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삼촌?" 유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소희 봤어요?"구택의 말투는 담담했다."화원에 간 것 같던데.""아, 그럼 화원에 가서 그녀를 찾아볼게요."유림은 대답하며 인차 가버렸다.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 지금 어떡해요?""내가 화원으로 데려다줄게요." 남자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어떻게요?" 소희는 흠칫 놀랐다. 설마 이 별장에 암실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곧 그녀는 자신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택은 창가로 걸어가며 창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뛰어내리면 돼요. 아래가 바로 화원이거든요.""......"별장의 1층은 매우 높았기에 2층은 거의 3층의 높이에 해당했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의 앞에서 뛰어내려야 할까?그는 혹시 무엇을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구택은 그녀가 멍 때리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요."소희가 다가가자 구택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먼저 뛰어내릴게요. 이따가 내가 아래에서 소희 씨 받아줄게요. 뛸 수 있겠어요?"소희는 그를 보며 물었다. "지금 농담하는 거예요?""아니요." 구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뛸 수 있겠어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먼저 뛰어요!"구택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에 키스했다."무서워하지 마요, 내가 있으니까. 소희 씨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엄청 재밌을걸요."소희는 멈칫하며 눈빛은 순간 그윽해졌다.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그녀는 문득 시간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구택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보고는 뛰어내렸다.소희는 즉시 앞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남자는 날렵하게 발끝을 내밀며 일층의 살짝 나온 창문 턱에 안정적으로 떨어졌다.곧 그는 고개를 들어 두 팔을 내밀었다.그녀는 그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아가야, 얼른 내려와요
소희와 유림은 화원 밖에서 마주쳤다. 유림은 달려와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어디 갔었어? 화원을 거의 다 찾아봤는데 너 못 봤어."소희는 아무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에 모란꽃이 있는 거 보고 좀 오래 있었지.""나는 네가 서재에 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둘째 삼촌이 나한테 네가 여기 있다고 말해준 거야." 유림은 순진하고 귀엽게 웃었다.소희는 가슴이 찔렸다."미안해, 걱정하게 해서!""아니야, 마침 여기 왔으니까 내가 우리 할머니의 화원 보여줄게." 유림은 웃으며 말했다."안에는 우리 둘째 삼촌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특이한 꽃들이 많이 있어. 너도 본 적이 없을걸.""좋아!"두 사람은 화원에 들어가 잠시 놀다가 하인이 찾아와 그들더러 점심 식사하라고 불렀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이미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정숙은 열정적으로 소희를 불렀다."유민이가 소희 선생님이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매운 요리를 몇 개 더 만들라고 했는데. 입맛에 맞는지 얼른 먹어봐요."소희는 인차 말했다."그러실 필요 없는데요. 저는 음식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어요."식탁으로 걸어가며 소희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구택을 보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남자의 예쁜 눈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급히 시선을 돌렸다.노부인은 소희더러 얼른 자리에 앉으라 했고 사람들도 차례대로 자리에 착석했다. 공교롭게도 소희는 구택의 맞은편에 앉았다.노부인은 하인더러 소희에게 오리탕을 떠주라고 하며 상냥하게 웃었다."편하게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소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유민이 입을 열었다."처음도 아닌데, 어색할게 뭐가 있겠어?"말하면서 그녀에게 꽃게 하나 집어줬다."많이 먹어."소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응."임 씨네 식구들은 남을 얕보고 우아한 척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엄숙한 임가네 어르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냥하고 따뜻하며 항상 소희를 돌봐줬다.소희도
소희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할머님.""그래!" 노부인의 눈빛은 더욱 상냥해졌다.정숙은 유림과 함께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며 그녀가 구택의 차에 오르는 것까지 보고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구택은 운전하며 그녀를 데리고 임가를 떠나 도심으로 달렸다.소희는 차창 밖의 경치를 보다 고개를 돌려 조용히 입을 열었다."일 있으면 얼른 회사로 가봐요. 난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구택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난 확실히 회사에 가봐야 해요."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대답했다."그래요!"구택은 백미러를 통해 소녀의 옆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차는 어정에 들어가며 지하 차고에서 멈췄다. 소희는 차에서 내린 후 남자도 함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영문 몰라 하며 그를 보았다.