람들 철수하라고 해.”“허연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명우의 질문에 구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가게 해!”“알겠습니다!”... 시원은 요요를 데리고 장 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요요는 뒷좌석에 앉아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삼촌,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이에 시원은 뒤를 돌아보며 잘생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아빠라고 불러봐!”그러자 요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게임 하는 거예요?”“게임이 아니야, 나는 진짜로 아빠야. 앞으로 아빠라고 불러!” 시원은 억지로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기뻐?”“네.” 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한 번 불러봐!”요요는 귀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요요의 부름 소리에 시원의 마음이 녹아 버렸고, 가슴이 벅차올라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였다. 장씨 저택에 돌아온 시원은 요요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며 부드럽게 말했다. “앞으로 여기서 살게 될 거야. 집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있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뻐꾸기도 있어!”“그럼 엄마는?” 요요가 물었다.“엄마가 좀 성질을 내고 있어. 아빠가 엄마한테 가서 달래서 엄마를 데려올게, 괜찮지?” 요요를 바라보는 시원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 찼다.“좋아요!” 요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시원은 요요를 안고 거실로 들어갔다. 이때 계단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던 김화연은 시원을 보고는 물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김화연은 시원의 품에 안겨 있는 한 시선을 보냈다. “이 아이를 또 데려왔어?”“손녀 필요해요?”김화연이 놀라서 말했다. “무슨 뜻이야?”시원은 요요를 김화연에게 넘겨주고, 손에 든 유전자 검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