(회사로 가는 거 아니었나?)구택은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가서 담담하게 웃으며 설명했다."갑자기 생각났는데, 오전에 이미 명우더러 처리하라고 했어요.""......"그는 틀림없이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위층으로 올라간 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택은 소희를 현관의 궤짝에 밀며 키스했다.임가네 서재에서 그녀에 의해 생긴 욕망은 다시 번지며 그는 그녀를 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며 침실로 천천히 걸어갔다......이번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낮에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햇빛은 닫히지 않은 커튼을 통해 방 안을 비추었다.소희는 침대에 엎드려 햇빛에 현기증이 나며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마치 어린 시절 이웃집 언니가 불었던 거품을 본 것 같았다. 한 떨기 한 떨기, 바람에 하늘로 날아가며 무척 알록달록했다.그녀는 그 거품들이 그녀를 데리고 아름다운 동화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고픔도 폭력도 욕설도 없는. 그녀는 필사적으로 거품을 쫓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그 거품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터지며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또 그 알록달록한 거품을 쫓
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떤 남자가 담배를 끊는다고 바로 끊을 수가 있을까? 이건 완전히 아이스크림을 그녀의 입으로 가져다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오늘 그녀는 쉬는 날이라 케이슬에 가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구택과 밥 먹으러 갔다.두 사람은 또 전에 갔던 남월정에 가서 밥 먹으러 갔다. 주인아줌마는 소희가 밀크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아이스 밀크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소희가 기뻐하기도 전에 구택은 이미 뜨거운 것으로 바꾸었다.주인아줌마가 나가자 소희는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아이스크림은 그렇다 쳐도, 아이스 밀크티도 안 되는 거예요?"남자는 단번에 거절했다. "안돼요!"소희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다."그럼 내 생활은 완전히 재미가 없잖아요."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소희 씨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안 되는 거예요?"그가 정색하게 말하자 소희는 한참 멍해졌다. 그녀는 가슴이 살짝 뜨거워지며 눈을 떨구며 중얼거렸다."그게 어떻게 같아요."남자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어느 게 더 좋아요?"소희는 목이 메어 맑은 한 쌍의 눈동자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인차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그에게 빠질 것이다.창문 아래에는 옛날식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남자는 등불 아래의 소녀의 귓가가 빨개진 것을 똑똑히 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창밖에는 해당화가 있었는데 소희는 몸을 내밀어 해당화를 만졌다. 정원에 마침 20대의 남학생이 지나가며 소희의 모습을 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참지 못하고 다가와 해당화 한 송이를 꺾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여기요!"소희는 받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래도 고마워요.""아가씨 자주 여기에 오나요? 번호 좀 알려주면 안 될까요?" 남자는 여자들과 말을 거의 걸어보지 못했지만 이때 용기를 내서 말했다. 불빛 아래의 깨끗한 얼굴은 새빨개졌다.소희는 거절하려
민수는 원망했다."둘째 삼촌이 오셨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주인아줌마는 부드럽게 웃었다."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네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나보고 어떻게 너한테 말해주라는 거야?"민수가 말했다."나도 방금 돌아와서 주방에 가서 도와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그럼 빨리 와!"주인아줌마는 부드럽게 말했다."네 둘째 삼촌과 삼촌 친구 식사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소희에게 물었다."소희 씨, 번호 좀 교환해도 될까요?"구택의 친구인 이상 소희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그래요!"주인아줌마는 구택을 한번 보더니 민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빨리 나와. 손님들 기다리잖어."민수는 구택과 소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좀 있다가 다시 올게요."모자 두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다시 닫히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하얀 얼굴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구택은 의자에 기대며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웃어요? 내가 일반 남자라서 웃는 거예요, 아니면 소희 씨가 풋풋한 여자애라서 웃는 거예요?"소희는 얼굴이 빨개졌다."그냥 민수 씨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구택은 몸을 기울여 유유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젊은 남자는 다 귀엽죠?"소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천히 말했다."귀여운 사람은 많지만 잘생긴 둘째 삼촌은 하나밖에 없어요. 근데......"소희는 그를 향해 웃었다."둘째 삼촌이 나에게 아이스 밀크티 한 잔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면 더 좋죠!"구택도 웃었다."소희 씨도 예쁘게 생겼어요, 아주 단순하게!"......결국 소희는 아이스 밀크티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어정으로 돌아간 후 구택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소희 보고 혼자 영화 보러 가라고 했다.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영화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먹을 권리가 박탈되었으니 그녀는 카펫에 앉아 찝찝해
소희는 이튿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안방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어정으로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잤다.안방은 남자의 사적인 공간이었고 오늘, 그녀는 그의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그녀가 멍 때릴 때 남자는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일어나요, 우리 잠깐 나갔다 와요."소희는 눈을 돌리며 물었다. 그녀는 잠에서 떨 깼다."어디 가는 거예요?"구택은 몸을 굽혀 두 손으로 그녀의 몸을 받치며 약간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 사이로 흩어졌다."운성에요."소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구택은 운성에 가서 비즈니스를 처리해야 한다며 가는 김에 소희를 데리고 그녀의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어젯밤 그가 말한 서프라이즈였다.소녀의 놀라운 표정을 보며 구택은 그녀가 유난히 귀엽다고 생각했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케이슬의 일은 어떡하고요?""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 소희 씨가 가지 않더라도 난 소희 씨의 월급을 지급하라고 할게요, 어때요?" 구택은 가볍게 웃었다."싫어요!" 소희는 핑크빛 입술을 오므렸다."나는 돈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돈 받는 거 싫어요.""우리 대략 일주일 정도 다녀와야 할 거 같아요. 돌아오면 계속 출근하면 되죠." 구택은 일어섰다. "일단 일어나서 아침 먹어요. 우리 한 시간 후에 출발해요."소희는 일어났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운성으로 돌아간다니?구택이 만약 그녀의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았다면, 틀림없이 그녀의 신분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끝난 건가?소희는 약간 복잡한 눈빛으로 문밖을 바라보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그녀는 여전히 즐겁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나면 정말 아쉬울 거 같다.구택은 짐 쌀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도운박 옆에 있던 여인은 소희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웃었다."안녕하세요, 난 마은설이라고 해요, 은설이라 부르면 돼요."소희는 손을 뻗어 그녀와 가볍게 악수했다. "소희라고 해요!"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어젠 일이 있어서 오늘에야 왔네요. 실례했다면 도 대표님께서 양해하시길 바라요."운박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이 별장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까지 다 갖추었으니 보름 동안 있어도 우리는 귀찮아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은설은 아주 신이 났어요. 경성으로 돌아간 후 자신에게도 이런 별장 하나 지어달라고 난리에요. 이건 정말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니깐요!"소희는 인차 알아차렸다. 이 별장은 구택의 것이었고 그는 이 도운박이라는 사람과 이곳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러 왔다.운박은 경성 말을 하고 있었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경성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이 두 사람은 왜 굳이 운성에서 비즈니스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걸까?"그럼 비즈니스 합작이 성사되면 도 대표님도 여기서 며칠 더 묵으시죠." 구택의 목소리는 평온했다."나는 먼저 소희 씨를 데리고 쉬러 갈게요. 이따 도 대표님을 찾으러 가죠.""그래요, 임 대표님은 먼저 소희 양을 잘 챙겨주고 우리 이따가 다시 만나요." 운박은 담담하게 소희를 보며 온화하고 우아하게 미소를 지었다.소희는 태연하게 구택을 따라 앞의 별장으로 걸어갔다.화려하고 웅장한 유럽식 별장에는 단정한 차림의 하인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하인들은 무릎을 반쯤 꿇고 슬리퍼를 꺼내 두 사람에게 갈아 신어 주었다.구택은 줄곧 그녀의 손을 잡고 짙은 색의 마룻바닥을 밟으며 위층으로 걸어갔다.거실과 긴 복도를 지나 구택은 침실의 문을 열고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침실은 아주 컸고 바닥에는 아주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었다. 옅은 남색의 벽지, 꽃을 조각한 큰 침대, 정교한 크리스털 샹들리에...... 바람에 휘날리는 흰색 커튼을 통해 그녀는 바깥의
구택은 침대 옆에 앉아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 가볍게 키스했다. 바람은 살며시 불어들어오며 커튼을 가볍게 들어 온화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남자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소희의 눈처럼 하얀 피부와 서로 대비가 되며 완벽하게 어울렸다.소희는 재빨리 눈을 뜨며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리고 순수한 모습에 남자는 키스를 참을 수 없었다.소희는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들어 몸으로 응답했다.한참 지나 남자는 살짝 일어나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배 안 고파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소희는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을 비비며 부드럽게 대답했다."네."구택은 부드럽고 온순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참지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나 옷방으로 가서 그녀에게 옷을 찾아주었다.구택은 옅은 민트색의 긴 드레스를 골랐는데 퍼프소매에 발목까지 닿는 길이의 드레스는 그녀를 대범하면서도 귀여움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소희는 화장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가볍게 머리만 빗고 옷을 갈아입고 구택과 함께 외출했다.점심은 별장의 호텔에서 먹었다. 운박과 은설은 이미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낮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두 사람이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은설은 즉시 일어나 다정하게 소희의 팔을 잡았다."방금 내가 소희 씨 찾아가려고 했는데, 임 대표님이 소희 씨가 휴식하고 있다고 해서 방해할까 봐 찾아가지 못했어요."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요.""미안하긴요." 은설은 매력 있게 웃었다."나는 단지 부러울 뿐이에요. 임 대표님이 소희 씨를 이렇게 잘 챙겨줘서."운박은 농담으로 말했다."내가 은설 씨 학대하는 것처럼 들리겠어."은설은 애교 부리며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당신한테 잘해 주는 것만 못하지!"운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부인을 하지 않았다.구택은 소희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
진구는 고개를 돌려 방연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가 나더러 너 데리러 오라고 하셨어.”연하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투덜거렸다.“엄마한테 곧 간다고 말했는데, 왜 또 오빠까지 부른 거야?”“너 데리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진구의 말투는 점점 더 다정해졌고, 하현욱은 재빨리 말했다.“연하 씨, 남자친구가 왔으니 얼른 들어가요!”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한에게 말했다.“다음에 꼭 사장님 노래 들을게요. 전 먼저 갈게요.”구석한도 더는 말할 수 없어, 체면상 걱정스러운 말만 건넸다.“조심히 들어가요.”연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진구를 바라봤다.“가자, 집에 가자.”진구는 연하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연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대듯 기대고는 완전히 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근데 선배 어떻게 거기 있었어요?”진구는 말했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어. 몇 명이랑 실랑이 중인 거 같아서 혹시 곤란한 일 생긴 건가 싶더라고.”연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안 그랬으면 오늘은 진짜 피 토했을지도 몰라요.”진구는 그제야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무슨 일 있어?”연하는 그를 친구처럼 여겼기에 거리낌 없이 말했다.“생리 중인데, 배가 너무 아파서요.”진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병원 갈래?”“괜찮아요!”방연하는 씩 웃었다.“딱 봐도 여자친구 없어 보여요. 이거 매달 하는 되게 평범한 거예요.”“아...”진구는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그렇게 아픈데도 술 마시러 나갔어?”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쩔 수 없잖아요.”“그러면 잠깐 눈 좀 붙여. 집까지 데려다줄게.”진구가 말에, 연하는 감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선배, 진짜 고마워요.”“고맙긴.”연하는 정말 배가 아파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눈을 감았다.진구는 연하가 어깨를 감싸 쥐고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며, 평소의 활달한 모습과
은정은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내려놓았다.“이거 먼저 마셔. 곧 밥이 다 돼.”그 말을 남기고, 곧장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유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고, 이내 푸르스름해졌다.‘이게 어떻게 친구 사이야?’‘예전엔 왜 몰랐을까, 이 남자 이렇게 능숙하고, 설레게 하는 타입이었나? 하.’역시, 유진은 은정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었다. 은정은 지난번 남겨 냉동해 두었던 생선을 꺼내 생선찜을 만들었다.맛은 나쁘지 않았고 달걀 몇 개를 볶고, 간단한 국도 하나 끓였다. 유진은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이 익숙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건지, 자리에 앉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은정은 생선살을 발라 접시에 담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유진은 한 손으로는 자신이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애옹이에게 먹이를 주었다.계란볶음은 아주 평범한 요리였지만, 유진은 파티장에서 먹던 최고급 참치초밥보다도 더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졌다.은정은 말없이 생선 살을 모두 유진의 앞 접시에 덜어주고, 조용히 유진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며 업무 관련 메시지 몇 개를 간단히 회신했다.유진이 물었다.“왜 안 먹어요?”이에 은정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파티 가기 전에 먹었거든.”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야근해서, 진구와 함께 바로 파티장으로 갔었다. 원래는 파티가 끝나면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었다. 유진은 이내 그 생각이 나 휴대폰을 꺼내 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요.]진구는 이미 파티장을 떠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유진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괜찮아.]폰을 내려놓은 진구는, 갑자기 집에 가고 싶지도 않고,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봐도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 만한 사람도 딱히 없었다.대학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모인 지도 오래됐다. 회사에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선, 누군가와 진심을 나누는 것도 어렵다.유진이 그나마
“그날 밤 이후로, 계속 잠을 못 잤어.”“나, 좀 수척해 보이지 않아?”유진이 잠깐 멈칫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 거지?’유진은 순간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남자의 말이 괜히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은정은 반쯤 눈을 뜬 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유진은 은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지었다.“친구가 되니까 마음이 놓였다고요? 그럼 우린 원래 친구였잖아요. 왜 그렇게 돌아서 가려고 했는데요?”어두운 조명 아래, 은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더욱 짙고 어두워져 먹물처럼 깊었고, 저음의 목소리는 자석처럼 끌리는 울림이 있었다.“왜 그런 것 같아?”유진은 은정의 눈 속에서 깊은 바다 같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괜히 빠져들 것만 같아서, 아예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투덜거렸다.“그럴 만하니까 그렇죠.”은정은 다시 눈을 감으며,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내가 그럴 만하지.”원래 하늘이 은정에게는 치트키를 줬다. 왕으로 곧장 올라설 수 있었던 삶을, 굳이 밑바닥 계급부터 정글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던 그였다.27층으로 돌아왔을 때, 유진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이제는 좀 놔줘도 되지 않아요?”그러나 은정은 손을 놓지 않았다.“애옹이 보고 싶지 않아?”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내가 야식 만들어줄게. 넌 애옹이랑 잠깐 놀고 있어.”은정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리고 유진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자, 그는 그녀가 동의한 것으로 알고 그대로 유진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집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문득 말했다.“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요.”그 말에 그제야 구은정이 손을 놓았다.“얼른 다녀와.”“네.”유진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답하고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은정은 문을 닫지도 않고 열어둔 채, 달려오는 애옹이를 받
은정은 유진을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이제 좀 진지한 얘기를 하자.”“진지한 얘기?”유진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구은정을 도와 서성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기에,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은정의 짙은 눈동자는 깊었다.“친구로 지낼 건지, 아니면 내가 널 계속 쫓아다닐 건지. 결정했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듯 말했다.“그게 지금 진지한 얘기예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유진의 가슴 한쪽이 찌릿하며 저렸다. 분노도 사라지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잘 모르겠어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이미 고백도 받고, 키스도 했는데, 어떻게 친구로 돌아가라는 걸까?’“결정 못 했으면, 그럼 나는 계속 널 쫓아다닐게.”은정의 목소리는 장난기 섞인 당당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고, 유진의 입술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그리고 유진은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났고, 등이 소파에 닿을 만큼 밀려나며 외쳤다.“친구 할게요!”은정의 얇은 입술은 유진의 입술 코앞에서 멈췄다. 단 몇 센티미터만 더 가면 닿을 거리였다.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숨을 참은 채 눈을 내리깔고 은정의 어깨를 밀었다.은정은 결국 몸을 물러섰다. 이 이상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 이 정도면 충분했다.은정은 유진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좋아. 친구 하자. 하지만 조건 있어. 예전처럼 나 피하지 않기!”유진은 속눈썹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고, 은정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우리 이제 집에 가자.”유진은 급히 말했다.“아직 난 못 가요.”말이 끝나기도 전,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는 여진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통화를 받았다.“선배!”진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유진아, 어디야? 파티장 안에 네가 안 보여서.]유진은 자기를 바라보는 은정의 눈빛이 너무나 뜨겁다는 걸 느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